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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따스한 유령들 ㅣ 창비시선 461
김선우 지음 / 창비 / 2021년 8월
평점 :
지난 2020년엔 코로나19로 세계가 멈추었지. 그렇게 멈추었을 때 괜찮았던 것도 있었지만, 문제도 많이 있었어. 어떻게 하면 나을지.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공장이 멈추고 하늘 길이 막혔을 때 자연이 돌아가는 느낌이 들기도 했는데, 몇해 지나고는 기후변화를 더 많이 느끼게 됐어. 한해 한해 다르군. 인류는 망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인류가 망해가는 가운데 살아 남는 사람도 있을까. 어떤 사람이 살아 남을지. 어린이가 살아 남길. 그나마 세상 때가 덜 묻었잖아. 무슨 일이 일어나면 세상 때가 덜 묻은 아이가 더 일찍 죽기도 하는군. 어쩐지 슬픈 일이야. 코로나19 때도 아이들이 더 힘들었겠어.
오랜만에 시집을 만났어. 김선우 시집 《내 따스한 유령들》이야. 김선우 시인은 2020년 봄에 몸이 아팠던가 봐. 몸이 나아지기까지 한해나 걸리다니. 나아진 게 다행이군. 2020년은 코로나19로 세상이 어두웠던 때군. 어두웠다고 하다니. 그때 처음엔 마스크가 답답했지만, 끼다보니 익숙해졌지. 마스크는 자신뿐 아니라 남을 위한 거기도 했군. 이 시집 3부엔 <마스크에 쓴 시 1>에서 <마스크에 쓴 시 14>까지 담겨있어. 이 시 앞에도 지구를 망친 인류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는군. 인류가 망하지 않으려면 겨울의 시간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해. 겨울의 시간은 추운 것만 말하는 게 아니겠지. 덜 움직이는 거 아닐지. 이건 그저 내 생각일 뿐이지만.
쓸모없는 것들을
목숨을 다해 사랑할 수 있는
영혼의 강인함을
내가 원하나이다
-<무신론의 기도>, (34쪽)
구름 많은 날 당신의 울음이 가깝다
울다 깬 눈으로 구름을 만진다
오늘도 어김없이 지구 어디선가
죄 없이 아이들이 죽고
죄 없이 동물들이 사라지고
죄 없이 숲이 벌목되고
죄 없이 작은 것들의 노래가 짓이겨져 파묻힌다
착취한 것들은 만들어진 자본의 폭식성─
멈출 줄 모른다 착취가 동력이므로
한때 아름다웠던 별
어디에 무릎을 꿇어야 죄를 덜 수 있나?
불과 이백년 만에 이토록 뜨거워진
인간이 만든 쓰레기고 가득해져버린 여기 어디에
지구라는 크라잉 룸
당신 안에서 우느라 당신의 울음을 미처 듣지 못했다
-<지구라는 크라잉 룸>, (37쪽)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되지 않으면 쓸모없다고 하지. 난 쓸모없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 그러면서 나도 쓸모없다고 생각해.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될 텐데. 김선우 시인이 쓴 것처럼 목숨을 다해 쓸모없는 걸 좋아하지는 못할 것 같아. 세상에 쓸모없는 것을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기를 바라. ‘자본교’ 라는 말도 봤어. 이 말 어쩐지 웃기면서도 슬프네. 그것 때문에 지구는 더 안 좋아졌잖아. 지구가 울어도 그걸 제대로 듣지 않는 것 같아. 이젠 좀 귀 기울여 들었으면 해. 지구가 우는 소리.
도끼도 톱도 필요 없다. 나무를 살해하는 간단한 방법은 봄여름에 나뭇잎을 모두 따버리는 것. 나뭇잎들의 노동이 멈추면 나무는 죽는다. 대대손손 뿌리만 파먹고 살 수 있을 것 같은 뿌리 숭배자들이 세상 어디에나 있지만 한 계절만 겪어보면 알게 된다. 햇빛과 바람 속에 온몸으로 나부끼는 나뭇잎들의 역동, 한잎 한잎 저마다 분투해 만들어낸 양분을 기꺼이 모아준 나뭇잎들이 나무를 살린다는 것. 나뭇잎들의 코뮌이 즐거운 노동으로 생기 넘칠 때 나무가 건강해진다는 것. 안녕, 안녕, 인사하는 나뭇잎들의 독자적인 팔랑거림, 한 방향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맞이할 때조차 저마다 다른 자세와 기술, 햇빛과 물만으로 양분을 만들어내는 천지창조의 노동자들, 함께 사는 동안 자신이 만든 것을 아낌 없이 나누고 때가 오면 미련 없이 가지를 떠나는 여유와 자유. 뿌리 깊은 나무의 뿌리를 지키려고 태어나는 나뭇잎은 없다. 가계(家系)의 문장(紋章)에 집착 없는 나뭇잎들이야말로 한그루의 세계를 유지하는 진짜 힘이라는 것.
-<이제 나뭇잎 숭배자가 되어볼까?>, (57쪽)
앞에 옮긴 시를 보니 나무에 나뭇잎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나무가 뿌리를 잘 내려야 줄기도 뻗고 나뭇잎을 틔우기는 하겠지만. 나무를 죽이는 쉬운 방법 생각하니 잔인하네. 봄여름에 그 많은 나뭇잎을 모두 따버리면 나무는 얼마나 아플까. 아프기만 하지 않고 시름시름 앓다 말라버리겠지. 이 나뭇잎이 세상을 사는 평범한 사람 같은 느낌도 들었어. 시인은 그런 거 생각했을지. 그저 나무만 생각해도 괜찮기는 할 거야.
멈춤, 지금 멈춤, 더 오래 멈춤, 그렇지 않으면 지금보다 더 혹독한 전염병의 시대가 온다, 곧 다시 온다고 했다. (<마스크에 쓴 시 7, 거울이 말하기를>에서, 69쪽)
세상이 잠시 멈췄던 때도 있었지만, 다시 달려가려는 것 같아. 코로나19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어. 남극 북극 빙하나 얼음이 녹고 오래전 바이러스가 나타날지도 모른다고 하더군. 그런 거 생각하면 걱정스러워. 인류는 전쟁 아니면 바이러스로 사라질지도 몰라. 이런 생각해도 지금 뭘 해야 할지 모르기도 하는군. 많이 만들고 많이 쓰던 것에서 덜 만들고 덜 쓰는 걸로 바꿔가면 나을지. 사람이 사는 데 있어야 할 건 그리 많지 않은데. 지구를 생각하고 뭘 해야 할지보다 뭘 안 하면 좋을지 생각하는 게 더 나을지도.
난 이번에 김선우 시인 시집 처음 봤어. 이름은 알았는데 시집은 못 봤어. 소설 봤지만, 그거 읽고 잘 못 썼던 것 같아. 여긴 담긴 시 다 안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따듯한 마음이 느껴져. 제목이 ‘내 따스한 유령들’이어선가. 이건 단순한 생각일지도 모르겠군.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