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 Just Stories
박칼린 지음 / 달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KBS예능 프로인 <남자의 자격> 을 보기전엔 박칼린, 그녀는 낯선 이름이었다. 하지만 남자의 자격중 '하모니' 편을 보면서 그녀의 이름은 너무도 친근하면서 잘 알려진 뮤지컬들의 '음악감독' 이었슴이 '아하~'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음악이 정말 좋았다는 그 이름만 들어도 귀에 쟁쟁쟁 뮤지컬들이 그녀의 작품이라니 정말 대단하다는 소리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름에서도 알려주듯 그녀가 다문화가정의 어딘지 모르게 치즈와 된장이 섞여 있을것만 같은데 '전라도 촌년' 이란 별명까지 있다니 정말 웃기면서 감동을 물씬 물씬, 서해바다의 바닷물이 밀려오듯 풍겨 주었다.

'남자의 자격' 에서 그녀는 누구보다도 '한 카리스마' 를 했다. 웃을 땐 천진한 아이같으면서도 다그칠 땐 누구보다 매서운 눈빛이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그녀 '마녀' 라는 별명에 어울리게 정말 한 칼을 품은듯 오합지졸과 같은 이들을 단번에 자신이 군단으로 만들어가며 그들에게서 '하모니' 는 이끌어냈다. 영화 <하모니>에서도 보면 그녀들이 처음에 음악을 전공한 이들도 아니고 평범한 이들도 아닌 여죄수들이었다.그녀들에게서 그런 놀라운 '목소리' 가 나올줄은 누구도 예상을 못하였듯 '남자의 자격' 에서 또한 그들이 뭉쳐 그런 큰 감동의 물결을 온 나라에 뿌릴 줄 누가 알았을까. 대본도 없이 시작한 프로라는데 그 모든  지휘를 누구도 아닌 '그녀, 박칼린' 이 해냈다는 것이다. 그들처럼 나 또한 눈물을 머금기도 하고 그것을 보기 위하여 다른 일을 얼른 마무리 하기도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무엇보다 그들이 두달동안 흘려 준 땀방울만큼의 노력이라는 것이다. 노력해서 안되는 것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그녀와 삼십여명이 함께 해 낸 그 놀라운 하모니는 그야말로 그녀 자신을 잘 드러내는 한편의 감동의 뮤지컬이 아니었나 싶다.

교육은 밥상에서 이루어지다.
그녀가 다문화가정에서 태어나 방황하지 않고 내면에 충실하며 넓은 세상을 흡수 할 수 있었던 것은 누구보다도 '엄마' 의 힘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밥상에서 모든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았나싶다. 베개밑교육도 중요하지만 밥상머리 교육도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ESL영어 선생님 이셨던 그녀의 어머니는 세계의 여러 나라 사람들을 홈스테이를 하면서 그들과 자유롭게 어울리면서 그나라의 문화와 역사등 폭 넓은 세계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한국과 미국생활을 한 그녀기에 어머니가 차려주신 세계여러문화가 함께 어우러진 원탁의 밥상은 그야말로 그녀에게 고스란히 흡수되어 오늘날에 더욱 빛을 발하고 있지 않아싶다. 편식이 아닌 골고루 모든 것을 섭취하고 보양할 수 있는 기회를 그야말로 다른곳이 아닌 집안에 이루어지게 한 어머니의 교육방식은 대단하다. 그런 그녀였기에 지금 또한 그녀의 군단을 무리없이 기회균등하게 잘 이끌고 있는 듯도 하다.

인생은 여행이다.
그녀의 자유여행 '구름투어' 정말 맘에 든다. 청소년기부터 기차를 타고 무작정 종착역까지 가며 보아둔 산을 산행후에 다시 기차를 타고 돌아오는 여행을 해 보았던 그녀는 하나의 막을 내리듯 한가지 일을 마치고 나면 자신 안을 깨끗하게 비우듯 '자유여행' 인 '구름투어' 를 떠난다고 한다. 몇 시간을 달려도 배추밭이 나오는 미국이 아닌 지나는 매순간마다 다 다른, 바다와 산 그 모두를 볼 수 있는 아기자기한 우리나라이기에 멋진 여행은 가능하리라. 그녀와 동행인 삽살개들도 정말 복이 터졌다. 그녀와 함께 주인장 몰래 방에서 함께 자는 행운도 누릴 수 있고. 하지만 무엇보다 정한 곳에서 자유를 맘껏 누린다는 것이다. 먹고 쉬고 비우고... ' 아무튼, 만 원짜리 밥 먹고 안 먹을 감자칩 몇 봉 더 샀다고 사치고 럭셔리인, 한국이기에 가능한 구름투어다. 그래도 끝까지 럭셔리다. 떠나는 거 자체가 럭셔리인 거다. 그리고 부러우면 지는 거다. 그러니 모두들 떠나시라.' 그녀의 말처럼 부러우면 지는 거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하여 부러워하지만 말고 나도 남처럼 떠날 수 있는 용기가 한때는 필요하다.무조건적으로 일에 매달린다고 그게 능사는 아니다. 한때 자신안을 비우고나면 더 많은 것을 담을 수 있음은 그녀는 지금까지 잘 실천하고 있기에 일과 쉼이 그녀안에서 리듬을 타기에 그녀가 언제나 열정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말: 아무리 작은 여행일지라도 그 소에서 엄청난 것을 배우고, 느끼고, 자랄 수 있다.'

100번 노력해 보았는가.
김연아 선수가 우리에게 멋진 한번의 성공을 보여주기 위하여 천 번 만 번 실패를 한다고 한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번의 성공 뒤에는 천만번의 아픔이 있기에 한번이 성공이 더 빛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가 이룩해내는 한편의 뮤지컬을 위해 그녀는 각기 다른 배우를 어떻게 연습시킬까. 아니 자신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녀는 말한다. ' 딱, 100번만 해봐. 한 번, 한 번을 진지하게 말이야. 주변 사람 시선 의식하지 말고 너만 깊숙이 들여다보며 거울 앞에서 진지하게 해보란 말이야. 그렇게 100번만 해봐. 100번 해서 안 되면, 1000번을 진지하게 해보란 말야.' 한 번 하고 아니 열 번 하고 '안돼' 포기하는 것보다 100번을 해 보고 안된다고 말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사람이 얼마나 그 일에 노력을 기울였냐가 실패와 성공을 가늠해준다. 노래와 춤만 그럴까, 아니다 인생에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성공을 거두러면 백 번 아니 천 번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말에 절대공감이다. 요즘 내가 딸들에게도 늘 말하고 있는 말이다. 수학이 어렵다고 몇 번 풀다가 '엄마가 점수가 오르지 않아. 힘들어. 난 안돼.' 힘든 시기인줄 아는데 그렇게 말하기 쉽다. 그렇다면 난 '지금을 보지 말고 먼 미래를 보라고 말해준다. 지금은 노력하고 있는 것이 보이지 않지만 먼 미래에는 눈뭉치가 눈사태가 될 수도 있다.' 말하면서 늘 노력을 기울이라 말한다.그런 노력없이 성공을 거두려 한다는 것은 자신이 땀이 없는 성공을 얻으려는 뜬구름을 잡는 일과 같다. 그렇게 해서 그녀가 자신의 군단으로 이 끈 노력형 인물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자신안에 있는 능력은 자신도 모른다. 얼마를 퍼 내고 살지도 모르고 잘 가꾸면 얼마의 능력이 무긍무진 나올지 모르기에 '노력' 이란 말에 절대공감이다.

끼를 알아봐 주는 스승이 필요하다.
자신안에 아무리 많은 능력이 담겨 있다고 해도 자신은 잘 보지 못한다. 자신이 가진 '끼나 능력' 을 정말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능력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능력을 알아봐주는 스승도 필요하다. 인생은 혼자가 아닌 '조력자' 가 있다면 더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다. 그녀의 다분한 끼를 스승들이 일찍이 알아봐 주었기에 능력이 더욱 커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스승들에 의해 자신의 능력을 키웠다면 지금 그녀는 자신이 스승이 되어 또 다른 제자들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날카롭게 번득이는 그녀의 눈빛에 내면에 무한한 능력을 가진 아마츄어 들이 쏙 쏙 뽑혀 나와 진흙 속에서 '진주' 를 찾아 내는 그녀, 그리고 그 진주를 빛나게 닦고 또 닦아 주는 그녀야말로 진정한 스승이다. 그런 그들이 그녀의 군단이 되어 하나의 잘 굴러가는 동그라미가 되니 그녀의 일이 더욱 빛날 수 밖에 없다. 

인생은 열정적인 한 편의 뮤지컬이다
그녀가 하는 일에 열정이 없는 일은 없는 듯 하다. 사람을 만나는 일에도 여행을 다니는 것에도 무엇을 하든 자신안에 감추어진 열정을 다하여 자신을 분출하기에 그녀는 어디에 있든 빛이 난다. 외면이 아닌 내면이 꽉 차있기에 더욱 빛이나는 그녀는 그녀의 인생을 한 편의 뮤지컬을 만들듯 어느 작품에서나 최선을 다하여 최고를 만들어 내는 듯 하다. 짧은 뮤지컬역사 속에서 그녀가 이룩해 낸 빛나는 업적은 정말 대단한 듯 하다. 우리의 작품인 <명성황후> 가 쏟아냈던 그 많은 이슈들, 그 속에 그녀가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열정이 숨겨져 있기에 우리나라 뿐만이 아니라 미국에서도 빛이 났던 작품인듯 하다. 그녀의 모든 이야기들을 읽으며 그녀 인생 자체가 뮤지컬이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다문화 가정에서 태어난 것도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교육을 받은 것등 어려서부터 세계인들과 어울려 평등을 배우고 폭넓은 교육을 받고 첼로 뿐만이 아니라 외국인 외모에 국악과를 나왔으니 그녀 인생 자체가 모든 것이 어우러진 뮤지컬화 되어 가고 있었던듯 싶다. '세상에... 운명에게 그냥이란 없다. 곧 죽는다 하여도 그냥으로는 살지 말지어다.' 라는 말처럼 어느 면에서나 어느 곳에서나 '열정' 을 모두 쏟았기에 오늘날의 그녀가 있고 그녀가 탄생시킨 뮤지컬들이 더 빛이 나지 않는가 한다.

한사람의 인생을 모두 들여다 보기엔 책 한 권으로는 부족하다. 하지만 그녀가 토해낸 어머니 고향인 리투아니아에 대한 이야기며 여행이야기, 음악이야기, 가족이야기, 스승에 대한 이야기, 제자 이야기, 파티 이야기, 병수집 이야기 등 너무도 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박칼린' 그녀는 감동이었다는 것이다. 웃음과 감동을 준 '운동화 한 짝 파실래요?' 라는 이야기는 웃으면서도 기발하면서도 감동을 주었다. 그녀의 인생2막은 어쩌면 지금부터 시작일지 모른다. 음악감독으로 살았다면 이젠 표면으로 떠 올라 많은 이들 속에서 주목 받으면서 그녀가 보여주고 감추어 두었던 또 다른 열정이 어느 곳에서 빛을 발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남자의 자격 이후에 방송광고에서 그녀를 만나게 되어 더욱 친근감이 드는 그녀, 그녀가 보여준 것은 거짓이 아닌 진실이며 열정이었다. 그리고 누구도 흔들 수 있는 감동이었다. 그녀가 다문화가정의 아이라고 주저 앉았다면 늘 노력하지 않고 성공만을 바라보았다면 지금의 그녀는 없을 것이다. 늘 노력하고 내면을 채우듯 이루고 나면 비울줄도 아는 그녀를 보며 '인생은 이렇게 사는 거야' 라는 것을 배운것 같다. 제목처럼 '그냥' 아닌 그녀는 그냥살지 말고 노력하며 살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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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층의 악당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내겐 귀여운 이층의 악당과 팔색조 집주인 김혜수의 이층의 악당 



 

감독/ 손재곤
출연/ 한석규(창인), 김혜수(연주), 지우, 동호, 이장우(오순경),윗집아줌마(이용녀),하대표(엄기준)...

내겐 귀여운 이층의 악당 한석규, 그리고 팔색조 집주인 김혜수가 펼치는 좌충우돌 달콤 살벌한 동거기.

이 영화를 놓쳤다면 후회했을 뻔했다. 영화를 개봉후에 보려 하다가 집안에 일이 있어 미루다 겨우 막차를 타듯 보러 갔더니만 우리 부부 외에 한커플, 그나마 그들은 앞자리로 자리를 옮기고 우린 맨 뒷자리에 앉아 보았으니 극장을 통째로 전세낸듯 편하게 보게 되었다. 저녁 시간 맘껏 웃고 영화와 하나가 된 듯 편하게 보기도 했지만 둘만의 좌충우돌 동거이야기가 너무도 웃기면서 둘의 애드립이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앳지녀라 할 수 있던 그녀가 중학생 딸을 둔 엄마로 나온 역할이 이젠 그녀에게도 어색하지 않음이 그녀도 세월을 빗겨가지 않는구나 생각하며 모티비의 드라마에서도 그녀가 아들을 둔 엄마로 나온다는 것이 이제 그녀가 싱글보다는 가정주부로도 손색이 없게 잘 어울린다는 것이 어쩌면 더 편안함을 주었는지 모른다. 그러면서 그럴것 같지 않으면서 능청스럽게 '우울증환자' 역을 너무도 잘 소화해 냈기도 하지만 남편을 잃은 과부가 이층에 싱글 남자를 두면서 가질 수 있는 충분한 사건과 사고가 웃음을 주게 만들었다.

영화는 연주의 남편이 창인에게 건네주려던 '청화용문찻잔' 을 집 어딘가에 감추어 두고 그를 속였다는 것이다. 둘이 찻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창인은 갑자기 닥친 경찰에 끌려가고 잘 피했다고 창문 밖으로 나온 연주남편은 그만 낡은 실외기를 밟고 서 있다가 떨어져 죽고 만다.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하여 자신의 젊음도 펴보지 못한 연주는 이층단독주택에서 자신의 외모에 강한 컴플렉스를 가진 사춘기 딸과 함께 살고 있지만 그들의 사이는 물과 불처럼 만나면 늘 불꽃이 인다.그런 사이에 창인은 연주 남편이 집안 어딘가에 숨겨 놓은 20억이 나가는 '청화용문찻잔' 찾으러 소설가라 자신을 숨기고 이층에 단기세입자가 된다. 남편이 죽으면서 연주에게 남기고 간 것은 사춘기 딸과 대출이 아직도 많이 남은 단독주택과 그리고 엔틱가게 하나 뿐이다. 그녀는 우울증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술에 의존하기도 하고 약에 의존하기도 한다. 이층에 세를 준것도 돈이 급했기 때문이다. 창인은 찻잔을 찾는 일이 금방 마무리 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일은 이상하게 꼬이기 시작한다.

그들의 집 뒤의 빌라 윗층엔 이상한 아줌마가 살고 있다. 늘 베란다에서 그들의 집을 훔쳐본다. 세입자가 된 창인은 늘 연주가 살고 있는 아래층을 염탐하는데  그 이상한 아줌마는 그들을 염탐하는 것이 일상이다. 이 영화는 어쩌면 서로를 멀리서 지켜보듯 하기도 한다. 연주를 어리버리 연하인 오순경이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기도 하지만 윗층의 아줌마는 연주네를 상아는 잘생긴 현철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모두 '꿈' 이 있다. 연주는 돈벼락과 같은 돈을 갈망하고 하대표는 찻잔에 목을 메고 창인 또한 20억의 찾잔을 찾으려 하는 것은 '돈' 때문이다. 오순경은 연주씨와 어떻게 이루지길 바라고 윗층의 이상한 아줌마는 '할머니' 가 아닌 젊음이 영원하길 바라듯 '아줌마' 이길 바라며 상아는 자신의 외모를 고칠 수 있는 성형수술에 대한 비용이 있기를 바란다. 어쩌면 현대인들은 자신들이 바라는 '이루어질 수 있거나 혹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 에 대한 환상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망치기도 한다는 그런 이야기 일 수도 있다. 재벌2세인 하대표는 아버지의 돈에 손을 대었다가 덜미가 잡히듯 하게 생겨서 눈가림 할 수 있는 '청화용문찻잔' 이 필요하다. 청화용문찻잔이라고 하니 용이 들어갔으니 역사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렇다면 '임금' 이 사용한 찻잔이라는 말이 된다. 그래서 그렇게 어마어마한 액수가 나온지도 모른다. 그 찻잔이 나타나기만 하면 벌써 몇 명의 '꿈' 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결코 찻잔은 쉽게 그들의 눈에 나타나지 않는다. 우울증이 심한 연주는 정신과의사를 찾아가지만 그의 눈빛조차 맘에 들지 않아 속사포로 그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쏟아낸다. 남자의사였던 그는 여자의사의 전화번호를 건네준다. 그런 그녀의 우울증은 이층의 남자와 육체적 교감을 나누게 되고 그러므로 일층에 자주 나타나는 창인이 맘에 안드는 성아는 학교에서 왕따로 수업을 거부하고 집에 온다. 그런 성아를 학교로 돌려보내기 위한 창인의 절규, 그에겐 일터인 일층이 비어 있어야만 연주도 출근을 해야만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되는것. 하지만 그녀들은 그의 속도 모르고 그런 그를 속타고 애타게 만든다. 급기야 죽으려는 맘까지 가지게 되는 성아를 살려내지만 강간범으로 오해나 받는 창인은 급기야 이 집의 비밀에 대하여 그녀들에게 털어 놓는다. 하지만 그녀들은 그런 찻잔이 있는 줄도 모른다. 그럼 어디에 숨겨 놓았단 말이야.....

하대표의 눈을 돌리기 위해 술수를 쓰는 창인, 하지만 연주는 그를 따돌려야만 혼자서 찻잔을 독식할 수 있다. 그가 길을 가다 우연히 검문에 잡힌 것처럼 그를 경찰에 넘긴다.그리고 이제부터 모녀는 집을 쑥대밭을 만들면서 찻잔을 찾기 시작한다. 성아는 그 찻잔만 찾는다면 성형으로 얼굴을 수정할 수 있고 연주는 지긋지긋한 단독이 아닌 멋진 아파트로 이사를 갈 수 있다. 영차 영차..여기저기 집을 부수며 찾잔을 찾는 그녀들 '청화용문찻잔'을 찾을 수 있을까. 어찌되었든 영화는 해피엔딩이다. 무엇이 잘되고 잘못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연주는 우울증이 치료가 되고 성아는 이쁜 얼굴로 거듭날 수 있기 보다는 이제는 자신의 외모를 받아 들일 수 있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창인은... 그는 그녀들이 새로 이사한 멋진 아파트에 들어오지만 그녀가 걸렸던 불면증, 찻잔을 가지지 못한 것에서 오는 불면증이 그에게 덮친 것이다. 하지만 이젠 그남자를 거뜬히 요리할 수 있는 연주가 되어 있다. 예전이 이층집주인이 아닌 멋진 여성으로 거듭나 있는 것이다.

영화에서 눈여겨 볼 만한 것은 역시나 한석규와 김혜수의 연기다. 그 둘의 감칠맛 나는 연기에 웃음폭발이다. 영화는 밀실트릭이기 때문에 더 탄탄하다. 추리소설이나 그외 밀실소설들을 보면 범위가 넓은 것보다는 더 탄탄한데 이 영화 또한 그렇다. 밀실에서 벌어지는 그들의 달콤 살벌한 연애아닌 연애도 그렇고 찻잔을 놓고 벌이는 추격전이나 뭔가 크진 않지만 꽉 찬 듯한 느낌을 준다. 달콤하게 제비처럼 집주인을 녹이려는 창인의 꾀에 넘어가는 듯 하다가 안 넘어가는 살벌한 우울증을 앓는 집주인 연주는 이층 계단을 통하여 둘의 사이가 연결 되는 듯 하다가 남편이 남겨준 유품이나 마찬가지인 물건들이 가득한 '지하실' 에서 부딪히면 그녀에게 기죽고 만다.그래서 꼭 그 곳에서만 갇히고 마는 창인은 불쌍하기 이를데 없다. 창인이 쏟아내는 말들도 재밌지만 연주가 쏟아내는 말들과 연기는 반짝반짝이다. '한국 남자들은 나이 처 먹으면 함부로 조언하고 충고해도 된다는 무슨 자격증 같은게 발급되나봐. 뭘봐 아줌마가 담배 피는것 처음보니..' 하며 거침없이 쏟아내는 그녀의 아줌마끼와 깡은 정말 매력만점이다. 거기에 그녀만이 찻잔을 찾을 수 있고 그녀의 손에 찻잔이 주어져 있다면 그녀를 가만히 놔두겠는가. 어떻게 해서든 구어삶아 놓으면 다시금 원점처럼, '선생인 어제 일은 없었던 것으로 해 주세요.' 정말 엇갈리면서 교묘하게 얽혀들어가는 그들의 말과 연기는 웃음이 나오지 않을 듯 하면서 웃음이 나오게 만든다. 너무 무겁지도 않고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으면서 밀실에서의 재미를 톡톡히 누릴 수 있게 하는 재미 있는 영화이다. 타짜의 장마담도 잘 어울렸지만 어쩌면 이 영화에서의 연주역이 김혜수 그녀에게 더욱 잘 들어맞는 역은 아니었나 싶다. 세월과 함께 그녀를 읽을 수 있고 세월에 편승한 듯한 그녀의 물오른 연기가 좋았던 이층의 악당, 어쩌면 현대 우리네 가정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듯 하기도 하고 '꿈' 을 향해 자신을 버리며 마구 달려드는 현대인들 같기도 하며서 해피엔딩으로 처리한 것을 보면 희망의 끈을 놓치 않으면 언젠가는 '해뜰날' 이 온다는 희망적인 메세지가 담겨 있는 듯 해 기분 좋게 볼 수 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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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 대하여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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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람이 태어나서 한 번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죽음’ 이다. 그 죽음조차 자신의 인생을 정리할 수 있는 유예기간이 주어진다면 행운이겠지만 그런 예고도없이 길을 가다가 혹은 산행을 하다가 천재지변이나 그외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인하여 뜻하지 않게 죽음을 맞이한다면 가는 이도 황당하겠지만 보내는 사람도 황당하다. 남아 있는 자로 죽음에 대한 상처가 치유되기란 정말 오랜시간이 필요하다. 그것이 가까운 사람이었다면 더할 것이다. 올해는 그런 뜻하지 않은 일을 두번이나 겪게 되었다. 올해 초에 작년에 폐암 판정을 받은 아버지를 뵈러 오시다가 작은아버지가 갑자기 교통사고로 운명을 달리 하시게 되었다. 결코 준비되지 않은 죽음앞에서 우린 그저 ’가는 길은 순서가 없단다. 고생않고 가신것을 다행으로 여겨야지.’ 하며 좋게 보내드렸다. 그런데 아직 한 달이 되지 않았는데 폐암으로 그래도 건강하게 사시던 아버지가 갑자기 주무시다 돌아가셨다. 그 또한 모든 일들이 복을 받았다며 좋게 보내드리자고 했다. 아버지 당신은 죽음이 바로 눈앞에 있었으니 당신은 두렵고 무서우셨겠지만 어쩌면 주변인들은 아버지를 정리할 시간적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하여 슬픔을 줄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작은아버지에 비해. 그렇다고 어느 죽음인들 서럽지 않은 죽음이 있으랴. 가고 나면 흔적조차없니 모두가 사라지는데. 지금도 어디선가 날 바라보고 계실것만 같은 아버지가 문득 문득 생각날땐 그저 눈물만 나온다.

요시모토의 소설은 몇 편이 있지만 처음이다. 그녀의 글에 대한 생각없이 읽어서일까, 아님 내가 요즘 겪은 죽음에 대한 생각 때문일까 무척 내 맘에 와 닿았다. 만약에 내 꿈에라도 아버지가 다시 한 번만 나타나 주신다면 그동안 못했던 것들을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다. 무엇이다 딱히 정해진것없이 그저 아버지와의 시간을 좀더 연장하고 싶은 생각이다. 영혼을 좀더 편안하게 해 주어 가볍게 다른 세상에서 살게 하고 싶은 생각도 있다. 여기 그런 소설이 있다. 쌍둥이 자매로 할머니가 마녀라 쌍둥이 딸들 또한 마법학교를 나와서 다른사람과는 다른 세상에서 살았다고 해야 할까 그런 소녀들이 할머니의 잘못으로 인해 정신적 피해를 입고는 있는자들을 위한 병원이나 마찬가지인 곳에 사춘기때 가게 된다. 그곳에서 원장과 사귀었던 동생은 그후 결혼을 하여 외동딸을 낳고 가게를 운영하며 부유한 삶을 산다. 외국산식료품가게를 하였기에 무엇이 좀더 잘 팔릴까 하는 것에도 그녀는 주술을 이용하기도 하여 어린 딸은 그런 엄마가 맘에 들지 않았다. 쌍둥이 언니도 결혼을 하여 외동 아들을 두고 비슷한 가게를 운영하며 살고 있었지만 그녀들은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서로 연을 끊고 살았다시피 한다. 그러다 동생의 외동딸인 유미코가 열살이 겨우 넘은 나이에 사단이 일어나고 만다. 강령회를 하던 중에 유미코의 엄마가 아빠를 찔러 죽인 것이다. 그곳엔 외삼촌 내외와 그녀의 엄마를 만나러온 여자가 있었지만 그녀 또한 목을 찔리고 만다. 그렇게 엄마와 아빠를 잃게 된 유미코는 혼자 떠돌게 된다.’어두컴컴한 현관홀에서 쇼이치가 말했다. 마치 동굴 안에 있는 것 같다고 나는 생각했다. 이 답답함. 이 눅눅함. 집 안은 어느 정도 치워져 있어서 그때 그대로는 아니었지만 황량했다.’

그런 그녀 앞에 이모의 아들인 쇼이치가 나타나 그녀를 데리고 그의 집으로 데리고 간다. 이모가 살아생전 그녀를 거두고 싶어했다는 말에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하다며 그녀는 처음으로 와 보는 이모의 집에서 평온함을 느끼며 쇼이치와 그동안 못다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과거와 재회를 하게 된다. 쇼이치는 그녀를 데리고 과거 그녀가 부모와 한때는 단란하고 부유하게 살았전 집이며 가게등을 그리고 과거의 삶에 관계된 사람들을 만나보러 다닌다. 이모와 함께 엄마가 오래전에 머물렀던 병원에 들러 그곳에서 그녀들의 삶에 대하여 듣고는 평소 그녀가 생각하는 엄마와 이모의 성격이 병원에서는 그녀가 알고 있는 것과 정반대였다는 것을 알게 되고 병원에서 그렇게 얌전하듯 한 엄마가 왜 세상에 나와서는 그토록 돌변한 삶을 살았는지 궁금해한다. 그리고 자신이 살던 집에 그러니까 사건이 일어나던 날까지 살던 집에 들어가서야 엄마와 아빠가 몹시 그립다는것을 알게 된다. 비록 아빠를 죽인 엄마이지만 그녀에게는 하나 뿐인 엄마였던 것이다. 그리고 아빠의 무덤에 가면서 그녀는 이것이 꿈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이 알고 있는, 익히 그 모든 일을 알고 있고 사건이 일어나던 날 다음부터는 애매모호함이 자신이 이미 죽은 영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지금 그녀는 쇼이치의 꿈 속에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모가 그녀를 데리러 오지 못했던 것이다.

쇼이치의 꿈 속에서 이모를 만나 모두를 용서하게 되는 그녀, ’ 이제야 겨우 이해가 된다. 구마 씨가 했던 말..... 자신이 이곳에 겨우겨우 있다는 것. 이모가 나를 데리러오지 않았던 이유를 지금은 말할 수 없다고 했던 것. 그야 그럴 수 밖에, 죽었으니 데려갈 방법이 없잖아. 내가 쇼이치와 재미나게 지내고 있어 가만히 놔둔 것이리라.’ 그녀는 자신이 오래전, 그러니까 엄마가 아빠를 죽이던 날 자신 또한 엄마의 칼에 목숨을 잃고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떠도는 영혼이 되어 있었던 것이란것을. 그녀는 엄마도 이해를 못했지만 이모도 이해를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젠 쌍둥이자매를 모두 이행하고 비록 엄마의 손에 죽음에 이르렀지만 아빠 또한 행복했음을 알아차린다. 쇼이치의 꿈 속에서 모든 것을 치유하게 되는 그녀는 그렇다면 이제 편안한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자신을 위해 기꺼이 자신이 꿈 속에서 자신과 과거로의 동행 뿐 아니라 아픈 상처를 치유해준 쇼이치를 위해 자신이 간직하고 있던 갓파를 놓고 행복하게 떠나는 그녀, 유미코의 영혼을 위한 레퀴엠이었던 것이다. '책상 위에 딱 하나 덩그러니 남은 촛ㄷ에 종종 촛불을 밝히던 엄마가 떠올랐다. 나는 살며시 그것을 만져 보았다. 엄마의 통통하고 하얀 손이 닿았던 곳이다. 엄마, 하고 생각했더니 갑자기 보고 싶어졌다. 엄마를 만나고 싶어, 목소리를 듣고 싶어, 걷는 모습을 보고 싶어, 꼭 안기고 싶어, 그 손으로 내 이마를 쓰다듬어 주었으면 좋겠어.'

이 소설은 독특하다. 죽은 이가 화자가 된 것이다. 마치 살아 있는 사람처럼 등장하여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해결한다. 이렇게 죽은 자가 소설속에서 화자가 되는 경우는 특이한데 올해 읽은 책 중에 <딩씨 마을의 꿈> 이라는 책 또한 죽은 아이가 화자로 등장을 한다. 죽은 자가 화자가 된 경우는 자신들이 왜 죽게 되었는지 추리소설처럼 사건을 파헤쳐 들어간다. 그리곤 그 죽음과의 치유를 통해 좀더 편안하게 이승을 떠난다. 하지만 소설은 그녀가 죽은 것이 아닌것처럼 모두가 생생하게 이어 나간다. 자신이 왜 억울한 영혼이 되어 자신의 죽음과 작별도 하지 못하고 이승을 떠도는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는 영혼 유미코는 쇼이치의 꿈 속에서 비로소 엄마와 이모를 알게 되고 그녀와의 죽음과도 마주치게 된다. 하지만 그 죽음을 기꺼이 받아 들이고 자신이 세계로 돌아가려는 그녀, 더이상 억울하게 떠돌 필요가 없어졌다. 우리것으로 표현을 한다면 죽은 자에 대한 살풀이라고 해야 할 듯 하다. 더이상 이승의 끈을 잡지 말고 더 좋은 곳을 찾아 떠나길 바라는 치유의 소설, ’그녀에 대하여’ 소설을 덮고 나니 표지의 소녀가 너무 애처롭다. 피어나지도 못하고 시들어버린 꽃처럼 그녀의 빨간 치마가 자꾸만 눈 앞에 아른 거린다. 아버지를 보내고 난 후라 그럴까 죽음을 좀더 너그럽게 바라보는 눈이 생긴듯 하다. 너무 붙잡고 있어도 그들에 대한 예의가 아닌듯 하다. 나에겐 여기 이 자리가 있다면 이승을 떠난 아버지에겐 아버지만의 편안한 자리가 있는 것이다. 좋게 정말 좋게 보내주는 것이 남은 자의 도리인듯 하다. 이 소설 또한 그런 의미로 받아 들이고 읽는 다면 소녀의 아픔을 토닥토닥 두드려 줄 수 있는 마음이 생긴다. 그녀가 부디 다른 생에서 행복하길 바래보며 나 또한 소설로 치유를 받은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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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 밑 남자
하라 코이치 지음, 권남희 옮김 / 예담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집에 누군가 있는 것 같아. 아내가 그런 말을 꺼낸 것은 입주한 지 두 달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다. 누군가라니. 귀신이라도 있다는 말이야?' 누군가 이사한지 얼마 안되는 우리집에 함께 살고 있다면 그것도 마루 밑에서 자신의 거처를 마련하고 자신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시간에 '우렁각시' 처럼 신문을 정리해 준다든지 설거지를 해준다면 어떨까? 그와 함께 하고 싶어질까. 

이 소설은 독특한 생각으로 기발하게 전개 된 이야기인데 마지막은 가슴을 울린다. 찡하다. 샐러리맨들의 고통이, 가장으로 사회에 나가 열심히 일하는 가장들의 슬픈 자화상을 보는 듯 하여 가슴이 찡했다. 이사 온 지 얼마되지 않는 당신의 집에 누군가가 마루 밑에 둥지를 틀고 살고 있다면? 설마 했는데 그게 정말이 되었다. 아내가 누군가 있는것 같다는 말에 남편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지만 자신이 그와 마주치고 나서야 그의 존재를 알아차리게 되고 그를 의식하게 된다. 도대체 왜 그는 우리집 마루 밑에서 살고 있으며 누구란 말인가. 남편은 한시도 가정을 돌보지 못하고 집이란 그저 하숙집처럼 잠만 자는 곳으로 전락한지 오래이고 회사에서 또한 눈코뜰새 없이 열심히 일하지만 여기저기 눈치를 봐야 한다.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야 하는 슬프고 바쁜 샐러리맨, 밤낮없이 일하지만 아이들에게서도 아내에게도 대접받지 못하는 존대이다.

그런 그가 어느날부터인가 질투심을 가지게 된다. 자신의 집에서 자의든 타으든 함께 동거하게된 마루 밑 남자에 대하여. 그가 바쁜 시간 중에 잠깐 집에 들렀다 보게 되는 아내와 마루 밑 남자와의 단란한 시간들, 그 속에는 자신은 없다.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 마루 밑 남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고 자신인양 자신의 일을 대행하고 있는듯 하다. 점점 집에서 자신의 위치는 밀려나게 되고 아내의 눈치를 보게 되는 남편, 그러다 어느 날 아내에게 그의 존재에 대하여 말하게 되지만 아내는 이미 그를 받아 들이고 있는 눈치이다. '그럼 어쩔 생각이었어? 별로 나쁜 사람 같지도 않고, 아니, 오히려 도움이 돼. 그럼 됐잖아. 정리정돈도 해주고,설거지도 해주고,최근에는 욕실과 화장실 청소까지 해준다고. 마치 밤중에 우렁각시가 다녀간 것 같아서 즐겁지 않아?'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산다고 해도 서로 모르는 부분은 모르는 거야. 그러니까 그 사람의 무엇을 알고 있느냐가 아니라 그 사람의 어디가 마음에 드는가,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 그 이상 괜한 것을 알려고 해봤자 별로 의미 없으니까.' 그렇다면 아내는 이미 그를 받아 들였다는 뜻인데 그럼 자신의 존재는 어떻게 된 다는 것일까.

'그 사람은 당신하고 달리 언제나 옆에 있어준단 말이야. 우리하고 같이 밥을 먹고, 우리하고 같이 텔레비젼을 보고, 우리하고 같이 웃고 떠들어준단 말이야. 내가 한숨을 쉬면 걱정해주고, 내가 불편을 하면 들어주고, 내가 곤란해하면 도와준다고, 그런데 당신은..' 그는 아내에게 지금까지 어떤 존재였고 어떤 의미였을까. 혹시 돈버는 기계는 아니었을까. 그런 그가 어느 날 자신의 집에 들어가려 열쇠를 구멍에 넣어 보았지만 맞지 않았다. 모든 것이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집에서 쫓겨 나게된 그가 역에 이르러 노숙자를 보게 되고 그도 이젠 노숙자가 되었다고 생각할때 그가 말해준다. 그가 열한번째 쫒겨 난 남자라는 것을, 그러면서 들려주는 '마루 밑 남자' 들에 대한 이야기. 회사와 가정에서 쫓겨난 이들이 남의 집에 먼저 들어가 마루 밑에 둥지를 틀고 그 집에 아내와 아이들과 존재감을 긴밀히 하다가 드디어 가장을 밀쳐내고 마루 밑 남자가 주인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집에 있던 남자도 언젠가는 한 집의 가장이었을테고 자신처럼 회사와 집에서 쫓겨난 존재란 말인가. 그렇게 된다면 앞으로 이 사회는 어떻게 된다는 것일까. 날카로움으로 샐러리맨들의 비애를 다르고 있는 '마루 밑 남자' 는 재미도 있으면서 슬프기도 하다. 지금 그래서 내 옆에 있는 '가장' 에게 좀더 애정과 관심을 갖게 만든다.

튀김사원, 제목이 재밌다. 지방에서 근무하던 중년의 남자, 컴퓨터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그 때문에 급하게 해야 했던 서류가 다 날라가고 말았다. 그가 일어서 가려다 전선에 발이 걸려 넘어지면서 코드가 뽑혀 그가 하려던 작업이 몽땅 날아가 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과장에게 잘 말해 자신이 저지른 일을 뒤집어 쓰겠다고 한다. 이남자 다도코로, 뭔가 석연치 않은 것이 그에게 있다. 그의 말처럼 과장은 그에게 서류업무기한을 늘려 주고 전과는 다르게 그를 대한다.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그렇게 시작된 다도코로씨의 대한 의심은 점점 불거지게 된다. 사내 연애를 몰래 하던 그들의 이야기를 아는가 하면 그가 소속된 부장의 조직의 무너뜨린다고 하는 '복수' 심에 불타는 이남자, 과연 그의 정체가 무엇이란 말인가? 그에게 자신이 복수를 하겠다며 이 회사를 무너뜨리겠다고 하는 이 덜떨어져 보이는 중년남자를 믿어야 할까? 하지만 그의 말처럼 한가지 한가지 일이 실행되면서 그의 정체를 캐기 위하여 그는 애인과 함께 고군분투 하지만 그의 확실한 정체를 알아 낼 수가 없었다. 그러다 부장의 부정이 밝혀지는 글이 퍼지게 되고 다도코로가 의심스러워 그를 불려낸 자리에서 듣게 되는 '튀김사원' 이라는 말에 그들은 놀라게 되지만 그 모든 일들이 컴퓨터를 잘하는 고등학생인 그의 아들이 만들어 준 일이라는 것에 놀란다. 그들 모두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나오며 모이게 된 자리에서 자신들이 당했던 일처럼 회사에 '복수' 를 하는 일을 해 보자는 애인의 말, 그들은 그렇게 하나가 되듯 뭉친다. '너 회사에 불만있냐?' 라는 노래 가사가 생각난다. 불만이 있다고 그 불만을 앞에서 토로하기 보다는 삼키고 뒤로 삭이며 살아가야 하는 불쌍한 샐러리맨들, 그런 그들을 위해 여기 가짜사원인 '튀김사원' 이 납시었다. 그룹을 와해시킬수도 있는 저력은 그가 아닌 아버지의 복수를 대신 해 준 컴퓨터광인 아들이었다. 늘 접하고 있는 컴퓨터, 그 속에는 비밀도 무척이나 많았던 것이다. 그 비밀들이 밑바탕이 되어 회사를 와해 시킬 수 있었던 튀김사원의 대활약이 펼쳐졌지만 이 또한 샐러리맨들의 슬픈 자화상 같은 이야기라 가슴이 아프다.

남자들에게서 밀려나 자신의 능력 밖에서 살아야 하는 여자들, 그녀들이 뭉쳐 남자들에 맞서 전쟁을 일으켰다. 여자전용인 빌라에 뜻하지 않게 살게 된 두 남자들, 그들은 갇히게 된다. 전화도 안되고 자신의 집에서 나갈 수도 없는 감금이나 마찬가지의 상태에 놓이게 되는 남자들은 그녀들에게 동조를 해야만 한다. 그게 어쩔 수 없는 빌라사람들이 모여 만든 조합의 약속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은 모르는 일이다. 방송일을 배우고 거들면서 있는 그가 난데없이 여자들이 일으킨 전쟁에 참여하게 되고 갇히게 되면서 겪게 되는 몰랐던 세계 여자, 그녀들은 할 말이 많다. 그녀들이 벌이는 이 전쟁이 빨리 이슈화 되고 여성 또한 남자들과 동등한 자리에서 일하게 되길 바란다. 하지만 사회는 그녀들이 지금 남자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을 아무도 모른다. 그녀들만의 전쟁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속에서 점점 조직이 흔들리기 시작이고 뜻 하지 않은 사고로 우두머리인 여자가 총상을 입게 되면서 그녀들의 전쟁은 끝이 나게 된다. 어쩌면 너무도 열정적이고 자신이 남자와 지기 싫어한 우두머리 여자 혼자만의 전쟁이었는지 모른다. 이 또한 사회에서 점점 설 자리가 소외되고 있고 남자의 아래 자리로 밀려 나고 있는 여자들의 이야기라 슬프다. 여자들의 비애를 다루고 있어 공감하는 부분도 있지만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전쟁을 선포하기엔 사회는 너무 거대하다. 자신들의 능력을 펼 수 있는 무언가 남들이 받아 들일 수 있는 전쟁을 해야 할 터인데 막무가내식 사회에서의 '여자' 만의 단절은 안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좀더 조화로운 협상이 필요한 일이다.

'당신의 회사에 파견사장이 필요합니까?' 파견사원은 있어도 지금 사장이 있는데 굳이 '파견사장' 이 필요할까. 그렇다면 지금의 사장은 무엇을 한단 말인가. 그렇게 시작된 파견사장은 전국 호프체인점으로 대박을 낸 사장이 디자인 회사에 파견사장으로 오게 된다. 그는 지금까지와는 파격적으로 모든 일을 진두지휘한다. 하지만 갑자기 닥친 급물살에 하나 둘 떠나 가더니만 모든 일들이 빠져 나고 만다. 겨우 몇 명 버티고 파견사장의 입맛에 맞추어 한달이라는 시간동안 간신히 자신을 바꾸게 되는데 회사는 또다른 '파견사장' 이 오게 되고 그는 한달전 파견사장과는 너무도 다른 방법으로 그들을 지휘한다. 어디에 중심을 맞추어야 할까. 그렇다면 지금의 사장은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정사원들이 떠난 자리는 점점 파견사원들이 채워 넣어도 정사원과 전혀 다르지 않는 일처리에 정사원인지 파견사원인지 분간이 안가는 회사로 거듭나게 되고 남아 있던 이들마져 바뀌는 파견사장에 맞추다 그곳을 나와 자신들 또한 파견사원이 되고 만다. 그동안 한곳에 갇혀 있는 정사원으로 그들은 극에 달해 있었던 것이다. 그런 상태가 파견사장으로 모든 것이 와해되고 말고 정사원마져 파견사원이 되어 떠 돌고 그 회사는 파견회사의 손에 넘어가 파견회사게 된다는 이야기다. 파견사장에게 손을 놓고 본사장은 여유만 즐기고 다녔기에 회사관리에 소홀하고 그런 헛점을 파견회사가 놓치지 않고 집어 삼켰던 것이다. 하지만 사회가 점점 '파견화' 된다면 어떻게 될까. 주인이 없고 주인의식이 없는 회사와 사원들도 이루어진 사회가 과연 얼마나 지탱할까? 그렇다면 지금 무언가 생각을 달리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어쩌면 우리 사회에 따끔한 일침을 가하는 이야기다.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그런 일자리로 늘려 가고 있는 사회, 과연 먼 미래에는 회사도 그 회사를 일터로 삼는 누군가도 과연 주인이 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재밌게 읽을 수 있으면서 무언가 큰 상처를 주는 이야기는 가슴을 콕 찌른다.비정규직 그들이 소리를 높이고 있는 듯한 이야기다. 

그외 '슈사인 갱' 또한 모두 사회와 가정으로 부터 밀려난 이들의 이야기다. 정리해고 당한 중년 남자가 가출한 당돌한 소녀와 함께 동거를 하는 이야기이니 이 또한 슬프다. 모든 이야기들은 샐러리맨들의 비애라든가 그들이 가정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지금 우리 사회가 처한 문제가 무엇인지 날카롭게 잡아 내고 있다. 재밌게 읽으면서 나름 좀더 넓은 사회와 가정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눈을 키우게 한다. 전쟁 같은 회사에서 살아 남기 위하여 눈코뜰새 없이 일하는 가장들, 하지만 그들이 가정에서 설 자리는 없다. 가정은 오로지 잠자는 '하숙집' 정도 밖에 안되고 아내나 아이들에게 그들은 '돈 버는 기계' 로 밖에 인식이 안된다. 아무리 돈이 필요한 사회라 해도 아내나 아이들은 회사와 일에 빠져 있는 남편과 아빠보다는 자신들과 밥을 함께 먹고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텔레비전을 함께 볼 수 있는 곁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들어 줄 따듯한 체온을 가진 아빠와 남편을 원한다. 가정이 얼마나 소중한지 한번더 일깨워주는 단편들이 재밌으면서도 가슴 찡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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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칼랭
로맹 가리 지음, 이주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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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의사협회는 낙태의 자유에 대한 반대 입장을 거득 표명하며, 입법부에서 낙태를 허용한다면 그 '과업' 은 '특정한 집행 인력' 에 의해 '특별히 지정된 장소' 즉 '낙태소' 에서 시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1973년 4월8일자 신문'  본문에 들어가기전에 쓰여진 글이다. 그렇다면 이 소설이 낙태에 관한 소설일까. 무척 애매하다. 찬성을 하는 것인지 반대를 한다는 것인지 잠깐씩 낙태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지만 작가의 입장이 어떻다고는 확실하게 볼 수 없다. 소설은 쿠쟁이라는 소심하면서도 남 앞에 드러나는 것을 꺼리는 통계학을 다루는 삼십대 남자가 아프리카 패키지 여행을 갔다가 '비단뱀' 을 만나 그 뱀을 사서 가져와 키우게 되는 이야기다. 그와 같은 곳에서 일을 하는 흑인인 드레퓌스 양을 좋아하고 있지만 좋아한다고 한번도 말을 해 보지 못하고 속으로 가슴만 태우는 정말 소심남이다.

그로칼랭, 열렬한 포옹이란 뜻처럼 '군중속의 고독' 을 철처히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남자 쿠쟁, 그는 자신을 몇 시간이고 칭칭 감고는 자신을 놓지 않고 안아 주는 비단뱀을 누구보다 좋아한다. 하지만 그 뱀이라는 동물이 남에게 혐오감을 줄 수도 있고 먹이를 산 채로 삼키어 서서히 죽이기 때문에 어쩌면 그가 처한 사회를 '비단뱀' 에 비유를 했는지 모른다. 파리에 중고 사람이 천만을 넘어도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자신을 열렬하게 포옹을 해 줄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는 것이다. 그 살은 뱀에게 먹이로 산 토끼나 쥐를 주어야 하지만 그 또한 그에겐 할 수 없는 일이라 가정부 아줌마를 고용하여 먹이를 주게 한다. 자신은 오로지 비단뱀이 감싸주는 것을 좋아할 뿐이고 두 칸짜리 방에서 자신을 맞아 준다는 것 뿐이다. 살아 있는 생명이 퇴근후나 그외 자신이 외로움에 처해 있을 때 곁에 있어 준다는 그 의지 하나만으로 그에겐 얼마나 큰 힘이 되어 주는지 모른다. 그런 그가 그로칼랭에게 산 먹이를 주는 것을 하지 못하여 신부를 찾아가 답을 듣기를 원한다. 신부는 그에게 ' 쿠쟁 씨는 사랑이 넘치는데 그 사랑을 남들처럼 처리하지 않고 비단뱀과 생쥐에게 쏟고 있다는 말이에요...... 아시겠지만 세계에는 굶주려 죽어가는 어린이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그 아이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는 게 도움이 될 겁니다.' 비단뱀이 아닌 다른 곳에 눈을 돌렸다는 그가 철저한 고독과 외로움에 봉착했을까. 사랑하는 드레퓌스 씨에게도 정정당당하게 나서서 '당신을 사랑합니다.' 라는 말을 비단뱀에게 말하듯 반듯하게 했을 것이다. 

그런 그가 하루는 비단뱀을 가지고 밖으로 산책을 나간다. 그러나 사람들은 혐오스런 생명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된다. '편견과 증오와 경멸이 생기는 것은 인간적인 접촉이나 관계가 부족하기 때문이고, 결국 사람들이 서로 모르기 때문이다.' 서로 간에 소통이 안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사회가 발전하고 모두가 직업을 가지고 있다지만 서로간의 거리는 좁히지 못하고 벽을 쌓고 있는 것이다. 그 벽에 갇혀 있듯 하는 쿠쟁, 비단뱀으로 인하여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좀더 관심의 대상이 되지만 그럴수록 그는 자신안의 고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사랑하는 대상이 있지만 그 사랑하는 드레퓌스 양에게 한번도 제대로 말을 건네보지 못하고 엘리베이터를 타는 그 짧은 시간도 여행을 하는것처럼 층마다 각나라의 여행지를 함께 여행하는 것처럼 혼자 속으로 생각하다 결국 그녀에게 이상한 말을 하는 남자로 비쳐지게 되는 쿠쟁, ' 네 지금도 같이 삽니다. 아시겠지만 파리 같은 대도시에서는 사랑한 대상이 필요하니까...' 왜 그 사랑할 대상이 그를 사랑해줄 대상이 '비단뱀' 일까. 생식을 하며 먹은 것을 서서히 자신 안에서 죽이며 허물을 벗고 요도와 항문으로 배설 밖에 모르는 동물은 왜 그는 키우고 사랑하며 비단뱀화 되어 가는 것일까.

자신의 사랑하는 여인인 드레퓌스 양에게 자신의 사랑을 제대로 전달했다만 뱀과의 이상한 동거는 일찍 끝났을 수도 있다. 드레퓌스 양이 비담뱀이 싫다고 하면 동물원으로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프리카가 고향이 드레퓌스 양은 비담뱀을 보고 혐오감을 느끼지 못하고 어느 날은 비단뱀과 지금도 살고 있냐고 물으며 그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처럼 말을 건다. 그는 그 물음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으로 본다. 그의 아파트에는 오르지 두사람 분의 것만 갖추어져 있다. 침대는 더블이며 그외 것은 모두 두개씩이다. 그런 가운데 드레퓌스 양이 비단뱀을 보러 오겠다고 하여 자신은 최선을 다해 식탁을 꾸미고 비단뱀이 잘 보이는 곳에 놓아두지만 그녀는 혼자 오지 않고 동료 둘과 함께 온다. 그렇게 하여 그의 마음이 모두에게 들통이 나고 말았다. 정말 그 순간을 기다려 왔고 잘 되면 그녀와 결혼을 생각하고 있던 쿠쟁은 일생일대의 혼란을 겪게 된다. 뱀이 허물을 벗어도 똑같은 뱀이듯 그 또한 어쩌면 결혼이라는 껍질에 쌓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을 벗어나 다른 자신으로 태어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많은 사람이 자기 껍질 속에서도 불편해 하는 것은 그 껍질이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이 껍질로 사는 사람이 있을까. 사회에 맞추어지고 사회화 되면서 자신의 본래의 껍질을 잃어하는 것이 우리 사회인지도 모른다. 그런 속에서 뱀이 허물을 몇 번이나 벗는 것을 지켜 보았지만 그래도 역시나 뱀이다. 사회 또한 허물을 벗듯 변화한다고 해도 역시나 '사회' 일 수 밖에 없다. 그 속에서 그는 자신이 변화지 않는다면 '군중속의 고독' 을 언제고 느끼게 될 것이다. 자신은 자신안에 '자유' 가 깃들어 있다고 보지만 다른 사람의 눈에는 그저 적응력이 부족하고 소심한 남자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 소심함이 잠시 비단뱀으로 인하여 허물을 벗는듯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쿠쟁이고 말듯 드레퓌스 양하고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녀가 그에게 말도 없이 회사를 그만두고 만 것이다. 제비꽃이 시들까봐 물컵에 꽂아 그녀를 기다려 보지만 그녀는 나타나지 않고 그는 사창가에 가서 창녀와의 시간을 가지게 된다. 그곳에서 뜻하지 않게 만난 드레퓌스 양, 그녀와 사랑의 시간을 갖고 그녀에게 결혼하자고 말을 해 보지만 그녀는 그를 자유롭게 놓아주면서 지금의 자신의 일이 좋다고 한다. 쿠쟁은 집으로 돌아와 비단뱀인지 쿠쟁인지 알 수 없는 존재로 거듭난다. '안 했지만 만찬가지에요. 별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생물학적 돌연변이를 일으켜야 할 겁니다. 탈피해봤자 그게 그거고 오히려 점점 심해지지만 할 거요.' '매일 저녁과 주말 내내 이인용 침대와 함께 지내노라면, 어쨌거나 혼자라는 것에 핑계를 만들어주는 일인용 침대 속에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혼자라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파리에 사는 비단뱀의 고독이 한껏 드러나 쑥쑥 커지기 시작한다. 비단뱀을 두르고 있어도 이인용 침대 위에 혼자 있는 것은 끔찍하다.' 자신을 칭칭 감고 놓아줄줄 모르는 비단뱀이 자신의 안식처와 같았고 자신 안에는 드레퓌스 양이라는 사랑이 자라고 있었지만  그 모든것이 오롯이 자신의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비단뱀에게도 자연으로 돌아가 살아야 할 자신만의 자리가 있는 것이고 드레퓌스 양에게는 그가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쿠쟁은 그들이 없는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새로운 변태를 해야 하는 것일까. '탈피는 착한 파충류들이 전혀 다른 종, 즉 완전히 진화된 허파를 가진 종에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일깨운다.' 그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그 또한 허파를 가진 파충류이며 비단뱀과 같은 탈피를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어쩌면 다른 사람과의 '소통' 을 원했는지 모른다. 그가 사람과 좀더 가까워지기 위하여 찾았던 비좁은 중국식당, '그 식당은 비좁아서 테이블도 인간도 모두 다닥다닥 붙어 있기 때문에 아주 편안하다. 다른 테이블과 다정하게 팔꿈치를 맞대고 있기 때문에 혼자 가도 여럿이 온 기분이 든다.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면 곁에서 같이 듣는다. 내게 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가슴에 와닿는다.' 쿠쟁이 원하는 것은 누군가와 팔꿈치를 맞대고 또는 누군가와 어울려 대화를 나누며 소통을 원하고 있는데 그럴 대상이 없다는 것이다. 철처히 혼자가 되었기에 자신의 마음을 누군가에게 열지 못했기 때문에 소통의 부재 속에서 그가 감내해야 했던 외로움이나 고독이 그를 비단뱀화 하게 했는지 모른다. 

로맹가리, 필명인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으로도 소설을 내기도 해서 공쿠르 상을 두번이나 받는 이변을 토해낸 그가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키기 위하여 택했던 '자살' 이란 극단적인 방법이 너무도 아쉬움을 남게 한다. 그의 소설은 이번이 첫 작품이다. 좀더 그를 알고 싶어 <새들은 페루에서 죽다> 와 <자기 앞의 생>을 구매를 해 놓았고 조만간에 읽어보려 한다. 소설속 쿠쟁이나 비단뱀은 강한 인상을 남겨 놓고 얼마 동안은 내게서 떠나지 못할듯 하다. 서른 일곱이지만 그가 하고 있는 일처럼 통계학적이지 못하고 사람과 제대로 어울리지 못하면서 비단뱀을 애완으로 키우며 외로움을 달랬던 남자, 희망을 놓치 않았기에 이 미터 이십센티의 비단뱀도 혐오스럽지 않게 비춰졌던 소설이다. 마지막 부분에서 쿠쟁인지 비단뱀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것처럼 나온 것을 보면 그 또한 사회에 적응을 하여 사회적 동물로 살아가지 않나 싶다. 이 소설로 인해 다른 작품들이 더 궁금하게 만드는 로맹가리, 그 또한 마지막 순간에는 그로칼랭처럼 누군가 자신을 열렬히 포옹해 줄 상대가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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