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젊은 날의 숲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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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중에서 ' 나는 눈이 아프도록 세상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풍경의 안쪽에서 말들이 돋아나기를 바랐는데,풍경은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풍경은 태어나지 않은 말들을 모두 끌어안은 채 적막강산이었다.' 라는 말이 가슴에 들어와 박혔다. 그가 '눈이 아프도록 세상을 들여다보았다' 라는 표현을 해 놓은 부분처럼 눈이 아프도록 들여다보며 세밀화로 그려 놓은 듯한 '생과 사' 의 이야기는 가슴 시리도록 건조하면서도 아픔으로 다가왔다. 그가 '시화평고원' 의 어쩌면 청정지역이나 마찬가지인 그곳에서 보여주려 했던 수목원에 얽힌 이야기는 나무와 꽃들의 '생과 사' 이기도 하지만 우리 인간의 '생과 사' 이면서 '희로애락' 이기도 하다. 그가 세밀화로 피어내려 했던 '언어의 풍경' 보다 왜 먼저 '생과 사' 가 들어왔는지, 다 읽고 난 지금도 내 가슴안에서는 건조하게 말라 내게서 떨어져 내리는 한 쪽의 겉표피의 '댕댕댕' 소리를 듣는 듯 하다.

그의 책은 어느 날 부터인가 예약주문으로 '사인본' 을 가져야만 하는 강박관념과 같은 집착물이 되고 말았다. 그가 온 몸으로 써 낸 육필의 글들은 한 땀 한 땀 수놓은 조선시대 규방의 작품처럼 알 수 없는 힘의 조화처럼 그렇게 내 책장 한 켠에 놓여 있어야 맘이 놓인다. 쉽게 컴퓨터 좌판으로 쓴 글이 아닌 어깨와 팔의 힘으로 쓰여진 글들이라 생각을 하면 쉽게 빨리 읽는 것도 어쩌면 작가에 대한 미안함을 갖게 만들기도 한다. 좀더 삭혀가며 읽고 싶지만 그렇게 하기엔 왠지 또 가슴이 건조해지면서 한편으로는 눈가가 촉촉하게 만드는 글이 오늘은 내게서 댕댕댕 거린다.

'아버지는 재정자립도가 이십퍼센트에 못 미치는 군청의 공무원이었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아버지이 삶은 멸종의 위기에서 허덕거리듯이 위태로웠고,비굴했다. 아버지는 어린 자식들이 보기에도 민망하게 직장의 상사들에게 굽실거렸고 밤중에도 수시로 불려 나갔다.' 그런 아버지가 뇌물수수죄로 실형을 살게 되었다. 아버지의 수감이후 어머니의 아버지에 대한 표현은 3인칭인 '그' 로 바뀌고 면회조차 잘 가지 않지만 대신에 교회라는 믿음에 집착하게 되었다. 미대를 나와 작은 회사에서 일을 하던 그녀, 연주는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곳에 취직자리를 알아보다가 민통선 부근의 수목원에 세밀화를 그리는 계약직에 서류를 내게 된다. 그러다 우연히 아버지를 면회가지만 아버지는 이미 남해 어느 곳으로 이감된 후이고 그 소식을 어머니는 알고 있는 것인지 전하지 않고 수목원에 취직이 되어 들어가게 된다. 어머니는 그녀가 떠난 후, 모든 부동산을 처분하여 십칠평 짜리 아파트 두 개를 장만해 놓는다. 아버지가 나오면 떨어져 살 집으로 장만해 놓은 것이다. 그런 어머니는 밤 늦은 시간이면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잠이 오지 않는다. 넌 잠이 오니?' 하며 묻는다. 그렇게 시작되는 넋두리는 그녀  또한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한다.

그녀가 취직이 된 수목원으로 들어가면서 통과하게된 민통선에서 만나게 된 통문소대장 김민수 중위, 키가 크고 이가 고른 그의 지프를 타고 수목원에 가게 되는데 그들은 그렇게 민간인과 군인으로 만났지만 그들 사이는 아무런 느낌이 오가지 않은 건조한 상태로 지나게 된다. 하지만 그녀가 수목원에 있게 되면서 자주 그와 만나게 되고 그는 그녀에게 들어낼 것 같지 않던 자신의 속을 가끔 들어내 보여준다. 수목원에는 연구실장인 안요한이라는 남자가 있는데 그에겐 열살정도의 남자애가 하나 있다. 하지만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하다 기어코 휴학을 하게 되고 아버지를 따라 수목원에 출근하게 되었다. 그녀가 수목원에서 해야 할 일은 달마다 다른 꽃들이나 나무등을 세밀화로 남겨 놓는 것이다. 사진으로도 그 일을 대신할 수 있지만 '사진은 꽃과 나무의 생명의 표정과 질감을 표현하기에는 미흡한데, 그 까닭은 사진의 사실성 때문이라고 그는 말했다. 사실적 기능 때문에 오히려 생명의 사실을 드러내기 어려운 것이며 생명의 사실을 그리기 위해서는 살아 있는 인간의 시선과 인간의 몸을 통과해나온 표현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대상을 표현하는 인간의 몸짓에는 주관적 정서가 개입하겠지만 생명의 사실에서 주관과 객관이 완전히 분리될 수 있는 것은아니라고 그는 말했다.' 라는 말처럼 사진은 너무 사실적이라 인간의 몸을 통해 나온 '주관성' 이 들어간 세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꽃은 영원히 자신의 비밀을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수목원에 오기 전에는 보지 못한 숲과 자연이 세계를 들여다 보면서 그녀는 또 다른 세상을 느끼게 된다. 들여다 보아야만 꽃은 자신이 비밀을 말해주듯이 사람 또한 그와 소통을 하지 않으면 그 속을 알 수가 없다. 사내아이를 키우는 안요한 실장, 아내와 사년전에 이혼을 하고 아내는 다시 재혼을 하여 그가 아이를 맡아 키운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아이는 자폐증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그가 수목원에 와서는 그래도 자기만의 세상속에서 잘 적응을 한다. 하지만 직장에 늘 아이를 데리고 나온다는 것은 무리이다. 그의 자폐증을 치료하기 위하여 읍내의 미술학원에 보내던 것이 미술학원 원장이 목을 매어 자살하고 그들이 발견하면서 미술공부를 그만두게 되고 실장은 아들을 위해 연주에게 미술지도를 부탁한다. 한편 그녀의 아버지는 형기를 남기고 가석방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지만 뇌일혈의 후유증으로 건강하지 못한 상태이다. 그런 자신의 추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싫었던지 아버지는 그녀인지 아내에게인지 모르게 '미안하다' 라는 말을 되내인다. 

'숲의 봄은 나무가 뿜어내는 신생의 시간이었다. 부푸는 땅의 들숨과 날숨이 나무의 입김에 실려서 온 산에 자욱했고 봄으로 뻗어가는 나무는 새로운 시간의 냄새와 빛깔까지도 뿜어냈다..... 너무 다 알려고 하지 말고, 잘 들여다봐,그래야 잘 그릴 수 있을 거야. 식물의 모든 외양은 본질과 관련이 있어. 그 관련을 증명하기는 어렵지만 말이야.' 숲에서 '생' 을 만나게 된 그녀, 나무며 꽃이며 풀 한 포기가 내 뿜는 신생이 시간을 세세히 들여다 보며 세밀화로 옮기는 작업은 생을 거쳐 '사의 시간' 을 마주하게 된다. 숲 해설가로 있던 칠순의 노인이 노부부에게 나무의 생과 사에 대하여 들여주는 이야기를 전해듣게 되고 그들이 나무의 '생' 을 들여다보기 위하여 나무 아래 부분에 귀기울이며 함께 하던 모습을 보았는데 며칠후에 그의 부음소식을 듣게 된다. '나무는 늙은 나무들도 젊은 잎을 틔우니까 한 그루 안에서 늙음과 젊음이 순환하는 겁니다. 인간의 시간과는 다르지요.' 라며 설명을 하던 분, 숲에는 생도 있지만 또한 사의 시간도 있었던 것이다.

한편 유해발굴을 위해 자등령으로 나가 작업을 하던 김민수 중위는 그녀에게 그가 제대를 하기 전에 '뼈그림' 을 두 점 그려달라며 그녀와 함께 유해발굴지를 보여준다. 그곳에서 만난 이름없는 이들의 뼈조각을 들여다보며 백골속에서도 그 사람의 생과 사가 있음을 드려다보게 된다. 중위는 그녀에게 그림을 꼭 그가 부대를 떠나기 전에 완성해 달라며 부탁을 한다. 그 시기는 또한 그녀가 계약직만료기간과 일치를 하고 숲해설가의 부음자리에서도 쓸쓸하다며 일부러 그녀를 불러 자리를 함께 하며 그녀에게 업무적인 이야기이지만 당부를 하며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김민수 중위 또한 어려운 가정의 맏이로 대학에서 전공한 토목쪽의 일을 군에 와서도 하게 되었고 전역을 하면 또한 현역에서 그와 관계된 일을 하게 될 것인데 군에서는 시화평고원의 상류에서 일했다면 민간인이 되어서는 시화강 하류에서 일하게 될 것이라며 그녀에게 이미 취직이 된 그곳의 명함을 내밀며 그곳에 오게 되면 꼭 전화를 하라고 당부하는 그의 말은 은근한 '프로포즈' 나 마찬가지, 아버지의 죽음이후 아버지의 뼈가루를 시화평고원 아늑한 자리에 순골을 할때 그의 도움을 받게 된 그녀는 그가 전역하기전에 뼈그림을 완성하여 그에게 주고 그녀 또한 계약직만료이지만 수목원의 제정상 그곳을 그만두게 된다. 그녀가 이제 달려가려 하는 세상은 생과 사의 조화롭게 어우러진 '따듯한 세상' 이다. 

이 작품은 작가의 표현처럼 ' 꽃은 가냘프거나 옹색하지 않다. 꽃에 대한 어떠한 언어도 헛되다는 것을 나는 수목원에 와서 알게 되었다. 꽃은 말하여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꽃은 본래 스스로 그러한 것이다. 그때의 패랭이꽃은 세밀화로 그려내려면 그 '쟁쟁쟁' 한 기운을 화폭에 옮겨와야 할 터인데, '쟁쟁쟁' 이 물리적 구조를 갖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쟁쟁쟁' 은 그 구조 너머에 떠도는 것이어서 화폭에는 좀처럼 내려앉지 않았다.날이 흐려서 '쟁쟁쟁'은 울리지 않았다.' 똑같은 말의 반복이 이렇게 틀린 어감으로 그리고 구체화되어 나타나다니 정말 대단하다. 꽃이 세밀화인 '생' 을 표현해야 했던 그녀가 유해발굴현장에서 나온 '뼛조각그림' 인 '사' 의 그림까지 그려야 했다. '생과 사' 다른 듯 하면서도 한줄기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이다. 작가는 '생과 사' 의 긴 시간을 건조한 표현으로 시종일관 숲의 나무들처럼 인간들 군상을 하나 하나 자신의 자리에 잘 배치를 해 놓고 그들 사이에 평행의 공간을 만들어 놓는다. 만날것 같지 않는 사람들,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연주와 민수 중위 그리고 안요한 실장과 아들 신우와 그의 아내, 미술학원 원장등 많은 인물들이 풀과 꽃 나무들의 숲이 아닌 '인간이 숲' 에서 저마다 '생이면서 사인 시간' 으로 나이테를 만들고 있다. 사의 시간에 놓인 '백골' 에는 생이 없을줄 알았는데 어느 군인의 편지에서 생을 발견하게 되고 그들 또한 생과 사의 시간의 거쳐 오늘에 이르렀음을, 먼지로 돌아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듯 '윤회' 의 삶을 살고 있음을 '수목원' 의 숲을 통해 보여준다. 조연주 그녀가 수목원에서의 세밀화가로 있었던 시간은 그녀에게는 짧은 듯 하지만 어쩌면 긴 그러면서 자신이 삶에 '살아야 겠다는' 삶의 희망의 수액을 뿌리 저 밑에서 깊게 빨아 들이는, 그동안 그녀 안에 쌓여 있던 죽은 표피를 한꺼풀 벗겨 내는 시간이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우린 숲을 '재생' 의 공간으로 말을 하게 된다. 그녀에게 수목원이 재생의 시간이 되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핸드백에 들은 '김민수 중위' 의 명함을 넣고 서울로 달려가는 그녀는 환희로 가득차 엑셀을 힘껏 밟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그가 반복적으로 나열했던 언어인 '쟁쟁쟁' 이란 단어때문일까, 자등령 그곳의 시화평고원의 수목원이 마치 그림처럼 그려진다. 그곳에서 수목원엔 달마다 꽃들이 저마다의 모습으로 환하게 피어나고 나무들은 생명수를 깊게 빨아 들여 밖으로 삶을 확장해 나가고 개미들은 또 저마다의 공간에서 같은 삶을 반복하며 '생과 사' 의 윤회의 삶을 살고 자등령 고개 낙엽 밑에는 아직도 그 이름을 찾지 못한 '뼈조각' 들이 한데 엉켜붙어 국적과 사상을 초월한 공간에서 하나가 되어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경계 없는 그곳을 '댕댕댕' 영혼의 소리를 울리며 떠나니고 있을 듯 하다. 그리고 그곳 수목원에서 재생의 생명수를 빨아 들인 조연주 그녀는 그녀의 이름처럼 자신의 삶을 다시금 '연주' 하기 위하여 그곳을 벗어나 시화강으로 달려가고 있다. 삶 속인 생과 사는 무척 건조한듯 하지만 오래도록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 눈으로 보여지지 않는 '세상' 이 들어 있는 것이다. 객관적일수도 있고 주관적일수도 있는 세상이지만 어찌되었건 작가가 표현한 것은 삶은 희망이라는 것이다. 희망에너지를 충족하게 건조함 속에 세밀하게 그려 놓은 듯 하여 언제 기회가 되면 한 번 더 읽고 싶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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