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을 범하다 - 서늘하고 매혹적인 우리 고전 다시 읽기
이정원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전을 범하다.

 

이 도발적인 책의 내용을 보라.

 

우리 고전 문학을 기존에 알고 있던 시각이 아닌, 새로운 시각으로 보며 당시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희생당한 약자들에 대해 초점을 맞춘 책이다.

 

 

어쩌면 기존에 알고 있던 문학을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하는 것이 이제는 너무나 빈번한 일이 되었기에, 오히려 새롭게 느껴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영화만 하더라도 <춘향전>을 재해석한 <방자전>, <심청전>을 재해석한 <마담뺑덕>, <장화홍련전>을 재해석한 <장화, 홍련>, <전우치전>을 재해석한 <전우치>등 캐릭터와 설정만 따오고 구체적인 내용은 감독이 새롭게 창조해낸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그 경우, 이미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그러니까 영화를 보는 관객 대부분이 알고 있는 대강의 구성들 자체가 사실 상당히 축약된 것이며, 심하게 말하자면 왜곡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이 책은 지적한다.

 

초등학교 시절, 당시 논술 붐이 꽤 일었었는데, 지금도 기억나는 것이, 초등학생용 논술 참고서에 실려 있던 <심청전>에 대한 부분이었다. 청이가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것이 과연 진짜 효일까, 아버지는 딸의 죽음으로 눈을 뜨고도 과연 여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만약 내가 청이라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등의 토의 주제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치 정해져 있는 것 같던 책의 내용을 내가 이리 저리 바꿔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어린 나이에도 신기해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초등학생의 이해 수준에서 한참 더 나간다. 그러니까 마치 자발적으로 보이는 청이의 죽음은 사실상 선택의 여지가 없는 유일한 수단이었고, 청이가 속해있는 공동체의 보이지 않는 강요에 의한 것이었으며, 아버지 심학규는 그 사실을 전혀 몰랐던 것으로 딸의 죽음에 일체의 책임을 지지 않는다. 여기까지 오면 당대의 이데올로기라는 것이 어느 정도로 무거운 것이며, 개인이 거기에 저항한다는 것은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 실린 모든 소설들에 대한 해석이 전부 그러하다. 지배층과 피지배층, 강자와 약자, 양반과 상놈, 남자와 여자... 거의 대부분의 소설에서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이분법으로 설명이 가능하며, 당시의 이데올로기를 효과적으로 구현하고, 권력을 가진 사람이 그 지배권을 공고히 하는 쪽으로 소설이 작용했음을 볼 수 있다. 이런 식의 설명으로 모든 소설의 해설은 대동소이한 부분이 있으며, 그 점이 크지 않은 단점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고전에 대한 서늘한 해석. 한여름밤에 읽으면 오싹할 내용들이지만, 단순히 원래 이 소설의 내용은 이거였다고 사실 확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당대의 시대상과 연결한 저자의 해석이 깊이가 있어서 인상 깊은 책이었다.

 

 

1부 _ 殺 : 죽은 자의 변

 

1장 _ 공포 어린 밤에 대한 환상 : 장화홍련전
· 놓칠 수 없는 대목 | 배 좌수가 후처 허 씨를 맞이하는 대목

 

1. 가부장제의 시스템 속에서는 계모도 약자였다.

2. 아버지 배좌수는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

3. 내가 읽은 책에서 계모의 아들의 이름은 장쇠였는데, 원래는 어엿한 양반 이름이 있었고, 여러번 판을 달리하면서 천한 이름이 붙여졌다는 이야기는 새롭게 안 사실.

4. 장화와 홍련이 원귀가 된 것은, 당대의 사회에서 아버지에게 직접 이야기를 못하고, 원님을 통해서 공론화되는 것이 자신의 피해를 호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었다.

5. 장화의 임신은 거짓이었지만, 그것이 만약 사실이었다하더라도 죽음이 정당화되지 않는 현대사회와 비교하면, 이 시대가 얼마나 비인간적인 시대였는지 알 수 있다.


2장 _ 심청 살인사건의 은밀한 내막 : 심청전
· 놓칠 수 없는 대목 | 심청이 인당수에 뛰어드는 대목

 

1. 이념공동체는 어떻게 심청을 살해했는가.

2. 장승상댁 부인이 심청이를 도와준 것은 이타심이 아니라, 공동체에서 효녀로 입증된 심청이와 같은 딸을 나도 키워보고 싶다는 마음이었다는데, 저자의 해석 중 유일하게 반대 의견을 제시하고 싶은 부분이었다.

3. 심학규는 얼마나 이기적이며, 맹목적인 인간인가. 공양미 삼백석을 무작정 약속한 대목은, '눈이 멀었다'는 것은 신체적인 서술뿐 아니라 욕심에 눈이 멀었다는 비유적인 뜻도 가능할 것이다.

4. 아버지의 목숨을 살리는 것도 아니고,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는 것이 딸의 목숨보다 귀한 것인가?

5. 심지어 인당수에 뛰어드는 심청은 아버지가 눈을 뜰 것이라고 확신하지도 못하면서, 장승상댁 부인의 도움을 받아 공양미 삼백석을 마련할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다. 나중에 중국 황후가 된 그녀가 아버지를 찾기 위해 맹인 잔치를 열었다는 바로 그 사실이, 그녀가 아버지가 눈을 뜨지 못할 것임을 알고도 인당수에 몸을 던졌다는 것을 입증한다. 대체 심청의 희생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3장 _ 학살 혹은 우스운 죽음들 : 적벽가
· 못다 한 이야기 | <사씨남정기>

 

1. 삼국지의 적벽대전 부분이 판소리로 만들어진 것.

2. 서사적으로는 적벽대전, 이념적으로는 출사표. 

3. 도원결의부터 시작하는 이야기.

4. 군사들이 우는 장면, 한 명 한 명이 죽어가는 장면, 점고 장면이 삼국지와는 다르게 적벽가에 상세히 묘사되는 세 장면이다.

5. 한 명 한 명을 존중해준다는 점에서 의외의 감동이 있다.

2부 _ 慾 : 욕망의 늪

 

4장 _ 차마 말하지 못한 어미의 사생활 : 장끼전

 

1. 세번째 남편과 사별한 까투리에게 조문 온 모든 새들이 청혼한다.

2. 수많은 새들 중, 결국 까투리는 유유상종이라고 장끼와 결혼한다.

3. 가부장제에서, 아무리 아내가 야무져도 남편이 무능하면 결국 가정이 힘들어진다. 

 

5장 _ 우리는 너의 간을 원한다 : 토끼전
· 놓칠 수 없는 대목 | 별주부가 식구들과 이별하는 대목

 

1. 이 책 전체에서 가장 무서운 결말을 가지고 있으며, 아마도 이 책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처음 접해보는 이야기가 들어 있다.

2. 수많은 판본 중 가장 충격적인 이야기에 따르면, 토끼는 온전히 희생자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선한 자가 승리한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3. 인간이란 얼마나 나약하고 치졸하고 이기적인 존재인가?

4.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이것은 절대 이 소설의 교훈이 아니었다.

5. 이 당시 피지배층들은 과연 인간으로 인정이나 받는 존재였다고 볼 수 있는가?

 

6장 _ 금지된 사랑에 대한 경고 : 지귀 설화
· 못다 한 이야기 | <운영전>

 

1. 실존 인물인 선덕 여왕에 대한 이야기.

2. 못 올라갈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

3부 _ 權 : 지배자의 힘

7장 _ 호부호형, 그 너머의 고뇌 : 홍길동전
· 놓칠 수 없는 대목 | 길동이 괴물을 물리치고 두 여인을 구하는 대목

 

1. 처첩제도로 피해를 본 홍길동은 왜 정작 여러 부인을 두고 적서를 인정하였나?

2. 신분제를 비판하고 뛰쳐나간 홍길동은 조선의 임금에게 인정을 받고 새로운 나라를 세웠다. 그냥 그 자신이 신분제의 최정상에 올라간 것으로 끝난다.

 

8장 _ 왜 정의는 패배하는가 : 황새결송

 

1. 부자 사촌의 재산을 탐을 내어 소송을 거는 이가 어이없게도 이기게 된다.

2. 재판에서 이기기 위해 재판관을 매수하는데, 그 뇌물은 손자에게 군것질거리 사줄 수 있는 정도에 불과한다.

3. 무전유죄 유전무죄.
4. 사소한 악의가 더 무서울 수 있다는 것.

5. 이북 사투리의 독특한 리듬은 소리내어 읽다 보면 더 재미있다.

 

9장 _ 양반 비판의 공허한 진실 : 양반전

 

10장 _ 그들은 말이 없다 : 김현감호
· 못다 한 이야기 | <최낭전>

4부 _ 我 : 나의 재발견

 

11장 _ 대체 춘향이 무엇이관데 : 춘향전
· 놓칠 수 없는 대목 | 춘향과 이 도령이 첫날밤에 드는 대목


1. 이몽룡과 춘향과의 관계는 처음부터 절절한 사랑이 아니었다.

2. 시작은 가벼웠다. 육체적인 쾌락을 원하는 양반과, 물주를 잡고자하는 기생의 만남이었다.

3. 어느 순간부터 둘의 관계는, 적어도 춘향에게는 절대적인 사랑이 된다.

4. 아무도 춘향에게 수절을 강요하지 않았다. 모든 것은 춘향의 선택이었다.

5. 마지막 순간에 암행어사로 출두한 이몽룡이 끝까지 얼굴을 부채로 가리고 춘향을 시험한 것은, 당시의 춘향의 계급을 생각해보면, 절개를 지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며, 최종까지 그런 고난을 겪어야만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6. 오히려 기생인 춘향이 끝까지 변사또의 요구를 거절한 것은, 당시의 시대상으로만 보았을 때는, 어떤 의미에서 직업적인 윤리를 저버린 것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7. 실제로 있을 수 있는 이야기가 전혀 아니다.

8. 당시 민중들의 바람이 상당히 반영된, 환상으로 점철된 이야기이다.

 

12장 _ 못난 너를 벗는 날이 오리라 : 김원전

 

1. 공으로 태어난 남자가 지하의 공주를 구한다.

2. 마치 서양의 전설이나 민담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소년의 성장기.

 

13장 _ 우리들의 이기적인 페르소나 : 전우치전
· 못다 한 이야기 | <채봉감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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