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의 배신 - 긍정적 사고는 어떻게 우리의 발등을 찍는가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배신 시리즈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전미영 옮김 / 부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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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보고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은 오프라 윈프리도, 말콤 글래드웰도, 조엘 오스틴도 아니었다. 이른바 행복 멘토라고 불렸던, 한 여성 유명 인사가 몇 년 전 유명을 달리한 사건.

 

그 사건이 충격이었던 것은, 평범한 가정주부를 지내다 활발한 방송활동을 통해 '행복전도사'라는 별명을 얻었고 수많은 저서를 통해 절망에 빠진 현대인들에게 죽기 바로 직전까지도 행복과 긍정을 강조했다는 점이었다. 함부로 고인을 욕되게 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고인이 유서에서 직접 밝혔듯이 70여가지의 통증은 겪어보지도 못했으면서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해서도 안 될 일이다. 다만, 무한한 긍정이라는 것, 그 한계라는 게 너무나 아프고 따갑게 느껴질 뿐이다. 이런 저런 언급도 이미 돌아가신 분께는 참 죄송한 일이지만, 조심스럽게 생각해보게 된다. 스스로 주장했던 긍정의 힘, 오히려 그것이 그분의 족쇄가 되지는 않았을까. 오히려 스스로 규정한 그 틀에서 벗어났더라면, 안타까운 그 결말만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 책은 저자가 유방암을 선고받은 사건에서 출발한다. 다른 환자들에게서 '암은 축복'이라는 식의, 극도의 긍정적인 태도를 목격하면서 미국에 얼마나 긍정주의가 깊숙이 퍼져있는지 확인했고, 사회 곳곳에서 이른바 긍정 이데올로기가 어떤 방식으로 활개를 치고 있으며, 그 실상과 결과를 보고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암은 축복'이라는 부분은 정말 경악할 노릇이지만,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한국 또한 미국 못지 않게 긍정의 힘에 대해 노래하는 나라이다. 그 유명한 시크릿이라는 책, 처음 보았을 때 대체 이런 책이 어떻게 베스트셀러가 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낙관주의, 긍정주의를 믿고 싶어하는 대중의 심리가 일정정도 존재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이 책에서 소개하듯이, 긍정적으로 행동하는 법을 다룬 최초의 역작인 카네기 인간관계론이 출판된 것이 1936년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좋은 면만을 보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의 무의식적인 본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저자는 그 부분에 대해 긍정적 사고의 핵심에 깊은 무력감이 놓여있다고 설명한다.

 

이런 긍정적 사고를 확산시키는 것에는, 이른바 돈냄새가 나는데, 흔히 말하는 동기 유발 사업의 시장 규모는 대략 200억 정도라고 이 책은 추산하고 있다. 기업 뿐 아니라 초대형 교회, 대중 매체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무한긍정주의가 판을 치고 있는 것이다. 엉망진창인 현실, 바뀌는 길은 요원해보이고, 그렇다면 그것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바꾸는게 사실상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어차피 바뀌지 않을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이라면 좀 더 긍정적으로 보는 게 좋지 않을까? 하고 의문을 품을 수 있겠다. 그러나 단순히 긍정적인 시각을 유지하는 게 돈 좀 쓰고 세상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의 정도가 아니다. 저자가 지적했듯이 2001년 9월, 미국을 경악하게 했던 비행기 테러 사건의 경우, 불길한 조짐이 여러 곳에서 나왔으나 당시 부시를 비롯하여 미국을 지배하고 있던 긍정주의로 인해 그 경고들은 전부 무시되었고, 암 환자들에게 낙천성은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긍정적인 사고에 실패한 암 환자는 비난의 화살을 자신에게 돌리며 제 2의 부담을 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른바 긍정의 힘으로 베스트셀러가 된 조엘 오스틴 부부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이른바 항공기 갑질 사건, 그와 유사하게 1등석 항공기에서 소란을 피운 조엘 오스틴의 아내는 3000달러의 벌금을 물게 되었고, 승무원이 소송을 제기했으나 그 소송은 기각되었다. 저자는 직접 오스틴의 교회의 예배에 참석하게 되는데, 그 사건을 언급하며 부부는 단순히 우리가 승리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승리라며 청중들 앞에서 감격해했다고 한다. 대체 기독교 신앙과 성경의 가르침은 어디에 간 것인지? 우리 나라의 사이비 교주들의 행태와 다를 것 없다는 생각이 드는데 아니나 다를까 미국에서도 수많은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이단자와 다를 게 없다며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다고 한다.

 

리먼브라더스의 파산 2년 전, 글로벌 책임자는 CEO에게 부동산거품을 경고하며 비즈니스 모델을 다시 생각하자며 건의했다고 한다. 바로 그는 해고당했고, 파산하는 시점에서도 CEO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깨닫지 못했다고 한다. 경영진은 더없이 사치스러운 세계에 격리되어 살아가고, 듣고 싶은 거짓말만 들으며 부정적인 의견에 눈과 귀를 닫았다. 리먼브라더스뿐 아니라 수많은 기업에서 비슷한 일들이 벌어졌으며, 그 결과는 현재 미국 경제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대안으로 심리학자 줄리 노럼의 '방어적 비관주의'를 제시한다. 긍정적 사고의 대안이 절망은 아니며, 부정적 사고는 긍정적 사고만큼이나 망상으로 빠질 위험이 있기에,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 위험과 기회, 죽음의 확실성과 행복이 뒤섞여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을 주장한다. 조종사도, 자동차 운전자도, 배우자의 부정을 의심할 때에도, 자녀를 키울 때에도, 높은 수준의 경계심을 가지고 실패를 의식하며 예상까지 하는 수준의 현실주의는 생존의 전제조건이 된다는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나면 한편으로는 눈앞을 가리우고 있던 막이 벗겨지는 느낌이 드는 가 하면, 또 한편으로는 답답한 마음을 감출 수 없기도 하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부정적인 생각은 긍정적인 생각으로 누른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행동을 취해야만 그나마 행복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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