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시대 - 1920년대 초반의 문화와 유행
권보드래 지음 / 현실문화 / 2003년 11월
평점 :
품절


 

목차만 훑어보아도 흥미롭다.

 

머리말
서론|연애라는 말

기생과 여학생
구여성과 신여성
연애와 독서
연애 편지의 세계상
육체와 사랑
연애의 죽음과 생

결론|연애의 시대 또는 개조의 시대
보론 1 연애 이전의 연애 : 1900년대식 열정과 자유 결혼론
보론 2 연애 바깥의 연애 : 연애열의 시대와 한용운의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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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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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을 6개의 주제로 나누었고, 각각의 주제 또한 흥미로워서 꼭꼭 씹어먹고 싶다는 느낌이 든다. 결론과 보론 1, 보론 2, 그리고 '주'에 해당하는 부분만 30쪽이 넘어서 전체적으로 훌륭한 논문을 읽은 느낌이다. 논문이라면 어려울텐데, 이 책의 내용의 핵심이 '연애'라서 머리를 쥐어뜯거나 중간중간 멈춰야 할 만한 주제는 아니다. 마치, 달콤한 케이크의 꼼꼼한 레시피, 혹은 초콜릿의 역사나 아이스크림 일대기 등을 보는 느낌이랄까. 물론, 케이크나 초콜릿이나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과, 그것에 대한 책 한 권을 읽는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 이 책도 마찬가지. 책의 두께는 전부 300쪽이 되지 않는 데다가 사진 자료가 많아서 글자가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마냥 쉬운 책은 아니다. 다만, 고등학교 때 선택 과목으로 근현대사를 공부했었는데, 당시에 어렴풋이 느끼기에도 근현대사 교과서는 다른 과목의 교과서와는 좀 다르다는 생각을 했었다. 사진 자료가 많고, 상대적으로 가까운 과거인데다가, 급변하는 시기라서 흥미로웠다. 이 책을 보면서 오랜만에 그 당시 생각이 많이 나기도 했고, 고등학생들이 한번쯤 읽어보면 당장 성적에 도움은 되지 않겠지만 충분한 지적 유희는 되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그 당시 읽었더라면 더 재미있을 것 같았다는 생각도 있었고. 연애를 다루지만, 책은 다소 건조하고 딱딱한 편인데, 교과서에 비하면 훨씬 말랑말랑하지만 이 시대를 다룬 수많은 책과 다양한 영상물들에 비하면 좀 뻑뻑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왠지 나른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어떤 것에라도 눈을 돌리면 죄를 짓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고교 시절 이 책을 읽었더라면 훨씬 재미있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대학에 온 후 이 시대를 다양한 경로로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책에 실린 내용들이 큰 인상을 주지는 않았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떠올렸던 것은 <경성스캔들>이라는 드라마. 조선의 마지막 여자라는 별명을 가진 한지민, 기생이었던 한고은, 조선 총독부 관리인 류진, 모던 보이 강지환이 등장하는 드라마로, 극단적인 윤리관이 충돌하고 극단적인 역사인식의 차이가 공존했던 시기를 항일무장투쟁의 역사와, 경쾌하고 발랄한 청춘 로맨스의 두가지로 그려냈는데 서로 다른 요소들이 붕 뜨지 않고 서로서로 잘 융합되어 유쾌하면서도 애잔한, 참 좋은 드라마였다고 기억한다. 바로 이 책에서 그리고 있는 그 시대, 그리고 똑같은 주제에 대해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연애란, 일종의 수입품이다. 서양 문물이 들어오면서, 연애라는 개념도 함께 유입되었고, 이른바 '글로 익힌' 연애가 한국적 상황에 이식되어 가는 과정의 첫단계를 보여주는 책이다.

이상적 아내, 이상적 남편, 그리고 둘이 꾸민 스위트홈은 전근대의 가족 질서에 대한 도전이었다. "경치도 좋고 깨끗한 집에 피아노 놓고 바이올린 걸고 선형과 같이 살 것이다. 늘 사랑하면서 늘 즐겁게......"(『무정』)라는 풍경 속에 수직적 질서의 자리는 이미 없다. 1910년대 이후 새로 개발된 `행복`이라는 가치는 1920년대에 일반화된 `스위트홈`의 이상 속에서 현실태를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연애는 한편으로 비극과 열정을 상기시켰지만, 다른 한편 안락한 이국풍 생활을 설계하게 했다. 이층 양옥에 부부가 단란하게 피아노 놓고 살면서 때로 노래 부르고 때로 함께 시를 읽는 생활이 바로, 1920년대의 많은 젊은이들이 꿈꾼 생활이었다. 게급이 발견되고 민족적 현실이 역설되면서도 이 무국적의 동경은 사라지지 않았다. 애정이 충만한 젊은 부부만의 생활-신여성은 그 풍경의 중심이어야 했다. 중등 이상의 교육이라든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패션은 신세계에의 진입을 약속하는 기회에 불과했다.

"애인을 위하여 살고 애인을 위하여 죽는다는 것", 이 욕망은 1920년대 초부터 `연애`가 감추어 두고 있던 욕망이고 했다. 죽음에 직결되어 있는 열정만큼 개인의 존재를 두드러지게 하는 것은 없었다. 1920년대 이후 각기 고유한 개성과 천재, 그 근거로서의 정과 내면이 강조되면서부터 생겨난 사랑에의 갈구가 죽음이라는 새로운 유로를 찾았을 때 등장한 결과가 연애 자살이요 정사였다. 열정이 개성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죽음이 단독성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낭만화되기 시작했을 때 등장한 독특한 결합이 자살과 정사였던 것이다. 외국 소설의 독서를 통해 이 독특한 고안에 친숙해져 있었다는 사정 또한 작용했으리라 짐작된다. 다눈치오의 『프란체스카』나 『사의 승리』는 모두 정사라는 파국을 묘사하였고 아리시마 다케오의 단편 「선언」 역시 폐병으로 함께 죽어가는 연인을 제시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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