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 나가면 애국자가 아니어도 애국자가 된다고 하더니 우리의 주인공 봉주는 북적북적 파리에서 파견근무를 하는 아버지를 따라 한적한 시골인 뚜르로 이사를 하게 된다. 작은 시골에서의 첫날밤을 맞이한 그에게 전에 살던 사람들이 남기고간 책상에 남겨진 낙서 '사랑하는 나의 조국, 사랑하는 나의 가족' 그리고 한 뼘 정도 떨어진 곳에서 '살아야 한다' 라는 낙서를 보고 그는 가슴에 전율을 느낀다. '혹시 독립을 위해 몸을 바친 안중근의사가..' 하는 생각은 봉주의 뇌리에서 지워지질 않고 그 낙서에 대한 모든 촉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학간 학교에서 제일 이쁜 여자애랑 사귀어야 한다고 충고를 해준 파리의 한국친구 준원에게 이 소식을 전하고 나니 그들은 그 낙서에 대한 무슨 은밀하고 비밀스런 이야기를 꼭 캐내어야 하는 무슨 막중한 임무라도 부여 받은듯 봉주는 원래 집주인인 할아버지를 엄마와 함께 찾아가 집세를 주면서도 그의 궁금증은 할아버지께 물어보고 만다. 전에 살던 사람들이 혹시 한국인인지 아님 그들에게 한국인들이 찾아 왔었는지. 하지만 그 집에 전 세입자는 분명히 일본인이라는 것이다. 일본인이라면 일본말을 쓰고 일본어로 낙서를 해 놓았을텐데 왜 우리말 낙서에 그것도 다른 말이 아닌 '조국... 살아야 한다..' 라는 흔히 쓰지 않는 말들이 적혀 있는 것일까. 그가 죽기라도 했다는 것인지 소년의 궁금증은 점점 강물처럼 불어난다. 전학을 간 뚜르 학교에서 만난 동양인,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일본인 토시에게 왠지 모르게 강한 경쟁심을 느낀 봉주는 그 친구와의 수영시합에서도 왠지 모르게 죽을 힘을 다해 하고 발표학습에서도 자신의 말에 물고 늘어지던 토시를 봉주는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녀석이 봉주가 살던 집에 살던 일본인으로 밝혀지고 그들이 한국어를 사용했다는 가게 아저씨의 말에 의심이 들기 시작하여 그들이 운영하는 음식점인 일본식당에 가게 되고 토시로부터 뜻 하지 않던 그들의 속사정을 듣게 되는 봉주, 토시는 다름아닌 조국이 북한인 삼촌과 가족을 두었던 것.봉주가 현재 쓰고 있는 방은 삼촌이 쓰던 방인데 그 삼촌의 가족이 북한에 있어 가족을 생각하며 쓴 낙서인듯 보이는데 삼촌은 현재 식당에서 초밥을 만들고 있지만 생물학자였다는 말에 봉주는 우리나라에서가 아닌 뚜르에서 분단의 아픔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서먹하던 토시와 남몰래 밤마다 우정을 쌓아가게 된다. '뚜르의 창문을 열었다. 파리에서처럼 소리들이 냉큼 방으로 들어오지는 않았다. 다시 창문을 닫고, 침대에 누웠다. 팔베개를 하고 창밖을 보고서야 이 방에 살았던 사람이 침대를 이 자리에 놓은 진짜 이유를 알게 되었다. 덧문을 닫지 않은 창문으로 수 많은 별들이 보였다.' 수 많은 별들이 보이는 창가에서 조국의 가족을 생각해야 했던 아픔을 간직한 생물학자, 자신의 본래의 모습이 아닌 그것도 남들이 알면 다시 그곳을 떠나 다른 곳에서 살아야 하는 숨어 지내는 삶인 조국이 있으나 남에게 자신의 조국을 말하지 못하고 조국의 언어로 말도 못하는 현실속에서 바라보던 창 밖의 수 많은 별들은 그에게 '살아야 한다' 는 강한 의지를 부여했다. 자신이 살아 남아야 언젠가는 조국에 두고 온 가족을 만날 수 있는 현실이 남기게 만든 낙서 한 줄, 그 낙서 한 줄로 인하여 봉주와 토시는 그들 사이에 가로 막혀 있던 휴전선을 거두고 남들이 모르는 개구멍을 통하여 공원에 들어가 남몰래 우정을 키우듯 공원의 잉어들에게 고기밥을 주는 우정으로 발전하게 된다. 분단의 아픔과 소년 봉주와 토시의 우정이 씨실과 날실처럼 아주 잘 어우러져 참으로 따듯한 동화를 만들어 냈다. 동화에서 잘 보여지지 않던 분단의 아픔이 깊게 박혀 있어 읽는내내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한다. '책상의 낙서를 다시 보았다. 글은 더욱 애절해 보였다. 팔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그 상상 속 남자의 얼굴은 어느새 안중근 의사의 얼굴로 변해 있었다.' 낙서의 주인공을 독립투사 쯤으로 생각을 해서 '살아야 한다' 라는 절실함을 남겼으리라 믿었는데 토시의 삼촌과 그의 가족들을 알게 되면서 그들이 남의 눈을 피해 살면서 그 속에서도 '살아야 한다' 는 강한 의지와 분단의 아픔을 이국땅에서조차 그들을 편하게 놓아주지 못하는 현실과 마주해야 하는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져 소설은 더욱 내겐 애절했다. 어린 소년들에겐 '조국.가족.살아야 한다.분단' 라는 말은 참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현실이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도 시간이 흘러가고 금강산에서의 남북이산가족의 상봉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 앞에서 분단의 아픔을 잘 느끼지 못하는 세대인 소년들이지만 그 또한 그들이 짊어지고 있는 현실이라는 것, 하지만 그들은 그 이전의 세대보다는 어쩌면 '통일이나 분단' 이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는 깊지 않은 다른 면에서 풀릴 수도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다. 서로의 마음을 트다보면 어딘가엔 답이 분명히 있다. 소년들이 비록 비밀리에 나눈 우정이지만 서로의 마음을 나누듯 우리도 그렇게 발전시켜 나간다면 언젠가는 삼팔선이 걷히는 날이 올 것이다. 소년 봉주와 토시를 통해 본 분단의 아픔이 소년들의 우정으로 인해 와해되듯 마음을 따듯하게 나눌 기쁜 이산가족상봉소식에 더 마음이 절절해졌던 소설이다. 소년의 눈과 마음을 통해 한 줄의 낙서가 주는 의미와 그 뒤에 숨은 커다란 아픔을 찾아 나가는 방법이 추리기법을 이용하여 재밌게 풀어나간 소설이며 주 무대가 우리나라가 아닌 프랑스 뚜르이기에 그 무대가 더 넓혀져 문학의 폭이 더 한층 넓여짐을 보여준 소설인듯 하다. 거기에 어른들의 시각이 아닌 소년의 시각으로 보았기에 더 따듯하고 마음 깊게 새겨진 소설이다. 봉주와 토시가 깊은 우정을 나누며 그들 사이에 분단의 아픔보다는 사람과 사람으로 그리고 같은 민족으로 통하였듯이 그런 날이 빨리 오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