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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거네 - 외롭고 슬프고 고단한 그대에게
류근 지음 / 곰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너무 아까운 사람이 너무도 일찍 갔다. 그사람 故 김광석,그의 노래를 대부분 너무 좋아하고 노래에 얽힌 추억이 있어서일까 오래도록 가슴에 맴도는데 그 중에서 내가 좋아는 노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도 한때 무척이나 좋아했고 지금도 여전히 좋아하는 노래중에 하나다. 그 노래의 작사가가 '류근' 이라는 시인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고 그의 이야기를 이 책을 통해 날것의 언어로 듣다보니 정말 팔딱팔딱 싱싱함을 간직한 활어의 그 활력소가 오래도록 앙금으로 남아 잊혀지질 않을 듯 하다.
199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시인으로 등단하고 18년 만인 2010년에 <상처적 체질>이라는 시집을 냈다고 한다.그리고 이 산문집인가? 왜 그가 천재적인 능력을 가지고도 시집이나 다른 책을 쓰지 않았는지 이 책을 보면 그 날것의 냄새를 아니 그의 현실을 어느 정도 엿볼수(?) 있다. 현실과는 담을 쌓듯 한 그의 삶,술 라면 월세 여자(?) 그의 글에서 보여지는 몇 가지 주제를 고르자면 이런 류일까. 그런가 하면 '조낸'과 '시바'가 비속어가 아니라 평상시 그가 쓰는 일반어,아니 말이 주는 어감이 욕이 아니라 어떻게 받아 들이고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욕보다는 그의 현실과 글쓰기의 세계를 연결해 주는 가교처럼 받아 들여지는 왜일까.
사람을 만날 때마다 술을 마셨다. 술 마실 때마다 사람이 있었다. 따라서 내가 마신 술의 양은 내가 만난 사람의 양에 비례한다. 그토록 많은 술을 마셨으니 그토록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었다는 뜻이다.나와 알고 있는데 술자리에서 조우하지 못한 사람은 아직 나를 만난 사람이 아니다.내가 알고 있는데 아직 술자리에서 술 한 잔 권하지 않은 사람은 인연을 제대로 맺은 사람이 아니다.술자리에서 만나야 한다.술자리에서 만나야 진짜 만난 것이다.
그의 언어를 읽다보니 내 속이 뻥 뚫린 것처럼 속이 시원한 것은 무슨 느낌이지. 글은 지난 이야기와 현실이 모호하게 겹쳐져 있는 것 같은데 월세가 몇 달치씩 밀려도 한 끼 굶주린 속을 채워줄 라면 하나 제대로 있지 않아도 그가 자신을 자해하며 드러내는 현실은 풍자적이라 그럴까 왜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것으로 보이지 않고 낭만적으로 보일까? 그가 보여주는 현실속 그는 동네 닭도 네덜란드산 개도 매미조차 그를 밑으로 보는 듯 하지만 주머니가 가벼워도 그가 써내는 글들은 왜 가슴이 싸아 하면서도 시집 한 권이라도 구매를 해 라면값에라도 보태게 해야할 것만 같으면서도 그가 무언가 이젠 그만의 글로 세상에 말하고 있는 것인가 아닌가,아니 이제 자신의 목소리로 말을 시작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은 무얼까.그야말로 세상에 때 묻지 않은 자신이 소리를 내고 있는데 비속어로 말을 한다고 낮추어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덤으로 해 본다.
류근 그의 글이야말로 속이 시원한 글이고 진실된 글이라 본다. 거짓이 없이 솔직한 이야기로 드러내는 자신의 이야기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처럼 그의 글은 정말 다음을 내다볼 수 없다. 그래서 한 문장 한 문장 읽어내는 것이 정말 재밌고 기분 좋다. 이런 작가의 글을 만난다는 것은 행운인지도 모른다. 오래도록 그의 더 많은 글을 읽을 수 있다면 더 행운이겠다. 시와 산문이 겹겹이 햇살처럼 한꺼번에 창으로 밀고 들어오듯 봄볕을 한참 쪼이고 난 기분이 든다. 그런 그가 세상의 물질적인 욕심보다 자신의 안락보다 자신의 건강보다 다른 일들을 더 생각하고 물욕보다 더 값진 행복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이제 자신의 것을 챙겼으면 하는 바램도 있다. 그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정말 많은 듯 하다.자신의 삶이면서 때로는 타인의 삶이 되기도 하는 것이 인생인듯 하다. 너무 자학하면서 밑바닥까지 자신을 굴리는 일은 그만하고 좋은 글을 좀더 많이 쓰는 것이 모두에 줄 수 있는 그의 능력이다.
아침부터 눈물 나는 날 있다.
아침부터 눈물 나서,
독한 술 한 잔으로 피를 바꾸고 싶은 날 있다.
질 나쁜 사랑이 끝나고 홀연 무례한 인생만 남겨졌을 때,
비로소 가을을 앓는 지상의 나무들이 보이고
흐려진 지붕들이 보이고 멀리 가는 슬픔이 보인다.
나는 불친절한 별에 와서 너무 오래 떠돌았으니
아침부터 눈물 나는 세상조차 이토록 신비하고 고요한가.
먼 길 바라보는 새 떼들 곁에서 길을 잃으면
계절은 깊은 종소리 무덤 같고
술집 간판마저 비스듬히 몸매를 흐린다.
아아,아침부터 눈물 나는.
아침부터 눈물 나는 날이 너무 흔해서
내 슬픔 이토록 아름다운가.
내 슬픔 이토록 내 안에 찬란한가.
'너무 아픈 사랑이 사랑이 아니었음을' 너무 아픈 과거의 이야기는 이제 추억으로 묻고 훌훌 털고 건강한 삶을 일구어 나가는 그를 보고 싶다. 자신의 상처를 드러냄으로 해서 타인의 상처를 어르만져 주며 쓰담어 주듯 충분한 에너지를 주었다면 이제 남은 것은 자신의 몫이다. 요즘은 가요계도 B급이 세계적으로 먹혀들 듯 저자의 B급 삼류 트로트 시인이라고 해도 딱딱하게 굳은 가슴을 살팍살팍하게 해준다. 이외수의 '아니, 이런 개 같은 시인이 아직도 이 척박한 땅에 살아 남아 있있더니.' 라는 말처럼 분명 그의 언어는 B급이어도 우리에게 주는 에너지는 A급 토네이도다. 말랑말랑한 느낌이 오래갈 듯 하니 이 B급 바다에서 언제 헤어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