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알라딘도서팀 > [서평단 모집] <탤리즈먼, 이단의 역사> 서평단을 모집합니다.

안녕하세요, 알라딘 편집팀 김현주입니다.

까치에서 출간된 <탤리 즈먼, 이단의 역사>에 서평을 써주실 분들을 모집합니다.
원서 : Talisman: Sacred Cities, Secret Faith (2004) / by Graham Hancock, Robert Bauval

출판사 편집자 코멘트 :
얼마 전 개봉한 영화 <다빈치코드>와도 관련된 내용으로, 기독교 이단의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장미십자회, 프리메이슨 등 이제 우리에게 친숙해진 단체들의 역사와 그들의 활약상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역사를 기독교 이단의 관점에서 조망한 책입니다. <신의 지문> 등으로 유명한 베스트셀러 저자 그레이엄 핸콕과 로버트 보발의 작품으로, 파리나 뉴욕 등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도시에 숨겨진 기독교 이단의 상징물들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
<탤리즈먼 : 이단의 역사>는 우리를 헬리오폴리스에서 룩소르로, 알렉산드리아와 툴루즈, 피렌체, 로마, 파리, 런던, 워싱턴 DC, 뉴욕, 그리고 끝으로 2001년 9월 11일 테러 공격에 뒤이은 세계적 혼란 상황으로 안내한다.

이 책에는 낭만과 음모, 영웅적 행위와 신념으로 가득 차 있고, 고대 이집트의 천문학자를 겸한 사제들과 기독교의 그노시스파, 은둔한 현자들, 박학다식한 유대 인들, 아랍의 현인들, 옥시타니아의 백작들, 카타리파의 완덕자들, 템플 기사단, 르네상스 시대의 마기, 신분을 숨긴 장미십자회 회원들, 바이에른의 일루미나티, 프리메이슨 회원들이 등장한다. 그들이 꿈꾸던 유토피아는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2000년 전부터 시작된 비밀 계획은 프랑스 혁명을 일으켰고, 대화재로 소실된 런던을 재건하기 위해서 움직였으며, 미국을 영국의 지배에서 해방시켜 모든 이들이 바라던 신세계를 건설할 수 있도록 했다.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벤저민 프랭클린은 자신들의 신념을 미국의 건국과 접목시켰다. 미화 1달러짜리 지폐에 들어 있는 “피라미드 속의 눈”을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그들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그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된 해리 트루먼은 이스라엘의 건국을 승인했으며, 그의 결정은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 후로 미국이 주도하는 아니 보이지 않는 세력이 지배하는 세계는 9-11 테러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테러를 주도한 오사마 빈 라덴은 이번 공격이 끝이 아님을 보이지 않는 세력에게 경고한다. 그리고 저자들은 테러 공격으로 쓰러지는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빌딩과 부서진 미국 국방부 청사 펜타곤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 지적인 여행을 한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신청합니다" 댓글을 달아주세요.

읽기에 어려운 책은 아니지만 분량이 660 페이지나 됩니다.
이 점 참고하셔서 신청해주세요.^^

신청은 5월 25일 오후 5시까지 받겠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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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6-05-25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으로 '서평단'이란 것이 되었다. Graham Hancock의 <<신의 지문>>은 고딩땐가 중딩때 읽은 적이 있는데, 완전 개소리라고 여기고 말았다.
대학에 들어와서는 마크 해드슬의 <<젤라토르: 비밀의 역사>>라는 책을 읽었는데, 흥미로웠다. '신비주의'라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 '근대'라는 것의 뒤에 숨겨진 비밀을 보는 자, 시인처럼 혹은 중독자처럼 취한 사람들. 음모론자, 고대주의자, 유럽주의자, 기독교 이단자, 맹신도들? 이 책도 기다려진다.

기인 2006-05-29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6월 20일까지 리뷰
 

이틀 내내 방 밖으로 나가지 않고 콘프레이크만 먹었다. 오늘 운동을 끝내고 몸무게를 재니 75.5kg!

우하하. 기뻤다. 근데, 내일 모레 박사시험이다. 공부는? 열라 안 했다. -_-;;

운동 끝나자마자 와서 해야되는데, 알라딘에서 글 읽고 쓰는데 한시간동안 했다. 알라딘에 정말 좋은 분들이 많은 것 같다. 내 세상은 최근에는 국문과 대학원생들로 한정되어 있었는데, 세상이 쫌 넓어질 것 같다. 좋다.

어쨌든, 이제 죽어라 외워야 된다. 명색이 박사시험인데, 외워야 하다니. 사실 외워야 하는게 아니라 평소에 문학사적 지식을 쌓아놓아야 하는 것이 원래 의도일 터이다. 쩝.

고딩때는 외우는 거 그래도 열심히 했는데, 대학 입학 후부터는 절대로 외우지를 안 했더니, 뇌가 썩어버렸다. 슬프다.

박사시험 5.27

10:00~12:00 전공

13:30~14:30 한문

쩝.

설마 내일 운동가서 몸무게 재면, 그대로 나오는 것 아니겠지?

오늘 기분이 좋아서 운동 끝나고 돼지 갈비 -_- 먹고, 민토가서 차를 먹고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이게 문제야. 참.

토요일은 시험끝났으니, 죽을 때까지 술을 마시겠지.... 과일 안주 시켜서, 과일만 먹어야겠다.

오늘도 바람에 별이 스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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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2006-05-25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콘프레이크만? 좀 걱정 되네요. 고리타분한 소리로 들리겠지만 육식을 줄이시고 걷기를 많이 하는 방향으로 하시면 어떨지?

기인 2006-05-25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 고맙습니다. 그래야하는데, 제가 원체 게으름뱅이라서 역시 문제인 것 같아요. 학교가 걸어서 20분 거리에 자취를 하는데도, 걸어서 안 가고 꼭 셔틀타고 다닙니다. 이제부터 굳은 마음으로 걸어다녀야겠습니다. 비자림님 덕분에 또 살 빠지는 계획 세웁니다 ;)

마태우스 2006-05-26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혼자 내려가지 마시고 저랑 같이 내려가면 좋으련만...ㅠㅠ 축하드립니다. 박사시험 잘보시길.

기인 2006-05-26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역시 문제는 박사시험. 12시가 지났으니 내일이 시험이군요.
공부안하고 펀펀히 놀고 있습니다. 우하하하;; 과연 기인은 박사가(사실 박사과정이)될 수 있을 것인지!! 개봉박두입니다..;;;

가을산 2006-05-26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하~ㄴ 무~ㄴ ! 대학원에서도 그런걸 봅니까?

기인 2006-05-26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제2외국어를 보는데, 제가 한문을 선택했거든요. 한자시험은 아니고요 ^^; 맹자같은 사서를 해석하는 시험입니다 ^^
 
 전출처 : mannerist > 마태우스님께(2): 절차적 평등과 실질적 평등, 그리고 민주주의

 요즘 불규칙한 생활로 글이 늦었습니다. 더이상 늦출 수 없어 머리 꼬리 자르고 그대로 갑니다.

이 이야기를 먼저 합시다. 닐 우드의 '미국의 종말에 관한 짧은 에세이'와 최장집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서는 민주주의의 실현 양상에 대해 고찰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민주주의라는 말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부터 尾국까지 하도 다양한 의미로 쓰이고 있어 그 본질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본질을 뽑아내자면 민주주의에 있어서 절차적 평등과 실질적 평등의 실현일겁니다. 누구나 동등한 권리 - 1인 1표의 대의민주주의로 대표되는 - 를 가지고 이를 정해진 절차에 따라 사회를 움직여 가고 있느냐가 절차적 민주주의의 실현 여부입니다. 반면에, 실질적으로 사회 구성원들이 사회/경제적인 실질적 평등이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통해, 실질적 민주주의의 정도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닐 우드와 최장집이 물론 절차적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소위 '민주화'이후 지나칠 정도로 절차적 민주주의가 강화된 결과가 곧 기득권의 권익 보호의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을수도 있음을 논증하고 있습니다. 닐 우드가 '절차적 민주주의'에 굳어져버린 미국의 정치 현실을 까발린다면 최장집은 실례와 정치학적 논증을 통해 절차적 민주주의의 지나친 강조와 실질적 민주주의 실현의 상관관계를 논한다는게 차이라면 차이겠지요.

이 문제를 꺼낸 이유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그렇게 각을 세워 대립하는 모습이 대부분 미디어에 노출되고 이를 사람들이 '둘이 다르긴 다르구나'라 차이를 느끼는 게 현실을 먼저 생각해보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습니다. 분명 둘은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대는 걸 넘어 욕설과 비아냥, 패싸움까지 해 대며 각을 세웁니다. 이 과정에서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메뉴가 '법과 절차'지요. 국보법 존폐 논란, 혹은 한 쪽이 반대하는 법안 상정때 벌어지는 생쑈를 생각하시면 빠르겠습니다. 이 영역에서는 갖은 논리와 억지를 부리며 대립합니다.

하지만 실질적 민주주의의 실현의 관점에서 봅시다. 이 영역은 (하향평준화가 아닌 패자부활전이 허용되는)경제적 평등, 기회의 균등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말과 논리의 영역에서 떠나 돈과 이권, 숫자가 오가는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까놓고 말해, 이 두 집단의 논리에 따라 돈이 어디로 굴러가는가를 보면 된다는 이야깁니다. 실질적 민주주의 실현의 핵심인 경제적 평등에 있어, 두 집단의 차이가 있음을 논증해야 합니다. 저는 이미 저 두 집단의 차이가 경제적 평등의 영역에 있어서는 없거나 무시할만함을 지적했으며, 적어도 제가 제시한 수치에 대한 반론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역으로 봅시다. 마태우스님께서 제시한 두 집단의 차이점의 예로 들어주신 '빨갱이 샤냥', 동대구역만 내리면 매너 상판 찌푸리게 만드는 씨방새가 이철우 간첩 운운하며 짖어대는 소리에 열린우리당 아주 맹렬히,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당연합니다. 세싸움, 기싸움에 밀리면 끝장이니까요. 논리로 밀리는 것도 아니고요. 그러나 동일 사건에 대해 작년 한참 시끄러웠던 강정구 교수 파동을 생각해 봅시다. 색깔론과 빨갱이 사냥에 대해 열린우리당이 진정으로 분노하여 구시대의 유물로 치워버릴 생각이었으면 왜 강정구 교수 사건에는 침묵했습니까? 이철우 의원을 보호하듯 강정구 교수를 감싸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자신들의 정치 권력, 경제적 이권과 강정구 교수와의 상관관계를 동시에 고려해보면 어떨까요?

사학법 개정 문제에 당 내부가 들썩이고 있는 거 정신 차리게 한 사람들은 그나마 열린우리당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은 사람들이 극렬 반대함으로 가능했습니다. 아마 이 사람들 없었으면 애저녁에 한나라당 쪽으로 돌아갔을겁니다. 재개정 가능성을 열어놓은 건 열린우리당 수뇌부죠.

각을 세워 터지게 싸우더라도 자신들의 경제적 이권이 걸린 일은 조용히 통과시키는 윈-윈 게임을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지난 시간 벌여왔습니다. 한나라당은 어찌 되든 자기네 주장과 이득 관철시켜 좋고 열린우리당은 저런 실질적 민주주의가 걸려있지 않은 사항에 대해서 한나라당과 '각'을 세우면 '개혁적'이라는 이미지를 얻을 수 있으니 좋죠. 물론 거기 걸린 이권 가져가는 걸 물론이고요.

다시 한 번 글을 읽어보니 제가 잘못 물어봤습니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정치적 차이란 무엇입니까? 구체적으로 개별 정책과 노선에 대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신문지상에 오르고내리는 말잔치 말고, 실질적으로 다른 결과를 보인 행보가 무엇인지 말입니다. 결과가 없는 수사란 정치적 책임의 소재일 뿐입니다. "(매너의 지난 글)

애매모호한 구석이 있군요. '개별 정책과 노선'이란 말 말입니다. 범위를 좀 더 좁히겠습니다. 절차적 민주주의의 실현이 아닌, 실질적 민주주의의 실현에 있어서 두 정당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좀 더 본질적으로 문제 범위를 좁히면, 실질적 민주주의 실현의 핵심인 경제적 평등에 있어서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과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있는지요.

 

제가 가장 위험하게 생각하는 건, '한나라당같은 수구 꼴통집단을 지지하는 것 보다는 개혁하려고 꼼지락대기는 하는 열린우리당을 지지하는게 낫다'라는 착각입니다. 자신이 행사하는 한 표가 실질적으로 어떻게 작용하는지나 알아야 할 거 아닙니까. 실질적 민주주의 확립의 핵심인 경제적 영역을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제가 이야기한다고 해도 '두 당의 차이를 매너놈처럼 크게 느끼는 사람도 있는 거고, 그 차이도 크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이들을 무조건 노빠라고 폄하하는 건 옳지 않다'는 상대주의 논리를 제기하며 '그래도 난 좀더 나는 내일 혹은 개혁을 위해 열린우리당을 지지한다'라고 주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무조건적으로 열린우리당 지지자들을 노빠로 폄하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절차적 민주주의상의 대립이 아닌 실질적 평등의 추구에 있어서의 차이는 개개인이 느끼고 말고의 문제가 아님을 지적하고 결국 열린우리당에 대한 지지는 경제적 양극화에 대한 지지 표망과 다르지 않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날리님이 지적하신 '쾌감'도 지지의 이유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같은 키보드 워리어들이 '쾌감'을 느낄 때, 그 뒤로 그들이 타도하려는 집단과 똑같은 짓을 벌여 실질적 민주주의를 저해하는 행위를 은폐하고 있는 걸 잊어서는 안 되지 싶습니다.

 

뒤따라 나올 수 있는 문제 중 하나는, 그렇다면 한나라당의 싹쓸이는 과연 옳으냐는 것입니다. 여러 말 할 필요도 없은 미친 상황입니다만 열린우리당의 갈라먹기와 실질적 민주주의의 영역에서는 별 차이 없을거라는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그렇다면 한나라당, 열린우리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바보고 모두 우매한 대중이냐. 라는 문제 제기 역시 가능하겠죠. 제 대답은 '재산 10억 없는 사람의 지지는 그렇다'입니다. 양극화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면서, 직접 언제 떨어져 내릴지 모르는 그 칼날 아래 부들부들 떨고 있으면서 실질적 민주주의 확립에 별 관심없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 자기 발등 자기가 찍는 거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마는, 좀 심하게 말해서 더 당해도 쌉니다.

 

나머지 하나씩 갑시다. joule님께서 논점 일탈의 오류의 소지가 있다고 말씀하셨던 이야기, '강금실과 노빠 문제를 마무리짓지 않고 왜 바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차이에 대해 논하느냐'는 지적은, 강금실의 동원 논리와 과정에서 제 문제제기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한나라당과의 실질적 민주주의 실현의 영역에서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못하고 정치적으로 거듭된 실패를 반복한 열린우리당이, 그 본질을 '비정치적 영역'에 강력한 장점을 가진 강금실을 지극히 '당내 민주주의에서 예외적인'방식으로 선출하여 호도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노빠들이 그렇게 부르짖었던 당내 민주주의와 별다른 상관 관계 없이, 정치적 실패에 대한 통렬한 자기 반성 없이, 예외 규정에 의해 영입된 후보를 간판으로 내세우고, 가능한한 열린우리당과 거리를 두고 비정치적 영역의 장점만을 내세우면서, 그것도 빈약한 공약을 통해 - 매너 '업계'분야만 찾아보면 교통안전시설 업무편람, 어린이 보호구역 개선사업 편람도 제대로 안 읽어본 사람이 해당 분야 정책 짠 티가 납니다 - 선거운동을 벌이는 양상이 그렇습니다. 열린우리당의 서울특별시장 후보 강금실의 본질은 '괜찮은 여성 서울시장 밀어주자'가 아닌 '본질 호도책'이라는게 제 분석입니다. 그렇다면 개혁을 위해 한나라당과 질적 차이가 있는 열린우리당을 지지한다는게 왜 말이 안되는지를 입증하는게 필요할 겁니다. 이후 논의 전개는 위와 같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누굴 지지해야 하느냐? 여기까지 간섭하고 싶은 생각 없습니다. 단지, 자신이 행사하는 한 표가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알고는 있어야 하지는 않겠습니까.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에 대한 한 표 행사는, 양극화에 대한 지지이자 실질적 평등이 이미 이루어질만큼 이루어지고 이에 기반한 정책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뜻과 다르지 않습니다. 개혁을 위해서, 또는 여성 정치 세력화를 위해서 지지를 한다고 덧붙일 수도 있겠지만 경제적 의미에서는 저 굴레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덧붙여, 매너의 선거 전략이나 간단히 쓰고 글 갈음할렵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투표서 털래털래 걸어가 4번으로 죽 긋고 나올 겁니다. 기권이라는 무책임한 짓을 하긴 싫습니다. 1, 2, 3, 5번 찍지 않는 이유야 위에서 이야기했습니다. NL이 상층부 싹쓸이한 - 국회의원 박탈된 조승수 자격 없다는 유언비어 퍼뜨린 잡것들은 지금 생각해도 이가 갈립니다 - 민주노동당 적극적 지지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입만 열면 정몽준, 발전 타령 떠드는 무소속도 꼴보기 싫은 게 절반, 무엇보다 NL이 민 김창현을 전교조 쪽 몰표를 통해 밀어냈다는게 이유입니다. 전교조 중심으로 NL의 독주를 막고 적절한 견제가 가해질 지는 미지수지만 말이죠. 뭐 노동 귀족의 대변자임을 증명하는 한 표일 뿐이다, 라면 그 비판, 수용하겠습니다. 적어도 이십대 후반의 노동자 정체성과 이익에 가장 가까운 집단에 한 표를 던지는 거니까요.

 

무분별한 비방이 쏟아지지 않는 한. 이 문제에 대해 더 이상의 페이퍼가 올라오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덧붙여_무책임한 매너의 부재를 채워 주신 마태우스님을 비롯한 알라디너님들께 정치/경제적 입장의 차이를 떠난 경의를 표합니다. 동시에, 정확한 지적 없는 선문답성 댓글 올렸다 삭제하신 신지님, 논의에 합류하고 싶으시면 정확한 글로 자신의 주장을 표현하시는게 논리적 오류 따지기 전의 기본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논점 일탈의 오류' 이야기, '메탈이 좋아'이야기 덜렁 지적해놓고 그 이상의 언급이 없이 초등학생 운운하셨더군요. 그러고보니 마태우스님 페이퍼에서 라주미힌님과 매너놈의 나이가 어린 것 같다는 전혀 상관 없는 이야기도 하셨다 지우신 적도 있지요. 왜그러셨을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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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방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그나마' 신경숙을 좋아하는 편이라고 생각해왔다. 어떻게 된 건지(?) 내 주위에는 신경숙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다지 없다. 오히려 '신경숙 류'를 매우 싫어하고 우리 문학을 망친(!) 주범(!!) 중의 하나라고 까지 말씀하시는 선생님(!!!)까지도 있다. (내가 무척 존경하고 좋아하는 선생님^^;)

그럼에도 나는 꽤나 "풍금이 있던 자리"를 좋아하는 독자였다. 사건의 발견(추리 소설 기법)이라든가, 서간체, 반전(?) 등은 꽤나 흥미로웠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뻔한' 것이지만 본격 문학에서, 그것도 연애담(?)에서의 이런 기법은 신선했고, 그래서 유의미했다.

그러나.
신경숙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외딴 방'은 중반까지는 꽤나 독특하고 나를 사로잡았는데, 후반부터는 질질 늘어지면서 소설이 아니라 신경숙이 나타나서 나를 짜증나게 했다. 윤대녕, 박완서, 이청준 등이 떠올랐고 조세희나 방현석이 언뜻언뜻 어른거렸다.

강경애의 <<인간문제>>와 비교해서는 물론 장점이 들어난다. <<인간문제>>를 비롯한 많은 카프나 동반자 작가들의 '투쟁'관련 소설의 단점은 졸속히 처리되는 노동자들의 협력과 투쟁에의 길이다. 실상 이것이 노동 운동의 가장 어려운 단계 중의 하나이고 소설이 세세히 묘사해야만 할 성질의 것이나 카프나 동반자 작가의 작품들은 이 부분에서 리얼리티 확보를 못하고 있다.

이제 완전한 산업화 시대(70년대)의 노동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 1장은 매력적인 문체와 다양한 형식상의 시도와 여러 상징들(백로, 외딴 방 등)로 외롭고 파편화된 '외딴 방'의 여성 노동자들을 들어내주고 있다. 지젝이 디킨슨의 소설 분석을 통해서 노동자들에 대한 작가의 시선을 문제를 지적한 것처럼, 강경애의 <인간문제>에서도 분명 '작가'의 시선으로 '노동자'라는 완벽체에 가까운 인물상들을 서술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한계점들을 신경숙은 어느 정도 극복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박해현과 백낙청 선생이 지적한 것처럼 '교묘한 무공해성'이나 지역감정 배제와 같은 문제들이 있기는 하다. 이 '교묘한 무공해성'은 신경숙의 작품 안에서도 나타나는 조세희의 <<난쏘공>>과 연관해도 흥미롭다. '무공해적' 노동자상이야말로 조세희의 <<난쏘공>>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노동자들의 이기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 73쪽의 이야기는 이의 대표적이다. 물론 노동자를 위해서 투쟁하는 사람들의 면모도 확인할 수 있지만, 이런 인물들은 주변적 인물로 시대적 상황을 전달하고 당시 주인공의 공간을 형성하는 데에만 기여하고 있다. 106쪽에서 노동자들을 균열케 하는 공장 자본가의 지배 원리도 세세하게 나타나 있다.

이런 1장은 엄청나게 매력적이고 신경숙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그러나 2장과 3장에 이르러서 신경숙은 시대 복원에서 과거 16살, 17살, 18살, 19살 '자기'의 복원에만 집중한다. 그 자기는 '사회 속의 자기'라기보 다는 '희재 언니'와의 관계에 있어서의 '자기'에 그칠 뿐이다. 소설은 갑자기 그 장이 엄청나게 수축된다. 그럼에도 2,3장에는 현재 소설가로서의 자기가 자기와 자기 주위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씀으로써 벌어지게 되는 주위 사람들과의 긴장과 갈등, 그리고 글쓰기에 대한 소설가의 자의식을 깊이 있게 표현해서 어느 정도 읽을만 하다. (물론 이는 '문학도'의 입장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4장에 이르르면 신경숙은 '과거' 그것도 '자신의 과거'에 붙들리고 만다. 이 점이 많은 이들이 신경숙을 비판하는 것이다. '자기 이야기' 철저할 정도로 '자기 이야기' 즉 자기를 통해서 사회상을 복원하는 것도 아니고, 철저한 특수성을 이야기함으로써 신경숙은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그나마 문체와 형식도 지루해질 무렵인 '4'장에 와서 말이다. 오히려 이 소설은 4장에서 3,2장 그리고 1장으로 나아가는 것이 훨씬 낫을 것이다. (카프카의 작품처럼 그런 읽기를 시도해 볼까?!)

백로를 보러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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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6-06-08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경애의 몇 작품을 읽고 엄청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어요.
'풍금이 있는 자리'는 강릉 시외버스터미널 주변에 카페가 있더군요.
지날 때마다 한 번 가봐야지, 하고 뒤돌아봐놓고는 못 가봤네요.
그 작품을 꽤 재밌게 읽어서 그랬나 봅니다.^^

기인 2006-06-09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도 신경숙 '풍금이 있는 자리'는 정말 신선했어요 :)
 
 전출처 : 마태우스 > 83번째: 춘천 갔다 오다

 

 

 

 

일시: 7월 16일(토)
누구와: 미녀 둘과
마신 양: 소주 두병 플러스 알파.

미녀 둘과 춘천에 놀러갔다 왔다. 남녀사이는 친구가 될 수 없다는 통념에 정면으로 반하는 우리 셋, 같이 있으면 늘 편하고 좋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서로가 사심이 전혀 없다는 것이고, 또 다른 이유는 서로의 다름을 존중한다는 거다. 한명이 술을 안먹어도 마시라고 강요하는 대신 마시고 싶은 사람만 마시는 게 우리 모임의 미덕이다. 물론 말이 그렇다는 거지, 오늘도 웬만큼은 마셨다. 송어회를 안주로 소주 1병씩을 마시고, 닭갈비집에 가서 소주 한병을 다시 비웠다. 오는 기차 안에서 내내 잤다.


3년 전인가, 어머니, 할머니, 누나 애들을 데리고 춘천에 놀러간 적이 있다. 그때 춘천댐 근처에서 회를 먹었는데, 옆에 시냇물이 흐르는 환상적인 분위기에 그보다 더 환상적인 회, 그리고 맛이 끝내주는 매운탕을 먹으며 소주를 비웠던 기억은 좀처럼 잊혀지질 않았다. 그다음부터 난 누가 어디 놀러가자고 하면 춘천 가자고 노래를 불렀는데, 막상 행동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어언 3년이 걸렸다.


물론 훼방꾼도 있었다. 기차에서 내려 택시를 탄 뒤 춘천댐을 가자고 했다.

기사: 뭐 하시게?

나: 회 먹으러요.

기사: 아이, 그럼 춘천댐보다 소양댐이 낫지!

나: 어, 그래요?

기사: 춘천댐엔 횟집도 별로 없어. 소양댐에 많지!

즉석 회의 끝에 우리는 소양댐으로 방향을 바꿨다. 2만원 가까이 택시비를 들인 끝에 소양댐에 도착, 하지만 왠지 불안했다. 횟집이 하나도 없었다.

나: 횟집은 어디 있어요?

기사: 저기!

아저씨는 그대로 택시를 돌려 도망가 버렸다. 아저씨가 가리킨 곳은 정통 횟집이 아니라 그냥 휴게소 비슷한 곳인데, “회도 팝니다”라고 써있다. 그런 회를 먹으려고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도대체 왜 이런 사지로 우리를 끌고왔담? 겨우 택시를 잡아타 춘천댐으로 갔다.

나: 소양댐에 횟집이 많다고 해서 왔더니, 하나도 없네요.

기사: 아이, 소양댐엔 횟집이 없지! 청평사로 건너가야 몇 개 있는데, 영 부실해. 횟집 하면 역시 춘천댐에 가야 해.


다시 2만원을 들인 끝에 도착한 춘천댐, 그곳은 횟집으로 붐볐다. 기억을 더듬어 3년 전에 갔던 횟집을 찾았다. 아, 그집은 ‘풀장횟집’이란 간판을 내걸고 여전히 성업 중이었다. 3년 전 내가 그랬듯이 같이 간 친구들도 그집의 환상적인 분위기에 “너무 좋다!”를 연발했다. 회는 여전히 맛있었고, 회를 안먹는 친구를 위해 시킨 감자전과 도토리묵은 좀 지나치게 맛이 있었다. 매운탕까지 먹고 난 뒤 냇가에 발을 담군 채 물싸움을 했다.


끝은 좋았지만 난 그 택시기사 아저씨를 이해할 수 없다. 모르면 모른다고 하지 왜 춘천댐에 가려는 사람을 소양댐에 데려다놓고 도망간 걸까. 오늘 모임의 옥의 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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