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가라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제13회 동리문학상 수상작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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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주 씨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의사라는 사실을 알고 계시겠죠. 서인주 씨는 유복녀였습니다. 서인주 씨의 모친 이동선 씨는 그 후 10년간 보상금과 유산으로 생계를 유지했고, 알코올중독과 우울증으로 통원치료를 받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때 서인주 씨의 나이가 열한 살이었고, 그 후로는 외삼촌 이동주 씨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이동주 씨가 서른일곱 살의 나이로 죽었을 때 서인주 씨는 열아홉 살이었습니다.' 불편하고 불행한 가족사다. 정희의 친구 서인주의 가족사는 왠지 화가 '뭉크' 의 가족사를 보는 듯 하다. '절규' 의 작가 뭉크의 가족사 또한 죽음과 일관된 불안과 공포였다.그 역시나 죽은 가족들처럼 그런 불행에 빠지는 것은 아닌가 하여 그의 그림에는 불안과 공포를 여실히 들어내고 있는데 이 소설을 읽으며 뭉크의 생과 가족사가 떠오른 것은 그림과 죽음과 연관되어서일까.

작가의 작품은 세번째 마주한다. <붉은 꽃 이야기> 라는 단편을 처음 접하고 강한 느낌을 받아 <채식주의자>를 읽었다. 단편이면서 연결된 연작 또한 그림과 관련된 작품이면서 살고 싶어 하지만 식물처럼 말라가는 어쩌면 역설적으로 강한 '삶의 의지' 를 볼 수 있는 작품을 만나 강한 여운을 지울 수가 없었는데 이 작품 또한 늘 죽음이 도사리고 있어 불행하지만 강한 삶의 의지를 보여주는 화가가 미시령 고개에서 자살을 하여 세간의 이목을 끄는 이야기로 그녀와 어릴적부터 친구였던 정희는 인주의 죽음이 자살이 아닌 타살이라고 강한 의지를 보이며 그녀의 죽음에 대한 퍼즐조각을 하나하나 맞추어 나간다. 그러다 마주하게 되는 불편한 진실, 어쩌면 절망도 희망도 이합 한지에 번지던 검은 먹물처럼 모세혈관을 타고 흐르듯 서서히 번져나갔는지 모른다. 절망의 터널을 잘 통과한 자는 살아 남지만 그 터널속에서 '희망' 을 붙잡지 못하고 우주의 먼지가 되듯 스스로 자멸하는 자들의 이야기는 바람에 흔들리듯 아릿하면서도 애매함 속에서 더욱 도드라져 거센 미시령의 눈보라가 한차례 지나고 나면 선명하게 보이는 세상처럼 통각의 터널을 벗어나야 만날 수 있는 희망을 더 극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한듯 하다.

서인주 그녀의 죽음을 자살로 인정해 그녀를 상품화 하려는 강석원, 하지만 그녀가 자살을 할 이유가 없다는듯 다시금 인주의 과거를 하나하나 들추나가는 정희, 자살이든 타살이든 그녀가 어떤 삶은 살아 왔는지 그녀가 어떻게 하여 유복녀로 태어나고 어머니가 왜 알콜중독자가 되었는지 이야기는 확실함 보다는 편린들을 이어가듯 세밀화를 그려 나간다. 육상선수여서 여성적이라기 보다는 남성적이었다고 볼 수 있는 인주가 다리에 난 사고로 인하여 육상을 포기하고 그림을 그리게 된 사연과 어머니가 죽고 외삼촌 손에서 커가면 그에게서 받았을 영향, 그리고 정희와 외삼촌 인주가 함께 하며 그동안 나누었던 추억과 시간들 속에서 그들이 어떤 삶과 생각을 가졌었으며 정희와 외삼촌과의 관계는 어떻게 발전했는지 바람에 흔들리듯 조심조심 들어난다. 

'당신의 그림 속에 떨고 있던 모세혈관들처럼.'
이합 한지에 먹물의 번짐으로 광활한 우주를 표현해 냈던 외삼촌, 그런 외삼촌에게 잠깐 그림을 배웠지만 미대를 포기하고 국문과를 가게 된 정희와 달리 인주는 사고로 인하여 육상을 포기하게 되면서 침체의 시간을 거쳐 그림에 빠지게 된다. 늘 서로의 거울인양 함께 했던 그녀들, 그녀들에게 어머니란 존재 또한 닮아 있다. 인주의 엄마는 알콜중독자로 생을 마쳤지만 정희의 엄마는 늘 담배냄새와 파스 냄새를 풍기며 잘되지 않는 지하에서 돈까스 레스토랑을 하며 비가 오면 늘 침수되는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모성애를 느끼거나 받기 보다는 어머니들의 삶의 질곡 때문에 둘은 서로에게 더욱 가깝게 되었는지 모른다. 그런 어머니가 울타리도 되지 못하다가 알콜중독으로 돌아가시고 외삼촌 손에 맡겨지면서 외삼촌 또한 혈소판 부족으로 인해 남자이면서 여성적인 조심조심하는 삶은 산다. 정희에게 마음은 있지만 다가가지 못하고 안지도 못하면서 거리를 두고 있는 외삼촌의 그림과 세계는 우주적이다. '공수래공수거' 를 의미하듯 광활한 우주적인 그림이지만 그의 말과 그림속에서는 모든 것들이 '한 점 먼지' 와 같다. 자신의 삶이 그러했기에 욕심을 부릴 수 없고 갇힌 공간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에 더 우주적이지 않았을까. 그런 외삼촌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 후 인주는 외삼촌의 그림을 모방하듯 똑 같은 그림을 그려내다가 죽음에 이른것. 우리의 피 속에는 희망도 절망도 모세혈관을 타고 서서히 흘러 삶을 잠식해 들어가듯 어느 부분이 더 많이 지배를 하느냐에 따라 절망적인 삶이 될 수 있고 절망을 벗어나 희망적인 삶은 살 수도 있는 것이다.

외삼촌에게 향하던 마음으로 그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 결혼생활을 하지만 세 번의 유산을 하고 파경을 맞이한 정희를 비롯하여 인주 또한 알게모르게 결혼생활을 하지만 행복하지 못하고 아들 민서를 남편에게 빼앗겼다 그녀가 짧은 시간 키우게 되지만 그 아들 또한 혈소판이 부족한 유전적인 병을 물려 받고 태어나고 그녀의 죽음으로 인해 아빠에게 돌아가 외국으로 떠나고 만다. 인주의 불행은 미리 예고된 듯 그녀의 엄마의 불행을 전해듣게 되는 '유인섭 소장' 의 등장으로 인해 엄마의 과거가 들어나고 미시령에 얽힌 이야기가 나오며 인주가 미시령에 가게된 이야기는 점점 퍼즐조각들을 맞추어 가게 된다. 하지만 그녀가 인주의 죽음이 자살이 아님을 밝혀내는 것을 꺼리는 한남자 강석원은 그녀를 못마땅해 하면서 그녀의 뒤를 쫓는다. 외삼촌의 '네가 그리는 모든 게 실은 네 자화상이야' 라는 말처럼 자신들은 모두 자신의 자화상을 그리고 있었던 것일까. 자신들의 자화상을 그림에 남겼던 그들은 그렇다면 그림속에 자신들의 '죽음' 또한 표현해 내고 있었던 것일까. 유인섭 소장을 만나면서 잃어버렸던 퍼즐을 찾은듯 인주엄마의 과거가 합쳐지면서 그리고 인주가 엄마의 피를 물려 받아 미시령을 되밟게 되면서 드러나는 죽음의 의문, 그 죽음의 물음표가 풀리면서 강석원은 정희로 인해 드러난 자신의 모든 것이 짓밟혀진다고 생각하며 그녀와 생과사의 결판을 시작하고 죽음의 문턱에서 가까스로 헤쳐 나오는 정희, 그녀는 죽음과 인주의 사랑이라는 터널속에서 헤쳐나오며 모든 것을 빗물에 씻겨 흘려 보내듯 삶의 희망과 마주한다.

'물이 그린 거지. 난 잘 흘러가게 터주고 막아주고 한 것밖에 없어.식물 키우는 거랑 비슷한 거야.갓 태어난 불꽃이 하얗게 타오르는 그의 그림을 향해 나는 다가갔다. 닥나무 껍질로 만든 한지에는 모세혈관들 같은 무수한 섬유질의 길들이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 길들을 따라 퍼져가는 먹의 모양을 이런저런 방법을 잡아주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는 것이었다. 가끔은 그의 몸에서 피가 흘러나와 종이의 핏줄들을 타고 흐르는 것 같이 느껴진다고도 했다.' 아마도 외삼촌 또한 먹물이 한지를 타고 서서히 모세혈관들 같은 섬유질의 길을 타고 흘러가듯 자신 또한 그런 강한 피의 흐름을 타고 다시 태어나듯 그런 삶을 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삶을 살아야 사랑고 이룰 수 있고 그림 또한 성공할 수 있었는데 그렇게 물의 흐름처럼 자신의 피의 흐름이 강하지 못했던 그가 택한 길은 한가지, 우주의 먼지로 돌아가는 일. 그런 외삼촌과 엄마를 옆에서 지켜봤던 인주가 택할 수 있던 마지막 길 또한 똑같을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듯 그녀를 미시령고개로 밀고 갔던 바람은 무슨 바람일까. 

작가 한강의 작품을 읽으면 나도 모르게 '살아야겠다' 는 불굴의 의지를 강하게 태울 수 밖에 없다. 애매모호하면서도 건조한듯 죽음에 이르는 길 속에서 나도 모르게 탈퇴를 하여 삶에 급회전 하듯 빠르게 선회를 해야만 할 것만 같은 그녀의 섬세하면서도 건조함은 그녀만의 소설이 갖는 매력인듯 하다. 강하지 않으면서 알고 나면 약함 속에서 강함이 돋보이는 그녀만의 문체의 매력도 그렇고 동성간의 사랑이 위험하지 않으면서 그 속에서 삶의 희망으로 발버둥치는 나 자신을 만날 때 그녀의 '바람' 은 약하면서도 거세게 분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녀가 작가 '한승원' 의 딸이기에 주목하기도 했지만 그녀만이 가지는 약한듯 하면서도 강함에 반하여 자꾸 그녀의 소설을 접하게 되는 것 같다. 몇 작품을 읽어보려고 준비해 놓고 있지만 이 작품으로 인해 <검은 사슴> 이나 <여수의 사랑>을 빨리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더 가져본다. 그녀의 소설을 읽는 동안 밖에서 겨울바람이 거세게 불기도 했지만 그녀 소설속 곳곳에서 몰아치는 바람은 흔들리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자신을 지키는 정희처럼 삶은 어쩌면 흔들리면서도 꽃을 피우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인주를 몰랐다. 인주가 나를 몰랐던 것보다 더.' 라는 정희의 통한이 서린 말처럼 삶이란 어쩌면 알고 나면 허무한 것인지 모른다. 그녀만큼 모르기에 함부로 버릴 수 없는 삶, 불구덩이를 헤치고 나온 그녀에게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을까. 겨울바람이 몹시 부는 날 내 마음을 흔들어 놓은 한강의 <바람이 분다,가라>는 <채식주의자>를 읽고 났던 때처럼 여운이 길게 남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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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슨즈 베이비 로션 핑크 - 125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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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품은 지난달에 내 곁을 떠나가신 친정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해 계실때 사 드리고 내가 직접 발라 드렸던 제품이다. 병원에서 사서 엄마의 가방에 쏘옥 넣어드리기도 했지만 유분기가 하나도 없는 부모님께 발라 드렸더니 너무도 좋았다.그래서 가족을 위하여 구매를 또 했다.

큰딸에게는 200ml제품을 구매해져 가방에 넣고 다니게 했는데 이렇게 작은 것도 있으니 더욱 사용하기도 좋고 휴대하기도 좋다. 특히나 겨울에는 건조해지기 쉬운 피부에 너무도 좋다.

이번에는 두개를 구매했더니 하나는 남편이 얼른 챙긴다. 회사에서 자주 물을 쓰기에 손이 트고 무언가 필요했는데 안성맞춤이라며 가져갔다. 그리고 하나는 내가 가방에 쏘옥, 나 또한 건조피부이다. 화장을 많이 하지 않기에 베이비 로션이면 충분한데 겨울엔 손이나 다리에 이 로션이 딱이다.

친정아버지께 사드려서 괜히 이 제품을 사용할때 아버지가 생각나기도 하지만 지금은 엄마가 바르고 계시니...유분도 적당하고 향기도 은은하니 좋고 바른 후에 촉촉하니 좋아 만족, 다음엔 두개도 구매를 하여 딸들의 가방에 넣어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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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슨즈 베이비 로션 핑크 - 125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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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에 가방에 쏘옥, 겨울에 더욱 좋은 125ml 의 촉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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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눈에서 희망을 본다 - '굶는 아이가 없는 세상'을 꿈꾸는 월드비전 희망의 기록
최민석 지음, 유별남 사진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10년 10월
품절


'이곳에서는 물이 생명이에요. 우리는 물 때문에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죠. 우리가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다 물 때문이죠.'
볼리비아, 그곳은 우유니소금사막이며 티티카카호수로 여행서에서 만나 무척인 가고 싶은 곳 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꿈은 가난한 자의 빵이다.' 라는 글을 읽고 나니 여행자의 눈이 아닌 좀더 낮은 세상을 들여다보는 그들의 글과 사진으로 인하여 모든것은 다시 수정이 되었다. 15살에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하여 위험한 일을 하는 아밧, 그 형을 따라 죽음을 눈앞에 두면서도 살기위해 일을 도와주는 형제들의 이야기는 내 마음을 숙연하게 했다. 어떻게 하면 '영양실조 제로' 로 만들까. 참 아이러니 하다. 지구촌 반대편에서는 너무 많이 먹어 살을 빼기 위하여 다이어트가 열풍이라면 알게모르게 1달러가 없어 영양실조에 굶어서 죽음에 이르는 아이들이 하루에도 셀 수 없는 아이들이 있다니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하루에 한 잔의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면 지구촌은 어떻게 변할까. 월드비전의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집에서 너무도 쉽게 정수기에서 컵만 대면 나오는 물을 마시는 일조차 미안하고 꺼려진다. 그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모두의 생명이 되는 물을 얻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노고를 들이는가. 집나가면 제일 고생인것이 무엇보다 첫번째가 '물' 이다. 늘상 마시던 물이 아니면,물만 갈아 마셔도 탈이 나서 고생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들은 흙탕물이어도 그 물을 얻기 위하여 가족이 모두 나서거나 하루를 왠종일 물을 길러 가야만 하니 너무도 쉽게 물을 마시는 우리는 좀더 물에 대한 고마움을 생각해봐야 한다. 언제 우리도 물부족으로 인하여 수도꼭지에서가 아닌 몇 시간씩 걸어 다닐지 누가 아는가. 에티오피아편에 실린 물을 긷기 위한 그들이 들이는 시간과 노력을 옮겨보면 ' 우리가 온 이곳에는 다섯 마을을 통틀어 단 하나의 식수원만 빼고 모두 오염되거나 말라버렸다. 딱 하나 남은 식수원이라 해봐야, 수돗물이 콸콸 나오는 식수 펌프가 아니라 개울물을 끌어다 쓰는 일종의 샘물이다. '아잔치' 라는 마을에서는 예전에 왕복 30분이면 물을 길을 수 있었는데, 지금엔 10시간에서 12시간 걸려 물을 길어 온단다. 물을 길으러 가는 데 1시간,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데 8~10시간 남짓 걸리니 살아남기 위해 물 긷고, 물 긷다가 삶을 다 보낸다.' 이렇게 하여 한모금의 물을 마셔야 한다면 글쎄, 쉽게 물을 낭비하고 한 잔의 차나 물로 만든 물로 할 수 있는 그 모든 일들이 소중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자연을 더욱 소중히 여기고 가꾸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될것이다. 환경이 오염되어 제일먼저 만나는 기본적인 문제인 '물부족' 그것을 해결하기 위하여 어느 할머니는 팔순의 잔치를 알지도 못하는 지구촌 어느 동네에 우물을 파주는 일에 쓰시는 것을 보고 얼마나 가슴이 훈훈해졌는지, 산다는 것은 높은 곳 보다는 낮은 곳을 쳐다보며 살면 정말 살만한 곳이며 더 많이 나누고 살아야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물부족에 이은 그들이 벗어날 수 없는 문제는 '가난' 이다. 아버지도 아들도 거지가 되어 거리도 나가 구걸을 하는 삶, 어떻게 해서든 발버둥쳐도 벗어날 수 없는 가난속에서도 그들은 웃음을 잃지 않고 내가 가진 최고의 것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병든 부모님을 대신하여 일을 하는 형을 도와 램프 달린 핼맷이 없이 광산에 나오는 아밧의 동생 미하엘은 ' 1주일에 한 번씩은 형을 돕겠다며 광산에 내려가는 미하엘은 지옥 같은 암흑 속에 의지할 작은 빛도 없이 광산에 내려가는 것이었다. 오로지 형만 의지한 채, 그래서였는지 15살 형은 자신이 목숨을 잃을 뻔했을 때보다, 2살 어린 동생이 목숨을 잃을 뻔 했을 때를 더 아프게, 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한참 부모의 품에서 받아 먹기만 할 나이에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형제들, 그들에게 가난은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형틀과 같은 것일까. 한달에 나 자신부터 3만원을 절약한다면 그들을 도울 수 있다. 하지만 내 주머니를 연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가슴은 열려도 주머니는 좀더 기다려야 열리는 현실이 밉기만 하다. <사라예보의 첼리스트>라는 소설을 읽으며 무척 가슴이 아팠는데 그들이 간 보스니아의 '사라예보 장미' 및 그에 관한 글과 함께 가족이 모두 구걸을 하여 먹고 살아가는 로마족의 이야기, 직업이 '거지' 라는 말을 꺼내기 위하여 긴 시간이 필요했던 엄마와는 다르게 활짝 웃는 모습이 너무도 이쁜 아이들, 그들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그런 가난속에서도 자신은 필요없다며 소중한 것을 내주는 나눔의 마음은 정말 아름다움이란 그런것이다. 모두를 위하여 단번에 가난을 벗어나게 해 줄 수는 없지만 '물고기를 잡아 주는 것이 아닌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준다' 면 모두가 함께 웃을 수 있고 가족이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런 날을 위하여 그들은 신발보다 비행기를 더 자주 갈아타며 지구촌을 누비며 생생함을 담아 우리에게 전해주고 마음을 열어주고 있으니 마음이 움직였다면 큰 것이 아니어도 작은 정성을 보태는 방법을 물색해봐야 한다.

<나 누주드, 열살 이혼녀>라는 책을 읽으며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구나 생각을 했는데 아프리카나 그외 조혼이 성행하고 있는 곳에 가면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일들이 정말 많은가보다. 아직 어린아이라고 할 수 있는 나이에 시집을 가고 혹은 나이차가 너무 많이 나는 상대를 만나 일찍 과부가 되어 홀로 가난을 떠 안고 살아가야 하는 젊은 여자들의 삶은 정말 가슴 아프다. 누주드 또한 죽음을 무릅쓰듯 하여 겨우 이혼을 하게 되고 자신이 원하던 공부를 하게 되었지만 그와 같은 용기를 발휘하며 사는 여성이 얼마나 될까.거기에 과부가 된 그들이 다시 재혼을 하면 받아들여지지 않는 풍습 때문에 그들이 겪어야 하는 삶의 고초는 어떻게 한단 말인가. 어린 나이에 아기 엄마가 되어 어린애가 애를 키우며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불쌍한 여아들의 삶은 나쁜 풍습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은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고쳐져야 한다. 어린나이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어린엄마의 꿈은 학교에서 보통의 아이들과 어울려 공부를 하는 것, 그 단순한 꿈조차 이루어질 수 없음이,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선택하고 선택당해진 삶이 더 어려움에 처해질 때 같은 여자로서 정말 가슴이 아프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로는 '한 아이를 키우는 데, 한 마을이 필요하다'고 한다. 무슨 말이냐 하면, 오염된 식수를 마셔 질병에 걸린 아이를 아무리 치료하고 영양식을 먹인다 해도, 오염된 식수를 마시면 또 질병에 걸린다는 이야기다. 즉, 문제의 원인인 오염된 식수 상황을 개선하지 않고서 일시적인 지원만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먹는 식수 다음으로 또한가지 문제라면 '에이즈', 아버지는 물론 어린 자식들까지 에이즈에 걸려 헤어나오지 못하는 가슴 아픈 이야기. 가난을 벗어나기 위하여 일을 하여야 할텐데 에이즈로 인하여 격리되거나 일을 못하게 된다면 그 나머지 책임을 누가 질것인가. 가족이 모두 연대 어려움에 빠지게 만드는 에이즈, 아이는 자신이 말로만 들어도 무서운 병인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는지 그 눈빛이 너무도 맑다. 삶에 희망이 없을듯한 그에게 에지즈보다 우선적인 것은 하루를 연명할 수 있는 먹을것일 것이다. 슬픔은 한꺼번에 겹쳐온다고 하는데 그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답답하다. 내가 너무 행복하게 살고 있고 너무 과소비하고 있고 행복에 겨워 낮은 곳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미안해진다. 하지만 가슴이 열렸다면 언젠가 그들을 향해 나의 행동도 열릴 것이다. 내겐 필요없는 포인트 기부나 그외 작은 기부는 내 자신에게 더 이상 미안하지 않기 위하여 하고 있지만 좀더 많은 나눔을 하고 싶게 만든다. 그런 이야기 또한 부록처럼 담겨 있어 심금을 울린다. 나눔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내가 가진것이 너무 많아서라기 보다는 내가 가난을 겪어 보았기 때문에 주머니를 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십대소녀가장 이야기 또한 그렇고 고시원에서 살면서 잔고가 없어 한달 못내게 되어 미안하다는 이십대의 이쁜 청춘 이야기 또한 내가 많이 가져서가 아니라 내가 아픔을 겪어 보았기에 나눌 줄 아는 아름다운 이웃들의 이야기이다. 그들이 있어 지구촌 어딘가에서 굶거나 아픔으로 져야하는 생명에 다시금 심지를 돋을 수 있는 희망이 충전되고 있는 것이다. 그 일들을 위해 발로 뛰고 피부병과 싸우고 공황에서 몇 시간씩 공황에 빠지기도 하는 그들의 이야기는 연말이라 그런지 더 와 닿는다.

작가와 함께 사진을 찍은 '유별남' 사진작가는 EBS테마기행 세계여행에서 본 적이 있다. 그래서 더 낯설지 않으며 와 닿았는지 모른다. 그가 사진찍기 보다는 아픔이들을 위해 의사가 아니면서 가방을 열어 치료를 해 주는 이야기는 살짝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민석씨, 전요 사진을 찍고자 하는 이유가 바로 사람을 찍고 싶어서거든요. 우리의 삶이요. 그런데 우리의 삶이나 사람이 고통 받는다면 일단 그것부터 고쳐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그랬던 겁니다. 아깐 아무튼, 사진 못 찍어드려서 죄송해요.' 얼마나 인간적인 사진가의 이야기인가. 가슴이 열린 두 남자의 좌충우돌의 희망로드는 웃음을 자아내게 하기도 하고 목울대가 울컥하게도 만든다. 일생에 고기를 세 번 밖에 먹어보지 못했다는 소녀 때문에 쌀국수에 들어간 고기를 어떻게 먹었는지 모르게 화장실에서 대성통곡하듯 하는 남자들을 떠 올리면 코 끝이 찡해지지 않는가. 어떤이는 삼시세끼 고기를 먹는 이도 있는데 아니 고기를 너무 많이 먹어서 성인병의 요인이 되어 채식을 부르짓고 있는 세상에서 늘상 반찬이 소금이며 '밥' 만 먹다가 일생에서 세 번 겨우 고기를 먹어 보았다는 그녀는 가난을 벗어나기 위하여 부모와 함께 농사일을 해야만 한다. 그녀의 어깨가 얼마나 가녀리게 보였을까. 하지만 눈빛만은 정말 그 어느 누구보다 맑고 깨끗했다. 그들에게 희망을 충전해 주고 싶은 마음, 비단 나 혼자만의 마음만은 아닐 것이다. 월드비전의 이야기를 읽고 있다보면 정말 어떻게 해서든 내 주머니를 열고 싶게 만든다. ' 대륙별 방문을 하는 1년 동안, 나는 7만 8천 킬로미터를 비행했고, 1만2천 킬로미터의 거리를 주행했고, 세 켤레의 신발을 바꿔 신었고, 7만 2천 자의 기사를 썼고, 우리는 62기가의 사진을 찍어댔고, 4개월 이상 피부병과 장염으로 병원을 다녔고, 적어도 2리터 이상의 땀과 눈물을 쏟아냈다.' 라는 말 뒤에 그들이 우리에게 전해준 감동은 얼마로 해야될까 생각해 보았다. 그들이 2리터의 눈물과 땀을 흘려가며 전해준 감동의 쓰나미는 희망의 쓰나미로 변해 좀더 많은 이들이 웃으며 내일을 기약할 수 있음으로 변한다면 다음엔 좀더 가슴아프지 않은 이야기를 만날 수 있으리라. '한 여가수가 남자 연애인을 동시에 5명을 사귀고, 부동산 투자 전략이 바쁘게 바뀌고, 모 가수가 모 배우와 헤어지고, 다이어트에 효능이 좋은 한방 약품을 사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드는 사이, 하루에 3만 5천명이 죽어간다는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다.' 슬픈 현실이다. 누군 배불러 죽고 누군 배가 고파 죽고, 하지만 어디엔가 분명 희망은 있다. 그들의 눈이 희망으로 반짝반짝 빛나고 있음을 지금, 놓쳐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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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젊은 날의 숲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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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중에서 ' 나는 눈이 아프도록 세상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풍경의 안쪽에서 말들이 돋아나기를 바랐는데,풍경은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풍경은 태어나지 않은 말들을 모두 끌어안은 채 적막강산이었다.' 라는 말이 가슴에 들어와 박혔다. 그가 '눈이 아프도록 세상을 들여다보았다' 라는 표현을 해 놓은 부분처럼 눈이 아프도록 들여다보며 세밀화로 그려 놓은 듯한 '생과 사' 의 이야기는 가슴 시리도록 건조하면서도 아픔으로 다가왔다. 그가 '시화평고원' 의 어쩌면 청정지역이나 마찬가지인 그곳에서 보여주려 했던 수목원에 얽힌 이야기는 나무와 꽃들의 '생과 사' 이기도 하지만 우리 인간의 '생과 사' 이면서 '희로애락' 이기도 하다. 그가 세밀화로 피어내려 했던 '언어의 풍경' 보다 왜 먼저 '생과 사' 가 들어왔는지, 다 읽고 난 지금도 내 가슴안에서는 건조하게 말라 내게서 떨어져 내리는 한 쪽의 겉표피의 '댕댕댕' 소리를 듣는 듯 하다.

그의 책은 어느 날 부터인가 예약주문으로 '사인본' 을 가져야만 하는 강박관념과 같은 집착물이 되고 말았다. 그가 온 몸으로 써 낸 육필의 글들은 한 땀 한 땀 수놓은 조선시대 규방의 작품처럼 알 수 없는 힘의 조화처럼 그렇게 내 책장 한 켠에 놓여 있어야 맘이 놓인다. 쉽게 컴퓨터 좌판으로 쓴 글이 아닌 어깨와 팔의 힘으로 쓰여진 글들이라 생각을 하면 쉽게 빨리 읽는 것도 어쩌면 작가에 대한 미안함을 갖게 만들기도 한다. 좀더 삭혀가며 읽고 싶지만 그렇게 하기엔 왠지 또 가슴이 건조해지면서 한편으로는 눈가가 촉촉하게 만드는 글이 오늘은 내게서 댕댕댕 거린다.

'아버지는 재정자립도가 이십퍼센트에 못 미치는 군청의 공무원이었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아버지이 삶은 멸종의 위기에서 허덕거리듯이 위태로웠고,비굴했다. 아버지는 어린 자식들이 보기에도 민망하게 직장의 상사들에게 굽실거렸고 밤중에도 수시로 불려 나갔다.' 그런 아버지가 뇌물수수죄로 실형을 살게 되었다. 아버지의 수감이후 어머니의 아버지에 대한 표현은 3인칭인 '그' 로 바뀌고 면회조차 잘 가지 않지만 대신에 교회라는 믿음에 집착하게 되었다. 미대를 나와 작은 회사에서 일을 하던 그녀, 연주는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곳에 취직자리를 알아보다가 민통선 부근의 수목원에 세밀화를 그리는 계약직에 서류를 내게 된다. 그러다 우연히 아버지를 면회가지만 아버지는 이미 남해 어느 곳으로 이감된 후이고 그 소식을 어머니는 알고 있는 것인지 전하지 않고 수목원에 취직이 되어 들어가게 된다. 어머니는 그녀가 떠난 후, 모든 부동산을 처분하여 십칠평 짜리 아파트 두 개를 장만해 놓는다. 아버지가 나오면 떨어져 살 집으로 장만해 놓은 것이다. 그런 어머니는 밤 늦은 시간이면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잠이 오지 않는다. 넌 잠이 오니?' 하며 묻는다. 그렇게 시작되는 넋두리는 그녀  또한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한다.

그녀가 취직이 된 수목원으로 들어가면서 통과하게된 민통선에서 만나게 된 통문소대장 김민수 중위, 키가 크고 이가 고른 그의 지프를 타고 수목원에 가게 되는데 그들은 그렇게 민간인과 군인으로 만났지만 그들 사이는 아무런 느낌이 오가지 않은 건조한 상태로 지나게 된다. 하지만 그녀가 수목원에 있게 되면서 자주 그와 만나게 되고 그는 그녀에게 들어낼 것 같지 않던 자신의 속을 가끔 들어내 보여준다. 수목원에는 연구실장인 안요한이라는 남자가 있는데 그에겐 열살정도의 남자애가 하나 있다. 하지만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하다 기어코 휴학을 하게 되고 아버지를 따라 수목원에 출근하게 되었다. 그녀가 수목원에서 해야 할 일은 달마다 다른 꽃들이나 나무등을 세밀화로 남겨 놓는 것이다. 사진으로도 그 일을 대신할 수 있지만 '사진은 꽃과 나무의 생명의 표정과 질감을 표현하기에는 미흡한데, 그 까닭은 사진의 사실성 때문이라고 그는 말했다. 사실적 기능 때문에 오히려 생명의 사실을 드러내기 어려운 것이며 생명의 사실을 그리기 위해서는 살아 있는 인간의 시선과 인간의 몸을 통과해나온 표현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대상을 표현하는 인간의 몸짓에는 주관적 정서가 개입하겠지만 생명의 사실에서 주관과 객관이 완전히 분리될 수 있는 것은아니라고 그는 말했다.' 라는 말처럼 사진은 너무 사실적이라 인간의 몸을 통해 나온 '주관성' 이 들어간 세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꽃은 영원히 자신의 비밀을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수목원에 오기 전에는 보지 못한 숲과 자연이 세계를 들여다 보면서 그녀는 또 다른 세상을 느끼게 된다. 들여다 보아야만 꽃은 자신이 비밀을 말해주듯이 사람 또한 그와 소통을 하지 않으면 그 속을 알 수가 없다. 사내아이를 키우는 안요한 실장, 아내와 사년전에 이혼을 하고 아내는 다시 재혼을 하여 그가 아이를 맡아 키운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아이는 자폐증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그가 수목원에 와서는 그래도 자기만의 세상속에서 잘 적응을 한다. 하지만 직장에 늘 아이를 데리고 나온다는 것은 무리이다. 그의 자폐증을 치료하기 위하여 읍내의 미술학원에 보내던 것이 미술학원 원장이 목을 매어 자살하고 그들이 발견하면서 미술공부를 그만두게 되고 실장은 아들을 위해 연주에게 미술지도를 부탁한다. 한편 그녀의 아버지는 형기를 남기고 가석방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지만 뇌일혈의 후유증으로 건강하지 못한 상태이다. 그런 자신의 추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싫었던지 아버지는 그녀인지 아내에게인지 모르게 '미안하다' 라는 말을 되내인다. 

'숲의 봄은 나무가 뿜어내는 신생의 시간이었다. 부푸는 땅의 들숨과 날숨이 나무의 입김에 실려서 온 산에 자욱했고 봄으로 뻗어가는 나무는 새로운 시간의 냄새와 빛깔까지도 뿜어냈다..... 너무 다 알려고 하지 말고, 잘 들여다봐,그래야 잘 그릴 수 있을 거야. 식물의 모든 외양은 본질과 관련이 있어. 그 관련을 증명하기는 어렵지만 말이야.' 숲에서 '생' 을 만나게 된 그녀, 나무며 꽃이며 풀 한 포기가 내 뿜는 신생이 시간을 세세히 들여다 보며 세밀화로 옮기는 작업은 생을 거쳐 '사의 시간' 을 마주하게 된다. 숲 해설가로 있던 칠순의 노인이 노부부에게 나무의 생과 사에 대하여 들여주는 이야기를 전해듣게 되고 그들이 나무의 '생' 을 들여다보기 위하여 나무 아래 부분에 귀기울이며 함께 하던 모습을 보았는데 며칠후에 그의 부음소식을 듣게 된다. '나무는 늙은 나무들도 젊은 잎을 틔우니까 한 그루 안에서 늙음과 젊음이 순환하는 겁니다. 인간의 시간과는 다르지요.' 라며 설명을 하던 분, 숲에는 생도 있지만 또한 사의 시간도 있었던 것이다.

한편 유해발굴을 위해 자등령으로 나가 작업을 하던 김민수 중위는 그녀에게 그가 제대를 하기 전에 '뼈그림' 을 두 점 그려달라며 그녀와 함께 유해발굴지를 보여준다. 그곳에서 만난 이름없는 이들의 뼈조각을 들여다보며 백골속에서도 그 사람의 생과 사가 있음을 드려다보게 된다. 중위는 그녀에게 그림을 꼭 그가 부대를 떠나기 전에 완성해 달라며 부탁을 한다. 그 시기는 또한 그녀가 계약직만료기간과 일치를 하고 숲해설가의 부음자리에서도 쓸쓸하다며 일부러 그녀를 불러 자리를 함께 하며 그녀에게 업무적인 이야기이지만 당부를 하며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김민수 중위 또한 어려운 가정의 맏이로 대학에서 전공한 토목쪽의 일을 군에 와서도 하게 되었고 전역을 하면 또한 현역에서 그와 관계된 일을 하게 될 것인데 군에서는 시화평고원의 상류에서 일했다면 민간인이 되어서는 시화강 하류에서 일하게 될 것이라며 그녀에게 이미 취직이 된 그곳의 명함을 내밀며 그곳에 오게 되면 꼭 전화를 하라고 당부하는 그의 말은 은근한 '프로포즈' 나 마찬가지, 아버지의 죽음이후 아버지의 뼈가루를 시화평고원 아늑한 자리에 순골을 할때 그의 도움을 받게 된 그녀는 그가 전역하기전에 뼈그림을 완성하여 그에게 주고 그녀 또한 계약직만료이지만 수목원의 제정상 그곳을 그만두게 된다. 그녀가 이제 달려가려 하는 세상은 생과 사의 조화롭게 어우러진 '따듯한 세상' 이다. 

이 작품은 작가의 표현처럼 ' 꽃은 가냘프거나 옹색하지 않다. 꽃에 대한 어떠한 언어도 헛되다는 것을 나는 수목원에 와서 알게 되었다. 꽃은 말하여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꽃은 본래 스스로 그러한 것이다. 그때의 패랭이꽃은 세밀화로 그려내려면 그 '쟁쟁쟁' 한 기운을 화폭에 옮겨와야 할 터인데, '쟁쟁쟁' 이 물리적 구조를 갖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쟁쟁쟁' 은 그 구조 너머에 떠도는 것이어서 화폭에는 좀처럼 내려앉지 않았다.날이 흐려서 '쟁쟁쟁'은 울리지 않았다.' 똑같은 말의 반복이 이렇게 틀린 어감으로 그리고 구체화되어 나타나다니 정말 대단하다. 꽃이 세밀화인 '생' 을 표현해야 했던 그녀가 유해발굴현장에서 나온 '뼛조각그림' 인 '사' 의 그림까지 그려야 했다. '생과 사' 다른 듯 하면서도 한줄기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이다. 작가는 '생과 사' 의 긴 시간을 건조한 표현으로 시종일관 숲의 나무들처럼 인간들 군상을 하나 하나 자신의 자리에 잘 배치를 해 놓고 그들 사이에 평행의 공간을 만들어 놓는다. 만날것 같지 않는 사람들,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연주와 민수 중위 그리고 안요한 실장과 아들 신우와 그의 아내, 미술학원 원장등 많은 인물들이 풀과 꽃 나무들의 숲이 아닌 '인간이 숲' 에서 저마다 '생이면서 사인 시간' 으로 나이테를 만들고 있다. 사의 시간에 놓인 '백골' 에는 생이 없을줄 알았는데 어느 군인의 편지에서 생을 발견하게 되고 그들 또한 생과 사의 시간의 거쳐 오늘에 이르렀음을, 먼지로 돌아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듯 '윤회' 의 삶을 살고 있음을 '수목원' 의 숲을 통해 보여준다. 조연주 그녀가 수목원에서의 세밀화가로 있었던 시간은 그녀에게는 짧은 듯 하지만 어쩌면 긴 그러면서 자신이 삶에 '살아야 겠다는' 삶의 희망의 수액을 뿌리 저 밑에서 깊게 빨아 들이는, 그동안 그녀 안에 쌓여 있던 죽은 표피를 한꺼풀 벗겨 내는 시간이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우린 숲을 '재생' 의 공간으로 말을 하게 된다. 그녀에게 수목원이 재생의 시간이 되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핸드백에 들은 '김민수 중위' 의 명함을 넣고 서울로 달려가는 그녀는 환희로 가득차 엑셀을 힘껏 밟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그가 반복적으로 나열했던 언어인 '쟁쟁쟁' 이란 단어때문일까, 자등령 그곳의 시화평고원의 수목원이 마치 그림처럼 그려진다. 그곳에서 수목원엔 달마다 꽃들이 저마다의 모습으로 환하게 피어나고 나무들은 생명수를 깊게 빨아 들여 밖으로 삶을 확장해 나가고 개미들은 또 저마다의 공간에서 같은 삶을 반복하며 '생과 사' 의 윤회의 삶을 살고 자등령 고개 낙엽 밑에는 아직도 그 이름을 찾지 못한 '뼈조각' 들이 한데 엉켜붙어 국적과 사상을 초월한 공간에서 하나가 되어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경계 없는 그곳을 '댕댕댕' 영혼의 소리를 울리며 떠나니고 있을 듯 하다. 그리고 그곳 수목원에서 재생의 생명수를 빨아 들인 조연주 그녀는 그녀의 이름처럼 자신의 삶을 다시금 '연주' 하기 위하여 그곳을 벗어나 시화강으로 달려가고 있다. 삶 속인 생과 사는 무척 건조한듯 하지만 오래도록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 눈으로 보여지지 않는 '세상' 이 들어 있는 것이다. 객관적일수도 있고 주관적일수도 있는 세상이지만 어찌되었건 작가가 표현한 것은 삶은 희망이라는 것이다. 희망에너지를 충족하게 건조함 속에 세밀하게 그려 놓은 듯 하여 언제 기회가 되면 한 번 더 읽고 싶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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