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자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34
선자은 지음 / 자음과모음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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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책은 처음인데 첫만남이 나쁘지 않다. 이름을 기억해야 할 듯 하다. 사람의 마음 안에는 '욕망'이라는 나쁜 괴물이 하나 살고 있다. 사춘기라는 그러지 않아도 2차 성장으로 인해 한참 여러모로 힘든 시기인 소년과 소녀 그들이 자신안에 존재하는 욕망이라는 괴물과 싸우는 이야기라 그런가 술술 넘어가면서도 재밌게 읽을 수 있다. 한참 분신사마라고 해서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계약과 같은 무서운 이야기들이 돌기도 했지만 알음이와 소희라는 소녀는 폐가에 가서 '계약'을 한다. 그것이 분신사마와 흡사한 행위인데 계약자와 계약을 한다는,그것이 알음이가 아닌 소희가 자신의 짝사랑과 이루어지게 해달라는 계약이었는데 계약자가 낮잠이라도 잔 것일까 계약을 한 소희가 아닌 알음이에게 나타난 것이다.어떻게 보면 엉뚱한 계약이다.

 

소희는 첫사랑과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비는 사이 알음이는 자신의  친아빠의 정말 어처구니 없는 오지랖의 끝인 아빠의 아이인지 정말 위기에 처한 아이를 데려 온 것인지 모를 다룸이를 없애달라는 소원을 빈다. 다룸이가 집에 오면서 그야말로 자신은 찬밥신세가 되기도 했지만 행복했던 가정이 하루아침에 불행이 터널로 빠지고 말았다. 그동안 아빠의 오지랖을 참고 참았던 엄마도 이번 오지랖은 더이상 참아 줄수 없었는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엄마가 사라졌다. 할머니가 와서 집안일을 거들며 다룸이를 돌보지만 아빠란 존재는 정말 왜 그렇게 오지랖이 넓은 것인지 이해할 수도 이해가 가지도 않으면서 아빠로 인해 피해를 보는 가족은 보이지 않는 것인지. 온통 알음이를 궁지에 몰아 넣고 있는 사이렌,다룸이만 없어지면 만사형통이련만.

 

그런데 그 계약자가 자신에게 나타난 것이다. 계약자인지 몰랐는데 괴물과 같은 시커먼 존재가 그녀에게 나나난다. '보려는 대로 보이는 것이다. 가지고 싶은 것을 가져라. 거짓말은 나쁘지 않다. 내 것이 될 수 없다면 남의 것도 될 수 없다. 사라진 것을 찾지 마라. 혼자가 되어야 원하는 것을 얻는다. 넌 나다 나는 너다.' 라는 계약과 함께 그녀의 남자친구도 생기고 반에서 모두가 기피하듯 하는 친구가 눈에 보이기도 하고 부딪히는 경우도 생기지만 나비에게 호기심도 생긴다.그러다 소희와는 소원한 관계가 되고 만다. 신율과 자신은 그런 관계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어쩌다보니 가장 친한 친구의 남자친구를 뺏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신율의 이야기를 들어가며 그의 아픔을 나누며 자신의 현재도 들여다보게 되고 점점 발을 들여놓고 싶지 않은 세계에 발을 들여 놓으며 계약자의 정체 또한 확연해 진다.

 

계약자의 실체는 무엇일까? 계약자는 바로 자신안에 웅크리고 있는 욕망이라는 괴물이다. ''넌 나다,나는 너다'라는 말처럼 계약자의 존재는 바로 자신이었다.자신안에 있는 또 다른 자신의 모습과 마주하며 만나게 되는 많은 일들을 통해 성장통을 겪게 되는 알음이와 그리고 그의 친구들 이야기는 사춘기 때에 한번씩 가져볼 수 있는 마음을 잘 표현해 낸 듯 하다.그런가 하면 자신의 세계에 그 누구도 들여놓고 싶지 않은 것이 그시기의 소녀들의 마음이다. 자신이 차지하고 있던 집안의 위치를 다룸이라는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아이가 와서 모든 것을 차지하며 빼앗아가자 어린아이를 쿠션이나 베개로 질식시켜 죽여 버리고 싶은 마음까지 드는,자신을 지배해 버리는 욕망이라는 괴물 앞에서 엄마가 사라진지도 모르고 자신안에 갇히게 만든다.

 

결국 자신안에 있는 욕망이라는 실체와 싸워 이겨내면서 그동안 그리지 못하던 그림도 그리게 되고 엄마도 다시 돌아오게 하는 힘을 가지게 되기도 하지만 이성친구도 동성친구도 좀더 넓은 눈으로 바라보고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성장을 하는 알음이가 대견하게 그려진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가족간에 대화가 부족했다. 오지랖 넓은 아빠와도 충분한 대화를 했다면 사이가 멀어지지도 않았을 터이고 엄마가 집을 나가는 일까지 발생하지 않았을터인데 이 집안은 대화가 조금 부족했다. 이 시기는 부모와 대화를 하기 보다는 친구와 더 많은 대화를 하는 시기다. 그래도 안방문을 가끔 자신있게 열고 부모와 대화를 하는 그런 알음이가 되길 바래본다.

 

그런가하면 율이네 또한 형의 죽음 이후 가족간의 대화가 단절될 듯 하다. 율과 쌍둥이 동생인 나비와의 대화도 그렇고 서로 각자가 홀러서기를 하고 있다는 부분이 참 마음이 아팠다. 그런 큰 아픔 뒤에는 가족 모두가 견디어 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서로가 그럴수록 더 대화를 많이 나누고 가슴에 고인 것을 풀어내야 하는데 아직도 모두의 가슴에 고여 아픔으로 존재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부모가 혹은 율과 나비만이라도 서로 남남처럼이 아니라 가족으로 얽혀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대화의 부족에서 오는 가족간의 비극은 정말 많다. 할머니와 알음이도 대화를 더 많이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자신안에 있는 계약자와 싸우느라 그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고 볼 수 있지만 서로 대화의 단절이 부른 아픔이 곳 곳에 있는 듯 해서 마음 아팠다.그래도 욕망이라는 실체와 당당히 부딪혀 싸웠다는 것이 대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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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만리 1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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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시장에 대한 책을 몇 권 읽었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짝퉁의 나라라기 보다는 앞으로는 무한의 시장가치를 지닌 존재로 그만큼 중국시장은 무시못할 큰 시장이 된 것이다. 인구만해도 얼마인가 정말 라면 하나만 팔아도 얼마인지.땅덩어리도 크지만 어마어마한 인구는 결코 무사 못하는 대국이 되고 말았다. 중국이라는 나라에서 성공하려면 '지피지기 백전불패' 라고 했다. 적을 알아야 패하지 않는 것인데 그저 역사속 중국만을 볼 것이 아니라 현재 흐름을 판단하고 계획한다면 분명 성공의 길이 보일 것이다.

 

여기 대국의 시장에 뛰어든 이들이 있다. 영업으로 잔뼈를 키워 나가고 있는 종합상사 부장 '전대광' 그가 자신의 입지를 더 굳히기 위하여 한국에서 부랴부랴 입성시킨 성형의 '서하원',그는 비록 한국시장에서는 불명예를 안고 퇴진하듯 물러났지만 중국에서는 자신의 자리를 다시금 다지는 기회를 만들기 위하여 고군분투한다. 양악수술을 하다가 잘못되어 물러나게 되었지만 중국에서는 양악이 아닌 눈,코등 비교적 간단한 성형수술만으로도 문전성시를 이룰 정도로 중국은 미의 판도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닫혀 있던 여성들의 미의 세계가 이제 성형으로 보편화 되는 사회가 되고 있는 것이다.그만큼 여자들이 자신들의 아름다움을 위해 주머니를 기꺼이 여는 사회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중국에서는 무엇보다 중국인 '꽌시'도 있어야 하고 체면을 중요시 하는 그들의 특성도 알아야 하지만 자신들이 체면이나 그외 일과 관련한 것에는 '천천히' 하는 이들이 이익과 관련된 일에는 '콰이콰이' 하는 이들이다. 무대가 중국이기에 그들의 특성에 맞게 자신들을 고쳐나가야 시장에서 살아 남을 터인데 한국은 중국인들을 상대하기 위하여 '중국어'를 적극적으로 배워 활용하는가 하면 일본인들은 우월주의에 빠져 자국의 언어로 하려는 교만함 때문에 시장에서 어려움을 겪기도 하는 일들이 벌어지기도 하는가보다.그런 비교가 시장에서 살아 남으려는 나라의 특성을 비교해 주기도 한다.

 

그녀는 중국에 와서 놀란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특히 놀란 것이 두 가지였다. 하나는 여자들이 정조 관념이라고는 전혀 없이 마음껏 몸을 내두르며 사는 것이었고,다른 하나는 당원이나 관리들과 일반인들 사잉에서 일어나는 극심한 인간 차별이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당원이나 관리들은 천상의 인간들이었고, 일반인들은 지하의 인간들이었다.

 

중국하면 빈부의 차가 정말 큰 나라라고 알고 있는데 '골드 88' 이라는 부동산 빌딩을 예로 들어도 그 빌딩을 건립하는 이는 30대 젊은 여회장이며 그녀는 완전한 중국인도 아닌 미국계이다. 1편에서는 그녀가 어떻게 끝까지 살아 남는지 이야기가 다 나오지 않았지만 그녀의 배후에 뭔가 어둔 그림자가 있는 듯도 하다. 그만큼 시장의 판도가 바뀌었다는 것을 말해주기도 하면서 다른 나라와는 다르게 초고층 건물에 목숨을 걸듯 매달리는 중국,그래서일까 건설붐과 함께 매연에 시달리는 사람들이나 건설현장에서 돈이 있는 자들은 힘을 휘두르는 세상이지만 돈이 없는 농민공들은 끼니를 굶어가며 허리띠를 졸라매도 허리 펴고 살기도 힘든 세상이기도 하지만 건설현장에서 목숨이 왔다갔다 해도 나몰라라 하는 그곳에서 목숨을 담보로 자식을 위하여 돈을 버는 이야기에는 정말 가슴이 아린다.어디나 돈이 행세하는 세상은 정말 씁쓸하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을 놓고 중국 뿐만이 아니라 한국 일본 그외 나라들이 살아 남기 위하여,아니 이 거대한 황금알을 낳는 시장을 빼앗기지 않기 위하여 고군분투하는 현실이 씁쓸하게 비쳐지면서 그곳의 젊은이들 또한 자본주의에 물들어 부모세대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는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기대된다. 미래는 중국만이 시장 중심이 될까? G2로 급부상한 중국에서 그들도 하루하루 어떻게 변해갈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시장에서 꽌시와 몐쯔를 이해하며 거대한 정글과 같은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한 각축전과 같은 이야기가 서로 어떻게 엇갈려 갈지.

 

저자의 <태백산맥>과 <아리랑><한강>과 같은 대하소설 이후에 <인간연습> <허수아비춤> 과 같은 소설은 아직 그가 우리에게 할 이야기가 많이 남아 있다는 것으로 좀더 다양한 작품을 기대하던 차에 <정글만리>는 우리 눈을 중국이라는 거대시장으로 눈을 돌려 놓았다. 그야말로 중국이라는 그곳에서 중국 한국 일본 등 각국 비스니스맨들이 살아남기 위한 백전불패를 위한 신화창조를 위한 이야기를 2년여 조사와 현지답사로 써서일까 사실감 있고 경쾌하다. 남은 이야기들도 미루지 말고 읽어봐야 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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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컵을 위하여
윌리엄 랜데이 지음, 김송현정 옮김 / 검은숲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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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살 사춘기 소년이 살인죄로 기소되었다면 어떻게 할것인가? 그가 만약 당신의 아이라면 당신은 가족을 위하여 어디까지 할 수 있을 것인가? 두 딸을 키우고 있고 사춘기를 지났지만 요즘은 사춘기가 십대에만 오는 것이 아니라 이십대에도 이어지는지 아직도 사춘기 소녀들과 같은 딸들과 부딪히며 늘 애증의 시간을 보내고 있어 소설이 더 와닿는가보다. 우리도 늘 하는 소리지만 아빠들은 자식에 대하여 세세한 그 속까지 전부를 알지 못한다.아니 엄마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적어도 아빠보다는 엄마들이 더 자식에 대하여 조금더 알지 않을까.그래도 늘 모르겠는것이 깊은 우물속이 아니라 자식 마음속이다. 옆에서 아니 한집에서 살고 있어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어떤 일을 밖에 나가서 하고 있는지 그 속을 정확하게 모르긴 우리나라나 다른 나라 부모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제이컵네 집은 겉으로 보기엔 중산층 가정이다. 차장검사인 아빠 앤디와 교사생활을 했던 엄마 로리 그리고 14살의 아들 제이컵, 제이컵의 친구 벤이 공원에서 시체로 발견되기까지는 그들은 평범한 중산층 가정이었지만 벤의 시체가 발견된 이후 잘나가는 차장검사 앤디는 면직을 당해야 했고 아들은 '살인자' 로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그들은 철저하게 아니 산산조각으로 무너져 내렸다. 엄마와 아빠의 눈에는 평범하고 말 잘 듣는 아들인 제이크가 어떻게 살인자란 말인가.그것도 반 친구를 야만적으로 살해를 할 수 있고 아무렇지도 않게 학교 생활을 할 수 있다는 말인지 도저히 부모들은 자신의 아들인 제이크의 일을 받아 들일 수가 없다. 유죄가 아닌 '무죄'라고 단정짓고 아니 유죄를 받아 들이지 못하고 현실과 마주한다.

 

단지 제이크가 범인으로 지목된 이유는 살해된 친구의 옷에 남은 '지문'이 제이크의 것이라는 것과 그가 공공연하게 친구들에게 칼을 보여주었다는 것 그리고 벤과 제이크는 늘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증거가 불충분하지만 분명히 유죄로 몰아갈 수 있는 충분한 '이유' 들이 그를 유죄로 만들어 나가고 있다. 검사인 앤디가 보기에 자신의 아들은 말 잘 듣고 평범한 십대 소년이다. 그런 아들이 유죄라는 것을 받아 들일 수 없지만 그의 피 속에는 윗대부터 가지고 있는 '살인 유전자'인 '폭력성'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아버지 또한 자신이 어린 나이에 살인자가 되어 현재까지 복역중에 있다.그런 아버지의 존재를 지워 버렸지만 아들인 제이크가 살인자로 내몰리면서 아버지와 그의 핏속에 감추어진 살인유전자가 수면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와 제이크에게도 살인 유전자라는 것이 있을까? 폭력성이라는 것이 유전될까?

 

"좋아,알았어. 하지만 당신이 제이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걸 수도 있어.그럴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 당신은 신뢰성이 떨어져.보걸 박사님도 그 사실을 알아야 해."

 

제이크의 부모인 앤디와 로리는 살인사건이 일어나기 전과 후 너무도 다른 아들을 만나게 된다.그동안 그들이 알고 있었던 평범한 아들이 아니라 그동안 가면속에 감추어져 있었던 제이크의 본모습과 마주하게 되면서 앤디는 증거가 될 수 있는 칼과 아이팟을 없애기도 하면서 자신의 아들이 유죄일 가능성을 지워 나간다. 아니 분명 무죄라고 인정을 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유죄일 가능성을 늘 열어 둔 상태와 마주한다. 현실은 분명한 증거가 없어도 제이크가 벤을 살해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앤디는 그런 현실과 마주하며 자신의 아버지도 부정하게 되지만 어쩔 수 없이 살인 유전자에 대하여 긍정하게 된다. 그런 거짓된 앤디의 모습과 아들이 살인죄로 기소된 후 엄마 로리는 급격하게 무너져 내린다.

 

14살 소년이 살인죄로 기소된 후로 그들의 집은 그야말로 와해 직전이다. 소송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하여 집까지 날릴판인데 무죄로 판명이 난다고 해도 이곳에서 따가운 시선에 맞서며 그들이 살아갈 수 있을까? 제이크가 밝은 미래를 펼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어른들은 견디어 내겠지만 그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하루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현실에서 그동안 방치하듯 했던 아버지와 만나게 되고 아버지의 도움으로 겨우 위기에서 벗어나지만 그것은 더 큰 위험을 안겨주는 꼴이 되었다. 법정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홀가분하게 이 살인사건에서 벗어나야 했는데 누군가 인위적으로 조작한 결과에 의해 살인자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유죄도 아니고 무죄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로 있다는 것이다. 독자 또한 유죄인지 무죄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어느 쪽에 무게를 두어야 할까를 독자의 몫으로 넘긴다.

 

"앤디, 당신은 제이컵을 생각해야 해. 제이컵을 위해 어떤 일까지 할 수 있어?"

"지옥에라도 갔다 올 수 있어."

 

제이크의 부모 뿐만이 아니라 모든 부모가 자식이 잘못을 저지르면 부모가 대신 그 죄값을 받고 자식은 온전한 삶을 살게 하고 싶은 것이 부모의 심정일 것이다. 더군다나 아버지 앤디는 차장검사였기에 자신의 아들이 처한 상황의 부조리를 너무도 잘 알고 있고 어제까지 동지였던 그들과 싸워야 한다는 현실이 너무 힘겹지만 그는 아들의 위하여 무조건적으로 무죄라고 인정을 하며 아들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듯 하지만 마주하는 현실은 그가 생각했던 아들의 모습이 아니다. 겉과 속이 다른 것처럼 아들의 뒷면의 이중성 앞에서는 무너져 내리는 앤디,그리고 마지막 희망을 찾듯 떠난 여행에서 돌이킬 수 없는 또 하나의 사건과 마주하면서 아들의 죄를 인정하게 된 엄마 로리의 선택은 정말 비참하다. 자신들이 그토록 고대하며 바랐던 아들이었고 중산층 가정에서 평범하게 잘 자란 아들이라 생각했던 14살 살인자는 한순간에 모든 것을 다 붕괴해 버린다.

 

우리의 이웃 대부분은 나름의 평결을 내렸다. 그들에게 우리는 유죄가 아니었지만,딱히 무죄도 아니었다. 제이컵이 벤 리프킨을 살해하지는 않았을지라도,이웃들은 이미 제이컵에 대한 뒤숭숭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법정소설은 읽다보면 무죄를 유죄로 만들어 가는 블랙혹에 빠져 드는 것 같아 읽으면서 괜히 짜증게이지가 올라가기도 한다. 유죄냐 무죄냐를 따지기 이전에 '살인자'로 지목된 그 순간부터 롤러코스터를 타듯 한 가정이 무참히 무너져 내리는 이야기라 그런지 두껍지만 빠르게 읽을 수 있었다. 두 사건 모두 제이크는 자신의 죄가 없다고 말을 하지만 모든 것은 독자의 몫이다. 죄를 판정하는 것은. 어린시절 아버지가 살인자로 낙인 찍히며 아버지를 부정하던 앤디가 성인이 되어서는 아들이 살인자가 되는 카르마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자신이 어제까지는 법을 다루며 잣대를 휘둘렀다면 그 잣대에 오늘은 자신들이 휘둘려야 상황에서 그가 선택할 수 있는 현실은 너무도 비참하다. 한번 찍힌 '낙인'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다. 그것이 무죄라고 판정이 나도 우리는 그것을 번복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 시선속에 낙오된 연애인들의 이야기도 종종 들려온다. 사람의 시선이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무죄여도 유죄로 인정하여 더이상 살아남지 못하도록 아니 살아가지 못하도록 뿌리를 잘라내 버린다. 그런 군중심리 또한 밑바탕에 깔려 있으면서 한 가정이 사춘기 소년의 살인죄로 인해 와해되는 과정이 개개인의 심리묘사도 그렇고 잘 이끌어나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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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섬옥수
이나미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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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모두 하나의 섬이다. 섬과 섬이 모여 하나의 인간세계를 이룬 세상에서 이젠 세상 끝이라고 땅끝섬을 찾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땅끝섬 그곳에서 다시 시작을 마주하여 새로운 인생을 설계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뫼뵈우스의 띠처럼 삶이란 생과 사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주듯 활어처럼 팔팔한 언어로 섬과 섬에서 이어지는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죽음이 아니라 생을 택해야 함을 느끼게 되는데 섬이란 슬로시티라고 '느리게 느리게' 느린 여유로 힐링을 하려는 이들이 찾는 섬이 도회지인들,육지인인 여행객들로 서로 밥그릇 싸움을 하고 물고 뜯고 그리고 죽음에 이르는 생과 사의 각축장으로 변하는 '섬' 의 이야기에서 '삶'을 본다.

 

탁구공만 한 찌가 물결에 이리저리 휩쓸리면서도 가라앉지 않는 것처럼, 숱한 파도와 바람을 뒤집어쓰면서도 나뭇잎처럼 떠 있는 섬처럼 의연하게 살 순 없을까.스스로 어찌해보려고 안간힘을 쓴들 어디 삶이 뜻대로 되던가.욕망과 절망도,행복과 기쁨도 마음에서 우러나는 것인데 그 마음 하나 비우기가 어려워 이렇게 몸부림치는구나.

 

오랜시간동안 강사일을 했지만 이젠 스스로 물러나야만 한다. 거기에 남편과의 관계는 소원해지고 남들 다 갖는 아이도 낳지 못한 자애는 모든 연결을 끊고 땅끝섬으로 향하여 반야가 있는 절에서 섬사람들과 섞여 그들의 이야기에 묻혀 조용히 지낸다. 인간 군상들이 모여 별의별일이 다 벌어지는 육지에서 멀어져 땅끝섬에 왔지만 이곳 역시나 생과 사는 동네 개들한테도 밥그릇 싸움을 하듯 질긴 목줄처럼 질질 따라 붙는다. 서로 신발 뒤축을 물고 늘어지듯 힘들게 싸우며 자신의 밥그릇을 지키는 사람들 그 속에서 그녀는 자신의 홀랑 벗겨진 삶을 다시금 본다. 그는 왜 연락도 없는지.

 

아이들이 어릴 때,좀더 크기 전 부모와 함께 할 수 있을 때 섬여행을 해보자며 섬여행을 계획했다.느리고 여유로운 그곳에서 우리도 스트레스를 다 벗어 버리고 여유를 찾자고 새벽부터 달려 바지선에 차를 실고 섬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차를 가져가서일까 오전 한바퀴 돌고나니 우리가 더이상 갈 곳이 없다는 것,온통 주위는 바다 뿐이고 왠지 모르게 갇혀 있다는 느낌에 빨리 벗어나고 싶다고들 모두가 난리다. 좀더 한적함을 원했던 우리는 아직 섬에 익숙지 못했고 낯설었으며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허둥대다 급기야 점심쯤 다시금 바지선에 차를 싣고 섬을 벗어나 육지로 나오고 말았다. 그렇게 생각없이 간 섬여행은 두고두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준비성이 없었지만 우리가 너무 많은 것을 바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가지게 되었다. 육지에서 산 우리는 너무 문명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섬에서의 생활은 불편함 그 자체이며 섬이란 곳은 한정된 곳이기 때문에 외지인을 그리 반기지 않는 듯 했다. 이곳 땅끝섬도 외지인이 달갑지 않다. 그들이 박힌 돌을 빼듯 섬에 와서 정착하여 원주민들과 밥그릇 싸움을 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는 곳이다.

 

손바닥만 한 섬에서 관광객들 주머니만 바라보며 밥그릇 싸움 하는 상황이라 외지인을 경계하는 섬사람들의 배척과 텃세는 생각보다 심했다.뭍것들이라는 차가운 시선과 부부 나이 차가 암만해도 수상쩍다는 수군거림에서 비롯된 왕따로 하루하루가 가시방석이었다.

 

섬에서 외지인이란 관광객으로 그들에게 돈이 되는 수단이라 볼 수 있다. 그런 그들을 한사람이라도 더 잡기 위하여 누가 새로운 것을 하여 재미를 보면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유행은 번져 나가고 급기야 좁아터진 섬에서 골프차가 넘쳐 나고 개들이 넘쳐 나고 짜장면집이 넘쳐난다. 자신만의 특색으로 관광객을 맞이하기 보다는 돈이 되는 수단에 바닷물처럼 휩씁려 흘러간다. 그래도 그곳에서 꿋꿋하게 삶을 이어나가는 잠녀의 삶을 살아가는 할망들도 있고 육지에서 생을 버리듯 흘러 왔다 뿌리를 내린 이들도 있다. 이곳이 그들에게는 더이상 물러설 수 없는 마지노선처럼 다시 '시작점'으로 인생을 새롭게 출발을 해야만 한다. 누군가는 더이상 나아갈 출구를 찾지 못하고 벼랑 끝에 몰려 태양을 향하는 이카루스처럼 절벽에서 나아 올라 한마리 새로 생을 마감하는 이도 있지만 분명 이곳은 끝이 아닌 시작인 곳이며 잠녀 할망들의 누구보다 질긴 '숨비소리'는 목숨을 내 놓고 자맥질하여 건져 올린 '생'의 싱싱함이다.

 

새 생명과 인연을 맺고 새 출발을 다짐하는 시점에서 다시 찾은 섬은 더 이상 땅끝이 아니다. 시작과 끝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맞물려 있는 법,내려오기로 치면 끝이지만 거슬러 올라가자면 국토의 시작 아닌가.

 

저자가 여자분인데 실감나는 바다 낚시이야기며 섬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그려내 한번 더 저자의 약력을 보게 되었다.내겐 그리 익숙한 이름이 아닌데 이 작품으로인해 저자를 기억해야할 듯 하다. 소설은 절망보다는 '희망' 에 더 중심을 두었기 때문에 읽으면서도 출발점에서 다시금 희망을 장전하고 뛰어야 할 것만 같은 마음으로 숨을 뱉어 내고 새로운 숨을 폐북 깊숙히 밀어 넣으며 끝까지 한 자도 놓치지 않고 재밌게 읽었다. 혼자 고독하게 고고하게 세상에 존재하는 섬이 되지 말고 서로 무언가 섬과 섬으로 연결되어 육지는 아니어도 끝이 아닌 공간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끝에서 다시 시작을 찾은 사람들 그리고 그곳에서 모진 세월과 싸워 이겨내듯 질긴 생명력으로 모두를 보듬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래고 삶은 비극이 아니라 멀리서 보면 희극이기에 살만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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