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주는 기쁨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1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영국의 펭귄 출판사가 창립 70주년을 기념하여 출간한 70권의 작품 선집 가운데 한 권이다. 이 특별판에는 카뮈, 보르헤스, 버지니아 울프, 마르케스, 피츠제럴드, 카프카 등 쟁쟁한 작가들이 포함되어 있다. 보통은 70번째 자리를 차지했다고.

 

이 설명을 본 순간 하나 떠오른 생각이 있는데, 2000년 전후였던가? 광복 이후 대한민국의 가수를 10위까지 순위를 매겼던 기사를 봤던 기억이 났다. 어느 신문사의 어떤 기사였는지, 그 순위는 어떤 기준으로 선정되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내가 기억하는 것은, 10위가 서태지였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1위~9위에는 서태지 이전의 가수들이 있겠지? 정확한 순위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 이미지와 조용필 같은 가수들이었다.

 

이 순위를 보았을 때의 나는 아직 청소년이었는데, 특별히 음악에 깊은 관심이 있지 않아서 서태지를 제외한 다른 가수들은 이름만 들어보았지 어떤 노래를 불렀는지 그게 왜 이렇게 의미가 있는지 알지도 못했고, 심지어 서태지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고 있지는 않았다. (응답하리 1994의 세대보다 내가 더 어린 세대다.) 다만 막연히 생각했던 게, 음악 대통령이라고 까지 불렸던 서태지가 10위라면 그 위의 사람들은 더 대단한 사람들이고, 거꾸로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가수들이 즐비한 가운데 현재 어린 내가 알 정도의 서태지가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10위에 올랐다는 것은 그만큼 서태지가 대단한 존재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아마 펭귄출판사에서 70명의 작가 중 마지막 70번째로 보통을 결정한 것은 비슷한 이유가 아닐까? 현대에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으면서 69명의 거장들(상당수는 이미 사망했을)과 어깨를 나란히(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바로 뒤에서 따라갈 만큼은) 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여기 수록된 아홉 편의 산문들은 대부분 이전에 쓴 여러 책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전에 '여행의 기술'이 여기에 실린 짧은 단편에서 출발했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어서 목차를 훑어보자마자 '공항에 가기, 바로 이거였구나'하고 알았다. 하나씩 읽다보니까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구절들이 등장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알랭 드 보통은 자신의 수많은 책에서 가장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담은 구절들을 선택했고, 주요 부분들을 선별하고 결합시켜 새로운 작품으로 구성했던 것이라고. 이것은 펭귄 출판사 특별판의 기획 의도에 맞춘 것이라고 한다.

작가가 직접 골라내었기에, 이 책에서는 보통의 개인적인 생각들과 주장들이 좀 더 솔직하고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현대인의 삶과 생활에 관한 예민한 성찰로 그의 열렬한 팬이 된 사람이라면 작가의 개인적인 삶을 엿볼 수 있는 내용이 있다는 것에 만족할 수 있을 것이고, 보통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이 책으로 보통의 세계에 입문할 수 있을 것이다.

 

슬픔이 주는 기쁨

이 장은 출처가 어디인지 잘 모르겠다. 아마 '여행의 기술' 아닐까? 다만 처음 출간될 당시에는 '동물원에 가기'였는데 개정되면서 제목이 '슬픔이 주는 기쁨'으로 바뀐 것을 보면 첫 출간시 가장 회자가 많이 되던 글이었나 추측할뿐이다. 제목만 보고 정호승 시인의 '슬픔이 기쁨에게'를 떠올렸다. 개인적으로는 원래 제목인 '동물원에 가기'가 더 좋은 것 같다. 직접적인 감정을 나타내는 단어가 두 가지나 들어가 있어서 글을 읽기도 전에 내용이 대강 짐작이 가기 때문이다. 원래 제목이 좀 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제목이어서 좀 아쉽다.

 

공항에 가기

이 장은 '여행의 기술'일 줄 알았는데 읽어보니 '공항에서 일주일을' 이었다. 굉장히 반가웠다.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보통의 책인데 별로 언급되지 않은 책이어서, 작가가 이 작품을 스스로 꼽았다고 생각하니 괜히 기분이 좋았다.

 

진정성

이 장은 읽으면서 사랑  3부작 중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였다. 한번 더 읽어보고 싶다.

 

일과 행복

이 장은 '일의 기쁨과 슬픔'이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죽 읽어보니까 아닌 것 같다. 아무래도 '불안'의 일부인 것 같다. 이런 반전도 재미있다.

 

동물원에 가기

이 짧은 글은 보통의 어느 책에서 나왔는지 모르겠다. 아마 내가 읽지 않은 책이겠지.

 

독신남

'여행의 기술' 아닐까?

 

따분한 장소의 매력

비슷한 구절을 스치듯 본 것 같기는 한데 원 출처가 어디인지 모르겠다.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 같기도 하고,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같기도 하고 '너를 사랑한다는 건' 같기도 하다.

 

글쓰기(와 송어)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희극

이건 '불안'이 맞는 것 같다. 다른 것은 몰라도 저 외과의사에 대한 비유를 보고 확신하게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찾아보니 내가 쓴 마이리뷰에도 저 구절을 적어 놓았다. 동일한 제목으로 원래의 책에도 분리되어 붙여져 있다. 괜히 뿌듯해진다.

 

 

출처를 모르는 글들은 어떻게든 출처를 알고 싶어서 이리저리 검색을 하게 되고, 막상 또 출처를 알겠는 글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게, 내가 이 책을 읽을 때 이 구절을 인상깊게 읽었었나, 왜 그 당시에는 다른 구절은 적어놓았어도 그 구절은 적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면 내가 책을 읽는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하다. 희미하게 실체만 알 뿐, 정확한 구절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과연 내가 그 책을 내 것으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아쉬움. 그리고 막막함. 어린 시절 학교 도서관에 있는 책을 전부 다 읽고 졸업해야지, 했던 생각은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깨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점점 자라면서 세상에는 정말 많은 책들이 있고, 아무리 열심히 읽어나가도 내 머리에 남는 게 없다면 그게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그러나 구절 하나하나가 생각이 나지 않아도 대강의 느낌으로 일단 읽은 책의 출처를 알아맞추었듯이, 그동안 읽은 책들이 내 뇌의 어느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으면, 아무리 깊숙이 있어도 어떠한 자극을 통해 밖으로 발현되는 날이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물론 평생 쓰지도 못하는 것들도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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