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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기로 했습니다. - 잊지 않으려고 시작한 매일의 습관, ㅣ 자기만의 방
김신지 지음 / 휴머니스트 / 2021년 2월
평점 :
저는 띄엄띄엄이라도 일기를 오랜 시간 썼습니다. 쓰기만 하고 그걸 다시 들춰보지 않았습니다. 봐도 지난해나 지지난해나 비슷한 말을 써서. 쓰면서도 그걸 알았습니다. 그래도 안 쓸 수 없었군요. 일기에 제 마음을 모두 쓰지 않지만, 뭔가를 쓰면 마음이 조금이라도 나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다시 생각하지요. 내가 이러면 안 될 텐데,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할 거 아니야, 하는. 그런 생각은 아주 잠깐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분 안 좋은 것보다 좋은 걸 적는 게 나을 텐데. 예전에는 기분 좋은 일이 있으면 그걸 적어야겠다 했군요. 좋은 꿈을 꿔도. 좋은 꿈은 별거 아니고 누가 나왔다는 거예요. 안 좋은 꿈도 다르지 않다니. 몇해 전에는 꿈을 잘 적어두기도 했어요. 꿈속에서 있었던 일과 제가 한 말이나 들은 말을. 요새는 꿈에 별 말 안 하더군요. 생각나는 것도 없고, 그저 아는 사람이 나오면 그것만 기억해요. 왜 꿈 이야기를 했는지.
이 책 《기록하기로 했습니다》(김신지)에서는 기록하는 방법을 많이 알려주더군요. 다섯해 일기쓰기를 보니 지난해(2020)에 그 생각했던 게 떠올랐어요. 그때도 다른 사람이 말해서 나도 한번 해 볼까 했는데. 일기장만 찾아보고 그만뒀어요. 이번에 보고 또 찾아봤어요. 저는 다섯해보다 세해를 해 볼까 잠깐 생각했어요. 아직 마음 못 정했습니다. 김신지는 그날 좋았던 걸 쓰고 다음 해에 보고는 같은 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더군요. 저는 늘 비슷한 날이어서 좋은 게 없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가끔 우울하고 안 좋다 하는군요. 비슷한 날이기는 한데 가끔 그걸 깨어버리는 일이 일어나서. 날마다 비슷한 날이어도 상관없으니 그걸 깨는 일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가끔 이런 것도 써요. 비가 많이 쏟아지는 날 밤에는 비가 많이 오지 않기를 바란다고. 그렇게 쓰면 마음이 조금 가라앉아요. 이건 기록이라기보다 그냥 마음이 나아지기를 바라는 거네요.
하루에 하나 좋은 거 줍기. 이것도 멋질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날마다 하려고 하면 힘들 것 같아요. 무언가 좋은 게 없나 하고 늘 보던 걸 다르게 보려고는 하겠지만. 하루하루는 잘 가요. 시간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이다 하잖아요.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는 잡기 어렵습니다. 다는 아니어도 손을 꽉 쥐면 조금 잡을 수 있겠지만. 우리가 잡을 수 있는 건 겨우 그 정도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도 시간이 가면 사라지겠지요. 김신지는 기록을 잘하는 사람이더군요. 이 책 보니 정말 대단합니다. 따라하기 어렵겠어요. 벌써부터 못하겠다 하다니. 김신지가 기록하는 건 한두가지가 아니예요. 기록도 부지런해야 잘 하겠습니다. 저는 아주 게을러요. 그래도 가끔 그냥 쓰는 거 있기는 해요. 김신지처럼 잘 하지는 못하지만 저도 조금 하더군요. 그건 제가 좋아서 하는 거였어요. 김신지가 기록은 앞날 자신한테 보내는 편지다 하던데, 그때는 난 내가 쓴 거 잘 안 보는데 했는데 가끔 보는 것도 있다는 거 알았습니다. 그건 자주 하지 않고 어쩌다 생각나는 거 쓰는 거예요.
새해가 오면 이번에는 잘 살아야지 하지만, 한해가 끝날 때쯤에는 한 게 아무것도 없네 합니다. 기록을 하면 자신이 뭘 했는지 조금은 알겠더군요. 달마다 ‘나만의 베스트 가리기’ 괜찮아 보입니다. 그걸 하면 그때 자신이 뭘 좋아했는지 알 것 같더군요. 저는 좋았던 거 가리기 종류는 책밖에 없을지도. 책에서도 좋았던 거 잘 고르지 못합니다. 좋았던 거 고르면 나머지는 슬퍼하지 않을까요. 이런 생각을. 제가 어딘가에 들어가는 적이 없어서, 뽑히지 못하는 마음을 생각했나 봅니다. 순위는 안 되겠어요. 모든 게 자신한테 작게든 크게든 도움될 테니. 처음에는 괜찮다 생각했으면서, 이렇게 쓰면서 다른 생각을 했네요.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건 먼저 말해야 했는데, 이렇게 쓰면서 다른 생각을 했네요. 글, 그림, 사진, 영상 여러 가지로 한다고 해요. 순간을 붙잡으려는 모든 일. 저는 글이나 사진으로 하고 싶네요. 예전에 사진 담고 싶기도 했는데, 요새는 별로 못 담는군요. 가는 곳이 비슷해서. 김신지는 날마다나 철마다 같은 곳을 사진으로 담았어요. 그런 거 나중에 보면 참 신기하겠지요. 폴 오스터 소설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에서도 날마다 같은 곳을 사진으로 담는 게 나오는군요. 어떤 사람이 그 사진 속에서 죽은 자기 아내를 봤던가요. 그 기록도 참 멋졌습니다. 날마다나 철마다 담을 곳 한번 찾아보고 싶네요. 저도 그런 거 생각해 본 적 있군요. 한동안 한가지만 사진에 담기도 했어요. 우편함. 제가 편지쓰기를 좋아해서 별난 우편함을 보면 담았습니다. 그런 우편함에 편지를 받으면 어떤 느낌일지. 기쁘겠지요.
지금 생각하니 김신지가 말한 건 누구나 한번쯤 해 볼까 생각한 거기도 하네요. 잠깐 생각하고 잊어버린. 김신지는 생각하면 바로 한 거지요. 자기 나름대로. 많은 사람은 생각하고 그걸 어떻게 할까 하다가 귀찮다 나도 모르겠다 하고 안 했겠지요. 저도 다르지 않습니다. 영감 모으기나 정리하기, 그런 건 진짜 못하겠습니다. 그런 걸 잘 모아두면 잘 써 먹을지. 하지도 않고 이런 생각을 하는군요. 하고 싶은 거 하나 있기는 합니다. 누군가 자신한테 해준 좋은 말(댓글)이나 책에서 본 좋은 글을 한곳에 모아두고 가끔 꺼내보면 힘이 되겠습니다. 저는 가끔 우울함에 빠지기도 하는데, 그때 좋은 말을 보면 좀 낫겠습니다. 하면 좋을 텐데. 그런 게 늘어나면 어디 있는지 찾다가 못 찾을지도.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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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쓰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될 가능성이 있다면, 그건 훗날 돌아볼 기록이 과거를 반성하게 해주어서가 아니고 지금 나와 마주 앉는 시간을 꾸준히 보내기 때문일 거예요. 그리고 그 시간은 삶에서 내게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쓸데없이 힘을 빼지 않도록, 반대로 내게 중요한 것들을 지키고 살 수 있도록 도와줄 겁니다. 나라는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나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말이에요. (46쪽)
예전에 사진으로 담은 우편함
https://blog.aladin.co.kr/798715133/86312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