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에 한번은 동유럽을 만나라 일생에 한번은 시리즈
최도성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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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전에 책에 소개된 사진들을 한번 쭉 펼쳐 보았다. 중세의 아름다움이 그대로 남아 있는 그러면서도 그 속에서 함께 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역사가 한 눈에 펼쳐져 당장 그곳으로 달려 가고 싶게 만들었다. 현대를 살고 있지만 사진은 무언가 그 오래전의 이야기를 마구마구 쏟아 낼 것만 같은 예술과 오래된 역사가 느껴졌다. 작가의 책은 내겐 처음이다. <일생에 한번은 스페인을 만나라> 라는 책을 한동안 여기저기에서 보게 되고 한번 읽고 싶다는 생각에 기회를 잡을까 했어지만 스페인에 관한 책들은 한동안 많이 만나듯 하여 다음 기회로 미루고 있었다. 그러다 만나게 된 이 책은 정말 단한권에 동유럽을 모두 담아 놓은 듯한 내가 알지 못하거나 알찬 정보와 이야기들이 꽉 차 있어 여행서라기 보다는 동유럽의 문학과 역사서로 봐도 손색이 없을 만큼 내겐 무지함을 깨우쳐 주는 책이 되었다.

학창시절 내가 만난 카프카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카프카의 <변신> 을 읽고 무척이나 심란함에 휩싸였던 시절이 있어고 그 뒤로 만난 <심판>은 <심판> 또한 어린 내가 이해하기엔 조금 부족했던 듯 싶었던 작품들이었고 언제 기회가 되면 그의 작품들을 다시 만나봐야겠다고 생각만 하고 있었지 아직 다시 접하게 되지 않았는데 이 책에서 카프카는 완전히 내게 각인을 시켜 주었다. 프라하는 카프카의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하는데 내가 가진 얄팍한 카프카에 대한 지식으로는 프라하를 받아 들이기 힘들었지만 한번 가보고 싶은 곳으로 그리고 카프카를 다시 읽어봐야 할 작가로 남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여행은 그 단어 자체만으로도 흥분이고 설렘인데 그것도 중세의 고풍스런 건물들이 즐비하면서 문학과 음악 예술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아직도 그 시대의 음악과 문인들을 만날 것만 같은 그런 사진속의 동유럽은 정말 환희 그 자체였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을 읽지 않았기에 그가 전해주는 느낌만으로 충족해야 했지만 그가 도착하자마자 달려간 카를교의 야경은 사진만으로도 멋졌다. 퐁네프의 연인에서는 퐁네프의 다리를 보았다면 프라하에서는 카를교의 아름다움을 만났다.프라하성의 야경이 비추인 카를교의 야경은 백만불을 줘도 바꾸지 않는다고 하니 얼마나 대단한 자부심인가. 단지 난 사진으로 만족해야 했지만 말이다. 다리에 얽힌 전설도 재밌었지만 그 다리의 동쪽 여덟번째에 세워진 얀 네크무크 신부의 오성 동상은 정말 멋졌다. 그가 이 다리의 수호성인이 된 사연을 읽으며 보니 조금은 슬프기도 했지만 파란 하늘과 함께 하는 동상은 실제로 보고 싶다는 맘만 안겨주었다.이처럼 그냥 지나치면 모를 것들을 세세하게 역사와 전설 그리고 예술을 곁들여 함께 조목조목 설명해 놓았으니 여행서라기 보다는 프라하의 역사서를 만나는 느낌도 든다. 

’혼자 꾸는 꿈은 꿈이지만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 라는 오노요코의 말처럼 존 레논과 오노요코에 관한 이야기등 그냥 지나치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는 이야기들을 따라 함께 주위를 여행하는 기분은 핫쵸코라도 한잔 손에 들어야 할 것만 같다.세계사 시간에나 접했을 법한 역사 이야기와 함께 인물이나 건물 그리고 그림등에 얽힌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여행서가 아닌 역사서란 착각이 들정도로 집중하게 만든다. 체코가 사랑하는 인물에는 오랜 역사속을 거슬러 올라가 만날 수 있는 '카를 4세' 에서 잘알지 못했던 '얀 후스' 와 아픔 또한 잊지 않고 새겨 놓아 기억하게 만드는 곳이며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새로운 동행은 자연스럽게 여행의 묘미인 아삭한 샐러드처럼 곁들여져 역사서가 아닌 여행서임을 자각하게 해준다. 

이 책에서 무엇보다 깊게 각인된 것은 '카프카' 이다. 그를 기억할 수 있는 곳이 무려 서른여덟 군데나 있다니 프라하는 정말 카프카의 도시라고 할 수 있을 듯 하고 프라하라는 말이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지 그 유래를 읽다보니 그저 '프라하..프라하' 하면서 왠지 모를 동경의 도시로 생각하던 것이 새롭게 다가왔다. '문지방' 이라는 이름의 도시 프라하에 얽힌 전설을 읽다보니 무척 재밌다. 그냥 프라하를 여행하게 된다면 이런 역사를 어디에서 듣게 될까. 미리 그의 여행서로 '동유럽, 프라하' 를 맛보기 해 놓는다면 좀더 편하게 여행을 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가져봤다. 카프카의 일생과 그의 생 후의 이야기들에 얽힌 프라하는 정말 일생에 꼭 한번은 가봐야 할 것 같다. 예술이 넘치고 독일인보다 더 맥주를 사랑하고 많이 마시는 도시 프라하와 그외 도시에 얽힌 이야기들은 다른 여행서에서는 느끼지 못한 '예술' 이 느껴지고 '역사' 가 손에 잡힌다. 단지 여행의 목적이 '여행' 이나 기타 '먹거리' 나 '유희' 가 아닌 역사를 만나고 예술을 만나서인지 책을 손에서 놓을 때는 예술역사기행을 한것처럼 여행이 아닌 역사 속을 거닐다 온것 같은 기분이 드는 책이다. 그만큼 내용도 알차고 작가가 전해주려는 많은 이야기가 알차게 꽉 차 있으면서 사진을 보면 가고 싶게 만든다. 풀란드의 이야기는 창비의 <신사 숙녀 여러분,가스실로> 라는 단편집에서 만났던 생생한 이야기들의 행간을 읽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일생에 한번은 동유럽을 만나라' 라는 제목처럼 작가는 그야말로 동유럽을 만날 수 있게 모든 것을 환희 보여준다. 자신의 여행이야기는 잠깐씩 에피타이저처럼 등장시키면서 여행지에서 놓치기 쉬운 역사나 건물에 얽힌 인물이나 역사 이야기등 그야말로 동유럽의 굵직한 것들을 전설이나 음악 문학 영화등 모든 방면에서 그곳을 느끼게 해준다. 중세도시에서 그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역사를 지키며 살아가는 동유럽의 현대를 만나고 온 것처럼 잠시 동유럽의 풍미를 깊게 느낄 수 있는 여행서이다. 이런곳을 가지 못할 봐엔 이렇게 깊게 느낄 수 있는 여행서로 한동안의 갈증을 해갈하는 것도 또하나의 간접여행의 재미다. 그런면에서 책은 많은 것을 느끼고 보여 주었으니 가끔 동유럽을 느끼고 싶다면 다시 꺼내어 봐도 좋을 책이고 카프카를 알고 싶다면 카프카 편을 다시 읽어봐도 좋을 듯 하다. 이 책을 놓으며 한가지 '카프카 다시 읽기' 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져보며 문학적 음악적 미술사적 역사적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 그의 스페인 이야기도 만나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아직 읽지 않은 밀란 쿤데라의 작품들도 읽어보면 좀더 책의 여운을 오래 느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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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뜨락에 핀 꽃



부겐베리아


시클라멘

 

 
바이올렛

 
동백꽃


군자란




아젤리아



겨울일까요.... 봄일까요...
지금은 겨울이지만 울집 뜨락은 봄인듯 꽃들이 한창입니다.
부겐베리아가 피고 바이올렛은 한창 색색의 꽃들이 피고 지고
시클라멘도 빨간 정열을 피워 올리고 있는데
제작년에 씨를 받아 심은 것들이 크더니만 그것에서도 꽃이 피고 있어 
앞으로 더 많은 꽃들이 필 듯 하고
군자란도 꽃대가 하나 둘 천천히 올라오는데 가을부터 올라왔던 녀석은 
미리 꽃을 피우고 지고 있다.

동백은 작년에는 꽃몽오리가 하나 없더니만
올해는 많은 꽃봉오리가 맺히더니 이제 서서히 하나 둘 활짝 피어나고 있다.
드뎌 오늘은 그 환한 얼굴을 들어냈다.
동백은 꽃이 피고 나면 그 곳에서 새줄기가 나온다.
아젤리아도 이점은 마찬가지다. 그러니 꽃은 바로 새로운 생명이나 마찬가지다.

아젤리아는 늦가을부터 피기 시작하더니 피고 지고
지금은 한창 그 큰 얼굴을 활짝 열어 베란다는 환하게 밝혀주고 있다.
녀석은 내가 그리 이뻐하지 않는데
잎이 말라서 지저분하게 떨어지는 것에 비해 꽃은 화려하고 환해서
미워하려다 이뻐하는 녀석이다.이렇게 한동안 꽃이 피고 지고나면
새순이 돋아나와 새로운 가지로 자라난다. 한뼘 웃자라는 것이다.

밖은 흰 눈이 세상을 지배하고 동장군의 위력이 대단하지만
우리집은 한참 꽃들이 시샘을 하며 봄을 기다리고 있다.
겨울의 위세에도 하나도 눌리지 않고 
자신의 본분을 다하고 있다. 녀석들이 있어 나의 겨울은 봄이다.


201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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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 갈릴레오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1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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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 갈릴레오는 구사나기 경찰이 수사에 대한 과학적인 지식이나 그외 살인사건에 조언이 필요할때 찾는 대학친구인 유가와 물리학 교수를 같이 있는 경찰들이 그를 부르는 말이다. 그러니 이 책에는 무슨 과학수사대를 보는 것처럼 유가와의 과학이 뒤받침이 된 철저히 과학수사를 할 수 있는 그런 살인사건들이 등장하는 단편들의 모음이다. 이공계를 나온 히가시노의 특징이 이 모든 단편들에 잘 담겨 있기도 하고 그의 과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유가와가 분신처럼 모든 소설에서 헤집고 다니니 자신의 장점을 잘 살린 소설들이라 할 수 있다.

1장 타오르다는 폭주족들이 조용하던 곳에 요즘들어 자주 나타나 주위를 시끄럽게 한다. 그날도 그들은 한데 모여 시끌벅적 지난날밤에 있었던 일들을 떠버리며 음료수 자판기 앞에 있었는데 이야기를 하던 친구의 머리에서 불이 붙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뒤에서 불이나고 그 친구는 불에 타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살인에 대한 아무것도 없는데 자판기 옆에 놓여 있던 이상한 물건들이 눈에 밟힌다.하지만 누가 갔다놓았을까. 바로 주위에서 사는 젊은 청년을 탐문수색하던 중에 어린아이가 '빨간 실' 을 보았다는 말은 그야말로 불처럼 번져 사건을 해결하는 실마리가 된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살인사건 현장을 방문했던 유가와는 주위를 둘러 보고는 사건을 짐작하고 구사나기가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건을 가볍게 해결해 준다.물론 사건은 물리학 교수인 유가와의 해박한 과학적 지식과 실험으로 인해 구사나기는 쉽게 이해를 하지만 사회학과를 나온 그에게는 어렵기만 하다. 그 어려운 과학도 유가와를 만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어려운것 같은 과학을 이해하기 쉽게 생활속에서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쉽게 실험을 해주는 유가와, 그는 탐정 갈릴레오라 불릴만 하다.

2장 옮겨 붙다는 어느 중학교에서 축제의 일환의 한 켠에서 행방불명이 된 자와 똑같은 모습의 '데스마스크' 가 발견이 되면서 행방불명이 된 사람을 찾아 나서게 된다. 그는 치과를 경영하던 사람으로 그가 사라져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런데 사라진지 이개월동안 아무런 소식도 없다가 갑자기 데스마스크로 그 실체를 드러내게 된 것이다. 우연히 표주박저수지에 갔던 중학생 친구들이 이상한 마스크를 발견하게 되고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마스크를 제작한 것이 그의 시신을 찾는 큰 역할을 하지만 도데체 그는 왜 그 저수지에서 죽어 있어야 했는가,그렇다면 그 데스마스크는 또 어떻게 하여 그의 얼굴과 똑같은 형태를 띄고 있는 것일까.그 의문을 풀기 위하여 유가와교수를 찾아가는 구사나기, 그와 함께 사건현장도 찾아가 실마리가 될 단서도 찾고 마스크가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나도 과학적으로 생각해보게 되다가 치과의사가 죽임을 당하게 된 사연을 알게 되고 데스마스크가 어떻게 하여 만들어졌는지 과학적으로 풀어낸다. 사건보다 유가와의 과학적 풀이가 더 재미를 준다. 단순하게 지나치는 벼락이 살인사건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3장 썩다는 슈퍼마켓을 하는 나이 지긋한 남자가 욕실에서 심장마비로 보이는 죽음으로 아들에 의해 발견됐다. 그가 평소에 심장질환이 있어 심장마비인가 생각을 했지만 그의 가슴에는 '반점' 이 있다. 원인을 모르는. 그렇다면 타살이란 말인가.그는 아내를 몇년 전에 먼저 보내어 아내도 없다. 원한을 살만한 일도 없는데 그가 죽기전에 간 술집에서 자주 만나던 아르바이트여인을 만나게 되면서 사건은 급발전한다. 모두가 유가와가 함께해서 더 쉽게 풀린다. 그녀를 보자마자 그녀의 직업이며 근무환경을 맞추는 유가와, 하지만 가슴에 남긴 반점의 의문을 어떻게 풀것인가.타살로 오해를 사기 쉽도록 타살을 한 여자, 그리고 그 살인을 의심하는 남자까지 죽이려 하지만 그녀의 행각을 드너라고 만다. 욕심이 부른,도덕이 결여된 그녀의 행실이 부른 화이다. 이 단편에서도 유가와는 거침없이 과학적 수사를 펼친다. 그의 번득이는 과학적 지식은 여기저기 구사나기를 더욱 작게 만든다.

4장 폭발하다는 해수욕장에서 에어매트를 가지고 물놀이를 하던 여인이 갑자기 남편이 보는 앞에서 폭발을 하고 사라진다. 그녀의 죽음 현장은 그야말로 조스가 나타난 것보다 더 아수라장, 그렇다면 아무 이유없이 그녀가 바다 한가운데에서 폭발하여 죽은 이유는 무얼까. 그녀의 죽음과 함께 얼마뒤에 뜻하지 않은 곳에서 또 한명의 젊은이가 죽어있다. 그것도 꽉 닫힌 자신의 방에서, 에어컨이 켜진 채. 한여름에 에어켠을 켜 놓았다는 것은 시체가 썩는 냄새를 덜나게 하려고 한것 같았는데 그로 인해 더 일찍 발견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다면 두 사건에는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일까.바다 한가운데서 난 폭발사고는 무엇으로 인해 만들어진 사고일까.이 소설에서도 유가와의 물리학은 유감없이 사건을 너무도 쉽게 푸는 열쇠가 된다. 해수욕장에서의 사고를 듣기만 하고도 어떤 물질로 인한 어떤 사고인지 감지해 내는 명탐정 갈릴레오 유가와 교수, 그는 이 소설에서는 이공계의 비애까지 담고 있다. 이공계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까지 내다보며 씁쓸함을 남기는 유가와 교수의 마지막 결론은 우리가 처한 이공계의 현실을 보는 것처럼 가슴 아프다. 열심히 공부했지만 자신이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드는 이공계, 작가는 자신 또한 이공계 출신이기에 그 현실을 더 자세히 알기에 자신의 마음을 담아 솔직하게 진실을 담아 냈으리라.

5장 이탈하다는 '유체이탈' 을 믿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 현실에서 유체이탈을 경험했다는 어린 소년의 이야기를 믿어야 할까? 아내없이 아들을 혼자 키우는 프리작가인 아빠는 아들의 유체경험담과 그림을 크게 이슈화 시킨다. 그런데 아이가 그린 그림이 살인사건과 관계가 있다. 그렇다면 아이가 정말 유체이탈경험을 하고 그림을 그렸다는 것일까? 한 아파트에서 여인이 목졸라 살해를 당한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용의자로 몰리고 있는 보험사직원인 남자의 알리바이가 어린 소년의 유체이탈그림과 연관이 있다. 소년의 아버지는 소년으로 인해 다른 목적을 이루려 하고 구사나기와 유가와 교수는 과학적으로 사건을 풀어내려고 노력한다. 소년의 집근처에서 이상하게 절단된 스니커즈를 주워든 유가와는 소년의 집앞에 있는 식품공장에 뭔가 일이 있었다는 알아내고 사건의 실마리를 잡아 나간다. 이 소설에서 또한 번득이는 유가와의 과학은 유체이탈을 경험했다는 소년과 아버지를 유감없이 코를 납작하게 해준다. 소년의 유체이탈은 심한 감기로 인한 유체이탈이 아닌 과학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과학앞에서 한마디 말도 못하고 돌아서는 소년의 아버지, 그 모든 것을 지켜보는 구사나기는 유가와가 쉽게 실험으로 보여주어도 과학은 그에겐 어렵다. 

모든 살인사건에서 구사나기와 짝이 되어 과학으로 살인사건의 진범을 잡아 내는 유가와 교수는 히가시노 자신이라고 할 수 있다.'탐정 갈릴레오에게 물어봐..' 라는 동료들의 말이 있을 정도로 유가와와 구사나기는 정말 맘이 잘 맞는 한팀이고 살인사건을 멋지게 풀어내는 짝꿍이다. 경찰인 구사나기가 현장에서는 민첩하고 실무경험이 더 많을지라도 유가와 교수 앞에서는, 과학 앞에서는 명함도 못 내민다. 그래도 늘 유가와 교수를 찾는 구사나기를 보면 경찰이라기 보다는 어리버리한 탐정같다. 유가와를 통해 작가는 살인사건이 아닌 과학을 재밋게 전해주고 있다.과학은 구사나기가 생각하듯 어려운것이 아닌 우리 실생활과 민첩한 것이며 생활속에도 과학이 숨어 있음을 늘 실험을 통해 보여준다. 그래서였을까. 과학책을 읽는 것처럼 재밌다. 한 편 한 편 모두 다 다른 과학적 지식을 얻을 수 있고 얼렁뚱땅 두드려 맞추는 형식적인 수사가 아닌 고도의 과학적 지식이 겸비된 살인사건이라 더 재밌고 읽는 맛을 느끼게 해준다. 그래서 히가시노의 추리소설은 읽으면 읽을수록 빠져들게 되나보다. 근래 몇 권 읽었는데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의 추리소설처럼 중독되게 만든다. 그의 이공계 경험은 과학은 연구소에 있는 것이 아닌 어디서나 빛을 낼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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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학교 - 제10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35
전성희 지음, 소윤경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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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것이 진실일까? 아님 거짓일까? '때론 진실이 거짓말처럼 여겨지지.' 라는 말처럼 거짓속에서는 진실도 거짓이 될 수 있다. 아니 진실이라고 믿어지지 않고 거짓으로 위장이 될때가 있다. 거짓말을 가르치는 학교, 현시대의 특성화 특목고를 풍자화 한 듯 하여 읽으면서 마음이 아팠다. 아이들이 건강하고 밝고 꿈이 있는 교실에서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데 무언가 틀에 박혀서 '최고' 만을 위하여 친구를 적으로 경쟁상대로 밖에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 가슴을 울렸다. 거짓말을 가르치는 학교에서 그럼 진실은 무얼까. 교장선생님부터 이상하다. 아니 선생님들도 모두 이상하다. 그렇게 본다면 이 학교에 온 아이들 또한 무언가 숨기고 있는것 같고 거짓말을 하는 것 같다. 그 속에 진실은 존재할까.

우린 늘상 '거짓말' 속에서 산다. 아니 선의의 거짓말은 남을 행복하게도 하고 살게도 하는 힘이 있기에 선의의 거짓말은 해도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뿐 거짓말은 안된다는 정의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선의의 거짓말과 나쁜 거짓말을 판가름 하는 잣대는 무엇이란 말인가. 날마다 거짓말현장을 외우고 거짓말 뉴스를 보면서 하루를 시작하는 아이들, 그들은 세 단계를 거쳐서 거르고 걸려져서 이 학교에 남게 된 특별한 아이들이다. 이 속에서 끝까지 남아야만 성공을 할 수 있다. 모두가 한가지 이유에서, 무언가 이 학교에 남아야 하는 이유에서 이 학교에 오게 되었다. 아버지가 친한 친구의 거짓말에 속아 모든 재산을 빚으로 넘기고 붕어빵 장사를 하여서 자신은 보란듯이 성공을 하기 위하여 이 학교에 오게 된 인애, 그리고 부모의 날마다 계속되는 싸움 끝에 이혼이라는 결말에 이르고 자신을 놓고 싸움이 되는 그 위치에서 자신만이 공간이 필요했던 나영 그리고 언제나 늘 전교1등만 하던 준우와 공부가 아닌 돈으로 온듯한 준우의 끈나풀 도윤이 있다. 

인애는 자신의 성적을 위하여 책을 빌리려다 나영을 알게 되었고 준우를 따라 온 도윤과 그 둘은 인애와 나영과 함께 그룹숙제를 하다가 한 팀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날 조회를 하다가 갑자기 도윤이 쓰러졌다. 도윤 전에도 두명의 아이들이 조회시간에 갑자기 쓰러졌다. 거짓말뉴스가 나오는 시간에. 그렇다면 무언가 이 학교에 이상한 비밀이라고 숨겨져 있는 것일까. 혹시 밥에 음식물에 약이라도 탔다는 것일까. 선생님들 또한 믿을 수 없고 교장선생님 또한 이상하다. 교장실에는 무언가 이상한 비밀이 있는듯 1관은 저녁시간 이후엔 출입금지다. 무언가 있다. 의사가 갑자기 이 학교에 오게 되고 도윤의 쓰러진 사실을 조사하려던 의사와 아이들은 갑자기 어느 일로 인해 교장실에서 만나게 되고 의사가 이 학교에 나타난 약간의 이유를 알게 되어 그들도 동참하게 되는데 갑자기 의사가 사라졌다. 그리고 의사와 그들이 교장실에 설치한 카메라를 수거하려 가서 만난 진실학 선생님 또한 교장에게 찍혀서 학교를 떠나게 되었다. 교장은 그녀가 이중스파이라고 한다. 그동안 인애와 암호편지를 주고 받았는데 선생님의 진실이 거짓말 이었다는 말인가. 도데체가 무엇이 진실인지 알지를 못하겠다. 그런 가운데 교장이 그들의 행동을 알게 되게 그속에 첩자가 있다며 가려 내라고 하자 그들은 서로를 의심하게 된다. 그리곤 교장실에 불려가 교장과 이 학교에 대한 비밀에 대하여 알게 되는 그들은 서로를 의심한 것을 후회한다.그렇다면 진실학 선생님은 진실이었을까 거짓이었을까. 그녀의 마지막 쪽지인 암호편지가 발견되고 진실임이 밝혀지지만 그 진실마져 거짓앞에서 외면당하는 현실, 무엇이 진실이란 말인가.

'아니, 싫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싫은 건 네가 능력 없는 부모 만나 제대로 꿈을 이루지 못하는 거야.' 부모는 아이들에게 이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하여 없지만 자신보다 더 능력있게 만들기 위하여 특목고나 그외 좀더 나은 환경의 학교나 유학등을 보낸다. 그곳에서 아이들이 어떤 상처를 받는지는 관심 밖이고 그저 자식의 출세와 성공을 위하여 거짓말을 가르치는 학교라도 좋다고 하면서 보낸다. 그게 현실이다. 출세를 위하여 성공을 위하여는 뭐든 감수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부모인 것처럼. 그렇다면 그곳에서 아이들은 무엇이 되어 나올까. 똑같은 국화빵을 찍어내듯 하는 학교에서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닌 아이들은 똑같아질까. 부모의 꿈처럼 출세를 위하여 성공을 위하여 단단히 무장한 군인처럼 그렇게 단단해진 존재가 되어 성장할 수 있을까. 개인을 무시하고 최고의 존재만 원하는 학교와 사회, 그렇다면 개인의 아이들은 어디로 가야할까. 그들이 그곳에서 배워야 하는 것은 진실일까 거짓일까. 

'친구라면 내가 거짓말을 해도 믿어 줘야 하지 않을까? 그게 진정한 친구라고 생각한다. 날 믿지 못하다니...' 서로 거짓에 익숙해지고 거짓에 물들었기에 무엇이 진실인지도 왜곡되어 보이지 않는다. 들리지 않는다. 진실을 보는 눈을 잃었다. 서로가 쏟아내는 말들은 모두 거짓처럼 보인다. 들린다. 그렇다면 거짓말 학교에선 제대로 가르친 것이다. 모두가 거짓만 보고 듣게 만들었으니. 하지만 그 속에서도 진실은 존재할 것이다. 단지 그것이 거짓으로 포장되어 보일 뿐이지 어딘가엔 '진실' 이 존재한다. 읽다보면 정말 무엇이 진실인지 아리송해진다. 거짓이 거짓인지 진실인지 온통 한데 버무려진 비빔밥처럼 모두가 거짓으로 보인다. 그런 학교가 되어서도 안되고 그런 사회가 되어서도 안될 것이다. 진실이 반드시 존재하고 진실이 대접받는 그런 학교와 사회가 될 것이다. 양치기 소년처럼 거짓말을 하다하다 보면 나중에는 그 거짓말에 자신이 당하게 된다. 자신이 폐를 입을 수 있다. 누워서 침 뱉기처럼 자신을 향해 되돌아 오는 화살을 맞아야 한다. '거짓말 학교' 라는 것이 존재해서도 안되겠지만 점점 그런 교육풍토로 바뀌는 것 또한 막아야 한다. 요즘 한창 뜨고 있는 하버드대의 '마이클 샌델' 교수의 강의가 잠깐 보았지만 생각난다. 자유토론을 벌이는 그들의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워 보였다. 열린토론 열린학교 모두가 함께 하고 창의성이 존중되고 진실이 존재하는 그런 교육의 장이 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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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의 축제 1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1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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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니카 공화국, 흔하게 글에서 접했던 이야기가 아니다. 낯선 나라이지만 오랜 식민지의 역사에서 벗어나 트루히요의 31년간의 독재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려보려 했지만 오랜 독재생활에서 벗어나는 것도 잠시, 그 시절을 다시 그리워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절망에 빠지기도 하는 그들의 모습을 소설속에서 잠깐 엿본다.어찌보면 우리의 지난 역사와도 비슷한 구조를 이루고 있는 듯 하여 좀더 주위를 기울이며 읽게 되었지만 역시나 역사란 힘에 부친다. 주노 디아스의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에서 잠깐 마주한 도미니카 공화국의 이야기, 작가가 다루는 트루히요의 독재시대와 그 후의 이야기는 좀더 깊이 있고 냉철하다. 어찌보면 트루히요 정권하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우라니아의 삶과 마주하면서 그동안 그 시간과 역사와 등을 돌리고 있었던 것처럼 보여지던 그녀가 지난 시절과 조우하면서 역사와 아버지는 그녀안에서 새롭게 조명된다.

여기에서 언급되는 ’염소’는  트루히요를 가리킨다. 그를 암살하려는 사람들, 살바도르와 아마디토 그리고 안토니오는 개인적 그리고 사회적인 이유로 트루히요를 암살하기 위하여 모인다. 콜롬버스가 발견한 이후로 아프리카 노예들이 정착하여 산 곳이라 그런지 그들은 그들의 자유를 쟁취하는, 자신들의 자유를 찾는 그 날을 위해 축제의 서막을 알리기 위한 첫번째 단계로 제물로 ’염소의 죽음’ 을 택한다. 오랜 트루히요의 독재기간동안 행정이나 다른 면에서는 뛰어나게 했을지 모르지만 정치적인 면에서는 독선적이었던 트루히요,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 위하여 남의 아내를 탐하여 자신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는 파렴치한 일도 서슴치 않고 하는가 하면 바다에 던져 상어밥을 만들기도 일쑤다. 그런 그의 부정중에 우라니아가 아버지와 멀어지게 된 것 또한 자신의 어머니는 트루히요에게서 안전했는가이다. 아내의 사랑보다 트루히요에 대한 존경으로 인해 우라니아에게서 더 멀리 있었던 아버지, 하지만 삼십여년이 지난 지금에 다시 돌아온 아버지는 그녀에게 말이 없다. 지난 세월은 허물어져 퇴색되어 있고 오래전의 부귀영화는 꿈처럼 멀게만 느껴진다. 

소설에서는 세 부분으로 나누어 도미니카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내일을 보여준다. 트루히요 그 자신을 통해 그의 일상에서부터 철두철미한 시계바늘처럼 움직이며 자신의 것에서 흐트러지지 않는 생활에서 모두를 자신의 것으로 가지려던 욕심과 자신의 욕심처럼 되지 않았던 자식들 그리고 철저한 일상과는 다르게 문란했던 육체적 생활과 자신의 세월에 못 이겨 허물어지는 육체처럼 자신에게 다가오는 불안한 미래를 보여주고 암살자들을 통해 독재시대의 도미니카의 현재와 트루히요의 정권아래에서 자유를 박탈당하고 독재자 트루히요를 위해 사람들이 얼마나 동물적이며 이율배반적인지 보여준다. 자신이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의 뜻에 따라 행동하다 뜻하지 않은 죽음에 이르는 사람들, 그들을 보면서 그를 암살해야만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사람들의 불안과 카톨릭이기에 자신들의 행동이 또한 죄를 범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속죄’ 를 받고 암살을 강행하는 사람들과 트루히요 시절에는 상원의원으로 그야말로 잘나가던 부귀영화의 삶을 누렸지만 그의 정권이 무너지고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해 세월의 뒷자리에 물러 앉아 한마디 말도 못하며 간호사가 떠먹여주는 밥에 의지하여 초라하게 늙어가는 아버지 카브랄을 통해 그 시절에서 도망치듯 하여 도미니카인이 아닌듯 자신을 위장해 보려고 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철저하게 트루히요의 시대에 빠져들고 그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여 떠밀리듯 다시금 도미니카를 찾게 된 우라니아를 통해 그녀가 왜 유독 남자들에게 ’얼음’ 처럼 차가웠는지 그리고 그 얼음처럼 차가움을 어떻게 녹여 나가는지 보여준다. 

그렇다면 우라니아는 왜 남자들에게 유독 얼음처럼 차가워진 것일까? ’그런데 그때 너는 행복했을까? 산토도밍고 학교의 여학생들과 함께 어머니의 날에 최고의 여성에게 꽃을 바치고 시를 낭독하러 갔을 때만 해도 너는 행복했다. 그녀의 어린 시절을 지켜주었던 아름다운 어머니가 세사르 니콜라스 펜손 가의 작은 집에서 자취를 감춘 뒤로 아마도 행복이라는 개념 역시 우라니아의 삶에서 사라졌을지 모를 일이었다.’ ’아버지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것보다 수령의 총애를 잃어버린 게 더욱 가슴 아팠을 거야.’ 자신의 아내보다 트루히요를 더 중요시 했던 아버지가 미웠던 우라니아, 그래서였을까 그동안 도미니카를, 아버지를 뒤돌아 보지 않고 자신의 삶만 살려고 노력한 것은. 하지만 자신의 뿌리는 도미니카이고 아버지이기에 더이상 헤어나지 못하고 다시금 모천을 찾아 회기하는 연어처럼 아버지의 노쇠한 모습에서 그동안 얼어 있던 자신의 마음을 서서히 푸는 우라니아,지난 시절를 용서하지 못했기에 사랑하는 이의 청혼마져 거절했던 것이다. 자신의 아버지와 같은 모습을 또다시 보지 않기 위하여, 사랑을 잃고 싶지 않기에.

31년 동안 자연재해나 허리케인보다도 더 그들을 부패시키고 더럽히고 망가뜨렸던 트루히요, 그만 죽는다면 축제는 시작되는 것일까. 트루히요의 줄에 섰던 상원의원 카브랄 같은 사람들은 물러나고 다른 줄에 섰던 사람들은 다시 흥하는 그런 시대가 도래되겠지만 염소가 죽었어도 우라니아가 다시 와서 보게 되는 도미니카는 결코 행복이라고 볼 수 없다. 허물어져가는 집과 아버지를 보면서 자신안에서 자신을 꽉붙잡고 놓아주지 않던 지난 시절을 훌훌 벗어버리면서 다시금 태어나듯 하는 우라니아, 그녀에게 축제의 시간은 언제일까. 트루히요가 죽으면 세상이 바뀔 거라고, 힘든 세월이 올거라고는 상상조차 생각하지 못한 그들에게 희망의 내일은 언제쯤 오게 될까. 한개인에 의해서 자유가 억압되어서도 안되지만 이런 독재가 영속되어서 안된다는 문학적 반항이 돋보이면서 암살자들이 바라고 도미니카인들이 바라고 꿈 꾸던 자유가 트루히요 암살 이후에 어떻게 나타났을지 궁금하다.

역사를 재조명하며 글로서 저항하듯 사실적이며 날카롭게 통찰해낸 염소의 축제를 읽다보니 이런 류의 우리 문학 또한 이보다 좋은 작품이나 비슷한 작품들이 많은데 그렇다면 우리 문학의 가치는, 하는 생각을 가져보게 된다. 잘 알려지지 않은 라틴의 역사라 독특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우리의 문학작품도 뛰어난 것들이 많은데 세계무대로 나아간다면 우리 문학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번역의 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져보며 처음 접하는 작가이고 첫작품인데 꽤 신경쓰며 읽게 하는 집중력을 가지게 하기도 했지만 낯선 역사라 흥미로웠다. 우라니아와 그녀의 아버지 카브랄 사이에 트루히요의 역사가 가로 놓여 갈라 놓았다면 그 벽이 어떻게 허물어져 다시금 부녀지간으로 돌아올지 궁금하다. 그리고 아버지로 인해 그녀안에서 냉대시하고 무관심했던 남자라는 존재를 어떻게 받아 들일지도 궁금하다. 우라니아와 아버지 사이에 어머니가 존재했더라면 오랜 시간동안 그들이 동토 속을 헤매이지 않았을 터인데 어머니의 부재속에 트루히요의 죽음과 아버지의 몰락은 세월 앞에 어쩌면 당연한 것처럼 보여진다. 세월앞에서는 정권의 욕심도 개인의 야망도 온갖 헛된 것일 뿐이다.그리고 자유란 개인의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 갑자기 제방둑이 무너지듯 앞에 닥친 자유는 갈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할 수 있다. 일권밖에 읽지 않아 우라니아의 앞날이 정말 궁금한 소설이며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 소설 또한 말해준다. 우라니아와 아버지 사이에 그동안 '소통' 이 있었다면 지금과 같았을까.소통의 부재와 어머니의 부재속에서 방황하던 우라니아가 자신의 과거와 그리고 미래와 '소통' 하길 바라며 다음편을 빨리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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