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동기 중에 L양이 있다. 내가 전과를 하고 내게 처음 말을 건네준 동기였으며 얼굴이 이쁘고 공부도 잘하고 사람들에게 참 친절하고 항상 무엇에건 열심히였다. 그녀는 1학년때 장학금을 받았다고 하며 이후로도 성적이 엄청나게 높았다. 다른 철학과 동기들은 1학년때 정원 40명중 학고가 절반이상이었다고 하니 그 아이가 특이한건지 다른 아이들이 특이한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우리네 과에서는 특이한 동기였다. 그러면서 그 아이는 교직이수를 하기도 했고, 컴퓨터 공학을 복수전공하기도 했다. 들은바에 의하면 컴퓨터 쪽은 전과 다른 분야라 적응하기 힘들었는지 중간에 그만뒀다는 이야기가 있다.

같은 학교 전자공학과엔가 한 남자아이가 있었는데, 이 아이는 언제부턴지 모르지만 L양을 따라서 수능성적이 더 높은 학교로 - '더 좋은 학교로' 라는 문구를 택하려 했으나 이건 올바른 선택이 아닌거 같다. '더 좋은 학교'란 존재하지 않는다. 수능성적이 높은 학교일 뿐 - 진학할 수 있었으나 이 학교로 왔다고 하며 2학년때까지도 쫓아다녔지만 L양은 받아주지 않았다.

L양은 친절하고 얼굴도 이뻐서 주변에 남자가 끊이지 않았다. 내가 전과하기 전, 그러니까 1학년 때 고학번들부터 동기들까지 남자라면 이 아이를 마음 속에 담아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고 하며, 그에 따라 소문도 많았다.

3학년때. 군대간 선배들이 복학을 했고 L양의 주위에서 맴돌던 몇몇이 보였다. 그들 중 하나가 L양과 사귀었고, 깨졌다. 깨진 선배와 가장 친한 또다른 복학생이 L양과 사귀었고 깨졌다. 그리고 또다른 학번 낮은 다른 복학생이 L양과 2년 가까이 사귀다 깨졌다. 그리고 L양은 얼마전 같은 학교 다른 과 선배와 결혼했다.

사람들은 L양에 대해 말들을 많이 한다. 목사과정을 밟고 있는 나와 친한 한 선배는 L양을 좋아했지만 L양이 받아주지 않았고, 나와 L양이 친하게 지내는 것을 보자 L양을 좋아하지 말라고 하며 안좋은 말들을 전했다. 사실 나도 L양을 전과하고 나서 초반에 좋아했었다. 이쁘고 공부잘하고 친절하니깐 뭐 빼놓을게 있어야지.

복학생 두 선배와 L양과 사귀고 깨진 뒤 - 금방 깨졌다 - 그들은 L양에 대한 안좋은 이야기들을 했으며 그녀를 헤픈 여자로 취급했다. 그리고 우리 과 내에 이런 소문은 순식간에 돌았고, 다른 사람들은, 심지어 여자동기들조차도 L양을 안좋게 봤다. 돈 밝히고 남자들한테 헤픈 년으로. 그러나 그 아이는 그런 아이가 아니다. 남자선배들의 사귀자는 청을 거절하지 못했고 그 남자들과 사귄 것이며, 그 남자들이 '자자'고 말 한 것을 거절했으며, 깨진 것 뿐이었다. 오히려 헤픈 것은 그 선배들이지 L양이 아니다. L양이 돈을 밝힌다는 이야기는 어느 정도는 긍정할 만한 부분도 있다. 그녀의 집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혼만 안했지 따로 살고 있었으며, 어머니는 피아노 학원을 하고 계셨으나 실질적인 집안 살림은 L양이 도맡아야 하는 지경이었던 것이다. L은 과외를 여러개 뛰며 공강을 이용해 학교를 나갔다 들어오곤 했고, 많이 벌었지만 많이 쓰진 않았다. 다 집에 가져다 준 것이다. 생활비로. 그리고 동생이 유명한 공대에 진학하자 그 학비까지도 마련해줬다. 자기 학비는 물론이고. 대학 4년 내내 용돈 받아 쓴 나는 부끄러워 해야 한다. 그녀는 장녀였고 효녀였으며 가장이나 다름 없었다. 그러니 돈을 밝힐 수 밖에 없었다.

한 집단 속에서 한 사람의 행동거지와 말 한 마디는 순식간에 다른 한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 깊이있는 사색을 즐겨하는 철학을 한다는 사람들 조차도 여기서 벗어날 수는 없다. L양은 집단속에서 피해자였고 나와 같은 자발적 왕따가 아니었으며 진정한 왕따였고, 외토리였다. 그녀의 결혼식에 참석한 철학과 사람들은 지극히 소수였다.

일정부분 그녀가 잘못한 것도 있다. 그녀는 타인에게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으며 언제나 숨겼고 언제나 혼자였고 타인의 도움을 받으려 하지 않았다. 잠시나마 그녀와 친했던 나조차도 그녀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것이 참 뭣했다. 그다지 반겨주지 않는 그녀의 표정이란. 숨으려 하지 말고 부딪히고 도움을 청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지 모른다. 그녀는 타인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숨어들어가는 선택을 함으로써 피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을지 모르나 졸업한지 오래된 지금도 그들의 입에서, 우리들의 입에서 그녀는 아직도 오르내리고 있다. 그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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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YLA 2005-07-20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L양 욕한 남자들 나빠요. 찌질이들

이매지 2005-07-20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수의 사람이 한 사람을 매도하는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죠.
그 사람이 어떤 속내를 가지고 있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하면서.

릴케 현상 2005-07-22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레나 생각 나네요

마늘빵 2005-07-22 0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말레나가 누구죠....?

릴케 현상 2005-07-22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주인공, 전쟁미망인인데 마을 사람들의 성적 판타지의 대상이죠... 온 마을 사람들이 저마다 말레나 생각을 하다가 미워하게 되고 공공의 적이 되더군요^^

마늘빵 2005-07-22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네 혹시 영화제목이??? 제가 본 영화인거 같은데... 기억이 안나서요.

릴케 현상 2005-07-22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_-제목이 그거예요 ㅋㅋㅋ

marine 2005-08-09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도그빌이 생각나요 니콜 키드만 나오는 영화인데, 예쁘고 친절하지만 갱들에게 쫒기는 그녀를 마을 사람들은 숨겨 주지요 그런데 남자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자 여자들은 질투를 하고, 그녀가 남자들의 호의를 (결론은 같이 자자는 거) 받아 주지 않자 남자들도 그녀를 비난하고 자기를 유혹했다는 식으로 공격합니다 더구나 그녀는 도망자였기 때문에 우리가 널 숨겨 주고 있다는 피해 의식을 갖게 되고, 그녀 위에 군림하려고 합니다 착하고 순박한 시골 사람들이 인간의 내면에 숨겨진 잔인한 본성을 어떻게 드러내는지 잘 보여주는 훌륭한 영화랍니다 영화 속의 니콜 키드먼은 L양처럼 폐쇄적인 사람도 아닌데 결국은 희생양이 되더군요 하여간 집단의 횡포란 어떤 사회를 가든 존재하는 인간의 본성임이 분명하고, (그래서 사회적 동물이란 말이 나왔을까요?) 우리나라는 특히 심한 곳이죠

마늘빵 2005-08-09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제가 떠올렸던게 그 영화였어요. 나나님. 제목이 기억이 안나서 계속 먼가먼가 했는데. 도그빌. 그쵸. 그 영화에서 한 여자가 모두의 미움을 받죠.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
알랭 드 보통 지음, 지주형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알랭 드 보통 시리즈라고 할만큼 한꺼번에 이자의 책이 번역되거나 새롭게 개정, 출판되었고, 출판사의 의도대로 나는 이 자의 책을 나오는 즉시 다 구입해버렸다. 처음 읽었던 <나는 너를 왜 사랑하는가>에서부터 <키스하기 전에 하는 말들>을 거쳐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까지, 그리고 방금 다 읽어버린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 벌써 이 자의 책만 네 권을 읽었다. 나머지 한권인 <여행의 기술>만이 남아있다. 당신의 무엇이 나를 이리도 당신에게 끌리도록 하는 것인가. 보통씨여.

 '어떻게 프루스트가 당신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라는 본 제목을 달고 있는 보통씨의 책이 우리나라에서는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라는 제목으로 탈바꿈했다. 보통씨의 이전의 다른 작품들이 그랬듯이 출판사가 표지며, 제목이며, 편집이며 할 것 없이 아주 제대로 신경썼다.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라는 보통씨의 책은 사람들에게는 흔히 알려져 있는 작가인 마르셀 프루스트의 삶을 배경으로 하여 그를 통해 우리가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를 풀어내준다. 마르셀 프루스트. 사실 우리는 이 자의 이름은 알지만 이 자의 책을 읽어본 사람은 많지 않다. 나 역시 프루스트는 중학교 시절 무슨 게임을 하다가 처음 접한 것 같고, 이후로도 프루스트라는 이름은 우리네 정규교육과정에서는 등장하지 않지만 얼핏얼핏 들어본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가 쓴 작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책은 구경도 못해봤다. 보통씨의 이 책을 통해서 프루스트에 대한 관심이 생겨났고, 결국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11권짜리 책의 1편을 구입했다.

 알랭 드 보통에 대한 이력이야 더 말하지 않아도 이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유명세에 못이겨 이력정도는 살펴봤을 터이고, 책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보통이 이 책을 쓴 다음에 영국의 BBC방송국에서는 이 책을 토대로 하여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나야 그 영화를 안봤으니 모를 일이고.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는 크게 9가지 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먼저, 현재의 삶을 사랑하는 법, 둘째, 자신을 위한 독서법, 셋째, 여유있게 사는 법, 넷째, 훌륭하게 고통을 견디는 법, 다섯째, 감정을 표현하는 법, 여섯째 좋은 친구가 되는 법, 일곱째, 일상에 눈을 뜨는 법, 여덟째, 행복한 사랑을 하는 법, 아홉째, 책을 치워버리는 법. 이렇게 9가지.

 이 모든 것들은 프루스트라는 작가의 생애를 통해서 배울 수가 있다. 이 책 이전에 읽었던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에서 알랭 드 보통은 세네카, 몽테뉴, 소크라테스, 니체 등의 유명한 철학자들을 등장시키며 우리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를 언급해줬다.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 역시 그와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을 듯 하다. 단지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이 여러 철학자들을 조금씩 살펴보며 그들의 삶에 대해 언급했다면,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에서는 보통이 작정하고 '프루스트'만을 집중공략하여 파고들었다는 점이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프루스트는 살아있는 동안 변변찮은 직업 하나 가진 것이 없었고, 단 한번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진 적이 있었는데 그것이 도서관 사서였다고 한다. 정확히는 사서는 아니고 보조직인데 일주일에 4번정도만 나가서 간단한 일만 하면 되는 이 쉬운 일조차도 프루스트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농땡이를 피우며 일하는 동료에게 말을 시킴으로써 일을 방해하는 것이 그의 일과였고, 당시 이례적으로 휴가를 1년씩(?) 신청을 하여 놀고 먹으려 했던 거 같은데, 도서관에서도 오히려 그가 일함으로써 방해가 되기 때문에 이를 허용했다고 한다.

 젊었을 적엔 사교계의 잘나가는 인사로 놀고먹고 늙어서는 방구석에 처박혀서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 계기가 된 것이 그의 어머니의 죽음이었다. 그는 어릴적부터 나이먹어서까지 어머니를 '엄마'라고 불렀다고 하며 - 뭐 이게 문제 될 건 없다. 나도 엄마라고 부르고 있고, 확실히 나이 먹은 철학자 김용옥 또한 그 나이에도 엄마라고 부른다고 한다. 나이들었건 나이들지 않았건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 엄마의 말이라면 거절할 수 없었다고도 한다. 요즘 말로 치면 심한 마마보이였던 거 같은데. 그에게서 엄마의 죽음이란 어떠했을지 짐직이 간다. 엄마의 죽음 이후 그는 방에 들어가 나오질 않고 그곳에서 글을 쓰는 작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고된 작업의 결과물이 바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작품이다.

 이런 프루스트의 삶을 통해서 보통은 그의 삶과 생각, 그가 쓴 작품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건져낼 수 있는가를 언급한다.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프루스트의 서신과 메모들을 통해서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고 우리는 그를 통해 삶의 교훈을 얻기도 한다.

 프루스트는 독서에 대해서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기도 한다.

 "현실에서 모든 독자는 자기 자신의 독자가 된다. 책이란, 그것이 없었다면 아마 독자가 자신에게서 결코 경험해보지 못했을 어떤 것을 분별할 수 있도록 작가가 제공하는 일종의 광학 도구에 불과할 뿐이다. 그리고 책이 말하는 바를 독자가 자신 속에서 깨달을 때 그 책이 진실하다는 것이 입증된다."(p34-35)

 "저자에게는 '종결'이라 불릴 수 있지만, 독자에게는 '자극'이라고 불릴 수 있다는 것이 좋은 책들의 위대하고 놀라운 성격 중의 하나다. 우리는 저자가 떠나버린 곳에서 자신의 지혜가 시작된다고 매우 강하게 느끼고,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우리에게 소망을 부여하는 것 밖에 없는데도 그가 우리에게 답을 주기를 원한다. ...... 이것이 독서의 가치이자 그것의 부적절성이다. 그것을 학문분과로 만드는 것은 단지 '자극'에 불과한 것에 너무 큰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다. 독서는 정신적 삶의 문턱 위에 있다. 그것은 우리를 정신적 삶으로 인도할 수 있지만, 정신적 삶을 구성하지는 않는다."(p245)

 프루스트는 책을 통해서, 우리가 독서를 통해서 단지 책을 읽는 것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의 삶과 연관을 지어 삶을 성찰해야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책은 저자에게는 '종결'이지만 독자에게는 '자극'이라는 말은 저자가 던져놓고 가버린 결과물을 통해 각각의 독자가 자신의 삶과 대화를 해야한다는 메세지다. 이는 독서에 대한 나의 생각과도 일치하는 부분이다.

  또, 프루스트는 연애 혹은 사랑(?)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는데

 "그녀를 잃을까봐 두려워할 때 우리는 다른 모든 사람들을 잊어버린다. 그녀가 자기 것이라  확신 할 때 우리는 그녀를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게 되고, 즉시 그녀보다 그들을 더 좋아하게 된다."(p234)

 이와 같은 그의 발언은 사랑에 빠졌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봤을 만한 사실이다. 그녀를 발견했을 때 그리고 그녀를 나의 여자로 만들기 위해 남자는 온갖 노력을 하게 되고, 그녀와 내가 연인이 되기까지 나의 머리속에 다른 사람들의 존재는 잊혀진다. 그리고 그녀가 나의 여자가 되었을 때, 우리가 연인이 되었을 때, 남자는 안심하게 되고, 긴장을 풀게 되며, 눈에서 사라졌던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여자친구 있을 땐 연락도 안하더니...." 라는 주위 사람의 말이나 "친구가 중요해? 여자가 중요해?"라고 몰아붙이며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친구의 말은 이를 입증해준다.

 이것은 새로운 방식의 대화이다. 알랭 드 보통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 그는 한 명의 잘 알려진 인물을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언급한다. 대개 우리는 그 인물의 책을 통해서 독자 스스로가 배울 만한 것들을 뽑아내는데, 알랭 드 보통은 독자가 해야할 그 역할마저도 해내고 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보통을 미워하기도(?) 한다. 그래 너만 잘났냐?! 라는 식으로. 나도 생각할 줄 안다고. 작가와 독자 사이의 중간다리 역할을 해주는 보통씨의 사유는 독자가 해야할 역할을 빼앗아 버리기는 하지만, 독자는 또 다른 측면에서 그의 역할을 찾기 마련이다. 보통씨의 사유를 통해 떠나는 또다른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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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5-07-16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 여행의 기술도 어여 읽으셔요~ 전 개인적으로 어떻게 프루스트가 당신의 삶을 바꾸는가. 라는 제목이 좋아요. 그리고 이 판형 네모라서 책 보기 불편해서 싫어요. 아프락사스님의 리뷰 좋네요. 크~

마늘빵 2005-07-16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아침에 <여행의 기술> 들고 나왔어요~ ^^ 프루스트 저 책은 약간 조금 산만한 감이 없지 않아 있는거 같아요. 제가 제대로 못읽어서 그런지. 그래서 별 하나 뺐어요. 지금까지 보통씨 책에 다 별 다섯개 줬는데

부리 2005-07-18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거 얼마전에 샀거든요. 읽어볼 요량으로 리뷰는 앞부분밖에 안읽었어요. 근데 리뷰 참 잘쓰시네요. 나중에 저도 읽고나서 댓글 남길께요. 일단 추천

2005-07-21 16: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늘빵 2005-07-21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예전에 <불가사리>라는 영화를 재밌게 봤었는데 난 이게 후속편까지 있는줄은 몰랐다.  우연히 접하게 된 <불가사리2>를 통해서 <불가사리3>와 <불가사리4>까지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도대체 이것들이 언제 개봉했던게야? 아님 비디오로만 나왔나? 마지막 작품이 2004년인가로 되어있는데. 하긴 그때는 내가 군에 있던 시절이다. 개봉되었어도 몰랐겠지. 또 개봉되었더라도 극장에서 볼 만한 영화는 아니다. 솔.직.히. 재미는 있지만 극장용 영화는 아니라는 말은, 이런 영화를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아무도 없는 집에서 라면 끓여놓고 배부르게 먹고 쇼파에 모로 누워서 껄렁껄렁한 모양새로 봐야 제맛이라는 말이다. <불가사리>나 <불가사리2>나 난 모두 이런 모양새로 봤다.

 <불가사리>라는 영화는 괴 생물체에 대항해 싸우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낸다. 역경을 극복하는 인간, 투지에 넘치는 인간, 지능적인 인간의 모습들을 한데 모아 보여준다. 이는 <불가사리>라는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성질들은 물론 아니다. <에일리언> 시리즈나 기타 등등 괴물에 대항해서 싸우는 인간의 모습을 담은 영화들은 부지기수로 많다. 단지 <불가사리>가 그들 영화와 다른 점은 배경이 인적없는 황량한 사막이라는 점이다. 사막이거나 혹은 마냥 벌판이거나. 어쨌든 고립된 공간이다.

 드넓지만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고립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괴 생물체와 인간의 투쟁. <불가사리>에서는 볼 수 없었던 괴물의 모습이 <불가사리2>에서는 새롭게 등장하는데 귀엽기까지 하다. 예전에 봤던 땅속을 헤치고 다니는 거대한 몸집의 지렁이같은 생물체가 <불가사리2>에서 변태를 하고 자웅동체로 자가번식을 하는 등 이전과 다른 양상을 띤다. 이는 괴물이 변하지 않고서는 영화가 시리즈로 만들어질 수 없다는 기본적인 괴물영화의 규칙을 깨지 않는다.

 예전의 괴물은 진동소리로 위치를 파악해 사람을 공격했지만, 이번 괴물은 열을 감지함으로써 사람을 공격한다. 열이 있는 것이라면 뭐든지 - 자동차 엔진이든 변전소든 사람이든 할 것 없이 - 공격하고 부순다. 당연히 인간 역시 이를 알아채고서 온몸에 소화기를 뿌려가며 몸을 차갑게 만들어 적진 속으로 과감히 침투하기도 하고, 철판문으로 자신의 모습을 가리고 살금살금 도망가기도 한다.

 지능이 있는 괴물과 지능이 있는 사람의 싸움. 물론 결과는 뻔히 알다시피 인간의 승리로 항상 귀결된다. 어쩌면 괴물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다양한 볼거리 말고도 "인간이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동물이다" 라는 우리네 진리(?)를 강조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기 등장하는 불가사리라는 놈도 그들의 분석에 의하면 공룡보다도 더 오래된 시기에 존재했던,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종족이라고 하며, 선캄브리아대에서부터 지금까지 살아남은 놈이라고 하니깐. 굳이 지구상의 생물체임을 강조하는 것도,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생물체 임을 강조하는 것도, 인간을 능가하는 동물은 없다 라는 주장을 내세우고 싶었던 것이다.

 전작보다 질적으로 많이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스토리도 전작과 다를 바 없고, 단지 다른 것은 괴물의 모양새뿐. 그다지 흥미진진하지도 않고 긴장감을 조성하지도 않으며 괴물이 무섭거나 놀랍지도 않다는 사실은 그닥 보여줄 것이 없는 괴물영화에서 치명적인 단점이라 할 수 있다.

 <불가사리3>와 <불가사리4>는 좀 나을까?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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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1 2005-07-16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만보고..전 북한영화생각했어요. 쇠를 먹고 자란다는 괴수영화 불가사리요. 그런데 설명하시는 것 보니..다른 영화인듯 하네요. 하하..

마늘빵 2005-07-16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 아 그 영화 저도 얼핏 들어본거 같습니다. 이 영화는 다른 겁니다. ㅋㅋㅋ
 

 

 루소는 <에밀>이라는 책을 통해서 인간에게 교육을 행함에 있어 학교에서의 인위적인 교육보다는 자연상태에 내버려둠으로써 인간은 보다 이상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도 과거의 중고등학교 시절의 경험을 떠올리며 억압과 통제 속에서 행하는 교육보다 자연상태에서의 내버려두는 교육이 더 낫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피교육자가 아닌 교육자의 입장에서 교실에 들어서고 있다.

 비단 짧은 3개월 동안의 경험이지만 현장에서 부딪히며 학교 교육에 대한 체험을 직접 경험했고, 많은 생각들이 스쳐갔다. 처음에 나는 기존의 나의 교육철학대로 아이들을 대함에 있어 좀더 친근하고 권위주의적이지 않은 태도로 다가가려 노력했고, 아이들은 내게 장난도 치고, 농담도 건네고, 마치 친구처럼 대하고 있다. 물론 선생님을 친구로 동일시 여기는 치명적인 단계로 까지 다가가는 것은 막아야 한다. 난 아주 위태로운 단계 바로 이전까지 와 있는 듯 하다. 선을 그을 때는 긋고 다가갈 때는 다가가야 한다.

 교실에서 학생들이 떠들고 장난치고 하는 행위. 난 이것을 그리 나쁘다고 보지 않는다. 자연스러운 행위다. 그 또래의 아이들이라면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다 그런 단계를 거친다. 그런데 교육자는 항상 그들에게 억압과 통제를 가하면서 행동을 수정하려 하고 교육자의 입장에서 잘못된 행위를 고치려고 한다. 나는 그러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교실이 학생들의 장난과 수다로 떠들썩해질 때 이것은 비단 내 교실만의 문제는 아니게 된다. 내가 들어간 반을 끼고 있는 양 옆의 두 반의 수업에도 방해가 되고, 심지어 두 차례 옆반 선생님께서 들여다보고 가신 적도 있다. 혹시 선생님 없는가 생각하고 오셨겠지.

 두번째 문제는 같은 반 안에서도 떠들고 장난치기를 좋아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주위가 시끄러운 것은 도저히 못참는 학생도 있다는 점이다. 난 아이들이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떠드는 것이 못마땅하지는 않기 때문에 거의 내버려두는 편이다. 그런데 어떤 아이는 내게 그런다.

"선생님, 애들 너무 떠드는거 아니에요?"

그럼 난 참 할 말이 없다. 선생님으로서 아이들 통제 하나 못하는 샘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일부러 냅두는 것이라고는 그 아이에게 말할 순 없다. 기본적으로 아이들이 갖고 있는 생각도 "떠들고 장난치는 것은 악이요, 조용히 있는 것이 선이다" 라는 의식이 머리 속에 내재해 있기 때문에.

 난 아이들을 기존의 억압과 통제로부터 해방시키고자 하였다. 너희들이 그 나이에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며 떠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장난치고 노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것이다 라고. 물론 그렇게 대놓고 아이들에게 말하지는 못하지만 기본적으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아이들을 자유롭게 놔두려고 했는데 이런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그냥 놔두다 보니까 아이들은 좀더 자유롭기를 원하고 좀더 해방되기를 원하고, 수업을 하기가 더 어려워지고, 난 더 힘들어진다. 나의 교육철학관을 바꿔야하는건가?  과연 어떤것이 바람직한 교육자의 태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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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5-08-09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시끄러운 것에 예민하긴 하지만, 쉬는 시간마저 얌전하게 앉아서 다음 시간 예습하는 거, 너무 부자연스러운 장면 아닌가요? 학교는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있는 게 아니라, 교육이란 걸 하려고 있는 곳인데, 선생님들은 입시 학원과의 차이점을 잘 모르시는 것 같아요

마늘빵 2005-08-09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시끄러운건 싫은데 아이들이 그러는건 자연스러운거 같아요. 수업시간에도 조용한 채로 수업하는게 편하긴 하지만 오히려 억압하고 있는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때도 있고요. 그래서 활기차고 다소 산만한 수업이 되더라도 좀 왁자지껄한게 좋은데, 첫째 일단 제가 피곤하고, 둘째 소위 모범생이라는 아이들은 그런 분위기를 싫어하고요. ㅋㅋ 어찌해야할지 난감합니다.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
알랭 드 보통 지음, 지주형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6월
구판절판


"현실에서 모든 독자는 자기 자신의 독자가 된다. 책이란, 그것이 없었다면 아마 독자가 자신에게서 결코 경험해 보지 못했을 어떤 것을 분별할 수 있도록 작가가 제공하는 일종의 광학 도구에 불과할 뿐이다. 그리고 책이 말하는 바를 독자가 자신 속에서 깨달을 때 그 책이 진실하다는 것이 입증된다."(프루스트)-35-36쪽

"작가란 위대한 예술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사물들에 열정을 가지는 사람이다."(프루스트의 말을 보통이 옮김)-60쪽

" '너무 빨리 하지 마세요'는 아마 프루스트주의적 슬로건일 것이다. 그리고 너무 빨리 하지 않으면 생기는 이점은, 그러는 도중에 세상이 더 재미있어진다는 것이다."(프루스트의 말을 보통이 옮김)-63쪽

"결국 진정 그의 말에 주의를 기울일 만한 가치가 있다면, 그 말이 주는 이익을 처음 취할 사람은 다름 아닌 그것을 생각해낸 사람이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단지 한 작가의 작품뿐 아니라 그의 생애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가 아닐까?"-67쪽

"행복은 몸에 좋다. 그러나 정신의 힘을 길러주는 것은 고뇌다"(프루스트)
"고뇌는 우리의 정신으로 하여금 우리가 행복했다면 회피했을 일종의 체조와 같은 것을 하게 한다. 사실, 우리의 정신적 능력을 계발하는 것이 진정으로 우선시된다면 그것이 갖는 함의는 다음과 같다. 만족보다는 불행이, 그리고 플라톤이나 스피노자를 읽는 것보다는 고통스러운 연애를 추구하는 것이 우리에게 더 좋으리라는 것이다."

"우리를 흥미롭게 하는 천재보다는, 우리가 욕구하고 우리를 앓게 하는 여성이 훨씬 더 심오하고 생생하게 우리에게서 온갖 종류의 감정을 끌어낸다."-94-95쪽

"상투어의 문제는 잘못된 관념을 담고 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주 훌륭한 관념들을 피상적으로 조합해 낸다는 데 있다. 해는 해질녘에 불타고 달ㅇ른 어스레한 빛을 내지만, 우리가 해나 달과 마주칠 때마다 이렇게 말하면, 그것이 이 주제에 대해 할 수 있는 첫번째 말이라기보다는 최종적인 말이라고 결국 믿게 되고 말 것이다. 상투어들은, 한편으로는 단지 피상적으로 스쳐 지나가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상황을 적절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생각을 우리에게 심어주기 때문에 해로운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가 말하는 방식이 궁극적으로 우리가 느끼는 방식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세계를 어떻게 묘사하는가는, 어떤 수준에서는 우리가 그것을 처음에 어떻게 경험하는가를 반영하기 때문이다."-123-124쪽

"다른 사람들처럼 말하고 싶은 유혹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우리가 하는 말이 권위 있는 것처럼, 지적인 것처럼, 세속적인 것처럼, 적절히 감사를 표사하는 것처럼, 또는 깊은 감동을 받은 것처럼 들리게 보장하는, 전해 내려오는 관습적 표현들이 있다."-125쪽

"죽는 자는 말이 없다"(조르주 비제)-127쪽

"우리는 속되게는 '척한다' '지루하다' '재미있다'고 부를 수 있는 것들과 더불어 약간 지나치게 의식적으로 친절한 태도를 표현하기 위해 우리들끼리 '프루스트하다'라는 동사를 만들었다."(페르낭 그레그)-168쪽

"독서에서 친교는 갑자기 그 본래적인 순수성을 회복한다. 책에는 거짓 상냥함이란 없다. 우리가 이 친구들과 저녁을 함께 보낸다면 그것은 우리가 진실로 그러고 싶기 때문이다."(프루스트)

"인생에서는, 초대를 거절하면 소중한 우정이 앞으로 잘못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저녁식사를 함께 하는 경우가 흔하다. 우리는 친구의 정당하지 않지만 회피할 수 없는 예민한 감정을 알고 있기 때문에 위선적인 식사를 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에 책에 대해서는 얼마나 더 솔직해 질 수 있는가? 독서할 때는 적어도 우리가 원할 때만 책으로 시선을 돌릴 수 있고, 지루한 표정을 지을 수도 있으며, 필요할 때 대화를 중단할 수도 있다."-173쪽

"불만에 대한 지배적인 견해는 불만을 초래한 사람과 그것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지만, 그 결과 전형적으로 초래되는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들이 아마도 우리가 그러한 견해를 재고하도록 촉구하는 듯하다."-177쪽

"모든 것에 올바른 가치를 부여하라고 권했을 터이다. 이는 좋은 삶이란 자신의 주변에 있는 것들을 부당하게 무시하고 헛되이 다른 것을 갈망하는 것은 아니라는 발상의 전환을 의미했다."-190쪽

"어떤 순간에는 삶이 매우 아름답게 보이는데도 삶이 사소한 것처럼 생각되는 까닭은, 삶의 흔적 그 자체가 아니라 삶에 대해 아무것도 간직하고 있지 않은 매우 다른 이미지들에 근거해서 판단을 내리는데 있다. - 때문에 우리는 삶을 멸시하는 것이다."-195쪽

"그녀를 잃을까봐 두려워할 때 우리는 다른 모든 사람들을 잊어버린다. 그녀가 자기 것이라 확신 할 때 우리는 그녀를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게 되고, 즉시 그녀보다 그들을 더 좋아하게 된다."(프루스트)

-234쪽

"자신이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를 깨닫기 위해서는 대가가 느꼈던 것을 자신 속에 다시 그려 보려고 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기" 때문에 독서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무엇을 느끼는지 알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책을 읽어야 한다. 살사 우리를 돕는 것이 다른 작가의 생각일지라도, 우리가 발전시켜야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생각이다. 따라서 학자로서 만족스러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우리가 연구하는 작가들이 그들의 책 속에 우리 자신의 관심사를 충분히 담고 있다고, 그리고 번역이나 주석같이 그것들을 이해하는 행위를 통해서 우리가 동시에 우리 자신의 정신적으로 중요한 부분을 이해하고 계발할 수 있다고 판단해야 한다.
(보통이 러스킨의 말을 옮김)-244쪽

"저자에게는 '종결'이라 불릴 수 있지만, 독자에게는 '자극'이라고 불릴 수 있다는 것이 좋은 책들의 위대하고 놀라운 성격 중의 하나다. 우리는 저자가 떠나버린 곳에서 자신의 지혜가 시작된다고 매우 강하게 느끼고,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우리에게 소망을 부여하는 것 밖에 없는데도 그가 우리에게 답을 주기를 원한다. ...... 이것이 독서의 가치이자 그것의 부적절성이다. 그것을 학문분과로 만드는 것은 단지 '자극'에 불과한 것에 너무 큰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다. 독서는 정신적 삶의 문턱 위에 있다. 그것은 우리를 정신적 삶으로 인도할 수 있지만, 정신적 삶을 구성하지는 않는다."(프루스트)-2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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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스 2005-08-14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한 방 꾸욱~

마늘빵 2005-08-14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