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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를 좋아하세요...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9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평점 :
'폴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이런 경우 흔히 갖게 마련인 신랄함이나 당혹감이 아니라 조심성에 가까운 차분함을 가지고,좌절로 얼룩진 거울 속의 얼굴을 서른아홉 해로 나누어 보았다.' 서른 아홉의 나이에 결혼과 이혼의 상처를 가진 그녀 폴, 그녀에게 오랜 시간동안 사랑해 왔고 그리고 사랑하고 있는 로제라는 남자가 있다. 하지만 그는 그녀에게 늘 고독과 외로움을 안겨준다. 긴장감이 없는 사랑, 늘 습관처럼 행해지는 그와의 집앞에서의 이별후에 그녀가 맞이하게 되는 외로움과 고독이 싫다.무슨 일인가 일어나야 할 것만 같은 그들의 사랑에 더이상의 해답이 없는 것과 같은 나날이 이어진다.
그런 폴과 로제의 사랑에 긴장감과 같은 파문을 일으키는 인물인 시몽이 나타났다. 그것도 그녀보다 14살이나 연하인 스물 다섯의 혈기왕성한 밀어붙임이 예고되는 시몽의 출현으로 인해 폴과 로제의 사랑이 여울목을 만나 어떻게 잘 헤쳐나갈지 작가 사강은 <슬픔이여 안녕> 에서도 보여준 대단한 심리묘사를 이 작품에서 또한 보여준다. 결코 24세에 출간한 작품이라 보여지지 않는 완숙함이 묻어나는 작품에서 습관적으로 익숙함에서 일탈처럼 꿈 꾸던 열정적인 사랑을 만나 방황하는 폴의 심리가 잘 들어나 있으면서도 익숙함과 새로운 급류처럼 닥친 열정적인 사랑에 휩쓸려 자신도 모르게 밀려 나가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에게 익숙하면서 습관적으로 서로를 너무 잘 알고 그녀 자신이 그를 잘 알았던 사랑이 자신의 사랑이라며 택하게 되는, 어머니의 자궁처럼 고독하지 않고 외롭지 않으면서도 너무도 안정적인 사랑을 갈구하는 폴의 심리가 잘 들어난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연상의 클라라 슈만을 좋아했던 브람스를 비유하여 소설의 제목을 붙인듯 하여 로맨틱을 한 줄 알았지만 로맨틱 보다는 어쩌면 사랑을 바라보는 냉철함이나 날카로움이 더 잘 들어난 작품인듯 하다.
'그녀는 소지품을 꼼꼼하게 정돈한 다음 침대 위에 앉았다.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오늘밤도 혼자였다. 그리고 앞으로의 삶 역시 그녀에게는,오늘밤도 혼자였다. 그리고 앞으로의 삶 역시 그녀에게는, 사람이 잔 흔적이 없는 침대 속에서, 오랜 병이라도 앓은 것처럼 무기력한 평온 속에서 보내야 하는 외로움 밤들의 긴 연속처럼 여겨졌다. 침대 속에서 그녀는 마치 누군가의 따듯한 옆구리를 만질 수 있기라도 한 듯이 본능적으로 한쪽 팔을 뻥었고, 누군가의 잠을 깨우지 않으려는 듯이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제이 큰 어려움은 고독과 외로움인듯 하다. 외로움을 이겨내기 위하여 그녀가 밤마다 몸부림을 쳐 봐도 그녀는 늘 혼자다. 그런 그녀에게 따듯함을 전해줄 젊고 잘생긴 그녀에게 푹 빠진 시몽이 나타났다. 로제와의 긴 사랑의 레일위에 있는 그녀가 그 사랑을 받아들여야 할까 말까.
자신은 아니라고 부정을 하면서도 마음은 이미 시몽에게 가고 있다. 어쩌면 로제에게서 채우지 못했던 공허함을 시몽으로 대신 채우려 하듯 시몽에게 점점 마음을 주게 되는 폴, 시몽은 '그녀 나이의 여자에게 모성애를 불러일으키기에 꼭 알맞은 그런 부류의 청년이었다.' 어머니와 살고 있지만 어머니의 사랑보다는 자신을 감싸줄 사랑을 원했던 시몽은 그에게 맞는 완벽한 사랑이라도 찾은듯 그녀에게 집착을 한다. 그런 그의 눈에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는 로제를 보게 되고 그는 폴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그런 그가 폴에게 어는 날 '푸른 쪽지' 라는 시적으로 표현했던 속달우편으로 그녀에게 편지를 보낸다 '오늘 6시에 플레옐 홀에서 아주 좋은 연주회가 있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어제 일은 죄송했습니다.' 폴은 그의 편지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내가 브람스를 좋아하던가. '그녀의 집중력은 옷감의 견본이나 늘 부재중인 한 남자에게 향해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자아를 잃어버렸다. 자기 자신의 흔적을 잃어 버렸고 결코 그것을 다시 찾을 수가 없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그녀는 열린 창 앞에서 눈부신 햇빛을 받으며 잠시 서 있었다. 그러자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라는 그 짧은 질문이 그녀에게는 갑자기 거대한 망각 덩어리를, 다시 말해 그녀가 잊고 있던 모든 것,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던 모든 질문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여겨졌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자기 자신 이외의 것, 자기 생활 너머의 것을 좋아할 여유를 그녀는 여전히 갖고 있기는 할까?' 실패한 결혼생활과 긴장감 없는 사랑의 대상인 로제와의 사랑에 너무도 자신을 꼭 맞게 들여 놓고 자신의 여유를 잊고 살았던 그녀, 지금까지 자신을 찾기 보다는 남에게 길들여지며 살왔던 그녀가 시몽을 만난 이후 새로운 것을 찾으려 한다.
시몽, 그 새로운 사랑이 자신의 나이 서른 아홉과 잘 맞기는 하는 것일까? 로제가 아닌 시몽과 연애를 하면서 남들의 시선에 자신감을 잃는 그녀,그녀에게 시몽은 너무 젊다. 하지만 폴에게 빠져 일도 팽개치고 술로 소일하는 시몽, 그런 사랑을 원했던 것은 아니다. 시몽과 함께 하면서 늘 로제와의 사랑과 비교를 하는 그녀에겐 아직 로제를 잃지 못하고 한 곳에 가두어 두고 있다. 로제 또한 다른 여자를 만나 짧은 사랑을 나누지만 늘 마음속에는 잊혀지지 않는 존재 폴이 있다. 그녀의 곁에서 그녀의 집 근처에서 배회해 보지만 그는 늘 하던 대로 서성이다 만다. 폴의 외로움을 함께 나누고 책임져줄 무언가가 부족하다. 하지만 그도 자신에게는 폴이 가장 이상적인 사랑이라는 것을 그녀에게 시몽이 나타난 이후로 그가 다른 사랑을 나눈 후로 더욱 절실하게 알아간다. 그렇다면 다시 그녀에게 돌아가야 할까. 그가 젊은 시몽에게서 다시 폴을 찾아 올 수 있을까.
사랑도 인생도 자신이 원하던 대로 잘 짜여진 계획표대로 움직여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연상인 클라라 슈만을 좋아했던 브람스가 그 사랑을 이루었다면 만약에 폴과 시몽의 사랑도 이루어졌을까. 폴을 시몽에게 빼앗긴 후 로제가 느꼈던 '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사는 맛을 읽어버린 것이다.' 늘상 자신이 맛보던 일상적인 맛을 잃어버린 로제처럼 옆에 있을때는 폴의 의미와 가치가 보이지 않다가 남의 마음에 담겨지고 나니 그 의미와 가치가 비로소 진정으로 빛나는 것을 우린 삶에서 한두번은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가 아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의 여운처럼 내가 정말 브람스를 좋아했던가, 모든 것을 잊고 자신도 모르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도 있을 것이다. 예전에 자신이 꾸던 꿈이 무엇이었는지 자신이 원하던 삶이 무엇이었는지 잊고 살다가 갑자기 만난 질문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에서 만난 자신의 뒷모습, 자신이 지금 어떤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를 원하고 있기나 한가 로제와의 미래는? 로제라는 남자의 울타리에 갇혀 자신의 아름다움마져 잊고 철저한 고독과 외로움 속에서 살아야 했던 그녀 폴이 시몽이라는 젊은 남자를 만나 로제와의 사랑을 다시 되새겨 보면서 자신의 인생 또한 새롭게 바라보는 마음의 눈을 가지게 되는 소설은 달콤한 사랑 속에서도 때론 냉철함을 가져야 함을 이야기 하듯 사랑에 대한 완숙함을 보여준다.
'나도 느끼고 있었어.당신이 더 이상 나를 참을 수 없어 한다는 걸 말이야. 사랑에서 무관심으로의 이행이 너무 빠르군, 안그래?' 라는 로제의 말처럼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 이다. 이별이 아니라. 로제는 폴을 사랑하지만 늘 무관심 속에 두었다. 그런 자신이 폴에게서 무관심의 대상이 되었을 때 자신의 현실을 비로소 들여다 볼 수 있었던 것이다. 폴의 무관심 속에서 늘 고독하고 외로움에 몸서리 쳐야 했던 폴에 비해 그는 늘 폴이 아닌 다른 여자와 밤을 보내며 고독에서 헤어나 있었다.그런 그가 폴의 외로움을 알기엔 너무도 겨리가 있었던 것이다. 모든 것으로 부터 혼자 남겨졌을때 마주한 '무관심' 속에서 진짜 사랑을 찾게 된 로제, 그의 뒤늦은 후회로 폴을 시몽으로 부터 다시 찾게 되지만 그의 판이 박힌 생활과 습관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로제는 저녁 8시 울린 전화벨 소리에서 그녀는 그 습관을 읽게 된다. '수화기를 들기 전에 그녀는 로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있었다. '미안해 일 때문에 저녁 식사를 해야 해. 좀 늦을 것 같은데..' 일탈을 꿈 꾸었던 사랑이 다시금 습관적이 사랑을 찾아가지만 그들의 사랑엔 변한 것이 없다. 시몽의 사랑을 맛보았던 그녀의 사랑은 앞으로 어떻게 변할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가 아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가 되어 자신의 일방통행적이었던 사랑 때문에 잊었던 혹은 잃어버렸던 그 무언가를 찾아 나서게 될까. 사랑을 믿기 보다는 열정을 택했던 그녀처럼 작품 속에서 또한 열정적으로 시작한 사랑도 언젠가는 변한다는 그 사랑에 길들여질 수도 있다는 사랑의 덧없음이 잘 나타나 있다. <슬픔이여, 안녕> 과 이 작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읽고 나니 그녀 '프랑수와즈 사강' 을 더 읽고 싶어졌다. 프랑스 문학의 '천재적인 작은 악마' 였던 사강,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라는 말처럼 약물복용,도박등으로 자신을 철저히 파괴하려 했지만 그녀의 천재성은 작품 속에서 더욱 빛나는 듯 하다. 또 다른 작품에서 '사강' 그녀를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