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동진의 빨간 책방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아니, 아는 것 자체는 그렇게 늦지는 않았는데 직접 들어보기까지가 오래 걸린 것 같다. 한 달에 두번 업데이트 되다가 일주일에 한 번 업데이트 되는 것으로 바뀌었다는데 1년이 총 52주이고 지금까지 100회를 넘겼으니 대략 2년쯤 되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찾아보니 2012년 5월 1일이 첫방송이었다고 한다. 만으로 2년을 넘겼구나, 아니 곧 3년이 되겠구나, 헤아려보니 대단하다. 단순히 길게 끌었다는 게 아니라, 이 방송은 언급된 수많은 책들을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렸고, 심지어 절판이 된 책을 재출간시키는 힘을 보여줬다고. 내가 이 방송을 듣게 된 것은 얼마 전 읽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때문. 지인의 추천으로 이 책을 읽고 한동안 멍한 상태로 있다가 부랴부랴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어떨까, 이 작가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서 검색창에 쳐봤는데 이동진의 빨간 책방이 관련 검색어에 뜨더라. 알고 보니 이 책을 심도 있게 다룬 방송이 있었고, 순전히 책 때문에 한 회 방송을 듣다가 반해 결국 1편부터 정주행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리고 바로 그 첫 회에서 다룬 책이 천명관의 고래. 무려 2000년대 이후 최고의 한국 장편 소설로 정유정 작가의 7년의 밤과 나란히 꼽힌 이 책은, 그 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왠지 선뜻 읽게 되지는 않았던 책을 읽게 만들었다.

 

이 책의 줄거리는 참 요약하기 힘들다. 삼대에 걸친 이야기들, 고래로 상징되는 판타지, 그러나 한국 전쟁과 유신 시대 등 이 땅의 역사를 의미하는 수많은 장치들로 인해서 분명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실화처럼 느껴지는 힘. 누군가는 그를 타고난 이야기꾼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그가 여태까지 우리가 생각하던 소설이라는 것의 영역을 뛰어넘었다고 한다. 솔직히 읽으면서 이런 소설을 접한 적이 별로 없기에 당혹스러웠고 낯설었으며, 그로 인해 약간의 저항감도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어마어마한 이야기가 마치 마르지 않는 샘처럼 퍼도 퍼도 계속 솟아오르는 느낌이고, 그 넘치는 물에 온 몸을 다 흥건히 적시는 느낌이다. 무엇보다도 일단 읽기 시작하면 등장 인물들이 어떻게 될 지, 결말은 어떻게 끝날지 집중하고 몰입하게 만든다. 한 줄로 요약하기가 참 힘든 책이자, 책 전체를 관통하는 문단을 뽑아내기도 힘들다. 다만, 내가 찾은 이 책의 한 부분은 이것이다.

 

춘희는 자신의 인생을 둘러싼 비극을 얼마나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을까? 그녀의 육체는 영원히 벗어던질 수 없는 천형의 유니폼처럼 단지 고통의 뿌리에 지나지 않았을까? 그 거대한 육체 안에 갇힌 그녀의 영혼은 어떤 것이었을까? 사람들이 그녀에게 보여줬던 불평등과 무관심, 적대감과 혐오를 그녀는 얼마만큼 이해하고 있었을까? 혹, 이런 점들에 대해 궁금증을 가진 독자들이 있다면 그들은 모두 이야기꾼이 될 충분한 자질이 있다. 왜냐하면 이야기란 바로 부조리한 인생에 대한 탐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을 설명한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뭔가 불순한 의도를 가진 자들만이 세상을 쉽게 설명하려고 한다. 그들은 한 줄 또는 두 줄로 세상을 정의하고자 한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명제가 그런 것이다.

 

법 앞에서 만인은 평등하다.

 

춘희는 평등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이야기란 바로 부조리한 인생의 탐구, 그것은 절대 간단하게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것에 대해 궁금증을 가진 사람들 중 풍부한 이야기를 가진 사람이 소설가가 될 것이고 작가 또한 그런 사람이겠지, 라고 생각을 잇다 보면 그가 생각하는 소설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노파는 마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홀가분한 표정으로 옆에서 춘희가 먹는 양을 지켜보다 어느샌가 함지를 이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것이 일찍이 남의 집 부엌살이로 떠돌다 딸에게 연인을 빼앗기고 버러지처럼 땅바닥을 기어다니며 지독하게 돈을 모았지만 끝내 한푼도 못 써보고 결국 그 돈 떄문에 목숨까지 잃어 한 많은 생을 마감했지만 수많은 사람들을 불에 타 죽게 함으로써 스스로 복수를 완성한 노파의 마지막 모습니었다.

 

한 노파의 세상에 대한 복수심으로 이 거대한 이야기가 발단 전개 절정 위기를 맞게 되고, 결말에 거의 이르러서 등장한 노파의 모습이 예전과는 다르다는 서술로 노파의 복수도, 이 소설도 종점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춘희의 이야기도 결말에 도달한다.

 

그렇다면 왜 그녀는 벽돌을 굽는 일에 그토록 필사적으로 매달렸을까? 그녀는 그 단조로운 작업을 수도 없이 반복하면서 무슨 생각을 한 걸까? 그 작업 안에 어떤 좋교적 희원이 담겨 있어싸면 그 바람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감동적이리만치 순정하고 치열했던 그 열정의 근원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 진실이란 본시 손안에 쥐는 순간 녹아 없어지는 얼음처럼 사라지기 쉬운 법이다. 그래서 어쩌면 혹, 그 모든 설명과 해석을 유예하는 것만이 진실에 가까워지는 길이 아닐까? 그럼으로써 그녀를 단순하고 정태적인 진술 안에 가둬두지 않고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만이, 또 그럼으로써 그 옛날 남발안의 계곳을 스쳐가던 바람처럼 가볍게 흩어지도록 놓아주는 것만이 진실에 다가가는 길은 아닐까?

 

종점에 다다라서, 그래서 대체 이 작가는 뭘 말하고 싶은 거였을까, 흔히 말하는 소설의 주제, 가 있다면 이 소설의 주제는 그래서 뭐란 말인가? 하고 되묻고 싶어질 무렵, 등장한 이 구절. 손안에 쥐기도 어렵고 금방 사라지고야 마는 것에 대해 구구절절 캐묻고 연구하는 게 아니라 모든 설명과 해석을 유예함으로써 더 큰 감동에 가 닿을 수 있는 게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래비티
알폰소 쿠아론 감독, 조지 클루니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1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타임지가 선정한 올해의 영화.

아바타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극찬한 영화.

 

국내외 수많은 영화 산업 종사자, 평론가, 관객들이 극찬한 바로 그 영화.

 

영화관에서 놓친 게 참 아쉬웠다. DVD로 볼 때 방 안을 완전히 캄캄하게 한 상태에서 모니터만 최대한으로 크게 키우고 보기는 했지만, 내가 직접 우주에서 표류하는 것 같은 체험을 하는 것은 영화관에서 직접 보지 않고는 불가능할 테니까.

 

대략 영화관에서 보면 압도되지 않을까, 짐작은 갔다. 만약 그랬다면 정말 나도 이 영화를 보고 한 평론가처럼 별 다섯개를 주었을지도 모르지.

 

영화의 구성은 간단하다. 우주 비행사들이 사고로 표류하게 되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산드라 블록이 지구로 귀환하는 과정. 아름답고 평화로운 우주 공간에서 너무도 무력하게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고요해서 편안하게 느껴지던 우주 공간의 적막함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집어삼킬 정도로 침묵만이 가득한 공간으로 전환되는 순간, 형언할 수 없는 공포가 밀려온다.

 

이 영화는 딱 보아도 제작비가 많이 들었을 것 같지는 않다. 비중있게 등장하는 인물도 단 두 명이며, 아마도 우주 공간 세트를 정교하게 짓는 데에만 제작비를 쏟으면 되었을 테니 마지막 장면만 제외하면 모든 장면이 실내에서 촬영되었을 테니까.

 

이런 저런 매력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과학적으로는 맞지 않는 부분이 몇 개 있는 것 같다. 그런 점들 떄문인지, 아니면 지극히 단순한 구성 떄문인지, 그도 아니면 짧은 러닝 타임 떄문인지, 나는 별 세 개 반, 그 이상을 주지는 못할 것 같다. 아마도 영화관에서 봤으면 별 네 개까지는 줬겠지만, 그래도 별 다섯 개까지는 아닌 것 같다.

 

영화관이 아니라 DVD로 보면서 좋았던 점 하나는, 영화 속에서 잠깐 동안 산드라 블록이 지구의 누군가와 통신을 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그 부분이 별도의 짧은 단편 영화로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아들이 이 영화의 각본을 썼고, 그 단편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창의력 또한 유전되는 것일까. 아이디어가 참 흥미로웠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장소] 2015-03-05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딸이 보고 몇번이나 언급한 영화입니다.
저는 아직 못본.. 이 기회에 한번 봐야겠군요.

마고할미 2015-03-06 01:39   좋아요 1 | URL
이 영화는 영화관에서 보는 것과 DVD로 보는 게 어마어마한 차이가 날 것 같습니다. 영화관에서 놓친 게 굉장히 아쉬웠던 영화였습니다.

[그장소] 2015-03-06 0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그럴테죠..그런데 미술관은 괜찮은데..영화관은 싫어요.
이제 못가겠어요.
ㅎㅎㅎ 모르죠..어느날 훌쩍 다시 자연스레 가게될런지.. 지금으론.. 그 공간이 싫으네요..아무리 압도적인 영상이 필요하다고 해도...

죄송합니다...돌연스럽죠.
느닷없이..내미는 이런 대답이요.
제 기억이 아직 거부 상태..뭐..그런가봐요.
영화는 보는데 영화관은 싫다는..몹쓸 반응에..저도 어쩔줄 모르겠어요. ^^;
한참을 영화자체도 멀리했으니..지금은
좀 좋아지고 있는 거라 봐도 될거예요..
실례가..컸습니다..정말..죄송해요.

Andrea님 말씀엔 전적으로 동감 합니다.
저..문제는 지극히 개인적인 제 문제이고요..^^

마고할미 2015-03-06 23:24   좋아요 1 | URL
소설가 김훈 선생이 씨네 21과 한 인터뷰를 보면요, 제일 싫어하는 게 영화라고 하셨습니다. 영화보다도 영화관이라는 공간이 싫다면서 들어가면 컴컴한데 수백 명이 앉아서 이놈 저놈 냄새 막 나고 그런 공간을 문 열고 들어가는게 불가능하다고요. 영화 잡지와 한 인터뷰에서 그런 말씀을 하신 게 참 재미있다고 생각했는데 또 재미있는 것이 그분의 따님이 영화 제작자이십니다. 댓글 보니 그 인터뷰가 생각이 나서 달아봤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그장소] 2015-03-06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답답해요..멀티플렉스 관이 되면서..
사운드가 더 생생해지면서..어쩐지..엄청 싫어졌어요.
고래 뱃속에 들어가도 이것 보단 나을 거란.. 심정이 되곤 해요.
오버사운드가..압도하는 ..그 울림.
공해에 가까워요..제게는요.
좀 여유있는 게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해도.. 그게 좋아요.영화가 싫진 않아요.
3D에 그런 걸 좋아하지 않을..뿐..ㅎㅎㅎ
 
빛이 있는 동안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1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남주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꿈의 집

몰락한 지주 집안 출신의 존 시그레이브.

회사 사장의 딸의 친구와의 만남을 전후로 아름다운 하얀 집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하는데...

 

여배우

성공적인 여배우 올가 스토머. 낸시 테일러라는 그녀의 과거를 알고 있는 제이크 레빗이 접근하고 올가는 최고의 연기를 위한 무대를 준비하는데...

 

칼날

제럴드를 오랫동안 짝사랑했던 클레어. 제럴드의 아내 비비안의 비밀을 알게 되지만 그 사실을 발설하지 않으면서 누군가를 지배하는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호텔에 가명을 기입하고 머무른 행위가 이 소설의 여주인공에 그치지 않고, 이 작품 발표 직후 실종된 작가의 실제 상황이었다는 점에서 아직까지도 이런 저런 추측만 무성하다.

 

크리스마스 모험

탐정 푸와로와 함께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보낸 젊은이들의 해피엔딩 푸딩 스토리.

 

외로운 신

대영박물관의 외로운 꼬마 신. 파파 할아버지와 파리의 님프의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재회.

 

맨 섬의 황금

맨 섬의 관광 진흥을 위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 소설은 탄생하였다. 전설처럼 내려오는 맨 섬의 밀수업자들의 전리품에 대한 전설들을 근거로 보물찾기 행사가 기획되고, 섬 어딘가에 보물을 감춰두고 그 위치를 알려주는 단서들을 추리 소설에 등장시키는 것이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자신에 명성에는 턱없이 부족한 60파운드의 수고비를 받고 여러 날 동안 섬에서 묵으며 이 소설을 완성시킨다. 5회에 걸쳐 디스패치라는 신문에 연재되는 이 소설은, 밀수로 큰 돈을 번 삼촌의 유산을 찾기 위해 4명의 친척들이 돌아가신 삼촌이 남겨놓은 단서를 따라서 이른바 보물찾기를 하게 되는 내용이다. 소설 속에서는 황금으로 가득 찬 네 개의 궤짝은 실제에서는 서명된 서류가 들어있는 코담뱃갑 네 개였으며, 그것을 시청으로 가지고 오면 백 파운드(오늘날의 가치로는 약 3천 파운드)의 상금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우리 돈으로 약 5백만원 정도인데, 실제로 이 보물찾기가 관광 증진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미지수였다고 하며, 이런 류의 행사는 다시는 열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소설은 후에 애거서 크리스티의 다른 작품에서 변주되고 발전되어 나타나는 것 같다. 이런 프로젝트 자체도 참 흥미롭지만, 기꺼이 참여한 크리스티도 재미있다.

 

벽 속에서

사교계 유명 인사였던 이소벨 로링. 가난한 젊은 화가인 앨런 에버러드. 두 사람의 결혼 후 태어난 딸 위니의 대모 제인 하워드. <우유처럼 하얀 벽 속, 비단처럼 부드러운 커튼 속, 수정처럼 맑은 바다 속에 잠긴 금빛 사과 하나.> 삼각관계와 예술에 대하여.

 

바그다드 궤짝의 수수께끼

푸와로가 인정한 완벽한 살인. <모두가 방 안에 있었다> 아름다운 여자. 그녀의 남편. 비밀스러운 애인이자 남편의 친구. 그리고 또 다른 남편의 친구의 비밀.

 

빛이 있는 동안

전쟁 중 사망한 남편 팀 뉴전트. 그의 아내 디어드리. 예전부터 자신을 흠모하던 조지 크로우저와 재혼한 디어드리 앞에 다시 나타난 팀. 과연 디어드리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남자가 사랑할때 (When A Man Loves A Woman)
브에나비스타 / 2000년 7월
평점 :
품절


지금은 세상을 떠난 한 여배우가 생전에 한 인터뷰에서 이 영화를 언급했던 기억이 있다.

 

'남자가 사랑할 때'의 알콜 중독자를 연기하던 멕 라이언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고. 그러고 보니 그 여배우도 한국의 멕 라이언이라고 할 수 있는 여배우였다.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생전에 그 깜찍하던 모습, 그리고 전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것도 멕 라이언과 흡사하다. 최근 그녀가 출연했던 영화의 리메이크 작을 보았는데 그녀가 출연했던 20년 전 보다 훨씬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나 보다. 그 영화의 네티즌 평점을 보면 그녀가 그리웠다는 평이 많았으니까.

 

그래서 궁금했다. 그녀가 이 영화의 어떤 점에 끌렸을까, 하고.

 

멕 라이언과 앤디 가르시아. 선남 선녀이자 한 때 미국의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을 배우들이다. 두 사람이 부부로 나오고, 알콜 중독으로 고생하던 아내가 큰딸에게 손찌검을 하자, 결국 부부는 치료원에 가서 치료하기로 결정한다. 문제는 그 다음, 치료 기간이 끝나고 돌아온 아내가 집과 남편에 적응하지 못하며 부부는 별거에 들어간다.

 

영화 중반까지는 멕 라이언의 모습이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것 같아서 참고 보기가 힘들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런 인간형을 너무나 싫어하는데, 혼자 온갖 상처를 받았다고 징징대며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하는 캐릭터가 견디기 어렵다. 치료가 끝나고 돌아온 후 영화는 약간 방향을 달리한다. 일방적인 남편의 행동, 매사 아내를 존중하기보다는 자기 방식대로 밀어붙이는 남편의 모습, 그리고 자신이 필요 없다고 느껴지면서 외로워하는 아내의 모습이 보여지며 대체 이 영화의 제목이 왜 '남자가 사랑할 때'인지가 의심스러웠다. 대체 이 남자는 사랑을 하고 있는 게 맞기나 한지, 사랑이 뭔지 알기나 하는지. 내가 만약 그런 취급을 받았다면 집을 뛰쳐나가지 않았을까, 부부가 대등한 관계가 아니라 일방적으로 한쪽이 베풀기만 하는 관계라면, 대체 그 관계는 뭐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여기서 또 한 번 이야기의 흐름이 바뀐다. 아내는 집으로 돌아온 후 성공적으로 금주를 이어가고 별거 기간 동안 자신이 없이도 잘 살아가고 있는 아내를 보며 남편은 내가 아내에게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며 괴로워한다. 알콜 중독자의 가족 모임을 비웃던 남편은 몇 달 만에 모임에 나가 괴로움을 토로한다. 그 장면을 보면서, 아, 영화는 결국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구나, 하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내의 외로움을 남편이 비슷하게 느끼면서 아마 둘은 서로를 이해하게 되지 않았을까. 결국 가장 좋은 부부 관계의 해법은 솔직한 대화, 상호 존중, 그리고 쓸데 없는 자존심 버리기, 라는 결론을 내리며 영화는 끝난다.

 

영화를 보다 보면 아내가 한심하게 느껴지다가, 다시 아내에게 감정 이입을 하며 남편이 미워졌다가, 다시 남편이 불쌍하게 느껴지는 과정을 반복하게 된다. 아내를 사랑하면서도 사랑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 남편, 알콜 중독인 아내와 아내의 전남편 사이의 딸까지 돌보면서 감정적인 소모가 어마어마했을 텐데, 거기까지 생각해보니 남편 또한 안쓰러웠다. 가장 가까운 이에게 이해받지 못한다는 생각을 계속하고 있었던 아내는 말할 것도 없고. 결국 부부는 서로 가장 아픈 모습을 보이며, 서로를 불쌍히 여기며, 감싸주며, 그렇게 살아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봤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가 보낸 순간 : 시 - 날마다 읽고 쓴다는 것 우리가 보낸 순간
김연수 지음 / 마음산책 / 201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0초 안에 시를 잘 쓰는 방법에 대해서(비록 제가 시인은 아니지만) 가르쳐 드리죠. 먼저 주제를 정하세요. 사랑도 좋고, 눈물도 좋고, 이별도 좋아요. 고등어도 좋고 햄버거도 좋고 샐비어도 좋아요. 우린 어떤 것이든 시로 쓸 수 있으니까 그런 걱정은 하지 마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비록 제가 시인은 아니지만). 그 다음에는 그것에 대해서 쓰세요. 고등어를 먹는 저녁은 행복하다고 쓰세요. 그런 것도 시라는 걸 말씀드립니다(비록 제가 시인은 아니지만). 하지만 그 다음 줄에는 이렇게 쓰세요. "그게 아니라면" 방금 쓴 문장 말고 다르게 고등어에 대해서 써보세요. 그게 무엇이든 썼다면 그 밑에 다시 이렇게 쓰세요. "그게 아니라면" 다르게 계속 고등어에 대해서 쓰는 일, 그게 바로 시랍니다.

 

어린 시절, 고향의 거리 풍경을 떠올리면 제일 먼저 줄지어 서 있던 가로수들이 생각납니다. 김천역에서 옛 시청이 있던 자리까지는 은행나무를, 그 너머로 아랫장터까지는 히말라야시다를 심어놓았죠. 그 길은 완만한 오르막길이었죠. 오르막을 다 오르면 학교가 나왔습니다. 학교 앞에 서면 마치 국경에 선 것처럼 히말라야시다들이 서 있는 풍경이 보였습니다. 그 히말라야시다들 위로 사람의 얼굴을 닮은 금오산이 멀리 보였는데, 그래서 그건 마치 큰바위얼굴을 연상시켰는데, 어린 내게 어떤 포부가 있었다면 아마도 바로 그 순간에 생겼을 겁니다.

 

매년 시월이 되면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는 <기적의 주님> 축제가 벌어집니다. 이 축제는 식민지 시절 앙골라에서 끌려온 한 노예가 리마 근처 파차카밀리아 대농장의 오두막 벽에 그린 그리스도 그림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리마에 가서 행렬의 맨 앞에서 사람들을 이끌며 행진하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본다면, 깜짝 놀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건 검은 그리스도거든요. 아프리카에서 끌려 온 노예들에게 하느님은 어떤 경우든 흑인일 수밖에 없는 것이니까요.

 

기자가 "닌텐도의 경쟁 상대는 누구입니까?"라고 묻자, 코다 사장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게임에 대한 무관심입니다." 대단한 자신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청춘의 가장 큰 고민 역시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청춘에 대한 무관심.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봐도 누구 하나 그들을 지켜보는 사람은 없으며, 젊을 때는 젊음을 모른다더니 심지어는 자신마저도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외국을 돌아다니다 보면 불현듯 과거 속으로 들어간 듯한 기분이 들어서 깜짝 놀랄 떄가 있어요. 언젠가 필리핀의 마닐라 뒷골목을 지나가는데 제가 대여섯 살 무렵의 어느 여름밤, 우리 동네로 되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구요. 포르투갈의 리스본 거리를 걸어가다가 우연히 들여다본 제과점 속의 모습은 어린 시절 우리 집 뉴욕제과점과 거의 비슷했어요. 언젠가 연해주에서 차를 타고 가다가 올려다본 밤하늘은 일곱 살 떄의 밤하늘 그대로였구요. 그런 식으로 이 지구 어딘가에, 아니 어쩌면 이 우주 어딘가에 제가 살아온 삶이 그대로 저장된 것은 아닐까요? 별이 뜨는 것을 볼 떄마다 세상은 조금씩 바뀌었지만, 그럼에도 모든 게 가뭇없이 사라진 것만은 아니지 않을까요? 그래서 지구란 이토록 크고, 우주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광활한 게 아닐까요? 인류의 기억 전부를 보존하기 위해서.

 

이 책에 실린 시들은 2009년 11월부터 2010년 11월까지 13개월 동안 내가 읽은 것들이다. <한국일보>에서 처음 청탁을 받았을 때는 고사할 생각이었다. 시를 제대로 읽지 않은 지 오래됐기 때문에 아무래도 내가 시를 제대로 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엇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번 해보겠다고 말했다. 그 무모한 자신감은 전적으로 그저 좋아서 매 순간 시를 노트에 적던 이십대 초반의 서너 해 덕분이었다. 그 시간들은 잘해봐야 시인으로 등단해서 시집 한 권을 낼 수 있을 뿐, 아무런 생산성이 없는 전적으로 무용한 시간으로 느껴졌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결과적이지만 어쩌면 그로부터 십몇 년이 지나서 13개월 동안 시를 읽기 위해서 보낸 시간인지도 몰랐다. 그래서 이제 와서는 좋아서 읽는 그 모든 책들은 무용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겠다. 우리가 지금 좋아서 읽는 이 책들은 현재의 책이 아니라 미래의 책이다. 우리가 읽는 문장들은 미래의 우리에게 영향을 끼친다. 그러니까 지금 읽는 이 문장이 당신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아름다운 문장을 읽으면 당신은 어쩔 수 없이 아름다운 사람이 된다.'

시를 읽는 동안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무용한 사람이 된다. 시를 읽는 일의 쓸모를 찾기란 무척 힘들기 때문이다. 아무런 목적 없이 날마다 시를 찾아서 읽으며 날마다 우리는 무용한 사람이 될 것이다. 하루 24시간 중에서 최소한 1시간은 무용해질 수 있다. 아무런 이유가 없는데도 뭔가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걸 순수한 존재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