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mannerist > 마태우스님께(2): 절차적 평등과 실질적 평등, 그리고 민주주의

요즘 불규칙한 생활로 글이 늦었습니다. 더이상 늦출 수 없어 머리 꼬리 자르고 그대로 갑니다.
이 이야기를 먼저 합시다. 닐 우드의 '미국의 종말에 관한 짧은 에세이'와 최장집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서는 민주주의의 실현 양상에 대해 고찰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민주주의라는 말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부터 尾국까지 하도 다양한 의미로 쓰이고 있어 그 본질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본질을 뽑아내자면 민주주의에 있어서 절차적 평등과 실질적 평등의 실현일겁니다. 누구나 동등한 권리 - 1인 1표의 대의민주주의로 대표되는 - 를 가지고 이를 정해진 절차에 따라 사회를 움직여 가고 있느냐가 절차적 민주주의의 실현 여부입니다. 반면에, 실질적으로 사회 구성원들이 사회/경제적인 실질적 평등이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통해, 실질적 민주주의의 정도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닐 우드와 최장집이 물론 절차적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소위 '민주화'이후 지나칠 정도로 절차적 민주주의가 강화된 결과가 곧 기득권의 권익 보호의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을수도 있음을 논증하고 있습니다. 닐 우드가 '절차적 민주주의'에 굳어져버린 미국의 정치 현실을 까발린다면 최장집은 실례와 정치학적 논증을 통해 절차적 민주주의의 지나친 강조와 실질적 민주주의 실현의 상관관계를 논한다는게 차이라면 차이겠지요.
이 문제를 꺼낸 이유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그렇게 각을 세워 대립하는 모습이 대부분 미디어에 노출되고 이를 사람들이 '둘이 다르긴 다르구나'라 차이를 느끼는 게 현실을 먼저 생각해보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습니다. 분명 둘은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대는 걸 넘어 욕설과 비아냥, 패싸움까지 해 대며 각을 세웁니다. 이 과정에서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메뉴가 '법과 절차'지요. 국보법 존폐 논란, 혹은 한 쪽이 반대하는 법안 상정때 벌어지는 생쑈를 생각하시면 빠르겠습니다. 이 영역에서는 갖은 논리와 억지를 부리며 대립합니다.
하지만 실질적 민주주의의 실현의 관점에서 봅시다. 이 영역은 (하향평준화가 아닌 패자부활전이 허용되는)경제적 평등, 기회의 균등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말과 논리의 영역에서 떠나 돈과 이권, 숫자가 오가는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까놓고 말해, 이 두 집단의 논리에 따라 돈이 어디로 굴러가는가를 보면 된다는 이야깁니다. 실질적 민주주의 실현의 핵심인 경제적 평등에 있어, 두 집단의 차이가 있음을 논증해야 합니다. 저는 이미 저 두 집단의 차이가 경제적 평등의 영역에 있어서는 없거나 무시할만함을 지적했으며, 적어도 제가 제시한 수치에 대한 반론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역으로 봅시다. 마태우스님께서 제시한 두 집단의 차이점의 예로 들어주신 '빨갱이 샤냥', 동대구역만 내리면 매너 상판 찌푸리게 만드는 씨방새가 이철우 간첩 운운하며 짖어대는 소리에 열린우리당 아주 맹렬히,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당연합니다. 세싸움, 기싸움에 밀리면 끝장이니까요. 논리로 밀리는 것도 아니고요. 그러나 동일 사건에 대해 작년 한참 시끄러웠던 강정구 교수 파동을 생각해 봅시다. 색깔론과 빨갱이 사냥에 대해 열린우리당이 진정으로 분노하여 구시대의 유물로 치워버릴 생각이었으면 왜 강정구 교수 사건에는 침묵했습니까? 이철우 의원을 보호하듯 강정구 교수를 감싸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자신들의 정치 권력, 경제적 이권과 강정구 교수와의 상관관계를 동시에 고려해보면 어떨까요?
사학법 개정 문제에 당 내부가 들썩이고 있는 거 정신 차리게 한 사람들은 그나마 열린우리당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은 사람들이 극렬 반대함으로 가능했습니다. 아마 이 사람들 없었으면 애저녁에 한나라당 쪽으로 돌아갔을겁니다. 재개정 가능성을 열어놓은 건 열린우리당 수뇌부죠.
각을 세워 터지게 싸우더라도 자신들의 경제적 이권이 걸린 일은 조용히 통과시키는 윈-윈 게임을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지난 시간 벌여왔습니다. 한나라당은 어찌 되든 자기네 주장과 이득 관철시켜 좋고 열린우리당은 저런 실질적 민주주의가 걸려있지 않은 사항에 대해서 한나라당과 '각'을 세우면 '개혁적'이라는 이미지를 얻을 수 있으니 좋죠. 물론 거기 걸린 이권 가져가는 걸 물론이고요.
다시 한 번 글을 읽어보니 제가 잘못 물어봤습니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정치적 차이란 무엇입니까? 구체적으로 개별 정책과 노선에 대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신문지상에 오르고내리는 말잔치 말고, 실질적으로 다른 결과를 보인 행보가 무엇인지 말입니다. 결과가 없는 수사란 정치적 책임의 소재일 뿐입니다. "(매너의 지난 글)
애매모호한 구석이 있군요. '개별 정책과 노선'이란 말 말입니다. 범위를 좀 더 좁히겠습니다. 절차적 민주주의의 실현이 아닌, 실질적 민주주의의 실현에 있어서 두 정당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좀 더 본질적으로 문제 범위를 좁히면, 실질적 민주주의 실현의 핵심인 경제적 평등에 있어서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과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있는지요.
제가 가장 위험하게 생각하는 건, '한나라당같은 수구 꼴통집단을 지지하는 것 보다는 개혁하려고 꼼지락대기는 하는 열린우리당을 지지하는게 낫다'라는 착각입니다. 자신이 행사하는 한 표가 실질적으로 어떻게 작용하는지나 알아야 할 거 아닙니까. 실질적 민주주의 확립의 핵심인 경제적 영역을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제가 이야기한다고 해도 '두 당의 차이를 매너놈처럼 크게 느끼는 사람도 있는 거고, 그 차이도 크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이들을 무조건 노빠라고 폄하하는 건 옳지 않다'는 상대주의 논리를 제기하며 '그래도 난 좀더 나는 내일 혹은 개혁을 위해 열린우리당을 지지한다'라고 주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무조건적으로 열린우리당 지지자들을 노빠로 폄하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절차적 민주주의상의 대립이 아닌 실질적 평등의 추구에 있어서의 차이는 개개인이 느끼고 말고의 문제가 아님을 지적하고 결국 열린우리당에 대한 지지는 경제적 양극화에 대한 지지 표망과 다르지 않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날리님이 지적하신 '쾌감'도 지지의 이유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같은 키보드 워리어들이 '쾌감'을 느낄 때, 그 뒤로 그들이 타도하려는 집단과 똑같은 짓을 벌여 실질적 민주주의를 저해하는 행위를 은폐하고 있는 걸 잊어서는 안 되지 싶습니다.
뒤따라 나올 수 있는 문제 중 하나는, 그렇다면 한나라당의 싹쓸이는 과연 옳으냐는 것입니다. 여러 말 할 필요도 없은 미친 상황입니다만 열린우리당의 갈라먹기와 실질적 민주주의의 영역에서는 별 차이 없을거라는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그렇다면 한나라당, 열린우리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바보고 모두 우매한 대중이냐. 라는 문제 제기 역시 가능하겠죠. 제 대답은 '재산 10억 없는 사람의 지지는 그렇다'입니다. 양극화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면서, 직접 언제 떨어져 내릴지 모르는 그 칼날 아래 부들부들 떨고 있으면서 실질적 민주주의 확립에 별 관심없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 자기 발등 자기가 찍는 거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마는, 좀 심하게 말해서 더 당해도 쌉니다.
나머지 하나씩 갑시다. joule님께서 논점 일탈의 오류의 소지가 있다고 말씀하셨던 이야기, '강금실과 노빠 문제를 마무리짓지 않고 왜 바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차이에 대해 논하느냐'는 지적은, 강금실의 동원 논리와 과정에서 제 문제제기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한나라당과의 실질적 민주주의 실현의 영역에서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못하고 정치적으로 거듭된 실패를 반복한 열린우리당이, 그 본질을 '비정치적 영역'에 강력한 장점을 가진 강금실을 지극히 '당내 민주주의에서 예외적인'방식으로 선출하여 호도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노빠들이 그렇게 부르짖었던 당내 민주주의와 별다른 상관 관계 없이, 정치적 실패에 대한 통렬한 자기 반성 없이, 예외 규정에 의해 영입된 후보를 간판으로 내세우고, 가능한한 열린우리당과 거리를 두고 비정치적 영역의 장점만을 내세우면서, 그것도 빈약한 공약을 통해 - 매너 '업계'분야만 찾아보면 교통안전시설 업무편람, 어린이 보호구역 개선사업 편람도 제대로 안 읽어본 사람이 해당 분야 정책 짠 티가 납니다 - 선거운동을 벌이는 양상이 그렇습니다. 열린우리당의 서울특별시장 후보 강금실의 본질은 '괜찮은 여성 서울시장 밀어주자'가 아닌 '본질 호도책'이라는게 제 분석입니다. 그렇다면 개혁을 위해 한나라당과 질적 차이가 있는 열린우리당을 지지한다는게 왜 말이 안되는지를 입증하는게 필요할 겁니다. 이후 논의 전개는 위와 같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누굴 지지해야 하느냐? 여기까지 간섭하고 싶은 생각 없습니다. 단지, 자신이 행사하는 한 표가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알고는 있어야 하지는 않겠습니까.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에 대한 한 표 행사는, 양극화에 대한 지지이자 실질적 평등이 이미 이루어질만큼 이루어지고 이에 기반한 정책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뜻과 다르지 않습니다. 개혁을 위해서, 또는 여성 정치 세력화를 위해서 지지를 한다고 덧붙일 수도 있겠지만 경제적 의미에서는 저 굴레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덧붙여, 매너의 선거 전략이나 간단히 쓰고 글 갈음할렵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투표서 털래털래 걸어가 4번으로 죽 긋고 나올 겁니다. 기권이라는 무책임한 짓을 하긴 싫습니다. 1, 2, 3, 5번 찍지 않는 이유야 위에서 이야기했습니다. NL이 상층부 싹쓸이한 - 국회의원 박탈된 조승수 자격 없다는 유언비어 퍼뜨린 잡것들은 지금 생각해도 이가 갈립니다 - 민주노동당 적극적 지지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입만 열면 정몽준, 발전 타령 떠드는 무소속도 꼴보기 싫은 게 절반, 무엇보다 NL이 민 김창현을 전교조 쪽 몰표를 통해 밀어냈다는게 이유입니다. 전교조 중심으로 NL의 독주를 막고 적절한 견제가 가해질 지는 미지수지만 말이죠. 뭐 노동 귀족의 대변자임을 증명하는 한 표일 뿐이다, 라면 그 비판, 수용하겠습니다. 적어도 이십대 후반의 노동자 정체성과 이익에 가장 가까운 집단에 한 표를 던지는 거니까요.
무분별한 비방이 쏟아지지 않는 한. 이 문제에 대해 더 이상의 페이퍼가 올라오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덧붙여_무책임한 매너의 부재를 채워 주신 마태우스님을 비롯한 알라디너님들께 정치/경제적 입장의 차이를 떠난 경의를 표합니다. 동시에, 정확한 지적 없는 선문답성 댓글 올렸다 삭제하신 신지님, 논의에 합류하고 싶으시면 정확한 글로 자신의 주장을 표현하시는게 논리적 오류 따지기 전의 기본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논점 일탈의 오류' 이야기, '메탈이 좋아'이야기 덜렁 지적해놓고 그 이상의 언급이 없이 초등학생 운운하셨더군요. 그러고보니 마태우스님 페이퍼에서 라주미힌님과 매너놈의 나이가 어린 것 같다는 전혀 상관 없는 이야기도 하셨다 지우신 적도 있지요. 왜그러셨을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