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소의 축제 1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1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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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니카 공화국, 흔하게 글에서 접했던 이야기가 아니다. 낯선 나라이지만 오랜 식민지의 역사에서 벗어나 트루히요의 31년간의 독재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려보려 했지만 오랜 독재생활에서 벗어나는 것도 잠시, 그 시절을 다시 그리워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절망에 빠지기도 하는 그들의 모습을 소설속에서 잠깐 엿본다.어찌보면 우리의 지난 역사와도 비슷한 구조를 이루고 있는 듯 하여 좀더 주위를 기울이며 읽게 되었지만 역시나 역사란 힘에 부친다. 주노 디아스의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에서 잠깐 마주한 도미니카 공화국의 이야기, 작가가 다루는 트루히요의 독재시대와 그 후의 이야기는 좀더 깊이 있고 냉철하다. 어찌보면 트루히요 정권하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우라니아의 삶과 마주하면서 그동안 그 시간과 역사와 등을 돌리고 있었던 것처럼 보여지던 그녀가 지난 시절과 조우하면서 역사와 아버지는 그녀안에서 새롭게 조명된다.

여기에서 언급되는 ’염소’는  트루히요를 가리킨다. 그를 암살하려는 사람들, 살바도르와 아마디토 그리고 안토니오는 개인적 그리고 사회적인 이유로 트루히요를 암살하기 위하여 모인다. 콜롬버스가 발견한 이후로 아프리카 노예들이 정착하여 산 곳이라 그런지 그들은 그들의 자유를 쟁취하는, 자신들의 자유를 찾는 그 날을 위해 축제의 서막을 알리기 위한 첫번째 단계로 제물로 ’염소의 죽음’ 을 택한다. 오랜 트루히요의 독재기간동안 행정이나 다른 면에서는 뛰어나게 했을지 모르지만 정치적인 면에서는 독선적이었던 트루히요,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 위하여 남의 아내를 탐하여 자신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는 파렴치한 일도 서슴치 않고 하는가 하면 바다에 던져 상어밥을 만들기도 일쑤다. 그런 그의 부정중에 우라니아가 아버지와 멀어지게 된 것 또한 자신의 어머니는 트루히요에게서 안전했는가이다. 아내의 사랑보다 트루히요에 대한 존경으로 인해 우라니아에게서 더 멀리 있었던 아버지, 하지만 삼십여년이 지난 지금에 다시 돌아온 아버지는 그녀에게 말이 없다. 지난 세월은 허물어져 퇴색되어 있고 오래전의 부귀영화는 꿈처럼 멀게만 느껴진다. 

소설에서는 세 부분으로 나누어 도미니카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내일을 보여준다. 트루히요 그 자신을 통해 그의 일상에서부터 철두철미한 시계바늘처럼 움직이며 자신의 것에서 흐트러지지 않는 생활에서 모두를 자신의 것으로 가지려던 욕심과 자신의 욕심처럼 되지 않았던 자식들 그리고 철저한 일상과는 다르게 문란했던 육체적 생활과 자신의 세월에 못 이겨 허물어지는 육체처럼 자신에게 다가오는 불안한 미래를 보여주고 암살자들을 통해 독재시대의 도미니카의 현재와 트루히요의 정권아래에서 자유를 박탈당하고 독재자 트루히요를 위해 사람들이 얼마나 동물적이며 이율배반적인지 보여준다. 자신이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의 뜻에 따라 행동하다 뜻하지 않은 죽음에 이르는 사람들, 그들을 보면서 그를 암살해야만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사람들의 불안과 카톨릭이기에 자신들의 행동이 또한 죄를 범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속죄’ 를 받고 암살을 강행하는 사람들과 트루히요 시절에는 상원의원으로 그야말로 잘나가던 부귀영화의 삶을 누렸지만 그의 정권이 무너지고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해 세월의 뒷자리에 물러 앉아 한마디 말도 못하며 간호사가 떠먹여주는 밥에 의지하여 초라하게 늙어가는 아버지 카브랄을 통해 그 시절에서 도망치듯 하여 도미니카인이 아닌듯 자신을 위장해 보려고 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철저하게 트루히요의 시대에 빠져들고 그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여 떠밀리듯 다시금 도미니카를 찾게 된 우라니아를 통해 그녀가 왜 유독 남자들에게 ’얼음’ 처럼 차가웠는지 그리고 그 얼음처럼 차가움을 어떻게 녹여 나가는지 보여준다. 

그렇다면 우라니아는 왜 남자들에게 유독 얼음처럼 차가워진 것일까? ’그런데 그때 너는 행복했을까? 산토도밍고 학교의 여학생들과 함께 어머니의 날에 최고의 여성에게 꽃을 바치고 시를 낭독하러 갔을 때만 해도 너는 행복했다. 그녀의 어린 시절을 지켜주었던 아름다운 어머니가 세사르 니콜라스 펜손 가의 작은 집에서 자취를 감춘 뒤로 아마도 행복이라는 개념 역시 우라니아의 삶에서 사라졌을지 모를 일이었다.’ ’아버지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것보다 수령의 총애를 잃어버린 게 더욱 가슴 아팠을 거야.’ 자신의 아내보다 트루히요를 더 중요시 했던 아버지가 미웠던 우라니아, 그래서였을까 그동안 도미니카를, 아버지를 뒤돌아 보지 않고 자신의 삶만 살려고 노력한 것은. 하지만 자신의 뿌리는 도미니카이고 아버지이기에 더이상 헤어나지 못하고 다시금 모천을 찾아 회기하는 연어처럼 아버지의 노쇠한 모습에서 그동안 얼어 있던 자신의 마음을 서서히 푸는 우라니아,지난 시절를 용서하지 못했기에 사랑하는 이의 청혼마져 거절했던 것이다. 자신의 아버지와 같은 모습을 또다시 보지 않기 위하여, 사랑을 잃고 싶지 않기에.

31년 동안 자연재해나 허리케인보다도 더 그들을 부패시키고 더럽히고 망가뜨렸던 트루히요, 그만 죽는다면 축제는 시작되는 것일까. 트루히요의 줄에 섰던 상원의원 카브랄 같은 사람들은 물러나고 다른 줄에 섰던 사람들은 다시 흥하는 그런 시대가 도래되겠지만 염소가 죽었어도 우라니아가 다시 와서 보게 되는 도미니카는 결코 행복이라고 볼 수 없다. 허물어져가는 집과 아버지를 보면서 자신안에서 자신을 꽉붙잡고 놓아주지 않던 지난 시절을 훌훌 벗어버리면서 다시금 태어나듯 하는 우라니아, 그녀에게 축제의 시간은 언제일까. 트루히요가 죽으면 세상이 바뀔 거라고, 힘든 세월이 올거라고는 상상조차 생각하지 못한 그들에게 희망의 내일은 언제쯤 오게 될까. 한개인에 의해서 자유가 억압되어서도 안되지만 이런 독재가 영속되어서 안된다는 문학적 반항이 돋보이면서 암살자들이 바라고 도미니카인들이 바라고 꿈 꾸던 자유가 트루히요 암살 이후에 어떻게 나타났을지 궁금하다.

역사를 재조명하며 글로서 저항하듯 사실적이며 날카롭게 통찰해낸 염소의 축제를 읽다보니 이런 류의 우리 문학 또한 이보다 좋은 작품이나 비슷한 작품들이 많은데 그렇다면 우리 문학의 가치는, 하는 생각을 가져보게 된다. 잘 알려지지 않은 라틴의 역사라 독특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우리의 문학작품도 뛰어난 것들이 많은데 세계무대로 나아간다면 우리 문학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번역의 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져보며 처음 접하는 작가이고 첫작품인데 꽤 신경쓰며 읽게 하는 집중력을 가지게 하기도 했지만 낯선 역사라 흥미로웠다. 우라니아와 그녀의 아버지 카브랄 사이에 트루히요의 역사가 가로 놓여 갈라 놓았다면 그 벽이 어떻게 허물어져 다시금 부녀지간으로 돌아올지 궁금하다. 그리고 아버지로 인해 그녀안에서 냉대시하고 무관심했던 남자라는 존재를 어떻게 받아 들일지도 궁금하다. 우라니아와 아버지 사이에 어머니가 존재했더라면 오랜 시간동안 그들이 동토 속을 헤매이지 않았을 터인데 어머니의 부재속에 트루히요의 죽음과 아버지의 몰락은 세월 앞에 어쩌면 당연한 것처럼 보여진다. 세월앞에서는 정권의 욕심도 개인의 야망도 온갖 헛된 것일 뿐이다.그리고 자유란 개인의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 갑자기 제방둑이 무너지듯 앞에 닥친 자유는 갈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할 수 있다. 일권밖에 읽지 않아 우라니아의 앞날이 정말 궁금한 소설이며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 소설 또한 말해준다. 우라니아와 아버지 사이에 그동안 '소통' 이 있었다면 지금과 같았을까.소통의 부재와 어머니의 부재속에서 방황하던 우라니아가 자신의 과거와 그리고 미래와 '소통' 하길 바라며 다음편을 빨리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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