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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 오브 러브
아리 포신 감독, 아네트 베닝 외 출연 / 비디오여행 / 2014년 8월
평점 :
남편이 죽은 지 5년이 된 여자가 있다. 남편과의 사이에서 난 딸이 성인인 것으로 보아 아마도 결혼 생활은 최소한 20년은 넘었을 것이다. 불의의 사고로 완벽했던 결혼 생활이 끝난 후, 아직도 그녀는 남편을 그리워하며 괴로워한다.
죽은 남편의 친구이자 똑같이 배우자를 떠나 보낸 아픔을 가지고 있는 이웃 로저와, 예쁘고 착한 딸, 그리고 인정받는 직업까지,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는 것 같은 여자가 어느 날 죽은 남편과 똑같이 생긴 톰을 만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영화를 보는 내내 '페이스 오브 러브'의 뜻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직역하면 '사랑의 얼굴'인데,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무엇이고, 그게 또 다른 어떤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여러모로 궁금했다. 마지막 장면까지 보고 나서야 드디어 궁금증이 풀렸지만.
대충 영화의 리뷰를 찾아보니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현기증'과 유사한 플롯이라고 한다. 그 영화는 보지 못해서 잘 모르겠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내가 생각했던 영화는 일본 영화 '러브 레터'였다. 딱 들어맞지는 않지만 먼저 사랑했던 사람과 똑같은 사람을 만나서 사랑에 빠지게 된다면, 그 사랑의 대상은 대체 누구일까, 하는 궁금증을 똑같이 갖게 만드는 영화였다. 마지막 장면에 여주인공이 그림을 보는 장면에서 관객에게 여운을 던지는 방식은 더군다나 그랬다. 그런데 보는 내내 그 아픔에 공감이 가지 않는다는 것이 러브레터와의 차이점이라고 할까.
몇 십 년동안 사랑했던 사람을 잃는다는 감정은 차마 겪어보지 못해서 함부로 얘기할 수는 없지만, 몇 년이 지나도록 그 슬픔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겪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닮은 사람을 보고 혼란에 빠지는 그 감정도, 한 때 심하게 앓았던 사람과 비슷한 사람을 지하철에서 마주쳤을 때 미친듯이 가슴이 뛰었던 그 경험으로 인해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받아들여지지 않는 마음 때문에, 차라리 내가 그 사람의 이전 사람, 혹은 짝사랑 상대를 닮았더라면, 하는 마음도 잠시나마 떠올렸던 적이 있기 때문에 톰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 보아도 보는 내내 니키에게 공감이 가지 않아 힘들었다.
죽은 남편을 아직도 사랑하는 마음, 새롭게 만난 남자에게 남편의 모습을 발견하고 설레는 마음, 이 과정이 충돌하면서 여주인공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관객으로 하여금 들도록 해야 할 텐데 이 영화 속 니키는 자신의 감정에만 몰두한 나머지 주변 사람들을 전부 바보로 만들어 버리는 것 같아서 볼수록 화가 났다. 몇 년을 짝사랑해 온 로저의 마음조차도 눈치채지 못하는 무신경함, 그 마음을 알고 난 후에도 계속되는 배려없는 행동,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기 전에는 돌아가는 딸을 이런 저런 말로 붙잡다가도 남편을 닮은 사람을 만난후 들킬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 먼저 다가가 마음을 흔들고 떠나지 못하도록 붙잡다가 결국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여 10년만에 마음을 연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이기적인 모습... 납득이 가지도 않지만 이해해주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사람이 죽고 난 후, 남겨진 사람의 정상적인 반응으로 애도반응이 있다. 이것을 규정하는 여러가지 기준을 넘어서면 그 때부터는 정신과적 질환으로 볼 수 있는데 아무리 보아도 니키는 애도 반응을 넘어선 정도가 아니라,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하게 된다. 그 나이 먹도록 어떻게 자기밖에 모를까, 뭐 저런 여자가 있나, 하는 생각은 아직 젊기 때문에 이해하지 못하는 나의 경험 부족에서 온 것일까.
중년의 사랑인데도 아네트 베닝과 에드 해리스는 참 멋있다. 러브 어페어의 모습이 가장 아름다웠다고 생각되지만, 이 영화에서도 아네트 베닝은 여전히 우아하고, 한편으로는 소녀같기도 하다. 할리우드에서는 보기 드물게 남편과 오랫동안 결혼생활을 유지하며 4명의 자녀를 낳고 키웠는데 행복한 가정 생활로 개인적인 마음 고생을 덜 했기 때문일까, 눈가에 주름이 있어도 웃는 모습은 여자인 나도 설레게 한다. 에드 해리스도 마찬가지. 요란한 스캔들 없이 오랫동안 결혼 생활을 유지하며 오로지 영화로 인정받는 삶을 살아서인지 이 영화에서 보이는 순정적인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남편과 닮은 사람의 차에서 교직원 스티커를 발견하고 검색해서 확인한 후 무작정 찾아가는 아네트 베닝의 모습이나 역시 똑같이 전화번호를 건네 받고 인터넷으로 검색하여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확인하고도, 짐짓 모르는 척 무슨 일을 하냐고 질문하는 에드 해리스의 모습이 마치 처음 사랑을 시작하는 소년 소녀의 모습처럼 설렜다. 물론 전처와 통화하며 이 사랑은 당신과는 다르다고, 처음 느끼는 감정이라고 이야기하는 모습과, 아직 내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고, 남편을 여전히, 아니 더 사랑한다고 이야기하는 모습이 엇갈리는 지점에서는 마음이 답답했지만.
세월이 흐르면 이 영화가 이해되려나. 어쨌든 여자는 남편의 부재를 극복했고 남자는 여자로 인해 죽을 때까지 간직할 수 있는 사랑을 그림으로 남겼으니 어쨌든 사랑은 위대하다는 결론을 내려도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