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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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아직 어려운 작가가 '무라카미 하루키'다.그렇다고 그의 작품을 많이 읽은 것은 아니다. <상실의 시대>와 <1Q84>를 2권까지 읽고 며칠전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잡문집>을 읽었다. 저자들의 소설도 좋지만 에세이나 단편집 잡문집 등을 읽다보면 저자와 더 가깝고 친밀해지는 느낌이 들어 좋아하는데 이 책을 읽기 전에 <잡문집>을 읽은 것이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잡문집을 읽다보니 그가 '음악'에 조예가 깊다는 것을 알았다.그의 소설에 보면 음악과 관련해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다양한 음악이 이야기에 삽입이 되어 그 음악을 찾아 듣고 싶게 유도를 한다. 이 책에도 [순례의 해] 및 다른 다양한 음악들이 적절하게 나온다. 그가 소설을 쓰기 전에 음악을 너무 좋아하고 하루종일 듣고 싶어서 7년이란 시간동안 앨범가게를 했다고 하더니 정말 다양한 음악이 소설속 인물에 맞추어 이야기를 더 흥미롭게 한다.

 

"우리는 앞으로 널 만나고 싶지 않아. 말도 하기 싫어." 라는 절교 선언을 받았다.

 

그런가 하면 그의 소설 <노르웨이 숲>도 그렇지만 일본과 '핀란드'는 어떤 관계인지 영화와 소설 <카모메 식당>에서도 보면 갑자기 세여자는 '핀란드'로 향하는데 이 소설에서도 일본이 아닌 곳,핀란드로 떠난 등장인물이 있다. 그녀가 택한 핀란드에서의 삶은 그야말로 그의 삶을 다시 바꾸어 놓듯 치유의 삶이 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고향에서 그냥 있었던 인물인 시라는 자신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죽음'에 이른다. 색채가 없다는 것은 주인공 ' 다자키' 의 이름을 한 자로 쓰면 색을 나타내는 말이 들어가지 않는다.하지만 그와 함게 고등학교 때 함께 그룹을 지어 어울렸던 네 명의 친구인 '시라(흰색),구로(검정색),아카마쓰(붉은색),오우미(청색)' 는 각각 이름에 색이 들어간다. 그들은 색채가 있는 친구들이라고 하고 다자키는 색채가 없다고 스스로 자신을 구별짓는다. 정말 그럴까? 그들 다섯명은 정말 좋은 시간을 보냈다.봉사활동도 하고 나름 알차고 서로 잘 맞는 친구들이라 생각했는데 다자키만 대학을 도쿄로 가고 다른 친구들은 나고야에 있는 대학을 가면서 대학 2학년에 그는 친구들에게 '절교' 선언을 듣게 된다. 더이상 다자키가 그 그룹에서 어울릴 수 없는 것,왜? 그는 이유도 묻지 않고 혼자 우주 속에 떨어진 물체처럼 방황을 하고 죽음에 이른다. 왜 친구들이 갑자기 그를 그룹에서 혼자 떨어져 나가게 했을까?

 

"기억을 어딘가에 잘 감추었다 해도, 깊은 곳에 잘 가라앉혔다 해도,거기서 비롯한 역사를 지울 수는 없어."

 

험난하고 고난한 시간을 보내고 세월이 흘러 그로부터 16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의 여친이라 할 수 있는 연상녀인 '사라'가 그의 그런 과거를 듣게 되고는 과거의 친구들을 만나 보라고 권유를 한다. 그리곤 네 명의 친구들 주소와 간단한 근황을 조사해서 그에게 준다.과연 그는 과거의 친구들을 만나 화해를 할 수 있을까? 아니 친구들이 자신을 만나줄까? 그가 나고야의 친구들과 헤어져 힘든 시기에 겨우 돌아와 살아보겠다고 다짐하던 때에 연하의 '하이다'라는 친구를 만나게 된다. 하이다는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를 다자키에게 들려주는데 그 이야기 속의 소재들이 그의 과거 속 친구들과의 이야기와 연관이 있는 것처럼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이 된다. 이 부분이 하루키만의 특별한 능력인 듯 하다. <1Q84>에서 소설 속에 소설을 가지고 있었듯이 이 소설에서도 다자키의 과거와 같은 이야기가 하이다의 아버지 이야기로 되풀이되어 나온다. 그는 정말 과거의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까? 아니 그들을 만나 16년전 자신을 내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스스로도 몰랐던 원래의 자신이 껍질을 깨고 바깥으로 빠져나오려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쓰쿠루는 생각했다.뭔지 모를 추악한 생물이 부화하여 온 힘을 다해 바깥 공기를 쐬려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친구들에게 미리 연락을 하지 않고 찾아가는 다자키, 어색함은 잠시일뿐 그들은 과거의 이야기를 토로하며 현실의 모습을 본다. 피아노를 잘 쳤던 시라가 아픔의 상대로 그를 지목했던 것,왜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일인줄 친구들도 아는데 왜 자신에게 미리 이야기를 안해 주었을까? 친구들에게 자신은 과거에 어떻게 비춰졌길래. 자신이 정말 '색채가 없는' 존재였을까? 자신의 이름처럼 자신에게는 색채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친구들을 만나서 과거 이야기를 하다보니 친구들에게 그야말로 그라는 존재는 '색채가 있다' 확실하게.친구들이 확실한 색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는데 그들의 생각과는 달랐던 것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타인이 나를 더 잘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친구 '시라'의 일은 아니 다자키를 내쳐야 했던 일은 친구들 모두에게 아픔의 시간이 되었던 것이다.

 

아무리 평온하고 가지런해 보이는 인생에도 반드시 커다란 파탄의 시절이 있는 것 같거든요. 미치기 위한 시기라고 해도 괜찮을지 모르겠네요. 인간에게는 아마도 그런 전환기 같은 게 필요한 거겠죠.

 

색채가 없는 다자키가 과거의 친구들을 만나 과거와 조우하며 그는 색채를 찾아 낸다,자신만의 특별한 색을.그런가하면 지금도 역시나 친구들에게 다자키는 자신만의 색으로 멋지게 살고 있는 것이다. 단지 그에게 '자신감과 용기'가 없는 것이다. 그가 과거 16년 전에 친구들에게 내쳐졌을 때 그가 용기 있게 부딪혔다면 현실은 어떻게 변했을까? 지금과 똑같이 되어 있을까? 다자키의 성장통과 같던 이야기는 모두의 성장통으로 이어지며 과거와 조우하며 그들은 서로 용서하고 이해하고 현실을 받아 들이며 다시금 그시절로 돌아가지는 못하지만 '친구'로 돌아갈 수 있는 시간을 맞게 된다. [영과후진]이라고 했다. 물은 웅덩이를 채워야 흘러간다고 했는데 아픔도 채우고 부딪혀야 이겨내고 다시금 찾아 오는 아픔을 이겨내는 힘을 얻게 된다. 그 때 그 아픔을 서로 직면하여 부딪혔다면 사라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가 죽음으로 소멸했을까? 자신이 피해자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돌아보니 모두가 피해자였고 모두가 아픔을 간직하고 있으며 아픔을 겪어냈고 견뎌냈다. 다자키가 16년이란 세월을 소비하지 않고 더 일찍 친구들을 찾았다면 현실은 또 변했을지도 모른다. 아픔은 곪아 터져서 커다란 상채기를 남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지금이라도 그가 나섰다는 것이, '순례'를 떠났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아픔도 죽음도 삶의 연장선이지만 그것이 내게 닥치며 회피하려 하고 너무 크다고 하게 마련이다. 자신감을 가지고 부딪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일본 소설을 읽다보면 이름을 가지고 한자로 풀이를 해서 하는 약간은 장난스러운 말장난과 같은 '반전'을 주는데 이 소설도 약간 그런 바탕이 깔려 있다. 서로의 이름에는 한자로는 색이 들어가고 다자키에게는 없어서인지 그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을 해서일까 그는 서른여섯이라는 나이가 되어서도 여자에 사랑에 자신이 없다. 하지만 과거의 친구들을 만나며 성장통을 극복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사랑에 적극적이고 자신감을 보인다.핀란드가 이 소설에서는 '치유,힐링'의 나라로 쓰였을까하는 의문을 가져본다. 핀라드에 살고 있던 구로를 만나며 그는 과거와 따뜻하게 악수를 나누고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지금까지 십대 때 일은 가슴에 '통증'처럼 안고 있었다면 이젠 그 아픔의 웅덩이를 채우고 다시금 나아갈 수 있는 역량이 있는 물이 된 것이다. 하루키의 소설을 어렵게만 생각을 하고 뒤로 미루기 보다는 한 권 한 권 선입견을 버리고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이 작품에서 해본다.다자키와 자신감과 용기를 가졌듯이 분명 나도 가질 수 있다.다자키가 자신만의 색을 찾아 이제 빛나는 시간남 남아서 다행이다. 그런가하면 모두가 성장통을 이겨내고 그렇게 물처럼 유하게 흘러가는 것이 현실인 듯 하다.다자키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과거'의 껍질이라는 세계를 깨뜨려야만 했다.그렇게 보면 다자키는 정말 자신있게 그러가하면 친구들도 만나면서 과거와 화해와 용서 그리고 용기를 가졌으니 그런 과거를 가지고 있다면 깨뜨려야 한다. 마음의 병을 지우고 자신만의 색을 찾을 수 있다면.그런가하면 소설은 '세상 사람들의 절반쯤은 자기 이름에 만족하지 않는다.' 라는 이 한 줄에 시작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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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즈 보르코시건 : 명예의 조각들 마일즈 보르코시건 시리즈 1
로이스 맥마스터 부졸드 지음, 김창규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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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저자의 책은 처음이고 더군다나 SF소설에 연작이다. 우리에게는 <바라야 내전>까지 번역되어 나와 있다고 하는데 배명훈의 <청혼>도 그렇고 다른 작가의 <베타>도 읽어서인가 흥미롭다. 이 책은 '보르코시건 시리즈' 첫번째 책으로 나온 듯 하다. 무엇보다 책을 시작하기 전에는 작가의 이력부터 읽어 보는데 작가가 어린시절부터 독서량이 대단한 듯 하다. 기계공학 교수이자 SF 열혈 팬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시절부터 SF를 섭렵했고 방대한 독서가 이런 소설을 탄생시킨듯 하다.역시나 꿈나무는 어린 떡잎부터 알아보는 것인가. 이 작품 시리즈와 다른 작품 시리즈가 있다고 하는데 SF 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 넣어줄 작가로 기억해야 할 듯 하다.

 

이야기는 코델리아와 아랄이 만나는 이야기부터 시작이 된다. 남성중심적이고 군인중심적이라고 할 수 있는 바라야 제국주의의 아랄 보르코시건과 민주주의 적이고 남녀가 평등한 사회인 베타 개척지의 과학자이면서 군인인 코델리아 네이스미스가 우여곡절 끝에 만나 코델리아가 아랄의 포로가 되지만 자유가 주어지고 서로가 도와야 살아날 수 있어 포로이기 보다는 낙오된 행성에 두 남녀처럼 부딫히며 서로를 알아가게 된다. 하지만 아랄은 코델리아가 사는 곳에 그의 소문은 험악하다. 그런 그와 만나고 마주치고 부딪히다보니 소문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고 남녀간의 감정이 싹튼다. 적과의 동침처럼 적을 사랑하는 입장이 된 두사람, 아랄이 누군가의 계략에 빠져 있음을 알게 되고 아랄의 군인정신으로 위기에서 벗어나게 되고 베타 개척지의 코델리아는 바라야 제국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게 된다.

 

아랄의 포로가 되어 전쟁에 휘말리게 되고 바라야 제국의 시궁창 같은 정권 싸움에도 휘말리게 되는 등 온갖 이려움을 당하지만 그때마다 아랄의 힘과 지략에 코델리아의 지략이 합쳐져 위기에서 벗어나기도 하고 더 깊숙이 바라야 제국에 대하여 알게 되면서 인간 아랄 보르코시건이라는 인물에 대하여 가까이 가고 싶으면서도 자신의 고향을 생각하며 벽을 만들어 놓는 코델리아, 하지만 그녀가 향하고 선택한 고향은 그를 반역자 이중간첩처럼 바라야 제국에 희생양이 된 것처럼 그를 환자로 몰아가는가 하면 그녀가 지금까지 알고 겪었던 일들과는 너무 반대되는 방향으로 왜곡되게 이끌어 가는 것에 적응할 수 없어 베타 개척지를 탈출하여 바라야 제국의 아랄에게로 향한다. 그가 청혼을 해도 답을 주지 못했는데 자신의 고향에 가고 나서야 자신의 운명을 알게 된 것이다. 전쟁이 끝났어도 아직 바라야 제국에 앙금이 남아 있기도 하고 잘못 알고 있거나 그렇게 믿고 있는 사람들 틈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그녀에게는 약물에 중독되어 죽음을 선택하는 길과 같았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문명이라는 건 우리 자신이 아니라 우리가 쓰는 물건에 깃들어 있는 셈이네요."

 

지구에서 펼쳐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주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라 행성간 전쟁도 우주선을 타고 이동하는 이야기며 지구에서는 먼 이야기인 생물체나 과학적인 이야기들이 나온다. 그렇다고 그것이 먼 미래의 이야기일까 하는 생각을 가져봤다. 아랄과 코델리아가 함께 있던 숲은 그야말로 정글이라고 할 수 있는 미생물체들이 너무도 많다. 흡혈귀와 같은 생물에서부터 아직 몇 프로도 정복하지 못한 아마존의 정글을 연상하는 것처럼 표현을 해 놓았고 바라야 제국은 우주속에 '지구'를 표현해 놓은 것처럼 베타 개척지에는 없는 자연이 있다. 그런가 하면 그곳은 아직 황제가 다스리는 나라고 섭정을 하고 군사정권이라 할 수 있다.그런 곳에서 아랄은 그야말로 에프엠처럼 모든 것을 갖춘 인물이다. 책략가이면서 군인이고 정치를 몸서리치도록 몹시 싫어하면서도 정계에 몸을 담아야 하는 인물이다.그런 그의 첫번째 결혼을 무참히 실패였고 그로 인해 그는 치욕과 같은 소문의 남자가 되었지만 코델리아를 운명적으로 만남으로 인해 둘은 서로에게 적합한 동지이면서 인생의 반려자로 만나게 된다.

 

자신의 고향을 버리고 아랄이라는 남자를 찾아 우주를 날아 사랑을 찾아 떠난 코델리아, 그녀가 없는 삶은 죽음과 같은 세상이었는데 그녀가 나타남으로 인해 아랄의 삶은 다시 활짝 꽃이 핀다.그런가 하면 황제가 그에게 섭정을 해달라 한다. 죽어서도 그를 통치하려는 황제지만 옆에 코델리아가 있음으로 인해 자신있게 받아 들이고 자신이 함께 했던 이들을 옆에 두고 일을 하게 된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는 코델리아가 아니라 그녀 또한 '군인'의 신분으로 있어 보았기에 그에게는 누구보다 더 힘이 되는 조력자가 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아직 그들의 아이가 태어나지 않았는데 그들의 아이인 '마일즈' 의 탄생으로 시기를 나누어 이야기를 펼쳐 나가는 듯 하다. 이 이갸기의 다음 이야기인 <바라야 내전>에서는 아랄과 코델리아가 내전을 겪으며 더욱 많은 이야기가 펼쳐질 듯 하다. 드디어 그의 아들 '마일즈'가 태어나다 보다.

 

지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주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상상력을 더 자극하기도 하고 그녀가 어린시절과 약국에서 보조원으로 있는 동안 2백만권의 책을 열람했다고 하니 더욱 풍부한 이야기가 펼쳐 지리라 본다. SF에 전쟁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쟁과 함께 아랄과 코델리아의 사랑이 보태져서일까 흥미롭게 읽을 수 있고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하게 만든다. 우리는 지구라는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곳과 닮은 곳을 무던히도 찾아 나서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저자는 지구와 너무도 닮은 행성이 분명히 있고 그곳에서도 지구와 같은 삶이 이어지고 있으며 과학이 발달하고 더 나은 문명을 가지고 있어도 인간의 삶은 소멸과 탄생으로 이어지며 오래도록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고 보는 듯 하다.행성과 행성은 우주선으로 서로 왕래하고 화물도 또한 화물만 취급하는 화물선이 있어 자유롭게 연결이 되고 문명 발달로 모든 것이 컴퓨터로 제어가 되어도 '손편지' 또한 더 힘들지만 아날로그가 남아 있는 그곳으로 그려 나가려고 한 것을 보면 너무 우주적이어서 정이 매말라 버린 우주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적인 우주를 그려내려 한 듯 하다.서로 어울릴것 같지 않은 다른 행성의 두 남 녀가 만나 서로 다른 두 곳을 화합이라도 하듯 새로운 생명체인 '마일즈'를 탄생하게 되고 인공자궁에서 키운 베타 개척지와 바라야 제국의 '아이들' 있으니 그 또한 어떻게 이어져 나갈지 기대된다.이제 시작이지만 저자의 방대한 독서량이 토해내는 스토리텔링에 빠져 들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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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 작가]를 추천합니다. 저자의 책으로는 <7년의 밤>과 <28>을 읽고 다른 책은 소장만 하고 있는데 두 권의 책으로도 그녀의 능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역량 있는 작가라 봅니다. 자신이 쓴 글이 맘에 들지 않으면 폐기처분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글을 읽은 듯 한데 <7년의 밤>도 그렇고 이번에 나온 <28>도 그렇고 무척 방대한 분량의 글이면서 탄탄한 구성에 스토리텔링이 뛰어난 이야기로 영화로 나와도 정말 좋을 이야기들 이었다고 봅니다.이런 소설을 쓰려면 준비하는 시간도 무척 고된 시간이었을텐데 글쓰기의 작업이 무한한 체력을 요할텐데 장편소설이라고 해도 누구보다도 더 많은 분량으로 그것도 미스터리적 소설을 쓴다는 것이 참 대단하다고 봅니다.지금보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고 다양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올 듯하여 늘 기대하게 만드는 작가입니다. 그녀의 책이라면 예약구매를 해 놓아도 아깝지 않은 면이 있어 기다려집니다.왕성한 활동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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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 내 가여운 개미
류소영 지음 / 작가정신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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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을 둘러 보면 모두 있는 듯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다.나도 또한 타인들에게는 있는 듯 없는 듯 그런 존재로 여겨질 것이고 다른 이들도 그런 삶을 살고 있다. 어쩌면 무관심일지 모르는 존재에 대한 관심이 결여로 우리는 세상을 살아 가고 있는지 모른다.요즘 누구나 하고 있는 SNS활동이며 블로그 활동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하는 활동이라 볼 수 있다. 그런가하면 쉽게 맺은 인연은 쉽게 무너지기도 한다.그만큼 자신 외의 타인에게 관심이 오래도록 유지 된다는 것은 힘든 세상인듯 하다. 어느 날 무척 오랜시간동안 친구로 지냈던 친구에게 사소한 오해로 인해 갑자기 친구해지가 되었다면 어떠할까? 그것이 다른 이유가 아닌 SNS의 활동을 보고 여인네들의 샘 혹은 질투에서 비롯된 일이라면.

 

누군가에게 관심을 받는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기도 하며 부담백배의 일이기도 하다. 관심을 받고 있으니 행동의 제약이 오기도 하고 더 잘해야 하는 부담이 병행하기도 하는가 하면 하나 잘못하면 전체를 잘못으로 몰고 가는 일도 있다. 저자의 책은 처음 접하는데 쉬운듯 하면서도 약간은 어려운 점도 있다. 단편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감이 없다' 그런 인물들이 겉으로 드러나며 밑그림이 그려지고 그녀에 의해 확연히 모습을 갖추게 된다. 존재감이 살아나게 되는데 우리 곁에도 이런 이가 있다. 혹은 살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렇다고 변하는 것이 있을까? 그녀가 스케치를 하며 살려내도 그 존재는 '가엽다' 라고 할 수 있다. 눈물겨운 가여움으로 인해 존재가 다시 흐려지는 듯 하다.

 

<물소리>,어느 수몰지역에 박교수와 함께 그이 제자들이 그곳을 찾는다. 왜 박교수는 그곳을 일부러 찾으려 할까? 수몰지역은 그야말로 수마가 할퀴고 간 것처럼 처참하다. 이런저런 이유로 땅이 제 가치를 잃은지 오래니 곳,사람도 자연도 모두 버린 곳처럼 존재 가지가 없어진 땅이다. 그곳은 박교수의 외가댁이 있었던 곳으로 어린시절의 추억 한자락이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유물이나 보물을 찾기 위한 발걸음이 아니라 자신의 기억 한 켠에 자리한 그 곳을 눈에 담기 위한 발걸음인데 그곳에서 아직 담기지 않은 물소리가 '찰방찰방' 나는 듯 하다. 얼마전에 수몰될 지역에 대한 다큐를 보았는데 환경적 가치를 따지기 보다는 국가는 국가차원의 공사만 강행하고 주민들의 입장에서는 생각을 하지 않아 댐공사가 강행되다가 잠시 중단된 곳의 이야기를 보게 되었다. 이미 그곳을 떠나 다른 곳에 자리를 잡고 그곳에 한발을 걸치고 농사를 짓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그들이 다시 돌아와 산다고 예전의 마을이 될 수는 없다.존재 가치를 잃은 곳이다. 그 땅의 존재가치를 국가도 주민도 되돌려 놓을 수는 없다.

 

<개미,내 가여운 개미>, 그녀가 죽었다.그것도 교통사고로 그자리에서 죽었다. 그런데 그녀는 그 순간에 무언가 먹고 있었을까 아닐까? 폭식증에 걸린 그녀 신주연,그녀는 사돈이며 그가 맘에 두고 있던 여자였다. 남들 앞에서는 조금 밖에 먹지 않는데 남이 없는 자리에서 그녀는 폭식을 아니 흡입하듯 먹는다. 일명 폭식증환자다. 그녀의 외모는 거구에 별다르게 튀지 않는 그야말로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조용조용하다. 그런 그녀가 왜 폭식증 환자가 되어야 했나? 어린시절 개미를 먹다가 엄마에게 들켜 매를 맺고 들어야 했던 말들이 트라우마처럼 그녀의 인생을 옥죄고 있다. 그것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다가 죽음까지 이르고 말았다. 그리고 그녀의 조카가 다시 그녀처럼 개미를 집어 입에 넣고 있다. 그녀가 흘려 버린 페르몬이 조카에게 옮겨간 것일까? 죽음 이후에 그녀가 부활하듯 그녀의 존재가 드러나지만 결코 행복한 존재가 아니다.

 

<또 밤이 오면> 육십사세 그녀가 집을 나갔다. 그녀는 시어머니다. 왜 그녀가 가출을 그 나이에 했을까? 도무지 식구들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그녀는 어떤 인생을 살아왔을까? 며느리의 눈을 통해 그녀의 지난난 삶이 그려진다. 시골에서 살다 서울에 올라와 힘들게 살고 학교까지 마친 그녀,나이에 굴하지 않고 서예며 이것저것 배우러 다녔던 그녀가 왜 갑자기 가출을 결행했을까. 출산휴가로 아직 집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 그녀,이제 직장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녀가 가출을 했으니 망설여진다. 시어머니이며 한 집안의 어머니인 그녀지만 그녀는 여자다. 그녀의 삶을 '엄마 혹은 어머니'로 가두어 두고 있지는 않았을까? 여자로 혹은 그녀만의 삶을 한번이라도 살았다면 가출을 했을까? 그런 시어머니가 어디 좋은 곳에 여행을 잘 하고 있으리라,아니 전화가 오면 바로 달려가 받을 수 있기를 고대하는 그녀.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전화를 받으려고 뛰며 끊어지길 바란다. 무슨 맘일까? 여자의 적은 여자라더니 어머니와 며느리의 보이지 않는 줄다리기가 작용한 것일까? 아니면 정말 병이라도 있어 그녀가 잠적한 것일까.

 

<옷 잘 입는 여자> 모두에게 그녀는  '옷 잘 입는 여자' 그야말로 유행을 따라가며 누구에게도 뒤쳐지지 않는 여자이다. 하지만 그녀의 진짜 속내는 무엇일까? 그녀의 겉모습만 판단하던 친구와 회사직원들 그녀가 옷 잘 입는 여자가 되어야만 했던 지난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병원에 다니셔야 하는 엄마를 돌보며 자신의 배움을 놓지 않고 열심히 하며 옷도 잘 입는 여자.우리가 사람의 겉모습을 보고 판단한다는 것은 미스다. 어느 누구든 함께 부딪혀 보고 속을 보아야 그사람이 품고 있는 진주를 발견하게 되지 겉모습으로는 진주의 가치를 전혀 알 수가 없다. 아니 진주를 품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에 그녀가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고 친구로 받아 들여진다. 모두가 그녀 투성이다.

 

위의 단편들 말고도 집안에서 혹은 여자친구네 집에서조차 그의 존재 가치가 없는 남자가 십여일 동안 가출하기 위한 자금 마련을 위해 입이 크다는 이유로 입에 빨대 많이 넣기 기네스에 도전하게 된다. 하지만 자신이 우승을 했을 경우 어디 한 켠에라도 자신의 사진이 실린다면 어떻게 될까? 기네스 시작 전과 후는 어떻게 달라질까? 자신의 존재 가치가 없이 살던 때와 기네스에 도전하게 됨으로 인해 존재 가치가 드러나게 되었는데 그렇게 해서 여자친구를 놓치고 싶지 않고 여자 친구의 부모님께 자신의 그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 처음 시작과는 전혀 다르게 마음이 움직이고 있다. 존재가 드러난다는 것은 그런 것일까? 존재가 드러나지 않아 수면으로 띄우고 싶다가 수면으로 올라오면 또 받게 되는 후광을 두려워 하는 우리 인간들, 무엇이 두려운 것인가.

 

8편의 이야기는 있으면서도 없는 것처럼 혹은 죽음이나 가출 그외 이유로 부재나 마찬가지인 존재들을 다시금 수면 위로 존재를 드러내 놓는다. 그녀가 그리지 않았다면 잊혀질 존재들이 우리 곁에 존재하긴 존재했다는 것을 말해주려고 하는가.<개미,내 가여운 개미>에서 처럼 신주연이 폭식증을 가지게 된 계기는 아주 작고 가여운 '개미'라는 존재에 의해서다. 누가 그런 존재를 의식이나 하겠는가.아니 그런 존재로 인해 한 인간이 무너질 줄을 알았겠는가? 댐에 작은 구멍이 댐을 무너뜨리 듯 아주 사소하고 작은 존재들이 아니 그런 무수한 삶이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고 우리도 그런 존재임에 틀림이 없다. 모두가 아주 미미한 존재이지만 존재 가치는 분명히 있다. 가볍게 읽은 소설이지만 무언가 큰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저자의 이름을 기억하게 해주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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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거네 - 외롭고 슬프고 고단한 그대에게
류근 지음 / 곰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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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아까운 사람이 너무도 일찍 갔다. 그사람 故 김광석,그의 노래를 대부분 너무 좋아하고 노래에 얽힌 추억이 있어서일까 오래도록 가슴에 맴도는데 그 중에서 내가 좋아는 노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도 한때 무척이나 좋아했고 지금도 여전히 좋아하는 노래중에 하나다. 그 노래의 작사가가 '류근' 이라는 시인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고 그의 이야기를 이 책을 통해 날것의 언어로 듣다보니 정말 팔딱팔딱 싱싱함을 간직한 활어의 그 활력소가 오래도록 앙금으로 남아 잊혀지질 않을 듯 하다.

 

199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시인으로 등단하고 18년 만인 2010년에 <상처적 체질>이라는 시집을 냈다고 한다.그리고 이 산문집인가? 왜 그가 천재적인 능력을 가지고도 시집이나 다른 책을 쓰지 않았는지 이 책을 보면 그 날것의 냄새를 아니 그의 현실을 어느 정도 엿볼수(?) 있다. 현실과는 담을 쌓듯 한 그의 삶,술 라면 월세 여자(?) 그의 글에서 보여지는 몇 가지 주제를 고르자면 이런 류일까. 그런가 하면 '조낸'과 '시바'가 비속어가 아니라 평상시 그가 쓰는 일반어,아니 말이 주는 어감이 욕이 아니라 어떻게 받아 들이고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욕보다는 그의 현실과 글쓰기의 세계를 연결해 주는 가교처럼 받아 들여지는 왜일까.

 

사람을 만날 때마다 술을 마셨다. 술 마실 때마다 사람이 있었다. 따라서 내가 마신 술의 양은 내가 만난 사람의 양에 비례한다. 그토록 많은 술을 마셨으니 그토록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었다는 뜻이다.나와 알고 있는데 술자리에서 조우하지 못한 사람은 아직 나를 만난 사람이 아니다.내가 알고 있는데 아직 술자리에서 술 한 잔 권하지 않은 사람은 인연을 제대로 맺은 사람이 아니다.술자리에서 만나야 한다.술자리에서 만나야 진짜 만난 것이다.

 

그의 언어를 읽다보니 내 속이 뻥 뚫린 것처럼 속이 시원한 것은 무슨 느낌이지. 글은 지난 이야기와 현실이 모호하게 겹쳐져 있는 것 같은데 월세가 몇 달치씩 밀려도 한 끼 굶주린 속을 채워줄 라면 하나 제대로 있지 않아도 그가 자신을 자해하며 드러내는 현실은 풍자적이라 그럴까 왜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것으로 보이지 않고 낭만적으로 보일까? 그가 보여주는 현실속 그는 동네 닭도 네덜란드산 개도 매미조차 그를 밑으로 보는 듯 하지만 주머니가 가벼워도 그가 써내는 글들은 왜 가슴이 싸아 하면서도 시집 한 권이라도 구매를 해 라면값에라도 보태게 해야할 것만 같으면서도 그가 무언가 이젠 그만의 글로 세상에 말하고 있는 것인가 아닌가,아니 이제 자신의 목소리로 말을 시작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은 무얼까.그야말로 세상에 때 묻지 않은 자신이 소리를 내고 있는데 비속어로 말을 한다고 낮추어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덤으로 해 본다.

 

류근 그의 글이야말로 속이 시원한 글이고 진실된 글이라 본다. 거짓이 없이 솔직한 이야기로 드러내는 자신의 이야기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처럼 그의 글은 정말 다음을 내다볼 수 없다. 그래서 한 문장 한 문장 읽어내는 것이 정말 재밌고 기분 좋다. 이런 작가의 글을 만난다는 것은 행운인지도 모른다. 오래도록 그의 더 많은 글을 읽을 수 있다면 더 행운이겠다. 시와 산문이 겹겹이 햇살처럼 한꺼번에 창으로 밀고 들어오듯 봄볕을 한참 쪼이고 난 기분이 든다. 그런 그가 세상의 물질적인 욕심보다 자신의 안락보다 자신의 건강보다 다른 일들을 더 생각하고 물욕보다 더 값진 행복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이제 자신의 것을 챙겼으면 하는 바램도 있다. 그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정말 많은 듯 하다.자신의 삶이면서 때로는 타인의 삶이 되기도 하는 것이 인생인듯 하다. 너무 자학하면서 밑바닥까지 자신을 굴리는 일은 그만하고 좋은 글을 좀더 많이 쓰는 것이 모두에 줄 수 있는 그의 능력이다.

 

아침부터 눈물 나는 날 있다.

아침부터 눈물 나서,

독한 술 한 잔으로 피를 바꾸고 싶은 날 있다.

질 나쁜 사랑이 끝나고 홀연 무례한 인생만 남겨졌을 때,

비로소 가을을 앓는 지상의 나무들이 보이고

흐려진 지붕들이 보이고 멀리 가는 슬픔이 보인다.

나는 불친절한 별에 와서 너무 오래 떠돌았으니

아침부터 눈물 나는 세상조차 이토록 신비하고 고요한가.

먼 길 바라보는 새 떼들 곁에서 길을 잃으면

계절은 깊은 종소리 무덤 같고

술집 간판마저 비스듬히 몸매를 흐린다.

 

아아,아침부터 눈물 나는.

아침부터 눈물 나는 날이 너무 흔해서

내 슬픔 이토록 아름다운가.

 

내 슬픔 이토록 내 안에 찬란한가.

 

 

 

'너무 아픈 사랑이 사랑이 아니었음을' 너무 아픈 과거의 이야기는 이제 추억으로 묻고 훌훌 털고 건강한 삶을 일구어 나가는 그를 보고 싶다. 자신의 상처를 드러냄으로 해서 타인의 상처를 어르만져 주며 쓰담어 주듯 충분한 에너지를 주었다면 이제 남은 것은 자신의 몫이다. 요즘은 가요계도 B급이 세계적으로 먹혀들 듯 저자의 B급 삼류 트로트 시인이라고 해도 딱딱하게 굳은 가슴을 살팍살팍하게 해준다. 이외수의 '아니, 이런 개 같은 시인이 아직도 이 척박한 땅에 살아 남아 있있더니.' 라는 말처럼 분명 그의 언어는 B급이어도 우리에게 주는 에너지는 A급 토네이도다. 말랑말랑한 느낌이 오래갈 듯 하니 이 B급 바다에서 언제 헤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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