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의(靑衣)
비페이위 지음, 김은신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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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비페이위라는 작가를 처음으로 접했다. 국내에도 그의 작품은 처음인것 같은데 느낌은 괜찮았다. 이런 작품이 잘 알려지지 않고 숨겨져 있다는 것이 조금은 아쉽다. 이 작품에는 <청의> <추수이> <서사> 세 작품이 실려 있는데 다른듯 하면서도 20세기 많은 변화 속에서 물질적으로 감당하기 힘든 시기에 고통을 겪어야 했다는 것이다.
 
<청의> 경극 분월에서 '항아'라는 주인공 역할을 맡은 샤오엔추는 자신이 곧 항아인양 제일 적격이라고 믿는다. 다른 사람이 항아역을 하는 것을 보고는 틀렸다고 믿는 그녀, 리쉬에펀에게 뜨거운물을 끼얹고는 사고후 무대를 떠나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이십여년을 보낸다. 그중에서 자신을 꼭 닮은 춘라이를 자신의 열정을 다 바쳐 가르친다. 그런 그녀에게 다시금 분월에서 항아역을 맡아 할 기회가 찾아 오지만 예전이 자신의 모습과는 너무 다르다는 것을 다이어트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다이어트후 다시 젊어진것이 아닌 추함이 들어나자 자신이 아닌 제자에게 항아자리를 양보한다. 하지만 제자에게 양보하였던 자리가 자신의 자리라고 믿게 되고 다시 무대에 오르면서 자신감이 넘치는데 그녀는 뜻하지 않는 임심을 하여 유산을 하고 무대에 올라서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 하혈을 하게 된다. 병원에 입원해 있게 된 동안 자신의 제자인 춘라이가 항아역을 맡게 되고 자신은 스스로 분장을 하고 극장밖에서 항아역을 처절하게 연기한다.
 
작가는 샤오엔추의 아픔을 노래했다고 하지만 나는 웬지 아픔보다는 욕심을 버리지 못한 이기주의가 빚어낸 자멸처럼 느껴졌다. 자신의 욕심을 버리고 처음부터 자신의 자리가 아니라고 판단하여 아름답게 물러서서 제자에게 자리를 양보했더라면 어떠했을까. 자신의 아이까지 잃어가면서 어거지로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 발버둥친 댓가가 무참히 무너진 여인인가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욕망이 얼마나 허망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하는 섬뜩함도 느꼈다.
 
<추수이>도 물질적으로 풍부한 집안의 아들이 자신의 아버지의 재산을 노리고 훔치려는 순간에 물난리가 일어나 자신과 형을 제외한 다른 가족들이 모두 죽었지만 그 참혹한 죽음보다도 물질에 더 탐욕을 부렸던 망나니 아들,기어이 아버지의 마지막 재산처럼 남겨진 서화들을 들고 집을 나가 기생집을 차리지만 자신의 욕심이 과해 죽음에 이르고 만다. <서사>라는 작품도 자신의 할머니가 일본인에게 당해 나은 아들인 자신의 아버지, 정체성을 찾던 아버지처럼 자신도 그 정체성을 찾아 헤매이는 자신. 세 작품에는 아픔이 진하게 묻어 있다. 변화를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자신의 욕망이 곧 파멸로 이르는 길인것을, 하지만 샤오엔추처럼 자신에게 닥친 행운을 잡고 싶어 안달하는 누구든 그러고 싶겠지만 과한 욕심은 자신을 파멸로 이른다는 것을 작가는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는 것 같다.
'전 연습 같은 거 한 적 없어요. 그저 나 자신이 고스란히 항아였을 뿐이라구요.' ....<청의>중에서
'세상 만물에는 모두 자기만의 목숨이란 게 있지. 그 무엇도 그것에서 벗어날 수 는 없단다...<서사>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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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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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똥주 좀 죽여 주세요.. 완득이의 진심일까...
 
'제발 똥주 좀 죽여 주세요. 이번 주 안에 안 죽여주면 나 또 옵니다. 거룩하고 전능하신 하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아고 뭐 이런 무섭고 발칙하고 겁나는게 없는 애가 있어 하면서 첫장을 펼쳐서 읽는데 킥킥.. 웃음이 절로 나온다. 똥주,그는 그의 담탱이며 그와 같은 동네 옆집의 옥탑방에서 산다. 그가 시간이 날때마다 불러대는 '완득아, 완득아..' 에 앞집남자는 열받아 소리친다. 그렇게 둘은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도 없고 멀리할래야 멀리할수도 없는 찰거머리같이 시간을 함께 한다.
 
완득은 편부아래서 외모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스케치에 나올듯한 완벽함을 갖춘 '나름 삼춘인 남민구'와 함께 산다. 아버지도 난쟁이라고 놀리듯 모자란데 옆에서 함께 다니는 삼춘마져 입을 열면 다다다다.. 하듯 말더듬이라 모두의 웃음을 사지만 그래도 꿋꿋한 우리의 완득이는 엄마한번 안찾고 씩씩하게 잘자랐다. 카바레에서 일하는 삼촌과 아버지때문에 싸움이 몸에 베어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기는 하지만 그래도 교회에도 꾸준히 나가고 학교에도 열심히 나간다. 비록 책상에 엎드려 퍼질러 잠자지만 씩씩하다.
 
그런 그에게 날마다 교회로 향하게 하는 인물이 있으니 담탱이인 '똥주', 티격태격 싸우면서도 그가 진짜 죽을까봐 몹시 걱정하는 어린 소년이기도 하다. 완득이네는 정말 돈이 없어 옥탑방에 살지만 똥주는 부자인 아버지를 두고 왜 옥탑방에 살면서 외국인 이주자들을 위해 일하는지 그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자신도 몰랐던 엄마의 존재가 베트남 여자라는 것을 알고는 똥주와 함께 술도 마시고 싸움이 아닌 운동을 하기 위해 킥복싱장에 나가 운동을 배우기도 한다. 학원비를 대기 위해 어려운 아버지에게 손을 벌리기 보다는 손수 알바를 해서 학원비를 충당하는 믿음직스런 아들이기도 하다. 그가 주먹을 날리고 몸을 날리는 것은 오로지 '아버지'를 위할때만이다.
 
까마득했던 엄마라는 존재가 부각되면서 완득이의 삶도 조금씩 변해간다. 엄마가 가져다 주는 반찬이며 낯선 '어머니'를 부르게 된것이며 엄마에게 전화까지 하는 완득이, 엄마와 어느날 시장에 가면서 폐닭은 사는 엄마를 보고 엄마가 자신을 위한 반찬을 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알고는 점점 엄마에게 마음의 문을 여는 완득이. 엄마의 낡은 분홍 꽃술이 달린 단화를 보고 굽이 높은 구두를 사주는 따듯함에 가슴이 뭉클.
 
똥주, 진짜 선생님 자격증이라도 있나 검사해봐야 할것만 같은 선생같지 않은 선생님.학생보다 욕을 더 잘하고 완득이 햇반이나 뺏어 먹지만 그는 않보이는 그림자처럼 완득이네와 외국인이주자들을 돕고 있어 알면 알수록 괜찮은 인물이다. 누구보다 완득이의 미래를 걱정하고 삐뚫어나갈까봐 옆에서 지키는 선생같지 않은 선생이다. 일자리를 잃은 완득이 아버지를 위해 그가 산 교회집을 댄스장으로 바꾸어 아버지와 동업을 하는 이상한 선생님, 그래서인지 더욱 정감이 간다. 목에다 괜히 힘이나 주고 다니며 큰소리 치는 것보다 학생과 그 어려움을 함께 극복해보려는 따사로움이 숨겨져 있어 더욱 인간다운 정이 느껴진다.
 
어찌 보면 이 소설에는 완득이가 사이비교회라고 생각하는 그곳처럼 사이비만 등장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정이 넘쳐난다.모자란듯한 사람들이 모두 모여 완전함을 이루는 소설이다. 그러면서 성장해 나가는,아픈만큼 성숙해진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다. 키득키득 거리다가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은 장면장면들이 영화처럼 금방 영상으로 생각할 수 있기도 하다는 점이다. 옥상에서 둘이 서로 마주보며 큰소리로 불러대는 똥주와 완득이, 문자로 보내거나 전화로 하면 간단할 것을 꼭 큰소리로 불러 앞집 아저씨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점이며 폐닭으로 만든 백숙을 놓고 먹는 장면들이 넘 웃긴다. 웃다가도 속으로는 완득이에게 은근히 건투를 비는 '홧팅'을 날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오뚜기처럼 꿋꿋하게 일어나리란것을 알지만 그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완득이 만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이며 그 시절을 거쳐왔기 때문일까. '고완득,암튼 너때문에 한참 웃었다.' 아껴가며 읽기를 뒤로 미룬 보람이 있다. '완득아! 완득아, 새끼야! 꾀꼬리는 얼어 죽을, 어제 호박죽 나왔지! 하나 던져!' 마지막까지 웃음의 끈을 놓치 못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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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기별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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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의 이름...
 
그의 저서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남한산성>을 읽어서인지 조금은 그를 알것도 같다는 생각을 했다. 손글씨로 원고를 쓴다는 그, 작가 황석영이 티브이에 나와서 그런 그를 꼬집기도 했지만,물론 친분이 두터우니 그럴수도 있겠지만 나름 나의 생각은 글을 아낀다고 볼 수도 있겠다 싶었다.오랜 기자생활로 다져진 그만의 무언가가 그를 단련시킨것 같기도 하지만 위 저서들에서도 그가 한문장을 완성하기 위하여 많은 생각을 하였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는데 이 에세이 집에서는 위의 책들의 비하인드 스토리처럼 그가 나름 책에서 못한 이야기들도 있어 위 소설들의 연장선처럼 읽으니 괜찮았다.
 
책은 첫페이지부터 밑줄을 긋게 만들었다.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품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만져지지 않는 것들과 불러지지 않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건널 수 없는 것들과 모든, 다가오지 않는 것들을 기어이 사랑이라고 부른다.' 몇 번을 다시 읽어보며 그 말들에는 '시간'이 존재하는가 생각해 본다. 그가 무엇을 그리려 하는지 약간은 난감함도 있지만 너무 어렵게 읽는다면 재미가 없을듯 하다.
 
그가 담아 놓은 <난중일기>에서 받은 느낌이 훗날 우리가 읽는 <칼의 노래>로 재탄생 하기까지 난중일기에 쓰인 문장처럼 간단하면서도 사실적이고 명료한 그러면서 극에 달하는 긴장감을 불러 일으키는 문장의 힘을 표현하려 얼마나 노력하였는지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칼의 노래 서문에서도 말했지만 그 글을 쓰기전 작가는 <아산현충사>를 여러번 탐방했다는 말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현충사에 자주 갔지만 작가와는 생각이 많이 달랐기에 그속에서 <칼의 노래>와 같은 훌륭한 작품을 구사할 수 있는 작가를 존경하게 되었다. <칼의 노래>다 단순한 문장들의 주는 긴박함이나 사실적인 묘사라면 <현의 노래>는 책 속에 음악이 숨어 있듯이 아름다운 문장들이 넘 좋았다. 그래서 <남한산성>까지 한달음에 달려 갈 수 있었다. 남한산성에도 고뇌하는 임금의 모습을 읽으며 작가의 본 모습이 들어나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는데 작가는 성안에 갇힌 사람들의 내면을 다 묘사하지 못해 미완성의 작품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난 너무 좋았다. 세 작품이 우연히도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 되었고 그 속에 고뇌하는 인간을 잘 표현한 듯 해 괜찮았다.
 
이 작품은 그가 지난날을 되돌아 보며 작품에서 다 하지 못한 아쉬움, 문장에 표현해 담아 내려던 자신만의 문장의 힘과 완전하게 그려내려던 '시간'이란 것을 관조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더 와 닿았다. '나는 내가 쓰는 언어가, 내가 사용하는 언어가 아주 명석한 사실에 입각한 과학성에 도달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이루어내기는 그리 쉬운 일은 아니더군요.' 그가 손글씨를 쓰는 이유를 설명하는 부분이기도 하는 것 같다. 좀더 깊게 사유하고 완전한 것을 해산하려는 산고가 느껴지는,요즘 너무 쉽게 글을 쓰고 넘쳐나는 '글의 홍수'속에서 좀더 잘 다듬어 내 놓으려는 작가의 고집같은 심혈이 보여 더 가까이서 작가를 만난듯 한 기분이 든다. 그러기에 <김훈>이라는 작가에게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늪처럼 점점 그에게 빨려 들어가는 것 같다. 바다의 기별과 같은 그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당신의 겨드랑 속으로 사라지는 당신의 정맥이 저녁 무렵의 강물처럼 닥쳐올 시간의 빛깔들을 실어서 내 몸속으로 흘러들어오기를 나는 그 강가에서 꿈꾸었던 것인데, 그때 내마음의 풍경은 멀어서 보이지 않는 바다의 기별을 기다리고 또 받아 내는 곡릉천과도 같았을 것이다. 곡릉천은 살아서 작동되는 물줄기로 먼 바다와 이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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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행복해
성석제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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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행복해..?
 
 
 성석제라는 작가를 처음 접했는데 느낌이 좋다. <지금 행복해>라는 제목때문에 정말 행복한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그 속은 있고 없음을 떠나서 정말 바닥이라고 생각할 그런 단계인데 작가가 선택한 '반전' 이 독자에게 행복감을 심어 주는것 같다. 9편의 단편들 속의 주인공들은 많이 가지지 못한 약자들이며 여행에 관한 에피소드처럼 젊은 시절의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다. 주인공이 겪었을 법한 아님 그시대를 겪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에 공감이 간다.한편을 읽고나니 '아하' 하는 작가를 이해할 수 있어 화자들에 대한 걱정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아니 마지막 반전에 크게 웃을 수 있었다.
 
그는 '행복해'라는 단어를 쓰면서 전혀 행복해보이지 않을 법한 화자들의 이야기에서 반전에서의 통쾌함으로 행복을 전해주는 행복전달자 같다. 처음 이야기 <여행>에서도 세 친구는 무작정 무전여행을 떠난다. 그들이 뭉치게 된 이야기도 기차를 타게 된 이야기도 어딘가 아슬아슬 하다. 반찬이 없어서 오이서리를 해 먹고 신발이 다 떨어져 승려의 신발을 슬쩍 해서 신기도 하고 그러다 만난 무리들, 나와는 별개의 세계에서 사는 것 같은 있는 자들의 여행과 그들은 너무 비교가 된다. 그리고 그들은 새로운 것을 깨닫은듯 서로 다르게 움직인다. '너희가 위면 나는 아래, 너희가 아래면 나는 위로.' 그들이 만들었던 삼각형은 다시는 생겨나지 않았다. 조금은 씁쓸하기도 하지만 여행이란 비우고 다시 채우는 것, 새로운 것으로 채우기 위한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행복해> 두번째 이야기이며 이 책의 제목이 되기도 한 이야기다. 한량이나 마찬가지인 아버지,학교다닐 시절에 사고를 쳐서 아들을 낳고 온갖 사고란 사고는 혼자 치고 다니듯 집안의 문전옥답이며 모든 것들을 없앤 일등공신. 감옥에까지 들랑달랑 아내는 새로운 삶을 헤쳐나가듯 남자라면 진저리를 치며 남자들로 인한 수입을 얻는 미용실을 운영하여 넉넉해지지만 아버지는 빈털털이다. 아내가 해준 아들의 집에서 기거하며 아들과 친구하자는 아버지,그런 아버지에게 엄마와 쿨하게 이혼을 하라는 아들. 비록 모든 재산을 말아 먹고 지금은 곁에 아들뿐이지만 그 아들로 인하여 아버지는 행복하다. 스스로 알콜중독 치료를 위해 아들 곁을 떠나면서도 그 아들로 인해 다시 새로운 삶을 다짐할 수 있기에 그는 행복하다. 알콜중독자에서 눈물중독자가 된 아버지를 가슴에 담으며 뜨거운 무언가가 내게도 올라오는 듯 했다.행복은 많이 가져서가 아니라 현재를 어떻게 받아 들이고 생각하느냐의 차이인듯 하다.
 
<설악풍경>의 이야기도 생각하고 있던 결말을 완전히 바꾸며 작가는 웃음을,행복을 전달한다. 여자라고 생각하며 목욕하는 것을 훔쳐 보았는데 그것이 여자가 아닌... 난 혼자서 실실 웃었다. 작가의 반전에 이젠 나도 동참하듯 되버린 흡입력에 말려들고 말았다. <기적처럼> 똥물을 뒤집어 쓰고 오른 산에서 그는 길을 잃고 있다가 조난을 당하듯 한다. 하지만 극적으로 살아나 아무일도 없었던듯 집에 들어서 그렇게 실어하던 어머니의 잔소리를 들으며 웃다가 눈물을 찔끔찔끔 흘린다. 비로소 현실로 돌아왔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눈물이 나기 시작하는데 그와 비슷한 사고를 겪어봐서인지 가슴이 뭉클하다.
 
아홉편의 단편들은 웃다가 울다가 하게끔 독자를 그만의 블랙홀로 끌어 들인다. 책을 덮고 나니 소소한 내 일상이 '행복'이란 것을,나도 현실로 돌아왔음을 느꼈다. 책 속에서 화자들과 하나가 되어 길을 잃고 헤매이다 내 일상에 돌아와 나의 지금이 행복이란 것을 새삼 깨닫고는 다시 제목을 보게 된다 <지금 행복해..?> 책은 내게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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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의 발견 1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10
스텐 나돌니 지음, 장혜경 옮김 / 들녘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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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기에 더 많은 것을 발견했던 존 프랭클린...
 
두번의 북극탐험이 실패로 돌아가고 마지막 탐험에서 죽음을 맞이한 존 프랭클린, 그의 편지와 기록을 바탕으로 작가의 상상력이 빚은 또 하나의 인간 존 프랭클린을 만날 수 있는 소설이다. 실패를 거듭한 그가 실패를 한 후에 더 유명해진 프랭클린은 소설 처음 시작부터 이야기 하듯 열살까지 공을 제대로 잡지도 못하는 어찌보면 바보 같은 소년이었다. 그런 그가 어찌하여 북극탐험까지 했을까, 우리처럼 '빨리빨리'에 익숙한 시대에 살았다면 그의 느림은 어떻게 변했을까 생각을 하며 책을 들게 되었다.
 
나 또한 내 성격은 급할기도 하고 다혈질이라 할 수 있어 느리기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큰딸과 항상 부딪히며 말썽을 빚기도 한다. 조급함이 없는 딸은 항상 느긋하기에 늘 내 표적이 되곤 한다. 그런 딸과는 시험때라면 더욱 마찰을 빚어 집안에 큰소리가 떠나지 않는데 이 책을 읽다보니 딸에게 미안한 생각도 들고 <느림>에 대하여 좀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성경이나 야생동물의 발자국을 연구하듯 이제 그는 '속도'를 연구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지금 자신보다 빠른 사람들을 추월할 날이 올 것이다.....21p
그는 열살까지 공도 제대로 잡지 못하였기에 <속도>에 대하여 배우려 한다. 그런 그는 배를 타고 바다고 나가고 싶어 집을 나가기도 하는데 아버지에게 붙잡혀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런 그가 해군학교에 들어가고 배를 타면서 느림은 자신의 단점이었는데 장점이 되고 만다. 남보다 <신중, 인내>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빠르다는 다른 동료를 보아도 전쟁에서 쓸모가 없다는 것을 안 그는 자신의 장점을 잘 발전시켜 항해에서 자신감을 갖는다.
 
'미스터 프랭클린은 눈이 밝아. 명령을 듣지 않고도 많은 명령을 눈으로 보지. 두꺼운 벽을 꿰뚫고서 말이야.' 149p
일상 생활보다는 바다에서 자신의 장점이 더 적용이 될 수 있어 해군생활이 끝나고 일상에 적응해 보려던 그는 다시 바다로 나가게 된다.첫번째 북극탐험을 떠나게 되지만 식량이며 그외 장비들이 덜 구비된 상태이고 행운의 여신이 그의 편이 되지 못하였는지 많은 동료들을 잃고 겨우 영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이 실패담은 큰 화제가 되어 그를 평가하는 기준처럼 되었다. 그런 기준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첫번째 결혼에서 딸 엘라를 얻었지만 엘리나의 죽음으로 인하여 다시 그에 맞는 상대라 할 수 있는 제인 그리핀과 재혼을 하여 호주 태즈메니아의 총독으로 가게 되지만 전총독과는 다르게 인간적이고 인격적으로 수감자들을 다루었던 그, 하지만 모함으로 인하여 다시 총독의 길에서 벗어나 그가 가야 할 길은 북극탐험이란 것을 깨달은 그는 동료들을 모집하여 다시 북극탐험에 나선다. 처음 실패를 발판으로 삼아 더 많은 식량과 장비를 구비하고 탐험길에 나서는 그에게 또 다른 복병처럼 나선 난관에 부딪혀 그는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가 느리다고 했지만 실은 사물을 더 깊이있게 관찰하고 사고하고 인내하고 정확성을 기하기 위한 그만의 방법이었던 듯 싶다. 빠르다고 하여 모두가 좋다는 것보다 '자기만의 속도가 있다' 는 것을 말해주듯 그는 그의 속도에 맡게 인생을 재발견 한 듯 하다. 그가 느리지 않았다면 자신만의 영역에서 훌륭한 항해사가 될 수 있었을까. 남보다 더 도전정신이 뛰어나고 자신의 위치에서 남보다 훨씬 더 빠르고 정확했던 존 프랭클린, 스피드시대에 작가는 느림의 사상가인 프랭클린의 삶을 재조명하며 일침을 가하는 것 같다. 요즘은 빠른 것을 벗어나 먹거리외 많은 것들이 <느림>으로 돌아가고 있다. 빠르다고 결코 좋을 수만 없다는 것을 자신의 삶에 열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작가가 소설속에 던져 놓은 묵직함에서 찾아내 본다.
 
 
아는 것하고 보는 것은 전혀 달라, 잘 안다는 것과 잘 보는 건 별개의 문제니까.무엇이 존재하는지 단정 짓는 건 더 나빠.화가는 잘 봐야 하는 사람이지 잘 알아야 하는 사람이 아니거든..155(1권)
저는 정확성이 예감보다 더 낫다고 생각해요...179(1권)
내가 시계처럼 늦게 간다면 완전히 멎을 때까지 걸리는 시간도 남들보다 더 오래 걸릴 거야. 그렇다면 난 갓 스물일지도 몰라..47(2권)
지난 세월 나는 내가 현명해질 때까지는 혹은 다른 사람들이 나보다 더 멍청하게 보일 때까지는 아무리 시간이 걸린다 해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네. 멍청하게 보일지라도 말이지. 나를 믿게나.. 91(2권)
떠나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지요. 빨리 오는 건 다시 빨리 사라집니다. 마차에 앉아 창문을 볼 때처럼 아무것도, 아무도 남는 건 없습니다. 제가 아는 건 그게 전부입니다. 110(2권)
나쁜 사람이란 자기한테 맞는 속도를 모르는 사람이란다. 빨라야 할 때 느리고 느려야 할 땐 너무 빠른 거지. 222(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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