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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 밑 남자
하라 코이치 지음, 권남희 옮김 / 예담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집에 누군가 있는 것 같아. 아내가 그런 말을 꺼낸 것은 입주한 지 두 달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다. 누군가라니. 귀신이라도 있다는 말이야?' 누군가 이사한지 얼마 안되는 우리집에 함께 살고 있다면 그것도 마루 밑에서 자신의 거처를 마련하고 자신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시간에 '우렁각시' 처럼 신문을 정리해 준다든지 설거지를 해준다면 어떨까? 그와 함께 하고 싶어질까.
이 소설은 독특한 생각으로 기발하게 전개 된 이야기인데 마지막은 가슴을 울린다. 찡하다. 샐러리맨들의 고통이, 가장으로 사회에 나가 열심히 일하는 가장들의 슬픈 자화상을 보는 듯 하여 가슴이 찡했다. 이사 온 지 얼마되지 않는 당신의 집에 누군가가 마루 밑에 둥지를 틀고 살고 있다면? 설마 했는데 그게 정말이 되었다. 아내가 누군가 있는것 같다는 말에 남편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지만 자신이 그와 마주치고 나서야 그의 존재를 알아차리게 되고 그를 의식하게 된다. 도대체 왜 그는 우리집 마루 밑에서 살고 있으며 누구란 말인가. 남편은 한시도 가정을 돌보지 못하고 집이란 그저 하숙집처럼 잠만 자는 곳으로 전락한지 오래이고 회사에서 또한 눈코뜰새 없이 열심히 일하지만 여기저기 눈치를 봐야 한다.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야 하는 슬프고 바쁜 샐러리맨, 밤낮없이 일하지만 아이들에게서도 아내에게도 대접받지 못하는 존대이다.
그런 그가 어느날부터인가 질투심을 가지게 된다. 자신의 집에서 자의든 타으든 함께 동거하게된 마루 밑 남자에 대하여. 그가 바쁜 시간 중에 잠깐 집에 들렀다 보게 되는 아내와 마루 밑 남자와의 단란한 시간들, 그 속에는 자신은 없다.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 마루 밑 남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고 자신인양 자신의 일을 대행하고 있는듯 하다. 점점 집에서 자신의 위치는 밀려나게 되고 아내의 눈치를 보게 되는 남편, 그러다 어느 날 아내에게 그의 존재에 대하여 말하게 되지만 아내는 이미 그를 받아 들이고 있는 눈치이다. '그럼 어쩔 생각이었어? 별로 나쁜 사람 같지도 않고, 아니, 오히려 도움이 돼. 그럼 됐잖아. 정리정돈도 해주고,설거지도 해주고,최근에는 욕실과 화장실 청소까지 해준다고. 마치 밤중에 우렁각시가 다녀간 것 같아서 즐겁지 않아?'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산다고 해도 서로 모르는 부분은 모르는 거야. 그러니까 그 사람의 무엇을 알고 있느냐가 아니라 그 사람의 어디가 마음에 드는가,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 그 이상 괜한 것을 알려고 해봤자 별로 의미 없으니까.' 그렇다면 아내는 이미 그를 받아 들였다는 뜻인데 그럼 자신의 존재는 어떻게 된 다는 것일까.
'그 사람은 당신하고 달리 언제나 옆에 있어준단 말이야. 우리하고 같이 밥을 먹고, 우리하고 같이 텔레비젼을 보고, 우리하고 같이 웃고 떠들어준단 말이야. 내가 한숨을 쉬면 걱정해주고, 내가 불편을 하면 들어주고, 내가 곤란해하면 도와준다고, 그런데 당신은..' 그는 아내에게 지금까지 어떤 존재였고 어떤 의미였을까. 혹시 돈버는 기계는 아니었을까. 그런 그가 어느 날 자신의 집에 들어가려 열쇠를 구멍에 넣어 보았지만 맞지 않았다. 모든 것이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집에서 쫓겨 나게된 그가 역에 이르러 노숙자를 보게 되고 그도 이젠 노숙자가 되었다고 생각할때 그가 말해준다. 그가 열한번째 쫒겨 난 남자라는 것을, 그러면서 들려주는 '마루 밑 남자' 들에 대한 이야기. 회사와 가정에서 쫓겨난 이들이 남의 집에 먼저 들어가 마루 밑에 둥지를 틀고 그 집에 아내와 아이들과 존재감을 긴밀히 하다가 드디어 가장을 밀쳐내고 마루 밑 남자가 주인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집에 있던 남자도 언젠가는 한 집의 가장이었을테고 자신처럼 회사와 집에서 쫓겨난 존재란 말인가. 그렇게 된다면 앞으로 이 사회는 어떻게 된다는 것일까. 날카로움으로 샐러리맨들의 비애를 다르고 있는 '마루 밑 남자' 는 재미도 있으면서 슬프기도 하다. 지금 그래서 내 옆에 있는 '가장' 에게 좀더 애정과 관심을 갖게 만든다.
튀김사원, 제목이 재밌다. 지방에서 근무하던 중년의 남자, 컴퓨터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그 때문에 급하게 해야 했던 서류가 다 날라가고 말았다. 그가 일어서 가려다 전선에 발이 걸려 넘어지면서 코드가 뽑혀 그가 하려던 작업이 몽땅 날아가 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과장에게 잘 말해 자신이 저지른 일을 뒤집어 쓰겠다고 한다. 이남자 다도코로, 뭔가 석연치 않은 것이 그에게 있다. 그의 말처럼 과장은 그에게 서류업무기한을 늘려 주고 전과는 다르게 그를 대한다.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그렇게 시작된 다도코로씨의 대한 의심은 점점 불거지게 된다. 사내 연애를 몰래 하던 그들의 이야기를 아는가 하면 그가 소속된 부장의 조직의 무너뜨린다고 하는 '복수' 심에 불타는 이남자, 과연 그의 정체가 무엇이란 말인가? 그에게 자신이 복수를 하겠다며 이 회사를 무너뜨리겠다고 하는 이 덜떨어져 보이는 중년남자를 믿어야 할까? 하지만 그의 말처럼 한가지 한가지 일이 실행되면서 그의 정체를 캐기 위하여 그는 애인과 함께 고군분투 하지만 그의 확실한 정체를 알아 낼 수가 없었다. 그러다 부장의 부정이 밝혀지는 글이 퍼지게 되고 다도코로가 의심스러워 그를 불려낸 자리에서 듣게 되는 '튀김사원' 이라는 말에 그들은 놀라게 되지만 그 모든 일들이 컴퓨터를 잘하는 고등학생인 그의 아들이 만들어 준 일이라는 것에 놀란다. 그들 모두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나오며 모이게 된 자리에서 자신들이 당했던 일처럼 회사에 '복수' 를 하는 일을 해 보자는 애인의 말, 그들은 그렇게 하나가 되듯 뭉친다. '너 회사에 불만있냐?' 라는 노래 가사가 생각난다. 불만이 있다고 그 불만을 앞에서 토로하기 보다는 삼키고 뒤로 삭이며 살아가야 하는 불쌍한 샐러리맨들, 그런 그들을 위해 여기 가짜사원인 '튀김사원' 이 납시었다. 그룹을 와해시킬수도 있는 저력은 그가 아닌 아버지의 복수를 대신 해 준 컴퓨터광인 아들이었다. 늘 접하고 있는 컴퓨터, 그 속에는 비밀도 무척이나 많았던 것이다. 그 비밀들이 밑바탕이 되어 회사를 와해 시킬 수 있었던 튀김사원의 대활약이 펼쳐졌지만 이 또한 샐러리맨들의 슬픈 자화상 같은 이야기라 가슴이 아프다.
남자들에게서 밀려나 자신의 능력 밖에서 살아야 하는 여자들, 그녀들이 뭉쳐 남자들에 맞서 전쟁을 일으켰다. 여자전용인 빌라에 뜻하지 않게 살게 된 두 남자들, 그들은 갇히게 된다. 전화도 안되고 자신의 집에서 나갈 수도 없는 감금이나 마찬가지의 상태에 놓이게 되는 남자들은 그녀들에게 동조를 해야만 한다. 그게 어쩔 수 없는 빌라사람들이 모여 만든 조합의 약속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은 모르는 일이다. 방송일을 배우고 거들면서 있는 그가 난데없이 여자들이 일으킨 전쟁에 참여하게 되고 갇히게 되면서 겪게 되는 몰랐던 세계 여자, 그녀들은 할 말이 많다. 그녀들이 벌이는 이 전쟁이 빨리 이슈화 되고 여성 또한 남자들과 동등한 자리에서 일하게 되길 바란다. 하지만 사회는 그녀들이 지금 남자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을 아무도 모른다. 그녀들만의 전쟁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속에서 점점 조직이 흔들리기 시작이고 뜻 하지 않은 사고로 우두머리인 여자가 총상을 입게 되면서 그녀들의 전쟁은 끝이 나게 된다. 어쩌면 너무도 열정적이고 자신이 남자와 지기 싫어한 우두머리 여자 혼자만의 전쟁이었는지 모른다. 이 또한 사회에서 점점 설 자리가 소외되고 있고 남자의 아래 자리로 밀려 나고 있는 여자들의 이야기라 슬프다. 여자들의 비애를 다루고 있어 공감하는 부분도 있지만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전쟁을 선포하기엔 사회는 너무 거대하다. 자신들의 능력을 펼 수 있는 무언가 남들이 받아 들일 수 있는 전쟁을 해야 할 터인데 막무가내식 사회에서의 '여자' 만의 단절은 안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좀더 조화로운 협상이 필요한 일이다.
'당신의 회사에 파견사장이 필요합니까?' 파견사원은 있어도 지금 사장이 있는데 굳이 '파견사장' 이 필요할까. 그렇다면 지금의 사장은 무엇을 한단 말인가. 그렇게 시작된 파견사장은 전국 호프체인점으로 대박을 낸 사장이 디자인 회사에 파견사장으로 오게 된다. 그는 지금까지와는 파격적으로 모든 일을 진두지휘한다. 하지만 갑자기 닥친 급물살에 하나 둘 떠나 가더니만 모든 일들이 빠져 나고 만다. 겨우 몇 명 버티고 파견사장의 입맛에 맞추어 한달이라는 시간동안 간신히 자신을 바꾸게 되는데 회사는 또다른 '파견사장' 이 오게 되고 그는 한달전 파견사장과는 너무도 다른 방법으로 그들을 지휘한다. 어디에 중심을 맞추어야 할까. 그렇다면 지금의 사장은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정사원들이 떠난 자리는 점점 파견사원들이 채워 넣어도 정사원과 전혀 다르지 않는 일처리에 정사원인지 파견사원인지 분간이 안가는 회사로 거듭나게 되고 남아 있던 이들마져 바뀌는 파견사장에 맞추다 그곳을 나와 자신들 또한 파견사원이 되고 만다. 그동안 한곳에 갇혀 있는 정사원으로 그들은 극에 달해 있었던 것이다. 그런 상태가 파견사장으로 모든 것이 와해되고 말고 정사원마져 파견사원이 되어 떠 돌고 그 회사는 파견회사의 손에 넘어가 파견회사게 된다는 이야기다. 파견사장에게 손을 놓고 본사장은 여유만 즐기고 다녔기에 회사관리에 소홀하고 그런 헛점을 파견회사가 놓치지 않고 집어 삼켰던 것이다. 하지만 사회가 점점 '파견화' 된다면 어떻게 될까. 주인이 없고 주인의식이 없는 회사와 사원들도 이루어진 사회가 과연 얼마나 지탱할까? 그렇다면 지금 무언가 생각을 달리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어쩌면 우리 사회에 따끔한 일침을 가하는 이야기다.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그런 일자리로 늘려 가고 있는 사회, 과연 먼 미래에는 회사도 그 회사를 일터로 삼는 누군가도 과연 주인이 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재밌게 읽을 수 있으면서 무언가 큰 상처를 주는 이야기는 가슴을 콕 찌른다.비정규직 그들이 소리를 높이고 있는 듯한 이야기다.
그외 '슈사인 갱' 또한 모두 사회와 가정으로 부터 밀려난 이들의 이야기다. 정리해고 당한 중년 남자가 가출한 당돌한 소녀와 함께 동거를 하는 이야기이니 이 또한 슬프다. 모든 이야기들은 샐러리맨들의 비애라든가 그들이 가정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지금 우리 사회가 처한 문제가 무엇인지 날카롭게 잡아 내고 있다. 재밌게 읽으면서 나름 좀더 넓은 사회와 가정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눈을 키우게 한다. 전쟁 같은 회사에서 살아 남기 위하여 눈코뜰새 없이 일하는 가장들, 하지만 그들이 가정에서 설 자리는 없다. 가정은 오로지 잠자는 '하숙집' 정도 밖에 안되고 아내나 아이들에게 그들은 '돈 버는 기계' 로 밖에 인식이 안된다. 아무리 돈이 필요한 사회라 해도 아내나 아이들은 회사와 일에 빠져 있는 남편과 아빠보다는 자신들과 밥을 함께 먹고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텔레비전을 함께 볼 수 있는 곁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들어 줄 따듯한 체온을 가진 아빠와 남편을 원한다. 가정이 얼마나 소중한지 한번더 일깨워주는 단편들이 재밌으면서도 가슴 찡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