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라는 생물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막 서른 살이 됐을 무렵이었다.

일 얘기로 미팅하는 자리에 엄마뻘인 여성이 있었다. 무슨 화제가 나와서 내가 그렇게 대답했는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자식이 없는 인생도 괜찮지 않나 싶어요."

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은 내 얼굴을 보며, 조금 화난 얼굴로 말했다.

"지금은 그렇게 말해도 꼭 낳고 싶어질 거예요."

반론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무슨 말을 해봐야 소용없다. 상대는 나보다 나이를 훨씬 많이 먹었다. 과거를 돌아보고 발언하는 사람은 당해낼 재간이 없다.

또다른 여성은 젊은 내게 이런 것을 가르쳐주었다. 일을 잘하는 멋진 사람으로 열두 살 정도 연상이었다.

그녀는 말했다.

"인생에서 아무것도 후회하는 건 없는데, 그래도 있죠, 자식만큼은 낳았더라면 좋았을 걸 싶더라고."

그떄도 역시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가만히 있었다.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 지금도 모르겠다. 숙연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온 것만 기억한다.

 

만약 엄마가 되었더라면  中

 

'여자라는 생물'에 대한 '고찰'이라고 하기에 이 책은 좀 가볍다. 그저 일기장에 끄적인 수준이라고 보는 사람이 있다면, 아주 틀린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이 든다. 작가의 수준이 그 정도라고 폄하해야 할 부분은 절대 아니다. 이미 다른 에세이와 수많은 만화들에서 세심하게 여성들의 삶과 심리를 묘사해왔기에 그런 표현은 가혹한 것 같고, 다만, 이 작가의 특성상, 본인이 겪은 삶의 작은 떨림이나 기척을 놓치지 않고 묘사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단순한 경험의 부족이 아닐까 싶다. 누군가의 딸이자 연인으로서뿐만 아니라, 아내로서, 엄마로서, 며느리로서의 이야기들이 있었더라면, 그리고 40대의 작가의 나이로서는 아직 아니지만, 어쨌든 상상으로든 누군가의 할머니로서의 이야기가 덧붙여졌다면, '여자라는 생물'은 좀 더 풍부한 책이 되었을 것 같다.

 

나 또한 꼭 결혼은 하지 않아도 되고, 따라서 자식이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쪽이지만, 직업에 따라서는 분명히 결혼과 출산, 육아라는 경험이 필요한 부분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마스다 미리의 본문 중에 나오는 저 일화의 두 선배 여성들은 단순히 삶에서의 공백을 느껴서인지는 모르지만, 마스다 미리와 같은 창작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세계가 그 이전과는 다르게 확장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정도의 세심함을 가진 만화가이자 수필가라면, 분명히 결혼을 하고 아이를 기르는 생활에 대해서는 더 수준 높은 생각을 보여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들기 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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