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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 내 가여운 개미
류소영 지음 / 작가정신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주변을 둘러 보면 모두 있는 듯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다.나도 또한 타인들에게는 있는 듯 없는 듯 그런 존재로 여겨질 것이고 다른 이들도 그런 삶을 살고 있다. 어쩌면 무관심일지 모르는 존재에 대한 관심이 결여로 우리는 세상을 살아 가고 있는지 모른다.요즘 누구나 하고 있는 SNS활동이며 블로그 활동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하는 활동이라 볼 수 있다. 그런가하면 쉽게 맺은 인연은 쉽게 무너지기도 한다.그만큼 자신 외의 타인에게 관심이 오래도록 유지 된다는 것은 힘든 세상인듯 하다. 어느 날 무척 오랜시간동안 친구로 지냈던 친구에게 사소한 오해로 인해 갑자기 친구해지가 되었다면 어떠할까? 그것이 다른 이유가 아닌 SNS의 활동을 보고 여인네들의 샘 혹은 질투에서 비롯된 일이라면.
누군가에게 관심을 받는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기도 하며 부담백배의 일이기도 하다. 관심을 받고 있으니 행동의 제약이 오기도 하고 더 잘해야 하는 부담이 병행하기도 하는가 하면 하나 잘못하면 전체를 잘못으로 몰고 가는 일도 있다. 저자의 책은 처음 접하는데 쉬운듯 하면서도 약간은 어려운 점도 있다. 단편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감이 없다' 그런 인물들이 겉으로 드러나며 밑그림이 그려지고 그녀에 의해 확연히 모습을 갖추게 된다. 존재감이 살아나게 되는데 우리 곁에도 이런 이가 있다. 혹은 살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렇다고 변하는 것이 있을까? 그녀가 스케치를 하며 살려내도 그 존재는 '가엽다' 라고 할 수 있다. 눈물겨운 가여움으로 인해 존재가 다시 흐려지는 듯 하다.
<물소리>,어느 수몰지역에 박교수와 함께 그이 제자들이 그곳을 찾는다. 왜 박교수는 그곳을 일부러 찾으려 할까? 수몰지역은 그야말로 수마가 할퀴고 간 것처럼 처참하다. 이런저런 이유로 땅이 제 가치를 잃은지 오래니 곳,사람도 자연도 모두 버린 곳처럼 존재 가지가 없어진 땅이다. 그곳은 박교수의 외가댁이 있었던 곳으로 어린시절의 추억 한자락이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유물이나 보물을 찾기 위한 발걸음이 아니라 자신의 기억 한 켠에 자리한 그 곳을 눈에 담기 위한 발걸음인데 그곳에서 아직 담기지 않은 물소리가 '찰방찰방' 나는 듯 하다. 얼마전에 수몰될 지역에 대한 다큐를 보았는데 환경적 가치를 따지기 보다는 국가는 국가차원의 공사만 강행하고 주민들의 입장에서는 생각을 하지 않아 댐공사가 강행되다가 잠시 중단된 곳의 이야기를 보게 되었다. 이미 그곳을 떠나 다른 곳에 자리를 잡고 그곳에 한발을 걸치고 농사를 짓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그들이 다시 돌아와 산다고 예전의 마을이 될 수는 없다.존재 가치를 잃은 곳이다. 그 땅의 존재가치를 국가도 주민도 되돌려 놓을 수는 없다.
<개미,내 가여운 개미>, 그녀가 죽었다.그것도 교통사고로 그자리에서 죽었다. 그런데 그녀는 그 순간에 무언가 먹고 있었을까 아닐까? 폭식증에 걸린 그녀 신주연,그녀는 사돈이며 그가 맘에 두고 있던 여자였다. 남들 앞에서는 조금 밖에 먹지 않는데 남이 없는 자리에서 그녀는 폭식을 아니 흡입하듯 먹는다. 일명 폭식증환자다. 그녀의 외모는 거구에 별다르게 튀지 않는 그야말로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조용조용하다. 그런 그녀가 왜 폭식증 환자가 되어야 했나? 어린시절 개미를 먹다가 엄마에게 들켜 매를 맺고 들어야 했던 말들이 트라우마처럼 그녀의 인생을 옥죄고 있다. 그것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다가 죽음까지 이르고 말았다. 그리고 그녀의 조카가 다시 그녀처럼 개미를 집어 입에 넣고 있다. 그녀가 흘려 버린 페르몬이 조카에게 옮겨간 것일까? 죽음 이후에 그녀가 부활하듯 그녀의 존재가 드러나지만 결코 행복한 존재가 아니다.
<또 밤이 오면> 육십사세 그녀가 집을 나갔다. 그녀는 시어머니다. 왜 그녀가 가출을 그 나이에 했을까? 도무지 식구들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그녀는 어떤 인생을 살아왔을까? 며느리의 눈을 통해 그녀의 지난난 삶이 그려진다. 시골에서 살다 서울에 올라와 힘들게 살고 학교까지 마친 그녀,나이에 굴하지 않고 서예며 이것저것 배우러 다녔던 그녀가 왜 갑자기 가출을 결행했을까. 출산휴가로 아직 집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 그녀,이제 직장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녀가 가출을 했으니 망설여진다. 시어머니이며 한 집안의 어머니인 그녀지만 그녀는 여자다. 그녀의 삶을 '엄마 혹은 어머니'로 가두어 두고 있지는 않았을까? 여자로 혹은 그녀만의 삶을 한번이라도 살았다면 가출을 했을까? 그런 시어머니가 어디 좋은 곳에 여행을 잘 하고 있으리라,아니 전화가 오면 바로 달려가 받을 수 있기를 고대하는 그녀.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전화를 받으려고 뛰며 끊어지길 바란다. 무슨 맘일까? 여자의 적은 여자라더니 어머니와 며느리의 보이지 않는 줄다리기가 작용한 것일까? 아니면 정말 병이라도 있어 그녀가 잠적한 것일까.
<옷 잘 입는 여자> 모두에게 그녀는 '옷 잘 입는 여자' 그야말로 유행을 따라가며 누구에게도 뒤쳐지지 않는 여자이다. 하지만 그녀의 진짜 속내는 무엇일까? 그녀의 겉모습만 판단하던 친구와 회사직원들 그녀가 옷 잘 입는 여자가 되어야만 했던 지난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병원에 다니셔야 하는 엄마를 돌보며 자신의 배움을 놓지 않고 열심히 하며 옷도 잘 입는 여자.우리가 사람의 겉모습을 보고 판단한다는 것은 미스다. 어느 누구든 함께 부딪혀 보고 속을 보아야 그사람이 품고 있는 진주를 발견하게 되지 겉모습으로는 진주의 가치를 전혀 알 수가 없다. 아니 진주를 품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에 그녀가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고 친구로 받아 들여진다. 모두가 그녀 투성이다.
위의 단편들 말고도 집안에서 혹은 여자친구네 집에서조차 그의 존재 가치가 없는 남자가 십여일 동안 가출하기 위한 자금 마련을 위해 입이 크다는 이유로 입에 빨대 많이 넣기 기네스에 도전하게 된다. 하지만 자신이 우승을 했을 경우 어디 한 켠에라도 자신의 사진이 실린다면 어떻게 될까? 기네스 시작 전과 후는 어떻게 달라질까? 자신의 존재 가치가 없이 살던 때와 기네스에 도전하게 됨으로 인해 존재 가치가 드러나게 되었는데 그렇게 해서 여자친구를 놓치고 싶지 않고 여자 친구의 부모님께 자신의 그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 처음 시작과는 전혀 다르게 마음이 움직이고 있다. 존재가 드러난다는 것은 그런 것일까? 존재가 드러나지 않아 수면으로 띄우고 싶다가 수면으로 올라오면 또 받게 되는 후광을 두려워 하는 우리 인간들, 무엇이 두려운 것인가.
8편의 이야기는 있으면서도 없는 것처럼 혹은 죽음이나 가출 그외 이유로 부재나 마찬가지인 존재들을 다시금 수면 위로 존재를 드러내 놓는다. 그녀가 그리지 않았다면 잊혀질 존재들이 우리 곁에 존재하긴 존재했다는 것을 말해주려고 하는가.<개미,내 가여운 개미>에서 처럼 신주연이 폭식증을 가지게 된 계기는 아주 작고 가여운 '개미'라는 존재에 의해서다. 누가 그런 존재를 의식이나 하겠는가.아니 그런 존재로 인해 한 인간이 무너질 줄을 알았겠는가? 댐에 작은 구멍이 댐을 무너뜨리 듯 아주 사소하고 작은 존재들이 아니 그런 무수한 삶이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고 우리도 그런 존재임에 틀림이 없다. 모두가 아주 미미한 존재이지만 존재 가치는 분명히 있다. 가볍게 읽은 소설이지만 무언가 큰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저자의 이름을 기억하게 해주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