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 대하여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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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태어나서 한 번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죽음’ 이다. 그 죽음조차 자신의 인생을 정리할 수 있는 유예기간이 주어진다면 행운이겠지만 그런 예고도없이 길을 가다가 혹은 산행을 하다가 천재지변이나 그외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인하여 뜻하지 않게 죽음을 맞이한다면 가는 이도 황당하겠지만 보내는 사람도 황당하다. 남아 있는 자로 죽음에 대한 상처가 치유되기란 정말 오랜시간이 필요하다. 그것이 가까운 사람이었다면 더할 것이다. 올해는 그런 뜻하지 않은 일을 두번이나 겪게 되었다. 올해 초에 작년에 폐암 판정을 받은 아버지를 뵈러 오시다가 작은아버지가 갑자기 교통사고로 운명을 달리 하시게 되었다. 결코 준비되지 않은 죽음앞에서 우린 그저 ’가는 길은 순서가 없단다. 고생않고 가신것을 다행으로 여겨야지.’ 하며 좋게 보내드렸다. 그런데 아직 한 달이 되지 않았는데 폐암으로 그래도 건강하게 사시던 아버지가 갑자기 주무시다 돌아가셨다. 그 또한 모든 일들이 복을 받았다며 좋게 보내드리자고 했다. 아버지 당신은 죽음이 바로 눈앞에 있었으니 당신은 두렵고 무서우셨겠지만 어쩌면 주변인들은 아버지를 정리할 시간적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하여 슬픔을 줄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작은아버지에 비해. 그렇다고 어느 죽음인들 서럽지 않은 죽음이 있으랴. 가고 나면 흔적조차없니 모두가 사라지는데. 지금도 어디선가 날 바라보고 계실것만 같은 아버지가 문득 문득 생각날땐 그저 눈물만 나온다.

요시모토의 소설은 몇 편이 있지만 처음이다. 그녀의 글에 대한 생각없이 읽어서일까, 아님 내가 요즘 겪은 죽음에 대한 생각 때문일까 무척 내 맘에 와 닿았다. 만약에 내 꿈에라도 아버지가 다시 한 번만 나타나 주신다면 그동안 못했던 것들을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다. 무엇이다 딱히 정해진것없이 그저 아버지와의 시간을 좀더 연장하고 싶은 생각이다. 영혼을 좀더 편안하게 해 주어 가볍게 다른 세상에서 살게 하고 싶은 생각도 있다. 여기 그런 소설이 있다. 쌍둥이 자매로 할머니가 마녀라 쌍둥이 딸들 또한 마법학교를 나와서 다른사람과는 다른 세상에서 살았다고 해야 할까 그런 소녀들이 할머니의 잘못으로 인해 정신적 피해를 입고는 있는자들을 위한 병원이나 마찬가지인 곳에 사춘기때 가게 된다. 그곳에서 원장과 사귀었던 동생은 그후 결혼을 하여 외동딸을 낳고 가게를 운영하며 부유한 삶을 산다. 외국산식료품가게를 하였기에 무엇이 좀더 잘 팔릴까 하는 것에도 그녀는 주술을 이용하기도 하여 어린 딸은 그런 엄마가 맘에 들지 않았다. 쌍둥이 언니도 결혼을 하여 외동 아들을 두고 비슷한 가게를 운영하며 살고 있었지만 그녀들은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서로 연을 끊고 살았다시피 한다. 그러다 동생의 외동딸인 유미코가 열살이 겨우 넘은 나이에 사단이 일어나고 만다. 강령회를 하던 중에 유미코의 엄마가 아빠를 찔러 죽인 것이다. 그곳엔 외삼촌 내외와 그녀의 엄마를 만나러온 여자가 있었지만 그녀 또한 목을 찔리고 만다. 그렇게 엄마와 아빠를 잃게 된 유미코는 혼자 떠돌게 된다.’어두컴컴한 현관홀에서 쇼이치가 말했다. 마치 동굴 안에 있는 것 같다고 나는 생각했다. 이 답답함. 이 눅눅함. 집 안은 어느 정도 치워져 있어서 그때 그대로는 아니었지만 황량했다.’

그런 그녀 앞에 이모의 아들인 쇼이치가 나타나 그녀를 데리고 그의 집으로 데리고 간다. 이모가 살아생전 그녀를 거두고 싶어했다는 말에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하다며 그녀는 처음으로 와 보는 이모의 집에서 평온함을 느끼며 쇼이치와 그동안 못다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과거와 재회를 하게 된다. 쇼이치는 그녀를 데리고 과거 그녀가 부모와 한때는 단란하고 부유하게 살았전 집이며 가게등을 그리고 과거의 삶에 관계된 사람들을 만나보러 다닌다. 이모와 함께 엄마가 오래전에 머물렀던 병원에 들러 그곳에서 그녀들의 삶에 대하여 듣고는 평소 그녀가 생각하는 엄마와 이모의 성격이 병원에서는 그녀가 알고 있는 것과 정반대였다는 것을 알게 되고 병원에서 그렇게 얌전하듯 한 엄마가 왜 세상에 나와서는 그토록 돌변한 삶을 살았는지 궁금해한다. 그리고 자신이 살던 집에 그러니까 사건이 일어나던 날까지 살던 집에 들어가서야 엄마와 아빠가 몹시 그립다는것을 알게 된다. 비록 아빠를 죽인 엄마이지만 그녀에게는 하나 뿐인 엄마였던 것이다. 그리고 아빠의 무덤에 가면서 그녀는 이것이 꿈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이 알고 있는, 익히 그 모든 일을 알고 있고 사건이 일어나던 날 다음부터는 애매모호함이 자신이 이미 죽은 영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지금 그녀는 쇼이치의 꿈 속에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모가 그녀를 데리러 오지 못했던 것이다.

쇼이치의 꿈 속에서 이모를 만나 모두를 용서하게 되는 그녀, ’ 이제야 겨우 이해가 된다. 구마 씨가 했던 말..... 자신이 이곳에 겨우겨우 있다는 것. 이모가 나를 데리러오지 않았던 이유를 지금은 말할 수 없다고 했던 것. 그야 그럴 수 밖에, 죽었으니 데려갈 방법이 없잖아. 내가 쇼이치와 재미나게 지내고 있어 가만히 놔둔 것이리라.’ 그녀는 자신이 오래전, 그러니까 엄마가 아빠를 죽이던 날 자신 또한 엄마의 칼에 목숨을 잃고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떠도는 영혼이 되어 있었던 것이란것을. 그녀는 엄마도 이해를 못했지만 이모도 이해를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젠 쌍둥이자매를 모두 이행하고 비록 엄마의 손에 죽음에 이르렀지만 아빠 또한 행복했음을 알아차린다. 쇼이치의 꿈 속에서 모든 것을 치유하게 되는 그녀는 그렇다면 이제 편안한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자신을 위해 기꺼이 자신이 꿈 속에서 자신과 과거로의 동행 뿐 아니라 아픈 상처를 치유해준 쇼이치를 위해 자신이 간직하고 있던 갓파를 놓고 행복하게 떠나는 그녀, 유미코의 영혼을 위한 레퀴엠이었던 것이다. '책상 위에 딱 하나 덩그러니 남은 촛ㄷ에 종종 촛불을 밝히던 엄마가 떠올랐다. 나는 살며시 그것을 만져 보았다. 엄마의 통통하고 하얀 손이 닿았던 곳이다. 엄마, 하고 생각했더니 갑자기 보고 싶어졌다. 엄마를 만나고 싶어, 목소리를 듣고 싶어, 걷는 모습을 보고 싶어, 꼭 안기고 싶어, 그 손으로 내 이마를 쓰다듬어 주었으면 좋겠어.'

이 소설은 독특하다. 죽은 이가 화자가 된 것이다. 마치 살아 있는 사람처럼 등장하여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해결한다. 이렇게 죽은 자가 소설속에서 화자가 되는 경우는 특이한데 올해 읽은 책 중에 <딩씨 마을의 꿈> 이라는 책 또한 죽은 아이가 화자로 등장을 한다. 죽은 자가 화자가 된 경우는 자신들이 왜 죽게 되었는지 추리소설처럼 사건을 파헤쳐 들어간다. 그리곤 그 죽음과의 치유를 통해 좀더 편안하게 이승을 떠난다. 하지만 소설은 그녀가 죽은 것이 아닌것처럼 모두가 생생하게 이어 나간다. 자신이 왜 억울한 영혼이 되어 자신의 죽음과 작별도 하지 못하고 이승을 떠도는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는 영혼 유미코는 쇼이치의 꿈 속에서 비로소 엄마와 이모를 알게 되고 그녀와의 죽음과도 마주치게 된다. 하지만 그 죽음을 기꺼이 받아 들이고 자신이 세계로 돌아가려는 그녀, 더이상 억울하게 떠돌 필요가 없어졌다. 우리것으로 표현을 한다면 죽은 자에 대한 살풀이라고 해야 할 듯 하다. 더이상 이승의 끈을 잡지 말고 더 좋은 곳을 찾아 떠나길 바라는 치유의 소설, ’그녀에 대하여’ 소설을 덮고 나니 표지의 소녀가 너무 애처롭다. 피어나지도 못하고 시들어버린 꽃처럼 그녀의 빨간 치마가 자꾸만 눈 앞에 아른 거린다. 아버지를 보내고 난 후라 그럴까 죽음을 좀더 너그럽게 바라보는 눈이 생긴듯 하다. 너무 붙잡고 있어도 그들에 대한 예의가 아닌듯 하다. 나에겐 여기 이 자리가 있다면 이승을 떠난 아버지에겐 아버지만의 편안한 자리가 있는 것이다. 좋게 정말 좋게 보내주는 것이 남은 자의 도리인듯 하다. 이 소설 또한 그런 의미로 받아 들이고 읽는 다면 소녀의 아픔을 토닥토닥 두드려 줄 수 있는 마음이 생긴다. 그녀가 부디 다른 생에서 행복하길 바래보며 나 또한 소설로 치유를 받은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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