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 시프트 - 시간을 사고파는 신세계 푸른숲 어린이 문학 30
김혜정 지음, 김숙경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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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을 파고 사는 이야기가 담긴 책을 몇 권 읽어서인가 이 책도 그와 비슷한 내용일까 하고 은근 걱정하게 되었다. 시간을 파고 산다고 해도 모두가 같은 이야기일 수는 없지만 돈으로 환산하여 자신의 시간을 판다고 한다면 아마도 처음에는 좋겠지만 나중에는 분명히 후회하는 일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시간은 돈이다.' 라는 말이 미래에는 성립이 될까

 

 

나도 너도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명제이다. 그런 명제 속에서 시간을 내 맘대로 사고 팔 수 있다면 돈이 필요한 경우에는 장기를 팔 듯 자신의 미래의 시간을 돈으로 바꾸어 현재를 좀더 풍요롭게 살고 싶은 사람들이 분명 있다.그런가하면 돈이 정말 필요한 사람은 시간을 팔아 해결을 하게 되기도 할 것이다.그렇지만 거기에 분명 '나쁜 점'도 있다. 미성년자는 오류나 위험성이 따르기도 하고 미래의 시간을 미리 팔아 현재를 풍요롭게 산다는 것은 현재로서는 좋아 보이지만 미리 늙는다는 이야기인데 그러고 싶지는 않다.현재를 즐기며 현재를 행복하게 살고 싶지 결코 미래의 것을 가불 하고 싶지 않다.

 

지오네 엄마와 아빠는 사년치의 시간을 팔아 현재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미래의 시간으로 받은 돈으로 좀더 풍요로운 현재를 누리고 있고 시간 관리사인 엄마의 프로그램에 따라 지오도 늘 철저한 시간 계획표대로 움직이며 학교에 가고 공부하고 친구를 만나고 집에 오고 모든 것이 계획표대로 움직이는 로봇처럼 일분 일초도 틀리지 않고 행동을 한다.그런 계획표 때문에 친구들과도 멀어지고 엄마의 희망인 '시간 영재학교'에 들어가기 위하여 열심히 하고 있지만 벌써 몇 번 떨어져 더욱 열심히 하고 있다. 아빠가 하는 가게에는 이쁜 '시아누나'가 있다. 그 누나를 보기 위하여 지오는 황금과 같은 시간 '30분'을 정말 행복하게 쓰고 있는데 누나에게 무슨 비밀이 있다. 누나가 알고 있는 미스터리라는 이사장이며 누나가 교통사고를 당해 어린시절 기억을 잊어 버린 것이 또한 가엽기도 하다.친구 가람이 안다는 뇌과학연구소를 소개시켜줘 누나가 과거 기억을 찾긴 했지만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반면 친구 가람은 자신처럼 살지 않는다. 친구들과 맘껏 놀기도 하고 게임도 하고 그야말로 현재의 시간을 즐기며 살고 있는데 자신은 누굴 위해 열심히 시간관리를 하며 누구보다 앞서 나가려고 하고 있는지. 아빠는 엄마의 스케즐에 맞춰 움직이다가 더이상 엄마의 생각과 함께 할 수 없다면 반기를 들고 집을 나가버리셨다. 엄마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몇 년치 시간을 더 팔자는 것이다.그러지 않아도 미리 늙어 친구가 없는데 삭막한 현실을 어떻게 받아 들이라고 또 판다는 것이고 욕심이 언제 끝날지 몰라 아빠는 엄마의 의견에 따를 수 없다는 것,그렇게 아빠는 혼자 여행을 떠나시고 지오는 열심히 시간영재학교에 합격하기 위하여 공부를 하며 시아누나의 비밀을 알게 된다. 미성년자의 시간 불법거래 피해자 시아누나,정말 미성년자 불법 거래가 있었던 것이고 부작용도 있었던 것이다.그런데 그렇게 좋아하던 시아누나가 누나가 아니라 친구였다니.

 

가끔은 내가 시간을 살고 있는지 시간이 나를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친구 유나의 사정을 알게 되고 나면서부터 지오는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아빠의 일도 그렇고.결코 시간을 앞서 나가며 산다는 것이 행복한 일이 아님을,현재를 자신만의 시간으로 행복하게 사는 것이 더 행복한 일이란 것을 이모의 삶에서도 알게 된다.엄마는 모든 것을 '기계'에 의존하지만 이모는 그렇지 않다. 쌍둥이였던 엄마와 이모의 삶은 동전의 양면처럼 판이하게 다르다. 엄마의 삶이 좋은 것처럼 비춰졌지만 이젠 그렇지 않다. 엄마의 계획표대로 움직이던 지오는 자신만의 생각과 계획을 갖게 되고 결코 시간을 파고 사는 일이 좋은 일이 아님을 알게 된다. 미래의 시간을 미리 판다면 그만큼의 추억과 행복이 없어지는데 그렇게는 살고 싶지 않다. 아무리 문명이 발달하여 모든 것이 기계가 대신해 준다고 해도 사람이 직접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시아와 그녀의 아빠처럼 시간을 미리 팔다가는 인생을 모두 낭비하거나 죽음에 이르게도 되는데 그런 모험은 하고 싶지 않다.

 

미래는 시간 전쟁인가 시간과 관계된 이야기의 책들이 많다. 미래의 재산인 아이들은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모 특히나 엄마의 계획표대로 욕심대로 움직이는 로봇처럼 그렇게 일분일초도 틀리지 않게 움직이고 있다. 정말 불쌍하다.그렇게 하여 아이들이 얻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의 교육이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똑같은 틀에 넣고 찍어 내려고 하지 아이들 개개인의 적성과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모두가 좋은 학벌과 좋은 직업만 선호하지 어렵고 힘든 일은 나몰라 하는 그런 사회로 가고 있으니 그 밑의 3D일은 외국인 노동자가 채우기도 하고 그런 일을 하면 무슨 이상한 사람 취급을 하면서 신용불량자가 되어도 일을 하지 않으려는 고학력자가 많다.시간은 스스로 관리하고 자신의 능력에 맞게 스스로 노력하는 것이지 부모의 잣대에 의해 움직인다면 분명 탈이 난다.인생이 허무하게 소비되고 나서 후회해봐야 지나간 시간은 다시 되돌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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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란다정원] 커피나무 다시 심어주기

 

 

 

 

올 초였나보다 [커피나무]가 울집에 오게 된 것이.다이소에 갔다가 화분에 심어져 있는 커피나무를

보는 순간 얼른 가슴에 안고 말았다. 작은 화분에 심어져 있는 것이 오천원, 이제 화분을 더이상

늘리지 말자고 해 놓고 또 화분을 집어 든 것이다.이것이 마지막이야.. 하고는 말이다.

 

울집에는 화분이 너무 많다. 화분을 들여 놓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베란다엔 모두 화분으로 가득

들어차 있다. 그런데 녀석이 눈에 들어와 화분도 없고 마침 주어다 놓은 플라시틱 화분에 대충

심어 놓았는데 가지가 세개인줄 알고 있었는데 이녀석이 3그루였던 것이다. 그냥 화분에 심어져

있던채로 그냥 심어 놓아서 잘 크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는데 마침 여시랑 산책을 나갔다가

화분 발견,그런데 경비아저씨가 없어 가져오질 못하고 있다가 옆지기가 나간다고 해서 경비아저씨

께 물어보고 가져다 달라고 했더니 바로 내가 본 화분을 가져다 주었다. 멀쩡한 화분을 그냥 버리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그렇게 울집에 온 녀석들이 많다. 그런가하면 마춤하게 저층에서 인테리어

공사를 하며 화단도 손을 봤는지 화단 흙을 모두 아래 화단에 버렸다.무척 많은 화분흙인데 두툼하게

펴 놓은 것이 내가 원하던 흙이라 얼른 봉지들고 가서 화분흙 봉지에 두개나 가득 퍼 담아 왔다.

 

그렇게 하여 커피나무는 세개를 하나씩 떼어 내어 다른 화분에 하나씩 심어 주었다. 두그루는 안방

베란다에 놓고 하나는 거실베란다에 있는 화분에 심어 주었는데 어느 것이 잘 크려나 모르겠다.

함께 있다가 하나씩 심어 놓았드니 더 튼튼하게 잘 클 듯 하다. 커피나무는 처음인데 생각보다

정말 잘 큰다. 물과 햇빛 고려를 잘 해주면 무리없이 클 듯 하다.이러다 커피콩도 따게 되는 것 아닌지.

 

 

알로카시에..

 

아파트 화단에 누군가 화분 흙을 버렸는데 그곳에서 작은 잎이 하나 삐죽 올라와 있다.

여시 산책을 시키다가 작은 잎이 귀여워 뽑아 보았더니 [알로카시에]다.울집에도 누가 버렸는지

밑에 화단에 버려졌던 알로카시에를 주어다 두어해 잘 크고 있는 녀석이 있는데 여건 그야말로

작은 뿌리에서 잎이 아나 삐죽 나온 상태였다. 그냥 빈 작은 화분에 꽂아 두었더니 언제 잎이

하나 반짝반짝하게 올라와 있다. 울집에서 뿌리를 내리고 잘 살려나보다.

 

 

올해는 행운목들이 잠잠 하다. 꽃대를 올릴 때가 되었는데 아무리 쳐다 보아도 잠잠하더니

두 개의 행운목에서 잎이 다시금 무성하게 나오며 크고 있다. 뭔가 조짐이 보이는 듯도 하고.

암튼 행운목꽃을 다시 보여줄 때가 되었는데 침묵을 지키고 있으니 이 또한 은근하게 기다려

진다는 것. 여름을 지나고 가을 바람이 부니 초록이들도 새로움이 보인다. 뜨거운 여름을 잘

이겨내 주었으니 이제 녀석들에게 무한한 관심을 가져야할 듯 하다.

 

201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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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혜영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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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소년이 살인을 저질렀을까 하지 않았을까? 아니 그 고백을 듣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라는 난제를 안겨 주고 흔들어 놓았던 <고백>의 저자가 이번에는 불이 나던 그날, 어머니와 딸이 위험에 처했다면 누구를 구해야 하나? 라고 질문을 한다. 어머니를 구하고 자식을 다시 낳아야 하나 어머니보다 더 창창한 자식을 구해야 하나? 정말 난제다. 소설은 소녀가 다세대 주책에서 뛰어 내려 의식이 없다. 자살일까 타살일까? 그의 엄마는 분명 그녀를 '금지옥엽' 으로 소중하게 키웠다고 했다.금지옥엽에 담긴 의미는 무엇이지.겉으로 아무 문제 없던 소녀는 왜 자살을 선택해야 했을까?

 

'엄마의 고백' 과 '딸의 회상' 으로 이어지는 소설은 아직 의식을 찾지 못한 소녀를 두고 엄마가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면서 부터 시작된다.아니 신 앞에서 '고해성사'를 하듯 시작을 한다. 자신이 엄마와 아니 부모아 각별하게 사랑을 받으며 자랐던 이야기며 그런 자신이 남편을 만나게 된 계기도 엄마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자신보다 엄마가 그를 더 밑바탕까지 들여다 봄으로 해서 그와 결혼하게 된다. 자신의 그림은 밝은 색이었지만 어둔 색으로 그림을 그렸던 다도코로,하지만 엄마의 힘이 있어 그들은 결혼하게 되었고 장남이지만 시댁과는 결배로 마을에서 벗어난 산꼭대기 위에 집에서 그들만의 '아름다운 집'에서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며 살 수 있었다. 홀로 남겨진 친정엄마와 각별한 사이를 유지하고 외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은 딸까지 그렇게 그들에게 행복한 날들만 계속될 줄 알았는데 어느 날 태풍이 몰아치던 날 밤에 모든 것은 한순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자신의 엄마와 어린 딸이 토사에 밀려 무너진 장농 밑에 깔려 생사를 넘나드는 상황에서 급박하게 누구가를 먼저 구해야 했던 그 시간,집안에 불까지 나서 더욱 상황은 위급해졌던 것. 그 순간 친정엄마는 자신이 죽음을 택하고 소년딸을 구하게 한다.

 

"너를 낳아서 엄마는 진심으로 행복했단다,고마워. 너의 사랑을 이번에는 저 아이에게 쏟아부어 금지옥엽으로 소중하게 길러주려무나."

 

모든 것을 잃고 시댁의 '저택' 에 들어가 살아야 했지만 시댁은 결코 '며느리'의 아픔은 뒷전이고 자신들에게 유용하게 쓸 일꾼처럼 부려 먹기만 하는 가운데 딸과 엄마의 관계는 소원하게 된다. 자신과 엄마의 사이는 정말 각별해서 친정에서는 자신이 소중한 존재로 여겨지며 칭찬을 받으며 살았는데 결혼을 하는 것과 동시에 그는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지듯 그녀의 존재는 바닥에 떨어져 칭찬을 받기 보다는 늘 욕을 먹고 못한다는 소리에 집안 일로 농사일로 거기에 시누이들의 모멸찬 안하무인까지 견디어내야 했는데 남편이란 존재는 그녀의 편도 아니고 늘 모든 일에 뒷전이듯 묵묵부답이다. 아내와 어머니 사이에서 남편의 존재란 정말 힘들면서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고부간의 갈등의 구조가 달라진다. 나 또한 이런 경우를 경험했고 늘 지금도 그런 시간을 견뎌내고 있고 모든 며느리들이 겪고 느끼는 일이겠지만 남편이라는 기어가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모두의 가정이 깨질 수도 있다. 자신의 친정 엄마가 보여준 '모성'을 그대로 물려 받아 자신 또한 딸에게 그런 모성으로 대하지만 딸과 자신과의 관계는 어느 순간부터 금이 가 있다. 왜?

 

그리고 답이 없을 듯한 시댁이라는 '저택'에서의 인간구조가 정말 '엄마'의 삶을 흔들어 놓는다. 남편은 모든 일에 방관하고 있을까? 아버지에게 폭력을 받은 피해자라면 아버지의 죽음 후에는 달려져야 하는데 그 후로 똑같은 방관자라면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 딸은 엄마와의 관계는 소원하지만 엄마의 대변인처럼 시댁과 맞써는 방패가 되어 늘 엄마 앞에서 방패막이가 되어 주지만 엄마에게는 낯설고 손끝하나 터치할 수 없는 존재로 거듭난다.왜? 그둘의 관계가 왜 점점 벼랑끝으로 치달리고 있는가. 시어머니는 역시나 기운을 잃으면 어쩔 숭 없이 며느리에게 의지하는 것은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같은가보다. 남편 없고 딸들 힘 없고 거기에 아들까지 자신의 편을 들지 않으니 언덕이 될 수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며느리,그런 며느리를 재산 노리고 있다고 욕이나 하는 못된 인간들.하지만 세상사 인간사는 선이 이기도 진실은 언젠가 그 빛을 보게 되어 있다. 그 빛이 너무 늦게 빛나서,어른들이 힘이 없고 돈이 없으면 꼭 나타난다는 것이 문제지만 말이다.

 

눈앞에 있는 아빠는 꿈의 집에 있던 아빠와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꿈의 집이 타버린 것은 할머니의 이별뿐 아니라 아빠와의 이별을 의미하기도 했다.

 

좀더 일찍 '엄마와 딸' 이 대화로 풀었다면 '아내와 남편'이 그렇게 대화로 지난 시간을 가슴에 담아 두지 않고 풀어냈다면 어떻게 달라졌을까? 소녀가 자살을 선택하는 순간이 왔을까? 너무도 큰 진실과 부딪혀 이겨낼 힘을,아니 자신의 엄마를 대할 의지를 잃어버린 소녀가 너무도 가엽다.그녀가 알아버린 진실의 무게가 너무 무겁고 힘겹고 버겁다. 지금껏 진실을 가슴에 묻고 자신을 '금지옥엽'으로 소중하게 키워 준 엄마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그것이 결코 '죽음'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늘 '과거'의 '아름다운 집' 만 그리며 헤어나지 못하는 남편이 과거 속에서 살아가듯 한다면 그 또한 가정이 온전치 못할 것이다. 모든 삶의 멍에를 지고 묵묵히 자신의 길인 며느리이며 아내이며 엄마의 길에서 '모성'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며 딸을 지킨 엄마의 힘.그래서 모성일까? 자신의 어머니가 죽음으로 물려주려 했던 힘이 그녀에게 오롯이 담겨 자신의 딸을 지키고 싶었지만 너무고 큰 시댁이라는 저택의 난관에 부딪히며 나약해져 가는 순진한 그녀,정말 순진해서 아무것도 몰랐을까.

 

엄마와 딸의 관계는 애증의 관계라 한다.나 또한 그런 시간을 지금 걷고 있음을 느끼며 하루 하루 살아 가고 있고 나 또한 엄마의 딸이며 두 딸의 엄마다. 내가 겪었던 일들과 비슷한 일들이 겹치기도 하고 며느리들이 혹은 아내들이 겪었을 지금도 겪고 있을 삶이 투영되서일까 더 재밌게 가슴의 울분을 끓어 올리며 읽었다. 타인에게 악을 행하면 꼭 벌을 받게 되어 있다.그것이 자신에게 혹은 자식에게 일어날 수 있는데 그것을 무시하는 이들이 종종 있다. 늘 승승장구하는 날들만 있을 줄 알고 안하무인 겪으로 '며느리'를 마구 마구 부려먹는 이들이 종종 있다.그런 이들은 아니 그런 가문의 남편들은 꼭 읽어보았으면 한다. 철옹성도 언젠가는 무너지듯 인간사 백년만년 사는 것이 아닌데 타인에게 악함을 행하기 보다 선행을 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알아야 하는데 이기적인 인간들이 너무 많다.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것이 '모성' 이듯 아름다운 어머니에서 어머니로 그리고 딸에게 이어지는 모성의 힘은 대단하다. 모두에게 칭찬 받을 만한 모성이 되지만 아름답지 못한 모성을 가진 어머니의 딸은 그 자식에게도 악행을 일삼는다. 자식이 무얼 보고 배우겠는가.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 했거늘 누굴 탓하겠는가. 자신이 만약에 어머니를 구하고 자식을 죽게 했다면 이런 일련의 일들이 일어났을까? 그녀의 삶은 주변의 삶은 변했을까? 어떤 이야기보다 어떤 선택보다 전율이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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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모토 바나나의 인생을 만들다
요시모토 바나나, 윌리엄 레이넨 지음, 황소연 옮김 / 21세기북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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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모토 바나나를 좋아해서 책을 몇 권 가지고 있는데 읽지 않고도 그녀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느끼고 있는 작가 또 요시모토 바나나다.그렇다고 무척 저자를 잘 아는 것도 아닌데 왜 친근하면서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책을 읽지 않았는데.낯설지 않음에서일까? 암튼 다른 책보다 이런 더 욕심이 난다.물론 소설도 좋고 에세이도 좋지만 이른 글은 챙겨 보는 것이 저자와 더 가까워지는 길이라 생각을 한다.그것도 요시모토 바나나와 세계적인 영혼 치료사인 '윌리엄 레이네'이 서로 주고 받은 '편지글'이라 더 친근하면서도 다정다감함이 느껴져서 읽고 싶은 책이었다.

 

영혼 치료사하면 낯선데 언젠가 티비에서 동물들 영혼과 교감하며 치료를 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보고는 나도 반려견을 키우고 있어 동물과 교감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사람은 아프면 말을 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표현을 할 수 있지만 동물들은 죽음이 닥쳐야 알 수 있다.그렇게 하여 치와와 두마리를 키우고 있었는데 11년이 되던 해에 치와와 숫놈을 심장마비로 갑자기 잃게 되었다. 그 전까지 아픈 기색하나 없이 옆에서 잘 먹고 잘 놀고 방금 전까지 함께 씩씩하게 놀던 녀석에게 갑자기 죽음이 찾아 왔다. 삽시간에 닥친 일이라 더욱 난감했고 녀석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내 머리와 심장이 따라가지 않아 한동안 너무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얼마전에 친정 아버지를 보내 드리고 무척 힘든 시간을 견디어 내고 있던 터라 녀석의 죽음은 또한 큰 아픔으로 날 일어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남겨진 한마리가 건강했던 것도 아니고 녀석도 죽음의 문턱까지 가는 일을 두서번 겪었던 터라 더 고통을 이겨내기엔 내가 지탱할 힘이 없었다. 동물과 교감할 수 있었다면 그들의 아픔을 읽었을텐데.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어떻게 반응할지는 나의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만족시켜야 하는 사람은 딱 한 명, 바로 나 자신뿐입니다.자신의 생각대로 상대방이나 상대방의 생각을 바꾸려 하지 말고,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요.

 

현대는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이 다양하게 있고 블로그나 SNS등 요즘은 대부분 한두가지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넘쳐나는 아마츄어들의 글 홍수 속에서 과연 얼마나 타인의 이야기에 '진정으로' 귀 기울이며 살까? 건성 건성 댓글을 남기고 추천을 누르고 공감을 하는 표현의 자유에 가려 '진심'은 얼마나 가려지고 있을까? 그런면에서 이메일이나 편지로 글을 나눈다는 것은 그만큼 더 자신을 드러내 놓고 솔직하고 진실되게 표현할 듯 하다.아니 그런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 두사람의 이야기가 읽는 것만으로 힐링의 시간이 된다. 꾸미거나 포장이 되지 않은 '요시모토 바나나'를 만나고 그런 그의 질문에 인생의 선배로 다른 관점에서 그녀를 보거나 인생을 혹은 그외의 이야기를 나누는 글들은 어렵지 않고 읽어 나가는 것으로 자신이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듯 하다. 인생은 타인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동물을 사랑한다는 건 쓰다듬거나 마구마구 귀여워해주는 게 아니라 동물을 돌보는 인간이 행복감을 느끼고 동물 자체를 사랑해서 그저 담담하게 보살피며 함께 지내는 일상이 존재하는, 그런 게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잣대로 모두를 평가하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세상의 잣대에 휘둘려 늘 휘청거리는 사람도 있다. 왜 상대의 의견이나 취향을 존중해주지 않고 바꾸기만 바라는 것인지,그런 일이 내게도 있었다. 그것도 무척 가깝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일을 당하고 나니 정말 어이가 없기도 했지만 내가 하는 말은 늘 핑계가 변명이 되고 내 일상은 남에게 생색을 내기 위한 것으로 비춰져 상대방과 사이에 틈을 만들어 놓았다. 왜 나를 인정하듯 타인을 인정하지 않을까? 내가 아프면 타인도 아픔을 느낀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것인지. 무조건적으로 고통을 유발하는 행동을 해 놓고 그 모든 것을 상대에게 뒤집어 씌우는 이기적인 이들도 많다. '우리의 영혼이 구하는 것들, 우주의 흐름에 맡기고 우주의 에너지와 함께 하는 삶, 사랑하다는 것은 생명을 품어 기른다는 것,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영성 그리고 치유, 지금 이 순간을 느끼는 행복' 삶은 이 순간 행복을 느끼기 위해 아니 행복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살아가는 것 같다. 하지만 자신의 행복은 인정하면서 타인의 행복은 인정하지 않지 않는 이기심도 비일비재하다.

 

인간이 육체를 갖고 살아가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가시밭길을 걸어가며 고통을 경험하기 위함입니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편지는 그가 작가로의 삶보다는 일상적인 그를 더 많이 만나게 되는 것 같다. 작가로의 삶도 힘든 길이겠지만 삶면서 부딪히는 일들을 담담하게 글로 나눔으로 그 또한 평범한 여자라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담아 두기 보다는 꺼내어 보임으로 해서 더 이상 고통이 아니라 이제 앙금을 완전히 거두어내듯 너울을 하나 하나 이겨내며 망망대해로 나아감이 함께 인생의 바다를 노 저어 가고 있음을 따뜻함을 전해주는 일러스트와 함게 하다보면 순항의 돛을 편 듯 하다.가시밭길이 없다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 가시밭길을 헤쳐 나간 경험은 또 다른 일을 만났을 때 더 큰 시련에 흔들리지 않는 강인함을 안겨주듯 이겨내는 힘을 준다. 요즘 내게도 누군가가 건네주는 '위안' 한마디가 필요한데 잔잔한 위안을 얻은 듯 하다. 내가 등을 돌리지 않고 상대가 등을 돌렸으니 돌아 오리라 생각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니 작은 것에도 감정의 가시가 엉켜 풀어진다는 것이 힘들다. 그래도 이 모든 시간들이 더 단단한 내일을 위한 시간이라 믿는다. 내 아픔을 보듬을 줄 안다면 타인의 아픔을 토닥여 줄줄도 알아야 한다.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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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쑤운 도토리묵 야채무침

 

 

찬바람이 불고 도토리묵을 처음 쑤었다. 식구들이 모여야 해먹어도 맛있지 혼자서 먹기엔 그렇다.

큰딸 생일을 미리 축하해 주기 위하여 내려오라 했더니 녀석이 온다고 해서 막내도 오라해 함께

하려니 반찬이 마땅하지 않아 도토리묵을 쑤었다. 한 컵을 쑤면 죽그릇에 반 정도 담아 두개 정도

나와 두서너번 먹을 수 있고 늘 한 컵씩만 쑤고 있다.

 

 

*준비물/도토리묵,오이,청양고추,양파,당근, 다진마늘 그외 양념

 

*시작/

1.도토리가루 한 컵에 물 다섯 컵을 넣고 약간의 굵은 소금과 기름 한두방울 넣고 한방향으로

저어 도토리묵을 쑤어 준다.

2.쑤어서 굳힌 도토리묵을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주고 오이 당근 양파 청양고추등을 썰고

그에 갖은 양념을 넣어 먼저 무쳐 준다.

3.야채무침에 썰어 놓은 도토리묵을 넣고 살살 한번 더 무쳐준다. 통깨 검은깨 등을 뿌려 주면 끝.

 

간장양념하여 한번 먹고

 

 

 

간장양념을 해서 끼얹어 먹는 것도 좋아하지만 갖은 야채를 넣고 무쳐 주어도 잘 먹는다. 도토리묵은

다이어트 식품으로 좋고 중금속 해독에도 좋으니 가끔 먹어주면 좋다. 직접 묵가루를 사다가 해 먹게

되면 묵을 쑤는 재미도 느낄 수 있고 그 때 그 때 필요할 때마다 반찬으로도 유용하다. 난 산행가면

그곳 주민들에게서 도토리묵가루를 사가지고 온다.그렇게 하면 두고두고 해 먹고 참 좋다.도토리가루를

한 컵만 쑤어도 두어번 먹을 양이 나오기 때문에 많이 할 필요가 없다. 한 번해서 간장양념장을 해서

한 번 먹고 야채와 이렇게 해서 먹으면 훌륭한 반찬이 된다. 요즘 오이가 비싸긴 하지만 막내가 오이를

좋아해서 마트에서 몇 개 사왔다. 끝물이라 그런가 얼마 없다. 딸들은 파프리카를 좋아하진 않지만

파프리카를 넣어 주어야 더 맛있다.

 

2013.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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