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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평점 :
이동진의 빨간 책방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아니, 아는 것 자체는 그렇게 늦지는 않았는데 직접 들어보기까지가 오래 걸린 것 같다. 한 달에 두번 업데이트 되다가 일주일에 한 번 업데이트 되는 것으로 바뀌었다는데 1년이 총 52주이고 지금까지 100회를 넘겼으니 대략 2년쯤 되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찾아보니 2012년 5월 1일이 첫방송이었다고 한다. 만으로 2년을 넘겼구나, 아니 곧 3년이 되겠구나, 헤아려보니 대단하다. 단순히 길게 끌었다는 게 아니라, 이 방송은 언급된 수많은 책들을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렸고, 심지어 절판이 된 책을 재출간시키는 힘을 보여줬다고. 내가 이 방송을 듣게 된 것은 얼마 전 읽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때문. 지인의 추천으로 이 책을 읽고 한동안 멍한 상태로 있다가 부랴부랴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어떨까, 이 작가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서 검색창에 쳐봤는데 이동진의 빨간 책방이 관련 검색어에 뜨더라. 알고 보니 이 책을 심도 있게 다룬 방송이 있었고, 순전히 책 때문에 한 회 방송을 듣다가 반해 결국 1편부터 정주행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리고 바로 그 첫 회에서 다룬 책이 천명관의 고래. 무려 2000년대 이후 최고의 한국 장편 소설로 정유정 작가의 7년의 밤과 나란히 꼽힌 이 책은, 그 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왠지 선뜻 읽게 되지는 않았던 책을 읽게 만들었다.
이 책의 줄거리는 참 요약하기 힘들다. 삼대에 걸친 이야기들, 고래로 상징되는 판타지, 그러나 한국 전쟁과 유신 시대 등 이 땅의 역사를 의미하는 수많은 장치들로 인해서 분명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실화처럼 느껴지는 힘. 누군가는 그를 타고난 이야기꾼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그가 여태까지 우리가 생각하던 소설이라는 것의 영역을 뛰어넘었다고 한다. 솔직히 읽으면서 이런 소설을 접한 적이 별로 없기에 당혹스러웠고 낯설었으며, 그로 인해 약간의 저항감도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어마어마한 이야기가 마치 마르지 않는 샘처럼 퍼도 퍼도 계속 솟아오르는 느낌이고, 그 넘치는 물에 온 몸을 다 흥건히 적시는 느낌이다. 무엇보다도 일단 읽기 시작하면 등장 인물들이 어떻게 될 지, 결말은 어떻게 끝날지 집중하고 몰입하게 만든다. 한 줄로 요약하기가 참 힘든 책이자, 책 전체를 관통하는 문단을 뽑아내기도 힘들다. 다만, 내가 찾은 이 책의 한 부분은 이것이다.
춘희는 자신의 인생을 둘러싼 비극을 얼마나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을까? 그녀의 육체는 영원히 벗어던질 수 없는 천형의 유니폼처럼 단지 고통의 뿌리에 지나지 않았을까? 그 거대한 육체 안에 갇힌 그녀의 영혼은 어떤 것이었을까? 사람들이 그녀에게 보여줬던 불평등과 무관심, 적대감과 혐오를 그녀는 얼마만큼 이해하고 있었을까? 혹, 이런 점들에 대해 궁금증을 가진 독자들이 있다면 그들은 모두 이야기꾼이 될 충분한 자질이 있다. 왜냐하면 이야기란 바로 부조리한 인생에 대한 탐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을 설명한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뭔가 불순한 의도를 가진 자들만이 세상을 쉽게 설명하려고 한다. 그들은 한 줄 또는 두 줄로 세상을 정의하고자 한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명제가 그런 것이다.
법 앞에서 만인은 평등하다.
춘희는 평등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이야기란 바로 부조리한 인생의 탐구, 그것은 절대 간단하게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것에 대해 궁금증을 가진 사람들 중 풍부한 이야기를 가진 사람이 소설가가 될 것이고 작가 또한 그런 사람이겠지, 라고 생각을 잇다 보면 그가 생각하는 소설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노파는 마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홀가분한 표정으로 옆에서 춘희가 먹는 양을 지켜보다 어느샌가 함지를 이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것이 일찍이 남의 집 부엌살이로 떠돌다 딸에게 연인을 빼앗기고 버러지처럼 땅바닥을 기어다니며 지독하게 돈을 모았지만 끝내 한푼도 못 써보고 결국 그 돈 떄문에 목숨까지 잃어 한 많은 생을 마감했지만 수많은 사람들을 불에 타 죽게 함으로써 스스로 복수를 완성한 노파의 마지막 모습니었다.
한 노파의 세상에 대한 복수심으로 이 거대한 이야기가 발단 전개 절정 위기를 맞게 되고, 결말에 거의 이르러서 등장한 노파의 모습이 예전과는 다르다는 서술로 노파의 복수도, 이 소설도 종점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춘희의 이야기도 결말에 도달한다.
그렇다면 왜 그녀는 벽돌을 굽는 일에 그토록 필사적으로 매달렸을까? 그녀는 그 단조로운 작업을 수도 없이 반복하면서 무슨 생각을 한 걸까? 그 작업 안에 어떤 좋교적 희원이 담겨 있어싸면 그 바람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감동적이리만치 순정하고 치열했던 그 열정의 근원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 진실이란 본시 손안에 쥐는 순간 녹아 없어지는 얼음처럼 사라지기 쉬운 법이다. 그래서 어쩌면 혹, 그 모든 설명과 해석을 유예하는 것만이 진실에 가까워지는 길이 아닐까? 그럼으로써 그녀를 단순하고 정태적인 진술 안에 가둬두지 않고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만이, 또 그럼으로써 그 옛날 남발안의 계곳을 스쳐가던 바람처럼 가볍게 흩어지도록 놓아주는 것만이 진실에 다가가는 길은 아닐까?
종점에 다다라서, 그래서 대체 이 작가는 뭘 말하고 싶은 거였을까, 흔히 말하는 소설의 주제, 가 있다면 이 소설의 주제는 그래서 뭐란 말인가? 하고 되묻고 싶어질 무렵, 등장한 이 구절. 손안에 쥐기도 어렵고 금방 사라지고야 마는 것에 대해 구구절절 캐묻고 연구하는 게 아니라 모든 설명과 해석을 유예함으로써 더 큰 감동에 가 닿을 수 있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