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컵을 위하여
윌리엄 랜데이 지음, 김송현정 옮김 / 검은숲 / 201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4살 사춘기 소년이 살인죄로 기소되었다면 어떻게 할것인가? 그가 만약 당신의 아이라면 당신은 가족을 위하여 어디까지 할 수 있을 것인가? 두 딸을 키우고 있고 사춘기를 지났지만 요즘은 사춘기가 십대에만 오는 것이 아니라 이십대에도 이어지는지 아직도 사춘기 소녀들과 같은 딸들과 부딪히며 늘 애증의 시간을 보내고 있어 소설이 더 와닿는가보다. 우리도 늘 하는 소리지만 아빠들은 자식에 대하여 세세한 그 속까지 전부를 알지 못한다.아니 엄마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적어도 아빠보다는 엄마들이 더 자식에 대하여 조금더 알지 않을까.그래도 늘 모르겠는것이 깊은 우물속이 아니라 자식 마음속이다. 옆에서 아니 한집에서 살고 있어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어떤 일을 밖에 나가서 하고 있는지 그 속을 정확하게 모르긴 우리나라나 다른 나라 부모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제이컵네 집은 겉으로 보기엔 중산층 가정이다. 차장검사인 아빠 앤디와 교사생활을 했던 엄마 로리 그리고 14살의 아들 제이컵, 제이컵의 친구 벤이 공원에서 시체로 발견되기까지는 그들은 평범한 중산층 가정이었지만 벤의 시체가 발견된 이후 잘나가는 차장검사 앤디는 면직을 당해야 했고 아들은 '살인자' 로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그들은 철저하게 아니 산산조각으로 무너져 내렸다. 엄마와 아빠의 눈에는 평범하고 말 잘 듣는 아들인 제이크가 어떻게 살인자란 말인가.그것도 반 친구를 야만적으로 살해를 할 수 있고 아무렇지도 않게 학교 생활을 할 수 있다는 말인지 도저히 부모들은 자신의 아들인 제이크의 일을 받아 들일 수가 없다. 유죄가 아닌 '무죄'라고 단정짓고 아니 유죄를 받아 들이지 못하고 현실과 마주한다.

 

단지 제이크가 범인으로 지목된 이유는 살해된 친구의 옷에 남은 '지문'이 제이크의 것이라는 것과 그가 공공연하게 친구들에게 칼을 보여주었다는 것 그리고 벤과 제이크는 늘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증거가 불충분하지만 분명히 유죄로 몰아갈 수 있는 충분한 '이유' 들이 그를 유죄로 만들어 나가고 있다. 검사인 앤디가 보기에 자신의 아들은 말 잘 듣고 평범한 십대 소년이다. 그런 아들이 유죄라는 것을 받아 들일 수 없지만 그의 피 속에는 윗대부터 가지고 있는 '살인 유전자'인 '폭력성'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아버지 또한 자신이 어린 나이에 살인자가 되어 현재까지 복역중에 있다.그런 아버지의 존재를 지워 버렸지만 아들인 제이크가 살인자로 내몰리면서 아버지와 그의 핏속에 감추어진 살인유전자가 수면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와 제이크에게도 살인 유전자라는 것이 있을까? 폭력성이라는 것이 유전될까?

 

"좋아,알았어. 하지만 당신이 제이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걸 수도 있어.그럴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 당신은 신뢰성이 떨어져.보걸 박사님도 그 사실을 알아야 해."

 

제이크의 부모인 앤디와 로리는 살인사건이 일어나기 전과 후 너무도 다른 아들을 만나게 된다.그동안 그들이 알고 있었던 평범한 아들이 아니라 그동안 가면속에 감추어져 있었던 제이크의 본모습과 마주하게 되면서 앤디는 증거가 될 수 있는 칼과 아이팟을 없애기도 하면서 자신의 아들이 유죄일 가능성을 지워 나간다. 아니 분명 무죄라고 인정을 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유죄일 가능성을 늘 열어 둔 상태와 마주한다. 현실은 분명한 증거가 없어도 제이크가 벤을 살해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앤디는 그런 현실과 마주하며 자신의 아버지도 부정하게 되지만 어쩔 수 없이 살인 유전자에 대하여 긍정하게 된다. 그런 거짓된 앤디의 모습과 아들이 살인죄로 기소된 후 엄마 로리는 급격하게 무너져 내린다.

 

14살 소년이 살인죄로 기소된 후로 그들의 집은 그야말로 와해 직전이다. 소송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하여 집까지 날릴판인데 무죄로 판명이 난다고 해도 이곳에서 따가운 시선에 맞서며 그들이 살아갈 수 있을까? 제이크가 밝은 미래를 펼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어른들은 견디어 내겠지만 그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하루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현실에서 그동안 방치하듯 했던 아버지와 만나게 되고 아버지의 도움으로 겨우 위기에서 벗어나지만 그것은 더 큰 위험을 안겨주는 꼴이 되었다. 법정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홀가분하게 이 살인사건에서 벗어나야 했는데 누군가 인위적으로 조작한 결과에 의해 살인자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유죄도 아니고 무죄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로 있다는 것이다. 독자 또한 유죄인지 무죄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어느 쪽에 무게를 두어야 할까를 독자의 몫으로 넘긴다.

 

"앤디, 당신은 제이컵을 생각해야 해. 제이컵을 위해 어떤 일까지 할 수 있어?"

"지옥에라도 갔다 올 수 있어."

 

제이크의 부모 뿐만이 아니라 모든 부모가 자식이 잘못을 저지르면 부모가 대신 그 죄값을 받고 자식은 온전한 삶을 살게 하고 싶은 것이 부모의 심정일 것이다. 더군다나 아버지 앤디는 차장검사였기에 자신의 아들이 처한 상황의 부조리를 너무도 잘 알고 있고 어제까지 동지였던 그들과 싸워야 한다는 현실이 너무 힘겹지만 그는 아들의 위하여 무조건적으로 무죄라고 인정을 하며 아들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듯 하지만 마주하는 현실은 그가 생각했던 아들의 모습이 아니다. 겉과 속이 다른 것처럼 아들의 뒷면의 이중성 앞에서는 무너져 내리는 앤디,그리고 마지막 희망을 찾듯 떠난 여행에서 돌이킬 수 없는 또 하나의 사건과 마주하면서 아들의 죄를 인정하게 된 엄마 로리의 선택은 정말 비참하다. 자신들이 그토록 고대하며 바랐던 아들이었고 중산층 가정에서 평범하게 잘 자란 아들이라 생각했던 14살 살인자는 한순간에 모든 것을 다 붕괴해 버린다.

 

우리의 이웃 대부분은 나름의 평결을 내렸다. 그들에게 우리는 유죄가 아니었지만,딱히 무죄도 아니었다. 제이컵이 벤 리프킨을 살해하지는 않았을지라도,이웃들은 이미 제이컵에 대한 뒤숭숭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법정소설은 읽다보면 무죄를 유죄로 만들어 가는 블랙혹에 빠져 드는 것 같아 읽으면서 괜히 짜증게이지가 올라가기도 한다. 유죄냐 무죄냐를 따지기 이전에 '살인자'로 지목된 그 순간부터 롤러코스터를 타듯 한 가정이 무참히 무너져 내리는 이야기라 그런지 두껍지만 빠르게 읽을 수 있었다. 두 사건 모두 제이크는 자신의 죄가 없다고 말을 하지만 모든 것은 독자의 몫이다. 죄를 판정하는 것은. 어린시절 아버지가 살인자로 낙인 찍히며 아버지를 부정하던 앤디가 성인이 되어서는 아들이 살인자가 되는 카르마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자신이 어제까지는 법을 다루며 잣대를 휘둘렀다면 그 잣대에 오늘은 자신들이 휘둘려야 상황에서 그가 선택할 수 있는 현실은 너무도 비참하다. 한번 찍힌 '낙인'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다. 그것이 무죄라고 판정이 나도 우리는 그것을 번복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 시선속에 낙오된 연애인들의 이야기도 종종 들려온다. 사람의 시선이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무죄여도 유죄로 인정하여 더이상 살아남지 못하도록 아니 살아가지 못하도록 뿌리를 잘라내 버린다. 그런 군중심리 또한 밑바탕에 깔려 있으면서 한 가정이 사춘기 소년의 살인죄로 인해 와해되는 과정이 개개인의 심리묘사도 그렇고 잘 이끌어나간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