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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공원
이곳에서의 생활은 조금은 슬프고, 대체로 평화롭지만 불행하다.
내 일상의 주된 요소는 일과 목욕과 남편이다. 그 틈틈이 치과에 다니고 공과금을 내러 가고, 책을 읽고 청소와 빨래도 하고, 간식과 술과 사람과의 약속이 끼어든다.
결혼하기 전, 나는 다소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추리 소설이란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 2년 사이에 바뀌고 말았다. 지금은 추리 소설이 없으면 아내로서 생활할 수 없을 정도다.
결혼하기 전에는 남편과 둘이 종종 공원에 갔다. 낮잠을 자고 캔 녹차를 마시고 산책을 하고 배드민턴도 쳤다. 언젠가 같이 살게 되면 공원 옆이 좋겠다고 말했고, 그 말대로 됐다. 다만 그때 생각했던 것처럼 자주 산책을 하지는 않는다.
비
나와 남편은 취향이 전혀 다르다. 좋아하는 음악과 좋아하는 음식도 다르고, 좋아하는 영화와 좋아하는 책도 다르고, 뭘 하면서 노는 것을 좋아하는지도 다르다. 그래도 아무 상관없다고 생각해왔고, 오히려 다른 편이 건전하다고도 생각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같으면 좋았을텐데,하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같았으면 좋았을텐데, 하고.
비는 소염작용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가령 감정의 기복-예를 들면 연애-이 어떤 유의 염증이라고 한다면 비는 매우 위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외간 여자
결혼할 때, 남편에게 약속 받은 일이 한 가지 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외간 여자에게 초콜릿을 선물하지 않는다는 약속이다. 꽃다발이나 구두, 가방, 장신구는 상관없지만, 초콜릿은 안된다고.
나는 옛날부터 초콜릿은 남자가 여자에게 선물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남자에게 초콜릿을 선물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달콤하고 사치스럽고, 입안에서 쾌락과 함께 녹는 초콜릿을 남자가 여자의 마음을 녹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연애를 하면서 한 약속은 대개 무의미해서, 가령 다른 사람은 절대 사랑하지 않겠노라고 약속했다한들 소용없는 일이라는 것을 잘 안다. 일이 그렇게 되었다면 그렇게밖에 될 수 없었던 것이고, 또 약속때문에 그런 기회를 놓치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러나 가령, 어떤 특별한 사람에게 선물을 하게 되었을 때, 초콜릿을 피하는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깜찍한 쿠키나 꽃다발을 선물하면 되니까. 나는 그때의 성실함을 오히려 신용한다.
남편은 가끔가다 내게 초콜릿을 사다준다.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무슨 기념일 같은 때. 내가 좋아하는 초콜릿은 린츠나 메테르의 단순한 것. 은색 상자에 들어 있는 SWISS THINS나, 핑크색 동그랗고 조그만 상자에 들어 있는 마거릿. 나는 남편에게 초콜릿을 선물받을 때마다, 나를 외간 여자에서 자기 여자로 만든 남편이 사과하는 뜻으로 건네는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월요일
얼마 전까지 내게는 주말이란 개념이 없었다. 회사에 다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편을 만나고 나서 변했다. 남편과는 주말에만 놀 수 있으니까.
전에도 몇 번인가 연애는 했지만, 주말이란 개념을 갖고 있는 사람과 연애를 하기는 처음이었다.
나는 단박에 주말이 좋아졌다.
주말은 늘 남편과 함께 지낸다. 그리고 거의 주말마다 티격태격댄다. 사소한 말다툼에서 폭풍우 같은 싸움까지.
들러붙어 있기에 이렇듯 마음이 슬픈 것이다.
정말이지 절실하게 그런 생각을 한다. 그런데도 어쩔 수 없이 들러붙고 만다. 우리 둘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이 외롭다(혼자일 때의 고독은 기분 좋은데, 둘일 때의 고독은 왜 이리도 끔직한 것일까).
월요일 아침, 나는 회사로 가는 남편이 싫어서 그만 입이 부루퉁해진다. 어서 다음 주말이 오면 좋을 텐데, 하고 생각하면서 현관에다 구두를 내 놓는다. 그리고 남편을 배웅하고 난 순간, 나 자신도 놀라울 만큼 안도감의 물결이 밀려온다.
우리는 많은 주말을 함께 지내고 결혼했다. 늘 주말 같은 인생이면 좋을텐데, 하고 마음 속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알고 있다. 하루하루가 주말 같다면 우리는 보나마나 산산이 조각나리라는 것을.
밥
"나, 9월에 여행할 거야."
양복과 넥타이, 와이셔츠와 양말을 여기저기 벗어던지던 남편이, 옷을 벗다말고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그럼, 밥은?"
이번에는 그 말을 들은 내가 어안이 벙벙했다.
밥?
몇 초 동안, 둘 다 말이 없었다. 그리고 간신히 내가 말했다.
"밥? 첫 마디가 그거야?"
지금 외출을 하는 거라면 몰라도 앞으로 몇 달 후에 여행을 간다는데, 그 말을 듣고 처음 한는 소리가 어디?가 아니고, 며칠 동안이나?도 아니고, 밥은?이라니.
나는 나의 가장 큰 존재 가치가 밥에 있다는 소리를 들은 것만 같아 슬펐다.
밥.
결혼하고 두세 달 지나면 결혼 생활에서 밥이 얼마나 큰 관건인지 싫어도 깨닫게 된다. 회사에서 돌아오면 밥을 먹고 자는 그 일련의 행동에 군더더기 하나 없는 남편의 모습을 보다 보면 마음 속에서 예의 진부한 의문-이 사람, 혹시 밥 때문에 나랑 결혼한 거 아니야-을 떨어내기가 어렵다.
색
결혼하고서 생활에 색이 입혀졌다고 생각한다. 갑자기 모든 것에 색상이 생기고, 그것은 아주 즐거운 일이면서 동시에 다소는 불안한 일이기도 했다.
애당초 나는 화려한 색상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알록달록한 꽃다발을 받으면, 색깔 별로 나눠서 꽃병에 꽂을-하얀 꽃은 현관에, 노란 꽃은 화장실에-정도다.
하지만 그렇게 꾸민 방처럼 차분한 정신 상태로 살려면 결혼은 적합하지 않다.
독신 생활에는 흑백의 정연한 질서가 있다.
다른 사람과 함께 생활할 때의 사사로움, 그 번거로움, 그 풍요로움. 혼자가 둘이 되면서 전혀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것.
나 개인에 한해 말하자면 중요한 것은 남편이 남자라는 점이다. 그래서 생활에 색깔이 입혀졌다고 생각하는데 누구든 함께 생활하고 싶다면 동성의 친구라도 상관없고,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다면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는 편이 간결하고 확실하다. 다만, 남자와 같이 살면 생활에 색깔이 입혀진다.
풍경
그런 몇 가지 풍경이 있다. 공유하고 있는 기억.
그 무렵 우리는 다른 장소에 있었지만, 만나면 늘 같은 풍경을 보았다. 서로 다른 장소에 있었기 떄문에 더욱 더. 지금 우리는 같은 장소에 있지만, 서로 다른 풍경을 보고 있다.
우리는 전혀 다른 것을 보고 있다. 남편은 텔레비전을, 나는 남편의 머리를. 남편은 현재를, 나는 미래를. 남편은 하늘을, 나는 컵을.
그렇게 오늘도 우리는 같은 장소에서 전혀 다른 풍경을 보고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다른 풍경이기에 멋진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만났을 때, 서로가 지니고 있는 다른 풍경에 끌리는 것이다. 그때까지 혼자서 쌓아올린 풍경에.
인생이란 어디서 어떻게 변할지 알 수가 없다. 언제 헤어지게 되더라도, 헤어진 후에 남편의 기억에 남아있는 풍경 속의 내가 다소나마 좋은 인상이기를, 하고 생각한 것이다.
노래
남편과 말다툼을 하고 흥분해 있을 때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할 수 없이 스스로를 달래면서 냉정해지기를 기다리는데, 그런 때 남편을 만나기 전에 들었던 노래를 들으면 마음이 가라앉는다. 남편 없이도 혼자 잘 해 나갔던 시절. 남편 없이도 행복하고 충만했던 때.
남편은 내가 자기에게 화가 나 있을 때면, 우리가 어린애들처럼 달콤했던 시절에 들었던 곡을 불쑥 틀어놓는 술수를 쓴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아무튼 들러붙어 자는 것이 바람 역할을 하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과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는 것, 몇 번이고 되풀이해 듣는 음악이 또 바람이 되어준다. 그런 소박한 일들에서 위안을 얻지 못하면 도저히 사랑은 관철할 수 없다.
벚꽃 드라이브와 설날
하얀 꽃잎을 올려다보면서 내년에도 이 사람과 함께 벚꽃을 볼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한다. 단순한 의문문으로. '함께 보고싶다'가 아니라 '과연 함께 볼 수 있을까'하고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할 때 내 인생이 조금은 좋아진다. 묘한 느낌이다. 내년에도 이 사람과 함께 벚꽃을 볼 가능성이 있다. 아주 희망에 찬 생각이라고 나는 기뻐한다. 그리고 물론 그것은 함께 벚꽃을 볼 가능성이 있기에 가능한 기뿜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행복한 것은 많은 가능성 속에서 한가지가 선택되기 때문이고, 그 선택에 나는 가슴이 설렌다.
새해를 맞아 처음 보는 얼굴이 남편이기를 꿈꿔왔지만, 새해 처음 만나고 싶은 사람이 남편인 쪽이 난 더 행복하다. 남편이 보고 싶어 애틋한 아침이 1년에 한 번 정도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혼자만의 시간
애정이란 병의 한 종류라고 생각한다. 애정이 있기에 모든 것이 골치아파진다.
결혼한(또는 결혼한 적이 있는) 많은 사람들이 왜 결혼에 대해 별 얘기를 하지 않는지, 스스로 해보고야 알았다. 꿀처럼 행복하고 아까워서 말하지 않는 것은 물론 아니고, 그렇다고 괴롭고 고통스럽고 우울해서 말하지 않는것도 아니다. 그저 모두들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결혼이 너무도 특수하고 개인적이어서, 우연과 필연이 꽈배기처럼 꼬여 설명하기 곤란한 양상을 띠고 있기에.
어리광에 대해서
결혼하고서 딱 한 가지 배운 것이 바로 그것이다. 올바름에 집착하면 결혼 생활 따위 유지할 수 없다.
나는 가능한 한 그렇게 하고 있다. 어리광을 피우고 어리광을 피우게 하는 것은 어른의 특권이라고 생각하니까.
평온하고 사랑에 가득한 결혼 생활을 위해서는 목숨을 걸고 억지를 관철해야 한다.
킵 레프트
화해란 요컨대 이 세상에 해결 따위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 사람의 인생에서 떠나가지 않는 것, 자신의 인생에서 그 사람을 쫓아내지 않는 것, 코스에서 벗어나게 하지 않는 것.
RELISH
결혼하고야 내가 지겹도록 사리정연한 성격이라는 것을 알았다. 결혼이란 전혀 사리에 맞지 않는 것이니, 거의 심신의 파멸.
다만 결혼하고야 나는 분노를 오래 유지하지 못한다는 것도 알았다. 그 때문에 모든 것이 한층 혼란스럽다.
그러나 결국 결혼이란 그럼에도 혼자이길 선택하지 않는 것읻라고 생각한다. 같이 있지않는 편이 마음 편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같이 있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