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9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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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이런 경우 흔히 갖게 마련인 신랄함이나 당혹감이 아니라 조심성에 가까운 차분함을 가지고,좌절로 얼룩진 거울 속의 얼굴을 서른아홉 해로 나누어 보았다.' 서른 아홉의 나이에 결혼과 이혼의 상처를 가진 그녀 폴, 그녀에게 오랜 시간동안 사랑해 왔고 그리고 사랑하고 있는 로제라는 남자가 있다. 하지만 그는 그녀에게 늘 고독과 외로움을 안겨준다. 긴장감이 없는 사랑, 늘 습관처럼 행해지는 그와의 집앞에서의 이별후에 그녀가 맞이하게 되는 외로움과 고독이 싫다.무슨 일인가 일어나야 할 것만 같은 그들의 사랑에 더이상의 해답이 없는 것과 같은 나날이 이어진다.

그런 폴과 로제의 사랑에 긴장감과 같은 파문을 일으키는 인물인 시몽이 나타났다. 그것도 그녀보다 14살이나 연하인 스물 다섯의 혈기왕성한 밀어붙임이 예고되는 시몽의 출현으로 인해 폴과 로제의 사랑이 여울목을 만나 어떻게 잘 헤쳐나갈지 작가 사강은 <슬픔이여 안녕> 에서도 보여준 대단한 심리묘사를 이 작품에서 또한 보여준다. 결코 24세에 출간한 작품이라 보여지지 않는 완숙함이 묻어나는 작품에서 습관적으로 익숙함에서 일탈처럼 꿈 꾸던 열정적인 사랑을 만나 방황하는 폴의 심리가 잘 들어나 있으면서도 익숙함과 새로운 급류처럼 닥친 열정적인 사랑에 휩쓸려 자신도 모르게 밀려 나가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에게 익숙하면서 습관적으로 서로를 너무 잘 알고 그녀 자신이 그를 잘 알았던 사랑이 자신의 사랑이라며 택하게 되는, 어머니의 자궁처럼 고독하지 않고 외롭지 않으면서도 너무도 안정적인 사랑을 갈구하는 폴의 심리가 잘 들어난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연상의 클라라 슈만을 좋아했던 브람스를 비유하여 소설의 제목을 붙인듯 하여 로맨틱을 한 줄 알았지만 로맨틱 보다는 어쩌면 사랑을 바라보는 냉철함이나 날카로움이 더 잘 들어난 작품인듯 하다.

'그녀는 소지품을 꼼꼼하게 정돈한 다음 침대 위에 앉았다.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오늘밤도 혼자였다. 그리고 앞으로의 삶 역시 그녀에게는,오늘밤도 혼자였다. 그리고 앞으로의 삶 역시 그녀에게는, 사람이 잔 흔적이 없는 침대 속에서, 오랜 병이라도 앓은 것처럼 무기력한 평온 속에서 보내야 하는 외로움 밤들의 긴 연속처럼 여겨졌다. 침대 속에서 그녀는 마치 누군가의 따듯한 옆구리를 만질 수 있기라도 한 듯이 본능적으로 한쪽 팔을 뻥었고, 누군가의 잠을 깨우지 않으려는 듯이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제이 큰 어려움은 고독과 외로움인듯 하다. 외로움을 이겨내기 위하여 그녀가 밤마다 몸부림을 쳐 봐도 그녀는 늘 혼자다. 그런 그녀에게 따듯함을 전해줄 젊고 잘생긴 그녀에게 푹 빠진 시몽이 나타났다. 로제와의 긴 사랑의 레일위에 있는 그녀가 그 사랑을 받아들여야 할까 말까.

자신은 아니라고 부정을 하면서도 마음은 이미 시몽에게 가고 있다. 어쩌면 로제에게서 채우지 못했던 공허함을 시몽으로 대신 채우려 하듯 시몽에게 점점 마음을 주게 되는 폴, 시몽은 '그녀 나이의 여자에게 모성애를 불러일으키기에 꼭 알맞은 그런 부류의 청년이었다.' 어머니와 살고 있지만 어머니의 사랑보다는 자신을 감싸줄 사랑을 원했던 시몽은 그에게 맞는 완벽한 사랑이라도 찾은듯 그녀에게 집착을 한다. 그런 그의 눈에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는 로제를 보게 되고 그는 폴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그런 그가 폴에게 어는 날 '푸른 쪽지' 라는 시적으로 표현했던 속달우편으로 그녀에게 편지를 보낸다 '오늘 6시에 플레옐 홀에서 아주 좋은 연주회가 있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어제 일은 죄송했습니다.' 폴은 그의 편지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내가 브람스를 좋아하던가. '그녀의 집중력은 옷감의 견본이나 늘 부재중인 한 남자에게 향해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자아를 잃어버렸다. 자기 자신의 흔적을 잃어 버렸고 결코 그것을 다시 찾을 수가 없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그녀는 열린 창 앞에서 눈부신 햇빛을 받으며 잠시 서 있었다. 그러자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라는 그 짧은 질문이 그녀에게는 갑자기 거대한 망각 덩어리를, 다시 말해 그녀가 잊고 있던 모든 것,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던 모든 질문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여겨졌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자기 자신 이외의 것, 자기 생활 너머의 것을 좋아할 여유를 그녀는 여전히 갖고 있기는 할까?'  실패한 결혼생활과 긴장감 없는 사랑의 대상인 로제와의 사랑에 너무도 자신을 꼭 맞게 들여 놓고 자신의 여유를 잊고 살았던 그녀, 지금까지 자신을 찾기 보다는 남에게 길들여지며 살왔던 그녀가 시몽을 만난 이후 새로운 것을 찾으려 한다. 

시몽, 그 새로운 사랑이 자신의 나이 서른 아홉과 잘 맞기는 하는 것일까? 로제가 아닌 시몽과 연애를 하면서 남들의 시선에 자신감을 잃는 그녀,그녀에게 시몽은 너무 젊다. 하지만 폴에게 빠져 일도 팽개치고 술로 소일하는 시몽, 그런 사랑을 원했던 것은 아니다. 시몽과 함께 하면서 늘 로제와의 사랑과 비교를 하는 그녀에겐 아직 로제를 잃지 못하고 한 곳에 가두어 두고 있다. 로제 또한 다른 여자를 만나 짧은 사랑을 나누지만 늘 마음속에는 잊혀지지 않는 존재 폴이 있다. 그녀의 곁에서 그녀의 집 근처에서 배회해 보지만 그는 늘 하던 대로 서성이다 만다. 폴의 외로움을 함께 나누고 책임져줄 무언가가 부족하다. 하지만 그도 자신에게는 폴이 가장 이상적인 사랑이라는 것을 그녀에게 시몽이 나타난 이후로 그가 다른 사랑을 나눈 후로 더욱 절실하게 알아간다. 그렇다면 다시 그녀에게 돌아가야 할까. 그가 젊은 시몽에게서 다시 폴을 찾아 올 수 있을까.

사랑도 인생도 자신이 원하던 대로 잘 짜여진 계획표대로 움직여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연상인 클라라 슈만을 좋아했던 브람스가 그 사랑을 이루었다면 만약에 폴과 시몽의 사랑도 이루어졌을까. 폴을 시몽에게 빼앗긴 후 로제가 느꼈던 '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사는 맛을 읽어버린 것이다.' 늘상 자신이 맛보던 일상적인 맛을 잃어버린 로제처럼 옆에 있을때는 폴의 의미와 가치가 보이지 않다가 남의 마음에 담겨지고 나니 그 의미와 가치가 비로소 진정으로 빛나는 것을 우린 삶에서 한두번은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가 아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의 여운처럼 내가 정말 브람스를 좋아했던가, 모든 것을 잊고 자신도 모르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도 있을 것이다. 예전에 자신이 꾸던 꿈이 무엇이었는지 자신이 원하던 삶이 무엇이었는지 잊고 살다가 갑자기 만난 질문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에서 만난 자신의 뒷모습, 자신이 지금 어떤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를 원하고 있기나 한가 로제와의 미래는? 로제라는 남자의 울타리에 갇혀 자신의 아름다움마져 잊고 철저한 고독과 외로움 속에서 살아야 했던 그녀 폴이 시몽이라는 젊은 남자를 만나 로제와의 사랑을 다시 되새겨 보면서 자신의 인생 또한 새롭게 바라보는 마음의 눈을 가지게 되는 소설은 달콤한 사랑 속에서도 때론 냉철함을 가져야 함을 이야기 하듯 사랑에 대한 완숙함을 보여준다.

'나도 느끼고 있었어.당신이 더 이상 나를 참을 수 없어 한다는 걸 말이야. 사랑에서 무관심으로의 이행이 너무 빠르군, 안그래?' 라는 로제의 말처럼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 이다. 이별이 아니라. 로제는 폴을 사랑하지만 늘 무관심 속에 두었다. 그런 자신이 폴에게서 무관심의 대상이 되었을 때 자신의 현실을 비로소 들여다 볼 수 있었던 것이다. 폴의 무관심 속에서 늘 고독하고 외로움에 몸서리 쳐야 했던 폴에 비해 그는 늘 폴이 아닌 다른 여자와 밤을 보내며 고독에서 헤어나 있었다.그런 그가 폴의 외로움을 알기엔 너무도 겨리가 있었던 것이다. 모든 것으로 부터 혼자 남겨졌을때 마주한 '무관심' 속에서 진짜 사랑을 찾게 된 로제, 그의 뒤늦은 후회로 폴을 시몽으로 부터 다시 찾게 되지만 그의 판이 박힌 생활과 습관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로제는 저녁 8시 울린 전화벨 소리에서 그녀는 그 습관을 읽게 된다. '수화기를 들기 전에 그녀는 로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있었다. '미안해 일 때문에 저녁 식사를 해야 해. 좀 늦을 것 같은데..' 일탈을 꿈 꾸었던 사랑이 다시금 습관적이 사랑을 찾아가지만 그들의 사랑엔 변한 것이 없다. 시몽의 사랑을 맛보았던 그녀의 사랑은 앞으로 어떻게 변할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가 아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가 되어 자신의 일방통행적이었던 사랑 때문에 잊었던 혹은 잃어버렸던 그 무언가를 찾아 나서게 될까. 사랑을 믿기 보다는 열정을 택했던 그녀처럼 작품 속에서 또한 열정적으로 시작한 사랑도 언젠가는 변한다는 그 사랑에 길들여질 수도 있다는 사랑의 덧없음이 잘 나타나 있다. <슬픔이여, 안녕> 과 이 작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읽고 나니 그녀 '프랑수와즈 사강' 을 더 읽고 싶어졌다. 프랑스 문학의 '천재적인 작은 악마' 였던 사강,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라는 말처럼 약물복용,도박등으로 자신을 철저히 파괴하려 했지만 그녀의 천재성은 작품 속에서 더욱 빛나는 듯 하다. 또 다른 작품에서 '사강' 그녀를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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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편지 - 신의 정원 한라산에서 살아가는 작은 생명들의 이야기!
오희삼 지음 / 터치아트 / 2009년 11월
절판


줄탁동시, 내가 요즘 큰딸과 나와의 교감이 줄탁이 아닐까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 책의 첫 글에 그 말이 나오니 더욱 맘에 들었다. ' 불가의 화두에 줄탁동시 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미 닭이 알을 품고 있을 때, 때가 되면 알 속의 병아리가 세상 밖으로 나오려고 껍집을 쪼아댑니다. '줄' 소리지요. 이 소리를 들은 어미는 병아리가 쪼아대는 속껍질 바깥쪽을 동시에 쪼아줍니다. 바로 '탁啄' 입니다.줄과 탁이 엇갈리면 병아리는 세상에 나올 수가 없는 법이지요. '줄' 소리를 어미 닭이 듣지 못하면 병아리는 알 속에서 혼자 끙끙대다 지치겠고 '줄' 도 없는데 어미 닭이 강제로 '탁' 을 하면, 아직 여물지 않은 병아리가 성할 리 없겠지요. 줄과 탁의 교감이 없고서는 생명의 싹을 틔울 수 없는 법이지요.' 얼마나 멋진 말인가.서로 교감이 맞아야만 생명 또한 싹을 틔우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어찌하다보니 아직 제주에 가보지 않았다. 제주여행을 몇 번 갔던 남편 때문에 그곳을 처음에 포기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고 내년이나 그 후에 큰딸의 대입이 끝나면 올레길을 함께 걸어보자고 계획을 하고 있다. 그런 것이 지난번 1박2일을 보면서 차를 가지고 배편으로 가는 방법이 있어 그 또한 운치가 있을 듯 하여 그렇게 한번 제주에 발을 내려 보자고 계획하고 있다.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는 꿈이지만 그런 꿈을 가지고 있어 제주는 더욱 가깝게 다가오는 곳이기도 하고 제주올레 이사장인 서명숙작가의 <꼬닥꼬닥 걸어가는 이 길처럼>과 김영갑의 <그 섬에 내가 있었네> 그리고 고혜경의 <태초에 할망이 있었다>를 읽고나니 더욱 가고 싶은 곳이 다름아닌 '제주' 가 되었다. 올레길로 인하여 해외로 가던 관광객을 우리나라 그것도 너무도 아름다운 제주로 발길을 돌려 놓은 '올레길' 걷기여행은 그렇게 하여 전국적인 붐이 되고 여기저기에서 둘레길과 걷기 좋은 산책길을 내놓고 있으니 그 첫번째 올레길을 빨리 걸어봐야 할 듯 하다.

김영갑의 <그 섬에 내가 있었네> 라는 책을 읽으면서 무척 많이 울었던 기억이 있다. 리뷰는 쓰지 않았지만 제주사람도 아닌 충청도인인 그가 제주의 바람과 억새 오름에 반하여 그곳에서 루게릭병과 싸우며 이룩해 놓은 그만의 세계가 너무도 멋있어 남몰래 눈물을 줄줄 흘리며 읽었던 사진가 김영갑의 '두모악'은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꼭 가고 싶은 곳이다. 그처럼 진짜 제주의 바람을 잡아 뷰파인더안에서 이상향인 '이어도' 를 잡아 낸 사람이 있을까. 그렇다면 넘쳐나는 제주에 관한 책들 중에 어느 것이 가장 제주적인 것일까 하는 생각도 가져보게 할 정도로 넘쳐나는 제주와 제주올레길에 관한 책들 속에서 유독 눈에 들어 온 <한라산 편지> 는 그의 독특한 이력 때문일까 더욱 끌렸다. 제주의 토평에서 태어나고 항공대 산악부에 가입하여 암벽과 빙벽등반을 배운 그가 산악전문월간지에서 근무를 하다가 고향에 내려가 결국에는 한라산국립공원에 입사를 하여 15년동안 한라산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만난 비경을 글과 사진으로 풀어 내놓으니 오죽 한라산이 오롯이 담겨 있을까.

치마폭에 감추어졌던 여인네의 속살을 살짝 들여다 보듯이 그가 보여주는 사진들은 정말 아름다우면서도 우리나라 같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게 만든다. 그와 함께 곁들여진 글들 또한 한라산 자연과 오랜시간 함께 하여서일까 맑고 아름다운 자연이 그대로 잘 드러나 있으며 한라산의 모든 자연이 담겨 있는듯 하여 빨리 그곳으로 가고 싶은 생각을 가지게 만든다. 제주와 한라산 여행을 가지전에 한번 읽고 간다면 정말 좋을 책으로 보물과 같은 책이 숨겨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가 보여주는 한라산의 봄,여름,가을, 겨울은 정말 비경이면서 한라산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담아 내어 한라산의 사계를 눈 앞에서 그냥 보고 있는 사실적인 느낌을 준다. 고 김영갑 작가가 제주의 이상향인 이어도를 카메라에 담았다면 그는 순수한 자연을 담아 놓았다. 숨겨져 있던 한라산의 속살을 한 겹 한 겹 풀어내면서 보여주는 아름다움은 눈길을 멈추게 하면서 순간 날숨을 멈추게 한다.

'봄의 여울목에서 휑한 숲 속에 잎도 없이 피어나는 생강나무의 샛노란 꽃망울을 보신 적 있으신지요. 기다란 줄기 끝에 자주빛으로 터질듯 부풀어 오른 층층나무 겨울눈을 바라본 적 있으신지요. 익어가는 봄의 산길을 걸어갈 때 잠시 눈여겨볼 일입니다. 무심한 듯 서 있는 나목 깊은 곳에도 수직의 혈관을 역류하는 뜨거운 체온이 있다는 것을, 한 번쯤은 다가가 귀를 대고 가만히 만져볼 일입니다. 계절을 흘러가는 한 그루 나무의 애면글면한 삶의 얼굴이 한 사람의 생애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알겠습니다.' 숲에 가면 나는 한번씩 나무의 겉껍질을 스다듬어 본다. 소나무 같은 경우 비늘처럼 한 겹 한 겹 떨어져 내리는 세월의 깊이를 쓰다듬다 보면 그 세월은 고스란히 내게로 오는 듯 하여 너무도 좋다. 굴참나무의 그 깊은 표피의 굴곡은 참나무의 무심한듯 한 질곡이 세월이 계곡을 이룬 듯 하여 얼굴을 가만히 대보기도 한다. 그런 나무에게도 '뜨거운 체온' 이 있다는 말이 공감간다. 봄을 알려주는 복수초가 눈 속에서 피어 오르면 꽃 둘레에는 눈이 녹아 있고 나무의 둘레에서 부터 눈이 녹기 시작이다. 그런것을 보면 무심한듯 한 식물이나 나무에게도 알게 모르게 저마다의 온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들만의 감정 또한 있다는 것처럼 느껴져 숲에 가면 더욱 자연에 귀 기울이고 맘을 열어 그들을 보아야 할 듯 하다.

그가 전해주는 꽃 이야기며 식물 이야기 그리고 봄에 가장 사람들의 손을 많이 타는 '두릅' 에 대한 이야기는 가슴을 아리게 한다. 나 또한 두릅나물이 좋다며 금방 새순이 나와 세상 구경을 하고 있는 것을 톡 꺾었던 기억이 있다. 건강을 위해 무심하게 생명을 꺾었던 그 미안함을 책을 읽으며 살짝 놓아본다. 그런가 하면 제주의 거친 바람속에서만 자라는 '피뿌리풀' 의 그 오묘한 꽃이 사람들의 무책임함 속에 멸종위기에 처했다는 것이 정말 서글프다. 그런데 사람들에 의해 멸종위기에 처한 생명이 어찌 피뿌리풀 뿐이겠는가. 그곳에 있어야 비로소 빛을 보는 것들을 사람들의 욕심에 집이나 그외 다른 곳으로 가져가기 위하여 채취를 하여 그 생명이 있어야 할 자리를 빼았는 무책임한 행동은 이젠 더이상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가 하면 후손에게 남겨 주어야 할 자연의 보고와 같은 곳에 골프장이나 현대식 건축물이 들어선다는 것은 한번 더 깊게 생각을 해 보아야 할 것이다. 어느 프로에선가 곶자왈이 개발되는 것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정말 대단한 곳인 그곳을 몇 몇의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자연을 무시하고 개발하는 것은 후손에게 얼굴을 들 수 없는 일이다. 지켜야 할 것과 보존해야 할 곳은 정말 지금 그대로의 모습 그대로 지켜주었으면 싶다. 어쩌면 다음 대에는 책의 글이나 사진에서나 만나거나 그렇게 되는 일이 없도록 지금이라도 좀더 지켜주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책을 봤다.

내 눈길을 잡아 더이상 페이지를 넘길 수 없게 만든 꽃 '돌매화' 는 정말 눈을 의심하여 옆에 있는 남편에게 보여주었다. 다 자라도 2cm밖에 되지 않는 나무, 암매는 잎 또한 꽃처럼 겨울엔 붉은 빛으로 있다가 봄이 되면 초록으로 변하고 그곳에서 별이 빛나듯 다섯장의 하얀 꽃잎이 피어난다니 얼마나 아름다운지. 제주의 거센 바람도 이겨내고 바위의 거침도 이겨내는 것엔 키가 필요하지 않다. 바위에 달라붙듯 하여 자신의 모두를 들어내는 '돌매화' 야 말로 제주의 숨겨진 아름다움이 아닐까. 이런 자연이 지켜지고 보존되어야 대대로 제주의 한라산을 찾게 되고 관광자원이 될터인데. 그가 전해주는 아름다운 꽃 중에 기생 꽃이라 할 수 있는 억새풀에 달라 붙어 광합성을 하여 억새보다 먼저 꽃을 피우는 15cm의 연보랏빛 '야고' 는 처음 보기도 하지만 꽃도 이쁘다. 그런 꽃이 있었나 하고 고개를 갸웃뚱하게 만드는 이런 생소함이 숨겨져 있어 한라산은 그야말로 야생화의 천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 너무도 여리어 손길만 닿아도 사르르 녹아버릴 것만 같은, 억새의 보살핌이 없으면 차마 꽃 한 송이 피우지도 못할 들판의 고독한 나그네 야고野孤, 어쩌면 야고는 제주 들판이 품고 있는 외로운 유추프라카치아가 아닐는지요. 순결한 억새 들판 한 귀퉁이에서 있는 듯 없는 듯 태어났다가 홀연히 사라져가는 고독한 들판의 나그네는 아닐는지요. 가으르이 제주 들판에 선 그대, 억새수풀 사각대는 저물녁의 오름을 떠도는 나그네여, 오늘 그대의 유추프라카치아는 누구입니까. 당신이 풀어야할 야고는 누구입니까. 혹은 그대는 구누의 야고입니까.' 억새의 밑둥을 헤쳐보지 않는다면 만나지 못할 야고, 그런 꽃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의문인데 꽃마져 아름다우니 어찌할꼬.

돌매화와 야고에 이어 또 한가지 귀한 것을 얻었다. 조릿대가 60년 만에 꽃을 피운다는 것이다. 대나무가 60년만에 꽃을 피운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조릿대가 벼과의 식물로 꽃을 피운후에 말라 죽는다는 이야기를 읽으니 산행을 하며 많이 만났던 조릿대를 다시 보게 된다. 조릿대가 제주의 자연을 망치는 것이 아니라 조릿대가 있어 산림도 보호하고 많은 동물들이 그에 의지를 하며 보금자리를 틀며 그 또한 자연의 일부라는 것. 그런가하면 어려운 시절 식량처럼 먹거리를 제공하기도 했다는 이야기에 산에서는 한가지 그냥 보아 넘기지 말아야 함을 느낀다.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그 몫을 다하지 않는 것이 없는 듯 하다. 그야말로 제주의 한라산에 자생을 하기에 더욱 빛을 보기는 것들, 그리고 그곳에 있기에 더욱 아름답고 보존되어야 하고 지켜 나가야 할 것들을 선명한 사진과 함께 하는 감동은 정말 크다. 한라산의 사계가 담긴 화보집을 보는 듯 하기도 하고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하기도 하다. 진분홍빛 꽃과 함께 하는 노루의 사진이 인상적이다. 제주의 노루, 한때는 말성이 되기도 하지만 그곳에 있어야 더욱 노루다운 녀석이 귀를 쫑긋 세우고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있는 사진은 오래도록 남을 듯 하다. 이 책을 모두 읽고나니 김영갑의 <그 섬에 내가 있었네>를 다시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 담겨져 있던 자연이 그의 사진속에서 거센 바람과 만나 어떻게 변했는지 다시 보고 싶어졌다. 이 책은 한라산의 사계가 보고 싶거나 제주 여행을 가기 전에 그리고 아름다운 우리나라의 자연을 보고 싶을 때 보면 정말 좋을 책이다. 숨김없이 드러난 자연의 아름다움이 거짓없이 그의 뷰파인더 속에서 속살을 살짝 들어내고 무지개를 띄운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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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여 안녕 Classics in Love (푸른나무) 6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희동 옮김 / 푸른나무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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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적함과 달콤함이 한데 뒤엉킨 이 낯선 감정을 슬픔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불러도 좋을지, 나는 망설인다.'
처음 시작부터 무언가 무겁다. 울적함과 달콤함, 그에 반하는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것만 같아 빨리 읽고 싶어지는 부피가 작은 책이다. 프랑스와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을 읽어본다는 것이 아직 읽지 못했다. 그러다 만난 그녀가 19세에 발표한 18세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 슬픔의 무게처럼 무겁기도 하면서 한참 사춘기의 그녀가 겪어야 했던 사랑이 담겨 있어 달콤한 이야기에 금방 빠져들게 되었다.

마흔이 넘은 바람둥이 아버지와 18세 소녀 세실은 엄마를 잃어 둘만의 자유로운 생활을 한다. 15년 동안 홀아비로 살아온 아버지는 늘 여자가 있었고 지금 또한 엘자라는 스물 아홉의 여자가 있다. 세실은 기숙사에 생활하다 나와서 아버지와 엘지와 함께 휴가를 간다. 그런데 그 휴가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엄마의 친구인 패션일을 하는 안느를 부른 것이다. 엘자라는 여자가 있으면서. 도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딸 세실은 아버지의 마음을 알다가도 모르겠다. 안느는 마흔이 넘어서 아버지와 비슷하지만 결혼실패후 혼자 사는 그야말로 정숙하면서도 틀에 박힌 것처럼 완벽함을 추구하는 여자로 한때 세실이 그녀에게 가서 머무르기도 했다. 

그들이 휴가를 간 곳은 남프랑스 어느 해변, 아버지와 엘자는 역으로 안느를 마중나가고 세실이 그곳에서 사귄 대학생 오빠인 사릴르와 달콤한 시간을 보낼때 그녀가 도착한 것이다,자신의 차를 운전해서. 그렇게 그녀가 도착하고 역에 마중나갔다가 허탕을 치고 돌아온 아버지와 엘자, 아버지는 안느를 보면서 표정이 너무도 확연히 달라졌다. 밝은 얼굴의 아버지,옆에 있는 엘자를 생각지도 않고 새로운 여인에 흡족한 아버지를 세실은 못마땅한듯 받아 들인다. 그렇게 시작된 그들의 이상한 휴가생활은 계속되고 세실은 뜻하지 않게 만난 옆 별장의 시릴르와 점점 가까워지게 되고 어느날 아버지는 파리에 가서 즐거운 시간을 즐기고 오자고 한다. 야유회복으로 갈아 입은 안느의 모습은 정말 고혹적이면서 엘자와의 젊음과는 확연히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야유회에서 갑자기 사라진 아버지와 안느, 세실과 엘자는 아버지를 찾아 보다가 세실이 그 둘을 발견하게 되고 그들의 사이가 이상하게 발전한것을 감지하게 되고 엘자는 그런 그들 곁에서 떠나겠다고 선언하게 된다. 

별장에 돌아온 세실에게 아버지는 안느와 결혼하겠다고 한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지금까지 자유로운 생활에 젖어 있던 세실에겐 아버지의 정착이 믿어지지 않았고 그동안 엘자와 살고 있었기에 갑자기 나타난 안느를 정말 사랑하고 있는지 의심이 되기도 했지만 결혼 결심후에 달라진 안느의 태도에 무척 반향심을 가지게 된다. 사춘기의 특성이 나타나듯 세실은 안느를 아버지에게서 떼어 놓으려 작전을 짠다. 자신의 공부와 모든 것에 시시콜콜 참견을 하는 그녀가 밉기도 하다가 의지가 되기도 하는 세실, 아직은 그녀의 본심을 모르기에 어린 세실은 엘자와 시릴르를 이용하여 아버지에게서 안느를 떼어 놓고 엘자와 함께 하던 예전의 자유로운 생활로 돌아가고픈 생각에 집착한다. 그런 어느날 엘자가 옷가방을 가지러 오고 시릴르와 그녀에게 자신의 작전을 모두 이야기를 하여 총지휘자로 나서며 안느를 떼어 놓기로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녀가 좋기도 하여 점점 자신의 의도했던 대로 돌아가는 작전을 멈추고도 싶지만 그렇게 되지 않고 급기야 엘자에게 눈을 돌린 아버지가 그녀에게 키스하는 장면을 안느에게 들키게 되고 안느는 자신이 있던 곳으로 돌아가려 차에 오른다. 그런 그녀에게 비로소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세실, '안느, 가지 말아요. 잘못했어요. 내 탓이에요. 이제부터 모른 걸 설명할 테니..... 우린 당신이 필요해요.' 했지만 그녀는 '너에겐 아무도 필요치 않아. 너에게도, 그 사람에게도...' 하며 안느는 기어이 떠나고 만다. 

안느가 떠난 후에에 비로소 자신들에게는 안느가 필요했음을 절실히 느끼지만 안느를 돌아오게 할 방법이 없다. 세실은 아버지에게 안느에게 편지를 쓰자며 함께 후회의 편지를 쓴다. 그런 도중에 전화를 받게 되고 안느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말을 전해듣게 된다. 그렇다면 그녀의 죽음은 교통사고를 가장한 자살이란 말인가. 실연의 아픔에서 오는 감정의 폭발을 주체하지 못한 그녀가 스스로 택한 죽음 앞에서 비로소 안느가 자신들에 했던 모든 것들이 진심이었고 진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세실과 아버지, '안느! 안느! 어둠 속에서 오랫동안 그 이름을 나지막히 불러 본다. 그러자 무언가가 내 안에서 솟아오르고, 나는 그것을, 눈을 감츤 채 '슬픔' 이라는 이름으로 맞이한다. 이제 나는,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슬픔이여, 안녕!.' 이라고 말하는 세실. 그들은 안느의 죽음 이후 예전과 같은 자유생활에 돌아간다. 슬픔을 뒤로 한 채.

세실이라는 소녀가 숙녀로 성장하면서 겪는 성장통과 같은 이야기와 아버지의 재혼문제가 얼히면서 그녀는 격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그 자신 또한 옆 별장의 대학생 오빠인 시릴르와 육체적인 사랑까지 나누게 되면서 아버지와 안느의 사랑에 대하여 생각을 해 본다. 하지만 안느가 죽고 난 후 시릴르와 자신의 사랑은 진실한 사랑이 아닌 육체만 원했던 것이란 것을 깨달게 된다. 그렇다면 아버지가 그동안 누렸던 자유생활,방탕함 속에서 정착하려 했던 여인인 안느는 그들에겐 자유스런 삶을 종지부를 찍게 해주는 그런 울타리가 될 수 있었는데 그런 삶이 이제 막 성장을 하려는 세실에겐 그동안 누린 자유를 한꺼번에 박탈당하는 듯 하여 싫었던 것이다. 엄마의 죽음이후 그녀가 누렸던 자유가 하루아침에 울타리가 쳐지는 것을 원치 않았지만 그것이 또한 그녀가 마주해야 하는 인생이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슬픔이여 안녕' 은 소녀 세실 뿐만이 아니라 안느나 그외 인물들에 대한 감정 묘사가 탁월하다.19세가 썼다고 보기엔 정말 성숙한 소설로 1950년대 전쟁후 젊은이들이 겪어야 했던 공허와도 일맥상통한다니 다시금 소설속을 들여다보게 한다. 만약에 안느가 죽지 않고 아버지와 연결이 되어 세실의 새엄마가 되어 새로운 삶에 그들이 갇히게 된다면 소설은 어떻게 전개 되었을까 궁금해진다. 하지만 슬픔도 이별도 인생의 한 길인 것처럼 그녀의 죽음을 뒤로 하고, '슬픔이여 안녕' 을 고하고 다시금 그들만의 생활로 돌아가는, 다시 시작되는 인생 이야기가 얼마전 아버지와의 이별을 한 나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슬픔이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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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 우체국 - 황경신의 한뼘스토리
황경신 지음 / 북하우스 / 2004년 6월
평점 :
절판


내겐 아직 낯선 이름 황경신, 그녀의 책은 솔직하게 처음이다. 이 책은 제목처럼 무언가 달콤함이 가득할 듯 하여 구매를 했다. '황경신의 한뼘 스토리' 라고 부제가 붙어 있어 무얼까 했는데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 해야할까 달콤하면서도 생각의 깊이를 가지게 하면서 상상의 날개를 퍼득이게 하는 단편들이 봄,여름,가을,겨울 편으로 나뉘어 있어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요즘은 사진이 함께 곁들여지는 포토에세이가 많은데 계절을 나타내는 사진이 있고 색이 있고 짧지만 여운을 깊게 줄 수 있는 단편들이 있으니 포토에세이의 중간쯤이라고 할 수도 있으며 동화라고 하기엔 그렇고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 해야할지 성장을 한참 하고 있는 그런 글들인듯 하다.

스케이트를 타고 싶은 코끼리편에서는 생각이 얼마나 긍정적이냐에 따라 목표로 한 일을 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나타내주고 있다. 우리의 생각에 무거운 코끼리가 스케이트를 탈수 있다고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아니 그렇게 될 수가 없다.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 속에서 나오는 동물들은 그런 코끼리의 꿈을 이뤄주기 위하여 모두가 긍정적인 생각과 아이디어를 내어 놓는다. 그렇게 하여 한가지 한가지  맡아서 하기도 하고 모두가 함께 어울려 그가 어떻게 하면 스케이트를 탈 수 있을지 실행에 옮긴다. 코끼리가 스케이트를 탈만한 장소가 있을까, 그렇다 북극에 가면 북극곰도 많고 항상 얼음에 덮여 있으니 코끼리에게는 안성맞춤의 장소이다. 그러면 그곳까지 갈 수 있는 방법과 코끼리에게 맞는 스케이트를 장만하면 된다. 그렇게 하여 모두가 일심동체가 되어 코끼리의 소원인 스케이트를 타게 해 준다. 얼마나 기발한 상상인가. 동화로 나온다면 아이들에게는 멋진 상상을 줄 수도 있는 참 이쁜 동화 한 편이 될 수 있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난 이 글에서 '긍정적 사고' 를 끌어내고 싶다. 며칠전 큰딸이 기말고사를 앞두고 열심히 노력을 했으니 자꾸 시험에 대한 부담감과 함께 자신이 없어진다고 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긍정적인 생각과 자신감,나는 할 수 있다.' 였다. 그렇게 자꾸 녀석의 얼굴을 바라보며 웃는 얼굴로 '넌 할 수 있어. 최선을 다했고 너의 노력의 결과가 보여지고 있잖아. 할 수 있어.할 수 있다는 마음이 문제야.' 라고 해주었는데 녀석도 그런 엄마의 말이 좋았던지 밝게 웃었다. '엄마 내가 성적이 부쩍 오르고 있는거 모르지. 중간고사도 많이  오르고 모의고사도 오르고 기말고사도 잘볼께.' 엄마의 힘을 실은 한마디에 부쩍 화색이 돌던 녀석의 얼굴이 이 글을 읽으며 생각이 났다. '코끼리야, 기억해, 이 세상에는 우리 모두가 힘을 합하면 이룰 수 있는 일들이 너무나 많아. 그리고 우린 지금 막 그 중의 한 가지를 해낸 거야.' 라는 마지막 글이 여운을 길게 남겨준다.

당신은 얼마나 행복한 인생을, 아니 불행한 인생을 살고 있는가? 라고 묻는다면 무어라 답할 수 있을까. 행복하다고 아니 내 인생은 온통 불행뿐이야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만약에 내가 이렇게 하지 않았다면... 만약에 내가 이 길이 아닌 다른 길을 갔더라면 내 인생은 다르게 변했을 터인데... 그런데 만약에 다른 길로 갔다고 해도 지금과 똑같은 생을 살게 된다면 무어라 말할까. 물음에 답처럼 그런 따듯한 단편 소설이 있다. 곰스크로 가는 기차, 부제로 '그남자,불행했을까?' 이다.지금 막 결혼을 한 젊은 부부가 있다. 그들은 가진것이 없어 곰스크로 가는 열차표밖에 살 수가 없었다. 그곳은 멀기도 하여 가는 중에 열차가 작은 역에서 섰다. 휴식을 취하고 다시 떠난다는 기차, 식당에 들러 식사를 하고 언덕을 산책하고 내려왔는데 기차가 가버렸다. 다음날에나 오는 기차를 위해 식당에서 방을 얻었는데 숙박비가 없다. 식당의 일을 도와주고 숙박비를 지불한 그들은 다음날 기차를 타러 갔지만 전날 표이기에 기차를 탈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하여 뜻하지 않게 식당에 머무르게 되었지만 여자는 그곳이 마음에 들었다. 그렇다고 곰스크에 간다고 해도 뾰족한 수가 없었던 그들에게 그곳은 종착역이 되었던 것이다. 식당에서 일을 하다가 작은 학교의 교사가 되어 뿌리를 내리게 된 그들, 곰스크로 가는 기차를 타야만 했을까? 인생을 살다보면 이런 갈림길에 설 때가 무척이나 많다. 이쪽일까 아님 저쪽일까? 어느쪽을 택한다 해도 마음먹기에 달려 있고 자신이 노력하며 살기에 달려 있는듯 하다. 먼저 생각하고 선택한 곳에 가지 못한 미련이야 남겠지만 그 길을 택한다고 행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해주는 '곰스크로 가는 기차' 짧지만 긴 여운을 남겨주는 이야기는 따듯한 봄날에 파릇하게 솟아 오르는 새싹과 같은 삶의 희망을 안겨주기도 한다.

나에게 남겨진 동전하나, 불행과 행운을 가져다 주는 동전하나가 있다. 먼저 행과 불행을 맛본 사람이 다른 이에게 전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 가는 동전, 그리고 그 동전을 주운 사람이 전화를 하면 전의 주인에게 전화가 간다. 그렇게 그 동전의 쓰임을 이야기 해주고 다음 사람에게 일어날 행과 불행의 비율을 이야기 해준다. 그렇게 우연하게 마법과 같은 동전이 하나 내 손에 들어왔다. 그런데 제일 먼저 시작된 것은 불행이다. 모든것이 들어 있던 가방을 잃어버린 것이다. 불행이 먼저 닥쳐왔다. 그렇지만 방금 주운 동전이 하나 손 안에 있다. 전화를 하니 전 주인이 불행을 맛보았으니 이젠 행운이 올것이라 한다. 그럴까? 그와의 통화를 마치고 나자 정말 우연처럼 친구가 자신의 잃어버렸던 가방을 들고 있다. 그러면서 그가 백화점 이벤트에 당첨되었다는 이야기도 해준다. 낯익은 가방을 주운 친구는 핸드폰을 꺼내어 전화를 걸려다 전화가 걸려와 받았더니 이벤트 당첨을 알리는 전화였다며 그녀에게 행운을 전해준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불행이 닥쳐올까. 동전을 계속 가지고 다녀야 할까. 그냥 전화박스에 두고 나오는 동전 한 닢, 행과 불행을 점쳐 줄 수 있다는 것이 아니 인생은 어쩌면 행운과 불행이 조화롭게 연속되는 그런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이야기는 짧지만 이 또한 긴 여운을 남겨준다. 어떻게 자신에게 달콤한 행운만 취득할 수 있겠는가. 초콜릿이 가득 든 상자에서 하나를 꺼내어 먹다보면 맛있는 것도 맛없는 것도 먹을 수 있다.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아도 취사선택없이 모두를 먹어야 하는 것이 인생이다. 

이 책에는 그런 느낌의 글들이 가득하다. 재미있을 수도 있고 혹은 재미가 없을 수도 있다. 의미를 찾는 것은 독자의 몫이지만 그런 '초콜릿 상자' 같은 많은 단편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 따듯한 봄햇살을 전해주듯 한다.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아니 동심을 잃어버리듯 상상의 날개를 스스로 접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어린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그 성장점을 지금 막 글들에서 흡수를 하듯 따듯한 수액은 모세혈관을 타고 온 몸 구석구석 흘러가는 듯 하다. 마음이 따듯해지는 초콜릿 상자속 같은 '초콜릿 우체국' 은 그야말로 제목처럼 따듯하면서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 '햇살이 스미는 이야기' 로 무언가 오래전에 잃어버렸던 것을 충전시켜 준다. 한뼘 따스함을 전해 받을 수 있음이 좋았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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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3
우타노 쇼고 지음, 현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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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접해보는 추리소설 작가이지만 책은 나오자마자 바로 구매를 해 놓아 책장 한 켠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추리소설은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 때문에 빠져 들게 되었고 가을과 겨울은 스산함 때문인지 추리소설을 읽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이며 늦은 시간에 읽는다면 특히나 그 맛을 두배는 더할 수 있어 추리소설에 빠져들수 있다. 이 소설은 늦은 시간에 읽기 시작하여 밤시간에 읽게 되었으니 <생존자,1명>을 읽을 때는 왠지 모르게 혼자 깨어 있어서일까, 문득 어디선가 살인자가 날 노려 보고 있는 착각이 들어 가끔 뒤를 돌아보기도 했다. 그래서 무섭다면 낮에 읽었어야 했는데 좀서 스릴을 즐기기 위해 늦은 시간에 잡아 든 것이 스릴있게 소설을 읽게 된 것이다.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 와 <생존자,1명> <관이라는 이름의 낙원에서> 라는 세 편의 이야기는 모두 '밀실트릭' 이다.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는 눈 오는 산장이며 생존자 1명은 외딴섬에서 벌어지는 생존을 위한 숨 막히는 살인이면서 관이라는 이름의 낙원에서는 탐정소설을 좋아했던 친구 네 명이 한 친구로부터 초대를 받으면서 시작되는 탐정소설속의 직접적인 주인공이 되어 보는 소설로 반전이 숨어 있어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추리소설이라고 하여 어렵다거나 하지는 않다. 읽다보면 재밌게 빠져 들 수 있으며 범인을 추리해 낼 수 있지만 '멋진 반전' 이 숨어 있어 작가만의 독특하면서도 생생한 상상력 속에서 풍부하게 부유하며 한동안 긴장감과 오싹함에 잠시 스릴을 맛볼 수 있는 소설이다.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는 가게우라라는 명탐정과 그의 조수 노릇을 하는 다케우라가 어느 행사에 초대되어 그들과 함께 하게 되었다. 자신의 화려한 명탐정 생활은 하지만 돈이 되지 못해 늘 돈의 부족함에 허덕이는 가게우라는 돈이 되는 일만 찾아 하고 싶다. 좀더 풍족한 삶을 살려는 그에 비해 백수처럼 빈둥빈둥 하던 탐정소설을 좋아하는 다케우라는 명탐정인 그의 조수가 되어 한편으로는 지금의 삶을 그보다는 좀더 즐기며 살고 있다. 돈보다 좀더 재밌고 탐정일을 하면서 직접 자신이 그 상황을 추리할 수 있음이 좋은 다케우라, 그들에게 일이 벌어졌다. 그들이 초대된 산장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던 것이다. 하지만 가게우라는 그들이 자신을 고용하지 않는다면 돈이 되지 않는다면서 일을 회피하듯 한다. 하지만 그에 비해 조수인 다케우라는 자신의 눈 앞에서 일어난 일에 열심으로 뛰어든다. 너무 돈돈돈돈 하는 가게우라가 미울지경이다. 초대된 손님으로 명탕정인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살인사건을 해결해 줄 수도 있으련만 돈을 좇는 그는 엉뚱한 범인을 지목하고 다케우라는 그런 그가 이상하다고 여기다가 마침내 그런 그를 죽이고 자신이 그 사건을 명쾌하게 해결을 하여 새로운 '명탐정' 이 된다. 돈의 욕심이 불렀던 명탐정 가게우라의 죽음, 인간의 욕심이 어떻게 그 끝은 맞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반전이 있기도 한 이야기며 정상이란 누군가는 늘 노리고 있으며 그 정상을 지킨다는 것은 힘든 일이라는 것 또한 보여준다. 정상을 노려서 벌어진 사장의 죽음이나 명탐정 가게우라의 죽음은 좀더 욕심을 놓았다면 어떠했을까 하는 삶을 뒤돌아 볼 수 있음도 전해준다.

생존자 1명, 신흥 기독교 집단에 휘몰려 가족과 지인들에게 자신들이 어디로 떠난다는 말도 없이 지하철 폭파로 많은 희생자를 낸 이들이 함께 어느 섬에 버려지게 된다. 말이야 현실이 좀더 잠잠해지면 해외로 빼돌려 주겠다는 책임자들의 말을 믿고 '배합사료' 와 같은 식량을 실고 섬에 갇히게 된 사람들은 그들이 저지른 일에 대한 반성이나 그외 섬을 탈출해 보려는 시도 보다는 누군가에 의해 언젠가는 해외로 나가게 될 것이란 안이함에 빠져 무방비 상태로 있지만 그들의 책임자도 섬을 빠져 나가고 그런 후에 한 명 한 명 죽음을 맞이하면서 서로를 의심하게 된다. 이 이야기는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와 비슷한 구도이기도 한데 약간은 변형이 있다. 남자 둘 여자 둘이 버려지게 된 사람들, 그들은 그곳에서 원하지 않으면서도 몸을 섞게 되고 그러면서 많은 시간이 지난후에야 자신들이 버려졌고 죽게 될 것이란 것을 알게 되면서 서로를 의심하고 섬을 벗어날 방법을 모색해 보지만 그 섬 또한 사람들 머리에서 잊혀진 섬이라 오가는 배 또한 볼 수가 없다. 봉화도 올려보고 뗏목도 만들어 보지만 육지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언젠가는 죽게 되고 만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섬을 탈출할 방법은 없을까, 한 명 한 명 죽어 나가다가 최후에 두 명의 여자 두명만 남았는데 한 명의 여자는 몸에 살이 붙고 한 명의 여자는 빼빼 말랐다. 이유인즉슨 한 명은 임신을 했던것, 그런가 하면 빼빼 말랐던 여자 또한 훗날 임신을 알게 되고 식량은 점점 바닥이 나지만 뱃속의 아이만은 살리고 싶은 모정이 반건의 결말을 가져온다. 자신들은 누군가에 의해 자의든 타의든 남의 목숨을 무참히도 앗는 그런 인물이 되었지만 자신안에서 자라고 있는 생명은 어쩔 수 없이 꼭 지키고 싶었던 그녀들, 그들의 이야기 또한 재밌게 펼쳐진다. 

관이라는 이름의 낙원에서, 어릴적 자신의 꿈을 이루며 살고 있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어릴때 야구선수가 되고 싶었다고 그가 야구선수가 되어 있을까.그렇지 않다는 것이 인생이고 우리네 삶이다. 그렇다면 어릴적부터 추리소설을 좋아한 사람들은 무엇이 꿈일까. 그 명쾌한 해답이 여기 이 소설에 있다. 추리소설을 좋아해서 동호회 활동처럼 함께 모여 늘 함께 하던 그들이 한남자와 한여자가 사귀게 되면서 모임활동은 흐지부지 되고 만다. 그러다 그들의 소식은 뜸하게 전해지고 그들은 결혼을 하여 아들을 낳았지만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게 되고 아내마져 큰 병에 걸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날 그에게서 초대장이 날라왔다. 관과 같은 큰 저택을 완성하기에 앞서 모임을 갖고 싶다며 친구들을 초대한 것이다. 그런 주인장 남자는 오래전 전설속에 나오는 듯한 관을 짓고 그에 어울리는 이야기를 지어내서 '명탐정놀이' 를 하기 위하여 학예회처럼 친구들과 그들 부부 또한 모두 소설속 주인공이 되듯 놀이를 해 나간다. 관과 함께 전설속 이야기와 놀이는 점점 하나가 되어 가고 풀리지 않을것만 같던 명탐정놀이의 해답을 풀어 내는 순간, 친구인 주인 남자는 마지막 커튼콜처럼 그들에게 편지 한 장을 남겨 놓고 사라진다. 지금까지 모든 것은 그들 부부의 마지막을 위한 '쇼' 였던 것이다. 중병에 걸린 남자와 암이 재발한 아내가 교통사고로 외아들을 잃어 더이상 이승에 끈을 이어갈 희망이 없자 마지막을 우위하여 친구들을 추리소설속 주인공이 되게 불러 그들을 직접 끓여 들었던 것. 전설이 점점 현실이 되어 가면서 작가의 노련미가 보여지는 듯한 이야기였던 '관이라는 이름의 낙원에서' 는 결말이 서글퍼 슬픈 이야기였다. 

하지만 위 세 편의 이야기는 '밀실' 이라는 트릭이 있어 읽으면서 더욱 재미를 준다. 명탐정도 별 수 없는 한 인간이라 언젠가는 그 명성을 남겨 놓고 죽을 수 있고 섬에 갇혀도 언젠가는 무슨 방법으로라도 탈출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의 죽음을 함께 하며 그들이 그렇게 죽어가야 했나 하는 반문도 가져보게 한다. 좀더 미리 살기 위하여 서로의 머리를 맛대었다면 죽음이 아닌 모두의 생으로 보답을 받을 수 있었을테인데 '원죄' 가 있기에 그 원죄에 대한 무게감에서 벗어날 수 없엇던 그들의 마지막 처참함은 쓸쓸했다. 그런 반면에 친구들이 모두 모아 놓고 죽음을 맞게 된 부부의 슬픈 이야기 또한 재미와 스릴이 있으면서도 인생 한토막을 훔쳐 본 듯한 서글픔이 있어 쓸쓸했다. 작가는 밀실트릭을 재밌게 그려나갔고 그에 준하는 반전을 주어 읽는 재미를 더했기에 처음 접한 추리소설 작가이지만 그의 책을 눈여겨 봐야 할 듯 하다. 겨울의 문턱에서 추리소설을 읽었다는 것은 겨울의 그 쌉쌀한 맛을 본 것처럼 좋았다. 작품속에 언급된 엘러리 퀸의 <Y의 비극> 은 읽을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 책이고 눈여겨 보고 있는 작가인 엘러리 퀸이라 올겨울에 꼭 읽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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