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고통 이후 오퍼스 10
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 이후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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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슬픔을 너무 아름답게 찍었어요. 예술애호가입네 하고 잘난척 떠드는 작자들은 아름답다고 찬사를 보내겠지만 사진 속 인물들은 슬프고 외로워요. 근데 사진은 세상을 아름답게 왜곡시키죠. 따라서 이 전시회는 말짱 사기극인데 우습게도 사람들은 거짓에 열광하죠."

 

영화 <클로저>에서 나탈리 포트먼이 줄리아 로버츠의 사진전에 가서 한 말이다. 영화의 중심 내용과는 크게 상관없고, 캐릭터의 특징을 보여주기 위한 장면이었는데, 이 책을 보면서 내내 그 생각이 났다.

 

수전 손택은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이며, 미국의 대표적인 지성이기도 했다. 이 책은 2003년에 나온 책으로, 그 다음해 사망한 수전 손택의 마지막 책이다. 내가 읽은 수전 손택의 첫 책이기도 하다. 아직까지는 유일한 책이지만, 아마 좀 더 읽게 되지 않을까 싶다.

 

타인의 고통을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 수많은 참사를 다룬 사진을 보면서, 우리는 사진 속 인물의 고통에 연민과 동정을 보내지만, 과연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또 그 사진이 충실하게 현실을 재현했다고 할 수 있을까? 내가 너의 아픔을 알고 있어, 라는 태도가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 나이가 점점 들어가며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9.11 테러 직후 나온 이 책은, 그 내용 때문에 미국 내에서도 상당한 비판을 받았다고 한다. 책의 내용이 두껍지는 않지만, 정확히 필요한 말만 들어가 있으며 모자람이 없다. 한국판에만 실려 있다는 사진 자료도 훌륭하고, 원서에는 없는, 수전 손택이 별도로 기고했던 글 네 편도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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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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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는 먹을 것이 넘쳐나서 사람들이 비만을 걱정하고 한쪽에서는 음식 쓰레기도 마구 버리는데, 아프리카나 아시아, 라틴아메리카의 많은 나라들에서는 아이들이 굶어 죽어가는 것은 왜 그런 것일까?

 

한번쯤은 궁금해했을 문제이다. 또 이런 생각도 해 보았을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음식이 남아돌아서 문제가 되는데, 이 음식을 후진국에 값싸게 팔거나, 아니면 아예 무상으로 원조하면 서로 좋은 일이 아닐까?

 

이 책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이다. 아니, 답이라기보다는 질문을 제시한다고 해도 맞을 것이다.

 

내가 어렸을 적, '사랑의 빵'이라는 것이 있었다. 빵 모양의 저금통으로, 가정집에서 저금통에 동전을 모아 기아에 시달리는 소말리아 아이들을 원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독실한 크리스찬이었던 친구네 식탁 위에 올려져 있던, 꼭 진짜 빵 처럼 생겨서 먹음직스럽게 보이던 그 저금통이 아직도 기억난다.

 

중학교 때, '기아체험 24시간'이라는 것도 있었다. 실제로 단식을 하면서 간접적으로 굶주림에 시달리는 나라에서 살고 있는 국민들의 고통을 느껴보자는 취지로 매년 하는 행사였는데, 아마도 봉사활동이 몇 시간 인정되었기에, 상당히 많은 청소년들이 참가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과연 세계의 기아 문제는 얼마나 해결이 되었는지가 의문이다. 지금도 지구 곳곳에서 먹지 못해 죽어가는 사람들은 수두룩하다.

 

이 책이 1판 1쇄 발행은 2007년이다. 2010년에 26쇄가 발행되었다. 지금은 2015년이다. 이 책은 1999년 프랑스에서 처음 출간되었다. 1999년에 저자가 제기한 이 책의 문제들은, 2015년인 지금까지도 현재진행중이다.  어린 시절, 소말리아에 보내기 위한 사랑의 빵 운동과 기아체험 24시간이 아직도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는 것처럼.

 

사실 이 책의 내용은, 내 나이 정도의 어른이라면 아주 생소한 내용은 아니다. 왜 선진국의 남아도는 음식들을 후진국에 지원하는 게 힘든 것인지, 실제로 우리가 지원을 하게 되면 그게 그 나라 국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될 수는 있는 것인지에 대한 내용들은, 이미 이전에 어떤 형태로든 약간의 지식은 쌓여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 책에 나오는 나라들이 책 본문 앞에 지도로 표시되는데, 그 나라는 칠레, 브라질, 세르비아, 부르키나파소, 세네갈, 기니, 시에라리온, 라이베리아, 앙골라, 콩고민주공화국, 사헬지방, 그루지야, 이라크, 수단, 에리트레아,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르완다, 러시아, 캄보디아, 필리핀, 그리고 북한이다. 이런 나라들의 공통점은, 군부에 의한 독재가 지속되거나, 계속되는 내전으로 대다수 민중들의 삶이 소수의 몇몇을 위해 희생하고 있으며, 인프라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고, 국제적인 원조를 받을 경우 상당수의 구호물자가 그 나라 국민이 아닌 지배층으로 흘러간다는 여러 정황이 있다는 것이다. 또, 국민들이 기아 상태에 놓인 그 상황이 그 나라 지배층에게는 통치 수단으로, 다른 나라 입장에서는 그 나라에 대한 압박 수단으로 작용할 때도 있으며, 때때로 지배층의 자존심이나, 명분이 앞서면서 다른 나라가 자국민에 대해 원조하는 것조차 막는 경우도 있다. 여러 나라들을 살펴보면 일반적으로 도출되는 점들이면서, 또 역으로 이 결론들이 어떤 나라에 대입해도 상당 부분에 대한 설명이 가능하다. 적어도 우리 세대는, 북한에 대해 교육 과정에서 상당 부분 학습하였다. 따라서 다른 나라는 몰라도 북한에 대한 원조의 바람직한 방향, 그리고 현재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등에 대해서는 이미 학습이 되어 있으며, 그런 지식의 연장선 상에 이 책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좀 더 어린 친구들,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인 아이들이 읽으면 더 좋을 책이고, 대학생 정도만 되더라도 이 책 보다 더 깊이 있는 책을 보아야 할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문답 형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이해가 어렵지 않으며, 저자가 사회학자이자 스위스 사회당 의원이었고,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일한 경력이 있기 때문에 이론과 실재가 잘 쓰여져 있는 좋은 책이다. 따라서 입문서로는 아주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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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시대 - 1920년대 초반의 문화와 유행
권보드래 지음 / 현실문화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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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만 훑어보아도 흥미롭다.

 

머리말
서론|연애라는 말

기생과 여학생
구여성과 신여성
연애와 독서
연애 편지의 세계상
육체와 사랑
연애의 죽음과 생

결론|연애의 시대 또는 개조의 시대
보론 1 연애 이전의 연애 : 1900년대식 열정과 자유 결혼론
보론 2 연애 바깥의 연애 : 연애열의 시대와 한용운의 '님'


인용 소설 목록
그림 목록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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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을 6개의 주제로 나누었고, 각각의 주제 또한 흥미로워서 꼭꼭 씹어먹고 싶다는 느낌이 든다. 결론과 보론 1, 보론 2, 그리고 '주'에 해당하는 부분만 30쪽이 넘어서 전체적으로 훌륭한 논문을 읽은 느낌이다. 논문이라면 어려울텐데, 이 책의 내용의 핵심이 '연애'라서 머리를 쥐어뜯거나 중간중간 멈춰야 할 만한 주제는 아니다. 마치, 달콤한 케이크의 꼼꼼한 레시피, 혹은 초콜릿의 역사나 아이스크림 일대기 등을 보는 느낌이랄까. 물론, 케이크나 초콜릿이나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과, 그것에 대한 책 한 권을 읽는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 이 책도 마찬가지. 책의 두께는 전부 300쪽이 되지 않는 데다가 사진 자료가 많아서 글자가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마냥 쉬운 책은 아니다. 다만, 고등학교 때 선택 과목으로 근현대사를 공부했었는데, 당시에 어렴풋이 느끼기에도 근현대사 교과서는 다른 과목의 교과서와는 좀 다르다는 생각을 했었다. 사진 자료가 많고, 상대적으로 가까운 과거인데다가, 급변하는 시기라서 흥미로웠다. 이 책을 보면서 오랜만에 그 당시 생각이 많이 나기도 했고, 고등학생들이 한번쯤 읽어보면 당장 성적에 도움은 되지 않겠지만 충분한 지적 유희는 되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그 당시 읽었더라면 더 재미있을 것 같았다는 생각도 있었고. 연애를 다루지만, 책은 다소 건조하고 딱딱한 편인데, 교과서에 비하면 훨씬 말랑말랑하지만 이 시대를 다룬 수많은 책과 다양한 영상물들에 비하면 좀 뻑뻑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왠지 나른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어떤 것에라도 눈을 돌리면 죄를 짓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고교 시절 이 책을 읽었더라면 훨씬 재미있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대학에 온 후 이 시대를 다양한 경로로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책에 실린 내용들이 큰 인상을 주지는 않았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떠올렸던 것은 <경성스캔들>이라는 드라마. 조선의 마지막 여자라는 별명을 가진 한지민, 기생이었던 한고은, 조선 총독부 관리인 류진, 모던 보이 강지환이 등장하는 드라마로, 극단적인 윤리관이 충돌하고 극단적인 역사인식의 차이가 공존했던 시기를 항일무장투쟁의 역사와, 경쾌하고 발랄한 청춘 로맨스의 두가지로 그려냈는데 서로 다른 요소들이 붕 뜨지 않고 서로서로 잘 융합되어 유쾌하면서도 애잔한, 참 좋은 드라마였다고 기억한다. 바로 이 책에서 그리고 있는 그 시대, 그리고 똑같은 주제에 대해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연애란, 일종의 수입품이다. 서양 문물이 들어오면서, 연애라는 개념도 함께 유입되었고, 이른바 '글로 익힌' 연애가 한국적 상황에 이식되어 가는 과정의 첫단계를 보여주는 책이다.

이상적 아내, 이상적 남편, 그리고 둘이 꾸민 스위트홈은 전근대의 가족 질서에 대한 도전이었다. "경치도 좋고 깨끗한 집에 피아노 놓고 바이올린 걸고 선형과 같이 살 것이다. 늘 사랑하면서 늘 즐겁게......"(『무정』)라는 풍경 속에 수직적 질서의 자리는 이미 없다. 1910년대 이후 새로 개발된 `행복`이라는 가치는 1920년대에 일반화된 `스위트홈`의 이상 속에서 현실태를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연애는 한편으로 비극과 열정을 상기시켰지만, 다른 한편 안락한 이국풍 생활을 설계하게 했다. 이층 양옥에 부부가 단란하게 피아노 놓고 살면서 때로 노래 부르고 때로 함께 시를 읽는 생활이 바로, 1920년대의 많은 젊은이들이 꿈꾼 생활이었다. 게급이 발견되고 민족적 현실이 역설되면서도 이 무국적의 동경은 사라지지 않았다. 애정이 충만한 젊은 부부만의 생활-신여성은 그 풍경의 중심이어야 했다. 중등 이상의 교육이라든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패션은 신세계에의 진입을 약속하는 기회에 불과했다.

"애인을 위하여 살고 애인을 위하여 죽는다는 것", 이 욕망은 1920년대 초부터 `연애`가 감추어 두고 있던 욕망이고 했다. 죽음에 직결되어 있는 열정만큼 개인의 존재를 두드러지게 하는 것은 없었다. 1920년대 이후 각기 고유한 개성과 천재, 그 근거로서의 정과 내면이 강조되면서부터 생겨난 사랑에의 갈구가 죽음이라는 새로운 유로를 찾았을 때 등장한 결과가 연애 자살이요 정사였다. 열정이 개성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죽음이 단독성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낭만화되기 시작했을 때 등장한 독특한 결합이 자살과 정사였던 것이다. 외국 소설의 독서를 통해 이 독특한 고안에 친숙해져 있었다는 사정 또한 작용했으리라 짐작된다. 다눈치오의 『프란체스카』나 『사의 승리』는 모두 정사라는 파국을 묘사하였고 아리시마 다케오의 단편 「선언」 역시 폐병으로 함께 죽어가는 연인을 제시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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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바뀌고 있는가 - 150명의 지성에게 물었다
존 브록만 엮음, 최완규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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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존 브룩만이라는 이 책의 엮은이는, 엣지 재단의 창설자로, 매년 세계 석학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모아 해마다 출판하고 있다. 2010년의 올해의 질문은, "인터넷이 당신의 사고방식을 어떻게 바꾸어놓고 있는가?"였고, 거기에 대한 답을 모아 엮은 책을 번역한 책이 이 책이다.

 

2. 이 책의 원제는 Is the internet changing the way you think? 이다. 즉, 책의 제목이 상당한 의역을 거쳤다고 볼 수 있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터넷, 당신, 생각이다. 즉, 인터넷이라는 것이 당신 개인에게 있어서 어떻게 생각하는 방법을 바뀌었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의역된 제목처럼 '우리는 어떻게 바뀌고 있는가'라고 질문했다면 거시적이며 일반적인 답변이 나왔을 것이다. 엣지 재단에서는 그 대신 질문을 받는 '당신'에 대상을 국한시킴으로써 포괄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개인적인 이야기가 나올 수 있었고, 그 결과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3. <이기적 유전자>의 리처드 도킨스, <몰입의 즐거움>의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총, 균, 쇠>의 제레드 다이아몬드 등 이 질문에 답한 지성들의 면면은 화려하며, 흥미롭다. 이들의 답변은 길게는 11쪽, 짧게는 단 4줄까지 길이와 내용, 다루는 범위의 넓이와 깊이도 다양하다. 반드시 앞에서부터 차례차례 읽을 필요는 없으며, 목차만 훑어보고 흥미있는 부분만 띄엄띄엄 읽어도 될 것 같다. 물론 앞에서부터 차례차례 읽어가면서 인상 깊은 부분은 다시 반복해서 읽는 편이 이 책의 내용을 머릿속에 박아넣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어차피 정답이 없는 문제 아닌가? 세계적 지성에게 동일한 질문을 하였는데 이렇게나 다양한 답이 나올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답변의 효용성, 혹은 미래 사회의 예측에 대한 정확성에 대해 굳이 탐구하듯이 읽을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현재 사회에 대한 진단도, 결국 시간이 흐르고 이 시간이 과거가 되어야만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니까.

 

4.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이지만 대중을 상대로 한 책이기에 읽기에 어렵지 않다. 지루해지기 전에 금방 화자가 바뀌기 때문에 집중도가 떨어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세계적 지성이 주는 무게감에 비해, 그리고 이 책의 물리적인 두께와 질문의 심오함에 비해, 그다지 책 자체는 임팩트가 없었다. 그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았는데 이 책의 핵심 주제, 즉, 인터넷이 어떻게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었나, 라는 명제에 대해서 내가 해당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냐면, 인터넷이라는 것이 처음 생겨난 때는 몇십 년 전이라 하더라도 우리나라에 급속도로 보급된 것이 1990년대 후반일텐데, 그렇다면 이미 내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인터넷이란 용어가 더 이상 '신기한' 뭔가가 아니었고, 중학교 시절부터는 이미 지금과 비슷한 수준의 인터넷 환경에서 생활을 했기 때문에 나 자신 그리고 내 또래들에게 있어서 인터넷은 특정한 시점을 기준으로 나라는 사람의 가치관이나 사고 방식, 행동 모습 등을 바꾼 적이 없기 떄문이다. 머리가 굵어지고, 스스로의 판단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사고를 하기 시작하는 사춘기 이전부터 나는 인터넷을 접했기 때문에, 그 이전의 사회에 대해서 기억은 할 지언정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5. 만약, 스마트폰이 나를 어떻게 바꾸었나?를 주제로 삼는다면 어떨까? 내가 중학교 시절, 드물게 반에서 한 두 명 정도 휴대폰을 가지고 있었고, 고등학교 시절, 상당수의 아이들이 휴대폰을 소유했으며, 내가 대학에 입학하고도 몇 년이 지난 후에야 스마트폰이 처음으로 출시되었다. 현재 30대인 전세계 사람들에게, 예를 들어 세계 유수 기관의 연구원들, 명문 대학의 박사과정 학생들, 미래가 기대되는 작가들, 촉망받는 음악가들 등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면, 비록 그 깊이나 통찰력은 떨어질지라도 이 책보다는 더 나에게 흥미를 주었을 것이다. 사실, 인터넷이 어떻게 우리 삶을 바꾸었나?와 같은 명제는 나에게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유럽 역사를 어떻게 바꾸었나? 와 다를 게 거의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미래는, 어쩌면 말하는 사람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오지 않을 시간일 수 있지만, 아마도 나에게는 멀지 않은 시간, 다가오고 있는 현재일 수 있기 때문에 세계적인 석학들임에도 불구하고 그 생각에 있어서는 나와는 온도차가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답변이 개인의 경험에 기초하였기 때문에 주관적이며, 짧다는 것도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깊이있는 사유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미래를 예측하는 이들의 생각이 맞을 지도 의문스럽고, 설령 맞는다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짤막짤막하게 진단하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결국 어떻게든 큰 변화를 겪는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며, 그 변화 앞에서 개개인이 할 수 있는 행동은 제한되어 있다는 것도 분명한 진실일 텐데.

 

6. 나에게는 인터넷 이전 시절이 마치 TV 이전 시절, 라디오 이전 시절, 금속활자 이전 시절 처럼 똑같은 과거라면, 양쪽을 전부 경험해 본 사람들이라면 어떨까? 그 변화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고 버티어가면서 기존의 생활 양식을 어떤 방향으로든 수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의 막막함과 좌절감은, 짐작하기가 힘들다. 우리 아버지같은 경우 스마트폰을 좀 늦게 가지신 편인데, 한번은 젊은 직원들과 식사를 하다가 특정 사건을 언급하면서 그게 몇년도에 일어난 사건이지~라고 이야기하니까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던 한 직원이 바로 그 자리에서 검색해 보고는 아, 맞네요~ 대단하세요~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정작 아버지는 그 상황에 놀랐다고. 아마도 격세지감을 느끼시지 않았을까. 그러면서 정확하게 암기를 한다는 것은 이제 그다지 장점이나 특기가 될 수 없다는 그런 의미의 말을 하셨던 것 같다. 소싯적에 암기, 특히 연도와 숫자에 관한 결벽에 가까울 정도의 정확성을 추구하시던 아버지꼐서는 그때 어떤 느낌이었을까. 이 책에서도 많은 학자들이, 많은 작가들이, 뭔가를 쓸 때마다 컴퓨터를 켜 놓고 사실 확인을 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너무나 많이 나온다. 나에게는 놀랄 것도 없는 이 당연한 사실이, 몇 십 년전부터 도서관과 필기한 노트를 뒤져가며 연구를 해 오던 세계적인 석학들에게는 분명히 언급하고 넘어가야 할 만큼 놀라운 사실이리라.

 

7. 대략적으로 이 책의 대답은 크게 네 가지로 분류된다. 첫번째, 인터넷은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었다. 두번째, 우리의 생각하는 방식이 인터넷을 만들어낸 것이다. 즉, 첫번째와는 화살표의 방향이 다를 것이다. 세번째, 대체 이 질문의 의미는 무엇인가? 네번째, 잘 모르겠다.

 

8. 150명의 석학 중 내가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대략 70퍼센트 이상이 첫번째의 의견을 보인 것 같다. 여기서도 의견이 또 갈린다. 7과 구분하기 위하여, 1-1. 인터넷을 우리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1-2. 인터넷은 우리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사실 이 두 가지에 대해서는 굳이 석학의 의견을 빌리지 않아도 우리 수준에서 알만한 것이 너무 많다. 정보의 접근성, 정치의 민주화, 불평등의 심화, 사생활 침해, 사유 능력의 상실, 비용의 절감, 급속화된 세계화, 판단력의 부재 등등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라면 한번쯤 다 접해보았을 말들이며, 그 중 몇가지는 우리가 피부로 느끼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9. 어찌 보면 대동소이한 이야기들이다. 누가 무슨 주장을 했는지가 중요하지 않다. 비슷비슷한 이야기가 반복되어서 각 이야기들 간에 구별은 필요없어지고, 책의 절반쯤 오면 속도가 붙는다. 그 중에서도 물론, 빛나는 몇몇 조각글들이 있다. 과학사학자이자, 기계 속의 다윈Darwin among the machines의 저자인 조지 다이슨George Dyson의 글이 특히 그렇다. 알류트족Aleuts의 카약kayak과 틀링깃족Tlingit의 카누canoe의 비교. 절묘한 비유로 단 한 페이지에 압축적으로 주제가 들어간다. 어느 쪽이 옳은 방향인지에 대한 판단은 유보했는데, 아마도 저자 스스로 확실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그것도 매력적이다. 다만, 저자의 심정만 정확히 세 문장으로 묘사했다. 분량이 제한되어 있는 밑줄긋기에 본문 전체가 다 들어갈 정도로 짧지만 단단한 글이다.

 

10. 그 외에도 인터넷은 행태를 바꾼다 _ 시리언 섬너Seirian Sumner의 글이 개인적으로 좋았다. 런던동물원, 동물학연구소 진화생물학 연구 교수인 그는 "change"에 초점을 딱 맞춘 글을 썼다고 생각한다. 전공이 진화생물학인만큼, 원시 사회의 인간과 지금의 인간의 행태를 비교한 점도 좋았다. 독립 연구가이자 이론가인 주디스 리치 해리스Judith Rich Harris의 단 5줄짜리 글도 좋았고. 그녀가 썼다는 개성의 탄생No Two Alike: Human Nature and Human individuality도 궁금해졌고. 프리폼프로덕션컴퍼니FreeFormProduction Company 설립자인 제시 딜런Jesse Dylan의 글도 흥미로웠다. 영화제작자이면서 의학 사이트 Lybba.org의 설립자인데 전혀 공통점이 없어보이는 두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예를 든 일화도 글쓴이의 이력을 닮았는데, 시신경 척수염의 진단 방법이 발견된 일화를 통해 서로 다른 분야의 상호작용의 긍정적인 결과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다양한 분야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상호작용이 너무나 손쉽게 이루어지는 인터넷이 얼마나 세상을 바꿔놓을 수 있는지 실감이 들었다.

카약 대 카누-조지 다이슨
북태평양에서는 작은 배를 만들 때 두 가지 방법을 썼다. 알류트족 등 카약을 선호하는 부족은 나무 한 그루 없는 황량한 땅에 살며 해변에서 주워 모은 나무 조각으로 골조를 세워 배를 만들었다. 틀링깃족 등 나무 속을 파낸 카누를 선호하는 부족은 우림지대에서 나무를 통째로 실어와 카누만 남을 때까지 구석구석 파내 배를 만들었다. 정반대의 방법을 사용했지만 알류트족과 틀링깃족의 성과는 비슷했다. 최소한의 재료로 최대한의 배를 만들어낸 것이다. 인터넷으로 봇물이 터진 정보의 홍수도 비슷한 문화적 분열을 초래했다. 우리는 과거 카약 제조에 익숙했다. 가능한 모든 정보 조각을 주워 모아 물에 뜰 수 있는 골조를 세웠다. 이제는 속을 파내는 카누 제조법을 배워야 한다. 불필요한 정보를 솎아내 그 안에 숨겨진 지식의 속살을 드러내야 한다. 눈에 보이는 족족 나뭇가지를 주워 모으도록 훈련받은 나는 뼛속까지 카약 제조에 익숙하다. 새 기술을 배워야 하는 현실이 정말 싫다. 하지만 배우지 않으면 카누가 아닌 통나무에 올라타 노를 젓는 신세가 되리라.

"하루 24시간 일주일 내내 열려 있는 채팅방이 사라진다고?"
"그럼 어떻게 새 친구를 사귀는데?"
"외국 나간 친구들이랑 어떻게 연락하는데?"
"사람을 진짜로 만나서 직접 물건을 사야 한다는 뜻이잖아!"

낯선 것에 대한 경계와 의심은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인간의 습성이다. 자리를 빼앗겨 자원을 도둑맞지 않기 위한 생존 본능이다. 전혀 낯선 사람까지 스스럼없이 보듬어주는 등 무분별한 행동을 부추긴다는 것도 인터넷의 특성이다. 며칠 전, `시리언Seirian`이라는 성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인 페이스북 그룹에서 초청 메시지를 받았다. 이걸 뿌리칠 수 있을까? 어림없는 소리! 내가 어딜 가서 열일곱 명이나 되는 시리언 성을 가진 사람을 만나겠는가. 마침내 여러 시리언이 참여하는 가상 네트워크에 연결된 노드가 될 기회가 온 것이다. 왜 가입했느냐고? 잃을 게 없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는 데다가, 현재 소셜 네트워크와 무관한 전혀 다른 사람들의 무리에 끼어보면 어떨까, 호기심이 생기기도 했다. 더 친근한 인연을 만들수록 잠재적인 보상도 커지기 마련이다.

페이스북 시리언 친구들이 가상 세계가 아니라 실제로 우리 집을 불쑥 찾아와 현관문을 두드렸다면 과연 내가 가입했을까? 역시 어림없는 소리다. 지나치게 공격적이고 사적이며, 자칫 큰 대가를 치러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내가 어디 사는지도 아는데, 전기 코드 뽑듯 간단히 인연을 끊을 수도 없다). 선조들의 행태와는 다르게 우리는 온라인에서 사생활 침해를 용인하며, 인터넷의 성공은 그런 습성 변화에 기대고 있다. 연결성은 사생활 침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하지만 그 덕분에 정보 습득과 전송이 크게 향상된다. 페이스북 친구들도 처음에는 연결이 끊기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출발했지만, 좀 더 고민해본 다음에는 인터넷이 어마어마한 자원이며 전통적인 정보 저장 및 전송 수단으로서 대체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인터넷이 없으면 원하는 걸 어떻게 찾지?"
"정보에 아예 접근을 못하게 되잖아."
"실제로 쇼핑을 가고 도서관에 가야 한다는 거야?"
"너무 느려."
"삶이 작아지겠지."

인터넷은 지식 및 연결에 대한 갈망뿐 아니라 우리가 온라인에서 놀라울 정도로 헤프게 베푸는 온정에 의존하기도 한다. 그만큼 우리는 인터넷에서 과도한 애타심을 드러낸다. 생판 모르는 낯선 사람에게 조언하거나 다른 사람의 지식을 채워준답시고 익명으로 위키피디아에 기여하며 몇 시간씩 허비한다. 보답이 뒤따를 거라는 보장도 없고 기대도 하지 않는다. (은행 관련 정보든 음악적 성향이든) 개인 정보까지 내걸고 친구를 사귀고 낯선 사람을 믿는 것은 자연스럽게 경계심부터 내세우던 선조들의 행태에 배치되는 인터넷 사용자의 기본적인 성향이다. 우리가 페이스북을 통해 기꺼이 내주는 데이터는 전체주의 정권의 비밀경찰이 애를 써서 얻어내려는 천금 같은 정보다. 낯선 사람에 대한 의심(또는 인식)이 느슨해져 (무분별할 정도로) 애타심을 발휘해 우리의 자원을 나누어주고 그 대가로 더 큰 것을 얻곤 한다.

처음에는 나 스스로 인터넷 이전의 경험이 워낙 적어 이 질문에 답하기 어려울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인터넷에 접속할 때마다 사뭇 다른 유기체로 초고속 진화를 거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터넷이 꼭 우리의 사고방식을 바꾸어놓으라는 법은 없지만, 행동을 변화시켜 사고 형성과 방향에 영향을 주는 것만은 분명하다. 오프라인에서 우리는 은밀하고, 인색하며, 사생활을 강조하고, 의심이 많으며, 자기중심적일지 모른다. 온라인에서는 박애주의적이고, 온정을 베풀며, 상냥하고, 친근하며, 위험할 정도로 타인에 대한 경계심이 없다. 오프라인 세계라면 온라인 행태는 자연도태되고 말 것이다. 아무도 협력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낯선 사람이 대뜸 친구를 맺자는 데 기꺼이 응하거나 온정을 베풀 사람은 없다. 마찬가지로 오프라인 행태는 온라인 세계에서 통하지 않는다. 자신을 조금이라도 양보하지 않으면 자원에 접근하기가 어려워지기도 한다.

우리의 인격마저 바뀌는 이유는 인터넷이 게으른 현실 도피를 위한 관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마우스 한 번 움직이면 우리 행동의 결과가 현실이 아닌 듯한 세계에 들어설 수 있다. 온라인 및 오프라인 인격이 얼마나 다른지는 당연히 저마다 정도 차이가 있을 것이다. 가장 극단적인 온라인 삶은 말 그대로 무사태평한 환상의 세계일 것이다. 세컨드 라이프의 환상 속 세계에서 무결점 아바타를 통해 대리 경험을 만끽하며 살지도 모른다. 오프라인 자아가 부대끼는 현실의 무료함과 고달픔에서 도피하기에 이보다 좋은 방법이 또 있을까?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행태 변화는 적응 가능한 것일까? 우리는 궁극적으로 주어진 환경에 최대한 적응해 도태되지 않으려고 애를 쓰게 된다. (말이든 글이든) 의사소통 기술을 사용해 서로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태도를 바꾸도록 남을 설득한다. 우리 선조들 역시 원시적인 구두 의사 소통 방식과 상형문자를 설득의 도구로 삼았다. 인터넷은 인류 의사소통 역사에서 세 번째 위대한 돌파구이며, 그런 자원을 충분히 활용하려면 유연한 행동이 필수적이다.

결론을 내려보자. 인터넷은 접속할 때마다 내 행동을 바꾸어놓는다. 그런 과정에서 내 사고방식에 영향을 준다. 과감하고, 장난스러우며, 충동적이고, 상호작용을 즐기는 온라인 인격체는 내가 오프라인 테두리를 벗어나 생각하도록 부추긴다. 나는 인터넷에 맞게 생각한다. 인터넷의 지식을 사용해 내 사고에 영감을 주고 기존 사고를 흔들어놓는다. 이 에세이가 그 생생한 증거다. 페이스북이 내 사고에 불을 지피고, 이 에세이의 밑거름이 되었다. 인터넷이 없었다면 에세이를 쓰지 못했을 것이다.

`딱 좋아`의 기쁨-주디스 리치 해리스
인터넷이 정보를 쏟아내는 본새는 케첩 병이 케첩을 쏟아내는 본새와 다르지 않다. 처음에는 너무 적다 싶더니 이젠 너무 많다.
그 중간쯤에 잠시나마 마음이 편해지는 `딱 좋아`의 순간이 있었다. 내게는 10년가량 지속되었다.
내 인생 최고의 시기였다.

메이요클리닉Mayo Clinic에서 시신경 척수염neuromyelitis optica(NMO, 데빅 병Devic`s disease 또는 데빅 증후군Devic`s syndrome이라고도 알려져 있다)이라는 희귀병에 관한 영화를 만들 때였다. 이 병의 진단 방법이 발견된 경위에 관해 들었다. 다발성 경화증multiple sclerosis 전문가가 한 심포지엄에서 연설하는데, 암 연구 학자가 듣고 있었다고 한다. 이런 우연 덕분에 진단법이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보아하니 절대 우연이 아니다. 누군가(메이요클리닉을 세운 메이요 형제일 수도 있다)가 심포지엄을 다양한 분야의 연구 학자와 의사가 참석하는 행사로 만들어 그런 교류가 가능한 시스템을 수립한 덕분이다. 그런 사람과 아이디어가 합쳐질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기에 진단법이라는 통찰을 얻게 된 것이다. 또 그 덕분에 희귀병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는 등 긍정적인 결과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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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의 배신 - 긍정적 사고는 어떻게 우리의 발등을 찍는가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배신 시리즈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전미영 옮김 / 부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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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보고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은 오프라 윈프리도, 말콤 글래드웰도, 조엘 오스틴도 아니었다. 이른바 행복 멘토라고 불렸던, 한 여성 유명 인사가 몇 년 전 유명을 달리한 사건.

 

그 사건이 충격이었던 것은, 평범한 가정주부를 지내다 활발한 방송활동을 통해 '행복전도사'라는 별명을 얻었고 수많은 저서를 통해 절망에 빠진 현대인들에게 죽기 바로 직전까지도 행복과 긍정을 강조했다는 점이었다. 함부로 고인을 욕되게 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고인이 유서에서 직접 밝혔듯이 70여가지의 통증은 겪어보지도 못했으면서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해서도 안 될 일이다. 다만, 무한한 긍정이라는 것, 그 한계라는 게 너무나 아프고 따갑게 느껴질 뿐이다. 이런 저런 언급도 이미 돌아가신 분께는 참 죄송한 일이지만, 조심스럽게 생각해보게 된다. 스스로 주장했던 긍정의 힘, 오히려 그것이 그분의 족쇄가 되지는 않았을까. 오히려 스스로 규정한 그 틀에서 벗어났더라면, 안타까운 그 결말만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 책은 저자가 유방암을 선고받은 사건에서 출발한다. 다른 환자들에게서 '암은 축복'이라는 식의, 극도의 긍정적인 태도를 목격하면서 미국에 얼마나 긍정주의가 깊숙이 퍼져있는지 확인했고, 사회 곳곳에서 이른바 긍정 이데올로기가 어떤 방식으로 활개를 치고 있으며, 그 실상과 결과를 보고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암은 축복'이라는 부분은 정말 경악할 노릇이지만,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한국 또한 미국 못지 않게 긍정의 힘에 대해 노래하는 나라이다. 그 유명한 시크릿이라는 책, 처음 보았을 때 대체 이런 책이 어떻게 베스트셀러가 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낙관주의, 긍정주의를 믿고 싶어하는 대중의 심리가 일정정도 존재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이 책에서 소개하듯이, 긍정적으로 행동하는 법을 다룬 최초의 역작인 카네기 인간관계론이 출판된 것이 1936년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좋은 면만을 보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의 무의식적인 본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저자는 그 부분에 대해 긍정적 사고의 핵심에 깊은 무력감이 놓여있다고 설명한다.

 

이런 긍정적 사고를 확산시키는 것에는, 이른바 돈냄새가 나는데, 흔히 말하는 동기 유발 사업의 시장 규모는 대략 200억 정도라고 이 책은 추산하고 있다. 기업 뿐 아니라 초대형 교회, 대중 매체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무한긍정주의가 판을 치고 있는 것이다. 엉망진창인 현실, 바뀌는 길은 요원해보이고, 그렇다면 그것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바꾸는게 사실상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어차피 바뀌지 않을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이라면 좀 더 긍정적으로 보는 게 좋지 않을까? 하고 의문을 품을 수 있겠다. 그러나 단순히 긍정적인 시각을 유지하는 게 돈 좀 쓰고 세상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의 정도가 아니다. 저자가 지적했듯이 2001년 9월, 미국을 경악하게 했던 비행기 테러 사건의 경우, 불길한 조짐이 여러 곳에서 나왔으나 당시 부시를 비롯하여 미국을 지배하고 있던 긍정주의로 인해 그 경고들은 전부 무시되었고, 암 환자들에게 낙천성은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긍정적인 사고에 실패한 암 환자는 비난의 화살을 자신에게 돌리며 제 2의 부담을 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른바 긍정의 힘으로 베스트셀러가 된 조엘 오스틴 부부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이른바 항공기 갑질 사건, 그와 유사하게 1등석 항공기에서 소란을 피운 조엘 오스틴의 아내는 3000달러의 벌금을 물게 되었고, 승무원이 소송을 제기했으나 그 소송은 기각되었다. 저자는 직접 오스틴의 교회의 예배에 참석하게 되는데, 그 사건을 언급하며 부부는 단순히 우리가 승리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승리라며 청중들 앞에서 감격해했다고 한다. 대체 기독교 신앙과 성경의 가르침은 어디에 간 것인지? 우리 나라의 사이비 교주들의 행태와 다를 것 없다는 생각이 드는데 아니나 다를까 미국에서도 수많은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이단자와 다를 게 없다며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다고 한다.

 

리먼브라더스의 파산 2년 전, 글로벌 책임자는 CEO에게 부동산거품을 경고하며 비즈니스 모델을 다시 생각하자며 건의했다고 한다. 바로 그는 해고당했고, 파산하는 시점에서도 CEO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깨닫지 못했다고 한다. 경영진은 더없이 사치스러운 세계에 격리되어 살아가고, 듣고 싶은 거짓말만 들으며 부정적인 의견에 눈과 귀를 닫았다. 리먼브라더스뿐 아니라 수많은 기업에서 비슷한 일들이 벌어졌으며, 그 결과는 현재 미국 경제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대안으로 심리학자 줄리 노럼의 '방어적 비관주의'를 제시한다. 긍정적 사고의 대안이 절망은 아니며, 부정적 사고는 긍정적 사고만큼이나 망상으로 빠질 위험이 있기에,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 위험과 기회, 죽음의 확실성과 행복이 뒤섞여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을 주장한다. 조종사도, 자동차 운전자도, 배우자의 부정을 의심할 때에도, 자녀를 키울 때에도, 높은 수준의 경계심을 가지고 실패를 의식하며 예상까지 하는 수준의 현실주의는 생존의 전제조건이 된다는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나면 한편으로는 눈앞을 가리우고 있던 막이 벗겨지는 느낌이 드는 가 하면, 또 한편으로는 답답한 마음을 감출 수 없기도 하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부정적인 생각은 긍정적인 생각으로 누른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행동을 취해야만 그나마 행복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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