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는 7시에 떠나네
신경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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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세계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현상들은 순간순간 서로 교차하고 있다.’
중국여행에서 돌아온 날에 받은 세 통의 전화, 미란의 자살소식을 전해주는 언니와 자신이 출연한 라디오의 청취자한테 받은 전화.하진은 중국여행중 사진을 찍을 때 자신도 모르게 미란의 모습을 언뜻 보았다. 그런 미란이 자신의 손목을 그은것이다. 청취자라고 한 젊은 여자는 결혼한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남편을 잃었다. 누구에게 기대지도 못하고 하진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 놓는 그녀,그런 그녀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듣는 하진, 그녀 또한 청혼을 받았지만 마음이 흔들리는 상태이다. 자신의 잃어버린 시간속에 누군가가 무언가 있는것 같지만 그녀는 한때의 기억을 잃어버렸다.

조카 미란이와 언니네, 잘 살아가고 있는 듯 하지만 그들 속을 들여다보면 가족이지만 뿔뿔히 흩어져 버린 모래알 같다. 그런 속에서 자신의 정체를 잃어버리듯 했던 미란, 사랑하는 남자에게까지 사랑을 잃어버리고 결국 그녀가 선택한 길은 죽음이었다. 그녀 또한 자해를 하면서 그 이전의 기억을 잃어버렸다.이모인 하진처럼. 언니네와 미란 그리고 하진이 출연했던 라디오의 청취자인 여자와 하진 그들은 모두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그들의 아픔은 ’기차’ 처럼 서로 연결되어 한방향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다.

’늘 기차는 7시에 떠나네, 라고 적어 보냈어요..... 한번도 빠짐없이 그랬어요. 내가 7시가 아니라 8시라고 하여도 재킷을 가져다가 코앞에 디밀고 7시가 아니라 8시입니다. 라고 해도 메모지엔 늘 7라고 적어 보냈어요. 나중엔 나도 그 노래 제목이 꼭 기차는 7시에 떠나고가 아닌가 착각을 할 정도였지요... 왜 그랬을까요?’  잃어버린 기억의 파편을 조카 미란과 함께 찾아 떠나보기로 한 하진은 자신이 예전에 자주 가던 다방과 그 다방에서 들었다는 노래에 얽힌 사연을 알게 되면서 들어나는 ’단서’ 들을 따라 뉴질랜드에서 제주도로 자신의 ’파편’ 을 찾아 떠나게 된다. 아픔을 간직한 조카 미란과 함께. 

’닳아진 조각보처럼 그와 여자가 낳아 기르고 있는 아이를 보는 순간 어떤 기억들이 부분부분 솟아나기도 하고, 산만하게 흩어져 있던 목소리들이 기워지기 시작했다.’ 제주도에서 김용선을 만남으로 해서 자신의 잃어버린 부분들을 되찾아 마침내 완성하는 조각보, 그들이 젊은날 아픔으로 인해 치유되지 않았던 부분들이 다시 만남으로 인해 치유되고 자신을 찾는 그들, 미란 또한 이모와의 여행에서 새로운 자신을 설계한다. 젊은 날의 아픔을 치유하고 나서야 비로소 지금 자신의 사랑을 받아 들일 수 있었던 하진 그리고 그녀를 아픔을 보면서 자신의 아픔을 치유한 윤은 현피디와 재결합을 하기로 하는 ’아픔과 치유’ 가 담긴 추리성격을 띤 소설 <기차는 7시에 떠나네> 는 소설에서 등장한 그리스 민요 ’기차는 8시에 떠나네’ 로 인해 더 기억에 남은 소설이 되었다.

'사람은 사람에 의해서 살아진다,이렇게.'
미란과 언니네를 비롯하여 주인공인 하진 또한 지난 시절 아픔을 간직하고 있었고 젊은 여자 청취자 또한 남편과의 아픔을 간직했지만 하진이 성우를 해보라며 권유를 해 그를 받아 들이며 제주도의 용선과 그도 하진을 만난 후 사랑의 치유를 하며 윤과 현은 재결합을 하고 하진도 자신 곁에 있는 사랑을 택하기로 한다. 모두의 아픔은 기차처럼 연결되어 있지만 그들은 어느 순간 ’치유’ 라는 조각보를 완성하여 삶을 현재진행형으로 돌려 놓는다. 어찌보면 삶은 아픔이 있어도 계속되고 아픔이 없는 삶이어도 계속된다. 하지만 아픔이 치유되었을때 그 삶은 더 값지게 빛이 난다. 아픔이 추억이 되고 현재의 자신을 다지는 약이 되어 더이상 흔들리지 않게 자신을 붙잡아 줄 기둥이 되게 한 ’기차는 7시에 떠나네’ 는 작가의 오래전 소설이지만 지금 읽어도 재밌다. 추리기법이 가미가 되어 맛을 더해주고 잊지 않을 추억의 노래가 들어가 소설은 더 잔잔한 여운을 남겨준다. 비 오는 날 ’기차는 8시에 떠나네’ 라는 노래와 함께 읽으니 더 잊지 못한 소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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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화 속으로> 영화 리뷰가 

이주의 우수리뷰로 뽑혔다. 

세번째 우수리뷰~~  

한국전쟁 60년을 맞이하여 본 영화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영화였는데 이런 행운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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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포차 버들골 이야기 - 7평 허름한 가게에 ‘정성’이 가져온 기적
문준용 지음 / 글로세움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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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절대 밀릴 수는 없다. 그게 절대 밀려날 수 없다는 내 의지였다. 안 되는 놈은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하늘이 야속하기도 했다. 정초부터 불난리라니 액땜치곤 너무 과했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 간사한 건지, 내가 엄청 긍정적인건지, '불난 집은 부자가 된다.' 라는 말이 떠올랐다. 서글프기도 햇지만 속맘엔 은근히 정초에 불까지 났으니 ' 아, 얼마나 잘되려고 그러나' 기대도 있었다.'  바닥까지 밀려 났기에 그가 더이상 밀려 날곳이 없었던 것인가, 아님 가게를 열고 얼만 안되는 수입이던 때 정초에 불난리를 겪어서 그야말로 '버들골' 에 난리가 난것일까 하는 생각을 가져보았다. 모든것 체져 놓고 손님의 말에 기울일줄 아는 주인이 있고 손님의 마음에 그야말로 <정성>으로 대한 그가 있어 가게가 대박이 나지 않았나싶다.

'장사는 요령이 아니고 정성임을 깨달았다.'
조금 잘되면 위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가난하던 시절을,진정 자신이 바닥이던 시절을 잊을 때가 있다.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을 못하고 척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손님의 말에 귀 기울이며 손님의 의견을 자신의 음식에 반영하니 잘되지 말란 법이 없을 듯 하다. 그가 잘 나가던 시절, 여기저기에서 돈을 끌어다 신발공장을 차리고 IMF로 정말 가족을 버리듯 바닥으로 밀려난 그가 택할 수 있는 삶은 무엇이었을까? 노숙자를 많이 배출했던 IMF, 아직 그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도 많다. 그렇게 보면 그는 정말 성공한 사람이다. 지금 그의 위치를 본다고 해도 성공의 반열에 그를 올려 놓아도 누가 뭐라 할 수 없을 듯함이 오롯이 담겨진 '버들골 이야기' 그곳엔 정이 있고 사람냄새가 있고 맛있는 음식이 있고 낭만이 있어 더 좋은 곳인듯 하다. 

'손님은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고마운 스승님이까.'
언제까지 포장마차 주인으로 남아 내가 힘들 때 가게를 찾아 주었던 손님들을 맞고 싶다는 주인장의 철학이 넘 맘에 든다. 이제는 물러나 뒤에서 지켜봐도 되는 위치가 되었지만 그가 '희망' 을 찾은 일터이고 '정' 으로 이룩한 세월이 녹녹히 녹아난 '버들골' 은 읽는 그 자체만으로도 힘이 났다. 일년여 동안 집앞의 분식집에서 알바를 한적이 있다. 나중에 좀더 나이를 먹으면 내 이름의 북카페를 해 볼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 몸으로 경험을 쌓아 보려고 시간도 벌겸 알바를 했는데 남의 돈을 받기란 정말 힘들었다. 더구나 식당일이라는 것이 좀처럼 짬이 나지 않았다. 몸도 힘들고 맘도 힘들었지만 내 삶에 좀더 자신감을 심어준 시간들이었고 무엇이든 하면 할 수 있다는 '희망' 을 발견하기도 했으면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기도 했다.그때 손님들과 부딪히며 얼마나 힘들었는지,그들의 마음을 모두 헤아릴 수는 없었지만 어느정도 귀 기울여 준다는 것이 보통 힘든일이 아님을 알았다. 그래서였을까 그의 솔직 담백한 경험의 세월은 가슴을 훈훈하게 해 주었다.

'주전자에서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들리면 따듯한 커피 한 잔이 생각난다. 종이컵에 안전하게 물을 따른다. 욕심을 부리면 커피 맛이 달라진다. 가슴이 차지도록 상대방이 내 마음을 몰라줘서 화가 났던 기억설탕처럼 달콤하게 녹는다. 돌아보면 견딜 수 있는 고통 앞에 서 괜한 엄살을 떨었다. 주전자가 제 몸을 먼저 데워서 쏟아내는 뜨거운 물이 비록 한 잔 커피를 위한 일이라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본다.'

'장사하는 사람에게 생기는 문제의 답은 손님 테이블에 있다.'
손님 테이블에 작은 고추가루 하나 허투루 넘겨 보지 않고 남긴 반찬 하나하나 조밀조밀 따져 보아 좀더 나은 내일의 설계를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는 그 작은 곳에서 발견하여 들려준다. 식당에 음식을 먹으러 가면 테이블이 지저분한 곳이 많다. 손님이 오면 테이블을 한 번 닦아 주는 것이 아니라 반찬이나 그외 물컵등을 먼저 내오기에 숟가락과 젓가락을 놓기가 꺼려 질 때가 있다. 그럴때는 냅킨을 꺼내어 올려 놓기도 하는데 미리 한번 깨끗하게 닦아주는 센쓰를 발휘하여 손님이 찡그리는 일이 없도록 하는 '작은 배려' 애서 부터 손님의 마음을 읽으니 손님과의 거리를 좀더 좁히고 손님의 마음을 읽어주어 십년지기 단골손님들을 많이 확보하지 않았나 한다.그렇게 하여 '손님 감동' 으로 이어졌으니 그간의 세월동안 감동과 정에 얽힌 사연과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싶다. '돈은 열심히 일하면 벌린다. 그러나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먼저 스스로 감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늘 발전하고 생각하고 좀더 '사람속을 파고드는' 그런 주인장이 되려 하는 그의 철학이 참 맘에 든다. 음식을 담아 내기전에 미리 그림으로 그려보기도 하고 손님들에게 시식을 선보여 손님의 입에 맞는 음식을 내 놓으려 하는 주인의 자세가 있으니 그곳을 찾는 손님이라면 얼굴을 찡그리는 일은 드물듯 하다. 누구에게나 맘에 맞을 수는 없겠지만 손님의 맘에 근사치 다가가려는 자세가 중요한듯 하다. 자신의 돈벌이를 위하여가 아니라 마음을 움직이려는 자세가 더 중요한듯 하다.그런 그의 철학이 있어 빚쟁이들에게 밀려 바닥으로 나 앉은 그를 현재로 만들어 준 듯 하다. '나는 똑똑한 사람보다 따듯한 사람이 더 좋다.' 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정말 낭만포차인듯 하다. 그곳에 가면 사람의 정이 있고 따듯함이 묻어나 가슴안에 묻어 두었던 지난 이야기들도 모두 꺼내 놓아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다. 지금 삶이 힘들다고 생각하거나 무언가 나만의 '희망' 을 꿈꾸고 있는 마음이 부자인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책이다. 주머니가 넉넉해서 부자가 아니라 마음이 따듯해서 부자인 그의 이야기를 읽으며 잠시 행복한 낭만을 꿈 꿀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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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그네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1
헤르타 뮐러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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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배고픈 천사는 입 안에, 내 입천장에 오롯이 매달린다. 그건 배고픈 천사의 저울이다. 배고픈 천사가 내 눈을 제 안경처럼 덧쓰고, 심장삽은 현기증을 일으키고, 석탄은 흐릿하게 보인다. 배고픈 천사가 내 뺨을 그의 턱 위에 끼워 맞춘다. 그리고 내 숨결을 그네 뛰게 한다. 숨그네는 무엇과도 견줄 수 없을 만큼 심한 착란 상태이다.' 축음기 상자였던 돼지가죽 트렁크에 아버지의 외투와 우단 깃이 달린 도회풍의 할아버지의 외트, 삼촌의 니터보커 바지를 넣고 이웃 타르프 씨가 준 가죽각반을 넣고 피니 고모가 준 초록색 양모장갑을 넣고 지난 크리스마스에 선물 받은 붉은 포도주색 실크스카프와 세면도구를 넣어 길을 떠날때 소년은 '배고픔' 이 그렇게 큰 적이 될지 몰랐다.

17세 소년 레오, 그는 강제수용소에서 5년여 동안 수감생활을 하며 '삶과 죽음의 숨그네' 사이를 오가며 배고픔과 향수 그리고 죽음과 시체에 두려워 하지 않는 법을 배운다. ' 우리는 수용소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시체를 치우는 법을 배웠다. 사후경직이 시작되기 전에 죽은 이들의 옷을 벗긴다. 얼어 죽지 않으려면 그들의 옷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들이 아껴둔 빵을 먹는다. 그들이 마지막 숨을 거두면 죽음은 우리에게 횡재다.' 다른이의 죽음을 통해 남겨진 사람들은 '삶의 연장' 되는 처절한 수용소의 생활에 그는 집으로 향하는탈출보다도 강제수용소로 돌아가는 길이 더 익숙하기만 하다.

소설은 소설이라기 보다는 강제수용소의 체험기와 같이 건조한 문체이지만 사실적으로 쓰여졌다. 독일계 소수민족에서 태어난 그녀, 어머니가 강제수용소에서 오년을 보냈고 아버지 나치 무장친위대로 징집되었다고 돌아왔고 할아버지 또한 루마니아에 독재정권이 들어서고 재산을 모두 몰수 당했다고 하니 그녀의 삶이 닮긴 소설이라 할 수 있을 듯 하다. 루마니아에 살던 17세에서 45세 사이의 독일인은 남녀를 불문하고 소련의 강제수용소로 유형을 갔다하니 그녀와 루마니아의 소수민족의 삶이 오롯이 담긴 소설이라 할 수 있다. 동료 '오크사 파스티오르' 와 함게 이야기를 강제추방을 당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 나가다가 그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나서 쓰게된 소설 <숨그네>는 그녀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 주었지만 독자들에겐 참흑한 강제수용소 생활을 좀더 세세히 전해주는 계기가 된 듯 하다.

'너는 돌아올거야.' 라는 할머니의 말이 레오를 집으로 돌아오게 만들었을까? 죽음보다 더한 배고픔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 강한 에너지를 안겨주는 말이 되었을까? 가족들은 자신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무관심하다고 생각하게 된 레오,적십자를 통해 온 한장의 엽서에 담긴 자신을 대신할 새로운 동생의 탄생에 적개심을 품었던 그가 강제수용소 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서서히 적응해 나가며 자신이 가졌던 생각들을 고쳐나갈 수 있었던 것은 '할머니의 말' 이나 할어버지의 죽음이후에 이웃이 들려준 자신에 대한 사랑이 담긴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삽질 1회 = 빵 1그램처럼 처절하게 '생' 으로 달려가기 위한 그의 노력이 수용소에서 그가 배고픔을 이기게 해 주기도 하였겠지만 죽음보다 무서운 배고픔을 이겨내는 것에는 방법이 없었을 듯 하다. '절대영도에는 세칙이 없다. 배고픈 천사가 뇌를 훔치는 도둑이라면 절대영도는 법 자체다. 빵의 정당성에는 현재만 있을 뿐, 전후 과정이 없다. 완벽하게 투명하거나 완벽하게 비밀에 휩싸여 있다. 빵의 정당성은 배고픔이 뒤따르지 않는 폭력과는 다른 폭력이다. 빵의 법정에는 일반적인 도덕이 들어설 수 없다.' 법도 없고 먹을것도 부족했던 곳에서 그들은 좀더 배고픔을 이겨내보기 위한 방법으로 '빵바꾸기'도 하고 자신이 가진것을 하나하나 팔아 먹을것 대용으로 없애기도 했지만 '아마포 손수건' 만은 트렁크 밑에 남겨 두었다. 그 손수건이 자신과 같다고 느낀 레오,손수건마져 없애버리면 영영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신세가 될 것같아 '너는 돌아올 거야.' 라는 할머니의 말과 함께 했던 손수건을 고이 간직했던 그의 질곡의 수용소의 생활은 비참 그 자체이다. 

죽은 시체의 머리카락마져 추위를 막기 위한 양탄자로 쓰이는 그곳에서 그가 마주한 시체는 자신이 직접적으로 겪는 '배고픔' 보다는 무서움이 덜 했다. 하지만 자신들이 철처한 배고픔에 노출되도록 한것이 관리자들이 뒤로 빼돌린 것 때문에 더한 고통을 겪었다는 것을 알고는 그들이 느낀 '배신감' 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강제수용소에서 그들이 그토록 이겨내지 못한 추위와 배고픔을 나 몰라라 한 관리자들, 그들의 최후 또한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처참 그 자체였다. 자신은 수용소에서 그토록 힘든 시간을 이겨내는 동안 고향집에는 여전히 예전과 별다르지 않은 삶이 이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안 레오, 자신의 현실과 가족이 누리고 있는 현실사이의 간극을 그가 이겨낼 수 있었다는 것이 다행이다. '고향에서는 내가 아직 살아 있음을 아무도 모른다. 지금쯤 할아버지는 고향 집 베란다에서 차가운 오이샐러드를 먹으며 생각할 것이다. 내가 죽었다고. 할머니는 헛간 옆 방바닥만한 그늘에서 닭 울음소리를 내며 암탉들을 불러 모은 후,모이를 뿌려주며 생각할 것이다. 내가 죽었다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아마 벤히에 있을 것이다. 어머니는 손수 만든 세일러복을 입고 산골 풀밭 한가운데 누워 생각할 것이다. 나는 이미 하늘에 있다고. 나는 어머니를 흔들며 말할 수 없다. 어머니, 나를 사랑해요. 나 아직 살아 있어요.' 

6월,우리에겐 한국전쟁 60년을 맞는 해라 그런가 더 가슴이 아팠다. 얼마전에 본 영화 <포화 속으로> 의 학도병도 생각나고 그 학도병과 오버랩되는 17세 소년 레오가 살기 위해 옷의 모든 부분에 감자를 넣어 수용소로 돌아오는 부분을 읽으며 가슴이 아렸다. 고향을 향하여,자유를 향하여 도망칠 수도 있는데 먹을것을 택하여 수용소로 돌아가는 그의 무거운 발걸음이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나는 눈을 감고도 막사로 가는 길을 찾는다. 나는 외출이 필요 없다. 내게는 수용소가 있고, 수용소에는 내가 있다. 내게 필요한 것은 침대 하나와 펜야의 빵과 양철그릇 뿐이다. '  한참 먹을 것에 예민할 나이이고 자신만을 찾을 이기적인 나이에 그가 배우고 겪은 '삶과 죽음' 이라는 명제가 그의 일생을 어떻게 바꾸었을지, 작가가 창작의 자유를 찾아 고향을 버리고 망명을 택하여 삶이 박탈당한 강제수용소 이야기를 진솔하게 우리에게 들려주기 까지 얼마나 긴 터널을 걸어왔을지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나에게 주어진 '오늘' 을 더 값지게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하는 소설이다.진실은 언젠가는 수면으로 떠 오르기 마련이다. 감추려 하면 할수록 터져 나오려 하는 압력은 더 커지는 듯 하다.처참이 너무 세세하고 무미함이 자리하여 조금은 읽는데 힘이 들수도 있지만 인내를 가지고 읽다보면 '삶의 희망' 이 나타나듯 '진실' 을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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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씨마을의 꿈>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딩씨 마을의 꿈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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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씨 마을로 통하는 길은, 십 년 전에 딩씨 마을 사람들이 피를 팔아 닦은 시멘트 길이었다.' 
피를 팔아 나 뿐만이 아니라 마을을 잘살게 하고 나라를 부강하게 했다,왠지 섬뜩하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딩씨 마을에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자신들의 피를 팔는 것이었다. 일을 해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샘물처럼 퐁퐁 솟아나는 ' 자신들의 피를 처음엔 한달에 한 번 팔던 것이 이십일 십오일 그렇게 모두가 안이하게 꿈에 부풀어 있을 즈음 그들은 그들이 선택하지 않은 죽음에 이르는 병 '열병이라 하는 에이즈' 에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피를 팔았던,피를 팔지 않았던 걸려 들고 말았다.

'피를 파실 분,피 사실 분 안계세요?'
어찌보면 그들의 치부를 들어내는 소설이라 '창작의 날개를 꺾인 소설' 이 되었던 것인지,아님 옮긴이의 말차럼 '침회 의식의 결여'로 인한 비극에 둔감한 중국인들에게 너무도 비극적이라 받아 들여지지 않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딩후이' 를 놓고 보면 끝 없는 인간의 욕망의 끝이 얼마나 무서운것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학교에서 종을 치는 일을 하며 선생님들을 대신하여 아이들에게 공부도 가르치는 인생이 한방향을 바라보고 가는 것처럼 언제나 늘 올곧은 딩후이의 아버지인 할어버지와는 다르게 그의 아들들은 큰아들 딩후이도 욕심이 끝이 없었지만 딩 량 또한 열병에 걸린 이후 아내가 아닌 사촌의 아내인 링링과의 불륜을 저지른다. 할아버지의 아들들은 딩씨 마을에서는 눈에 가시와 같은 존재이며 딩후이는 딩씨 마을의 사람들이 '열병' 에 걸리게 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 소설의 화자는 열두살의 딩후이의 아들이면서 그는 독이 들어 있는 과일을 먹고 죽었다. 할아버지가 있는 학교의 담장에 묻혀 있는데 그가 이 소설을 이끌어 나가는 화자이다. 이야기의 주를 이루는 인물로는 할아버지와 그의 아들인 딩후이가 평행선처럼 이야기 끝까지 나란히 간다. 어느 쪽으로 치우침없이 늘 변함없고 반듯한 할어버지와는 다르게 그의 아들인 딩후이는 그야말로 변신술이 남다른 인간이다. 언제든 자신에게 유리하면 무엇이든 남을 속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부를 축적하려 한다. 가난하던 마을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매혈' 을 누구보다 잘 이용하여 큰 부자가 된 딩후이,그는 남들과 다르게 삼층집에서 살지만 그의 욕심은 끝이없다. 그가 피를 뽑을 때 솜과 주사기를 여러번 사용하여 열병이 더 번졌다는 것을 모두가 알기에 그를 죽도록 미워한다. 할아버지는 그런 사실들을 알고 또 그 사실때문에 손자가 죽게 되었다는 것을 마을사람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개두' 를 하게 하지만 그는 자신이 지난일을 당연하게 받아 들인다. 그런 아들의 목을 조르고 그를 죽음직전까지 가게 하지만 아들은 그후에도 달라짐이 없다. 오히려 어려움을 악이용하여 자신의 부를 더 축적한다.

'모두 오늘은 있지만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오직 우리 할아버지의 몸에만 열병이 없었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몸에 열병이 전염되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아주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관리자가 되었다.' '새월이 시신 같았다.'  오늘은 있지만 내일이 없는 사람들은 죽음직전까지 자신들의 욕심을 버리지 못한다. 학교에 모여 공동생활을 하면서도 도둑질을 하는가 하면 자신이 죽고나면 관에 까지 '관인' 을 넣어 달라는 둥, 그들이 평생 집착한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는 사람들을 보면서 인간의 욕심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새삼 느껴본다. 딩씨 마을의 '고통과 절망' 을 끝내는 동시에 아들인 딩후이의 욕망을 잠재우는 길은 아들인 딩후이를 그의 손으로 죽이는 일 뿐이다. 과연 자신의 손으로 아들을 죽일 수 있을까?

'온 하늘과 땅을 뒤덮은 꽃의 바다가 평원 위로 끝없이 펼쳐진 것을 보았다. 딩씨 마을과 딩씨 마을 어귀로, 논밭과 황허 고도 위로 끝없이 펼쳐진 것을 보았다. 온갖 색깔의 빛을 뿜어내면서 황금 벽돌과 황금 기와,황금 가지,금괴와 금구슬을 연결 시키고 있었다... 땅위에는 신선한 곷들이 만발하고 땅 밑에서는 황금 열매가 맺히는 광경' 할아버지가 꿈 속에서 보았던 딩씨 마을의 아름다운 풍경, 할아버지의 꿈이며 딩씨 마을이 이루고자 한 꿈일터지만 '매혈' 로 인하여 딩씨 마을은 사람이 죽어나가고 가축들이 죽고 관을 짜기 위하여 나무를 모두 베어내고 그야말로 죽음의 땅이 되어가고 말았다. 인간의 욕심이 얼마나 잔인한 것이란 말인가? 쉽게 돈을 쥘 수 있을 때는 피를 한 번 뽑고 설탕물을 먹고 한나절 누워 있으면 부를 쥘 수 있을것만 같았는데 그게 바로 자신들이 자신을 스스로 죽이는 길이었던 것이다. 

처절한 '고통과 절망' 을 피 비린내를 풍기며 너무도 세세하게 그려낸 소설이다. 작가의 말에서 '이십만 자에 달아하는 이 작품을 쓰면서 내가 소모한 것은 체력이 아니라 생명이었다는 사실이다.' 매혈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죽음에 이르렀는가. 끝이 없는 인간의 욕망이 부른 '고통과 절망 죽음 그리고 폐허와 몰락' 의 세상에서 그야말로 '하늘이 바뀌고 땅이 변한 마을' 이 되어 버린 딩씨 마을은 미래가 없다. 학교에서 공동생활을 하던 그들이 '아무런 의미도 없는 삶이야. 하루를 살면 하루의 의미가 생겨날 뿐이지.' 라는 삼촌의 말처럼 당장 오늘 하루의 의미로 살던 그들이 학교의 칠판까지 모두 떼어내어 가져가 버린 텅빈 학교처럼 미래를 위해 나무 한 그루,칠판 하나 남겨 두었다면 그들의 미래는 어찌 되었을까? 스피노자의 말처럼 '지구가 내일 멸망한다고 해도 나는 오늘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라고 생각을 달리한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열병이라고 하는 '에이즈' 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이와 비슷한 소설로 알고 있는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를 읽어보려 하다 기회를 잃었는데 이참에 한번 읽어봐야 겠다. 독특하면서도 삶의 자세에 대한 생각을 갖게 했던 소설로 여운이 길게 남을 듯 하다. 초판이라 '오자' 가 넘 많아 약간 먹구름이 끼게 하였지만 재판에서는 수정되리라 본다. 좋은 소설을 만난 기쁨은 오래도록 남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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