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공용어로 삼자 - 복거일의 영어 공용론 SERI 연구에세이 3
복거일 지음 / 삼성경제연구소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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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전 관심갖고 있는 주제 중 하나인 '영어공용어화 논쟁'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논쟁은 대한민국 사상지도에서는 자유주의자로 분류되는, 복거일이라는 소설가의 신문 칼럼을 통해 촉발되었다. 98년이었던가. 복거일은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 라는 책을 통해 그간의 논쟁에서의 자신의 입장을 정리했다. <영어를 공용어로 삼자>는 2003년에 삼성경제연구소 문고판으로 나온 작은 책자로서 굳이 왜 복거일이 다시 영어공용어화 논쟁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다른 책으로 내야했는가, 라는 질문이 가능하지만 - 복거일은 이 책의 서문에서 이에 대해서는 명확히 알리고 있지 않다 -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신문에서의 논쟁에 대한 결과물로서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를 냈듯, 이 책 이후의 다른 영어공용어화 반대에 관한 많은 책들이 나오면서 이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재정리하고 논쟁에 다시 불을 붙이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자연히 이 글은 '이미 설득된 사람들을  설득하는' 셈이다. 반어적으로, 이미 설득된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은 보기보다는 훨씬 중요하다. 오랫동안 소수 의견들을 내놓는 사람들은 그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 안다. 그 동안 '영어 공용' 논쟁과 관련하여 격려해준 분들께 고마움의 말씀을 드린다.

 영어공용어화 논쟁은 이제는 사그라들었다. 한참 논쟁에 불씨를 당겼을 때에는 난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다. 고등학교 3학년 혹은 대학 1학년이었을  그 때의 나는, 사회문제에 크게 관심을 쏟는 위인이 아니었다. 수능의 좌절과 대학에 왜 가야하는가의 고민, 그리고 맘에 들지 않는 대학 생활로 공부에 소홀했고, 오로지 나를 숨쉬게 하는 것은 밴드 생활뿐이었다. 그러니 자연 거기에 푹 빠져지냈다. 아주 오랫동안.

  뒤늦게 불씨가 다 죽고 난뒤에야 이렇게 영어공용어화 논쟁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간 몇권의 관련된 책들을 사모았다. 아직 읽어야 할 책이 까마득하지만, 또 먼저 논쟁의 순서상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를 봤어야했지만, 이 책도 그 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생각하고, 이것을 시작으로 영어 공용어화 논쟁에 대해 생각해본다.

  영어공용어화 논쟁에 있어서 만큼은 복거일은 소수자다. 복거일과 그의 제자를 자청하는 뛰어난 우리말 실력을 자랑하는 고종석이 이쪽에 있을 뿐이다. 복거일이 영어공용어화를 찬성하는 논리는 한 마디로 '망' 이론이다. 캐럴 이스트먼의 언어에 대한 정의를 빌어 언어는 "합의된 뜻을 지닌, 자의적인 말해지거나 쓰여진 상징들의 사용으로 특징 지워진 사람들 사이의 의사소통"이라 한다. 즉 언어는 망 노릇을 한다는 말이다. 전자통신체계, 컴퓨터 체계, 수도관, 송유관 처럼 일종의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망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는 더 쉬운 말로 언어는 도구라고 말해질 수도  있겠다.

  복거일은 이러한 망 이론을 가지고 자신의 영어공용어화에 대한 논리를 펼쳐나간다. 우리나라는 영어를 배우는데 가장 많은 돈을 투자하는 국가 중 하나이면서, 가장 영어를 못하는 나라 중 하나이기도 하다. 투자한 만큼의 결과물이 안나온다는 말인데, 그러니 영어교육은 점점 더 확산되고, 투자가 아직 부족한가 싶어 이제는 경기도에서 서울에서 이곳저곳에 영어마을을 만들고, 대학에서는 국문학까지 영어로 강의하라고 하고, 영어사용구역을 설정하는가 하면,  초등학생까지 토익토플에 매달리고 있다. 이런 젠장 나는 중학교 때 성문기본영어도 처음 들어봤다. 중학교 3학년 끝나고. 이렇게 해도 우리는 영어가 안된다. 우리가 기를 쓰고 영어를 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잘 살라고. 영어가 되야 잘 살 수 있다. 이 때 잘 살 수 있다는 것은 '경제적으로풍요롭게'를 의미한다. 왜냐면 기업에서 원하고, 기업에서 원하는 것은 우리가 무역을 통해 장사해먹고 사는 나라이기 때문이며, 장사를 하자면 돈 되는 곳에서 해야하는데 돈 되는 국가는 영어를 사용한다. 그러니 영어를 할 수 밖에 없다. 이건 공감한다. 그런데 영어를 열심히 배우자는 것과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것은 분명 다르다.

   공용어는 우리가 한국어를 공식언어로 채택하고 있듯 영어 또한 공식어로 채택하여 모든 일상과 공문서 작성 등등의 온갖 것들에서 영어와 한국어를 함께 사용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함께 사용한다는 것도 문제이지만, 이것이 언제까니 '함께'가 될까 하는 것도 새로운 문제거리다. '함께'는 그다지 오래가지 않는다. 다만 영어만을 공식언어로 채택하는 길로 가기 위한 중간 단계가 공용어의 단계일 뿐.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이유는, 우리나라가 강대국이 되기 위해서, 잘 살기 위해서는 영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해야 한다는 것인데, 한국어와 영어를 둘다 공식언어로 채택한다면 누가 한국어를 배우려 하겠는가 하는 말이다. 그러니 한국어는 자연스럽게 세계에서 사라져가는 언어들 중의 하나로 귀속되고, 영어는 홀로 살아남는다.

  복거일은 망 이론을 통해 이 책에서 자신의 주장을 꽤나 일관성있게 설득한다. 그간의 그에 대한 비판론도 소개를 하며 왜 그러한 비판이 먹히지 않는가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미국이 쇠퇴할 가능성, 모국어 인구에서 우세한 중국어와 스페인어가 영어의 지위를 위협할 수 있다는 주장, 영어 침투에 대한 민족 국가들의 저항, 영어의 방언이 많아져 끝내 상호 소통이 불가능한 언어로 분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 등등. 결정적으로 복거일은 한국어는 '박물관 언어'가 됨으로써 전문가들에 의해 보존될 것이라 하지만, 글쎄 이게 사실이라 할지라도 무슨 의미를 가질까 싶다.

 "영어 공용은 정부가 시민들에게 영어를 쓰도록 강제하는 것이 아니고, 조선어의 독점적 지위를 허물어서, 시민들이 영어를 쓰고 자식들이 영어를 모국어로 고를 수 있도록 하는 조치다. 따라서 시민들은 자신들의 처지에 맞게 영어의 습득과 사용에 관한 결정들을 내릴 수 있게 된다. 자연히,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최소한의 비용으로 언어 시장의 자유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  

  말이 언어 시장의 자유화지 영어를 '제대로' 구사하는 이들은 막강한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고, 그렇지 못한 이들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자유화는 아무데나 들먹이는 것이 아니다. '자유화'라는 말은 꽤나 긍정적인 이미지를 품고, 마치 그것이라면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는 분위기를 풍기지만, 자유화 이후의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시민들은 물론 영어의 습득과 사용에 관한 결정을 내릴 수 있지만, 돈 있는 자는 미국 북동부의 고급언어를 배우고, 그렇지 못한 자는 영어학원 갈 돈도 없어 영어를 못하면 신분상승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앉아서 당하고 있어야 한다.

  "국제어인 영어를 제대로 못 쓰면, 남들에게 뒤쳐져 점점 큰 서러움을 겪을 것이기 때문에, 기를 쓰고 영어를 배우려는 것이다. 얼마전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에 항의하는 우리 역사학자들의 기자 회견과 심포지엄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한 학자는 "미국의 교과서 집필자들이 한국사에 관해 제대로 쓰고 싶어도 한국에서 펴낸 한국사에 관한 영어 자료가 없어서 부득히 일본 역사책을 참고한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제는 우리 역사와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도, 우리는 영어를 잘 써야 한다."  

  그래 복거일은 알고 있다. 영어를 제대로 못 쓰면 남들에게 뒤쳐져 점점 큰 서러움을 겪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 그리 말한다. 말이 공용어화지 자 우리 이제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 라고 정부가 선언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의 입에서 동시에 똑같이 유창하게 영어가 튀어나오는 것은 아니다. 우리 나라의 역사가 미국에 제대로 알려지지 못하고, 국제회의석상에서나 협상 때 어려움을 겪는 것을 영어공용어화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돌려서는 안된다. 그건 그 전문가들의 협상력과 의사소통능력, 그리고 마음가짐의 문제이지 영어를 공식언어로 채택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다. 이러한 예를 통해 우리는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해야 한다, 라고 주장하는 것은 억지이고 비약이다. 문제의 본질이 다른 곳에 있음을 설정하고서 이를 비판하는 것과 같다. 허수아비의 오류라고 하지.

   복거일의 주장은 꽤 신선하고 새롭기는 했지만 또 꽤나 일관성있는 논리를 통해 설득력을 갖는 듯 하지만, 정작 현 한국사회의 문제점이 어디에 있는가를 제대로 읽지 못한 채 논두렁에 허수아비 세워놓고 싸우는 것과 같다. 문제의 원인은 영어가 공용어가 아니기 때문이 아니다. 국민들이 영어를 못하기 때문이 아니다. 온갖 문제에는 많은 다양한 원인이 있을 수 있으며, 이는 매우 부차적이고 작은 문제에 불과하다. 지금 분명 우리나라는 많은 부분에 있어서 영어가 점점 강조되고 있다. 대학에서 강의를 영어로 하라고 하고,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에는 원어민 강사들이 하나씩 배정되어 있고, 영어마을이며 영어사용구역을 따로 설정해 영어를 잘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그리고 '영어를 못함=퇴출'로 정식화되기도 한다. 사회의 많은 부분에서 영어가 강조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토익 점수 800점 정도는 이제 왠만한 취업지원자라면 획득하고 있는 기본점수에 불과하며, 한국어능력시험이라는 것은 어쩌면 이러한 영어가 대세인 현실에 위기감을 느낀 반대의 결과물일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를 우리말로 하는 것과 영어를 열심히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의 의지(의지와 무관하게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에 더 가깝지만)와는 분명 다른 문제임을 다시 한번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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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가 사라진다면 - 2023년, 영어 식민지 대한민국을 가다
시정곤·정주리·장영준·박영준·최경봉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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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들은 영어 공용화를 실시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반대하지만, 영어 공용화가 좋으냐 나쁘냐 라는 가치 판단은 일단 접어 두기로 했다. 대신 영어 공용화가 실시되고 나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 수 있을까 생각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이야기 서술의 주체를 필자가 아닌 미래의 어떤 사람으로 설정함으로써, 미래 사람들의 눈으로 미래에 일어나는 일들을 관찰하는 서술 방법을 통해 필자들의 목소리를 최대한 낮추고자 했다.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살펴보면서 영어 공용화의 문제점을 독자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그래도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선정하는 과정에는 필자의 관점이 상당 부분 개입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는 필자의 개성을 최대한 존중해주는 선에서 의견을 조율해 나갔다. -10쪽

외국 학자들 중에는 한국어의 급격한 쇠퇴와 영어의 급성자에 대해 매우 놀라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한국 정부가 이대로 한국어를 방치한다면 얼마 안 가서 한국어는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멸 언어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한 사회학자는 언어 멸종은 한 문화의 멸종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전체적으로 문화 생태계, 철학 생태계를 파괴할 것이라는 점을 사람들이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이런 우려의 목소리에 대해 한국 사회 내에서 반향은 거의 없다. 영어 공용화 이후 전 국민의 영어 능력이 평균적으로 신장했으며 이로써 국가의 경제력이나 위상이 한층 나아졌다고 믿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90쪽

영어는 사회학적으로 뚜렷한 역할을 떠맡고 있다. 다시 말해, 존과 같은 사람을 하류층에, 그리고 미국 북동부 방언을 유창하게 구사하는 사람을 상류층에 자리매김하는 매우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영어 공용화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사회의 상류층을 형성하는 것은 서울 영어가 아니라 미국 북동부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주로 미국 유학을 다녀왔거나, 오랫동안 그곳에서 살았거나, 아니면 고액 과외비를 들여 가면서 북동부 방언투를 배운 사람들이다. 이들은 방송과 신문, 정치, 경제, 문화의 최상류층을 형성하면서 사투리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을 대척점에 두고 있다. 사투리 영어를 구사하는 존과 같은 사람들이 하루의 빵을 걱정하면서 동물과 사람 사이를 오락가락하고 있는 사이, 미국 북동부 영어를 매끈하게 구사하는 이 사람들은 연일 상한가를 치는 주식값을 계산하며 다음 바캉스를 어디로 갈까를 고민하느라 머리가 다 하얗게 셀 지경이다. 부익부 빈익빈은 한때 그랬을 것으로 추측되는 교육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영어에서 오게 되었다. '고급 영어 = 상류층' '사투리 영어 = 하류층' 이란 공식이 확고하게 자리를 잡은 것이다. -134-1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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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공용어화 과연 가능한가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25
한학성 지음 / 책세상 / 2000년 10월
구판절판


영어공용어론이 대두되고 그것에 대한 찬반 양론이 팽팽히 대립하는 와중에도 우리 사회에서 공용어 논쟁이 일어나는 것 자체가 타당한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공용어란 원래 한 국가 안에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여러 민족이 살고 있어 서로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할 때나 국제연합처럼 여러 국가가 모여 만든 국제 기구 안에서 국가 간 의사소통을 위해 사용되는 개념이다. 따라서 오랫동안 하나의 언어만을 사용해온 단일 언어국가인 우리 나라에서 우리끼리의 의사소통을 목적으로 한 공용어의 필요성이 대두될 이유는 전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나라에서 영어 공용어 논쟁이 일어나는 것은 부실한 영어교육으로 인해 영어를 제대로 습득하기가 어려우므로 영어 공용어화로 그 문제를 해결해보려는 의도 때문이다. -37-38쪽

마찬가지 논리로 우리가 만일 한국어와 영어를 공용어로 지정한다면, 이는 한국에서는 한국어와 영어 중 어느 하나를 알기만 하면 공식 업무상 불편이 없게끔 국가에서 보장한다는 뜻이지 모든 한국인이 영어를 할 줄 알아야 된다는 뜻은 아니다. 따라서 우리가 영어를 한국어와 함께 공용어로 지정하기만 하면 모든 한국인이 영어를 잘 할 수 있게 되리라는 믿음은 공용어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오는 망상에 불과하다. -39-40쪽

복거일의 이러한 주장의 타당성을 검토하기 위해 그의 주장을 한번 뒤집어보기로 하자. 그의 주장은 결국 '영어 공용어화로 우리 나라 영어 교육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다"는 것이 된다. 그러나 단지 영어를 공용어로 지정한다고 해서 갑자기 우리나라 사람들의 영어 구사력이 현저히 향상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중략... 결국 영어의 공용어화는 그 자체로 영어 교육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묘책이 아니라 영어 교육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비로소 달성이 가능한 목표라는 점에서 영어 공용어화로 영어 교육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발상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45쪽

복거일이 갈망하는 것처럼 전 국민이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할 수 있게 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영어를 잘 배울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시스템을 마련하지도 않고 무조건 영어를 공용어로 지정한닫는 것은 이제부터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할 테니 국민들은 알아서 영어를 배우라는 식의 무책임한 태도일 뿐이다.-48-49쪽

사람은 태어나자마자 즉시 어떤 중요한 사안에 대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지적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수 있기 위해서는 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그 교육은 언어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는 어떤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때는 이미 모국어를 습득한 후가 됨을 의미한다. ...중략... 사람들에게 모국어 선택권은 없다. 모국어는 단지 그가 태어나서 말을 배우는 환경 속에서 주어지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후손들의 모국어 선택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복거일의 주장은 궤변에 불과하다. -51쪽

오늘날에는 한 언어가 다른 언어보다 우월하다거나 열등하다거나 하는 식의 평가 자체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언어가 서로 다르면 그냥 다른 것이지, 우열을 구분할 수는 없다. 즉 문명의 우열은 있을지언정 언어의 우열은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 언어가 변화하면 그것은 변화하는 것일 뿐이지, 복거일이 주장하는 것처럼 진화하거나 퇴보하는 것은 아니다.

(밑줄그은 이 주 : 대체로 동의하나 '문명의 우열이 있다는 것'은 어찌 해석해야 하는가. 정말 문명에 우열이 있는가. 이때의 저자의 문명에 대한 개념이 문화와 동의어라면 나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언어의 다양성이 존재하듯 문화에도 문명에도 다양성이 존재한다 우열은 없다) -60쪽

각주 6번

이는 서울대 출신 중등 영어 교사나 대학 교수 개개인에 대한 공격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전체로서의 '서울대 파워 그룹'이 그 위상이나 그들이 누리는 혜택에 걸맞는 소임을 제대로 해오지 못한 것에 대한 객관적인 비판이다. 물론 한 사람 한 사람을 두고 보면 서울대 출신 중에 뛰어난 사람들이 상당수 있는 것이 사실이고 또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서울대 출신 영어 교사나 대학 교수 중에는 자격이 대단치 않은 사람도 있고, 서울대 출신보다 더 능력이 뛰어난 비서울대 출신이 있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문제는 그 동안 우리 나라 영어 교육이 능력보다는 출신 학교 중심으로 편성된 특정 그룹에 의해서 주도되어왔다는 것이고, 그들이 주도한 영어 교육이 참담하게 실패했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서울대는 우리나라 영어 교육이 실패한 데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밑줄그은 이 주 : 이에 동의. 영어교육 뿐안 아니라 이는 모든 분야에 대해서 해당할 수 있을 터다) -116-117쪽

각주 28

우리나라에서는 일단 사범대학에 입학만 하면, 졸업은 물론 교사 자격증을 받는 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 졸업이 쉬운 것은 비단 사범대학만의 문제는 아니므로 여기서 길게 논의할 대상은 아니지만, 사범대학 학생 중 교사로서의 자질이 전혀 없다고 판단되는 학생에게까지 졸업과 동시에 교사 자격증이 발급되는 것은 재고해보아야 할 것이다. ... 중략 ... 사범대 졸업시 적절한 자격 시험을 치러 이를 통과한 학생들에게만 교사 자격증을 발급하고 그 외의 학생들은 교사 자격증 없이 학사 학위만을 인정해주는 제도 시행을 검토해 볼 만 하다.

(밑줄그은 이 주 : 동의한다. 졸업을 어렵게 하고, 졸업자 중 일부에게만 자격증을 주어야 한다. 또한 교사의 길을 사범대로 한정하지 말고 더 다양하고 많은 경로를 통해 교사가 될 수 있도록 문을 개방해놔야 질적으로 높은 교사를 양성할 수 있을 것이다.) -1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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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6-11-30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어 자체를 모국어처럼 쓴다는 것은 저는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그것은 꼭 필요한 사람들만이 사용해야 하는 건데. 요즘 영어 못하면 취직도 제대로 못하니 정말 큰일입니다. 한국말 이것도 제대로 사용을 못하면서 국제화를 길러야 한다는 생각은 조금은 웃긴 생각이 아닌가 싶네요. 잘 읽고 갑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아 그리고 요즘 말들의 풍경 프린트 해서 잘 음미하고 있답니다. 님때문에 좋은 글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비로그인 2006-11-30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력을 길러, 한국어와 한글이 만국공용어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하하.

마법천자문 2006-11-30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명 또는 문화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저는 문명에 분명히 우열이 있다고 봅니다.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철두철미하게 구현되어 있는가(이것은 필연적으로 평등, 자유, 인권 등의 문제와 연결되겠죠), 과학기술의 발전 정도, 예술의 수준 등에 따라서 앞선 문명과 뒤떨어진 문명으로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예컨데 남편이 부인을 두들겨 패고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 사회 A와 남편이 부인을 두들겨 팰 경우 그에 따른 처벌을 확실히 받게 되는 사회 B가 있다고 가정할 때, 사회 B는 평등과 인권이라는 관점에서 A보다 우월한 문명이라고 해도 결코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망상 나남신서 502
조동일 지음 / 나남출판 / 2001년 9월
품절


그런데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주장이 여기저기서 나오더니, 정부 일각에서도 제주도에서 영어를 공용어로 하겠다는 계획을 발설했다. 여론을 알아보고 실행 여부를 결정할 것이니 염려하지 말라고 할 수도 있다. 찬반론이 다 있는데, 반대론자만 목청을 높이는 것은 잘못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의 사태는 커다란 불행의 시초이다.
정차 어떻게 될 것인지 추측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망상은 실행되지도 않고, 정책으로 채택되지도 않고, 막연하게 논의되기만 하는 단계에서도 커다란 페?를 낳는다.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막연한 논의가 영어 공부의 이상증후를 더욱 부채질해서 심각한 혼란을 자아내기 때문에 그대로 두고 볼 수 없다. 시급히 증상을 진단하고 치료해야 한다. -30쪽

세계에 있는 수많은 언어 가운데 오직 영어만 우상 노릇을 하면서 인류를 괴롭히는 것은 영미가 주도한 언어제국주의가 깊이 침투해서 만들어낸 질병이다. 그 해결책이 영어를 몰아내는 것은 아니다. 영어가 우상의 자리에서 내려와 자기 분수를 지켜 적절한 기능을 하도록 해야 한다.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서로 대등한 위치에서 의사소통을 하는데 필요한 영어를 함께 가꾸는 일에 국어가 확립되어 있는 한국이 적극 기여하는 것이 마땅하다. -32쪽

거듭 말하지만 영어가 국제사회의 공용어는 아니다. 교통어에 머무르지 않고 공용어의 영역에까지 들어서는 추세가 일부 보이기는 해도, 공용어는 아니고 그럴 수 없다. 미국에서도 공용어가 법제적인 지위를 획득하지 못한 영어를 국어가 있는 나라에서 공용어로 받아들이고, 세계의 공용어로 삼자는 것은 무리이다. 자기 나라 안의 언어와 문화는 획일화되지 않아야 한다고 하는 미국이 대외적으로 영어패권주의를 확산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미국이 그렇게 요구할 체면이 없어 공개적으로 나서지는 않고 있는데, 다른 나라가 자진해서 영어패권주의를 신봉하고 그 전도사가 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43쪽

한국어와 영어의 이중 공용어는 실현 불가능하다. 한국 사람들끼리 한국어로도 말하고 영어로도 말할 수 있으면 누가 영어로 말하겠는가? 영어로 말하게 하려면 한국어는 배우지 못하게 해야한다. 어린아이가 태어나면 영어만 가르치고 한국어는 가르치지 못하게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법은 만들어도 실행되지 않아 무효가 된다.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영어는 공용어가 아니고 외국어이다. 영어는 외국어로 배워 써야 한다. 영어를 외국어로 배워 활용하는 데 더욱 힘쓰자. 한층 효과적인 방법을 찾자. 이렇게 주장하는데 동의한다. 그 말을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고 바꾸어 하지는 말아야 한다. 국제화시대에는 외국어를 공용어로 해서 장차 모국어가 되게 해야 한다는 것은 전혀 잘못된 발상이다. 어느 시대든지 외국어는 외국어이다. -108쪽

언어의 단일화는 문화의 단일화를 초래한다. 인류가 이룩한 다양한 문화유산을 버리는 결과에 이른다. 각기 자기 언어로 이룩한 구두 또는 기록의 창조물은 삶의 경험과 소망을 알뜰하게 담은 소중한 창조물인데, 그 일부는 영어로 번역하고, 나머지 대부분은 쓰레기통에 넣으면 정신적인 빈곤이 심각해진다. 생물의 종이 대폭 멸종하는 것 같은 재난이 인류의 정신세계에서 벌어진다. 자연에서도 문화에서도 다양성은 생명이 보존되고 진화하게 하는 기본 조건이다. 다양성을 없애면 근친교배가 멸종을 초래하는 것과 같은 사태가 문화에서도 벌어진다. 다언어와 다문화의 조건을 상실한다면 인류는 살아남을 수 없다. -165-166쪽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언어는 당연히 있어야 한다. 그러나 중세의 공동문어가 민족어와 공존했듯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언어가 민족어를 침해하지 말아야 한다. 중세에는 공동문어를 통해 바람직한 창조를 했지만, 지금은 그 임무를 민족어가 담당하고 있다. 오늘날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언어는 교통어여야 한다. -169쪽

민족어를 지키기 위해서 영어를 배격하자는 것은 아니다. 인류가 서로 교류하려면 공동의 언어가 있어야 한다. 영어를 공동의 언어로 삼는 것이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공동의 언어는 교통어여야 한다. 각기 자기 언어를 국어나 공용어로 하는 사람들이 서로 대등한 관계를 가지면서 널리 교류하기 위해서 함께 사용하는 언어가 교통어이다.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망상을 타파하고 영어가 교통어 노릇을 충실하게 하도록 하는 데 우리가 적극적인 기여를 하는 것이 마땅하다.
민족문화끼리의 쟁패에서 유일한 승리자가 되겠다고 하는 패권주의 발상의 그릇된 세계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민족문화가 서로 대등한 자격을 가지고 각기 다르게 발전하면서 모두 함께 행복을 누려야 세계가 하나가 되는 진정한 세계주의를 이룩해야 한다. 통일후의 조국인 '우리나라'는 그렇게 하는 데 모범을 보이는 것이 마땅하다. 그렇게 하는 데 방해가 되는 그릇된 사고를 청산하고, 필요한 역량을 키우는 것이 지금 힘써 해야 할 일이다.
민족문화의 정수를 이어받아 세계사의 진로를 새롭게 설정하고 인류 전체를 행복하게 하는 사상을 만드는 데 힘쓰는 것이 구체적인 목표이다. 상생이 상극이고, 상극이 상생이라고 하는 생극의 원리를 구현한 철학의 전통과 문학의 유산, 그것이 발상의 원천이고, 작업의 소재이다. 문화활동은 물론 기술개발의 역군들까지 생극의 창조를 신명나게 해서 널리 혜택을 주는 것이 진정한 세계화의 길이다. -246-2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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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평전 - 세계적인 석학 자크 아탈리의
자크 아탈리 지음, 이효숙 옮김 / 예담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철학을 전공했으면서도 마르크스를 제대로 접할 기회가 없었고, 마르크스 철학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자본론>이나 <독일이데올로기> <경제학노트> <경제학-철학 수고> 등의 80년대 케케묵은 완전 헌책방 구석에나 처박혀있을 법한 오래된 책들을 간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에 대한 전기와 평전은 많이도 읽었다. 정말이지 책욕심, 지식욕심은 많아가지고 대학 학부 시절 대학원 박사과정생이었던 몇마디 주고받아봤던 한 선배가 책을 누군가에게 주려고 한다길래 무조건 한 상자 받아가지고 와서 집에 모셔놨던 것이 죄다 마르크스 철학책이다. 아마도 지금 구하려면 제법 구하기 힘들 법한 그런 책들을 난 가지고 있는 것인데 정작 나는 마르크스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았고, 이 책들은 나의 책장 맨 꼭대기에 올려져있다. 언제나 그 자리에.

  지금까지 읽은 마르크스 철학서는 없지만서도 마르크스에 관한 전기와 평전은 꽤나 읽어, 97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나름 세계적인 석학 이사야 벌린이 쓴 마르크스에 관한 책이라 해서 관심을 받았던 <칼 마르크스>, 런던대 철학과 교수로 있는 조너선 울프의 <한 권으로 보는 마르크스> , 마르크스의 생애나 사상을 진지하게 바라보는 앞의 두 책에 비해서는 좀 가볍고 오히려 일부러 진지함을 떨어뜨려 쉽게 접근하려 애쓴 <마르크스, 뉴욕에 가다> 등이 내가 접한 마르크스 책이다. 엄밀히. 마르크스에 '관한'  책이다. 이 밖에 그에 '관한' 책으로는 살림에서 나온 문고판 책자 <칼 마르크스> 와 프란시스 윈이 지은 <마르크스 평전>도 있다. 그에 관한 책은 이 정도. 하지만 그의 이론에 관한 책은 이보다 훨씬 많다.

  마르크스의 사상을 떠받들어 실전에 적용하려 했던 구 소련은 이미 망했고, 중국도 자본주의의 맛을 보느라 정신이 없다. 분명히 지금 현재 세계지도의 사상구도를 살펴봤을 때 마르크스가 애초 외쳤던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에 완패당했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지금 아이러니하게도 마르크스에 관한 사람들의 관심은 더 깊어졌고, 그와 관련된 책들 또한 무수히 번역되어 서점에 진열되었다. <독일 이데올리기> <자본론> <공산당 선언> 이렇게 세 가지 주요 저서만 해도 각종 다양한 해석서와 번역서들이 늘어져있다. 무게 좀 잡는다 싶은 사람이라면 마르크스를 논하고, 마르크스에 대해 아는 척하며, 마르크스를 재 해석한다. 80년대의 암울한 대한민국이야 마르크스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겠지만 왜 2006년의 지금인가.

  또 한명의 세계적인 석학이라 불리우는 프랑스의 자크 아탈리가 <마르크스 평전>을 썼다. 기존에 나와있는 것만 해도 꽤나 많은데 또 동일제목의 <마르크스 평전>을 쓴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 아닐까 싶지만서도, 그들은 그렇지 않은가보다. 각자 나름대로 살펴보고 해석해왔던 흔적들을 이렇게 책으로 엮어 보여주고 싶어한다. 자크 아탈리의 <마르크스 평전>을 읽었을 때 기존에 읽었던 다른 전기와 평전과 구별되는 점은 마르크스가 밟아왔던 그 과정들을 차근차근 되짚어주고 있다는 점이다. 아내와 딸과 아들과 그 밖의 주변인에 대해서도 물론 이야기하지만 이들에 대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부분에 한정해서만 다루고, 저자는 마르크스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어 걸음을 걷는다. 특별히 그의 철학사상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지도 않고 마르크스의 삶의 궤적을 천천히 밟는다. '독일의 철학자'로서, '유럽의 혁명가'로서, '영국의 경제학자'로서, '인터내셔널의 스승'으로서, '자본의 사상가'로서, '세계의 정신'으로서, 그를 불러본다. 저자는 각각으 장에서 제목에 어울리는 호칭에 맞는 마르크스으 모습을 조명한다. 그러나 관점에서 따른 마르크스를 다루었다고 해서 마르크스의 생애를 시간순서를 무시하고 뒤죽박죽 섞진 않는다. 시간순으로 올라오되 그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메인테마를 설정한 것이다. 이 책은 마르크스에 관한 책이므로 마르크스의 사상의 한 부분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마르크스가 남긴 말들 중에 유명한 한 문구가 있다.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세계를 해석하기만 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렇게까지 말하면 비약일수도 있겠지만 이전까지의 모든 철학자들이 머리속으로 철학을 했다면, 마르크스는 행동으로 철학을 하려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이론과 생각을 통해 현실의 삶을 변화시키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은 유럽과 러시아 세계 곳곳에서 변혁의 모습으로 다가왔고,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실패로 끝나고 말았지만 어쨌든 그의 이론을 가지고 전 세계는 양분되기도 했다. 그는 공산주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공산주의자는 자유롭게 오늘은 이것을 하고 내일은 저것을 하며, 아침에는 사냥꾼 노릇을 하고 오후에는 어부 노릇을 하며 저녁에는 목동 노릇을 한다. 결코 직업적인 사냥꾼, 어부 또는 목동이 되지는 않는다." 이것이 그가 꿈꿨던 세상이다. 그러나 그는 공산주의를 이야기하면서 스스로 공산주의자가 아님을 밝힌다. 이는 마르크스를 오해하는 이들을 위한 발언일 터.

  "나는 공산주의를 아주 싫어한다. 왜냐하면 공산주의는 자유에 대한 부정이며, 나는 자유가 없이 인간적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생각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공산주의는 국가 안에 사회의 모든 힘들을 집중시켜 탕진해버리게 만들기 때문이며, 그것은 필연적으로 국가의 손 안에서 소유권의 중앙집권화로 귀결되고야 말기 때문이다. ...... 나는 그게 뭐가 됐든 어떤 권위적인 수단을 통해 위에서 아래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연합의 길을 통해 아래에서 위로 공동으로 또는 사회적으로 소유하게 되는 사회를 조직하기 원한다. 자, 내가 어떤 의미에서 공산주의자가 아니고 집산주의자인지 보라!"

  앞의 발언에서의 공산주의와 뒤의 발언에서의 공산주의는 같다고 볼 순 없다. 마르크스는 아마도 다른 이들의 자신이 이야기하는 공산주의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기 위해, 이들에게 짜증을 내면서, 이와 같은 발언을 한게 아닌가 싶다. 공산주의와 집산주의를 구별하며, 또 국가의 중앙권력에 대한 거부감을 이야기하며, 그가 말하는 공산주의란 것이 무엇인가를 또렷히 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마르크스는 저자 자크 아탈리의 말에 따라 그 누구보다 많은 독자를 확보한 철학자이며,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주었던 철학자이기도 하며, 또 그의 이론에 관한 많은 해설서를 배출해낸 철학자이기도 하다. 마치 각 문명의 종교 창시자들의 저서가 이들을 믿는 이들에게 희망이고 구원이듯이 마르크스도 한 때 그와 같은 때가 있었다. 그는 비록 신은 아니지만, 또 신을 자처하지도 않지만, 가난한 삶을 살았던, 그러면서도 자신이 꿈꾸는 세계에 대한 체계를 세우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스스로에게도 희망을 걸었던 그런 철학자였다. 오늘날 사람들은 모두가 돈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돈이 있으면 안되는 일이 없고, 그러다보니 돈의 노예가 될 수가 밖에 없다. 수많은 돈벌이 책들이 난무하고, 실제로 어떤 이는 대박을 맞아 인생역전을 하며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며 살다 가기도 한다.

  그런데, 사람들의 정신 한 쪽 측면에서는 왠지 모를 허전함이 놓여있다. 돈이 많은 것을 해결해주었고, 또 자본주의는 그런대로 사람들에게 환영받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자본주의 성장의 물결은 이미 마르크스가 예언한 바 있다. 마르크스는 그의 책에서 "기술이 에너지와 물품의 생산, 통신, 예술, 이데올로기 등의 혁명을 가져왔고, 노동의 고단함을 현격히 줄여주게 되리라는 것을 예고했다." 또한 "시장이 전례 없는 성장의 물결을 타게 되거나 시장의 모순들이 절정에 달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부자와 가난한 자들의 불평등의 문제 등. 마르크스의 이론은 마치 이런 모든 자본주의의 병폐들을 예상하기라도 한듯 이에 대한 해결책들에 초점이 맞추어져있다. 어떻게 하면 많은 이들이 행복하고 평등하게 잘 살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 마르크스만이 제기했던 문제는 아니지만 마르크스 만큼의 해답을 내놓은 철학자는 없다. 그것이 우리가 지금 마르크스를 읽어야 하는 까닭이다. 마르크스 철학이 어렵다하지만 지금은 그의 저서에 관한 많은 해설서들이 나와있고, 관심만 있다면 마음먹고 마르크스를 공부해볼 수 있다. 청년시절에 마르크스주의자도 아니었고, 경제, 정치, 역사, 법 등의 다양한 분야에 걸쳐 세계적인 석학으로 불리우는 동안 마르크스의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자크 아탈리가, 마르크스를 공부하고 단숨에 마르크스 평전을 쓸 만큼의 마르크스 주의자가 되었다는 것, 그만큼 마르크스는 그때나 지금이나 매력있는 철학자이다.

  이 책은 프랑스 출간 당시 한동안 인문서적의 베스트셀러로 자리잡았다고 한다. 저자인 자크 아탈리 덕이기도 할테지만 마르크스의 이름은 자크 아탈리 못지 않은 영향력을 주었을 것이다. 많은 자료를 잘 엮어내어 한 사람의 생애를 진중하게 살펴본 잘 쓰여진 평전이라는 생각이다. 마르크스의 생애와 주변인들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마르크스의 사상이 한데 잘 버무려져 매우 읽기 쉽게 쓰여졌다. 죽은 마르크스가 지금까지 이렇게 주목받는다는 사실을, 사랑받는다는 사실을 알면, 참으로 행복할 것이다. 살아있는 동안의 가족의 죽음, 똥구멍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 정치적 망명을 해야했던 시절 등등의 온갖 고생한 보람이 있다며.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살아가고 있는 이라면 누구나 자본주의가 내리는 쾌락과 자본주의로부터 오는 불만족스러움을 느낀 바가 있을 터이고, 이 책은 그런 이들을 위한 것이다. 고로 우리 모두는 마르크스를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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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인생. 2006-11-28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처음으로 접한 마르크스에 관한 책은 마르크스의 복수였어요;;
이책 꼭 읽어보고 싶네요 ^^

짱꿀라 2006-11-28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저도 어제 이 책 사왔답니다. 이제부터 천천히 읽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먼저 책을 읽기 전 아프락사스님이 쓰신 리뷰를 먼저 보게 되네요. 감사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어느 정도는 내용을 알고 읽으니 더욱 이해가 쉬울 듯 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비로그인 2006-11-28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탈리는 자유로우며 균형잡힌 시각을 지닌 분이지요.
아프락사스님의 마르크스 '평가' 정독했습니다.
고맙습니다.

기인 2006-11-28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옷 잘 읽었습니다. :) ㅋ 저는 아프락삭스님과 정반대로 맑스관련책은 한권도 안 읽은 것 같아요. 처음부터 '자본론'읽느냐고 죽는줄 알았죠 ㅋㅋ
근데, 그 책들 물려주신 박사과정 선배님은, 공부를 완전히 접으신 건가요? 아님 이제 맑스는 끝난다, 라는 신념으로 책을 '넘기신' 건가요? ^^; 궁금하네요~

마음을데려가는人 2006-11-28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산주의자는 자유롭게 오늘은 이것을 하고 내일은 저것을 하며, 아침에는 사냥꾼 노릇을 하고 오후에는 어부 노릇을 하며 저녁에는 목동 노릇을 한다. 결코 직업적인 사냥꾼, 어부 또는 목동이 되지는 않는다." ->이 말이 참 와닿네요. 마르크스, 꼭 읽어봐야 겠어요. 추천 누르고 갑니다.:)

마늘빵 2006-11-28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춤추는 인생님 / ^^ 마르크스의 복수는 뭐에요. 소설인가요?

산타클로우슬리님 / 이 책 저는 출판사서 받은 것이지만 추천해드립니다. 지금까지 읽은 몇 안되는 전기, 평전 중에 젤 나은거 같아요.

한사님 / 감사합니다. ^^ 아탈리 책은 유목하는 인간 호모 노마드 집에 있는데 아직 안봤답니다.

기인님 / 자본론 아 더 어릴 때 한번 도전했어야하는데 졸업하고 나니 읽을 기회가 없습니다. 시간과 정신의 부담감 때문에. 그분은 공부를 접으신건 아니고 대학 강단에 들어서지 않고 외부로 나가신듯 합니다. 글쎄요. 어떤 의미에서 그 많은 책들을 넘겨주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맑스관련 서적만 큰 책꽂이 반칸이 찹니다.

애쓰지 않은 사람님 / 반갑습니다. ^^ 공산주의에 대한 가장 솔직하고 진실된 발언이 아닌가 싶어요.

marine 2006-11-28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밑의 리뷰에 번역이 엉망이라는 얘기가 있던데 문장 흐름은 어떤지 궁금하네요

마늘빵 2006-11-28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마린님 / 글쎄요. 저는 크게 문제 없는거 같은데요. 제가 원문과 비교해본건 아니지만 읽는데 별 문제는 없는 듯 합니다.

마법천자문 2006-11-28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회주의 체제가 실현된다고 해도 "자유롭게 오늘은 이것을 내일은 저것을 하며... 직업적인 사냥꾼, 어부가 되지는 않는다" 는 생각이 실현되기는 힘들 겁니다.

사회주의 체제에서도 각자 재능과 적성에 따라 일정한 직업을 가지고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역할분담을 하는 방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겠죠.

물론 자본주의 체제에서 나타나는 이윤 추구를 위한 비인간적이고 야만적인 착취와 너죽고 나살자식 경쟁이 사라진 한결 인간적이고 살기좋은 체제가 되겠지요. 구소련식 엉터리 사회주의가 아닌 '진정한 사회주의' 가 실현될수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