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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 구운몽 ㅣ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1
최인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최인훈의 <광장/구운몽> 중의 <구운몽> 부분. 흔히들 <구운몽>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김만중의 <구운몽>과 최인훈의 <구운몽>을 함께 이야기한다. 어떤 관계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난 김만중의 <구운몽>이라는 것은 학교 다닐 적 시험을 위해 김만중이라는 사람이 <구운몽>이라는 소설을 썼다 라는 사실 이외에는 아는 바가 없으므로.
구(九). 운(雲). 몽(夢). 아홉 구. 구름 운. 꿈 몽. 아홉 구름의 꿈? 인생무상을 논하는 것인가. 모든 것이 한낱 꿈이더라. 현실에서 시작해 꿈으로 도망가고 다시 현실과 맞닥뜨린다. 이런식의 구도는 소설이나 영화에서 많이 써먹은 방법이기도 하다. 얼마전 종영된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서도 현실-꿈-현실로 이어지는 구도는 아니었지만, 지금껏 진행된 모든 것이 한낮 꿈이었다 라는 식으로 끝냄으로서 그동안 열심히 본 시청자들에게 허무감을 안겨주기도 했고, 역시 현실-꿈-현실의 구도는 아니지만, 영화 <달콤한 인생>도 구름에 붕 뜬 삶을 살아가는 듯한 느낌을 안겨주기도 했다.
독고민은 자신의 집 마룻바닥에 떨어진 한 통의 편지를 보고 놀랬다. 그것은 숙이가 보낸 것이었고, 그녀는 민과 만나고 싶다고 했다. 숙이는 독고민이 미국 부대에서 그림을 그리며 활동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만난 여자이다. 민은 그녀를 사랑했다. 그런 그녀가 자취를 감추고 이제는 민을 만나기를 원한다. 하지만 그녀는 약속장소에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 편지날짜를 확인한 그는 이미 약속날짜가 지났음을 확인 그녀에게 편지를 쓰다 잠이 든다.
꿈의 시작. 스피커를 통해 거친 음성이 흘러나온다. 자유를 찾기 위해 정부에 대항합시다. 혁명군의 목소리다. 아 혁명이 났구나. 한 건물로 들어갔더니 사람들이 그를 보고 사장이라며 뭘 결단내리란다. 난 사장이 아니에요. 그들을 피해 다른 문으로 들어갔더니 웬 아리따운 무용수 20여명이 춤을 추고 있다. 흐흐. 독고민은 그들에게 발레 선생이었다. 뭐냐? 그녀들이 추근덕거리고, 민은 그녀들을 피해 도주한다. 그랬더니 웬 감방? 황당하게 들어선 감방에서 웬 여자 하나가 또 그를 쫓아온다. 또 도망간다. 그랬더니 갈수록 태산이다. 이제 반란군의 수령이 되었다. 그리고 총에 맞았다. 하지만 방탄복을 입어 살았고 무용수중의 늙은댄서가 그를 부축해 어느 문으로 들어간다. 다음 날 아침. 독고민은 얼어죽었단다. 몽유병이라고 한다.
독고민은 고고학에 관한 영화를 봤다. 그리곤,
여자가 남자의 옆 모습에 눈을 주며 입을 연다.
"민!"
"..."
이쪽은 말이 없이 눈으로 대답.
"그런 시대에도 사람들은 사랑했을까?”
남자는 그 물음에도 여전히 대답이 없이 우둑 걸음을 멈춘다. 여자도 선다. 남자가 두 손으로 여자의 팔을 잡는다. 그녀의 눈동자를 들여다본다. 신기한 보물을 유심히 사랑스럽게 즐기듯.
"깡통. 말이라고 해? 끔찍한 소릴? 부지런히 사랑했을 거야. 미치도록. 그 밖에 뭘 할 수 있었겠어"
남자는 잡고 있던 여자의 겨드랑 밑으로 팔을 넣어, 등판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두 손바닥으로 여자의 부드러운 뒤통수를 꼭 붙들어서 꼼짝 못하게 만든 다음, 입을 맞춘다. 오랫동안.
하늘에는 꽃불. 땅에는 훈풍과 아름다운 가락. 플라타너스 잔가지가 간들간들 흔들린다. 잎사귀가 사르르 손바닥을 비빈다.
그들의 입맞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나의 머리는 혼란스러웠다. 최인훈의 <광장>을 읽었을 때의 좌냐 우냐 아니면 중도냐 그것도 아니냐? 의 혼란이 아니라, 도대체 뭔 내용이래 하는 혼란. 실컷 읽고 났더니 머리가 벙찐 기분이다. 쇠파이프로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한. 그리곤 내가 꼭 나의 머리 속에만 존재하는 파아란 하늘의 뭉게구름 위에 둥실둥실 떠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곤 이내 낙하산도 없이 땅으로 푹 꺼진 느낌. 멍 하니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