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 평전 - 세계적인 석학 자크 아탈리의
자크 아탈리 지음, 이효숙 옮김 / 예담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철학을 전공했으면서도 마르크스를 제대로 접할 기회가 없었고, 마르크스 철학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자본론>이나 <독일이데올로기> <경제학노트> <경제학-철학 수고> 등의 80년대 케케묵은 완전 헌책방 구석에나 처박혀있을 법한 오래된 책들을 간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에 대한 전기와 평전은 많이도 읽었다. 정말이지 책욕심, 지식욕심은 많아가지고 대학 학부 시절 대학원 박사과정생이었던 몇마디 주고받아봤던 한 선배가 책을 누군가에게 주려고 한다길래 무조건 한 상자 받아가지고 와서 집에 모셔놨던 것이 죄다 마르크스 철학책이다. 아마도 지금 구하려면 제법 구하기 힘들 법한 그런 책들을 난 가지고 있는 것인데 정작 나는 마르크스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았고, 이 책들은 나의 책장 맨 꼭대기에 올려져있다. 언제나 그 자리에.

  지금까지 읽은 마르크스 철학서는 없지만서도 마르크스에 관한 전기와 평전은 꽤나 읽어, 97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나름 세계적인 석학 이사야 벌린이 쓴 마르크스에 관한 책이라 해서 관심을 받았던 <칼 마르크스>, 런던대 철학과 교수로 있는 조너선 울프의 <한 권으로 보는 마르크스> , 마르크스의 생애나 사상을 진지하게 바라보는 앞의 두 책에 비해서는 좀 가볍고 오히려 일부러 진지함을 떨어뜨려 쉽게 접근하려 애쓴 <마르크스, 뉴욕에 가다> 등이 내가 접한 마르크스 책이다. 엄밀히. 마르크스에 '관한'  책이다. 이 밖에 그에 '관한' 책으로는 살림에서 나온 문고판 책자 <칼 마르크스> 와 프란시스 윈이 지은 <마르크스 평전>도 있다. 그에 관한 책은 이 정도. 하지만 그의 이론에 관한 책은 이보다 훨씬 많다.

  마르크스의 사상을 떠받들어 실전에 적용하려 했던 구 소련은 이미 망했고, 중국도 자본주의의 맛을 보느라 정신이 없다. 분명히 지금 현재 세계지도의 사상구도를 살펴봤을 때 마르크스가 애초 외쳤던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에 완패당했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지금 아이러니하게도 마르크스에 관한 사람들의 관심은 더 깊어졌고, 그와 관련된 책들 또한 무수히 번역되어 서점에 진열되었다. <독일 이데올리기> <자본론> <공산당 선언> 이렇게 세 가지 주요 저서만 해도 각종 다양한 해석서와 번역서들이 늘어져있다. 무게 좀 잡는다 싶은 사람이라면 마르크스를 논하고, 마르크스에 대해 아는 척하며, 마르크스를 재 해석한다. 80년대의 암울한 대한민국이야 마르크스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겠지만 왜 2006년의 지금인가.

  또 한명의 세계적인 석학이라 불리우는 프랑스의 자크 아탈리가 <마르크스 평전>을 썼다. 기존에 나와있는 것만 해도 꽤나 많은데 또 동일제목의 <마르크스 평전>을 쓴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 아닐까 싶지만서도, 그들은 그렇지 않은가보다. 각자 나름대로 살펴보고 해석해왔던 흔적들을 이렇게 책으로 엮어 보여주고 싶어한다. 자크 아탈리의 <마르크스 평전>을 읽었을 때 기존에 읽었던 다른 전기와 평전과 구별되는 점은 마르크스가 밟아왔던 그 과정들을 차근차근 되짚어주고 있다는 점이다. 아내와 딸과 아들과 그 밖의 주변인에 대해서도 물론 이야기하지만 이들에 대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부분에 한정해서만 다루고, 저자는 마르크스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어 걸음을 걷는다. 특별히 그의 철학사상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지도 않고 마르크스의 삶의 궤적을 천천히 밟는다. '독일의 철학자'로서, '유럽의 혁명가'로서, '영국의 경제학자'로서, '인터내셔널의 스승'으로서, '자본의 사상가'로서, '세계의 정신'으로서, 그를 불러본다. 저자는 각각으 장에서 제목에 어울리는 호칭에 맞는 마르크스으 모습을 조명한다. 그러나 관점에서 따른 마르크스를 다루었다고 해서 마르크스의 생애를 시간순서를 무시하고 뒤죽박죽 섞진 않는다. 시간순으로 올라오되 그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메인테마를 설정한 것이다. 이 책은 마르크스에 관한 책이므로 마르크스의 사상의 한 부분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마르크스가 남긴 말들 중에 유명한 한 문구가 있다.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세계를 해석하기만 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렇게까지 말하면 비약일수도 있겠지만 이전까지의 모든 철학자들이 머리속으로 철학을 했다면, 마르크스는 행동으로 철학을 하려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이론과 생각을 통해 현실의 삶을 변화시키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은 유럽과 러시아 세계 곳곳에서 변혁의 모습으로 다가왔고,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실패로 끝나고 말았지만 어쨌든 그의 이론을 가지고 전 세계는 양분되기도 했다. 그는 공산주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공산주의자는 자유롭게 오늘은 이것을 하고 내일은 저것을 하며, 아침에는 사냥꾼 노릇을 하고 오후에는 어부 노릇을 하며 저녁에는 목동 노릇을 한다. 결코 직업적인 사냥꾼, 어부 또는 목동이 되지는 않는다." 이것이 그가 꿈꿨던 세상이다. 그러나 그는 공산주의를 이야기하면서 스스로 공산주의자가 아님을 밝힌다. 이는 마르크스를 오해하는 이들을 위한 발언일 터.

  "나는 공산주의를 아주 싫어한다. 왜냐하면 공산주의는 자유에 대한 부정이며, 나는 자유가 없이 인간적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생각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공산주의는 국가 안에 사회의 모든 힘들을 집중시켜 탕진해버리게 만들기 때문이며, 그것은 필연적으로 국가의 손 안에서 소유권의 중앙집권화로 귀결되고야 말기 때문이다. ...... 나는 그게 뭐가 됐든 어떤 권위적인 수단을 통해 위에서 아래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연합의 길을 통해 아래에서 위로 공동으로 또는 사회적으로 소유하게 되는 사회를 조직하기 원한다. 자, 내가 어떤 의미에서 공산주의자가 아니고 집산주의자인지 보라!"

  앞의 발언에서의 공산주의와 뒤의 발언에서의 공산주의는 같다고 볼 순 없다. 마르크스는 아마도 다른 이들의 자신이 이야기하는 공산주의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기 위해, 이들에게 짜증을 내면서, 이와 같은 발언을 한게 아닌가 싶다. 공산주의와 집산주의를 구별하며, 또 국가의 중앙권력에 대한 거부감을 이야기하며, 그가 말하는 공산주의란 것이 무엇인가를 또렷히 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마르크스는 저자 자크 아탈리의 말에 따라 그 누구보다 많은 독자를 확보한 철학자이며,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주었던 철학자이기도 하며, 또 그의 이론에 관한 많은 해설서를 배출해낸 철학자이기도 하다. 마치 각 문명의 종교 창시자들의 저서가 이들을 믿는 이들에게 희망이고 구원이듯이 마르크스도 한 때 그와 같은 때가 있었다. 그는 비록 신은 아니지만, 또 신을 자처하지도 않지만, 가난한 삶을 살았던, 그러면서도 자신이 꿈꾸는 세계에 대한 체계를 세우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스스로에게도 희망을 걸었던 그런 철학자였다. 오늘날 사람들은 모두가 돈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돈이 있으면 안되는 일이 없고, 그러다보니 돈의 노예가 될 수가 밖에 없다. 수많은 돈벌이 책들이 난무하고, 실제로 어떤 이는 대박을 맞아 인생역전을 하며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며 살다 가기도 한다.

  그런데, 사람들의 정신 한 쪽 측면에서는 왠지 모를 허전함이 놓여있다. 돈이 많은 것을 해결해주었고, 또 자본주의는 그런대로 사람들에게 환영받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자본주의 성장의 물결은 이미 마르크스가 예언한 바 있다. 마르크스는 그의 책에서 "기술이 에너지와 물품의 생산, 통신, 예술, 이데올로기 등의 혁명을 가져왔고, 노동의 고단함을 현격히 줄여주게 되리라는 것을 예고했다." 또한 "시장이 전례 없는 성장의 물결을 타게 되거나 시장의 모순들이 절정에 달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부자와 가난한 자들의 불평등의 문제 등. 마르크스의 이론은 마치 이런 모든 자본주의의 병폐들을 예상하기라도 한듯 이에 대한 해결책들에 초점이 맞추어져있다. 어떻게 하면 많은 이들이 행복하고 평등하게 잘 살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 마르크스만이 제기했던 문제는 아니지만 마르크스 만큼의 해답을 내놓은 철학자는 없다. 그것이 우리가 지금 마르크스를 읽어야 하는 까닭이다. 마르크스 철학이 어렵다하지만 지금은 그의 저서에 관한 많은 해설서들이 나와있고, 관심만 있다면 마음먹고 마르크스를 공부해볼 수 있다. 청년시절에 마르크스주의자도 아니었고, 경제, 정치, 역사, 법 등의 다양한 분야에 걸쳐 세계적인 석학으로 불리우는 동안 마르크스의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자크 아탈리가, 마르크스를 공부하고 단숨에 마르크스 평전을 쓸 만큼의 마르크스 주의자가 되었다는 것, 그만큼 마르크스는 그때나 지금이나 매력있는 철학자이다.

  이 책은 프랑스 출간 당시 한동안 인문서적의 베스트셀러로 자리잡았다고 한다. 저자인 자크 아탈리 덕이기도 할테지만 마르크스의 이름은 자크 아탈리 못지 않은 영향력을 주었을 것이다. 많은 자료를 잘 엮어내어 한 사람의 생애를 진중하게 살펴본 잘 쓰여진 평전이라는 생각이다. 마르크스의 생애와 주변인들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마르크스의 사상이 한데 잘 버무려져 매우 읽기 쉽게 쓰여졌다. 죽은 마르크스가 지금까지 이렇게 주목받는다는 사실을, 사랑받는다는 사실을 알면, 참으로 행복할 것이다. 살아있는 동안의 가족의 죽음, 똥구멍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 정치적 망명을 해야했던 시절 등등의 온갖 고생한 보람이 있다며.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살아가고 있는 이라면 누구나 자본주의가 내리는 쾌락과 자본주의로부터 오는 불만족스러움을 느낀 바가 있을 터이고, 이 책은 그런 이들을 위한 것이다. 고로 우리 모두는 마르크스를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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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인생. 2006-11-28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처음으로 접한 마르크스에 관한 책은 마르크스의 복수였어요;;
이책 꼭 읽어보고 싶네요 ^^

짱꿀라 2006-11-28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저도 어제 이 책 사왔답니다. 이제부터 천천히 읽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먼저 책을 읽기 전 아프락사스님이 쓰신 리뷰를 먼저 보게 되네요. 감사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어느 정도는 내용을 알고 읽으니 더욱 이해가 쉬울 듯 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비로그인 2006-11-28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탈리는 자유로우며 균형잡힌 시각을 지닌 분이지요.
아프락사스님의 마르크스 '평가' 정독했습니다.
고맙습니다.

기인 2006-11-28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옷 잘 읽었습니다. :) ㅋ 저는 아프락삭스님과 정반대로 맑스관련책은 한권도 안 읽은 것 같아요. 처음부터 '자본론'읽느냐고 죽는줄 알았죠 ㅋㅋ
근데, 그 책들 물려주신 박사과정 선배님은, 공부를 완전히 접으신 건가요? 아님 이제 맑스는 끝난다, 라는 신념으로 책을 '넘기신' 건가요? ^^; 궁금하네요~

마음을데려가는人 2006-11-28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산주의자는 자유롭게 오늘은 이것을 하고 내일은 저것을 하며, 아침에는 사냥꾼 노릇을 하고 오후에는 어부 노릇을 하며 저녁에는 목동 노릇을 한다. 결코 직업적인 사냥꾼, 어부 또는 목동이 되지는 않는다." ->이 말이 참 와닿네요. 마르크스, 꼭 읽어봐야 겠어요. 추천 누르고 갑니다.:)

마늘빵 2006-11-28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춤추는 인생님 / ^^ 마르크스의 복수는 뭐에요. 소설인가요?

산타클로우슬리님 / 이 책 저는 출판사서 받은 것이지만 추천해드립니다. 지금까지 읽은 몇 안되는 전기, 평전 중에 젤 나은거 같아요.

한사님 / 감사합니다. ^^ 아탈리 책은 유목하는 인간 호모 노마드 집에 있는데 아직 안봤답니다.

기인님 / 자본론 아 더 어릴 때 한번 도전했어야하는데 졸업하고 나니 읽을 기회가 없습니다. 시간과 정신의 부담감 때문에. 그분은 공부를 접으신건 아니고 대학 강단에 들어서지 않고 외부로 나가신듯 합니다. 글쎄요. 어떤 의미에서 그 많은 책들을 넘겨주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맑스관련 서적만 큰 책꽂이 반칸이 찹니다.

애쓰지 않은 사람님 / 반갑습니다. ^^ 공산주의에 대한 가장 솔직하고 진실된 발언이 아닌가 싶어요.

marine 2006-11-28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밑의 리뷰에 번역이 엉망이라는 얘기가 있던데 문장 흐름은 어떤지 궁금하네요

마늘빵 2006-11-28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마린님 / 글쎄요. 저는 크게 문제 없는거 같은데요. 제가 원문과 비교해본건 아니지만 읽는데 별 문제는 없는 듯 합니다.

마법천자문 2006-11-28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회주의 체제가 실현된다고 해도 "자유롭게 오늘은 이것을 내일은 저것을 하며... 직업적인 사냥꾼, 어부가 되지는 않는다" 는 생각이 실현되기는 힘들 겁니다.

사회주의 체제에서도 각자 재능과 적성에 따라 일정한 직업을 가지고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역할분담을 하는 방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겠죠.

물론 자본주의 체제에서 나타나는 이윤 추구를 위한 비인간적이고 야만적인 착취와 너죽고 나살자식 경쟁이 사라진 한결 인간적이고 살기좋은 체제가 되겠지요. 구소련식 엉터리 사회주의가 아닌 '진정한 사회주의' 가 실현될수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