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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저기까지만, - 혼자 여행하기 누군가와 여행하기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마스다 미리 여행기.
이 전에 읽었던 마음이 풀리는 작은 여행보다 좀 더 생동감 있게 느껴진다.
작은 여행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당일치기 혹은 1박 여행이 대부분이었고,
혼자 가거나, 네코야마라는 별명의 편집자가 동행인이었던 경우가 거의 전부라서
스스로를 자꾸 들여다보는 저자의 생각은 잘 알겠지만 이야기는 좀 단조로웠는데,
이 책은 혼자, 친구들과, 남자친구와, 엄마와 다양하게 동행인이 바뀌고
심지어 북유럽까지 여행 경로가 확대되어서 좀 더 여행기스럽다고 할까.
여행을 다녀온 시간을 보니 2009년부터 2013년에 걸쳐져 있는 것 같은데
책 두 권의 여행 다녀온 시간들이 살짝 겹친다. 아마 틈나는 대로 여행을 다녀오고
편집을 하는 과정에서 성격을 분리해서 두 개의 책으로 만든 게 아닐까 싶다.
마음이 풀리는 작은 여행에서는 각 챕터의 시작에 지도가 있었고, 짧게 만화도 등장해 그것을 또 보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이 책은 그림도 거의 없고, 사진도 나오고, 각 여행마다 여비가 얼마가 들었는지, 식비에 교통비에 기념품까지 상세하게 적혀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는 마음이 풀리는 작은 여행 쪽이 더 좋았다. 일단 지도가 없으니 작가가 간 곳이 어디인지 위치상으로 잘 가늠이 안 되어서 상상하는 맛이 떨어지고, 여비를 쓴 것도 딱히 와닿지가 않았다. 물가야 금방금방 바뀌는 거니까.
나는 아마 앞으로의 인생에도 자식을 낳지 않을 것이다. 자식이 없다는 것은 먼 미래, 아이와 둘이 여행하는 일도 없다는 말이다. 그래도 아이와 여행을 하는 부모의 기분을 지금의 엄마를 보면 상상할 수 있다.
'부모란 이런 식으로 기뻐하는구나.'
나를 여행에 데려가 줄 자식은 없지만, 엄마오 여행을 함으로써 '부모' 유사 체험을 한다. 내가 내 자식과 여행을 한다면 분명 지금의 우리 엄마와 비슷한 느낌으로 기뻐할 것이다. 다른 인생을 상상하는 것도 은근히 재미있다.
이 부분은 어렴풋이 저자의 마음을 알 것 같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갸우뚱하기도 하고 마음이 좀 저려오기도 하는 대목이다. 여기에 다다르기까지 저자는 살면서 어떤 일들을 겪어왔고 이런 결심을 하기로 마음먹은 것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미야기 현, 2박 3일의 가을 여행.
여행에서 돌아오자 바로 언제나의 일상이다. 어제는 미야기 현에 있었지, 생각하면서 작업을 하거나 집안일을 하고 있으면 신기한 기분이 든다. 어린 시절에 곧잘 일어난 그 감각과 비슷했다.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 갔다가 교실의 내 자리로 돌아와서 조금 있다 보면,
'어? 나 방금 화장실에 갔었는데, 화장실 갔을 때의 나와 멀어진 기분이 들어.'
이런 느낌, 나도 잊고 있었는데 어릴 때 강하게 느끼던 그 느낌이다. 대학에 입학해 한 달간 유럽 베낭 여행을 다녀온 뒤, 적어도 1년 까지는 작년 이맘 때, 한 달 전만 해도, 1주일 전까지만 해도, 유럽에 있었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약간 신기해지던 그 기분. 아마 '성장'이 아닐까 생각된다. 더 어릴 때는 잠깐의 외출로도 그 전의 나와 멀어진 기분이 들었다는 바로 그 기분, 충분히 느꼈고, 또 많이 느끼면서 살았는데 어른이 되면서 잊고 있었다. 아마도 의식적으로 떠올리지 않는 게 아닐까. 점점 나이 먹었다는 것을 의식해가며 살고 있으니까. 다음 구절도 그렇다.
인간의 몸을 만드는 물질은 끊임없이 바뀌고 있다고 한다. 피부도, 심당도, 뼈도 모든 세포는 날마다 새롭게 바뀌고 있으므로, 실은 줄곧 변하지 않는 '나'라는 존재는 없다는 말이 된다.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것도 실은 새로운 물질로 만들어진 '새로운 나'다. 그런데 나는 옛날의 나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 뇌세포도 계속 바뀌고 있는데, 무엇이 옛날의 나를 기억하는 것일까?
핀란드 여행의 키워드를 카모메 식당으로 잡고, 귀국 후 그 영화를 다시 보면서 여행 추억을 떠올렸다는 이야기는 따라하고 싶을 정도로 부러웠다. 무민의 고향에서 무민 박물관을 찾았다는 이야기도 흥미로웠고. 백야 시즌에 본 '짙은 오렌지색 하늘과 터키블루가 선명한 하늘'은 어떤 느낌일까. 스웨덴 스톡홀른 시청사 레스토랑에서 노벨상 수상자의 축하 만찬과 똑같은 메뉴를 먹어볼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안 사실! 투어 요금은 총 35만엔이었다고 한다. 카모메 식당의 인기로 북유럽을 찾는 일본 여성들이 늘었다는 기사를 봤는데 그걸 마스다 미리의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언제라도 갈 수 있는 곳이지만 다음에도 같은 여행이 될 리는 없다. 기분, 날씨, 몸 컨디션. 각각의 균형으로 여행의 온도는 결정된다. 같은 여행은 두 번 다시 할 수 없다. 그걸 알기 떄문에 언제나 헤어지기 섭섭한 것이다.
이 문장도. 마음에 든다.
친구들과의 북유럽 여행 후, 저자는 다시 혼자서 한번 더 헬싱키를 다녀온다. 또다시 혼자 나라로 향하는데 교토 역 신칸센 개찰구 안에 있는 '호우센'이라는 다실, 늘 지나쳐 버리던 그 곳에서 빨려들 듯이 들어가 밤 팥죽과 밤 킨톤을 주문해 먹으며 흐뭇해하는 대목을 읽고 나에게도 있는 비슷한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공주 버스 터미널 안의 카페. 아무 생각없이 그냥 들어갔다가 밤과자와 밤라떼에 반했던 기억. 그리고 서비스로 받았던 아이스크림도. 한여름인데도 불구하고 마음이 쌀쌀했던 날인데 순식간에 따스해지며 기분이 풀리던 기억. 아, 나에게도 이런 순간들이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