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어른이 되었습니다 - 마스다 미리 산문집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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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을 넣지 않는 날, 이 것 무척 공감갔다.

 

정신없는 일정으로 이어지는 날들 속에 여유롭게 생각할 시간이 없어서 불안해졌고, 그래서 일정을 넣지 않는 날을 미리 일정에 넣어두기로 했다고. 일주일 중 이틀은 집에서 자리잡고 앉아 일을 하거나, 멍하니 있거나, 책을 읽는 날로 하자는 것. 아, 이거 정마 좋은 아이디어다. 물론 프리랜서이고 부양가족이 없어서 가능한 이야기겠지만, 거침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 혼자서 낑낑대는 시간을 어느 정도 확보해둔다는 것은 사실 대단한 일이다. 달력에 미리 적어두고, 저자처럼 '그날은 약속이 있다'며 다른 날을 잡게 된다는 것. 실제로 이 날만큼은 쉬어야지, 했다가 마음대로 안 된 적이 많다. 아직 젊고 밖에서 새로운 것을 하고 사람 만나기 좋아하는 내가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어쩌면 지금 바로 이 순간, 온전히 나만의 생각에 잠길 수 있는 찰나의 시간조차도 사치처럼 느껴지는 나의 요즘 모습 때문에 지쳐서이기도 하겠다.

 

나이 먹는 이야기, 이 것도 이 책에서 처음으로 알게 된 부분인데, '작년에 입었던 옷이 갑자기 안 어울리게 되었다', '요즘은 등에 살이 찌기 시작했다', '갑자기 흰머리가 늘었다' 이런 이야기들을 만날 때마다 의외로 즐겁게 하고 있다고. 그 이유는 새로 나온 장난감을 손에 넣은 아이처럼 이제 젊은이가 아닌 '새로운 자신'을 얘기하며 노는 것이라고. 나이 들어가는 자신이 새로워서라고. 나만의 편견이었을까, 이런 이야기를 하는 어른들이 한탄을 하거나 좌절하는 게 아니라 정말 재미있어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어쩌면 이 작가만의 여유일지도.

 

책 제목이 어느 날 문득 어른이 되었습니다, 이다. 43세의 작가는 일본에서 3~40대 여자들의 일상을 만화로 그리거나, 에세이로 쓰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처음에는 이렇게나 나이가 많은(죄송!) 여성이 마치 소녀처럼 상처를 받거나 기뻐하는 모습이 생소했다. 이미 다 큰 어른인데 무슨 어느 날 문득 어른이 되었다는 것인지도 이해가 되지 않았고. 대놓고 이야기는 못하겠지만, 결혼하고 자식을 낳지 않으면 남자든, 여자든, 어른이 되지 못한다는데 그런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그런데 책을 읽기 바로 얼마 전에, 이미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는 여자 개그우먼이 소소하게 예쁜 메모지나, 스티커를 사며 아주 작게 남아 있는 소녀감성을 되살린다는 예능 프로그램을 봤다. 결혼했고, 아이도 있고, 심지어 본인 스스로 살고 있는 집의 대출을 갚아나가야 하는 생계형 개그우먼이라고 하고, 남들을 웃기고 무대에 서기 위해 때로는 뻔뻔해져야 하는 개그우먼에게서 의외로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철이 없는 사람은 아니었고, 열심히 자신과 일과 가족에 충실하는 워킹맘. 아마도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고 철없는 남편에 대한 고민을 토로하는 가운데에서도 표정만은 밝았던 이유는 그 때문이 아닐까. 나이가 적든 많든, 결혼을 했든 혼자 살든, 자식이 있든 없든, 남자든 여자든 간에 소년 소녀 감성을 간직하는 것은 어쩌면 버거운 사회 생활을 해 나가는데 최소한의 환풍구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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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
법정(法頂) 지음 / 문학의숲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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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문을 연 가게는 다음 달에는 다른 가게로 바뀔 수 있고, 올해에 준공식을 한 건물은 몇십 년 뒤에는 흔적조차 없을 수 있습니다. 시간이 더 오래 걸리기는 하지만 별들조차도 빛을 잃고 붕괴됩니다. 이것이 현상의 무상함의 진리입니다. 사랑 역시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미움도 영원하지 않으며, 불행한 기분과 행복한 감정도 오래가지 않습니다. 이것이 마음의 무상함의 진립입니다.

몸이 아플 때 '이건 아니야.'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무엇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몸이 나아져 갈 때 "그래, 이거야."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살아 있는 한 조만간 또다시 아플 일이 있을 것입니다. 등이 결리고 허리가 쑤실 것입니다. 행복에 매달리지 말고, 불행을 피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다만 맑은 정신으로 지켜보십시오. 행복은 행복이고, 불행은 불행일 뿐입니다. 그것에 좋고 나쁨을 대입할 때 고통과 불만족이 시작됩니다. 그것은 나쁜 습관입니다. 그것들에 얽매이지 말고 다만 지켜보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인디언들은 누군가에게 선물을 줄 때, 전혀 생색내지 않고 상대방의 눈에 띄는 곳에 말없이 놓아두고 간다고 합니다. 무슨 뜻을 달거나 이유를 붙여서 선물을 전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불교적인 표현을 빌리면 '무주상보시'입니다. 베푼다는 생각 없이 베푸는 것입니다.

 

우리가 불행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현재 행복하지 못하고 불행한 것은 아직 오지도 않은 불확실한 미래 때문입니다. 이런 걱정 근심을 가불해 쓰면서 잠을 이루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라는 시간이 소멸되고 없습니다.

 날마다 다른 사람과 무엇이든 나누라.

 혼자인 경우에는 누구에겐가 편지를 쓰거나 전화라도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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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선현경의 일일일락
황인숙 글, 선현경 그림 / 마음산책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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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요법이 신앙치료나 정신의학보다 중요하다. 기술을 습득하게 되면 그 기술 자체가 쓸모없는 것이라고 해도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삶의 의미도 형식도 잃고 살아가는 사람들, 가령 노숙자에 대한 에릭 호퍼의 처방이다. 기술이란 뭔가를 고치거나 만드는 재주다. 그러니까 삶의 기반이 되는 물질세계에 가장 쓸모 있는 재주다. 설사 별 쓸모없더라도 어떤 기술이 있다는 것은 머리와 손끝이 팽팽하게 소통하고 있다는 건데, 그건 생명감을 자극한다.

내게도 뭔가 기술이 있으면 좋겠다. 재미있고 너무 고되지도 않고 위험하지도 않은 기술, 뭐 없을까? 알량하나마 내가 가진 유일한 기술, 기술記述하는 기술技術이 그렇긴 하지만 다른 진짜 기술 말이다. 바지런히 몸을 움직이면 돈벌이도 되는 양재, 미용, 요리, 제과, 도배, 스포츠 마사지 등등 소프트한 기술. 그런게 그런 기술양성 학원들은 왜 하나같이 곧 사라질 듯한 모습으로 이런저런 상가 건물에 숨어 있는 걸까?

그곳에서 습득한 기술로 영세 자영업자가 된 사람들이 홀연히 모여들어 파트릭 모디아노 소설의 배경같은 상가를 이룬다.

-> 짧은 글에 소중한 내용이 가득하다. 에릭 호퍼의 처방도 그렇고,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도읽어보고 싶다. 무엇보다 재미있으면서 고되지도 위험하지도 않은 소프트한 기술에 대한 로망은 나도 있었기에 공감이 갔다.

 

1년여 틈틈이 전화통화를 시도하다 지쳐서 더 이상은 전화를 걸지 않게 된 친구가 있다. 그녀와 친하게 어울리던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문득 생각나 전화를 했는데 통화가 됐다. 너무 기뻤으나, 그녀는 남편과 모처럼 외식 중이라며 오기를 거절했다. 그전 같았으면 마주 반기며 남편과 함께 나중에라도 합류했을 것이다.

그것이 유일한 통화였다. 생각해보니 그때도 내가 다른 사람의 휴대폰을 이용해서 나인 줄 모르고 전화를 받았던 것 같다. 아무래도 내가 그녀 인생에서 퇴출된 모양이다. 나도 그녀를 좋아했지만 그녀도 내게 과분할 정도의 호감을 가졌었다. 그 호감을 지키지 못한 게 씁쓸하다.

우리가 따르는 한 어른이 명륜동으로 이사를 했을 때였다. 그 집들이 연락책을 맡아 그녀에게도 연락했는데 오기로 하고 오지 않았다. 그 며칠 후 웬일인지 궁금해서 다시 전화했다. 그녀는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시무룩이 "근데 무슨 일이라구요?" 물었다. 순간 벌컥 화를 내며 전화를 거칠게 끊어 버렸다. 다른 일은 머리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큰일이 그녀에게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건 그녀의 마음이 굳게 닫힌 뒤다.

-> 짧은 이 전문의 제목은 퇴출이다. 인간관계에서는 퇴출당하는 쪽보다 퇴출하는 쪽이 더 가슴아픈 게 아닌가 싶다. 단순히 회피나 불편함 정도로 설명 되지 않는다. 나 또한 실제로 누군가를 내 인생에서 퇴출시켰던 경험이 있기는 있었다. 그 때의 가슴앓이를 생각하면 근거없이 마음이 아파져서 되도록 떠올리지 않으려고 한다. 또 그 경험을 겪고 나서, 누군가가 나에 대해 소극적이라면, 억지로 적극적이 되려고 하지 않는 습관이 생겼다. 나또한 부족한 인간이기에, 상대가 나를 로그아웃했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되어서다.

 

 

체제도 관습도, 부모도 형제도 이웃도, 아무것도 거스르지 않고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며 착실히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 덕분에 이 세상이 별일 없이 굴러간다. 그들이 농사를 짓고 장사를 하고 집을 고치고 물건을 만들고 청소를 하고, 밥을 짓고 아이를 키우며 '별 볼일 없는' 인새을 거부하지 않은 덕분에 혁명가도 반하아도 예술가도 히피도 태어나고 살아갈 수 있다. 삶의 엄연한 쳇바퀴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들은 그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그들. 그들이라고 나는 말한다. '우리'가 아니고. 그건 내 인생이 별 볼일 있어서가 아니다. 그저 내가 세상의 장남 장녀들에게 얹혀사는 족속이라는 걸 알 따름이다. 그 같은 족속인 우리가 등 대고 다리를 뻗던 듬직한 존재가, 어느 날 문득 자기의 인생을 별 볼일 없다 비하하며 뼈저려 하는 걸 보는 일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착잡하다.

->일본 영화 '유레루'를 보고 작가가 느낀 점. 아, 정말 내 가슴을 친다.

 

 

지금은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이 제법 체화돼 만사 덤덤한 편이지만 예전에는 나도 기가 죽거나 비탄에 빠지던 순간들이 있었다. 생각해보니 대개 '생애주기'가 걸림돌이었던 것 같다. 학업 적령기에 놀고 있던 것, 내 나이 평균보다 항상 가난했던 것, 꽃다운 청춘시절을 고치 속에서 보내고 훌쩍 장년에 접어든 것 등등.

동갑내기 남자인 한 친구가 장가간다는 말을 들었던 날이 생각난다. 그때 나는 삽십 대 초반이었다. 그와 연애를 한 것도 아니고 자주 만난 것도 아니고, 그저 보면 반가운 친구였을 뿐인데, 기분이 무지 이상했다. 마치 한밤에 숨바꼭질을 하다가 마지막 술래가 된 듯했다. 다들 집에 들어가 잠이 들었는데 혼자 남아 두리번거리는.

-> 이 느낌을 나도 느꼈었고, 내 주변 친구들도 느끼고 있다. 혼자만 뒤쳐지는 그 느낌을 숨바꼭질하다가 마지막 술래가 된 경우에 비교하다니! 한밤중에 혼자 남았구나, 하는 그 두려움, 절실히 다가온다. 여기에서 말하는 생애주기는 내가 흔히 알고 있는 생애주기와는 사뭇 다른 개념인가보다. 어쩌면 개념은 하나인데 잘못 인용해서 쓰이는 것 같기도 하고.

 

 

 

그날 저녁, 루비처럼 예쁜 핏방울 모양의 배지를 아버지께 수줍게 보여드리며 헌헐을 자랑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버럭 화를 내셨다! 칭찬은 못하실 망정 헌혈했다고 야단을 치다니. 실망했지만, 자식이 자해한 꼴을 본 것 같았을 아버지 심정을 알 듯도 했다.

-> 나이가 들면 자식을 낳지 않아도 부모 심정을 이해하게 되는 걸까? 아니면 특별히 시인이라 상대를 이해할 수 있을 만큼 감수성이 풍부해서 그런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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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말했다 : 우리를 닮은 그녀의 이야기
김성원 지음, 김효정 사진 / 인디고(글담)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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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상하기도 하다.

처음 내가 이 책을 샀을 때는 꽤나 가슴이 두근거렸던 것 같기도 한데,

한 장 한 장 넘겨 가며 단어 하나에 떨렸고

오랫동안 사진을 바라보며 가슴 뭉클했던 것 같기도 한데,

꽂아 놓아도 예쁘고 꺼내어 놓아두어도 예쁘고

어느 장을 펼쳐 놓아도 마음에 쏙 들도록 책이 예뻐서

늘 흐뭇하게 바라봤던 것 같기도 한데,

 

언제부터인지 있는지도 잊어버린 채, 한 동안 그저 그대로 책장에 두었었다.

 

우연히 책 정리를 하다가 아, 맞아, 이 책 있었지,

내가 이 책을 샀을 때, 그러고 보니 그게 벌써 언제지? 27살 때인 것 같다.

그때 내가 이 책을 왜 샀는지도 기억난다. 늘 가던 서점이 아니었고,

내가 거주하고 생활하는 도시가 아닌 다른 곳에서,

그 날, 할 일은 없는데 너무나 쓸쓸하고 외로웠고,

또 무섭고 슬펐던, 그런 밤이었다고 기억한다.

 

밤에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이 책을 읽고, 감성에 젖어서 한편으로는

위로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었는데,

참... 그때 내가 했던 수많은 공상들.

지금과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지만, 어쨌든 미래를 꿈꾸는 것은 현재를 견디게 하니까.

 

우습게도 그때 와닿았던 구절들이, 지금 보니까 약간 오글거리는 것 같고,

그때 무심히 넘겼던 문장들이, 지금 나에게 뜨겁게 울린다.

좋은 책의 조건은 읽을 때마다 다르게 읽혀지는 책이라는데,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참 좋은 책이다.

나도 짧다면 짧은, 길다면 긴,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의 그 시간에서 참 많이도 변했고.

그때 당시에는 그로부터 몇 년 뒤의 내가 지금 이런 모습일거라고

또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느낌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처음 책을 샀을 때를 기준으로 지금까지 내가 변했다면,

정확히 그 시간만큼 흐르고 나서 다시 이 책을 읽는다면 또 다른 구절을

문장을, 단어를, 나는 발견하고 감동받겠지.

그런 기회가 없어진다는 것, 아니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줄어드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책을 정리하는 데에 미련은 없었다. 홀가분하다.

 

아마도 이 책을 읽을 때마다, 처음 내가 이 책을 샀을 때의 그 암담했던 날의 기분이 떠오르고,

어쩌면 그 느낌을 영영 기억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한편으로는 한 때 외로웠던 순간,

그 절절한 감정을 고스란히 잊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에 달콤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제 박차고 앞으로 나가려는 나,

가뜩이나 지나온 상념이 붙잡고 놔주지 않아 이리저리 마음 다잡기 힘든 나를

어떻게 해서든 일으켜 세우려면 쓸데없는 감정적인 소모는

스스로 노력해서라도, 이런 행동을 통해서라도 의식적으로 매듭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고독이 얼마나 달콤할 수 있는지, 외로움이 얼마나 반짝일 수 있는지

절실히 깨닫고 있는 요즘,

원래 외로운 나 자신을 즐겼었던 나지만,

더 이상 코스프레로라도, 허세로라도, 그냥 농담으로라도, 장난으로라도,

고독은 피하고 싶었기에 더 빨리 이 책을 정리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은 해피엔딩이, 시끌벅적이, 무모한 용기와 활발함이,

목젖을 넘어갈 정도의 웃음이, 열정이,

단순하고 관조하는 삶, 조용한 미소, 정돈된 상태에서 오는 편안함,

감성적이고 예민한 것, 질서 정연함보다 좋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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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처음 만난 순간, 나는 첫눈에 반하고 말았기 때문에

어떻게든 운명적인 만남이라는 걸 설득시켜야 했다.

나는 그녀가 다니던 대학의 대학원을 다녔다고 말했다.

그녀와 나의 나이 차이로 볼 때 우리는 그 시절에 교정에서

서로 스쳐 지나갔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그것도 몇 번이나.

그때 우리는 서로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수많은 사람들 중에 하나로,

작은 방해물로, 지나갔을 것이다. 그런 장면을 상상하자,

우리는 기분이 좋아졌다. 로맨틱한 기분이 들었으니까.

나는 그녀에게 빠져 있었기에 그녀가 나를 좋아해 주기만을 바랐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는 우연히 스쳐 지나간 적이 있을 거라는 사실이

가슴을 설레게 했었다. 그런데 헤어지고 난 후에는,

우연히 스쳐 지나갔다는 사실이 가슴을 무너지게 했다.

영원히 머물 줄 알았던 사랑이,

또다시 스쳐 지나가는 존재가 되어 버릴 수도 있다는 것,

내가 세상에서 배운 가장 무서운 사실이다.

-<어떻게 만났는데 이렇게 잃어버리는 거니> 중에서

 

 

그와 헤어진 직후에 여행을 갔는데, 여행지에서 한순간,

마치 그 사람이 눈앞에 나타난 것처럼 그리움이 간절해졌다고 한다.

눈앞이 깜깜해지고 가슴이 먹먹해져서 한동안 그대로 서있었다.

'이게 뭘까?'하면서 두리번거리다가 깨달았다고 한다.

그 사람이 즐겨 쓰던 향수 냄새를 맡았다는 걸.

 

그녀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젠 잊었어."

얼마 전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이 그 향수를 뿌리고 나타났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마음이 아프기는커녕 이런 생각이 들어 홀가분해졌다고 한다.

'그래, 이건 누구나 뿌릴 수 있는 향수일 뿐이야.'

 

유일한 존재가 평범한 존재가 되는 순간,

그때 그녀는 그를 잊었다.

-<유일한 존재가 평범한 존재가 되는 순간> 중에서

 

 

그녀가 참을 수 없었던 건, 전 남자친구에게 새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그녀가 후줄근한 복장으로 혼자 있을 때 그를 만났다는 사실도 아니었다.

그녀가 진짜 참을 수 없었던 건, 그녀와 만날 땐

7년 동안 단 한 번도 떡볶이를 먹지 않았던 그가

다른 여자와는 먹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녀가 떡볶이를 권하면 자긴 싫어한다면서

입도 대지 않았던 그였다.

그녀는 그의 뒤쪽으로 살짝 다가가,

있는 힘을 다해 젓가락을 휘둘러 그 애의 하얀 티셔츠에

떡볶이 국물로 북두칠성 모양을 그려 줬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이 성공하자, 몰래 빠져 나왔다는 것이다.

 

그녀는 그에게 빨간 떡볶이 국물로 남은 여자였다.

 

<헤어진 후에도 참을 수 없는 것>중에서

 

 

"제가 대신해 드릴게요. 차에서 내리세요."

그녀의 얼굴에서 초조한 기색이 사라지고

평소 익숙하게 보았던 약간은 게을러 보이는 표정이 나타났다.

그런데 나는 그녀의 차를 주차하다가 그만 차 옆쪽을 긁고 말았다.

운전 경력이 5년인데, 이런 실수를 하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든 사태를수습해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창문을 내리고 "죄송합니다. 제가 변상해 드릴게요."하고 말했다.

새 차를 처음 갖게 된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 그녀는 변상이라는 말에도

별 위안을 받지 못했다. 금방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로 나에게

"어쩜 좋아요. 며칠 전에 뽑았는데......."하고 말했다.

 

나는 그 순간 그녀가 참 귀엽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의 차를 고쳐 주겠다며, 전화번호를 교환했고,

그 후 매일 전화를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사랑은 게으르게 다가오고, 차 사고처럼 시작된다.

 

<사랑은 게으르게 다가오지만>중에서

 

 

 

참 이상했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CD로 들을 때도 좋긴 하지만,

라디오에서 들을 땐 좋은 느낌이 몇 배가 된다.

왜 그럴까.

아마도 그건 그 노래를 누군가가 같이 듣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닐까.

적어도 음악을 소개했던 DJ가 들었을 것이며

그 방송을 들었던 다른 사람들도 들었을 테니까.

 

라디오를 틀어 놓고 꽉 막힌 도로 위해 멈춰 서있었다.

가슴 한쪽이 콱 막힌 듯이 아팠던 시절이었다.

도로가 막히자 온갖 잡념들이 떠올랐다.

나는 라디오 볼륨을 높였다.

그때 옆에 서있던 차에서도 똑같은 노래가 흘러나왔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때, 가슴의 통증이 가라앉았다.

그 순간, 그 황량한 도로에서,

어떤 누군가와 똑같은 노래를 들었고

나는 행복해졌다.

 

우리를 설레게 하고 반하게 하는 것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똑같은 느낌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알았을 때 우리는 더 즐거워진다.

 

<사람들은 즐겁다>중에서

 

 

그녀가 일하는 곳에선 한 달에 한 번 매출액을 점검했다.

그런데 그녀의 실적은 목표량에서 한참이나 부족했다.

자칫하면 일자리를 잃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D-day를 딱 하루 남겨 둔 날, 거짓말 같은 일이 생겼다.

한 손님이 외국에 가게 됐다면서 한 달 치 매출에 해당하는 물건을 사간 것이다.

그 한 사람 때문에 그녀의 실적이 꼴찌에서 1등으로 올랐다고 한다.

 

미리 걱정하지 말자. 문은 항상 열려 있으니까.

비록 우리 앞에 보이는 건 어둠뿐일지라도

어둠에 익숙해지면 문이 보일 것이다.

 

<숨은 해답 찾기>중에서

 

 

"얼마 전에 별똥별이 떨어지는 걸 봤어.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서,

'어, 이게 진짜야?'하는 사이에 다 끝나 버렸지."

 

자신이 원하는 걸 정확히 알고 있을 것.

완전한 형태를 갖지 못한 소원은 이루어지기 힘들다.

기회는 별똥별처럼 나타나 안개처럼 사라지니까.

 

<별똥별이다>중에서

 

 

 

그는 구두를 벗기고 서랍에서 목이 짧은 털양말을 꺼내어

그것을 여인의 발에 신겨 주었다.

"자, 이만하면 조금은 낫겠지. 괴로울 때도 하찮은 일에서도

위안을 찾아내도록 해야 해요. 옛날부터 내려오는 군인들의 철칙이랍니다."

 

하찮은 일에서 위안을 찾지 못하는 사람은 항상 괴로울 수밖에 없다.

온몸이 행복감에 사로잡히는 순간은

우리 인생에서 몇 분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것들>중에서

 

 

 

전 세계에서 몰려든 배낭여행객들이 유럽의 명소로 손꼽히는 광장에서 노래를 불렀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너바나의 노래를부르자, 국적도 다르고 피부색도 다르고 언어도 다른 많은 청년들이 다 같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렇게 우연히 모이게 되어 캠프파이어를 하게 된다면, 과연 어떤 노래를 합창하게 될까. 많은 사람들에게 가슴 아린 추억이 있는 노래, 한 시절을 관통하는 젊음의 서러움이 서려 있는 노래, 그런 노래는 무엇일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면 자연스럽게 볼륨을 키우게 되는 것. 친구가 노래방에서 마이크를 잡고 그 노래를 부르면 저절로 합창을 하게 되는 것. 공연장에서 그 노래가 나오면 수많은 관객들이 다 같이 따라 부르면서 눈물을 글썽이게 되는 것.

 

"스무 살 무렵, 그땐 아무도 상처받지 않는 것에도 상처받았고 내일마저 불확실했기에 무언가에 열렬히 빠져들 수 있었어. 그리고 그 노래들이 우리의 빈 곳을 채워 주었던 거야."

스무 살 무렵에 만났던 청춘의 송가는 그전에도 그후에도 다시 느낄 수 없는 유일한 것인지도 모른다.

감동은 아픈 자의 특권이다.

 

<청춘의 송가>중에서

 

 

 

언니는 방금 지은 따듯한 밥을 퍼서 공기에 담았다.

냉장고에서 방금 꺼낸 반찬 그릇들이 파리해서

밥과 김치찌개가 더 따근하게 느껴졌다.

 

"모든 게 반듯하게 정리되어 있는 게, 비정상 아닐까?

다들 뒤죽박죽으로 살다가, 가끔 청소해서 조금 정리하고,

다시 어지르고, 그러는 거야. 우리도 일주일 만에 청소했잖아."

 

세상 일이 모두 수학 문제집처럼 문제와 정답이 한꺼번에 주어진다면

우리의 고민은 아예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답안지도 정답도 없는 문제에 맞서

훌륭한 결과를 끌어내는 사람들이 있다.

어쩌면, 우리 자신이 그런 사람인지도 모른다.

 

지나온 자취는 뒤죽박죽이고, 갈 길은 멀지 모르지만,

적어도 우리는 걸어왔다.

 

<다시 한 번, 걷자>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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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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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공원

이곳에서의 생활은 조금은 슬프고, 대체로 평화롭지만 불행하다.

내 일상의 주된 요소는 일과 목욕과 남편이다. 그 틈틈이 치과에 다니고 공과금을 내러 가고, 책을 읽고 청소와 빨래도 하고, 간식과 술과 사람과의 약속이 끼어든다.

결혼하기 전, 나는 다소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추리 소설이란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 2년 사이에 바뀌고 말았다. 지금은 추리 소설이 없으면 아내로서 생활할 수 없을 정도다.

결혼하기 전에는 남편과 둘이 종종 공원에 갔다. 낮잠을 자고 캔 녹차를 마시고 산책을 하고 배드민턴도 쳤다. 언젠가 같이 살게 되면 공원 옆이 좋겠다고 말했고, 그 말대로 됐다. 다만 그때 생각했던 것처럼 자주 산책을 하지는 않는다.

 

나와 남편은 취향이 전혀 다르다. 좋아하는 음악과 좋아하는 음식도 다르고, 좋아하는 영화와 좋아하는 책도 다르고, 뭘 하면서 노는 것을 좋아하는지도 다르다. 그래도 아무 상관없다고 생각해왔고, 오히려 다른 편이 건전하다고도 생각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같으면 좋았을텐데,하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같았으면 좋았을텐데, 하고.

비는 소염작용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가령 감정의 기복-예를 들면 연애-이 어떤 유의 염증이라고 한다면 비는 매우 위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외간 여자

결혼할 때, 남편에게 약속 받은 일이 한 가지 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외간 여자에게 초콜릿을 선물하지 않는다는 약속이다. 꽃다발이나 구두, 가방, 장신구는 상관없지만, 초콜릿은 안된다고.

나는 옛날부터 초콜릿은 남자가 여자에게 선물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남자에게 초콜릿을 선물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달콤하고 사치스럽고, 입안에서 쾌락과 함께 녹는 초콜릿을 남자가 여자의 마음을 녹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연애를 하면서 한 약속은 대개 무의미해서, 가령 다른 사람은 절대 사랑하지 않겠노라고 약속했다한들 소용없는 일이라는 것을 잘 안다. 일이 그렇게 되었다면 그렇게밖에 될 수 없었던 것이고, 또 약속때문에 그런 기회를 놓치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러나 가령, 어떤 특별한 사람에게 선물을 하게 되었을 때, 초콜릿을 피하는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깜찍한 쿠키나 꽃다발을 선물하면 되니까. 나는 그때의 성실함을 오히려 신용한다.

남편은 가끔가다 내게 초콜릿을 사다준다.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무슨 기념일 같은 때. 내가 좋아하는 초콜릿은 린츠나 메테르의 단순한 것. 은색 상자에 들어 있는 SWISS THINS나, 핑크색 동그랗고 조그만 상자에 들어 있는 마거릿. 나는 남편에게 초콜릿을 선물받을 때마다, 나를 외간 여자에서 자기 여자로 만든 남편이 사과하는 뜻으로 건네는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월요일

얼마 전까지 내게는 주말이란 개념이 없었다. 회사에 다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편을 만나고 나서 변했다. 남편과는 주말에만 놀 수 있으니까.

전에도 몇 번인가 연애는 했지만, 주말이란 개념을 갖고 있는 사람과 연애를 하기는 처음이었다.

나는 단박에 주말이 좋아졌다.

주말은 늘 남편과 함께 지낸다. 그리고 거의 주말마다 티격태격댄다. 사소한 말다툼에서 폭풍우 같은 싸움까지.

들러붙어 있기에 이렇듯 마음이 슬픈 것이다.

정말이지 절실하게 그런 생각을 한다. 그런데도 어쩔 수 없이 들러붙고 만다. 우리 둘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이 외롭다(혼자일 때의 고독은 기분 좋은데, 둘일 때의 고독은 왜 이리도 끔직한 것일까).

월요일 아침, 나는 회사로 가는 남편이 싫어서 그만 입이 부루퉁해진다. 어서 다음 주말이 오면 좋을 텐데, 하고 생각하면서 현관에다 구두를 내 놓는다. 그리고 남편을 배웅하고 난 순간, 나 자신도 놀라울 만큼 안도감의 물결이 밀려온다.

우리는 많은 주말을 함께 지내고 결혼했다. 늘 주말 같은 인생이면 좋을텐데, 하고 마음 속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알고 있다. 하루하루가 주말 같다면 우리는 보나마나 산산이 조각나리라는 것을.

 

"나, 9월에 여행할 거야."
양복과 넥타이, 와이셔츠와 양말을 여기저기 벗어던지던 남편이, 옷을 벗다말고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그럼, 밥은?"
이번에는 그 말을 들은 내가 어안이 벙벙했다.
밥?
몇 초 동안, 둘 다 말이 없었다. 그리고 간신히 내가 말했다.
"밥? 첫 마디가 그거야?"
지금 외출을 하는 거라면 몰라도 앞으로 몇 달 후에 여행을 간다는데, 그 말을 듣고 처음 한는 소리가 어디?가 아니고, 며칠 동안이나?도 아니고, 밥은?이라니.
나는 나의 가장 큰 존재 가치가 밥에 있다는 소리를 들은 것만 같아 슬펐다.
밥.
결혼하고 두세 달 지나면 결혼 생활에서 밥이 얼마나 큰 관건인지 싫어도 깨닫게 된다. 회사에서 돌아오면 밥을 먹고 자는 그 일련의 행동에 군더더기 하나 없는 남편의 모습을 보다 보면 마음 속에서 예의 진부한 의문-이 사람, 혹시 밥 때문에 나랑 결혼한 거 아니야-을 떨어내기가 어렵다.

 

결혼하고서 생활에 색이 입혀졌다고 생각한다. 갑자기 모든 것에 색상이 생기고, 그것은 아주 즐거운 일이면서 동시에 다소는 불안한 일이기도 했다.

애당초 나는 화려한 색상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알록달록한 꽃다발을 받으면, 색깔 별로 나눠서 꽃병에 꽂을-하얀 꽃은 현관에, 노란 꽃은 화장실에-정도다.

하지만 그렇게 꾸민 방처럼 차분한 정신 상태로 살려면 결혼은 적합하지 않다.

독신 생활에는 흑백의 정연한 질서가 있다.

다른 사람과 함께 생활할 때의 사사로움, 그 번거로움, 그 풍요로움. 혼자가 둘이 되면서 전혀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것.

나 개인에 한해 말하자면 중요한 것은 남편이 남자라는 점이다. 그래서 생활에 색깔이 입혀졌다고 생각하는데 누구든 함께 생활하고 싶다면 동성의 친구라도 상관없고,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다면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는 편이 간결하고 확실하다. 다만, 남자와 같이 살면 생활에 색깔이 입혀진다.

 

풍경

그런 몇 가지 풍경이 있다. 공유하고 있는 기억.

그 무렵 우리는 다른 장소에 있었지만, 만나면 늘 같은 풍경을 보았다. 서로 다른 장소에 있었기 떄문에 더욱 더. 지금 우리는 같은 장소에 있지만, 서로 다른 풍경을 보고 있다.

우리는 전혀 다른 것을 보고 있다. 남편은 텔레비전을, 나는 남편의 머리를. 남편은 현재를, 나는 미래를. 남편은 하늘을, 나는 컵을.

그렇게 오늘도 우리는 같은 장소에서 전혀 다른 풍경을 보고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다른 풍경이기에 멋진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만났을 때, 서로가 지니고 있는 다른 풍경에 끌리는 것이다. 그때까지 혼자서 쌓아올린 풍경에.
인생이란 어디서 어떻게 변할지 알 수가 없다. 언제 헤어지게 되더라도, 헤어진 후에 남편의 기억에 남아있는 풍경 속의 내가 다소나마 좋은 인상이기를, 하고 생각한 것이다.

 

노래

남편과 말다툼을 하고 흥분해 있을 때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할 수 없이 스스로를 달래면서 냉정해지기를 기다리는데, 그런 때 남편을 만나기 전에 들었던 노래를 들으면 마음이 가라앉는다. 남편 없이도 혼자 잘 해 나갔던 시절. 남편 없이도 행복하고 충만했던 때.

남편은 내가 자기에게 화가 나 있을 때면, 우리가 어린애들처럼 달콤했던 시절에 들었던 곡을 불쑥 틀어놓는 술수를 쓴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아무튼 들러붙어 자는 것이 바람 역할을 하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과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는 것, 몇 번이고 되풀이해 듣는 음악이 또 바람이 되어준다. 그런 소박한 일들에서 위안을 얻지 못하면 도저히 사랑은 관철할 수 없다.

 

벚꽃 드라이브와 설날

하얀 꽃잎을 올려다보면서 내년에도 이 사람과 함께 벚꽃을 볼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한다. 단순한 의문문으로. '함께 보고싶다'가 아니라 '과연 함께 볼 수 있을까'하고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할 때 내 인생이 조금은 좋아진다. 묘한 느낌이다. 내년에도 이 사람과 함께 벚꽃을 볼 가능성이 있다. 아주 희망에 찬 생각이라고 나는 기뻐한다. 그리고 물론 그것은 함께 벚꽃을 볼 가능성이 있기에 가능한 기뿜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행복한 것은 많은 가능성 속에서 한가지가 선택되기 때문이고, 그 선택에 나는 가슴이 설렌다.

새해를 맞아 처음 보는 얼굴이 남편이기를 꿈꿔왔지만, 새해 처음 만나고 싶은 사람이 남편인 쪽이 난 더 행복하다. 남편이 보고 싶어 애틋한 아침이 1년에 한 번 정도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혼자만의 시간

애정이란 병의 한 종류라고 생각한다. 애정이 있기에 모든 것이 골치아파진다.

 

결혼한(또는 결혼한 적이 있는) 많은 사람들이 왜 결혼에 대해 별 얘기를 하지 않는지, 스스로 해보고야 알았다. 꿀처럼 행복하고 아까워서 말하지 않는 것은 물론 아니고, 그렇다고 괴롭고 고통스럽고 우울해서 말하지 않는것도 아니다. 그저 모두들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결혼이 너무도 특수하고 개인적이어서, 우연과 필연이 꽈배기처럼 꼬여 설명하기 곤란한 양상을 띠고 있기에.

 

어리광에 대해서

결혼하고서 딱 한 가지 배운 것이 바로 그것이다. 올바름에 집착하면 결혼 생활 따위 유지할 수 없다.

나는 가능한 한 그렇게 하고 있다. 어리광을 피우고 어리광을 피우게 하는 것은 어른의 특권이라고 생각하니까.

평온하고 사랑에 가득한 결혼 생활을 위해서는 목숨을 걸고 억지를 관철해야 한다.

 

킵 레프트

화해란 요컨대 이 세상에 해결 따위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 사람의 인생에서 떠나가지 않는 것, 자신의 인생에서 그 사람을 쫓아내지 않는 것, 코스에서 벗어나게 하지 않는 것.

 

RELISH

결혼하고야 내가 지겹도록 사리정연한 성격이라는 것을 알았다. 결혼이란 전혀 사리에 맞지 않는 것이니, 거의 심신의 파멸.

다만 결혼하고야 나는 분노를 오래 유지하지 못한다는 것도 알았다. 그 때문에 모든 것이 한층 혼란스럽다.

그러나 결국 결혼이란 그럼에도 혼자이길 선택하지 않는 것읻라고 생각한다. 같이 있지않는 편이 마음 편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같이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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