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주는 기쁨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1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영국의 펭귄 출판사가 창립 70주년을 기념하여 출간한 70권의 작품 선집 가운데 한 권이다. 이 특별판에는 카뮈, 보르헤스, 버지니아 울프, 마르케스, 피츠제럴드, 카프카 등 쟁쟁한 작가들이 포함되어 있다. 보통은 70번째 자리를 차지했다고.

 

이 설명을 본 순간 하나 떠오른 생각이 있는데, 2000년 전후였던가? 광복 이후 대한민국의 가수를 10위까지 순위를 매겼던 기사를 봤던 기억이 났다. 어느 신문사의 어떤 기사였는지, 그 순위는 어떤 기준으로 선정되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내가 기억하는 것은, 10위가 서태지였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1위~9위에는 서태지 이전의 가수들이 있겠지? 정확한 순위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 이미지와 조용필 같은 가수들이었다.

 

이 순위를 보았을 때의 나는 아직 청소년이었는데, 특별히 음악에 깊은 관심이 있지 않아서 서태지를 제외한 다른 가수들은 이름만 들어보았지 어떤 노래를 불렀는지 그게 왜 이렇게 의미가 있는지 알지도 못했고, 심지어 서태지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고 있지는 않았다. (응답하리 1994의 세대보다 내가 더 어린 세대다.) 다만 막연히 생각했던 게, 음악 대통령이라고 까지 불렸던 서태지가 10위라면 그 위의 사람들은 더 대단한 사람들이고, 거꾸로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가수들이 즐비한 가운데 현재 어린 내가 알 정도의 서태지가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10위에 올랐다는 것은 그만큼 서태지가 대단한 존재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아마 펭귄출판사에서 70명의 작가 중 마지막 70번째로 보통을 결정한 것은 비슷한 이유가 아닐까? 현대에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으면서 69명의 거장들(상당수는 이미 사망했을)과 어깨를 나란히(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바로 뒤에서 따라갈 만큼은) 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여기 수록된 아홉 편의 산문들은 대부분 이전에 쓴 여러 책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전에 '여행의 기술'이 여기에 실린 짧은 단편에서 출발했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어서 목차를 훑어보자마자 '공항에 가기, 바로 이거였구나'하고 알았다. 하나씩 읽다보니까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구절들이 등장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알랭 드 보통은 자신의 수많은 책에서 가장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담은 구절들을 선택했고, 주요 부분들을 선별하고 결합시켜 새로운 작품으로 구성했던 것이라고. 이것은 펭귄 출판사 특별판의 기획 의도에 맞춘 것이라고 한다.

작가가 직접 골라내었기에, 이 책에서는 보통의 개인적인 생각들과 주장들이 좀 더 솔직하고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현대인의 삶과 생활에 관한 예민한 성찰로 그의 열렬한 팬이 된 사람이라면 작가의 개인적인 삶을 엿볼 수 있는 내용이 있다는 것에 만족할 수 있을 것이고, 보통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이 책으로 보통의 세계에 입문할 수 있을 것이다.

 

슬픔이 주는 기쁨

이 장은 출처가 어디인지 잘 모르겠다. 아마 '여행의 기술' 아닐까? 다만 처음 출간될 당시에는 '동물원에 가기'였는데 개정되면서 제목이 '슬픔이 주는 기쁨'으로 바뀐 것을 보면 첫 출간시 가장 회자가 많이 되던 글이었나 추측할뿐이다. 제목만 보고 정호승 시인의 '슬픔이 기쁨에게'를 떠올렸다. 개인적으로는 원래 제목인 '동물원에 가기'가 더 좋은 것 같다. 직접적인 감정을 나타내는 단어가 두 가지나 들어가 있어서 글을 읽기도 전에 내용이 대강 짐작이 가기 때문이다. 원래 제목이 좀 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제목이어서 좀 아쉽다.

 

공항에 가기

이 장은 '여행의 기술'일 줄 알았는데 읽어보니 '공항에서 일주일을' 이었다. 굉장히 반가웠다.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보통의 책인데 별로 언급되지 않은 책이어서, 작가가 이 작품을 스스로 꼽았다고 생각하니 괜히 기분이 좋았다.

 

진정성

이 장은 읽으면서 사랑  3부작 중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였다. 한번 더 읽어보고 싶다.

 

일과 행복

이 장은 '일의 기쁨과 슬픔'이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죽 읽어보니까 아닌 것 같다. 아무래도 '불안'의 일부인 것 같다. 이런 반전도 재미있다.

 

동물원에 가기

이 짧은 글은 보통의 어느 책에서 나왔는지 모르겠다. 아마 내가 읽지 않은 책이겠지.

 

독신남

'여행의 기술' 아닐까?

 

따분한 장소의 매력

비슷한 구절을 스치듯 본 것 같기는 한데 원 출처가 어디인지 모르겠다.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 같기도 하고,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같기도 하고 '너를 사랑한다는 건' 같기도 하다.

 

글쓰기(와 송어)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희극

이건 '불안'이 맞는 것 같다. 다른 것은 몰라도 저 외과의사에 대한 비유를 보고 확신하게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찾아보니 내가 쓴 마이리뷰에도 저 구절을 적어 놓았다. 동일한 제목으로 원래의 책에도 분리되어 붙여져 있다. 괜히 뿌듯해진다.

 

 

출처를 모르는 글들은 어떻게든 출처를 알고 싶어서 이리저리 검색을 하게 되고, 막상 또 출처를 알겠는 글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게, 내가 이 책을 읽을 때 이 구절을 인상깊게 읽었었나, 왜 그 당시에는 다른 구절은 적어놓았어도 그 구절은 적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면 내가 책을 읽는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하다. 희미하게 실체만 알 뿐, 정확한 구절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과연 내가 그 책을 내 것으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아쉬움. 그리고 막막함. 어린 시절 학교 도서관에 있는 책을 전부 다 읽고 졸업해야지, 했던 생각은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깨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점점 자라면서 세상에는 정말 많은 책들이 있고, 아무리 열심히 읽어나가도 내 머리에 남는 게 없다면 그게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그러나 구절 하나하나가 생각이 나지 않아도 대강의 느낌으로 일단 읽은 책의 출처를 알아맞추었듯이, 그동안 읽은 책들이 내 뇌의 어느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으면, 아무리 깊숙이 있어도 어떠한 자극을 통해 밖으로 발현되는 날이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물론 평생 쓰지도 못하는 것들도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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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랑을 하고 있어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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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에는 수많은 사랑 이야기가 등장한다.

 

가슴 아픈 짝사랑도 있고, 이제 막 시작을 한 사랑도 있고, 다 끝나가는 사랑도 있고...

 

하지만 찬찬히 읽어나가면서 나는 이런 사랑이라면,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일까, 왜? 읽어나가다가 궁금증이 풀렸다.

 

 

이 책의 이야기 중 사랑하는 여성들은 예외없이 불안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바람을 피우는 명백한 증거 앞에서도 자기 편할 대로 해석해서 스스로를 위로하거나 애초부터 애인있는 사람을 좋아해서 스스로를 후순위에 두는 것을 자처하는 경우도 있다.

 

꼭 이런 경우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랑을 한다면, 상대방을 좋아하는 마음이 커져가면 갈수록 문득문득 불안한 마음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겠지만, 이런 식으로 베이스로 깔려 있는 사랑이라면, 나 같으면 끝내는 쪽을 택할 것 같다. 나의 지인이 이런 경우라도 마찬가지다.

 

적극적으로 사랑을 하고 있지 않은 경우에 해당되는 이야기들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애인이 있는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경우, 현재 애인과 헤어지지 않기를 오히려 바라게 된다, 왜냐하면 그가 혼자가 된다면 내 마음은 훨씬 사무칠 것이며,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모습을 보느니 차라리 짝사랑이 낫다는 이야기인데 너무 패배주의적인 생각이 아닐까 하게 된다. 나 또한 누군가를 혼자 좋아해본 적이 있지만 이 정도로까지 저자세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매사에 똑부러지는 것 같은 여자들 중에서 의외로 사랑에 있어서만큼은 헛똑똑이가 되어버리는 여성들이 많다. 함부로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작가도 그 범주에 살짝 발을 걸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단 내 자신부터 나를 함부로 대하거나 상처주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닐까.

 

마스다 미리의 책 중 한 번 읽고 나서 다시 읽고 싶지 않은 책은 이 책이 처음인 것 같다. 책 제목이 나는 사랑을 하고 있어, 인데 내 기준으로는 이 책의 상당수 내용들이 진짜 사랑이 아닌 것 같아서 중간중간 책 제목이 양 페이지 꽉 차게 등장할 떄마다 거북하기 떄문이다.

 

그런데 또 아이러니 한 것이 삽화는 내가 본 마스다 미리 책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든다. 어디까지나 내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그 전의 그림들보다 더 정성을 기울인 듯한 느낌이고, 부드럽고 온화하면서 사실적이어서 계속 보게 된다.

 

내게는, 그 사람이 있으니까.

그런 것쯤 아무것도 아니라고 진심으로 생각한다. 나를 이해해주는 남자가 있다면 남의 시선 따위 상관없다.

 

사랑이 나를 강하게 만들어 혼자 있을 떄도 자신감을 준다.

 

내가 유일하게 마음에 들었던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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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한입
마스다 미리 지음, 이연희 옮김 / 라미엔느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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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떤 음식을 처음으로 접했을 때의 그 느낌,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까?

 

모유나 분유, 이유식 같은 경우는 당연히 모르겠지만,

 

처음으로 커피를 마셨을 때,

 

처음으로 술을 마셨을 때,

 

정도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번쯤은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이 최초의 한입은 과자, 음료, 여행지에서의 특별 음식 등 작가가 어른이 된 지금은 마음껏 먹을 수 있어서 예전의 설렘은 줄어들었지만, 최초로 접했던 때의 기억만큼은 생생한 수십 가지의 먹거리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만화 '오무라이스 잼잼'과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거기에서는 작가의 두 아이들이 종종 등장하는데 유치원에 다닐 무렵인 아주 어린 시절부터 만화가 시작되기 때문에 자라면서 아이들이 점점 새롭게 접하고 있는 음식에 대한 묘사와 아이들의 반응이 나오는 데 은근히 재미있다. 누군가가 자식을 키우는 것은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라는데, 아마도 이 만화의 작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처음 자신이 그 음식을 접했을 때의 모습을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는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여기에 나온 음식은 거창한 음식이 아니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과자와 패스트푸드, 분식 등이 많다. 작가의 나이를 고려해보면, 패스트푸드점이 일본에서 급증할 무렵 청소년기를 보내서 처음 접했을 때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유치원 정도의 아이들에게 처음으로 햄버거를 먹었을 때, 콜라를 먹었을 때를 떠올려 보라면 불가능하지 않을까?

 

과자 부분이 인상적이었던 것은, 우리나라와 모양과 맛이 흡사한 과자가 일본에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이것은 오무라이스 잼잼에서도 한 번 다룬 적이 있었는데, 슬프게도 원조는 일본이고, 우리나라가 잽싸게 따라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과자들에 대한 설명이 너무나 쉽게(?) 이해되어 버리는 것이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보통 한번도 접해보지 못한 음식의 경우, 사진이나 그림이 제시되어 있어도 어떤 맛일지 상상이 잘 안가는 데(나만 그런가?) 이 책의 그런 음식은 상대적으로 적다.

 

일본의 대표적인 제과업체 중 하나인 모리나가의 엔젤파이는 '비스킷 사이에 마시멜로를 넣고, 그거을 초콜릿으로 코팅한 과자'라는 설명을 보자마자 초코파이가 떠올랐다. '씹는 맛은 거의 없고, 끈적끈적하게 척 달라붙는 달큰함이 씹으면 씹을수록 누굴누굴하게 입안에서 녹기 시작'하는 마시멜로를 어릴 때부터 작가는 싫어했지만, 이 과자만큼은 마시멜로가 비스킷 사이에 들어가니 달달함이 순해지고, 물컹하며 늘어지는 느낌도 없어서 좋아했다고 한다. 나도 딱 저런 이유로 옛날부터 지금까지 마시멜로가 싫다. 작가와 다른 점은 마시멜로가 들어간 초코파이도 싫어한다는 점이다.

 

비슷한 과자는 이것뿐만이 아니다. 손가락에 끼워서 먹었다는 돈가리콘(이 과자는 꼬깔콘과 비슷한 과자라고 설명까지 되어 있다.), 갓파에비센(역시 이 과자도 새우깡과 비슷하다고 설명되어 있다.), 초콜릿 부분은 먹고 크래커 부분만 남겼다는 기노코노야마(초코송이와 비슷한 과자라고 설명되어 있음), 현재 우리나라에도 들어와있어 나도 가끔 먹는 포키(역시 빼빼로와 비슷한 과자라고 설명되어 있음)에까지 도달하면 제과업체에 근무하지도 않는 내가 다 민망할 지경이다. 그뿐 아니라 마블이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는 메이지 마일드 초콜릿은 정확히 상표명은 모르겠지만 분명히 동일한 모양이 내가 어릴 적에 있었다. 길쭉한 원기둥 형태의 두꺼운 종이로 만들어진 상자, 당시 한 손에 쥐면 길이는 손 밖으로 빠져나올 정도의 길이였고 원통의 지름은 500원짜리 동전정도? 여기에 색색의 초코볼이 있었는데 유치원때나 초등학교 저학년때까지만 하더라도 소풍갔을 때 자주 먹었던 것 같다. 반으로 쪼개면 아무리 노력해도 큰 쪽과 작은 쪽이 생기고 만다는 소다 아이스크림은 어떻고? 이거 그림마저 쌍쌍바랑 똑같은데?  어떻게 일본 작가의 일본 과자 이야기를 보면서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릴 수 있는지.

 

과자 뿐 아니다. '후르츠포치란 달달한 시럽 속에 하얀 구슬과 잘게 썬 통조림 과일이 조금씩 떠 있는 것'이라는 설명을 보자마자 급식 시간에 자주 나오던 바로 그 메뉴가 떠올랐다. 요즘은 보기가 쉽지는 않지만.

 

처음 커피를 마시게 되었을 떄의 일화는 재미있다. <빨강머리 앤>에서 앤이 친구 다이애나를 오후의 차 모임에 초대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때의 앤의 기분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어른들의 방식대로 친구와 차를 마시기를 동경했듯이 작가는 커피를 마시는 어른의 분위기를 여전히 사랑한다고. 빨강머리 앤은 책도, 드라마도, 만화 영화도 몇 번이나 봤기 때문에 저 장면은 눈에 선하다. 우리는 왜 그렇게 어렸을 때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했을까.

 

홍차에 대한 일화도 서정적이다. 가난한 집에서 예술을 공부한다고 했을 때 장래가 불투명한 학교에 보내 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했기에 점심은 항상 집에서 싸온 도시락, 간식은 늘 오후의 홍차였던 검소한 대학 시절을 회상한다. '서양회화과를 전공해서 제대로 취직이나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가슴을 짓누르는 불안 속에서도 천천히 시간을 들여 한 장의 그림을 완성해야 하는 유화 수업. 초조함과 느긋함 사이에서 마시는 오후의 홍차는 바로 청춘의 맛, 그 자체였다'라고 이야기한다.

 

저자가 9~10세 쯤 새롭게 나왔다는 참치마요 초밥은, 아마도 참치마요 삼각김밥과 비슷한 맛일 것 같다. 70년대 후반에 나온 이 초밥은 날 생선을 잘 먹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모양이다. 편의점 수많은 삼각김밥들 중에서 참치마요는 가장 인기 있으면서도 가장 보편적인 제품이다. 카레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 카레를 처음 먹은 순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카레와 밥을 따로따로 받은 날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며 초등학교 4학년, 마법 램프 같은 용기에 카레가 담겨 있었던 레스토랑에 갔던 날을 떠올린다. 그러고보니 나도, 처음 카레를 먹은 순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마법 램프와 같은 용기에 담겨 있는 카레를 레스토랑에서 처음 봤던 때가 기억난다. 20대 초반이었고 좋아하는 남자아이와 처음 데이트한 날이었다. 그 날의 모든 순간 하나하나가 생소하지만 어색했고, 작가가 '모르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 필사적'이었던 것처럼, 나도 태연해 보이기 위해 필사적이었던 날이었다.

 

여러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다.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먹을 줄 안다고 생각했던 낫토가, 작가인 고향인 오사카에서는 그리 자주 볼 수 있는 음식은 아니였다는 것, 군데군데 등장한 간사이 지방의 익숙한 지명들을 보고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에 이 지방을 다녀왔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이해가 쉽게 되니까.

 

미혼인 작가는 아무래도 인생을 즐기는 여러 가지 방법을 터득한 것 같은데 그 중 하나가 여행인 것 같고, 또 하나는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같다. 이 책에 등장한 크로아티아의 대표적인 음식인 캐비지 롤, 시리아 요구르트인 페스토와 시리아식 쿠키는 정말 먹어보고 싶어서 혹시 우리나라에는 이런 음식점이 없는지 검색하기도 했다.

 

책 마지막에 저자는 말한다. 아무것도 아닌 날들이 쌓여 과거가 되는 것이고 아무것도 아닌 날에 웃고 있던 예전의 나를 추억하게 된다는 최초의 한입은 미래의 자신게에 용기를 북돋아주는 커다란 한입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고. 또 누구에게나 꼭 있는, 최초의 한입에 작가의 엄마는 몇 번이고 함께해 주었을 것이며 아이가 없는 자신은 최초의 한입을 접할 기회가 적어지는 것이라고. 하지만 잣니의 인생은 수많은 최초의 한입을 지나, 그 고리가 두터워지고 있다고 한다. 이 문장을 읽으며 나도 '가슴 안쪽이 조용히 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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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라는 생물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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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막 서른 살이 됐을 무렵이었다.

일 얘기로 미팅하는 자리에 엄마뻘인 여성이 있었다. 무슨 화제가 나와서 내가 그렇게 대답했는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자식이 없는 인생도 괜찮지 않나 싶어요."

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은 내 얼굴을 보며, 조금 화난 얼굴로 말했다.

"지금은 그렇게 말해도 꼭 낳고 싶어질 거예요."

반론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무슨 말을 해봐야 소용없다. 상대는 나보다 나이를 훨씬 많이 먹었다. 과거를 돌아보고 발언하는 사람은 당해낼 재간이 없다.

또다른 여성은 젊은 내게 이런 것을 가르쳐주었다. 일을 잘하는 멋진 사람으로 열두 살 정도 연상이었다.

그녀는 말했다.

"인생에서 아무것도 후회하는 건 없는데, 그래도 있죠, 자식만큼은 낳았더라면 좋았을 걸 싶더라고."

그떄도 역시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가만히 있었다.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 지금도 모르겠다. 숙연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온 것만 기억한다.

 

만약 엄마가 되었더라면  中

 

'여자라는 생물'에 대한 '고찰'이라고 하기에 이 책은 좀 가볍다. 그저 일기장에 끄적인 수준이라고 보는 사람이 있다면, 아주 틀린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이 든다. 작가의 수준이 그 정도라고 폄하해야 할 부분은 절대 아니다. 이미 다른 에세이와 수많은 만화들에서 세심하게 여성들의 삶과 심리를 묘사해왔기에 그런 표현은 가혹한 것 같고, 다만, 이 작가의 특성상, 본인이 겪은 삶의 작은 떨림이나 기척을 놓치지 않고 묘사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단순한 경험의 부족이 아닐까 싶다. 누군가의 딸이자 연인으로서뿐만 아니라, 아내로서, 엄마로서, 며느리로서의 이야기들이 있었더라면, 그리고 40대의 작가의 나이로서는 아직 아니지만, 어쨌든 상상으로든 누군가의 할머니로서의 이야기가 덧붙여졌다면, '여자라는 생물'은 좀 더 풍부한 책이 되었을 것 같다.

 

나 또한 꼭 결혼은 하지 않아도 되고, 따라서 자식이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쪽이지만, 직업에 따라서는 분명히 결혼과 출산, 육아라는 경험이 필요한 부분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마스다 미리의 본문 중에 나오는 저 일화의 두 선배 여성들은 단순히 삶에서의 공백을 느껴서인지는 모르지만, 마스다 미리와 같은 창작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세계가 그 이전과는 다르게 확장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정도의 세심함을 가진 만화가이자 수필가라면, 분명히 결혼을 하고 아이를 기르는 생활에 대해서는 더 수준 높은 생각을 보여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들기 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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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확실한 행복 - 무라카미 하루키가 보여주는 작지만 큰 세계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진욱 옮김 / 문학사상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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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추천의 말 中

 

이 에세이를 통해 드러나는 인간 하루키는 '일상의 미학화'를 천성적으로 깨우치고 있는 사람 같다. 어제와 동일한 오늘, 내일과 동일한 자본주의 세계의 일상은 기본적으로 반복과 관습에 의해 유지된다.

일정한 규율이나 리듬으로 체질화된 이 삶의 궤도는 사회적인 제도가 부여한 것이든 개인의 자발적인 의지에 의한 것이든 간에 타인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의 형태를 우리에게 부과한다. 이런 세계에서의 삶이란 궁극적으로는 타인의 삶을 사는 것에 불과하다.

대도시 아파트의 밤을 밝히는 텔레빈전이 놓여 있는 위치를 생각해보기 바란다. 베란다로 흘러나오는 텔레비전 불빛의 위치가 전부 동일한 것을 보고 경악과 공포, 환멸과 공허에 사로잡히지 않을 사람은 드물 것이다. 우리는 다만 이웃집에서 사용하는 냉장고를, 세탁기를, 주방용 세트를, 심지어 콘돔 기구를 사용할 뿐이다. 제 아무리 독창적이고 고유한 삶을 살고 있다고 치부하더라고 그것은 환상일 따름이다.

하루키는 누구보다도 우리가 이러한 일상의 그물을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루키라고 해서 왜 타인과 다른 자신만의 고유한 삶을 살고자 하는 욕망이 없겠는가.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이탈리아, 그리스, 터키 등으로 이어지는 잦은 여행은 이러한 욕망의 산물일 것이다.

 

그러나 하루키는 그러한 욕망을 다스릴 줄 안다. 즉 삶의 궤도나 일상의 그물을 완전히 이탈하지 않고서도 자신의 고유한 욕망을 채워나갈 줄 안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그는 매일매일 진행되는 자신의 일상 자체를 천천히 즐기면서 동일하게 반복되는 리듬에 약간의 변화를 가미하여 완전히 다른 새로운 형태의 행복을 창조할 줄 아는 것이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 제목에 끌렸다. 그리고 이 제목에 딱 어울리는 하루키의 에세이들이면서 동시에 이 에세이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제목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저 추천의 말이 바로 내가 이 수필집을 읽으면서 내내 생각했던 내용이기도 하다.

 

수필집을 많이도 냈고, 또 많은 이에게 사랑받는 하루키의 글들 중, 여기에 실린 것들은 하루키가 비교적 젊은 시절의 이야기들이다. 그래서인지 최근에 읽은 글들에 비해서는 생기발랄하다는 느낌도 들고, 약간 정제되지 않는 날것의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본인과 가족, 주변의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는데 아무래도 나이가 들면서 지킬 것(?)이 많아지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군데군데 등장하는 몇 가지의 아이디어들은 낯이 익은 경우가 좀 있는데, 최근의 수필집에서 비슷한 소재로 등장하는 경우가 좀 있었던 것 같다. 사인회를 하지 않는다거나 쌍둥이 여자와 데이트하고 싶다는 내용이나 랑게르한스섬에서 봄 냄새가 난다거나 하는 부분들이다. 몇 십년에 걸친 하루키라는 사람의 인물의 변화, 혹은 불변을 확인할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1. 한 가지 주제에 대해서 여러 번에 걸쳐 쓰는 형식을 처음 보았는데 재미있었다. 예를 들면 '지하철과 차표 분실 공포증', '지하철 표 간수의 묘책' '차표를 분실했을 때 손해를 줄이는 비결' 이렇게 세 편의 수필이 연이어 나온다. 첫번째 이야기에서는 지하철 표를 자주 잃어버리는 자신에 대해 소개하고 두번째 이야기에서는 그 대책으로 귀에다가 표를 보관하는 방법을 생각해내었으며, 세번째 이야기에서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그 방법을 중단하는 대신, 잃어버렸을 때의 손해를 최소화하기 위하여 어디를 가든 한 구간 요금의 표만 사고 목적지에 도착해 초과 요금을 지불하기로 했다며 완결된다. 이런 식의 이야기들이 종종 등장하는데 마치 만화의 다음 편을 기다리는 느낌으로 굉장히 즐거웠다.

 

2. '나는 이사하기를 좋아한다' '전학생이 부러웠던 초등학교 시절'도 마찬가지 형식인데, 이 것들은 형식 뿐 아니라 내용도 좀 재미있었던 게, 어린 시절 단 2번 밖에, 그것도 1킬로미터의 거리에 불과한 전학만을 경험하게 된 저자가 성인이 되어 이웃과의 교제, 인간관계, 그 밖의 온갖 일상생활에서의 자질구레한 일을 한수간에 소멸시켜버리는 이사의 쾌감에 빠지게 되어 굉장히 자주 이사를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인데, 나와는 완전히 정반대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이사를 자주 다녔고 그래서인지 동화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어릴 때부터 한 동네에서 자라온 친구 사이' 따위가 없어서 매우 아쉬워했기 때문이다. 여행은 좋아하지만, 내 터전이 자주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은 싫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 정말 나에게 딱 맞는 환경이 생긴다면 평생 그곳에서 움직이지 않고 살고 싶다는 바람도 있다. 치안이 잘 되어 있고, 조용하며, 동네에 맛집이 많고, 교통이 편리한 곳. 어디 없나?

 

3. '지금 '돈도 없지만, 취직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품고 있는 젊은이들은 도대체 어떤 길을 걸어가고 있을까? 한때 나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기 때문에 현재의 폐쇄된 사회 상황이 무척 걱정이 된다. 옆으로 빠져나가는 길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사회는 좋은 사회라고 생각하고 있다'

학생운동이 절정에 이른 시절 대학생이었던 저자는 혈기왕성한 세대였고, 대학 시절 결혼한 아내와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에 부모님께 빌린 약간의 돈으로 재즈 카페를 운영했던 적도 있었다. 젊은 시절의 무라카미 하루키는 아마 지금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을 것 같다. 저자 스스로 돈은 벌어야 하지만, 취직은 하기 싫었던 그 때 스스로 장사를 시작했고, 그 시절 틈틈이 쓰기 시작한 글로 지금은 전업 작가가 되어있다. 그러나 그런 인생의 선택 조차 현재 일본 젊은이들에게 주어져 있지 않고, 작가는 내심 안타까워하는 것 같다. ''안의 문장을 보면. 어디 일본 뿐일까. 이 수필을 읽으면 읽을수록 일본과 한국은 참 닮은 구석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4.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제목을 처음 볼 때부터 이 책은 나를 편안하게 했다. 여러 가지 일들로 불안하고 걱정해하고 있는 가운데, 사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고민들은 머리를 아무리 쥐어짜보았자 진전이 없으니 차라리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기운을 집중하는 것이 맞다는 것은 머리로도 가슴으로도 알겠는데 제대로 되지 않으니 답답하고 괴로운 일이다. 그러던 중 이 책을 읽으면서 나만의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아나가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세대에 대한 메시지나 제안이나 불만 같은 것은 특별히 없다.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나이를 먹어주기 바란다. 나도 그런 식으로 어떻게 어떻게 해서 남들과 같은 정도의 중년이 되었으니까 말이다'라는 부분에서는 안도감도 들었다. 비록 순간의 위안에 불과하더라도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나이를 먹다 보면 중년의 하루키를 목표로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5. '작가는 소설을 쓴다-그것이 일이다-비평가는 그것에 대해 비평을 쓴다-그것도 일이다-그리고 하루가 끝난다. 여러 입장에 있는 인간이 각자의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 가족과 식사를 하고(혹은 혼자 식사를 하고) 잠을 잔다. 그것이 세계라는 것이다.' 비평이나 비평가를 대하는 작가의 태도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냉정하게도 보이고 어떻게 보면 자기 중심이 단단한 사람이라는 느낌도 드는데 오랜 시간 동안 하루키가 최고의 작가의 자리에 설 수 있었던 이유는 마라톤을 비롯한 체력 관리, 규칙적이면서도 단순한 생활, 그리고 이렇게 비판에 주눅들지 않는 자세인 것 같다. '사실을 오해하고 있는 경우도 있고, 명백히 헛다리를 짚은 것도 있고, 노골적인 개인 공격을 한 것도 있으며 책을 끝까지 읽지 않고 썼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영문을 알 수 없는 비평도 있다. 하지만 그와 같은 모든 사정을 다 감안하더라도 작가가 비평을 비평하거나, 그것에 대해서 어떤 변명 비슷한 것을 늘어놓거나 하는 것은 도리에 어긋난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인상깊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뒤에서 또 등장하는데, 서비스하는 쪽에서는 커피 한 잔 내는 것조차 참 어렵다는 이야기이다. 너무 뜨거워도 식어도 맛이 없으며, 중간 온도를 맞춰도 크림을 넣으면 또 온도가 변한다. 게다가 좋아하는 데도 개인차가 있다고. 어떤 손님은 커피가 뜨거워 맛을 모르겠다고, 어떤 손님은 식었으니 다시 만들어달라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는 말대꾸를 하는 대신 사과하고 즉시 다시 만들어내는 것이 프로라고 쓰고 있다. 지금은 더 이상 커피를 서비스하고 있지는 않지만, 커피 한 잔에도 갖가지 반응이 있는데 소설을 받아들이는 것도 가지가지일 것이라고 기본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아마도 등단 후 독자들에 의한, 비평가들에 의한, 이런 저런 반응 때문에 한동안은 고민했을 것이고 나름대로 마음을 편하게 하는 방법을 찾은 것 같다.

 

6. '인생이란 본질적으로 불공평하고 불평등한 것이다. 어떤 종류의 사람들은 노력하지 않으면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을, 다른 종류의 사람들은 아무런 노력 없이도 손에 넣고 있다는 건 불공평하고 불평등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런 글을 쓰고 있으면 자꾸 화가 난다.' 체질적으로 살이 찌기 때문에 세심하게 몸무게 관리를 하는 상황에서 쓴 글이다. 누군가는 하루키를 보면서 비슷한 생각을 할 수도 있을 텐데. 지금의 하루키라는 작가가 있기까지는 물론 작가 자신의 노력이 있었겠지만, 노력한다고 전부 하루키와 같은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니까. 오히려 노력을 아무리 하더라도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을, 다른 사람이 노력해서 손에 넣는 것을 바라보는 심정이 더 힘들지 않을까?

 

7. '뜨거운 커피 위에 흰 크림이 푸짐하게 얹혀 있고 럼주의 향기가 탁하고 코를 찌른다. 그리고 크림과 커피와 럼주의 향기가 일체가 되어서 구수하게 누른 듯한 냄새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 문장 읽기만 해도 당장 오스트리아나 독일로 날아가서 작가가 설명한 '럼주가 들어간 커피'를 먹고 싶어진다.

 

8. 마지막으로 하루키의 '작지만 확실한 행복'은 서랍 속에 반듯하게 개켜진 깨끗한 팬츠가 쌓여 있는 것, 산뜻한 면 냄새가 나는 흰 러닝셔츠를 머리부터 뒤집어쓸 때의 기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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