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비가 오면 비를 쓰고
눈이 오면 눈을 써야죠
오랜만에 눈이 세상에 놀러왔어요
눈은 나무 위에,
길 위에, 지붕 위에,
우산 위에, 사람 머리 위에
가만히 내려 앉았어요
눈은 쌓이기도
쉽게 녹아버리기도 했어요
세상에 놀러와서
바로 녹으면 아쉽겠네요
눈이 좀 더 이리저리 날리고
세상에서 즐겁게 놀다 가기를
오랜만에 만난 눈은
반가워요
눈아,
세상에 또 놀러 와
*비가 쏟아지는데 눈이 왔다고 하다니. 늦었구나.
희선
밤
어두워져도 어둡지 않고
세상은 밤에도 환하지
모든 곳에 빛이 닿지는 않으니
빛이 닿고
사람이 조금이라도 있는 곳으로 다녀
밤엔 모두 집으로 돌아갈까
밤이 와도 집으로 가지 못하는 사람도 있겠군
언젠가 돌아갈지
영영 돌아가지 못할지
바깥에서 보는 불빛이
따스해 보여도
그 안에 있는 사람이
모두 따스하지는 않을 거야
밤이 온다고 어두워지지 않길
밤에도 즐겁게 지내
밤을 잘 보내면
밝은 아침이 올지도 몰라
써야지
한때는 나도 꿈 꿨어
내 글이 누군가한테 위로가 되길
시간이 흐를수록
글을 쓸수록
그런 글 쓸 자격이 나한테 있을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
내 글이
많은 사람을 위로해주지 못해도
나 자신은 위로해줄지도 모르지
나조차 위로해주지 못하는 날도
있을 것 같아
그건 쓸모없는 글일지도
가끔 쓸모없는 글을 쓴다 해도
언제나 괜찮은 글만
쓰는 것도 이상하잖아
본래 글은 쓸모없는 건가
글이 사는 데는 쓸모없어도
마음엔 조금 도움이 되겠지
그랬으면 해
꿈속에서
실제 만나지 못하는 사람이어도
꿈속에서는 만나
신기한 일이야
꿈속에선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면 좋겠는데
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까지
만나게 되는 건지
정말 싫다니까
꿈속엔 만나고 싶은 사람만 나오고
만나기 싫은 사람은 안 나왔으면 해
아주 가끔
현실에서 이뤄지지 않는 일이
꿈속에서 이뤄지기도 해
깨고 나면 꿈이잖아,
하는군
현실이면 더 기뻤을 텐데
현실에서 이뤄지지 않은 일
꿈속에서라도 이뤄지면 좋겠어
그런 꿈만 꾸면 좋겠군
시간은 어디로
빗물
시냇물
강물은
바다로 흘러가네
시간도 흘러가는데,
시간은 어디로 흘러갈까
보이지 않는 시간
어제 오늘 내일
어제는 어딘가에 있을지
내일은 어떨까
오늘밖에 모르네
어제와 내일은 어딘가에 생긴
시간의 틈에 있을지도
어제는 쌓이고
내일은 다가오지
우리는 어제도 내일도 아닌
오늘을 살아
시간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몰라도
그냥저냥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