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십일월

 

 

 

 

 

 

 

십일월, 딸들 때문에 무척이나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두녀석 수능도 있었고 논술 때문에 주말에는 새벽부터 한양에 올라가 밤 늦게 들어오는 날이

대부분이다.아니 그런 시간으로 이달을 다 보낼듯 하다.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내겐 무척 힘든

일이었는데 지난 달 수술로 인해 허리통이 없어지고는 무리없이 새벽에 거뜬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래도 주말마다 한양에 좇아 다니다보니 피곤하다. 내겐 아직 무리한 스케즐인지..

그러니 녀석들은 얼마나 피곤할까.거기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논술까지 해야하니 말이다.

 

토욜엔 큰놈은 논술로 막내는 면접이 있어 한양에 가야했다. 내가 가도 될까?

아니 꼭 가야만 할 듯 하여 식구들은 아직은 무리라고 했지만 따라나서기로 했다.

그 전에 큰녀석 방을 뺄 때에도 따라 갔다가 구리에 있는 친척집에 가서 알바를 하게 되어

그곳까지 들렸다 오는 무리한 스케즐이었는데 다른때 같으면 금방 지쳤을텐데 그래도 집에 와서

피곤함에 누웠으니 그래도 많이 나아졌다는 이야기.움직이지 않으니 관절들이 점점 날 나약하게

있는 것 같아 이젠 열심히 움직이고 운동해야함을 스스로 자각하게 된다.

 

아침 일찍 아니 새벽부터 움직여서 아침 이른 시간에 고속도로에 나섰는데 붐빈다.

집근처 톨게이트를 지났는데 붐비기 시작하더니 계속적으로 붐빈다. 큰놈은 우리완 달랐지만

서울까지 함께 가기로 하고 막내가 가는 곳에서 다른 교통수단으로 이동하기로 했는데

고속도로가 너무 붐빈다. 현황판에는 어느 부분만 붐빈다고 하지만 온통 붐빈다.

제 시간에 갈 수 있을지 차 안에서 자꾸 조마조마하게 가슴을 졸였더니 화장실에만 가고 싶고..

수원에서 너무 붐벼,아니 그냥 차가 서 있듯 하여 수원에서 빠져 그냥 차를 놓고 대중교통으로

이동할까 하다가 그냥 고속도로를 더 타보기로 했는데 다행히 강원도 방향이 빠지고 수월해져

겨우겨우 생각한 시간에 무리없이 도착,큰놈은 지하철 역에서 내려주고 우리는 우리 목적지로

향하여 시간안에 도착하여 면접을 보게 되었는데 그 또한 주말이라 두시간을 기다려야 했고

면접 또한 한시간여 기다려야 했으니 배도 고프고 몸도 피곤하고...

 

막내의 면접이 끝나고 모두 배가 고파 근처 식당에서 김치찌개를 맛있게 싹싹 비우고

큰놈의 논술이 끝나는 시간과 우리가 그곳으로 이동하면 시간이 비슷할 듯 하여

그렇게 하까 했는데 막내가 언니가 시험이 끝나고 친구 만난다고 했다고 하여 그냥 우리끼리

하행을 하기로 하고는 고속도로로 접어 들었는데 아니 하행길도 무슨 '명절'처럼 너무 붐빈다.

정말 붐벼도 너무 붐벼서 거북이 걸음,엉금엉금 엉금엉금...

한참 달리는 중에 큰놈의 전화,친구와의 약속이 불발이라며 함께 갔으며 하는데 우린 이미

사십여분을 달려 왔으니 어떤다...고속도로도 너무 붐비고...

알아서 오라 하고는 우리끼리 달려오는 길도 만만하지가 않다.

집근처 지역은 더욱 붐빈다고 하니 옆지기는 근처 지역으로 빠져 국도로 가자고...

오늘 안에 집에 갈수나 있을지.. 하루종일 길에 버리는 시간이 얼마인지...

무엇이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끝이 있으면 다시 시작이 있는 법,

녀석들의 일도 끝과 시작이 곁치고 있다.암튼 좋은 결과로 마무리 하길 바란다.

 

2012.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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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의 민들레꽃 - 개정판, 서울대 교수진이 추천하는 통합 논술 휴이넘 교과서 한국문학
박완서 지음, 이경아 그림, 방민호, 조남현 감수 / 미래엔아이세움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간만에 박완서님의 동화를 만났는데 아이들을 위한 동화가 아니라 어른을 위한 동화다. <옥상의 민들레꽃>,삶이 버겁고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가끔 아파트 옥상에서 생명을 버렸다는 이야기를 뉴스를 통해서 본다. 이 이야기 또한 '궁전' 아파트에서 할머니 두 분이 목숨을 버렸다. 자식들은 할머니들이 남부럽지 않도록 모든 것을 다 해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왜 할머니들은 목숨을 버렸을까? 물질적으로 풍요로웠는데 그들이 또 다른 빈곤을 느낀 것은 무엇일까? 하지만 궁정 아파트 주민들은 모두 모여 할머니들이 무언가 부족해서 세상을 버린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자살이 알려지면 아파트 값이 떨어지고 아파트에 흉흉한 소문이 돌까봐 걱정이다. 이름처럼 '궁전' 과 같은 삶과 가격을 원하는 사람들, 그들은 베란다 창문마다 쇠창살을 하자고 하기도 하고 잘 열리지 않는 자물쇠를 하자고 한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를 풀 수 있는 방법이 아니란 것을 그들도 안다. 엄마와 함께 반상회에 참석한 꼬마는 그 답을 알고 있다.

 

어느 곳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이야기다. 아파트라고 하면 부족함 없는 중산층들이 살고 있는 표면화된 그런 현대 건축 같다. 하지만 이웃과의 단절및 작은 소문에도 아파트 값이 파도친다. 그런데 잇따라 자살이 이러났다고 하면 주위에 소문이 어떻게 날까? 아파트 가격에도 문제를 끼칠 것이며 이름에도 먹칠을 하는 격이된다. 막아야 하는데 그들은 모여서도 서로의 이익을 우선시 할 수 있는 방법만 모색한다. 정작으로 그 문제를 파고 들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 답을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할머니들과 친했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나도 집에서 없어야 할 존재인줄 알고 어린나이지만 목숨을 버리려고 한다. 옥상에 올라가 세상을 등지려고 한 순간 발견한 '옥상의 민들레꽃' 흙도 아닌 먼지가 한 줌 모인 곳에서 목숨을 유지하며 겨우 피어난 노란 꽃인 민들레를 본 순간 '생명'을 느끼는 난 민들레로 인해 희망을 안고 다시 내려온다. 그리곤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깨닫게 된다. 세상을 등진 할머니들이 바랜 것은 큰 것이 아니다. 손주들을 업어서 키우고 싶었고 흙을 일구고 싶었다. 갇혀 사는 삶이 아니라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을 바랬던 것이다. 하지만 돈으로 자신들의 '희망'을 빼앗긴 할머니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달걀은 달걀로 갚으렴>,산골 학교에서 문 선생님은 이번에도 아이들에게 암탉은 나누어 주셨다. 암탉이 알을 낳으면 팔아서 수학여행을 가는 것을 5년 째 하고 있는 것이다. 봄뫼의 오빠인 한뫼도 그렇게 하여 도시 구경을 갔고 중학교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봄뫼가 암탉을 키울 차례인데 한뫼가 암탉을 잡아 먹으려고 한다. 왜 일까? 그는 자신에겐 값진 달걀이 도시에선 값어치가 없다는 것을 느껴서 동생에겐 그것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 아무리 값지게 모아 도시 구경을 가면 무엇하나 그만큼의 값어치가 없는 것을. 한뫼의 이야기를 들은 선생님은 생각뒤집기를 한다. 그렇다면 도시 아이들을 이곳 산골에서 달걀의 소중함을 느껴보게 하자는 것, 말하자면 체험학습을 통해 자연의 소중함을 느껴보게 하겠다는 것이다. 달걀을 팔아 수학여행을 갈 여비를 장만하는 선생님의 생각도 좋고 한뫼의 이야기를 듣고 그 생각 뒤집기를 한 선생님의 또 다른 생각도 참 좋다.

 

<어느 이야기꾼의 수렁>이나 <상> <저녁의 해후>모두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어른을 위한 동화이다. <어느 이야기꾼의 수렁>은 현실로 이루어질 수 없은 것을 부탁하는 사람과 그것이 이루어질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을 아는 작가의 벽, 그 벽에 갇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작가. 방송국PD를 만나서 참 잘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이 자신의 판 덫에 빠진 결과가 되었다. <상> 또한 그와 비슷한 구조의 이야기다. 초등시절 교장선생님 이었던 분이 갑자기 돌아가시게 된 사연을 알게 되면서 자신들이 틀에 갇히는 사람들,하지만 한순간 자책에서 돌아서 나오게 된다. 자신의 문제가 아니면 현실이란 등 돌리면 그만인것처럼 참 씁쓸하기만 하다. <저녁의 해후>,조카의 선 자리에 나갔다가 오래전 자신의 맞선 상대를 만났다. 그 사람과 헤어지게 된 사연 또한 '궁합' 때문이었는데 조카도 궁합을 보아야만 한다는 것,주인공은 조노인을 통해 잃어버린 것 쓸모 없다고 여긴 것에서 사랑을 깨닫게 되고 반신불수의 남편에게서 존재를 깨닫게 된다. 세상에 존재 가치가 없는 것이란 없다. 나이들고 병들고 나면 퇴물튀급을 당하는 사람들,그들이 처음부터 존재 가치가 없었던 것은 분명 아니다. 그리고 분명 우리가 잊고 있는 조극의 반쪽,그곳에도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것이다.

 

박완서 작가의 생에서 한국전쟁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값진 '이야기'를 만날 수 있을까? <저녁의 해후>는 다른 장편소설과 약간은 맥을 같이 하는 이야기인 듯 하다. 자신의 자전적 소설인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그 남자네 집> 등에서 보여 주었던 개풍 박절곡에서의 삶과 서울 유학을 와서 삯바늘하는 어머니와 함께 오빠와의 삶,그리고 오빠의 죽음 이후에 실질적 가장이 되어야 했던 삶등에서 보여지는 강단진 삶에서 '한국전쟁'이란 그녀 삶의 중요한 맥을 이어주고 있다. 박적골, 분명 그곳은 고향이면서도 한 편으로는 갈 수 없는 땅이 되었다. 아픔을 간직한 존재 가치를 잃어버린 땅, 하지만 그 곳은 저자의 삶에 무한한 존재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삶에서 우러난 이야기라 그런가 더 가슴에 와 닿는 이야기고 삶과 자본이란 무엇인가 늘 질문을 하게 한다. 하지만 우리 삶에 분명 돈 보다 소중하 무언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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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감자를 갈아 감자전을

 

 

 

큰딸이 오고나니 뭔가 해줘야 하는데 특별하게 시장을 봐다 놓은 것은 없고

주말에 큰오빠가 와서 '감자에 싹이 놨네. 이거 덮어 두어야 하는데 빛을 봐서 싹났네.'

하며 상자 뚜껑을 덮어 두는 것이다. '내가 아파서 다 못먹어서 그래..이제 먹어야지.'

했는데 얼른 먹어야 할 듯 하다. 그래서 그냥 감자전이나 해야겠다는 생각을...

 

 

*준비물/ 감자, 찹쌀가루,달걀1개,부침가루,천일염,쪽파

 

*시작/

1.감자의 껍지를 까서 반을 잘라 놓는다.

2.잘라 놓은 감자를 믹서로 곱게 갈아 준다.

3.2의 재료에 찹쌀가루,부침가루,달걀1개,천일염조금, 쫑쫑 썬 쪽파를 넣고 약간의 물을 넣어

잘 저어준다.

4.달군 팬에 기름을 두르고 알맞은 양을 넣어 노릇노릇 지저준다.

 

 

 

실외기 베란다 화분에 고추를 심어 놓은 화분에 빨간고추가 하나 매달려 있다.

빨간고추 하나 따서 쫑쫑 썰어 한 쪽씩 올려 주고는 검은깨를 올려 주었다.

그랬더니 깨를 씹을 때마다 고소고소....

 

큰딸에게 저녁을 먹기 전에 한 장 먹어보라고 했다.

찹쌀가루를 3숟갈 넣어 감자만 한것과는 다르게 쫄깃한 맛이 있더 더 좋다.

-엄마,대박 맛있다. 따뜻한것 먹으니까 더 맛있나봐.진짜 맛있어.

-그냥 맛있겠지.. 감자전 엄마가 많이 해다 갖다 주었잖아.

녀석이 혼자 서울에서 원룸 생화를 했기에 엄마의 따뜻한 밥을 먹어보지 않아서인지

엄마가 하는 별거 아닌 요리에도 감동이고 맛있다고 해주니 고맙다.

그런데 내가 먹어봐도 맛있다. 다 해 놓은 모양은 꼭 <<감자호떡>>같다..ㅋㅋ

저녁에 옆지기가 와서 함께 먹었는데 맛있단다.

 

2012.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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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뜨락에 냉이와 적상추

 

 

우리집은 고층이다. 오늘 날이 너무 좋아 화분을 조금 손보았다. 

실외기 베란다에 있는 것을 집안 안방 베란다에 옮겨 놓기도 하고 올해 날 기분 좋게 해주고

생을 마감한 것들은 뽑아서 버리기도 하고 새로 돋아난 싹은 새로 잘 심어 놓기도 했다.

정말 간만에 화분에 신경을 썼다.

 

그러다 지난 여름에 적상추를 심었던 작은 화분을 정리하다 보니 어라,여긴 13층인데

어떻게 화분에 냉이씨가 와서  냉이가 하나 자라고 있다. 너무 반갑다.

얼른 다른 화분에 옮겨 심고 안에도 들여 놓았는데 잘 자랄까..

 

 

적상추

 

지난 여름에 언니네 텃밭에서 적상추를 뽑아다 화분마다 몇 개씩 심어 놓았다.

많은 수확은 없었어도 조금 따서 비빔국수도 해 먹고 상추쌈도 조금 먹었다.

그리곤 꽃이 피고 씨가 맺힌 것을 잘 받아 놓았어야 했는데 어찌하다보니 씨다 어디로 갔나

모두 쏟아지고 없다. 그래서 그냥 지나쳤는데 화분마다 적상추가 하나씩 올라오는 것이다.

파프리카 화분에 적상추가 난 것을 그냥 두었더니 제법 자랐다.

그리고 고추를 심었던 화분에도 잘자란 적상추 싹이 보인다.

오늘 뽑아서 자리를 잡게 잘 심어 놓았는데 잘 자랐으면...

 

방울토마토

 

여름동안 그래도 몇 개 따서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방울토마토가 열렸다.

옆지기와 나누어 잘 먹었고 맛도 있다. 토마토가 다른 것 보다 달고 맛있었다.

그런 방울토마토가 이제 두개 남았다. 서서히 익어가고 있는데

이거 말려서 씨를 받아야 하나 그냥 따먹어야 하나 고민이다.

바라만 봐도 이쁜 녀석이기 때문인다.

 

2012.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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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예쁜 것 - 그리운 작가의 마지막 산문집
박완서 지음 / 마음산책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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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리 곁에 무한한 것은 없는 것 같다. 내 삶이 유한하고 요즘처럼 '유통기한'이 철저하고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것이 쏟아져 나오는 때에 정말 오래도록 남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거기에 우리의 기억은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지난 시월부터 '박완서' 작가의 책을 다시금 읽어보는 기회를 가지고 있다. 그렇게 하여 읽은 책이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그 남자네 집> <아주 오래된 농담> 그리고 이 책으로 이어졌다. 그 전에 제일 기분 좋게 만났던 저자의 책은 <호미>다. 다른 어떤 책보다 더 가깝게 작가를 느끼고 우리 일상생활 속의 '어머니'를 만나는 기분으로 정말 훈훈하고 따뜻하게 읽었는데 더불어 함께 보내준 '봉숭아씨'는 아직도 가지고 있다. 저자가 직접 뜰에서 키운 씨라고 하여 선뜻 심지를 못했다.그리고 현역으로 마지막 책이라 여겼던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를 읽었고 <친절한 복희씨>는 나오자마자 감칠맛나게 읽었던 책이다. 저자의 책을 사십여권 넘게 가지고 있지만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것 같아 빠져 들며 읽어 보고 싶다.

 

이 책을 만나기 전에 몇 권의 책을 만나서일까 소설속에 있던 내용들이 겹치기도 하고 우리 문학사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로 녹여 낸 작가로 저자와 견줄만한 작가가 또 있을까? 그의 책을 읽다보면 자전적인 소설이라고 해도 그것이 개인의 삶이 아니라 '우리네' 삶이고 역사인듯 참 재밌게 읽을 수 있고 과거를 만날 수 있다. 저자가 만약에 한국전쟁을 겪지 않았다면 우리 문학사는 바뀌었을 듯 하고 저자의 삶 또한 바뀌었을 듯 하다. 무척 힘들고 질곡의 시간들이었지만 그것이 개인에게도 문학사에도 좋은 밑거름이 되어 40여년의 숙성의 기간을 거쳐 다시금 '문학'으로 재탄생 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다. 아무리 그것이 '이게 무슨 소설이야..' 라고 해도 난 소설이라고 본다. 인생은 역시나 한 편의 '소설'이다. 정말 길고 긴 소설일진데 그것이 한국전쟁도 만나고 엎치락 뒤치락 고등어자반처럼 엎치고 자치면서 개인사에도 역사에도 미친 영향이 모두가 함께 나눌 소설로 나왔다는 것은 '박완서' 였기 때문인듯 하다.

 

'그때 나는 문학을 하고 싶었던게 아니라 복수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 보면 그가 소설가가 된 배경처럼 '이야기의 힘'에 대하여 나온다. 첩첩산중에서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할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연을 벗삼아 크던 그녀가 어머니의 열정에 힘입어 서울로 유학하여 공부하게 된 사연, 삯바느질과 단칸방에서도 자식을 공부시키려는 열의가 넘쳐났던 어머니는 힘든 시간을 '이야기'를 들려주며 자신도 딸도 그렇게 힘든 시간을 이겨낸다. 그녀에게 모든 것은 이야기였다. 시골뜨기에서 서울 유학생활로의 정착되지 못한 삶에서 내성적이던 그녀에게 '책과 이야기'는 살아가는 힘이 되어 주었다. 어디에서나 책을 찾았고 이야기를 찾았던 그녀에게 일본인이 버리고 간 책도 그녀에겐 살아가는 힘이 되어주었던 시절이 있고 피난 시절엔 벽에 붙인 '신문지'라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이야기와 책이 없었다면 힘든 시간을 버텨내기란 더 힘들었을텐데 어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또 다시 그녀 안에서 곰삭은 홍어의 맛처럼 그렇게 톡 쏘듯 훗날 '소설'로 산고를 이겨내고 태어나지 않았을까.

 

'상상력은 사랑이지 증오가 아니다.'

사십년의 세월이 그녀에게 홍어가 짚을 만나 삭어가는 시간이듯 그렇게 곰삭는 세월이었는지도 모른다.홍어가 우리 입안에서 제 맛을 찾기까지는 '시간' 즉 세월이 필요하다. 바다에서 건져낸 채로 그냥 밥상에 올랐다면 그 값어치는 떨어졌을텐데 어떻게 삭힌 홍어로 거듭난지 그 유래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유통과정에서 자신들도 모르게 거친 시간이 더 값지고 맛난 '홍어'로 재탄생 될 수 있었던 것은 곰삭을 수 있는 '시간'이다. 저자 또한 '소설가'를 꿈꾼것도 아니고 국문과를 들어갔지만 한달의 대학생활에서 작가를 꿈꿀 수는 없었을터,어린시절부터 곰삭을 준비를 하듯 사십여년의 세월은 작가 박완서를 곰삭은 소설가로 세상에 내 놓기에 충분했던 듯 싶다. 거기엔 비록 아픔이지만 '한국전쟁'도 있고 아버지의 죽음도 오빠의 죽음도 숙부의 죽음도 첫사랑의 아픔도 모두 곰삭아 있다. 어떻게 보면 가부장적인 남자들의 죽음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가정을 책임져야만 했던 여인네들인 '어머니'나 자신 그리고 올케나 그 외 많은 '여인'들의 삶을 보면서 강인한 여인의 삶이 스스로 저장된 것은 아닐까.저자에게 '어머니'와 '시어머니' 또한 비중을 많이 차지하는듯 하다. 어머니의 반듯하고 자존감 있는 행동이나 말들이 그녀를 존재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아직 <엄마의 말뚝>을 읽어보지 않았지만 무척 빨리 읽고 싶고 기대가 된다. 그녀의 삶에서 '죽음'이란 것도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삶'을 담당하는 '어머니'라는 존재 또한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본다. 그 또한 그렇게 어머니를 닮아가는 '어머니'로 존재하지 않았을까.

 

그녀가 어느 날 사진을 정리하다가 제일 눈에 들어 온 사진은 손녀딸과 함께 동화책을 보고 있는 사진 이다. 사진 구도도 잘 맞지 않았고 자신이 원하는 그런 사진은 아니지만 그 사진에는 자신이 힘들었던 때,남편과 아들을 보내고 아픔을 이겨내지 못하던 때 손녀딸의 탄생은 그를 구원해주듯 다시 세상에 돌여놓아 주었다. 죽음은 또 다른 '생'으로 나타나 그렇게 우리와 함께 존재하는가 보다. 그런 모든 그녀의 역사가 담겨 있는 이야기는 그동안 읽은 책들의 '행간'을 채워주듯 술술 읽어나갈 수 있어 좋았다. 이 책을 읽기전에 박완서 문학앨범인 <모든 것에 따뜻함이 숨어 있다>를 잠깐 죽죽 보게 되었다. 사진과 함께 박완서의 삶이 담겨 있는 책을 보니 소설속에서 상상했던 사진들을 보는 재미 또한 쏠쏠했다. 그 책의 사진을 빼고 이야기를 보는 책이 이 책인듯 기분 좋게 읽었다. 자신이 세상에 모두 다 쏟아내고도 담아 놓은 '글'이 있다는 것은 어찌보면 한편으로는 아껴서 모아 놓았을 수도 있는데 그런 글들이 한데 묶여 한 권의 책이 되었다는 것은 내겐 기분 좋고 반가운 일이다. 남편이 즐겨 하던 '매운탕' 집,그가 가기 마지막에 가서 먹었던 그 집은 근처에도 가기 싫은 집이었을 것이다. 나 또한 친정아버지를 보내며 아버지가 마지막에 드셨던 것을 먹을 수가 없었다.하지만 이제 두어해 지나고 있는데 스스럼없이 잘 먹고 있다. 거기엔 '세월'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작가 또한 지인이 무심코 데리고 간 곳이 그 집 그 음식이었던 것,하지만 이십여년이란 세월이 흘러서일까 단단해져서 그 때의 모든것은 그녀의 숟가락에 담겨 남편이 좋아하던 음식은 거부하지 않고 그녀에게 힘이 되었다. 그 또한 '시간'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쏟아낸 다는 것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아무리 자전적이라고 하지만 한국전쟁을 겪으며 우리는 '이념'의 대립을 겪었기에 잘못하면 좌익이니 우익이니 하는 소리 또한 들을 수 있었을테고 개인사를 쏟아 놓다보니 가족에겐 아픔일 수 있을텐데 그것이 '문학'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이 참 다행한 일이며 마지막 순간까지도 '글쓰기'를 손에서 놓지 않고 '현역작가'로 머물렀다는 것이 정말 인생의 롤모델로 닮고 싶은 점이다. 그리고 손수 뜰을 일구며 자연과 함께 한 삶이 글속에서 녹아나 더 좋다. 저자의 글은 '시간'과 '자연' 그리고 '가족'을 그리고 있어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고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를 무릎을 베고 듣는것처럼 읽어 나갈 수 있어 참 좋다. 수다쟁이 할머니가 들여주는 옛이야기처럼 막힘없이 술술 읽다보면 또 다른 이야기에 빠져 들고 싶은 생각을 갖게 만든다.그렇게 하여 나 또한 한 권 한 권 모으다보니 안읽은 책이 더 많다. 그것은 내가 풀어야할 '숙제'로 서두르지 않고 읽어 나가려고 한다. 한사람의 인생인 팔십평생을 너무 단숨에 읽어나가면 재미가 없을 듯 하다. 내 안에서 홍어가 짚을 만나 곰삭아 가듯 그렇게 삭혀가며 읽어보고 싶다.

 

 박완서 작가는 내게는 롤모델이다. 누구에게나 롤모델로 삶고 싶은 작가일듯 하다. 그가 문학이라는것을 전문적인 공부를 하지 않고 사십이라는 늦은 나이에 글을 쓰게 된 이력 또한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기도 하고 힘을 준다.그런가 하면 누구도 용기 내지 못하는 개인사를 통한 이야기들은 누구보다도 더 많은 독자들에게 공감을 준 듯 하다.늘 글쓰기에 열심이었듯이 저자의 삶이 '글'처럼 보여진다. 그런가하면 저자가 힘들 때마다 그녀에게 힘을 준 인물중에 '박경리' 선생님 또한 강단진 삶을 보여주어 저자의 짧은 글속에서 또 다른 삶을 만나보는 보람도 느껴본다. 어찌보면 삯바느질로 자식 공부를 시키던 바지런하고 강단지던 '어머니'의 모습을 저자의 삶에서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한 삶,지금 곁에 없다는 것이 한스럽다. 하지만 사람은 가도 예술은 남겨지는 것인지 세상에 풀어 놓고 간 이야기 보따리가 무척 많다는 것,내가 아직 풀어보지 못한 것들이 많아 기분 좋다. 좋은 것을 아끼듯 그렇게 하나 하나 빼어 읽으며 겨울을 보낼 듯 하다.끝으로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감수성을 잃지 않기 위해 많을 읽으라는 것이 남는다. '제가 젊은 사람의 비위를 맞추려고 노력하는 것은 아닙니다. 글을 쓸 때 늙었다고 하는 것은 속도가 느려졌다는 것이 아니라 감수성이 경직되고 진부해졌다는 것입니다. 내 감수성이 진부해지지 않도록 나름대로 노력을 많이 합니다. 어떻게 노력하느냐 하면 좋은 글을 많이 읽는 것입니다.' 부단한 노력없이 그 많은 글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쌀이 엿으로 바뀌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고 삭힌 홍어의 톳 쏘는 맛을 얻기란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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