코끼리를 쏘다
조지 오웰 지음, 박경서 옮김 / 실천문학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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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사형될 사형수의 이런 행동은 이상했지만, 그 순간까지 나는 건강하고 의식 있는 한 인간을 파괴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지 못했다. 그 사형수가 웅덩이를 피하기 위해 발걸음을 딴 데로 옮기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신비감, 다시 말해 생명이 한창 절정에 달했을 때 그 생명을 앗아가는 말할 수 없는 부당함을 보았다. 이 사람은 죽어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육체의 모든 기관은 살아 움직이고 있다. 창자는 음식물을 소화해내고, 피부는 스스로를 재생시키고, 발톱은 자라고, 세포도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모든 것이 이 냉혹한 어리석음 속에서도 악착같이 작용하고 있다. 그가 교수대 발판에 세워지고 사형이 집행될 10분의 1초의 그 순간에도 그의 발톱은 여전히 자랄 것이다."-26쪽

"소설을 쓰는 것은 장기간의 고통스러운 질병에 시달리듯 끔찍하고 극도의 투쟁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저항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어떤 악마에 씌지 않고는 이런 작업을 결코 떠맡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악마란 존재는 마치 아기가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달라고 우는 것과 똑같이 단순한 본능과 같은 것이므로, 그러나 만약 작가가 자신의 개성을 없애버리는 투쟁을 끊임없이 하지 않는다면 남들이 읽어줄 만한 어떤 글도 쓸 수 없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89쪽

"복수는 우리가 힘이 없을 때, 그리고 힘이 없기 때문에 행하기를 원하는 행동인 것이다. 무력감이 사라지면 그런 욕망 또한 없어지게 된다."-2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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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피드림~ 2005-08-24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멋진데요.^^

이리스 2005-08-24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요, 과연 그럴까요? 힘을 얻게 되면 복수의 욕망이 사라질런지.. 그건 개인차가 심하게 있을듯 합니다. ^^

마늘빵 2005-08-24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서 오웰이 그런 야기를 하더라구요, 괴벨이나 히틀러를 감옥에 잡아넣고 나면 그들의 무시무시한 권력이 이미 사라지고 우리앞에 한없이 작아진 모습으로 있기 때문에 복수를 하고픈 마음이 사라진다고. 그들이 강력한 권력을 쥐고 있을 때 우리가 그들을 깨부숴야 더 쾌락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이리스 2005-08-24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건 마치 더이상 초라할 수 없이 초라해진 후세인을 보고 연민을 느끼게 되는 심리와 같은 것인가요? 저는 못돼먹어서 그런지 히틀러가 한없이 작아진 모습으로 있으면 아예 더 작게 만들거나 완전히 없애버릴것 같아요.나약한 눈빛을 보이면 가증스러워하며 말이죠. -.-
 

 

 오랫만에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셨다. 우리 아빠는 올해 어느시점엔가부터 밖에 친구네 집에 가 있는다고 나가셨다. 그리고는 아주 가끔씩 들어오셔서 하루 자고 다시 가신다. 지금껏 한 세번 온거 같다. 전에도 종종 그러셨다. 아빠는 음주, 도박, 여자 이런데 관심 없으시다. 매우 착실하게 경찰생활 하셨고, IMF에 퇴직하셨고, 퇴직금과 연금까지 다 주식으로 날려버리고 가진거 아무것도 없으시지만 성실하셨다. 항상 우리를 위해 살으셨고 문화생활도 거의 안하셨다. 아빠에게 문화생활은 케이블 티비 보기와 낚시가 전부 다다. 원래 성악을 되게 좋아하셨지만 오디오도 안가지고 계신다. 내 방과 동생 방에는 조그만 오디오가 하나씩 있지만. 아주 오래전에 그런 모습을 보긴 했다. 내가 군에 있을 때였나? 아니면 엠티, 수련회 갔을 때였나? 하튼 집을 비웠을 때였는데 아빠는 내 방 오디오에 헤드폰을 끼고 파바로티를 듣고 계셨다. 쓰리 테너스도. 내가 들어가는 바람에 듣다 나오셨지만.

  아빠는 사람과 소통하는 법을 모르신다. 오랫만에 들어오셔서는 샤워하고 내 방에 들어와 돈을 건네며(모자라는 등록금이다) 하시는 말이, 오늘 입었던 티셔츠 뒤에 허옇게 땀이 마른 자리가 보이자 이거 땀이냐 며 그럼 빨아야지 그러신다. 학교는 어디라고 했지? 거기는 한달에 얼마나 받냐? 그럼 용돈하고 등록금 되겠구나. 그러곤 나가셔서 안방에 누워계신다. 매번 이렇다.

  우리집에서 아버지가 가장 편한 사람은 나고, 어머니와 동생은 되도록 안마주친다. 아마 내일 아침 아버지가 가실 때까지 우리집 식구 누구도 아버지와 대화하지 않을 것이다. 일부러 왕따 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광경이다. 항상 그랬다. 아버지는 가족 중 누구와도 소통하지 못하며, 밖에서도 거의 그런 것 같다. 사람들과 정감있게 말하는 법, 재밌게 이야기하는 법을 모르신다. 그래서인지 아버지만 보고 자란 나도 그런 것 같다. 나름대로 난 아버지처럼 되지 않아야지 하고 항상 속으로 주문을 걸었지만 결국 이제 어느덧 나이 먹은 내 모습도 그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은 듯 하다.

  난 소통하는 법에 익숙치 않다.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난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다. 항상 내 안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그래서 난 여러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내가 주도하에 뭔가를 하는 일을 잘 못하고, 난 항상 구성원 속에 파묻혀 있으려고 한다. 여론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 수는 있지만 결정을 내리는 것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다. 다만 나는 결정권자에게 영향을 미칠 수는 있다. 그런 점에서 어찌보면 난 지도자 스타일은 아니지만 보좌관 스타일은 되는 듯 하다. 한 다리 건너 사람들과 소통하는 셈이다.

  난 그런 사람들이 부럽다. 주위 시선을 이끌고 화려한 말빨로 사람들을 재밌게 해주는 사람들. 나에겐 그런 재주가 없다. 친구와 있을 때도, 여자친구와 있을 때도, 후배와 선배와 있을 때도, 난 주로 듣는다. 그들이 하는 말을 듣고 거기에 반응해 한 마디 던지는 식이다. 결코 대화 상대가 맘에 안들어서는 아니다. 난 말하는게 익숙치 않다. 그래서 듣는 거다. 학생들을 대할 때는 내가 말하는 입장이 되고 그들이 듣는 입장이 되어야 하는데 난 익숙치가 않아서 수업할 때 수업외의 것에 어려움을 겪는다. 장점도 있을 것이다. 그들이 누군가 자신의 말을 들어줬으면 하고 있을 때 나를 택했다면 그건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난 잘 들어줄 수 있으니깐. 하지만 해답을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어찌되었건 난 사람들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좀더 개인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방법은 스스로 찾아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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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8-23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등어와 꽁치때문에 소통이 안됐지만 전 님을 이해해요^^

마늘빵 2005-08-23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하핫... 그 꽁치요. ㅋㅋ 어제 H님과도 꽁치김치찌개 먹었는데.

실비 2005-08-23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위기 띄어주는게 말잘하는 사람들 보면 부럽죠..
근데 아버님이 외로워 보여요.ㅠㅠ

인터라겐 2005-08-23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요.. 아버님과 얘길 많이 나눠보세요... 그리고 사람과 소통한다는거.. 지금도 잘 하고 계시면서...걱정하지 마시고 지금처럼 하시면 되는거 아닐까 해요...아,,, 마태님과 부리님께 특강을 받아 보심이..^^

2005-08-23 2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이드 2005-08-23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꽁치. 전 잘 먹는 사람이 좋아요. ^^ 전 가끔 꼭 소통이란걸 해야하나는 생각은 들어요. 어짜피 완벽하지 못할텐데. 그냥 노력같은 거 하지 말고 마음 가는데로 퀘세라세라 렛잇비.

이리스 2005-08-23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편하게.. 릴렉스~ 릴렉스~ 호호.. ^^

울보 2005-08-23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누구에게나 어려운점이 잇군요,,
전 아프락사스님은 그런 어려운점없으신줄 알았는데,,
님 힘내세요,,우리 모두 그냥 화이팅하자고요,,

야클 2005-08-24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모같은 분이군요. ^^

그리고 아버님... 아프락삭스님이 잘해드리세요. 전 아버님이 이 세상에 안 계신 요즘 후회되는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랍니다.

이매지 2005-08-24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화려하게 말빨던지는 스타일보다는 묻어가는 스타일이라서.
사람과 소통하는 건 아. 힘들어요 -_ ㅜ

히피드림~ 2005-08-24 0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두 사람들은 열심히 상대방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을 좋아하지요.^^

산사춘 2005-08-24 0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드실수록 그런 아버님들이 많으신 듯 해요. 제 친구도 하루종일 말씀없이 거실에만 앉아계신 아버지를 위해 강아지를 사드렸는데 좀 시간이 걸렸지만 다행히 효과가 있었어요. 님 아버님께는 무엇이 도움이 될지 (제가 감히) 고민되네요.

마늘빵 2005-08-24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비님 / 제가 볼 때도 외로워보입니다. 흠... 근데 다가가기는 힘들군요.
인터라겐님 / 그러게요. 부리님과 마태님께 특강을... ^^
속삭이신님 / 그게 쉽지가 않아요. 전. 님은 그걸 잘 하시는거 같아요. 전에 페이퍼보니까. 전에 아버지가 돈이 있으실때는 그래도 나았는데 아무래도 지금은 더 움츠려드신거 같아요. 해줄 수 있는게 없으니까.
하이드님 / ^^ 저 꽁치 좋아라해요.
구두님 / ^^
울보님 / 왜 제가 어려움이 없다고 생각하세요. ^^ 전 제가 가진 어려움을 드러내지 않는 경향이 있답니다. 이런거 말고도 다른 어려움들도 있죠. 감사합니다.
야클님 / 모모를 아직 안읽어봐서. ^^ 어떤 말씀인지는 잘 모르겠고. 네 잘해드려야할텐데.
이매지님 / ^^ 저도 힘들어요.
펑크님 / ^^
산사춘님 / ㅎㅎ 강아지. 저희 아버지는 별로 동물 안좋아해서. 흠. 집에 안계시니 뭘 드릴 수도 없고. 고민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얼룩말 2005-08-24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아빠도 그래요. 식구들 아무하고도 안 친하고..아빠와 저의 대화도 사스님네 대화랑 다를게 없네요. 주로 아빠의 뜬금없는 질문...그에 대한 저의 짧은 대답...
갑자기 집안에만 계시다보니 가구가 되어 버린 듯 하시다는 친구의 아버지도 생각나네요(^^) 아..웃으면 안되는데 사실..

마늘빵 2005-08-24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얼룩말님 네도 저희집이랑 비슷한거 같네요. 흠. 외로워보이고 불쌍해보이면서도 뭘 할 수는 없네요 제가.
 



 

 

 

 

  아 재밌다. 스트레스 날리기는 딱이다. 연구소 교육은 해당시간에 가서 수업만 하는 것으로 끝나질 않는다. 이런저런 잡다한 것들이 즐비하고 일일히 다 신경써서 하면 시간 무지 잡아먹는다. 첨삭도 해주고 코멘트 달고 뭐 파일 보내고 머하고 머하고. 그제, 어제, 오늘. 교재 안에 일일히 코멘트 달아주는 것도 참 시간 무지 잡아먹는다. 이거하다가 스트레스 받아서 배째라 하고선 쇼파에 뒹굴며 짱깨집에서 볶음밥 시켜먹으며 케이블 영화를 시청.

  오늘 나에게 걸려든 영화는 <블레이드2>다. 지금 <블레이드3>까지 나온 걸로 아는데 흠. 두번째 작품은 내가 전에 얼핏 중간부분만 본 것 같다. 익숙한 장면이 몇군데 있었다. 이래서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봐야돼. 보다말거나 중간부터 보면 안된다니깐. 다행이 이번엔 첨부터 끝까지 다 봤다.

  한국인 부인을 두고 있어 잠시나마 화제가 되었든 웨슬리 스나입스 주연의 영화. 사실 난 그를 잘 몰랐고 별 관심도 없었다. 한국인 부인과 함께 한국을 방문하기전까지는. 역시 그런게 사람들의 시선을 주목하기는 하는구나 하는 점을 느낌.



* 수많은 리퍼족들을 혈혈단신 상대하고 있는 웨슬리 스나입스. 그는 연기하는게 아니라 영화 속에서 노는 거 같다. 전쟁놀이하듯. 이건 칭찬.

  흡혈귀와 인간의 대결. 그리고 또다른 존재 변종 뱀파이어 리퍼의 출연.



* 무시무시하고 잔인한 리퍼. 그는 뱀파이어의 정예부대의 일원인 니사를 살려준다. 왜? 동생이니깐.

  "친구는 가깝다. 하지만 적은 더 가깝다." 라고 그가 말했던가. 과거의 적인 뱀파이어와 인간 블레이드의 대결은 이제 뱀파이어와 블레이드 VS 리퍼의 대결로 바뀐다. 리퍼는 뱀파이어를 사냥하고 순식간에 리퍼족으로 변신해버린다. 엄청난 속도로 뱀파이어가 다 잠식당하고나면 다음 목표는 인간. 그러니 블레이드도 가만 있을수는 없다. 하지만 이건 뱀파이어의 계략이었다. 정많고 착한 블레이드 당연히 계략에 넘어가주고, 원래 그를 사냥하기 위해 조직되었던 블러드 팩 집단과 한패거리가 되어 리퍼를 사냥하는데. 아무리 이제 같은 팀이라고는 하나 블러드 팩과 블레이드가 온전히 한팀일 수는 없다. 당연히 뱀파이어는 블레이드를 중간중간 노리고.  그 안에는 믿었던 인간첩자까지 숨어있었으니.



* 잔인하고, 날카롭고, 거대한 존재이지만 불쌍한 존재.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존재자.

  대결, 배신, 연민, 사랑이 곁들어있는 영화. 그리고 화려한 볼거리. 사실 화려한 볼거리가 주고, 연민, 사랑, 배신 이런 것들을 영화를 감질나게 하는 양념에 불과하지만 볼거리 못지 않게 이런 부분도 생각해볼 수도 있다.

  실패한 디엔에이 조작으로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리퍼. 아버지는 너무나도 냉혈인(?)이다. 냉혈 뱀파이어. 뱀파이어의 우수한 종족보존을 위해서는 아들도 딸도 가족도 없다고 말하는 대왕 다마스키노스. 내가 볼 땐 오히려 뱀파이어보다 리퍼족이 더 강해서 실패한 디엔에이 같지도 않더구만. 리퍼는 아버지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였을까. 뱀파이어를 노리며 사냥에 나선다. 그리고 결국 아버지와의 대면하게 된다.

  뱀파이어를 죽이는 각종 적외선(?) 자외선(?)  수류탄하며, 이런저런 무기들. 거의 매트릭스의 레오수준으로 날아다니다시피하는 블레이드의 화려한 액션신. 다 잊고 이 순간을 즐기자. 영화를 다 보고 나니 <블레이드 3> 에서는 무슨 일이? 하는 궁금증이 생기는군. 그 다음 이야기는 뭘 다루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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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23 2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여행의 기술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알랭 드 보통의 번역된 저서 중 내가 제일 마지막으로 읽은 책. <여행의 기술>. 물론 그의 번역된 책 중에서 절판된, 지금은 도서관에나 가야 만날 수 있는 또다른 저서가 있긴 하다. <섹스 쇼핑 그리고 소설>이 그것인데, 요놈도 얼른 다시 나왔으면 좋겠다. 난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걸 별로 안좋아하는 위인인지라. 그렇다고 다 사보는 건 아니고 친구나 동생 것을 빌려 읽기는 한다. 그러나 웬만하면 사서 보는 걸 선호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집에 책이 많은건 아니다. 워낙 읽는 속도도 느리고 이런저런 핑계로 잘 읽지도 않기 때문에.

  지금껏 읽은 알랭 드 보통의 저서들 모두 나에게 별 네개 이상씩의 만족은 안겨주었고, 그렇기에 난 그의 책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구입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 역시  내게 별 네 개 정도의 만족을 안겨주었다. 별 하나 부족의 이유는 내가 여기 나오는 여행의 장소들에 대해 아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여행한 그 장소들을 이미 다녀왔다면 이 책을 읽을 때 더 밀착하여 읽을 수 있었을텐데. 이 책을 읽는 동안 나의 여행이라는 건 순전히 '머리 속의 여행'이었다. 하지만 여행을 해본적이 없는 사람이라도,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여행에 관한 이 책은 좋아할 수 있다는 것이 나로 인해 증명되었다. 난 여행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을 통해 보통씨가 사색하는 그것을 좋아했다.

   이 책의 순서는 출발, 동기, 풍경, 예술, 그리고 귀환 이렇게 다섯부분으로 나누어져있고, 여행의 할 때의 출발시의 주의점, 장소 등에 대해서부터 시작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뒤의 그것까지 다루고 있다. 여행할 때의 시간순에 맞춰서 책의 순서를 배열하고 있는 것이다.

  보통은 순수하게 여행에 대해, 여행장소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여행을 통해 그가 느낀 것, 호기심, 숭고함, 아름다움, 습관 등에 대해서도 깊이있는 사색을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 오히려 여행의 시간적 기록은 찾아볼 수 없고, 띄엄띄엄 그가 본 것이 시작이 되어 끝없이 그의 머리 속에서 펼쳐지는 사색의 향연을 즐기는 것이 이 책의 주 내용이다.

 "귀중한 요소들은 현실보다는 예술과 기대 속에서 더 쉽게 경험하게 된다. 기대감에 찬 상상력과 예술의 상상력은 생략과 압축을 감행한다. 이런 상상력은 따분한 시간들을 잘라내고, 우리 관심을 곧바로 핵심적인 순간으로 이끌고 간다. 이렇게 해서 굳이 거짓말을 하거나 꾸미지 않고도 삶에 생동감과 일관성을 부여하는데, 이것은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보푸라기로 가득한 현재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P27)

  "상상력은 실제 경험이라는 천박한 현실보다 훨씬 나은 대체물을 제공할 수 있다."(P43)

  어쩌면 이 책은 일종의 대중적 미학 서적이 될수도 있겠다. 건물과 거리거리마다의 느낌, 그리고 미술작품에 대한 이야기들, 이를 통해 펼쳐지는 숭고와 미학. 예술작품에도, 미학에도, 여행에도 문외한인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솔직히 내가 잘 아는 이들이 아니라 어렵게 느껴졌다. 물론 다 들어본 이들이다. 이름만. 위스망스, 보들레르, 에드워드 호퍼, 귀스타브 플로베르, 알렉산더 폰 훔볼트, 윌리엄 워즈워스, 에드먼드 버크, 빈센트 반 고흐, 존 러스킨 등등 이들의 이름은 낯설지는 않다. 하지만 이들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한다. 그러니 잘 모르는 주제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이 안내자가 되어 나와 여행을 떠나고 있으니 난 읽을 때마다 나의 무지를 한탄하고 그렇구나 그렇구나 하고 고개만 끄덕일 밖에.

 "여행은 생각의 산파다. 움직이는 비행기나 배나 기차보다 내적인 대화를 쉽게 이끌어내는 장소는 찾기 힘들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것과 우리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 사이에는 기묘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상관관계가 있다. 때때로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 다른 경우라면 멈칫거리기 일쑤인 내적인 사유도 흘러가는 풍경의 도움을 얻으면 술술 진행되어나간다."(p46)

  알랭 드 보통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주된 이유 중 하나는 그가 독자의 몫까지도 지나치게 사색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가 펼치는 자랑질이다. 난 이만큼 알고 이만큼 똑똑해. 그래 너 잘났다. 이런 식이 되는 거다. 보통이 그걸 의도하고 책을 쓰지는 않겠지만 일단 그가 똑똑한 것은 인정하자. 많이 안다는 것은 인정하자. 하지만 그는 너무도 자신이 아는 것을 현학적으로 그려낸다. 좀더 쉽게 안될까? 그의 책을 읽을 때마다 난 나의 무지를 깨닫고 아 이런 멍청이 머 아는게 하나도 없냐 이런식의 자기비판을 하고 있으니 그의 책 앞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진다. 아니 뭐 이래. 나이 먹은 움베르트 에코 쯤 되는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는 고작 30대의 젊은 스위스 철학자 아냐? 너무한걸.

  <여행의 기술>에는 어떻게 여행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방법론적 기술은 나오지 않는다. 이것은 여행안내서가 아니라 철학에세이다. 미학에세이다. 그러니 나같이 여행을 다녀본 적이 없는, 갈 계획도 없는 이들이 읽어도 무방한 것이다. 자 그를 통해 이제 머리 속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사색을 펼쳐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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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스 2005-08-22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잘난척 하는 똑똑한 스위스 젊은 철학자에게 아주 푹 빠져 있습니다. 우호호호... 게다가 미남이지 않으시옵니까? ㅋㅋ

마늘빵 2005-08-22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핫. 저도 푹 빠지긴 했습니다. 잘난척도 밉지가 않더군요. 미남이 해서 그런가? 난 남자 별로 안좋아하는데.
 
광장 / 구운몽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1
최인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최인훈의 <광장/구운몽> 중의 <구운몽> 부분. 흔히들 <구운몽>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김만중의 <구운몽>과 최인훈의 <구운몽>을 함께 이야기한다. 어떤 관계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난 김만중의 <구운몽>이라는 것은 학교 다닐 적 시험을 위해 김만중이라는 사람이 <구운몽>이라는 소설을 썼다 라는 사실 이외에는 아는 바가 없으므로.

  구(九). 운(雲). 몽(夢). 아홉 구. 구름 운. 꿈 몽. 아홉 구름의 꿈? 인생무상을 논하는 것인가. 모든 것이 한낱 꿈이더라. 현실에서 시작해 꿈으로 도망가고 다시 현실과 맞닥뜨린다. 이런식의 구도는 소설이나 영화에서 많이 써먹은 방법이기도 하다. 얼마전 종영된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서도 현실-꿈-현실로 이어지는 구도는 아니었지만, 지금껏 진행된 모든 것이 한낮 꿈이었다 라는 식으로 끝냄으로서 그동안 열심히 본 시청자들에게 허무감을 안겨주기도 했고, 역시 현실-꿈-현실의 구도는 아니지만, 영화 <달콤한 인생>도 구름에 붕 뜬 삶을 살아가는 듯한 느낌을 안겨주기도 했다.

  독고민은 자신의 집 마룻바닥에 떨어진 한 통의 편지를 보고 놀랬다. 그것은 숙이가 보낸 것이었고, 그녀는 민과 만나고 싶다고 했다. 숙이는 독고민이 미국 부대에서 그림을 그리며 활동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만난 여자이다. 민은 그녀를 사랑했다. 그런 그녀가 자취를 감추고 이제는 민을 만나기를 원한다. 하지만 그녀는 약속장소에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 편지날짜를 확인한 그는 이미 약속날짜가 지났음을 확인 그녀에게 편지를  쓰다 잠이 든다.

  꿈의 시작. 스피커를 통해 거친 음성이 흘러나온다. 자유를 찾기 위해 정부에 대항합시다. 혁명군의 목소리다. 아 혁명이 났구나. 한 건물로 들어갔더니 사람들이 그를 보고 사장이라며 뭘 결단내리란다. 난 사장이 아니에요. 그들을 피해 다른 문으로 들어갔더니 웬 아리따운 무용수 20여명이 춤을 추고 있다. 흐흐. 독고민은 그들에게 발레 선생이었다. 뭐냐? 그녀들이 추근덕거리고, 민은 그녀들을 피해 도주한다. 그랬더니 웬 감방? 황당하게 들어선 감방에서 웬 여자 하나가 또 그를 쫓아온다. 또 도망간다. 그랬더니 갈수록 태산이다. 이제 반란군의 수령이 되었다. 그리고 총에 맞았다. 하지만 방탄복을 입어 살았고 무용수중의 늙은댄서가 그를 부축해 어느 문으로 들어간다. 다음 날 아침. 독고민은 얼어죽었단다. 몽유병이라고 한다.

  독고민은 고고학에 관한 영화를 봤다. 그리곤,

  여자가 남자의 옆 모습에 눈을 주며 입을 연다.

  "민!"

  "..."

 이쪽은 말이 없이 눈으로 대답.

  "그런 시대에도 사람들은 사랑했을까?”

  남자는 그 물음에도 여전히 대답이 없이 우둑 걸음을 멈춘다. 여자도 선다. 남자가 두 손으로 여자의 팔을 잡는다. 그녀의 눈동자를 들여다본다. 신기한 보물을 유심히 사랑스럽게 즐기듯.

  "깡통. 말이라고 해? 끔찍한 소릴? 부지런히 사랑했을 거야. 미치도록. 그 밖에 뭘 할 수 있었겠어"

  남자는 잡고 있던 여자의 겨드랑 밑으로 팔을 넣어, 등판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두 손바닥으로 여자의 부드러운 뒤통수를 꼭 붙들어서 꼼짝 못하게 만든 다음, 입을 맞춘다. 오랫동안.

  하늘에는 꽃불. 땅에는 훈풍과 아름다운 가락. 플라타너스 잔가지가 간들간들 흔들린다. 잎사귀가 사르르 손바닥을 비빈다.

  그들의 입맞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나의 머리는 혼란스러웠다. 최인훈의 <광장>을 읽었을 때의 좌냐 우냐 아니면 중도냐 그것도 아니냐? 의 혼란이 아니라, 도대체 뭔 내용이래 하는 혼란. 실컷 읽고 났더니 머리가 벙찐 기분이다. 쇠파이프로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한. 그리곤 내가 꼭 나의 머리 속에만 존재하는 파아란 하늘의 뭉게구름 위에 둥실둥실 떠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곤 이내 낙하산도 없이 땅으로 푹 꺼진 느낌. 멍 하니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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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8-22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다에 있음 뛰어 내리고 싶은 기분이죠 ㅠ.ㅠ

마늘빵 2005-08-22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일어나서 이부자리도 아직 정리하지 않고 컴터 켜고 이짓하고 있어서 그런가. 아직도 머리가 멍한데요?

물만두 2005-08-22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이리스 2005-08-22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흠, 일어나서 이부자리도 정리하지 않고 서재질에 몰두하는 모습 상상! 캬호호..

마늘빵 2005-08-22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늦게 일어나서 그런지 오늘 하루가 굉장히 짧군요. 하려고 계획하고 있던 것들을 하나도 끝낸게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