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편지 - 신의 정원 한라산에서 살아가는 작은 생명들의 이야기!
오희삼 지음 / 터치아트 / 2009년 11월
절판


줄탁동시, 내가 요즘 큰딸과 나와의 교감이 줄탁이 아닐까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 책의 첫 글에 그 말이 나오니 더욱 맘에 들었다. ' 불가의 화두에 줄탁동시 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미 닭이 알을 품고 있을 때, 때가 되면 알 속의 병아리가 세상 밖으로 나오려고 껍집을 쪼아댑니다. '줄' 소리지요. 이 소리를 들은 어미는 병아리가 쪼아대는 속껍질 바깥쪽을 동시에 쪼아줍니다. 바로 '탁啄' 입니다.줄과 탁이 엇갈리면 병아리는 세상에 나올 수가 없는 법이지요. '줄' 소리를 어미 닭이 듣지 못하면 병아리는 알 속에서 혼자 끙끙대다 지치겠고 '줄' 도 없는데 어미 닭이 강제로 '탁' 을 하면, 아직 여물지 않은 병아리가 성할 리 없겠지요. 줄과 탁의 교감이 없고서는 생명의 싹을 틔울 수 없는 법이지요.' 얼마나 멋진 말인가.서로 교감이 맞아야만 생명 또한 싹을 틔우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어찌하다보니 아직 제주에 가보지 않았다. 제주여행을 몇 번 갔던 남편 때문에 그곳을 처음에 포기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고 내년이나 그 후에 큰딸의 대입이 끝나면 올레길을 함께 걸어보자고 계획을 하고 있다. 그런 것이 지난번 1박2일을 보면서 차를 가지고 배편으로 가는 방법이 있어 그 또한 운치가 있을 듯 하여 그렇게 한번 제주에 발을 내려 보자고 계획하고 있다.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는 꿈이지만 그런 꿈을 가지고 있어 제주는 더욱 가깝게 다가오는 곳이기도 하고 제주올레 이사장인 서명숙작가의 <꼬닥꼬닥 걸어가는 이 길처럼>과 김영갑의 <그 섬에 내가 있었네> 그리고 고혜경의 <태초에 할망이 있었다>를 읽고나니 더욱 가고 싶은 곳이 다름아닌 '제주' 가 되었다. 올레길로 인하여 해외로 가던 관광객을 우리나라 그것도 너무도 아름다운 제주로 발길을 돌려 놓은 '올레길' 걷기여행은 그렇게 하여 전국적인 붐이 되고 여기저기에서 둘레길과 걷기 좋은 산책길을 내놓고 있으니 그 첫번째 올레길을 빨리 걸어봐야 할 듯 하다.

김영갑의 <그 섬에 내가 있었네> 라는 책을 읽으면서 무척 많이 울었던 기억이 있다. 리뷰는 쓰지 않았지만 제주사람도 아닌 충청도인인 그가 제주의 바람과 억새 오름에 반하여 그곳에서 루게릭병과 싸우며 이룩해 놓은 그만의 세계가 너무도 멋있어 남몰래 눈물을 줄줄 흘리며 읽었던 사진가 김영갑의 '두모악'은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꼭 가고 싶은 곳이다. 그처럼 진짜 제주의 바람을 잡아 뷰파인더안에서 이상향인 '이어도' 를 잡아 낸 사람이 있을까. 그렇다면 넘쳐나는 제주에 관한 책들 중에 어느 것이 가장 제주적인 것일까 하는 생각도 가져보게 할 정도로 넘쳐나는 제주와 제주올레길에 관한 책들 속에서 유독 눈에 들어 온 <한라산 편지> 는 그의 독특한 이력 때문일까 더욱 끌렸다. 제주의 토평에서 태어나고 항공대 산악부에 가입하여 암벽과 빙벽등반을 배운 그가 산악전문월간지에서 근무를 하다가 고향에 내려가 결국에는 한라산국립공원에 입사를 하여 15년동안 한라산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만난 비경을 글과 사진으로 풀어 내놓으니 오죽 한라산이 오롯이 담겨 있을까.

치마폭에 감추어졌던 여인네의 속살을 살짝 들여다 보듯이 그가 보여주는 사진들은 정말 아름다우면서도 우리나라 같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게 만든다. 그와 함께 곁들여진 글들 또한 한라산 자연과 오랜시간 함께 하여서일까 맑고 아름다운 자연이 그대로 잘 드러나 있으며 한라산의 모든 자연이 담겨 있는듯 하여 빨리 그곳으로 가고 싶은 생각을 가지게 만든다. 제주와 한라산 여행을 가지전에 한번 읽고 간다면 정말 좋을 책으로 보물과 같은 책이 숨겨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가 보여주는 한라산의 봄,여름,가을, 겨울은 정말 비경이면서 한라산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담아 내어 한라산의 사계를 눈 앞에서 그냥 보고 있는 사실적인 느낌을 준다. 고 김영갑 작가가 제주의 이상향인 이어도를 카메라에 담았다면 그는 순수한 자연을 담아 놓았다. 숨겨져 있던 한라산의 속살을 한 겹 한 겹 풀어내면서 보여주는 아름다움은 눈길을 멈추게 하면서 순간 날숨을 멈추게 한다.

'봄의 여울목에서 휑한 숲 속에 잎도 없이 피어나는 생강나무의 샛노란 꽃망울을 보신 적 있으신지요. 기다란 줄기 끝에 자주빛으로 터질듯 부풀어 오른 층층나무 겨울눈을 바라본 적 있으신지요. 익어가는 봄의 산길을 걸어갈 때 잠시 눈여겨볼 일입니다. 무심한 듯 서 있는 나목 깊은 곳에도 수직의 혈관을 역류하는 뜨거운 체온이 있다는 것을, 한 번쯤은 다가가 귀를 대고 가만히 만져볼 일입니다. 계절을 흘러가는 한 그루 나무의 애면글면한 삶의 얼굴이 한 사람의 생애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알겠습니다.' 숲에 가면 나는 한번씩 나무의 겉껍질을 스다듬어 본다. 소나무 같은 경우 비늘처럼 한 겹 한 겹 떨어져 내리는 세월의 깊이를 쓰다듬다 보면 그 세월은 고스란히 내게로 오는 듯 하여 너무도 좋다. 굴참나무의 그 깊은 표피의 굴곡은 참나무의 무심한듯 한 질곡이 세월이 계곡을 이룬 듯 하여 얼굴을 가만히 대보기도 한다. 그런 나무에게도 '뜨거운 체온' 이 있다는 말이 공감간다. 봄을 알려주는 복수초가 눈 속에서 피어 오르면 꽃 둘레에는 눈이 녹아 있고 나무의 둘레에서 부터 눈이 녹기 시작이다. 그런것을 보면 무심한듯 한 식물이나 나무에게도 알게 모르게 저마다의 온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들만의 감정 또한 있다는 것처럼 느껴져 숲에 가면 더욱 자연에 귀 기울이고 맘을 열어 그들을 보아야 할 듯 하다.

그가 전해주는 꽃 이야기며 식물 이야기 그리고 봄에 가장 사람들의 손을 많이 타는 '두릅' 에 대한 이야기는 가슴을 아리게 한다. 나 또한 두릅나물이 좋다며 금방 새순이 나와 세상 구경을 하고 있는 것을 톡 꺾었던 기억이 있다. 건강을 위해 무심하게 생명을 꺾었던 그 미안함을 책을 읽으며 살짝 놓아본다. 그런가 하면 제주의 거친 바람속에서만 자라는 '피뿌리풀' 의 그 오묘한 꽃이 사람들의 무책임함 속에 멸종위기에 처했다는 것이 정말 서글프다. 그런데 사람들에 의해 멸종위기에 처한 생명이 어찌 피뿌리풀 뿐이겠는가. 그곳에 있어야 비로소 빛을 보는 것들을 사람들의 욕심에 집이나 그외 다른 곳으로 가져가기 위하여 채취를 하여 그 생명이 있어야 할 자리를 빼았는 무책임한 행동은 이젠 더이상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가 하면 후손에게 남겨 주어야 할 자연의 보고와 같은 곳에 골프장이나 현대식 건축물이 들어선다는 것은 한번 더 깊게 생각을 해 보아야 할 것이다. 어느 프로에선가 곶자왈이 개발되는 것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정말 대단한 곳인 그곳을 몇 몇의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자연을 무시하고 개발하는 것은 후손에게 얼굴을 들 수 없는 일이다. 지켜야 할 것과 보존해야 할 곳은 정말 지금 그대로의 모습 그대로 지켜주었으면 싶다. 어쩌면 다음 대에는 책의 글이나 사진에서나 만나거나 그렇게 되는 일이 없도록 지금이라도 좀더 지켜주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책을 봤다.

내 눈길을 잡아 더이상 페이지를 넘길 수 없게 만든 꽃 '돌매화' 는 정말 눈을 의심하여 옆에 있는 남편에게 보여주었다. 다 자라도 2cm밖에 되지 않는 나무, 암매는 잎 또한 꽃처럼 겨울엔 붉은 빛으로 있다가 봄이 되면 초록으로 변하고 그곳에서 별이 빛나듯 다섯장의 하얀 꽃잎이 피어난다니 얼마나 아름다운지. 제주의 거센 바람도 이겨내고 바위의 거침도 이겨내는 것엔 키가 필요하지 않다. 바위에 달라붙듯 하여 자신의 모두를 들어내는 '돌매화' 야 말로 제주의 숨겨진 아름다움이 아닐까. 이런 자연이 지켜지고 보존되어야 대대로 제주의 한라산을 찾게 되고 관광자원이 될터인데. 그가 전해주는 아름다운 꽃 중에 기생 꽃이라 할 수 있는 억새풀에 달라 붙어 광합성을 하여 억새보다 먼저 꽃을 피우는 15cm의 연보랏빛 '야고' 는 처음 보기도 하지만 꽃도 이쁘다. 그런 꽃이 있었나 하고 고개를 갸웃뚱하게 만드는 이런 생소함이 숨겨져 있어 한라산은 그야말로 야생화의 천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 너무도 여리어 손길만 닿아도 사르르 녹아버릴 것만 같은, 억새의 보살핌이 없으면 차마 꽃 한 송이 피우지도 못할 들판의 고독한 나그네 야고野孤, 어쩌면 야고는 제주 들판이 품고 있는 외로운 유추프라카치아가 아닐는지요. 순결한 억새 들판 한 귀퉁이에서 있는 듯 없는 듯 태어났다가 홀연히 사라져가는 고독한 들판의 나그네는 아닐는지요. 가으르이 제주 들판에 선 그대, 억새수풀 사각대는 저물녁의 오름을 떠도는 나그네여, 오늘 그대의 유추프라카치아는 누구입니까. 당신이 풀어야할 야고는 누구입니까. 혹은 그대는 구누의 야고입니까.' 억새의 밑둥을 헤쳐보지 않는다면 만나지 못할 야고, 그런 꽃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의문인데 꽃마져 아름다우니 어찌할꼬.

돌매화와 야고에 이어 또 한가지 귀한 것을 얻었다. 조릿대가 60년 만에 꽃을 피운다는 것이다. 대나무가 60년만에 꽃을 피운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조릿대가 벼과의 식물로 꽃을 피운후에 말라 죽는다는 이야기를 읽으니 산행을 하며 많이 만났던 조릿대를 다시 보게 된다. 조릿대가 제주의 자연을 망치는 것이 아니라 조릿대가 있어 산림도 보호하고 많은 동물들이 그에 의지를 하며 보금자리를 틀며 그 또한 자연의 일부라는 것. 그런가하면 어려운 시절 식량처럼 먹거리를 제공하기도 했다는 이야기에 산에서는 한가지 그냥 보아 넘기지 말아야 함을 느낀다.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그 몫을 다하지 않는 것이 없는 듯 하다. 그야말로 제주의 한라산에 자생을 하기에 더욱 빛을 보기는 것들, 그리고 그곳에 있기에 더욱 아름답고 보존되어야 하고 지켜 나가야 할 것들을 선명한 사진과 함께 하는 감동은 정말 크다. 한라산의 사계가 담긴 화보집을 보는 듯 하기도 하고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하기도 하다. 진분홍빛 꽃과 함께 하는 노루의 사진이 인상적이다. 제주의 노루, 한때는 말성이 되기도 하지만 그곳에 있어야 더욱 노루다운 녀석이 귀를 쫑긋 세우고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있는 사진은 오래도록 남을 듯 하다. 이 책을 모두 읽고나니 김영갑의 <그 섬에 내가 있었네>를 다시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 담겨져 있던 자연이 그의 사진속에서 거센 바람과 만나 어떻게 변했는지 다시 보고 싶어졌다. 이 책은 한라산의 사계가 보고 싶거나 제주 여행을 가기 전에 그리고 아름다운 우리나라의 자연을 보고 싶을 때 보면 정말 좋을 책이다. 숨김없이 드러난 자연의 아름다움이 거짓없이 그의 뷰파인더 속에서 속살을 살짝 들어내고 무지개를 띄운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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