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4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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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아늑하고 평온한 아버지의 집에서 살던 싱클레어, 그런 그가 또 다른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열 살 이제 막 자아가 성숙하기 시작하는 시기에 그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던 도중에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사과 도둑' 에 대한 이야기를 자신만의 세계에 빠지듯 이야기를 꾸며내는 재미와 친구들의 반응에 심취하여 멋지게 이야기를 끝내고 났는데 뜻하지 않은 현실과 막딱뜨리게 된다. 그의 사과 도둑 이야기를 듣고 있던 크로머가 그의 이야기가 사실인지를 몇 번 확인한 후에 사과를 잃는 주인이 도둑을 찾고 있다며 싱클레어가 도둑이란 사실을 입을 다무는 댓가로 돈을 요구한다. 그가 부유한 집의 아들이지만 그에겐 크로머가 요구하는 돈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자신의 용돈을 모아 놓은 것 조차 몰래 훔쳐내야 하고 그마져 크리머가 요구한 액수보다 터무니없이 적어 이런저런 말을 꾸며내야해야만 했다. 

만약에 싱클레어가 크로머에게 자신의 '사과 도둑'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 라고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멋지게 이야기를 꾸며낸 댓가로는 너무도 거하게 그는 크로머에게 시달려야만 했다. 모자라는 돈을 마련하기 위하여 집안에서 그의 위치와 존재는 점점 작아져가고 그는 아버지의 집에서 경험하던 '밝은 세계' 와는 또 다른 세상에는 '어두운 세계' 가 있음을 알게 된다. 다시 밝은 세계로 나아가고 싶지만 크로머란 악은 점점 더 그의 세계를 움켜쥐듯 하고 그는 크로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데 그에게 신과 같은 존재인 '데미안' 이 나타난다. 그에게 진실을 말하면 자신이 초라해질것 같지만 데미안은 지금까지 그가 경험하지 못한 무언가 남과 다른 아우라가 풍긴다. '여기까지 이야기한 이 모든 체험에서는 이 순간이 중요한 순간이다. 그것은 아버지의 신성함에 그어진 첫 칼자국이었다. 내 유년 생활을 떠받치고 있는, 그리고 누구든 자신이 되기 전에 깨뜨려야 하는 큰 기둥에 그어진 첫 칼자국이었다.' 크로머에게 자신의 약점을 잡힌 싱클레어에겐 그 이후의 생활은 '착란' 이 된다. '그 시절 내 상태는 일종의 착란이었다. 우리 집안의 정돈된 평화의 한가운데서 나는 소심하게, 그리고 고통받으며 유령처럼 살고 있었다.' 그런 그를 구제해 준 '데미안' 은 그에겐 또 다른 세계를 알려준 정신적인 존재였다.

크로머라는 세계에서 벗어났지만 아직은 불안전한 착란과 같은 상태인 사춘기, 질풍노도의 시기에 데미안이란 또 다른 세계에 부딪히며 그 또한 아직 자기 의지가 꿋꿋하지 못한 상태에서 데미안이 갑자기 떠나간다. '하지만 의지는 어떻게 되는 거지? 자유의지란 없다고 말했잖아. 그런데 다시, 오직 자기 의지만 확고하게 그 무엇에 쏟으면 된다고 말했지. 그러면 자기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고.그건 말이 맞지 않잖아! 내가 내 의지의 주인이 아니라면, 내가 의지를 마음대로 이런저런 데로 향하게 할 수도 없는 것 아니야.' 데미안이 떠나고 길에서 우연히 한 소녀를 만난다. 그녀를 가슴에 품으며 그녀를 그려보려던 것이 데미안과 비슷한 그림을 그리게 되고 자신의 대문 위에 있던 문양인 새를 그리던 데미안을 생각하고 희미해진 새의 그림을 그려 데미안의 옛 주소지로 보내주게 되는 싱클레어, 그가 받았다고 생각도 못했는데 어느날 그가 보낸 답장이라 생각되어 지는 쪽지를 발견하게 된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이 이름은 압락사스.'  베아트리체를 만나고 ' 이제 나는 무엇인가를 사랑하고 숭배해야 한다. 다시 하나의 이상을 가진 것이었다. 삶은 다시 예감과 빌에 찬 영롱한 여명이었다.' 라고 생각하게 된 싱클레어에게 자신이 그려서 보낸 '새의 그림' 에 대한 데미안이 보낸 쪽지의 글은 또 하나의 화두와도 같은 글이었다. 자신이 깨뜨려야 하는 '알' 그 알을 깨뜨리기 위하여 그는 예전의 그와는 달라진다. 그러다 만난 조력자 피스토리우스로 부터 데미안에게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고 데미안을 만나게 되고 그가 그렸던, 베아트리체를 만나고 그가 이상이라 여겼던 여인의 형상인 데미안이 어머니 에바 부인을 만나며 안정에 접어 든다. '이미 많은 고독을 나는 맛보았다. 이제 예감했다. 더 깊은 고독이 있으며 그 고독은 벗어날 수 없는 것임을.'  에바 부인을 만나고 '제 모든 생애는 늘 길 위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라고 말하는 싱클레어는 신이면서 악마였던 압락사스의 세계를 이해하고 소년에서 청년에 이른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쳐 데미안을 만나고 청년의 안정된 시기로 접어 들면서 그는 비로소 아픔도 고독도 모두 받아 들일 수 있는 자신으로 성장해 있다. '붕대를 감을 때는 아팠다. 그때부터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이 아팠다. 그러나 이따금 열쇠를 찾아내어 완전히 내 자신 속으로 내려가면, 거기 어두운 거울 속에서 운명의 영상들이 잠드렁 있는 곳으로 내려가면, 거기어 나는 그 검은 거울 위로 몸을 숙이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면 나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이제 그와 완전히 닮아 있었다. 그와, 내 친구이자 나의 인도자인 와.' 싱클레어가 만약 사탄과 같은 크로머의 속임에 빠져서 그 시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데미안이란 구세주와 같은 자신에게는 신과 같은 존재를 만나지 못했다면 그의 새로운 세계가 과연 밝게 열릴 수 있었을까? 자신의 뚯대로 살아보려 했지만 자신이 뜻과는 다르게도 될 수 있음을 알려준 '크로머' 라는 다른 세계와 데미안을 만나 그 세계로부터 벗어날 수 있음 또한 자신에게 있음을 받아 들이는 싱클레어. 사춘기에서 청년기로 성장하는 자아 성찰의 이야기는 성경을 빗대어 쓰여져 더 묘한 감흥을 주기도 한다. 

학창시절에 읽었던 문학작품은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읽는 경우도 많았는데 지금에 다시 읽어보니 새로운 맛으로 다가온다. 헤르만 헤세는 다시 읽어보고 싶은 작가로 그의 작품들에 좀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읽어보려 그의 다른 책들도 관심을 가지고 구매를 하고 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라는 말은 나 또한 너무도 좋아하는 문구인데 '데미안' 이라는 책을 읽으며 그 의미를 되새기니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가기 위하여 자신이 깨뜨려야 하는 알은 얼마나 많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보게 한다. 비단 그 시절에 국한된 것이 아닌 인생 전반에 걸쳐 꼭 필요한 '아름다운 투쟁' 을 날마다 해 나간다면 새로운 인생의 맛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이 그 모든것을 안고 보듬을 자세가 되어 있다면 '데미안이나 피스토리우스' 와 같은 많은 조력자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 무엇보다도 자신이 알을 깨뜨리려는 노력이 중요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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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8월 27일부터 10월 15일까지 진행된 <헤르타 뮐러 리뷰대회> 추첨 이벤트에 참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벤트에 당첨되신 분들 모두 축하드립니다.
 
☞ 관련 이벤트 : http://aladdin.co.kr/events/wevent_detail_book.aspx?pn=100818_moondong 
1등(3명) -300,000원

양*나 님 fpygmal***@naver.com
한*은 님 mar***@naver.com
한*미 님 myd***@naver.com

2등(6명) - 100,000원

김*철 님 herme***@yahoo.com
박*아 님 tiktok***@nate.com
안*수 님 neor***@dreamwiz.com
이*현 님 neo_***@nate.com
이*안 님 adds***@hanmail.net
임*청 님 ineverl***@naver.com

3등(10명) - 50,000원

권*수 님 nilnil***@naver.com
김*석 님 hyosu***@hanmail.net
박*순 님 yesi2***@naver.com
박*아 님 tiktok***@nate.com
방*희 님 blueja***@hanmail.net
서*경 님 littlegir***@naver.com
서*연 님 sjyoun***@hanmail.net
유*영 님 fun0***@naver.com
이*철 님 sw5***@naver.com
이*희 님 nei***@doda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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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주르, 뚜르 - 제11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40
한윤섭 지음, 김진화 그림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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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 나가면 애국자가 아니어도 애국자가 된다고 하더니 우리의 주인공 봉주는 북적북적 파리에서 파견근무를 하는 아버지를 따라 한적한 시골인 뚜르로 이사를 하게 된다. 작은 시골에서의 첫날밤을 맞이한 그에게 전에 살던 사람들이 남기고간 책상에 남겨진 낙서 '사랑하는 나의 조국, 사랑하는 나의 가족'  그리고 한 뼘 정도 떨어진 곳에서 '살아야 한다' 라는 낙서를 보고 그는 가슴에 전율을 느낀다. '혹시 독립을 위해 몸을 바친 안중근의사가..' 하는 생각은 봉주의 뇌리에서 지워지질 않고 그 낙서에 대한 모든 촉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학간 학교에서 제일 이쁜 여자애랑 사귀어야 한다고 충고를 해준 파리의 한국친구 준원에게 이 소식을 전하고 나니 그들은 그 낙서에 대한 무슨 은밀하고 비밀스런 이야기를 꼭 캐내어야 하는 무슨 막중한 임무라도 부여 받은듯 봉주는 원래 집주인인 할아버지를 엄마와 함께 찾아가 집세를 주면서도 그의 궁금증은 할아버지께 물어보고 만다. 전에 살던 사람들이 혹시 한국인인지 아님 그들에게 한국인들이 찾아 왔었는지. 하지만 그 집에 전 세입자는 분명히 일본인이라는 것이다. 일본인이라면 일본말을 쓰고 일본어로 낙서를 해 놓았을텐데 왜 우리말 낙서에 그것도 다른 말이 아닌 '조국... 살아야 한다..' 라는 흔히 쓰지 않는 말들이 적혀 있는 것일까. 그가 죽기라도 했다는 것인지 소년의 궁금증은 점점 강물처럼 불어난다.

전학을 간 뚜르 학교에서 만난 동양인,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일본인 토시에게 왠지 모르게 강한 경쟁심을 느낀 봉주는 그 친구와의 수영시합에서도 왠지 모르게 죽을 힘을 다해 하고 발표학습에서도 자신의 말에 물고 늘어지던 토시를 봉주는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녀석이 봉주가 살던 집에 살던 일본인으로 밝혀지고 그들이 한국어를 사용했다는 가게 아저씨의 말에 의심이 들기 시작하여 그들이 운영하는 음식점인 일본식당에 가게 되고 토시로부터 뜻 하지 않던 그들의 속사정을 듣게 되는 봉주, 토시는 다름아닌 조국이 북한인 삼촌과 가족을 두었던 것.봉주가 현재 쓰고 있는 방은 삼촌이 쓰던 방인데 그 삼촌의 가족이 북한에 있어 가족을 생각하며 쓴 낙서인듯 보이는데 삼촌은 현재 식당에서 초밥을 만들고 있지만 생물학자였다는 말에 봉주는 우리나라에서가 아닌 뚜르에서 분단의 아픔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서먹하던 토시와 남몰래 밤마다 우정을 쌓아가게 된다.

'뚜르의 창문을 열었다. 파리에서처럼 소리들이 냉큼 방으로 들어오지는 않았다. 다시 창문을 닫고, 침대에 누웠다. 팔베개를 하고 창밖을 보고서야 이 방에 살았던 사람이 침대를 이 자리에 놓은 진짜 이유를 알게 되었다. 덧문을 닫지 않은 창문으로 수 많은 별들이 보였다.' 수 많은 별들이 보이는 창가에서 조국의 가족을 생각해야 했던 아픔을 간직한 생물학자, 자신의 본래의 모습이 아닌 그것도 남들이 알면 다시 그곳을 떠나 다른 곳에서 살아야 하는 숨어 지내는 삶인 조국이 있으나 남에게 자신의 조국을 말하지 못하고 조국의 언어로 말도 못하는 현실속에서 바라보던 창 밖의 수 많은 별들은 그에게 '살아야 한다' 는 강한 의지를 부여했다. 자신이 살아 남아야 언젠가는 조국에 두고 온 가족을 만날 수 있는 현실이 남기게 만든 낙서 한 줄, 그 낙서 한 줄로 인하여 봉주와 토시는 그들 사이에 가로 막혀 있던 휴전선을 거두고 남들이 모르는 개구멍을 통하여 공원에 들어가 남몰래 우정을 키우듯 공원의 잉어들에게 고기밥을 주는 우정으로 발전하게 된다. 분단의 아픔과 소년 봉주와 토시의 우정이 씨실과 날실처럼 아주 잘 어우러져 참으로 따듯한 동화를 만들어 냈다. 동화에서 잘 보여지지 않던 분단의 아픔이 깊게 박혀 있어 읽는내내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한다. 

'책상의 낙서를 다시 보았다. 글은 더욱 애절해 보였다. 팔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그 상상 속 남자의 얼굴은 어느새 안중근 의사의 얼굴로 변해 있었다.' 낙서의 주인공을 독립투사 쯤으로 생각을 해서 '살아야 한다' 라는 절실함을 남겼으리라 믿었는데 토시의 삼촌과 그의 가족들을 알게 되면서 그들이 남의 눈을 피해 살면서 그 속에서도 '살아야 한다' 는 강한 의지와 분단의 아픔을 이국땅에서조차 그들을 편하게 놓아주지 못하는 현실과 마주해야 하는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져 소설은 더욱 내겐 애절했다. 어린 소년들에겐 '조국.가족.살아야 한다.분단' 라는 말은 참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현실이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도 시간이 흘러가고 금강산에서의 남북이산가족의 상봉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 앞에서 분단의 아픔을 잘 느끼지 못하는 세대인 소년들이지만 그 또한 그들이 짊어지고 있는 현실이라는 것, 하지만 그들은 그 이전의 세대보다는 어쩌면 '통일이나 분단' 이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는 깊지 않은 다른 면에서 풀릴 수도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다. 서로의 마음을 트다보면 어딘가엔 답이 분명히 있다. 소년들이 비록 비밀리에 나눈 우정이지만 서로의 마음을 나누듯 우리도 그렇게 발전시켜 나간다면 언젠가는 삼팔선이 걷히는 날이 올 것이다. 소년 봉주와 토시를 통해 본 분단의 아픔이 소년들의 우정으로 인해 와해되듯 마음을 따듯하게 나눌 기쁜 이산가족상봉소식에 더 마음이 절절해졌던 소설이다. 소년의 눈과 마음을 통해 한 줄의 낙서가 주는 의미와 그 뒤에 숨은 커다란 아픔을 찾아 나가는 방법이 추리기법을 이용하여 재밌게 풀어나간 소설이며 주 무대가 우리나라가 아닌 프랑스 뚜르이기에 그 무대가 더 넓혀져 문학의 폭이 더 한층 넓여짐을 보여준 소설인듯 하다. 거기에 어른들의 시각이 아닌 소년의 시각으로 보았기에 더 따듯하고 마음 깊게 새겨진 소설이다. 봉주와 토시가 깊은 우정을 나누며 그들 사이에 분단의 아픔보다는 사람과 사람으로 그리고 같은 민족으로 통하였듯이 그런 날이 빨리 오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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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이성부 지음 / 창비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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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시인 이성부, 그의 시집을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산행을 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정말 시집 한 권 들고 얼른 숲으로 가야할것만 같은 생각이 드는 시집이다.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린다>와 <도둑 산길>을 읽다보니 산행시인이라는 그를 진정으로 표현해 낸 책이 <지리산> 아닌가 하여 얼른 이 책도 구매를 해 놓았다. 그냥 책장에 꽂아 두기엔 설레임이 커서 다른 책을 읽으며 설레임이 가라 앉지 않은통에 책을 읽게 되었다. 내가 직접 지리산을 산행해 본 적은 없지만 올 봄에 지리산 노고단까지는 성삼재까지 차를 가지고 올라가서 그 후반부터는 산책로를 이용하여 노고단쉼터까지 올라가 본 것이 지리산을 밟아 본 기억에 전부다. 그렇게 간 봄 여행에서 그곳이 너무 좋아 주변을 돌면서 지리산 정기를 받고자했다. 지리산은 정말 어머니와 같은 넓은 품으로 둘러봐도 늘 아쉬움을 남겨 줄 만큼 여러도와 몇 개의 시군에 걸쳐서 있으니 한부분 한부분 정해 놓고 여행을 해 보는 것도 좋은 산이다. 그런데 그런 산을 직접 발로 걸어서 한걸음 한걸음 느끼고 마음에 담은 것을 '詩' 로 토해냈다는 것이 진정 대단하다. 그의 다른 시집들도 보면 산행의 그 묘미가 잘 드러나 있는데 이 시집 또한 그와 함께 동행을 하여 지리산을 걷고 있는 기분이 든다.

그 산에 역사가 있었다...앞부분 생략하고... 산이 흐르고 나도 따라 흐른다/ 더 높은 곳으로 더 먼 곳으로 우리가 흐른다/  산은 그런것 같다 멈추어 있는것 같지만 산에 올라보면 구비구비 그 줄기따라 흐르고 있다. 물만 흐르는 것이 아니라 정말 산이 흐른다는 것을 느낀다. 정상을 밟아 본 사람만이 느끼고 볼 수 있는 풍경이 다 담겨 있는 듯 하여 밑줄 쫙 그어본다. 산이 흐르고 나도 따라 흐른다. 멈추어 있고 고여 있는 것은 썩는다고 했다. 그래서 고인물은 썩은 물이라 하여 악취가 난다고 하였는데 멈추지 않고 유려하게 흘러가는 산처럼 그리고 세월처럼 그렇게 흘러가다 보면 둥글둥글 산과 닮아가는 여유로운 사람이 되지 않을까.

시를 읽다가 중간 중간 내 맘에 드는 표현이 있음 밑줄을 그어본다. '중산리' 라는 시에는 '그리움도 손에 잡혀 가슴이 뛴다.' 라는 부분이 있다. 그리움이 손에 잡힌다는 표현이 정말 멋지다. 천왕봉에 걸린 흰구름을 보고 느낀 그의 그리움, 괜히 빨리 중산리로 향하여 나도 그 그리움을 잡아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중산리엔 못 가봤지만 노고단에서 안개에 휩싸인 그곳을 보니 선계가 따로 없었다. 구름인지 안개인지 모르게 아마도 지상이 아닌 선계에 있는 듯하여 몽롱하던 그 기억이 난다. 

다시 남명선생.... 세상에 나아가서 부대끼는 사람보다/ 세상에서 숨어 귀 막고 눈 가린 사람이/ 세상을 더 잘 터득하는 법!/....... 지리산은 역사와 많은 인재와 사람을 품고 있다. 그곳의 인물들에 대하여는 잘 모르지만 영화나 그외 소설속에서 더듬더듬 만나는 인물들을 보면 지리산에 반하여 혹은 지리산에 안주하여 세상과는 담을 쌓고 있는 듯 보이지만 그곳에 있으면서 세상을 정말 더 잘 터득한 '득도한 자' 들을 만나게 된다. 세상속에 있어야 세상의 길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눈 감고 귀 막아도 모든 것은 보이고 들리는 듯. 

좋은 사람 때문에.. 초가을 비 맞으며 산에 오르는/ 사람은그 까닭을 안다/ 몸이 젖어서 안으로 불붙는 외로움을 만드는/사람은 그 까닭을 안다/ 후두두둑 나무기둥 스쳐 빗물 쏟아지거나/ 고인 물웅덩이에 안개 깔린 하늘 비치거나/ 풀이파리들 더 꼿꼿하게 자라나거나/ 달아니기를 잊은 다람쥐 한 마리/ 나를 빼꼼이 쳐다보거나/ 하는 일들이 모두/ 그 좋은 사람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 이런 외로움이야말로 자유라는 것을/ 그 좋은 사람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 감기에 걸릴 뻔한 자유가/ 그 좋은 사람 때문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비 맞으며 산에 오르는 사람은 안다/  너무 좋아서 시의 전문을 모두 옮겨 본다. 비 맞으며 산에 오르고 그 비로 인하여 감기에 걸려도 너무 좋은 산행, 그런 산행을 가고 싶다. 혼자 하는 산행도 좋지만 가끔 거리가 조금 서먹해진 사람과 함께 산행을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스르르 관계가 좋아진다. 함께 산행을 하다보면 자주 손을 잡게 되고 말도 더 많이 하게 되어 관계가 급격히 좋아질 수 있다. 좋은 사람과 함께 하는 산행은 더없이 좋다. 그런 가을산행을 가고 싶어지게 만드는 시이다.

피아골 다랑이논..... 앞부분 생략.... 참으로 사람이야말로 꽃피는 짐승/ 가슴 가득히 불덩이를 안고/ 피와 땀을 뒤섞이게 하는/ 그것이 눈물겨워 나도 고개 숙인다/  참 좋은 부분이라 옮겨 본다. 남해 다랑이논에 가보고 싶었는데 1박2일을 통해 소개된 지리산 둘레길 중에 '다랑이논' 이 있는 마을 풍경을 보면서 또한 그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가져봤다. 척박한 자연에 순응하며 살기 위한 힘든 몸부림이 잘 표현된 다랑이논, 그것이 하나가 아니고 여러개가 겹치다 보니 정말 멋진 풍경을 자아내게 되었다. 삿갓으로 가리면 보이지 않는 곳도 있다하여 삿갓배미라는 곳이 있다는 것을 <지리산 둘레길 걷기여행>에서 읽었는데 이 시에서는 그 다랑이논을 일군 사람, '참으로 사람이야말로 꽃피는 짐승'이란 표현이 좋아 옮겨본다. 그야말로 역사가 켜켜이 이어진 논이라 하겠다. 지리산은 그렇게 역사도 깊고 역사와 함께 한 이들도 많고 이 시집을 읽다보면 그런 역사와 인물 그리고 자연을 만날 수 있다. 그래서 더욱 시인의 시집에 집착하여 읽게 되었나보다. 지리산 산행을 갈때는 이 시집 한 권 들고 어느 한적한 곳에 앉아 한번 더 느끼며 읽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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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다이스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임희근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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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라면 어떻게 될까?
라는 한 줄의 의문으로 시작하는 단편들은 베르나르의 상상력답다. '주제 사라마구' 가 '만약에...' 시작하는 한 줄의 의문에서 소설을 시작한다고 하였는데 베르나르 역시나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은 '만약에....' 라는 상상력에 맞는 단편들을 쏟아 내놓고 있다. '나는 이 단편집에 인류의 <있을 법한 미래> 에 관한 전망, 그리고 나 자신의 삶에 일어난 사건들, 즉 <있을 법한 과거> 를 섞어 놓았다.' 어쩌면 그런 미래가 도래할지도 모른다는 그의 상상력이지만 재밌다. 그는 '단편소설은 작가라는 장인의 공방 같은 것이다.' 라고 했다. 장편소설 보다도 작가의 단편들을 읽다보면 그가 얼마나 상상력이 풍부하고 글 재주가 있는지 알게 된다. 장편을 이어나가는 필력도 중요하겠지만 맛깔스런 단편들을 줄줄 쏟아 내놓는 작가를 보면 그의 소설들이 다시 보인다. 베르나르는 <개미>라는 소설로도 유명하지만 그의 다른 작품들을 읽다보면 그의 기발한 상상력에 웃음을 머금을 때가 있다. 이 책에서 그가 그리는 단편들은 미래의 파라다이스가 아닌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가 '파라다이스' 이고 지금 현재의 환경및 그외 것을 잘 지키는 것이 어쩌면 파라다이스라는 역설적 이야기들인듯 하다. 그가 그려낸 파라다이스에는 어떤 내용들이 있을까 들여다볼까.

환경 파괴범은 모두 교수형... 아고 큰일났다. 환경 파괴범이 모두 교수셩에 처한다면 우리나라 같은 경우엔 어찌될까. 과연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을까. 자동차 운전금지,흡연금지, 석유를 동력으로 하는 모터 사용 금지, 가스를 배출하는 공장 가동 금지, 연기를 내뿜는 것은 그 무엇이든 사용 금지. 바비큐나 굴뚝 연기 심지어 폭죽까지도... 그렇다면 이것에 한가지라도 해당이 안되고 현재를 살 수 있을까. 우선은 자동차 운전 금지하면 여기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넘쳐날 것이다. 교수형에 처하는 사람들이, 자연에 퇴비로 이용되는 사람들이 넘쳐날 듯 하다. 한집에 두대도 많은 요즘, 아니 식구수 대로 자동차를 보여하는 집도 많다. 그렇게 본다면 살아남지 못할 자가 넘쳐날 듯 하다. 흡연금지는 그야말로 건강을 챙길 수 있으니 좋은 듯 하다. 그러지 않아도 공공기관건물이나 그외 흡연자들이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 흡연을 하면 교수형이라면 먼저 '담배공사' 는 어찌되는 것인가. 담배를 심지도 말고 만들지도 말아야 할 터인데. 거기에 고기를 먹으면 교수형이라면 삼겹살이라면 죽고 못 사는 우리에겐 정말 죽으라는 얘기밖에 되지 않는다. 소설속 그동안은 정말 모범적으로 살아왔는데 아버지 또한 모범인 이었는데 여자의 꾀임에 빠져 할리데이비슨의 그 짜릿한 맛에 빠졌다가 교수형을 당하게 된다. 하지 말라는 것은 더 하고 싶은 것이다. 그 또한 교수형에는 처하게 되지만 할리데이비슨이 주던 그 헤어날 수 없던 맛은 잊을 수가 없다. 베르나르는 어쩌면 지금의 지구라도 잘 지켜 후손에게 물려주자는 그만의 교훈을 담은 단편이라 생각한다.

존중의 문제.... 아이들도 많고 수영장이 딸린 집에 아내도 있고 큰 집의 대출도 갚아 나가야 하는 경호일을 하는 남자에게 유명인이 경호를 부탁했다. 그가 하는 행동들은 맘에 들지 않지만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신을 굽혀가며 경호일을 하고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보수를 챙기는 남자, 그에게 유명인이 다시금 한번 더 경호를 부탁하는데 경호일을 하는 남자가 제시하는 가격을 절대 줄 수 없다는 유명인, 서로 밀고 당기고 하지만 그는 절대 자신이 제시하는 가격에서 한 푼도 줄 수 없다고 하여 경호일을 하는 남자는 강하게 거절을 하고 만다. 자신을 존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리곤 그가 나오는 티비 화면에 나오면 바로 채널을 돌려버린다. 다른 방송에서 아무리 재미 없는 방송을 하여도 결코 그남자의 프로를 보지 않는다. 유명인이 자신을 조금만더 배려하고 존중해 주었다면 그는 경호일도 하고 돈도 벌 수 있었을텐데, 그남자가 나오는 프로를 돌리지 않았을텐데 깐깐한 유명인 때문에 자신이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는 그 작은 차이로 인하여 유명인라도 일을 강하게 거절하는 자존심 있는 남자로 거듭난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제일 중요한 것은 '존중과 배려' 이다. 얼마전 읽은 <스님의 주례사>에도 보면 부부사이에도 남편이 아내를 '존중과 배려' 를 해 주지 않기에 문제가 많이 발생한다는 글이 있다. 하물며 돈이 얽힌 갑과 을의 관계는 존중과 배려가 더 필요한 관계이다.

꽃 섹스.... 더이상 남자와 여자가 정자가 난자를 만나 배란이 되는 것이 아니고 여자고 불임이 되고 남자도 불임이 되어 꽃과 나비처럼 꽃가루를 나비나 벌이나 어느 매개체에 의하여 체외수정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 점점 전자파나 그외 환경오염등에 노출이 되어 불임이 늘어나고 사고방식이 달라져 출산률이 낮아지고 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그만의 상상력으로 풀어낸 이야기다. 이 단편처럼 된다면 정말 그땐 종말이 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보는데 난자와 정자가 꽃가루처럼 공중에 날려 나비에 의한 수정이 이루어진다는 기발한 그만의 상상, 그런 세상이 도래하기 전에 의식이 좀더 깨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자기자신이 욕심이나 그외 편한것을 선호하며 살기 보다는 인간 본연의 의무를 이행하며 사는 것이 인류를 위하여 좀더 현명한 삶은 아닐지.

안개 속의 살인...부제로 '있을 법한 과거' 라고 했다. 한 엄마가 두 아들을 모두 키울 능력이 되지 못하여 큰아들을 선택하고 막내는 손발을 묶어서 죽이고는 운하에 버린다. 그렇다면 그런 부모가 그녀 혼자일까. 기자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기사를 보내려고 하지만 좀더 경험자는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기 보다는 좀더 다른 각도에서 현실을 바라보는 눈으로 기사를 쓰라고 충고를 한다. 그렇게 한다면 비단 운하에 버려지는 아이들이 그 아이 혼자뿐일까. 기사는 많은 이들의 동정심을 자극하고 시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운하에서 놀던 아이가 가로등이 없어 미끄러져 죽었다고 쓰인다. 진실과는 너무도 다르지만 많은 사람들은 동정을 보내고 시는 각성을 하여 가로등도 놓이게 되고 좀더 운하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된다. 그곳에 죽음으로 버려지는 아이들이 발생하는 것이 아닌 현실은 너무도 다르게 포장이 되어 놓이게 된다. 현재 우리가 모르는 사이 이런 일이 비일비재할 것이다. 사실과는 동떨어지게 포장이 되어 진실인듯 세상에 노출이 되는 일들이 과연 어떻게 작용을 할까. 모든 사실이 진실로 노출이 될때와 그렇지 않을때의 차이, 하지만 진실은 진실일때가 진실된것 아닐까.

내일 여자들은...'언젠가는 지구상에 여자들만 남고, 남자들은 전설 속으로 사라지리라.' 만약에 지구상에 여자들만 남게 된다면. 정말 아마조네스 세상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 남자에 비해 여자의 수명이 더 긴것은 자생능력,복원능력이 남자보다 더 뛰어나기 때문이라는 얼마전 뉴스를 본 듯 한데 남자들은 사회에서 받는 스트레스의 강도도 여자보다 더 높을 것이고 술과 담배등에 노출이 되어 수명을 더 단축시키게 되겠지만 어쩌면 남자 스스로 도태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신들이 술을 마시는것도 모두 정당화 시키고 합리화 시켜 나간다는 것은 어쩌면 스스로 자멸하겠다는 이야기나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하여 남자가 사라지고 여자만이 지구상에 남게 된다면이라는 가정하에 이 소설은 시작되었다. 핵 한방이면 사람이나 식물이나 그외 자연이 남아남지 못하기에 핵에 대한 면역력이 더 강한 무언가를 원하던 마들렌은 엄마의 도움으로 인하여 드디어 수컷보다는 암컷이 자생력이 뛰어나고 환경에 적응하며 태생보다는 난태생이 더 강하다는 것을 전해듣게 되고는 알 속에서 태어난다면 핵에 대한 면역력이 더 강하다는 밝혀내게 되지만 그녀의 연구의 반대파인 핵보유국은 그녀의 연구를 물거품화 하기 위하여 그녀의 목숨을 노린다. 그러다 엄마가 동성을 나누었던 아줌마의 아들에 의해 보호를 받던 중, 그녀의 생일날에 그야말로 핵으로 인한 지구종말과 같은 일이 벌어지게 되고 마들렌과 그 남자는 그녀가 탄생시킨 알들과 그들의 정자와 난자로 탄생시킨 새로운 생명체와 함께 파라다이스를 맞게 된다. 난태생의 역사로 가기전 그들은 마지막 태생을 하는 사람들이 되는데 그런 날이 오지 말아야 한다는 작가의 강한 메세지가 느껴진다. 어쩌면 이 내용은 그가 서두에서 말했듯이 영화화 하려고 하는 이야기가 있다고 했는데 이 소설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작가가 소설 속에서 보여주는 '파라다이스' 는 환경파괴와 오염등으로 인하여 우리가 번식능력을 잃게 되고 그러므로 인하여 현재와는 안녕을 고하고 새로운 파라다이스를 맞게 된다는 이야기로 가득차 있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하여 지금부터라도 환경을 지키고 보존하고 좀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를 깨끗하고 살기 좋은 곳으로 가꾸어 '파라다이스' 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경고성 글들이다. 우리가 만들어 놓은 덫에 의해 스스로 자멸하듯 모든 능력을 상실해 가면서 새로운 세상이 온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지금,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이 파라다이스다. 있을때 잘 지키고 보존하자. 내가 누릴 수 있다고 하여 넘쳐나는 무절제한 생활보다는 모자라는 듯함이 지구와 나를 지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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