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가라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제13회 동리문학상 수상작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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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주 씨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의사라는 사실을 알고 계시겠죠. 서인주 씨는 유복녀였습니다. 서인주 씨의 모친 이동선 씨는 그 후 10년간 보상금과 유산으로 생계를 유지했고, 알코올중독과 우울증으로 통원치료를 받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때 서인주 씨의 나이가 열한 살이었고, 그 후로는 외삼촌 이동주 씨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이동주 씨가 서른일곱 살의 나이로 죽었을 때 서인주 씨는 열아홉 살이었습니다.' 불편하고 불행한 가족사다. 정희의 친구 서인주의 가족사는 왠지 화가 '뭉크' 의 가족사를 보는 듯 하다. '절규' 의 작가 뭉크의 가족사 또한 죽음과 일관된 불안과 공포였다.그 역시나 죽은 가족들처럼 그런 불행에 빠지는 것은 아닌가 하여 그의 그림에는 불안과 공포를 여실히 들어내고 있는데 이 소설을 읽으며 뭉크의 생과 가족사가 떠오른 것은 그림과 죽음과 연관되어서일까.

작가의 작품은 세번째 마주한다. <붉은 꽃 이야기> 라는 단편을 처음 접하고 강한 느낌을 받아 <채식주의자>를 읽었다. 단편이면서 연결된 연작 또한 그림과 관련된 작품이면서 살고 싶어 하지만 식물처럼 말라가는 어쩌면 역설적으로 강한 '삶의 의지' 를 볼 수 있는 작품을 만나 강한 여운을 지울 수가 없었는데 이 작품 또한 늘 죽음이 도사리고 있어 불행하지만 강한 삶의 의지를 보여주는 화가가 미시령 고개에서 자살을 하여 세간의 이목을 끄는 이야기로 그녀와 어릴적부터 친구였던 정희는 인주의 죽음이 자살이 아닌 타살이라고 강한 의지를 보이며 그녀의 죽음에 대한 퍼즐조각을 하나하나 맞추어 나간다. 그러다 마주하게 되는 불편한 진실, 어쩌면 절망도 희망도 이합 한지에 번지던 검은 먹물처럼 모세혈관을 타고 흐르듯 서서히 번져나갔는지 모른다. 절망의 터널을 잘 통과한 자는 살아 남지만 그 터널속에서 '희망' 을 붙잡지 못하고 우주의 먼지가 되듯 스스로 자멸하는 자들의 이야기는 바람에 흔들리듯 아릿하면서도 애매함 속에서 더욱 도드라져 거센 미시령의 눈보라가 한차례 지나고 나면 선명하게 보이는 세상처럼 통각의 터널을 벗어나야 만날 수 있는 희망을 더 극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한듯 하다.

서인주 그녀의 죽음을 자살로 인정해 그녀를 상품화 하려는 강석원, 하지만 그녀가 자살을 할 이유가 없다는듯 다시금 인주의 과거를 하나하나 들추나가는 정희, 자살이든 타살이든 그녀가 어떤 삶은 살아 왔는지 그녀가 어떻게 하여 유복녀로 태어나고 어머니가 왜 알콜중독자가 되었는지 이야기는 확실함 보다는 편린들을 이어가듯 세밀화를 그려 나간다. 육상선수여서 여성적이라기 보다는 남성적이었다고 볼 수 있는 인주가 다리에 난 사고로 인하여 육상을 포기하고 그림을 그리게 된 사연과 어머니가 죽고 외삼촌 손에서 커가면 그에게서 받았을 영향, 그리고 정희와 외삼촌 인주가 함께 하며 그동안 나누었던 추억과 시간들 속에서 그들이 어떤 삶과 생각을 가졌었으며 정희와 외삼촌과의 관계는 어떻게 발전했는지 바람에 흔들리듯 조심조심 들어난다. 

'당신의 그림 속에 떨고 있던 모세혈관들처럼.'
이합 한지에 먹물의 번짐으로 광활한 우주를 표현해 냈던 외삼촌, 그런 외삼촌에게 잠깐 그림을 배웠지만 미대를 포기하고 국문과를 가게 된 정희와 달리 인주는 사고로 인하여 육상을 포기하게 되면서 침체의 시간을 거쳐 그림에 빠지게 된다. 늘 서로의 거울인양 함께 했던 그녀들, 그녀들에게 어머니란 존재 또한 닮아 있다. 인주의 엄마는 알콜중독자로 생을 마쳤지만 정희의 엄마는 늘 담배냄새와 파스 냄새를 풍기며 잘되지 않는 지하에서 돈까스 레스토랑을 하며 비가 오면 늘 침수되는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모성애를 느끼거나 받기 보다는 어머니들의 삶의 질곡 때문에 둘은 서로에게 더욱 가깝게 되었는지 모른다. 그런 어머니가 울타리도 되지 못하다가 알콜중독으로 돌아가시고 외삼촌 손에 맡겨지면서 외삼촌 또한 혈소판 부족으로 인해 남자이면서 여성적인 조심조심하는 삶은 산다. 정희에게 마음은 있지만 다가가지 못하고 안지도 못하면서 거리를 두고 있는 외삼촌의 그림과 세계는 우주적이다. '공수래공수거' 를 의미하듯 광활한 우주적인 그림이지만 그의 말과 그림속에서는 모든 것들이 '한 점 먼지' 와 같다. 자신의 삶이 그러했기에 욕심을 부릴 수 없고 갇힌 공간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에 더 우주적이지 않았을까. 그런 외삼촌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 후 인주는 외삼촌의 그림을 모방하듯 똑 같은 그림을 그려내다가 죽음에 이른것. 우리의 피 속에는 희망도 절망도 모세혈관을 타고 서서히 흘러 삶을 잠식해 들어가듯 어느 부분이 더 많이 지배를 하느냐에 따라 절망적인 삶이 될 수 있고 절망을 벗어나 희망적인 삶은 살 수도 있는 것이다.

외삼촌에게 향하던 마음으로 그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 결혼생활을 하지만 세 번의 유산을 하고 파경을 맞이한 정희를 비롯하여 인주 또한 알게모르게 결혼생활을 하지만 행복하지 못하고 아들 민서를 남편에게 빼앗겼다 그녀가 짧은 시간 키우게 되지만 그 아들 또한 혈소판이 부족한 유전적인 병을 물려 받고 태어나고 그녀의 죽음으로 인해 아빠에게 돌아가 외국으로 떠나고 만다. 인주의 불행은 미리 예고된 듯 그녀의 엄마의 불행을 전해듣게 되는 '유인섭 소장' 의 등장으로 인해 엄마의 과거가 들어나고 미시령에 얽힌 이야기가 나오며 인주가 미시령에 가게된 이야기는 점점 퍼즐조각들을 맞추어 가게 된다. 하지만 그녀가 인주의 죽음이 자살이 아님을 밝혀내는 것을 꺼리는 한남자 강석원은 그녀를 못마땅해 하면서 그녀의 뒤를 쫓는다. 외삼촌의 '네가 그리는 모든 게 실은 네 자화상이야' 라는 말처럼 자신들은 모두 자신의 자화상을 그리고 있었던 것일까. 자신들의 자화상을 그림에 남겼던 그들은 그렇다면 그림속에 자신들의 '죽음' 또한 표현해 내고 있었던 것일까. 유인섭 소장을 만나면서 잃어버렸던 퍼즐을 찾은듯 인주엄마의 과거가 합쳐지면서 그리고 인주가 엄마의 피를 물려 받아 미시령을 되밟게 되면서 드러나는 죽음의 의문, 그 죽음의 물음표가 풀리면서 강석원은 정희로 인해 드러난 자신의 모든 것이 짓밟혀진다고 생각하며 그녀와 생과사의 결판을 시작하고 죽음의 문턱에서 가까스로 헤쳐 나오는 정희, 그녀는 죽음과 인주의 사랑이라는 터널속에서 헤쳐나오며 모든 것을 빗물에 씻겨 흘려 보내듯 삶의 희망과 마주한다.

'물이 그린 거지. 난 잘 흘러가게 터주고 막아주고 한 것밖에 없어.식물 키우는 거랑 비슷한 거야.갓 태어난 불꽃이 하얗게 타오르는 그의 그림을 향해 나는 다가갔다. 닥나무 껍질로 만든 한지에는 모세혈관들 같은 무수한 섬유질의 길들이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 길들을 따라 퍼져가는 먹의 모양을 이런저런 방법을 잡아주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는 것이었다. 가끔은 그의 몸에서 피가 흘러나와 종이의 핏줄들을 타고 흐르는 것 같이 느껴진다고도 했다.' 아마도 외삼촌 또한 먹물이 한지를 타고 서서히 모세혈관들 같은 섬유질의 길을 타고 흘러가듯 자신 또한 그런 강한 피의 흐름을 타고 다시 태어나듯 그런 삶을 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삶을 살아야 사랑고 이룰 수 있고 그림 또한 성공할 수 있었는데 그렇게 물의 흐름처럼 자신의 피의 흐름이 강하지 못했던 그가 택한 길은 한가지, 우주의 먼지로 돌아가는 일. 그런 외삼촌과 엄마를 옆에서 지켜봤던 인주가 택할 수 있던 마지막 길 또한 똑같을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듯 그녀를 미시령고개로 밀고 갔던 바람은 무슨 바람일까. 

작가 한강의 작품을 읽으면 나도 모르게 '살아야겠다' 는 불굴의 의지를 강하게 태울 수 밖에 없다. 애매모호하면서도 건조한듯 죽음에 이르는 길 속에서 나도 모르게 탈퇴를 하여 삶에 급회전 하듯 빠르게 선회를 해야만 할 것만 같은 그녀의 섬세하면서도 건조함은 그녀만의 소설이 갖는 매력인듯 하다. 강하지 않으면서 알고 나면 약함 속에서 강함이 돋보이는 그녀만의 문체의 매력도 그렇고 동성간의 사랑이 위험하지 않으면서 그 속에서 삶의 희망으로 발버둥치는 나 자신을 만날 때 그녀의 '바람' 은 약하면서도 거세게 분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녀가 작가 '한승원' 의 딸이기에 주목하기도 했지만 그녀만이 가지는 약한듯 하면서도 강함에 반하여 자꾸 그녀의 소설을 접하게 되는 것 같다. 몇 작품을 읽어보려고 준비해 놓고 있지만 이 작품으로 인해 <검은 사슴> 이나 <여수의 사랑>을 빨리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더 가져본다. 그녀의 소설을 읽는 동안 밖에서 겨울바람이 거세게 불기도 했지만 그녀 소설속 곳곳에서 몰아치는 바람은 흔들리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자신을 지키는 정희처럼 삶은 어쩌면 흔들리면서도 꽃을 피우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인주를 몰랐다. 인주가 나를 몰랐던 것보다 더.' 라는 정희의 통한이 서린 말처럼 삶이란 어쩌면 알고 나면 허무한 것인지 모른다. 그녀만큼 모르기에 함부로 버릴 수 없는 삶, 불구덩이를 헤치고 나온 그녀에게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을까. 겨울바람이 몹시 부는 날 내 마음을 흔들어 놓은 한강의 <바람이 분다,가라>는 <채식주의자>를 읽고 났던 때처럼 여운이 길게 남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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