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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에 사라진 직업들
미하엘라 비저 지음, 권세훈 옮김, 이르멜라 샤우츠 그림 / 지식채널 / 2012년 2월
평점 :
품절


1. 여러모로 흥미로운 책. 일단 등장하는 총 24가지의 직업을 빠르게 훑어 볼 수 있어서 지루하지 않고, 실력있는 삽화가의 그림은 단 두 장에 걸쳐져 있지만 두 장 이상의 정보를 전달한다. 시각적으로도 흥미롭고, 당시 유럽 사회에 대해 자세히는 몰라도 아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2. 등장하는 직업의 목록.

이동변소꾼

만능식도락가

개미번데기수집상

유모

유랑가수

고래수염처리공

오줌세탁부

커피냄새탐지원

터키인시종, 궁정흑인, 섬인디언

숯쟁이

촛불관리인

석판인쇄공

넝마주이

대리석구슬제조공

'로사리오의 묵주'제조공ㆍ호박세공인

무면허의사

지하관우편배달부

말장수

모래장수

사형집행인

가마꾼

실루엣화가

순회설교자

양봉가

 

3. 수많은 직업들을 한 책에 담다 보니 깊이가 떨어지기도 한다. 작가가 직접 서문에 밝혔듯이 이 책은 어떤 직업이 어떤 일을 하고 솜씨가 어땠고 어떤 도구를 사용했는지에 대해 정확하게 전달하는데 주안점을 두지 않는다.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이 일을 하게 만들었는지에 집중한다. 그 사회의 필요에 의해서 탄생된 직업들은, 그 사회가 변화함으로써 필요가 없어지고, 결국 사라진다. 유럽의 넝마주이는 1450년경 금속활자의 발명과 함께 인쇄술이 발전하면서 종이 원료로 이용되는 넝마에 대한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생겨났고, 아마도 분리수거가 자리잡고, 종이의 원료가 다양해지며, 종이 이외의 다른 매체들이 등장하면서 사라졌을 것으로 추측 가능하다. 이동변소꾼 또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해결해주는 없어서는 안 될 직업이었지만, 화장실이 발달하면서 사라졌을 것이다.

 

4. 특히 내가 흥미로웠던 것은 지하관우편배달부. 지상이 아닌 지하를 통해 우편 뿐 아니라 일종의 택배도 하였던 것 같은데, 그럼 그 당시에 만들어진 지하관들은 전부 지금 어떻게 되었나, 하고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아쉬운 게 이 책에서는 그런 것까지는 언급해주지 않는다. 이 정도는 굳이 도서관에서 사료를 뒤질 필요 없이, 현재 독일에 거주하는 작가가 쉽게 말해줄 수 있는 부분일 것 같아서이다. 한 가지 든 생각이, 최근 인기리에 방영 중인 모 프로그램에서 독일인이 자국의 특이한 물건들에 대해 소개한 것 중, 맥주 공장에서 파이프를 통해 경기장까지 맥주를 운반하여 사람들이 경기를 보면서 맥주를 마실 수 있게 한다는 기억이었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긴 파이프였나, 가장 오래된 파이프였나, 아무튼 가장 ~한 파이프였다는 것만 기억이 나는데 보면서 내내 저 파이프는 대체 언제 만든 것일까, 얼마나 돈이 많이 들어갔을까, 아무리 수요가 있다고 하더라도 단순히 사람들에게 맥주를 먹이기 위해서 저런 파이프를 만든다는 것은 좀 비효율적이지 않나? 하고 궁금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뒤늦게 아, 혹시 중세 때 우편배달을 위해 만들어진 지하관들이 현재 저렇게 쓰이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도 방송에서도 얘기해주지 않아서 알 길은 없지만.

 

5. 이런 류의 책들은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참 재미있게 읽었었는데, 요즘은 단순히 '재미'로만 넘기지 못하는 것 같다. 한때는 지구상에 분명히 존재했지만, 지금은 사라진 직업들. 사회가 급변하는 요즘 수많은 직업들의 흥망성쇠를 보면서 성인이 된 지금은, 한편으로는 숙연한 느낌도 들고 한편으로는 아득한 느낌도 든다. 내 삶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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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직업의 역사 자음과모음 하이브리드 총서 8
이승원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근대 초기에 생성되어 현대에 들어와 사라진 6개의 직업과 근대 이전부터 존재해오다가 사라져간 직업 3개, 총 9개의 직업에 대한 소개를 하고 있다. 

 

작가의 이력이 참 특이하다. 인테리어 회사 직원, 술집 경영, 대학원 진학 후 시간 강사, 대학 연구소 연구교수, 다시 시간 강사. 대학원 시절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과외'는 한 번도 하지 않고 몸으로 때우는 아르바이트만 하였고, 5년 전부터 취미로 시작한 목공은 가끔 주문을 받고 가구를 팔 정도라니 여섯 번째 직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 국문학을 전공했고 현재도 한국 문학을 강의하고 있는 그가 어쩌면 수많은 키워드 중 '직업'에 집중한 것은 당연해 보인다. 개인적인 경험과 함께, 문학은 당대의 사회상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므로 문학 속에 등장하는, 그 문학이 쓰여질 시기만 하더라도 존재했지만 지금은 사라진 직업에 대한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저자는 프롤로그에 전화교환수, 변사, 기생, 전기수, 유모, 인력거꾼, 여차장, 물장수, 약장수로 대변되는 일명 '사라진 직업'들을 통해 당대 사람들의 세세한 일상과 다양한 시선을 공유하고, 근대 문화의 상징적 풍경이라고 할 수 있는 통신, 영화, 젠더, 독서, 모성, 교통, 도시, 의학 등 각 분야의 문제들을 되짚으며 지금 여기 문화와 일상의 지형도가 된 역사를 탐사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확실히 여러 가지 그림, 사진 자료와 그 당시 나왔던 매일신보, 중외일보 등의 기사나 칼럼을 직접 인용함으로써 당시의 일상을 눈에 보이듯이 서술한다. 잊고 있었던 것이, 이 당시만 떠올리면 일제 식민지와 독립 운동, 친일파 등 몇 가지의 키워드로만 제한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시대도 사람이 살고 있었으며, 변화를 감지하며 꿈틀거리던 시대라는 것. 아마 후대의 사람들이 지금 이 시대의 직업에 대해 서술한다면 어떨까, 생각하기도 했고, 학창 시절 유망 직업과 그 직업을 위해 선택해야 할 대학의 전공 등등의 목록을 몇 번이고 보았던 기억도 났다.

 

1. 가진 재주라고는 남성들을 사로잡는 '미모'밖에 없었던 그들은 자신들의 단점을 감추기 우해서 여학생의 이미지를 도용했다.

 

-> 본문에 등장하는 문장. 이게 무슨 뜻이냐면 당시에는 기생 사이에도 급수가 존재했으며, 이른바 가장 급수가 높았던 일패 기생과 삼패 기생의 서열에 혼란이 왔고, 여러 모로 재주가 부족하고 미모밖에 내세울 게 없었던 삼패 기생들은 자신들의 단점을 감추기 웨해 여학생의 이미지를 도용했다는 것. 채만식의 '태평천하'에 등장하는 어린 기생이 여학생 복장을 하는 것을 참 좋아했다는 내용이 있었던 게 떠올랐다. 그 당시에는 왜? 하고 넘어갔던 부분인데 이 책에서 이유를 확인하니 재미있었다.

 

2. 인력거꾼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운수 좋은 날'을 보더라도 인력거꾼에 대한 묘사가 생생한데, 당시에 온갖 궂은 일을 다 하면서도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했고 생활이 힘들었던 그들이 참 안타까웠고, 전차와 버스 택시가 등장하면서 어쩔 수 없이 구시대의 유물이 되고 마는 인력거를 보면서 뭐랄까, 거대한 사회적 흐름을 어찌할 수 없고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봐야 하는 그 마음을 아주 모를 수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자신의 천한 직업과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조합을 결성하고 돈을 모아 학교를 설립했고, 그 학교의 운영이 힘들어지자 700여명의 기생들이 연주회를 열어 그 수익을 학교에 후원했다는 이야기는 뭉클하다. 인력거를 가장 많이 애용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사회적으로 천대를 받는다는 동일한 아픔을 위로했다는 생각에.

 

3. 여차장에 관한 이야기도 눈길을 끈다. 얼굴은 '어느 정도' 예뻐야 하며, 목소리도 고와야 했다. 매일 승차권을 펀치로 찍기 때문에 손아귀의 힘이 세야 했다. 하루 종일 수백 명의 사람들에게 시달리며 받는 보수치고는 엄청난 박봉을 받았고 일상적인 '성희롱'과 '성폭력'의 위험도 있었다. 당대부터 지금까지 최고 작가 중 한 명인 김동인이 오히려 여성들의 '허영심'을 문제 삼고 직종에 따라 차별하는 발언을 덧붙이거나 채만식이 에로 서비스를 조건으로 붙이자는 말을 대담에서 할 정도이니 당시에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느 정도인지 알겠다.

 

4. 이 책의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단점을 꼽아보자면, 저자의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서 일부 사실에 대해 지나치게 주관을 내세운다는 점이다.

 

조선 정부는 위새 개혁의 일환으로 우물과 개천을 정비하고 관리하기 시작한다. 이는 각종 세균에 의한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었다. 더 나아가 이는 조선인의 신체, 곧 인종을 보존하는 방법이었다. 계몽 지식인들은 서구의 나라들이 '문명부강'한 나라가 될 수 있엇던 것은 물을 잘 관리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민중들에게 역설했다. (중략) 조상 대대로 매일 써온 물을 '더러운 물'이라고, '병을 옮기는 물'이라고 하다니. 당시 백성들로서는 황당하고 귀찮기 그지없는 일이 아니었을까.(중략) 대소변을 거른 물, 버러지 가득한 물, 양잿물 섞인 물....... 그런 물들은 서구인의 관점에서는 더럽고 불겨란 물이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그런 물을 자연스럽게 사용해온 조선 사람들에게는 위생 개혁 자체가 엄청난 폭력으로 다가왔다.(중략) '위생 규칙'을 어긴 사람은 경찰서에 끌려가 태형을 받거나 당시의 생활수준에 비해 가혹한 벌금을 물어야만 했다. 사람을 살리기 위한 위생 사업이 이제 사람을 죽도록 고생시키는 흉물스런 죽음의 사업이 되었다. 한마디로 '위생'이 곧 '고생'이었다.

 

-> 설령, 위생에 대한 국가적 규제가 다른 의도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깨끗한 물을 사용한다는 것은 수많은 전염병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아프리카나 인도와 같이 물이 깨끗하지 못한 나라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전염병에 걸리면 속수무책이 되거나, 거꾸로 물만 깨끗해져도 상당수의 전염병을 예방할 수 있는 경우는 많다. 비록 동기가 어떤 것일지는 모르지만, 위생에 대한 강압은 분명히 다른 정책들에 비해서 가장 직접적으로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 특히 아파도 약 한 번 제대로 못 쓰고 병원 한 번 가기 힘들었던 서민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사실일 것이다.

 

5. 이 책의 프롤로그 요약: '소명' vs '교환가치'

기계 문명, IT 기술, 줄기세포, 제약 산업 등은 시간과 공간의 불가역성에 대한 도전이다. 자연의 리듬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낳은 근대의 직업들은 과학과 기술의 발전에 따라 생성과 소멸을 거듭한다. 또한 우리는 개인의 욕망이 아니라 그 사회의 주된 욕망이 무엇인가에 따라 직업을 선택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한, 직업을 갖지 않고 평생을 살기는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이 선택한 직업으로부터 즐거움을 찾는 경우가 많지 않다.

장수하는 노인들이 많기로 유명한 일본 오키나와. 그들의 장수 비결 중 하나는 '이키가이'라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야 할 이유. 그것이 꼭 직업일 필요는 없으며, 아무리 힘들어고 기꺼이 즐겁게 아침에 눈을 드는 이유. 그것이 또 살아가는 이유라는 것이다. 현대인은 직업과 이키가이의 괴리가 크다.

 

-> 작가는 오늘 아침에 일어난 이유가 오늘 출근하는 이유와 같기를 바란다고 했다. 유토피아 처럼, 바람직하지만 어디에도 있을 수 없는 말처럼 들린다. 직업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 그것이 단순히 생계를 영위하는, 이른바 '교환가치'로서의 직업이 아니길. '소명'까지는 아니더라도, '즐거움'은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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