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양장)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우리는 하루에도 150번이라는 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그중에는 별거 아닌 선택도 있겠지만 인생을 바꾸어 놓을 '전환점'이 되는 위대한 결단의 순간도 분명 있을 것이다. 운명의 기로에서 자신의 선택을 믿고 잘 결정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우유부단하여 결정을 잘 내리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사람도 있다. 선택의 결정에서 보면 그 사람의 성격도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 같은데 우린 그럴 때 누군가에 도움을 청하기도 한다.여자들은 그런 경우 친구에게 도움을 청하여 수다로 풀어내는 경우도 많다. 선택의 고민이란 자신에게는 거대한 파도와 맞써 싸우는 것처럼 무척 큰 난관이 될지도 모르지만 남에는 아주 작은 먼지와도 같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며 쉽게 답을 얻어 내는 경우도 흔하게 있다. 나의 고통과 고민은 큰 산으로 다가오지만 타인에게는 티럭처럼 가벼운 것이 인생인듯 하다.

 

선택의 고민을 털어 놓을 때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그야말로 '경청'을 잘하며 '호응'을 잘 해주어 남을 잘 풀어주는 친구가 있는가하면 불난집에 기름을 붓듯 더 화를 돋구는 친구가 있다.아무래도 고민이 있을 때 찾는 친구는 경청과 호응을 잘해주는 친구를 찾아 거대한 바윗돌처럼 가슴을 누르고 있던 고민의 무게를 덜어내기를 원할 것이다. 여기 그런 '인생상담소'와 같은 '나미야 잡화점' 이 있다. 잡화점이 잘 되거나 가게가 무척 화려한 것이라 아닌 보잘것 없는 곳이지만 아이들의 장난을 받아주듯 그렇게 시작한 일이 누군가에게 '기적'을 불러 오는 그런 잡화점이 되었다면 한번 찾아가 보고 싶지 않을까? 그곳이 다른 곳이 아닌 당신이 살고 있는 동네에 위치하고 있다면 말이다.그런데 그곳의 인생상담 역할을 해 주는 분이 오래전에는 할아버지 였는데 지금은 누굴까? 삼인의 좀도둑이다. 그들이 처음부터 도둑인 것은 아니고 어찌하다보니 도둑이라는 인생의 끝까지 몰리게 되어 잠깐 피신하기 위하여 둘린 곳이 '잡화점' 그런데 이곳이 현재와 과거를 이어주는 '타임머신'과 같은 곳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지금까지의 글들은 살인이나 그외 살인과 관련된 소설이 주류이었다. 수 없이 많은 글들을 쏟아내놓고 있기에 '매스커레이드호텔'까지 읽었는데 그 전에 소설들도 사 놓고 아직 읽지 못한 것도 있고 한 권 한 권 시리즈별로 읽어보겠다고 사 놓은 책들도 있다. 그래도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그의 끝을 모르겠다. 이렇게 달콤살벌하면서 재미와 감동까지 안겨주는 살인과는 정말 거리가 먼 인생 이야기만으로 달달한 '기적'을 안겨주는 환타지 같으면서도 동화같은 환타지적 이야기를 풀여낸 것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인생은 홀로 살아갈 수 있을까? 로빈후드가 홀로 살아갈 수 있었던 것도 인간생활을 습득하고 고립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인간은 어찌되었든간에 사람과 사람이 어우러지고 부대끼면서 그렇게 서로 부딪히고 깨지면서 살아가게 되어있나보다. 그게 인간사고 세상사인듯 하다. '유아독존'이란 할 수 없는 세상에서 당신의 고민은 무엇인가?

 

인간사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어져 있다.

나와 또 다른 사람 그리고 우리들의 인연이란 뫼비우수의 띠처럼 이어져 끝이 없다. 여기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달토끼,생선가게 예술가,폴레논,길잃은강아지 등 자신은 절체절명의 순간처럼 지금의 선택이 자신의 운명을 좌우할것만 같아 '나미야 잡화점' 에 상담편지를 쓴다.자신의 위기를 표현한 것이 지금처럼 이메일이나 문자가 아닌 손글씨 편지이기에 기적은 더욱 그 파장이 크게 다가오는 듯 하다. 그렇게 고민을 편지에 써서 고민 편지를 넣는 우편함에 넣어 두면 다음날 새벽에 잡화점 뒷편의 우유배달함에 답장이 있다. 나미야 잡화점 할아버지가 '신' 일 수는 없기에 답장이 꼭 정답이 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우리네 인생사에 정답이 있을까? 정답이 없는 것이 인생이고 정답이 없기에 더 짜릿하고 스릴 있는 것이 인생사다. 달토끼의 올림픽 출전을 하느냐 암으로 죽어가는 애인곁에 남아 있느냐,분명 어려운 선택이다.나미야 잡화점에서는 명쾌한 답을 준다. 아니 달토끼의 마음을 콕 집어 가려운곳을 긇어주듯 시원하게 해준다.고민을 털어 놓는 사람들은 명쾌한 답보다도 고민을 혼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함께 한다는 그 마음에 더 나미야 잡화점을 찾는 것 같다.

 

도둑질을 하다가 우연하게 나미야 잡화점에 들어와 이곳이 과거를 이어주는 '타임머신'과 같은 기능을 하고 있고 자신들은 70년대 80년대로 돌아가 그들의 인생상담을 해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삼인의 좀도둑,그들에게는 현대문명의 이기인 '스마트폰' 있기에 그들의 상담은 그야말로 하느님과 같은 콕콕 찝어주는 쪽집게 '정답'이 될 수 있었던 것이고 그들의 답장으로 인해 누군가는 더 좋은 삶을 만들었을 수 있고 누군가는 잘못되엇다고 해도 그것은 '본인의 선택'이다. 그런데 그들의 운명은 '환광원'이라는 어린이보호시설과 맞물리고 잡화점과 맞물리고 그리고 다섯 명의 운명,아니 삼인의 좀도둑의 운명과 같은 '점'에서 만난 것이다. 뫼비우스의 띠가 같은 지점에서 만난 것이다. 히기사노 게이고는 단편들과 같은 이야기를 정교한 장인이 되어 하나 하나의 이야기가 톱니바뀌가 잘 맞아 최고의 아름다운 소리가 나는 '오르골'을 만들어 내듯 그렇게 절묘하게 이야기를 엮어 나간다.

 

사람의 인연이라는 것이 정말 우연처럼 만났다가 필연이 되기도 하지만 선택이란 것이 또한 운명을 어떻게 바꾸어 놓는지, 그 위대한 결단의 순간에 나미야 잡화점과의 편지 교환으로 인해 그들의 운명이 동전의 다른 면처럼 바뀌어 '기적'과 감동을 불러 일으키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인간내면>>을 잘 그려냈다는 것이 높이 평가하고 싶다.내면을 보여주고 표현하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닌 '편지'였기에 더 가슴에 와 닿았고 잘 드러났으며 타인에게는 보잘것 없는 고민도 그들에게는 운명을 바꾸어 놓을 절호의 기회가 되기도 하는 '위기'였다는 것을 하나하나 엮어가며 훈훈한 감동까지 전해 주었으니 참 절묘하다. 나미야 잡화점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타임머신과 같은 곳이기도 하였지만 삼인조 얼뜨기 좀도둑을 개화시키기도 하고 고민을 들어주고 풀어주는 그야말로 인생상담소가 되었으며 독자들에게는 달달한 재미와 훈훈한 감동까지 덤으로 안겨주는 이야기가 되었으니 눈을 크게 뜨고 찾아봐야할 듯 하다.어딘가 이런 곳이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우리 주위에 이런 곳이 있다면 정말 문전성시를 이룰것만 같다.새해가 되면 토정비결을 보고 무언가 거대한 벽에 부딪혔다고 하면 점집을 찾는 사람들도 많다. 특히나 지난해에 고3을 둘이나 치뤄낸 난 친구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두번 들은 것이 아니다. '혹시 점집에 가봤어?' 자신들의 운명도 모르는데 그들이 내 운명을 논한다고 믿어야 할까.그렇게 하고 싶지 않고 그런 것을 믿지 않아 한번도 찾지 않았다.내 아이를 믿었다. 한번 믿게 되면 달토끼처럼 자신의 고민이 없어질 때까지 계속 찾아야 하는 곳일듯 하기도 하지만 그런 것에 그리 연연하지 않기도 하기 때문이다.내 운명은 내가 선택하고 내가 결정하야 성공이든 실패든 받아 들일 수가 있을 듯 하다. 남의 의견을 받아 들였다면 남의 탓만 하면서 인생을 허비할 듯 하다. 하지만 나미야 잡화점의 할아버지,아니 삼인조 좀도둑들은 슬기롭게 답을 제시한 듯 하다. 인생의 등대처럼 길 잃은 양들의 목자가 되어 그들의 고민을 함께 고민하며 자신들의 인생까지 풀어낸 '잡화점' 이었기에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듯 하다.누군가 내게 고민을 털어 놓는다면 잘 들어주어야 할 듯 하다. 그것이 그에게는 인생의 전환점이 될지도 모르기에.

 

'내가 몇 년째 상담 글을 읽으면서 깨달은 게 있어.대부분의 경우,상담자는 이미 답을 알아.다만 상담을 통해, 그 답이 옳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거야. 그래서 상담자 중에는 답장을 받은 뒤에 다시 편지를 보내는 사람이 많아. 답장 내용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기 때문이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씨를 맺는 제라늄과 바이올렛

 

 

씨를 맺고 있는 제라늄

 

며칠전에 거실 베란다에 있는 제라늄이 활짝 탐스럽게 피었는데 그냥 지고 있는 것이 아까워

<<부비부비>>그러니까 면봉을 가지고 수정을 시켰다. 되면 되는거고 안되면 말고...

수정되서 하나라도 건지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잘 보이지도 않는데 마구마구 부비부비를 했는데

아 글쎄 하나 둘 씨가 맺히고 있는 것이 보이더니 급기야 무척 많다..ㅋㅋ

 

이녀석들 이렇게 맺히면 민들레처럼 홀씨가 맺히는데 잘 두었다가 봄에 심어야 할 듯 하다.

안방베란다에는 몇 개가 홀씨가 되어 떨어질 듯 달려 있는데 그냥 두고 보고 있다.

창문을 닫아 바람이 없으니 날릴 염려는 없을 듯 한데 조만간 거두어 들여야 할 듯..

그런데 참 신기하다.이렇게 씨가 맺히는 것을 보면..

 

 

바이올렛

 

집안으로 들오는 햇살이 좋으니 바올렛이 반짝반짝...

펄이 들어간 립스틱을 바른것처럼 반짝반짝 빛나서 더욱 이쁘다.

날이 쌀쌀한데 그나마 바이올렛이 여기저기 색색별로 활짝 피어서 집안이 다 환하다.

 

 

시클라멘

 

시클라멘의 열정의 빨간색을 하나 둘 올리고 있다.

꽃대가 몇 개인지 정확하게 모르겠으나

하나 둘 피는 것을 보면 참 이쁘다.

녀석들이 있어 삭막한 겨울이 봄인듯 느껴진다.

 

2013.1.2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달콤한 향기,천리향이 피었네

 

 

밖의 날씨는 추워진 듯 한데 집안으로 들어오는 햇살은 좋다.

모처럼 베란다의 초록이들 물도 주고 눈데이트도 하려고 안방베란다로 향하는데

으음~~ 달콤한 향기..뭐지.. 이 향기..

바부 바부..천리향이 피려고 하고 있던 것을 까먹었다.

한참 둘러보다 <<아,,,,,,천리향.....>> 하고 가보니

벌써 몇 송이 피어 달콤한 향이 은은하게 퍼지고 있다.기특한 것..

 

 

 

 

 

며칠 거실 코앞에서 '프리지어'향에 단련되다보니

달콤한 천리향을 잊어 버리고 말았나보다.

창을 통과하여 들어 온 햇살도 좋고 천리향 꽃향기도 날리고 동백 몽오리는 단단해지고

군자란은 하나 둘 꽃대가 보이고 아마릴리스도 바보같이 비리비리 작은 꽃대가 나오기도 하고

창가에 제라늄은 활짝 피니 겨울인가 봄인가 갸우뚱...

오늘 날 추운데...

 

2013.1.2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신데렐라 카니발 율리아 뒤랑 시리즈
안드레아스 프란츠 & 다니엘 홀베 지음, 이지혜 옮김 / 예문 / 201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북유럽 추리소설은 넬레 노이하우스의 '타우누스 시리즈'로 재미를 들여 더욱 관심이 가던 차였다.이 작품은 연재로 인기를 끌기도 했지만 작가가 '율리아 뒤랑' 이라는 여형사 시리즈물로 쓴 작품이며 그의 미완성의 유작이 되어 더욱 관심이 갔지만 이 작가가 없었다면 '넬레 노이하우스도 없었다'라는 문구가 더 자극을 했던 것 같다. 내가 먼저 만난 작가는 '넬레 노이하우스'였고 '안드레아스 프란츠'라는 작가는 처음이었고 이 작품은 그가 끝까지 완성을 한 것이 아니라 '다니엘 홀베'라는 작가가 마무리를 한 작품이라 그 끝이 어떻게 되었을까도 관심이었다. 작가의 첫 작품부터 읽었다면 좀더 작품속의 인물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겠지만 마지막 작품이니 그저 상상하는 수 밖에.

 

세 명의 여대생이 광란의 파티를 연 후에 독일에서 유학중이던 캐나다 여학생 '제니퍼 메이슨'이 살해되었다. 그리고 파티의 다른 참석자들 또한 이상한 행동과 충격 약물에 중독되어 있다.파티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젊은 여성은 피에 젖은 시트 위에 괴이하리만치 편안한 자세로 널브러져 있었다. 마치 죽음의 순간을 구원으로 받아 들이기라도 한 듯.' 성폭행을 당한후에 살해된 여성들은 대부분 '태아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제니퍼는 '구원'을 받은 얼굴과 포즈 또한 태아자세가 아니다. 죽음 직전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함께 파티에 참여한 친구들이 발작적인 행동을 하는 것일까?

 

살인사건 현장에는 의문점이 많이 있고 파티에 참여한 사람들의 알리바이를 추적하는 가운데 대부분 술과 마약에 다량 노출되어 있지만 딱 한 명 '알렉산더 베르트람'이라는 인물만 파티에서 일찍 나갔고 술을 마지시 않았으며 정확한 알리바이를 가지고 있다. 이럴 때는 이런 사람이 제일 의심스러운 것이다. 완벽한 사람,함께 어울렸는데 왜 그만 술과 마약을 하지 않았고 알리바이가 완벽할까? 그는 놓아준다.아니 군인출신 아버지를 두고 부유한 집안의 외동아들인 알렉산더에게서 구린 구석이 아무것도 없이 완벽하여 그를 용의자 선상에서 제외를 한다. 과연 그럴까? 이제부터 겉과 속이 다른 알렉산더의 이중생활이 드러난다. 모범적인 외동아들인 듯 하지만 그의 생활은 비밀에 쌓여 있고 그만이 알고 있는 집안의 '비밀 방'이 있다. 왜 비밀방이 필요했을까.

 

겉은 평범하고 모든게 흠잡을데 없는 청년이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 소설은 '스너프 동영상'이라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하여 깊은 생각을 갖게 하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의 주축으로 끌고 나간다. 인간을 두 번 죽이는 것과 같은 잔인한 동영상,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게 마련인 세상, 알렉산더는 공급자가 되어 직접 사냥에 나서듯이 물색하고 촬영하고 마약과 술을 먹여 강간 살인까지 저지르며 참혹함을 담고 있아 수요자들에게 전한다. 그의 밤 생활은 상상 그 이상의 모습이지만 낮의 모습은 평범한 아들이고 모범적인 아들이다. 그 모습이 언제가지 유지될까.아니 자신의 먹이감으로 살해당한 이들이 과연 구원을 받은 것일까? <천국의 계단>으로 향하는 문에 향한 것은 누구일까.

 

그런가하면 이 사건을 맡은 뒤랑은 그 또한 납치범에게 납치되어 자신이 현장에서 만나는 참혹한 상황을 직접 겪었던 장본인이다. 아직 현장에서 뛰어도 될 강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을까 할 정도로 심한 충격에 빠졌던 뒤랑이 이 사건을 진두지취한다. 연쇄살인사건은 혼자서 푸는 것이 아니라 팀의 일원들이 모두 하나처럼 움직여주면서,그의 상대 프랑크가 제일 큰 공을 세우며 그와 티격태격하며 사건을 이끌어 나간다. 그녀 또한 연쇄살인사건을 맡으며 점점 자신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제니퍼의 살인사건은 그것으로 끝나나 했지만 몇 년 뒤이어 일어난 사건들로 인해 동일범,아니 '스너프 동영상' 으로 인해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이었음이 밝혀지며 반전을 가져온다. 추리소설의 반전은 읽는 독자도 물론 작가가 바뀌었으니 '그가 살아 있었다면?' 하고 생각을 하게 만든다. 꼭 이런 반전을 넣어야 했을까? 범인으로 등장한 '알렉산더'의 자신이 죽인 연쇄살인사건의 그들처럼 그 또한 죽음은 죽음을 불러오듯 그도 복수의 표적이 되어 '죽음'으로 마무리 되기도 하는 무거움이 흐르지만 '스너프 동영상'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볼 기회를 준다.

 

사람이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을까? 겉으로 평범했던 알렉산더,하지만 아버지의 강박관념 때문에 그는 이중생활을 하게 되었는지 모른다.그의 잔인함은 어디에서 나왔던 것일까? 밖으로 보여지는 것에서는 무엇하나 부족한 것이 없던 가정이 일순간 '알렉산더'라는 아들, '괴물'로 인해 모든 것이 바뀌었다. 읽으면서 소름끼친다. 이런 괴물은 더이상 나오지 말아야 하고 그런 피해여성들 또한 생기지 말아야 한다고 몇 번이고 생각을 하지만 우리의 현실 또한 늘 불안정한 사건속의 연속이다. 죽음은 죽음을 불러오고 복수는 복수를 불러오는 악순환,그 연결고리가 끊어져야 한다. 인간은 존엄한 것이기에. 음주,마약,성,살인 현대사회가 영원히 근절시키길 수 없는 문제들이 대두되어 무거운 감도 있었으나 저자의 갑작스런 죽음에도 불구하고 세상 빛을 보게 되었다는 것이 대단하게 느껴진다.저자의 전작들은 어떤 맛인지 한번 느껴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러스트 이방인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호세 무뇨스 그림 / 책세상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올해가 까뮈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고 '이방인' 출간 70주년이 되는 해라고 한다.내가 이방인을 읽은 것은 학창시절에 물론 읽었고 그 후에 나이가 들고 다시 이방인을 구입하여 읽어 보았다. 하지만 이 책은 특별하다.70주년과 100주년을 기념한 <특별판>으로 그래픽노블으 거장 호세 무뇨스의 흑백으로 탄생한 새로운 '이방인'이 함께 접목 되어서인가보다.어느 화가의 화보집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가도 하며 까뮈의 <이방인>을 색다르게 좀더 내용에 집중하며 읽게 만든 듯 하다.호세 무툐스의 '뫼르소'는 '까뮈'를 닮은 듯도 하고. 어찌되었든 그림과 함께 읽는 특별한 맛의 '이방인'은 좀더 머리에 속속 들어오며 '뫼르소'를 그 법정에서 구해내야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들게 했다.그가 왜 부조리와 싸우지 않고 자신의 죽음을 순수히 받아 들인 것인가. 어느 구석에도 자신은 없다. 실존하면서 실존하지 않는 인물처럼 뫼로소는 그렇게 죽음앞에 서게 된다.

 

 

선박회사 일하는 뫼로소는 피곤한 가운데 어머니의 부고를 받았다. 셀레스트네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겨우 차를 타고 어머니가 계시던 양로원에 가는 길에 길에도 차 안에서 몹시 지친듯 잠에 빠져 들었었다.그런 그에게 어머니의 죽음은 남의 일처럼 받아 들여졌고 그는 어머니의 시신도 보지 않고 마지막 인사도 나누지 않은채 장례를 치르고 만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모두가 이상하게 생각한다.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고 해도 어떻게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까지 보지 않을수 있단 말인가.양로원에서 사귄 어머니의 애인인 페레스 영감은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도 그 먼길을 와 애도했건만 그는 남의 일처럼 담담하고 방관자의 입장이 된다. 그리곤 그의 집에 돌아와 뜨거운 태양이 시위라도 하듯 바닷가를 나가게 되고 그곳에서 전에 함께 일하던 마리를 만나게 되고 둘은 정사를 나누게 된다. 그의 어머니의 장례를 어제 치뤘다는 믿겨지지 않을만큼 그는 무감각하다.

 

 

그가 어머니를 보내 드리고 그 빈자리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면 이웃에 사는 살리마노 영감은 악연처럼 그렇게 구박하던 개를 잃어 버리고 개의 빈자리가 컸던지 울부짖는다. 그런가하면 이웃에 사는 레몽은 그에게 함께 살던 여자문제를 그에게 털어 놓으며 그와 친구가 되자고 한다. 레몽의 정부였던 여자를 떼어 놓기 위하여 뫼르소에게 편지를 부탁하고 그는 혼쾌히 편지를 써 준다. 그들의 작전은 바로 이어졌고 레몽은 그녀를 마구 때리다 경찰이 들이닥치고 뫼르소는 증인으로 경찰에 불려가게 된다. 분명 그는 이웃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성의를 표시하며 일을 해주었는가 하면 회사에서는 착실하다는 것을 인정 받아 파리발령을 제의 받기도 했다. 그런 그가 왜 '살인'을 해야 했을까. 어머니의 죽음부터 이어진 일련의 일들이 그를 어느 죽음의 그물 안으로 몰아 넣듯 그동안 그가 보여주었던 일들이 그에게는 마이너스르 작용을 한다. 왜 어머니의 시신을 한번도 보지 않았을까? 눈물 한 방울이라도 흘렸다면..아니 그 다음날에 마리와 잠자리를 함께 하지 않았다면 폐륜으로 낙인이 찍히지 않았을까.

 

 

'레몽이 권총을 주었을 때, 그 위로 햇빛이 번쩍 반사되어 미끄러졌다.'

어머니의 죽음과 아랍인을 바닷가에서 권총으로 쏴 죽게 만든 그 순간까지 죽음은 이어지고 있고 마지막 그의 죽음까지 무척이나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이야기인데 소설 속은 온통 뜨거운 햇빛과 파란 하늘 그리고 바다가 펼쳐진다. 음산함이 펼쳐지는 가운데 죽음이 나열되는 것이 아니라 눈 돌릴만한 큰 사건이 없는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가운데 일어난 살인사건, 한 발을 쏘아 죽었다는 것을 알았으면서 배에 네 발을 '탕탕탕탕' 꽂아 넣는다.운명 교향곡의 네 번의 쾅쾅쾅쾅처럼 그는 네 발을 처음 한 발과 시간차를 두어 쏜다.왜 그랬을까? 아랍인이 칼을 빼 들었고 그가 권총을 한 발 쏘았다면 정당방위가 될 수도 있었을텐데 네 발을 연이어 쏘았으니 이것은 명백한 살인이다. 그렇다고 그가 아랍인을 죽일만한 명명백백한 이유도 없다. 그저 레몽의 정부를 혼내 주었다는 이유로 그와는 우연히 만나게 된 사람들이었는데.

 

 

뫼르소의 단조로운 일상은 감옥에 가서도 이어진다. 도무지 자신이 갇혀 있는 것에 대하여 별 생각이 없는 듯한 그,자신이 저지른 살인에 대하여 반론을 하던가 분노를 하던가 자신 안에 숨죽이고 있는 '진실'을 끄집어 내야 하는데 그는 방관하고 있다. 법정 어디에서도 감옥 어디에서도 그는 없다. 그저 '사형'은 당연히 자신의 것인양 남의 일인것처럼 법정에서 방관하는 뫼르소, 그들이 말하는 어머니의 장례부터 하여 이어진 일들에 대하여 좀더 자신을 드러내고 확실하게 말을 했다면 어떻게 변했을까? 그 사회가 그의 진실을 받아 들이지 않을 것을 알면서 미리 포기했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사회는 진실한 한사람의 시민을 죽였다는 것인가. 다수가 한사람을 죽이는 일은 간단하지만 개인이 다수를 이기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처럼 힘든 일이다.하지만 뫼르소는 자신의 변호하거나 분노하지도 않았다는 것,남의 일처럼 달관하여 방관만 했다는,이방인과 같은 시선으로 삶과 죽음을 그렇게 받아 들였다는 것이 분노하게 만든다.

 

 

뫼르소와 함께 했던 이들은 그가 살인과는 무관한 삶을 살아 온 진실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지만 개개인이 법과 싸우기에는 너무 힘이 작다. 아니 그들의 힘은 법 앞에서 무참히 짖밟히듯 무너지고 만다. 한마디 제대로 말을 해 보지 못하고 거짓의 손을 들어야만 하는 소수의 힘은 뫼르소를 '죽음'으로 이끌고 가게 만든다. 진실을 위해 단두대에 머리를 맡긴 뫼르소, 현실에서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고립당한 채 그가 형장으로 걸어가며 간직한 진실은 누구를 위한 진실인가? '호세 무뇨스'의 흑백의 그림이 주는 무거움과 흡인력 때문에 더욱 작품에 빠져 들며 읽었던 특별판 <이방인>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책이며 소장해야할 책인듯 하다. 태양, 모든 것을 소생하게 하기도 하지만 죽게도 만드는,진실도 단숨에 뒤엎어 죽음으로 치닫게 만드는 태양의 힘을 강렬히 느낀 작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