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이 자라날 때 문학동네 청소년 4
방미진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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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들이 사춘기이다보니 청소년문학이나 그외 그 나이에 비슷한 글과 소설은 읽어보려 노력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많이 읽는 편도 아니고 글을 읽는다고 딸들을 더 이해하고 소통하는 것은 아니다.나 또한 사춘기를 지나왔지만 무슨 계급장이라도 단것처럼 하는 녀석들의 사춘기를 좀더 이해보려 할 뿐이지 나 또한 그 시기를 거쳐왔기에 한발 물러나 보려 해도 두녀석이 함께 내게 맞붙으면 정말 혈압이 팍팍 올라고 급기야 마찰과 냉전의 시간을 갖게 된다. 이젠 큰 녀석은 조금 그 터널을 피해간듯 하여 여유를 찾아 보는데 작은 녀석이 또한 터널의 한가운데 있는지 눈만 마주쳐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아 정말 힘들다. 그러다 만나게 된 책, 하지만 우리집 책장에서 오래도록 잠자고 있었는데 큰딸이 ’엄마 내나이의 성장소설 없어’ 하길래 권해 준 책인데 녀석이 먼저 읽고는 ’엄마도 빨리 읽어봐, 몽환적으로 우리를 잘 표현해 놓았네’ 하길래 알았다고 답하고는 뒤돌아서 잊어버리고 말았다. 

한참 세상에 관심이 제일 많은 시기에 우리 아이들은 교실의 ’하얀 벽’ 에 갇혀 그 파릇파릇한 시간들을 모두 낭비하며 그야말로 다크서클이 무릎까지 내려오도록 열심히 책만 쳐다본다. 그렇다고 모두 꿈을 이루는 것도 아니면서 어쩔 수 없는 그 울타리 안에서 수행의 시간을 갖지만 불만은 불만대로 쌓여 늘 만나는 엄마에게 털어 놓는 이야기가 선생과 학교에 대한 불만이다. 그리고 더불어 우리나라 교육정책에 대한 불만, 그렇다고 어쩌겠는가 교실밖으로 뛰쳐나가 돈을 벌며 세상에 삿대질 할것도 아니고 할 수 있는 것이 공부이니 지금이라도 열심히 해야 나중에 후회를 하지 않지. 하지만 당사자들에게는 발등의 불은 보이지 않는 법이다. 등하불명이라고 등잔 밑이 더 어두운 것이다. 자신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필요성에 의해 공부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될까. 현교육정책에서.

하얀 벽, 여자들은 이상하게 화장실을 갈때 손잡고 가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점심을 먹을때 함께 하는 친구가 따로 있고 손잡고 운동장을 통과하여 집에 함께 가는 친구가 따로 있다.그런데 어느 날 부터인가 자신이 친구들에게 따를 당하는 느낌이다. 그렇다면 옆에 짝꿍이라도 친해져야 하는데 그녀의 존재는 있는듯 없는듯 이상하게 그녀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다. 짝꿍으로 존재했는지조차 가물가물 하다. 그런 가운데 어느 날부터인가 하얀 벽에서 소리가 나는 듯 하고 그 벽이 나를 통해 교실을 보고 있는 듯한 섬짓한 생각이 든다.하얀 벽이 살아 있는 것만 같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느낄까 하여 물어 보았지만 다른이들의 귀엔 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다 어느 날 담임이 벽에 못을 박다가 심하게 다치게 되는 사고가 일어난다. 망치도 맞은 손가락은 심하게 다치고 피가 나서 벽에 선명한 자국을 남겼지만 벽은 그 붉은 피를 먹어 버리고 만다. 그러니까 벽은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지 못하도록 방어를 했던 것이다. 그 사고이후 자신이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고 짝꿍 또한 사고이후 존재가 희미해져 버렸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그녀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한다.그녀가 존재했던가. 안했던가.교실의 햐얀 벽을 통하여 여자아이들 사이에 당연히 존재할 수 있는 '벽' 에 대하여 거리감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밖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알게 모르게 금이 가 있는 친구와 친구사이의 벽,그 시기엔 정말 확실하게 금을 그어 놓은 것처럼 그 금을 따라 친구관계가 성립되고 생활을 함께 이루어 나간다. 벽이란 무엇일까. 마음과 마음을 나누면 없앨 수 있는 벽인데 사춘기라는 이성이 성장하고 자립하는 시기에 서로에 대한 벽을 쌓고 그 벽 위로 겨우 친구를 바라보려 한다. 벽을 허물기란 정말 힘들다. 또한 현 교육현실이 그렇게 만들기도 한다. 적이 아닌듯 하면서도 친구이면서 적인 친구, 그런 친구 사이에 벽을 쌓지 않고는 자신이 발전하고 전진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그런 현실을 공포화 하여 잘 표현하였다.

난 네가 되고, 쌍둥이인 여자 아이들 주영과 지영, 하지만 주영은 교통사고로 인하여 엄마와 아빠와 함께 그자리에서 죽었다. 함께 타고 가던 차가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고 쌍둥이중에 지영만 살아 남았다. 늘 언니인 주영을 부러워했던 지영은 순간에 자신이 주영이 되고자 한다. 아니 자신이 주영이라도 단정하고 주영이가 된다. 그렇다면 모두가 그렇게 속아 넘어갈까. 지영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부모님과 함께 쌍둥이 언니가 죽었지만 자신은 할머니와 삼촌과 살면서 어려움없이 위기를 넘기게 된다. 자신이 넘겨야 하는 것은 지영이면서 주영이가 되는 것이다. 철저하게 집에서부터 자신은 주영이라는 것을 못 박아 두고 학교에 가서도 주영의 자리에 앉아 주영의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며 주영이가 된다. 성적 또한 주영이처럼 올리기 위하여 밤을 새워 공부한다. 자신은 철두철미하게 주영이가 되었다고 여기는 순간, 주영의 친구들은 그가 지영이라고 한다. 그렇다며 지영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자신이 주영이라고 다시 못 박아 주어 주영이가 되지만 그순간 없어져야 하는 지영이가 안쓰럽고 미안하다. 더 많이 사랑해주지 못한 자신, 더 많이 아껴주지 못한 자신은 이제 사라져야만 한다. 내가 선택한 선택 때문에.가끔 그 시기엔 나와 똑같은 일란성 쌍둥이가 있더라면 하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숙제도 그렇고 모든 것을 쉽게 할 수 있고 눈속임으로 모두를 속여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세상에는 단 하나의 '나 자신' 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해주고 아껴주지 않으면 누가 해줄 것인가. 남이 아닌 나로 살아갈때가 행복인 것이다.

붉은 곰팡이, 그런 반지하 집에서 잠깐 살았던 적이 있다. 이십대 잠깐 힘든 시기에 반지하에서 살게 되었는데 곰팡이는 없었지만 화장실이 다른 공간보다 높았다. 화장실에 올라가려면 한번 힘을 주고 올라가야 했다. 늘 그곳에서는 빨리 벗어나야지 했던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더 실감나게 읽었다. 아버지의 미적거리는 성격 때문에 반지하 방으로 밀려나게 된 가족들, 그곳에선 엄마마져 삶의 의지를 잃었다. 그리고 그곳엔 쥐도 함께 살고 그들의 삶처럼 벽지에 곰팡이가 날마다 닦아내도 다시 피어난다. 생명력이 없는듯 하면서 늘 새롭게 태어나 그들의 삶을 위협하는 곰팡이, 그런 집이라 먼저 살던 사람들은 그들이 나타나자마자 도망치듯 이사를 한것이었다. 그들 또한 막다른 골목까지 내몰렸지만 이곳을 벗어나는 것이 이젠 유일한 희망이 되고 있다. 곰팡이는 집 벽에만 피는 것이 아니라 한참 차이는 어린 동생의 몸에서도 피어나고 그들의 삶 속에서도 피어난다. 곰팡이와 함께 곰팡이처럼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에게 곰팡이를 없앨 태양을 바라보며 사는 희망적인 삶이 찾아오긴 할까. 늘 머뭇머뭇 하던 아빠, 하지만 아빠의 성격이 그런것이 아니라 아빠가 무척이나 무서움을 타고 있다는 것을 딸은 느낀다. 그에 비해 엄마는 현실적이지만 집과 함께 엄마의 삶은 바닥에 떨어지고 만다. 이 집을 벗어나야만 엄마도 희망을 찾고 동생의 몸에서도 곰팡이가 사라지고 아빠도 희망을 찾아 활기를 되찾을 것만 같다. 어떻게 해서든 벗어나야 한다. 처음 그 집에 들어올때 뿔뿔이 흩어지듯 자신만 찾던 그들이 그 집의 곰팡이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모두 하나가 된다.마침내 희망을 찾은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언제 다시 내몰려 곰팡이가 핀 곳으로 돌아올지 모르지만 그집의 곰팡에서 겨우 벗어났다는 것만 해도 희망적이다. 

손톱이 자라날 때, 손톱을 길러야 할때 손톱을 무기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은 자기방어이다. 그보다 무서운 무기를 아직 찾아내지 못했기에 자기방어를 하기 위하여 손톱을 기르는 소녀, 자신보다 나약한 친구들의 얼굴에 손톱으로 상채기를 내며 희열을 찾는 그녀에게 손톱이란 자신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상대방이 어떤 아픔을 겪고 있는지 가늠하지 못한다. 아직은 처지를 바꾸어 생각하는 그런 시기가 아닌 자신만 방어할 줄 아는 시기이기에 역지사지를 모른다. 친구가 자신으로 인해 고통을 당하고 있지만 자신은 그 손톱으로 인해 자신감을 얻으며 생활해 나간다. 하지만 어느 날 그녀의 손톱에 얼굴에 상채기를 남기던 그녀가 전학을 가고 만다. 그녀의 먹잇감인 대상이 사라지고 만 것이다. 자신의 우월을 표현할 대상이 사라지면 그 자신에게 손톱은 필요할까. 아이들은 무엇으로든 자신의 나타내려 노력한다. 그것이 남에게 상처를 줘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우월감만 내세운다. 만약 자신이 상처를 입는 나약한 상대였다면 어떠했을까. 그런것을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아량이 있다면 학교폭력이나 아이들 폭력은 많이 줄어들 것이다. 무언가 자신의 힘을 남에게 나태내고 보이고 싶은 한참 힘이 솟아나는 시기, 그렇다고 남을 향해 내 손톱을 길러 세울 필요는 없다. 그건 오히려 나의 나약함을 남에게 드러내는 것과 같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것을 모른다. 한참 성숙해지려고 노력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고누다, 은어로 '꼬누다' 라는 말에서 비롯된듯 하다. 누군가를 겨냥하여 두번째 손가락으로 펴고 '둘' 이라고 외치며 진짜와 똑같은 가짜가 만들어지는 그런 능력을 가진 자, 자신이 가지고 싶은 개가 있으면 개를 향하여 두번째 손가락을 펴고 '둘' 이라고 외치기만 하면 된다. 나중에는 진짜가 가짜를 잡아 먹어 하나가 된다. 그렇게 고누다는 반에서 친구하고 싶은 여학생인 '보라2'를 만들어 방에 숨겨 놓는다. 하지만 학교에서 보라는 자신을 외면한듯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진짜 보라가 자신에게 고분고분 대해 주는가 하면 자신의 집에 가고 싶다며 따라온다. 옷장속에 보라2를 숨겨 놓았는데 말이다. 다행히 집엔 아무도 없지만 큰일이다. 진까가 가짜를 잡아 먹으면 안되는데. 그런데 집안 어디에도 보라2가 없다. 어떻게 된 일이지. 보라2를 찾아 다니는데 보라가 자신은 가짜라고 말한다. 그리고 닥친 식구들 또한 모두가 가짜라고 한다. 원세상에 모두가 가짜라니 그렇다면 이 세상에 가짜가 아닌 것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보니 자신이 모두를 가짜로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은 진짜일까 가짜일까. '하긴 넌 아예 의심할 피요가 없었지. 넌 처음부터 그렇게 믿고 싶었던 거니까. 그래야 네가 한 짓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테니까 말이지.' 가짜 속에서 자신 또한 가짜가 될 수 밖에 없던 고누다, 하지만 진짜일까 가짜일까. 생각의 발상이 참 재밌는 소설이다. 남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면 네개는 나를 향해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더 잘해야 한다고 한다. 남에겐 한 개지만 자신은 네 개이므로..그와 같은 상황인듯 하다. 자신이 만들어 낸 가짜들 속에서 혼자 진짜이길 원하나,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렇다면 나 또한 가짜가 되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이야기들이 음울한듯 하면서도 공포스럽고 환상적이기도 하다. 큰딸이 말했듯이 몽환적이 느낌의 소설들이지만 그 시절을 잘 표현하여 쓴 소설들은 재밌기도 하다. 나름 독특하면서도 빨리 그 속에서 벗어나야 할것만 같은, 가만히 있으면 붉은 곰팡이가 꽃처럼 스멀스멀 내 자신을 향하여 피어 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생각적인 면에서도 참 복잡한 시기를 사는 청소년, 무언가 탈출구를 생각해 내지만 자신들은 점점 늪에 빠져들듯 자신을 향하여 하얀 벽이 다가와 목을 조르듯, 자신의 삶에 닦아도 닦아도 피어는 곰팡이가 피어나는듯 뭔가 암울한 터널에 빠진듯 한 시기, 그런 힘든 자신을 위해 쌍둥이 '클론' 이라도 있더라면 생각이 들지도 모르지만 오로지 그 시기를 이겨낼 수 있는 것은 자신뿐이다. 남을 위해 손톱을 기르고 세우는 것이 아니라 가짜가 넘쳐나는 속에서 혼자 진짜인척 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진실이 진실로 받아 들여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그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뒤돌아보면 늘 꿈 속에서라도 다시 재현되는 그 시간이지만 한번 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오롯이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지금, 자신이 할 일이다. 그 시기를 힘들게 헤쳐 나가고 있는 그대들이여, 혼자가 아님을 옆에 누군가의 그늘이 있음을 직시하라.벽을 만들지 말고 허물어라.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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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서 돌아온 소년 (반양장) - 6세 소년이 경험한 생생한 천국 체험 스토리
케빈 말라키.알렉스 말라키 지음, 유정희 옮김 / 크리스천석세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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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난 특별한 종교나 믿음이 없다. 하지만 내가 자주 찾는 절이나 불교에 대한 믿음이 갈수록 커져감을 느낀다. 그렇다고 하느님의 존재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종교를 포용한다고 해야 하나, 내겐 종교에 대한 반감이 없기에 모든 믿음에 대한 문을 열어 놓고 있다보니 무언가 간절하게 믿는다면 이루어진다고 믿을 뿐이다. 이 책은 무속신앙으로 지난 연말에 보내드린 아버지의 길닦이를 하고 와서 바로 읽게 되어 더욱 마음에 와 닿았는지 모른다. 아버지의 천도제를 절에서 했더라면 하는 생각을 가져 보았지만 언니와 엄마가 한번 그렇게 해보는것도 괜찮지 않겠냐며 하시어 그냥 따라갔는데 처음엔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내가 모르는 영혼의 세계가 있는 듯 하고 그사람들이 우리 아버지를 언제 보았다고 그렇게 지성과 온 마음을 다하여 빌까 하는 생각을 가져보았다. 정말 영적인 세계가 있을까. 그들이 만나는 영의 세계에 우리 아버지는 과연 편안하게 머무르고 계신 것일까.

나 또한 몇 년 전에 큰 사고를 두번이나 당했다. 그 첫번째 사고로 산행중 하산길에 미끄러져 바위계곡으로 구르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에 내가 느낀 것은 이상하리만치 생생하다. 누군가 날 지켜보고 있는것 같은, 내가 데굴데굴 미끄러져 구르는데 누군가 잘 지켜주고 있는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죽을수도 있던 그 사고에서 손등뼈만 골절되고 큰 부상은 피했지만 오랜시간동안 그 사고의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그런데 그 사고후유증으로 입원증에 같은 병실에 아줌마를 만났는데 내게 한다는 소리가 사고때 할아버지가 지켜 주셨다면서 보지도 않고 말도 듣지 않았던 우리 할어버지에 대하여 말씀 하시는 것이다. 나 또한 그런 기운을 느꼈기에 부정할 수 없었던 소름돋는 순간이었지만 정말 내가 사고를 당하던 순간에 날 무척이나 이뻐해주셨던 큰댁 할아버지가 지켜주신걸까.그래서 죽을줄 알았던 사고에서 무사히 살아난것은 아닐까. 이 책의 사고당사자인 알렉스는 자신의 사고순간부터 하여 현재까지 하느님을 만나고 천사를 만나고 천국에 가기도 하는 그런 보통사람이 할 수 없는 일들을 겪고 있다. 내가 그런 사고를 당하지 않았고 종교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 '거짓말' 이라고 할 수 있었을텐데 읽는 동안 나의 사고가 겹쳐져 생각났다. 그렇다면 천국이란 어디엔가 존재하고 우리를 돕는 천사 또한 존재하는 것일까. 신의 존재를 긍정하기 전에 알렉스의 믿음이 더 중요하지 않나 생각을 해 본다. 사고당시 6살이었던 알렉스에게 종교에 대한 믿음이란 무엇일까. 종교와 믿음이란 소년에겐 얼마나 큰 의미일까 생각하게 되었다. 

사고당시 모두가 그를 보고는 죽은것이라,죽었을 것이라 생각을 하면서도 기도를 해줍니다. 소년의 모습은 천국에 가는 마지막 모습이었으니 분명 신문에서 그의 죽음을 확인하게 될거라 여겼고 병원에서 또한 소년과 유사한 경우에 살아난 사람이 없다며 죽음을 예고하지만 엄마와 아빠는 소년의 죽음을 인정할 수 없었다. 아빠 케빈은 아직 소년에게 '미안하다' 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중환자실에 들어가 깨어나지도 않은 아들, 사고는 자신의 길에 대한 착각으로 인하여 앞에서 오는 차를 발견하지 못한데서 비롯되었다면 자책하는 아빠에게 소년은 죽는다해도 아빠의 마지막 말을 듣고 가길 간절히 바랬다. 병원에서 또한 '72시간' 이 고비라고 했지만 소년의 첫번째 목뼈는 무척 심한 부상으로 틀어져 있어 수술을 해야만 했다. 산다고 해도 별 희망이 없는 상황이다. 사고 바로 전에 넷째아이를 출산한 엄마는 고만고마한 아이들을 거두며 알렉스의 병간호까지 매달려야 했으니 얼마나 어려운 상황이었을까. 새로 지은 집 또한 처리하지 못한 청구서가 쌓여만 있었고 진퇴양난의그 상황에서 온통 모두가 알렉스에게 매달려야 했다. 그러다 무사히 72시간이 지나고 이제 긴 싸움이 될것이란 말을 듣고 되고 하나 둘 만나는 교인들로부터 생각지 못한 말을 듣게 되고 부득이하게 수술을 강행해야했던 알렉스의 첫번째 목뼈가 아무런 조취도 없이 무사하게 됨으로 인해 아빠는 천사의 존재와 천국의 존재를 믿지 않을 수 없었다.그러다 두달의 긴 잠에서 깨어난 알렉스가 보여준 놀라운 회복력과 천사와 하느님과 천국에 대한 이야기들과 다른 이들이 함께 경험한 믿지 못할 영적인 세계, 모두가 알렉스의 회복에 간절한 믿음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아빠 또한 아들이지만 아들이하는 소리를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난감했지만 알렉스의 얼굴을 보며 그가 보는 천사의 존재와 알 수 없는 언어로 만나는 하느님 그리고 천국에 대하여 믿게 된다. 알렉스가 사고 직전에 보여준 믿음을 보면 그가 다른이보다는 특별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아빠,하지만 가족이 아닌 타인과 함께 천사와 천국에 대하여 교감을 나누었다면 믿어야겠지. 그리고 그에게 일어난 의학적 과학적으로 풀이되지 않는 일련의 일들을 어떻게 풀어야할까. 수술 전날 일어난 첫번재 목뼈에 대한 일이며 그가 표현하고 보여주고 말하는 모든 것들에 대하여 그저 아이의 상상력과 사고후유증으로 보아야할까라는 점이다. 천국을 믿거나 천사를 믿는 것과는 다르게 무언가 그가 기적을 이루어 낸 것임은 틀림없는 일이다. 믿음에서 비롯된 기적을 다른 누구도 아닌 믿음이 강한 소년이 이루어냈다는 것에 대하여 더 믿음이 간다. 그리고 일어나는 일련의 일들이 꼭 하느님이 설계해 놓은 일들처럼 알렉스를 위하여 움직이고 있으니 영의 세계가 없다고도 단적으로 말할 수 없다. 

책을 읽는 동안 그들이 겪은 사고 후 알렉스 혼자 고통과 싸운것이 아니라 엄마와 아빠 그리고 세동생 뿐만이 아니라 그들을 알거나 모르거나 모든 일들이 함께 마음을 뭉쳐 움직여서 믿음이 더 강해지지 않았나싶다. 남의 불행이 아닌 내 일처럼 하나가 되어 움직인 사람들, 그들과 함께 기도하고 음식을 만들어 주고 집을 고쳐주고 집에 필요한 것들을 장만하게 해주고 멀리서 남의 불행을 지켜보기 보다는 알렉스의 불행이겨내기에 함께 참여하여 하나가 되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그가 걷을 수 있는 날까지 함께 했기에 하느님도 천사도 또한 그들의 편이 되어 준것 같다. 정말 아픈 순간이 다가오면 내가 정말 불치의 병이나 그외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되면 나도 모르게 '하느님' 을 찾는다. 다른 누구 믿음의 대상을 찾기도 하지만 보편적으로 찾는 것이 하느님이고 기도일 것이다. 믿음을 가지고 있던 그렇지 않던 그 순간에는 믿음과는 상관없는 온세상 모든 대상에 대하여 자신의 불행을 건널 수 있는 다리가 되어주길 간절히 빌게 된다. 난 불교에 조금 관심이 있어 '관세음보살' 을 찾는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그 순간에도 화장을 하던 그 순간에도 '관세음보살' 을 속으로 되뇌이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렇다고 내가 믿음이 강한 것은 아니다. 그저 내가 그 순간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무언가라도 잡아야 할 것만 같았기에 읊조려본 말이다. 내가 큰 사고를 두번이나 당하던 그때 고통의 순간에도 늘 입속에서 되뇌이던 말이다. 그렇게 해서일까 무사히 그 고통에서 벗아날 수 있었고 마음에 큰 상처없이 육체적으로도 큰 상흔없이 이겨낸듯 하다. 나의 경우엔 나이가 들어가면서 믿음에 대한 생각이 강해졌다고 할 수 있지만 알렉스라는 소년은 이제 겨우 6살이고 사고 이후 12살의 소년일뿐이다. 그런 소년이 감당하기엔 너무 큰 충격적인 사고였을터인데 현실 비관이나 비판없이 그대로 현실을 받아 들이고 이겨내려는 강인한 의지와 믿음이 그를 살려내고 있는 것 같다.

'이제 우리가 병원을 떠나기 몇 시간 전에 너무나도 완벽하고 명확하게 '아빠' 라고 말한 것이다. 행복의 눈물이 내 볼을 타고 한없이 흘러내렸다. 감격에 할 말을 잃었다. 알렉스가 자기 목소리를 찾았을 때, 나는 내 목소리를 잃었다.' 사고 이후 모든 것들은 기적이었다. 사고하고 말을 한다는것 음식물을 삼킨다는 것, 사고이전으로 완벽하게 되돌아갈 수는 없지만 그래도 어느정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음을 의사들과의 말과는 다르게 한가지 한가지 이루어내는 알렉스에게 과연 천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소년이 사고 당시의 자신의 죽음을 지켜보았고 하느님을 만나게 되고 천국을 가게 되면서 다시 되돌려 받은 새로운 삶은 무한히 남에게 '믿음을 베푸는 삶' 으로 바뀌었다. 소년의 깨어남이 곧 믿음이요 희망이요 기적이었는데 소년의 재활의지로 포기하지 않고 현실을 받아 들이며 한가지씩 새로운 삶에 적응해 나가는 모습들이 눈물을 자아낸다. 교통사고로 십여년이 넘게 식물인간이 된 아들을 보살피고 있는 가족을 가까이에서 알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포기해도 그 부모들만은 아들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오늘도 희망을, 아니 기적을 기대하며 아들을 정성껏 돌보고 있다. 아무 반응이 없다해도. 그런 것에 비하면 알렉스는 행운이다. 두달여만에 깨어나기도 하고 이젠 정상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인간이 이루어낸 기적이 아닌 하느님이 이루어낸 기적이라 해도 그것은 알렉스와 그외 모든 일들이 함께 일구어낸 기적이다. 세상에는 인간이 알 수 없는 기적이 분명히 있다. 천국을 믿지 못하는 것처럼 기적 또한 내게 일어나지 않아 믿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 분명 어디엔가 희망적인 기적은 꼭 있다. 믿으면 분명 그렇게 될 수도 있다. 믿음은 곧 재활의지이며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이다. 천사와 천국에 대한 긍정이냐 부정이냐가 중요한 것이라 아니라 인간의 믿음과 병과 고통에서 나으려는 의지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보여주고 있다. 믿음에 대한 의지가 기적도 희망도 일구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알렉스를 통해 본다. 인간이 무척 나약한듯 해도 숨겨진 무한한 능력이 있음을 그 능력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음을 감동적으로 읽었다. 소년이 좀더 건강해지고 동생들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그리고 소년의 꿈이 이루어지길 바래본다. 산다는 것, 죽을 각오로 하면 안될것이 없는 듯 하다. 소년의 희망과 기적을 나 또한 한번 이루어 보려 노력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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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칩도 지나고 봄이다




 
아젤리아



 



 


군자란...하루가 다르게 꽃대가 올라오고 꽃이 피고 있다



 
동백꽃


목베고니아


시클라멘... 꽃이 얼마나 피려는지 아직도 꽃대가 올라오고 있다


부겐베리아


접란...떼어내어 유리컵에 담가 놓았다.


브론페시아 새순...쟈스민이라고 하는 녀석의 마른가지에서 새순이 돋았다.



오늘부터 뒷산에 산행을 가려고 했지만 책을 교환신청을 한것이 있어 택배를 기다려야 했다.
그러다보니 봄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몸도 으슬으슬..찜질기를 틀어놓고 잠시 누웠다.
따듯하니 좋다. 그러다 일어나 베란다에 나가니
하루가 다르게 올라오는 꽃대와 군자란 꽃이 여기저기 터지고 있다.
동백은 한꺼번에 피어나듯 만개한 환한 모습으로 맞아준다.

울집은 군자란 때문에 봄을 더욱 진하게 느끼고 눈으로 맘으로 호강하며 맞는다.
녀석들이 꽃대를 하나 둘 올리며 주홍빛 꽃을 활짝 피워주면 얼마나 베란다 뿐만이 아니라
우리집 전체가 화사해지는지... 봄이 몹시 기다려지기도 한다.
올해는 꽃대가 30개가 넘게 나오고 있다. 내가 눈으로 갯수를 확인한것이 30이 넘는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않보이던 것이 어제하고는 다르게 두개가 올라와 있는 것도 있다.
이렇듯 어김없이 봄을 보여주고 꽃을 피워주고 거짓없는 녀석에게 난 늘 내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해가 다르게 늘어가는 꽃대들, 그들 또한 세월만큼 나이를 먹어가고 있는 것이다.

화려한 아젤리아와 함께 군자란 또한 화려한 꽃을 피워주니 그야말로 베란다엔 봄이 가득이다.
귀퉁이에서 동백이 또한 화사함으로 활짝 반겨주니 더욱 화산한 베란다,
군자란 그 모든 꽃대에 불이 들어오듯 활짝 개화를 하고 나면 정말 화려할 듯 하다.
그 날이 기다려진다... 서두른다고 빨리 필것도 아니며 기다리면 기다리다보면
녀석들은 하나 둘 그렇게 얼굴을 드러내고 봄을 보여준다.

올해는 목베고니아도 일찍 피고 있다. 분갈이를 해주어야 하는데 영양이 다한듯 한데도
긴 줄기 끝에서 꽃대가 나오고 있다. 아직 생명이 남아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녀석들은
끼니때마다 쌀뜨물로 영양을 주었더니 그에 대한 보담인듯 하다.

시클라멘은 하나의 알뿌리에서 몇 개의 꽃대가 나온 것인지 도대체 모르겠다. 아직도 나오고 있고
진 것은 다시 씨를 맺을 터인데 모두 심어야 하는지 망설여진다. 잎만 있을때는 이쁘지 않던것이
이렇게 꽃을 활짝 피고나니 정말 화려하면서도 이쁘다.
봄에 열정을 가지고 한 해를 맞으라는 것처럼 녀석의 붉은빛에 더없이 빨려드는 햇살이 좋은 날,
어제가 경칩인데 봄바람은 정말 장난이 아니다.
실외기 베란다에 있는 도라지와 더덕 대파 딸기 라일락 상사화 무릇 을 보기 위하여 문을 열었다가 
봄바람에 된통 얼굴을 맞았다. 옷깃을 파고 들며 몸에 감기우는 봄바람, 
그 바람을 이기며 그래도 어김없이 새 잎이 돋아나고 있다.
브론페시아의 마른가지에서도 어느 새 새 순이 돋아 나오고 곧 잎이 무성해지고
보랏빛 꽃이 피고 진한 향이 집을 흔들어 놓으리...
오늘 비록 산행을 가지 못했지만 집안에서 나의 뜨락에서 봄을 맞았다.
아니 봄 속을 걸었다.. 매서운 봄바람과 함께...


20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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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 가족 레시피 - 제1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6
손현주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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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가족의 구성원이란, 여든이 넘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따발총처럼 잔소리를 해대는 일본에서 여학교를 나왔다는 그 하나만으로 존심을 세우며 집안일을 맡아 하고 계신 할매와 오십이 넘어 채권 추심 하청일을 집안으로 끌고 들어와 고3의 딸에게 공부보다는 무입금 일을 시키고 여성편력이 강한 불곰아버지밑으로는 엄마가 모두 다른 대학생이지만 기저귀를 차고 다녀야 하는 아들과 고3의 뚱뚱한 딸과 나이트클럽 댄서였던 엄마에 대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코스튬플레이를 하며 남의 삶속에 희망을 찾듯 하며 사는 여울이가 있다. 그리고 주식으로 모든 재산을 날려 가정까지 파괴가 되고 뇌졸중이 와 반신불수가 되어 형의 집에 얹혀 사는 무능력한 동생이 있으니 그들이 모여 있으면 편안한 날이 없다.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 이런 가족이 또 있을까. 가족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들은 서로를 못잡아 먹어 안달을 하듯 할머니는 여울이에게 잔소리를 퍼붓고 언니 또한 여울이에게 거침없는 말을 날려주신다. 이 집안에서 오직 여울이편은 무능력하단 소리를 듣는 삼촌뿐이다. 하지만 그또한 직업이 없이 살다보니 식구들 눈치를 보기 일쑤이다. 그런 가족중에서 오직 직업을 가지고 돈을 벌어오는 사람은 아버지 한사람 뿐이지만 이 집에 '엄마나 여자' 는 견뎌내질 못하는지 집을 뛰쳐 나가기 일수다. 하지만 아직 존심은 남아 있어 사십평이 넘는 아파트의 전세금을 곶감빼먹듯 하여 월세로 전향하여 사는 것이 오래지만 그마져도 언제 끝이날지 모를정도로 불곰아빠의 일은 점점 줄어들고 아빠는 집안과 자식들 걱정보다는 일에 매달려 보지만 점점 그의 자리는 위태롭기만 하다. 그런 즈음 학교 수업시간에 자서전을 써오라는 과제가 떨어지고 그 과제엔 큰 상금이 걸린다. 코스튬을 하면서 아버지와 할머니의 지갑을 몰래 몰래 털어가면서 지금까지는 견디었지만 아버지의 일이 하향길을 걷고 있으니 그마져도 이젠 어렵게 되어 그녀 자신이 자서전을 멋지게 써서 장학금을 받아 내려하지만 자신의 집안에 대하여 쓰자면 자신이 콩가루 집안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마는,판도라의 상자를 스스로 여는 겪이 되고 만다. 그렇다면 자서전을 써야할까 말아야 할까.도덕 꼴통은 이런 숙제를 내다니.

이 소설 속에는 가장들의 자리란 없다. 불곰아빠지만 이름만 불곰이지 가족하나 책임을 지지 못하고 그들의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한다. 그의 동생 또한 주식으로 전재산을 날리듯 하고 가족이 흩어지듯 아내와 위장이혼을 하여 아이들과 아내를 미국에 보냈지만 소식이 없다.이땅에 가장이란 자리가 있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지금 우리 사회는 가장들이 위태로운 살얼음판을 걸어가고 있다.한참 일할 나이에 명퇴에 조기퇴직으로 자신의 자리를 잃은 이들이 가정을 책임지지 못해 흔들거리는 가정이 남의 일이 아니다. 너나 할 것없이 언제 총알을 맞을지 알 수 없음에 '간 큰 남편,아내' 시리즈가 나올 정도로 사회는 그만큼 IMF이후로 흔들렸고 그 어려움이 아직도 진행형인 가정이 많다. 나 또한 친한 동생이 그런 위기에 가족이 흩어져 지내게 된 그런 일을 옆에서 보며 그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기도 했다. 그들은 지금도 희망을 꿈꾸고 있지만 가족의 합체를 하지 못했다. 가장이 흔들거리면 가족이라는 구성원 전체가 위태롭게 된다. 그만큼 가장의 위치와 책임이 중요하지만 갈수록 '부익부 빈익빈' 이 심해져 주머니가 두둑한 이들은 그들의 아픔을 잘 헤아라질 못한다. 

그렇다면 이 가족에게 댄서를 하던 엄마나 사기를 하려던 엄마든지 어떤 엄마가 되었던지간에 '엄마' 라는 내무부장관이 있었다면 어떻게 가족이 변했을까. 요양원을 꿈 꾸는 할머니가 맡아하는 살림살이가 아닌 이름뿐이도 누군가의 '엄마' 가 있었다면 오빠나 언니 그리고 여울이의 장래는 어떻게 변했을까. 그리고 가장이라는 불곰아빠의 무책임할 정도로 등한시한 가정의 울타리는 지켜졌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엄마가 없는 집안에서 엄마가 모두 다른 자식들이 할머니의 손에 키워져 하나가 되기엔 그들에겐 뭔가 2%부족하다. 가족으로 뭔가 하나가될 결속력이 부족하달까 개별적으로 개개인이 살아가는 그런 공동체밖에 되지 않는다. 서로의 범위를 침범하지 않는 그런 공간에서 서로의 개인적인 삶으로 일관하다 생계를 위해 겨우 뭉치는 그런 가족이라고 하기엔 너무 거리감과 융합이 없는 그들을 하나로 뭉치게 해줄 무언가가 없다. 

그속에서 여울이가 돌파구처럼 찾아낸 것은 남의 삶처럼 변신을 꾀할 수 있는 코스튬플레이다. 피어나공주로 분장하여 슈렉의 입맞춤 한번에 평범한 삶으로 돌아올지언정 지금 자신은 '공주' 로 변해 있는 것이다. 그녀의 상상속에서 엄마라는 존재는 빨간드레스를 입고 쉘위댄스를 추고 있을것만 같다. 하지만 현실은 너무 냉혹하다. 대학에 가고 싶어하던 언니는 불곰아버지와 맞대결을 하고는 여울이가 늘 꿈 꾸던 '출가가 아닌 가출' 을 하고 말았다. 그녀가 먼저 꿈 꾸었지만 실행을 한것은 그녀의 언니가 먼저였다. 그녀는 늘 출가에 대한 레시피를 작성하고 있지만 자신이 아닌 다른 가족이 먼저 선수를 쳐 그녀는 뒤로 밀리고 말았다. 언니의 가출 뒤에 삼촌 또한 가방을 싸서 나가게 되고 기저귀를 차고 사는 대학생 오빠가 친구집으로 나가게 되고 나니 집안은 텅 비었다. 망망대해같다. 그동안 이렇게 넓은 집이라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녀에게 찾아온 외로움과 적막감은 출가가 아닌 그들을 그리워하고 기다려야 한다는 희망의 새로운 싹으로 자라난다. 그러다 아버지의 사업마져 바닥에 떨어져 집안엔 빨간딱지가 붙게 되고 아버지는 결국 유치장신세를 지게 되고 가장이란 자리는 더이상 이 가족에겐 필요하지도 존재하지도 않게 된다. 모두가 떠난 자리에서 17세 여울이가 실질적인 가장이 되고나니 늘 자신에게 잔소리를 해대던 할매마져 살갑게 느껴진다. 이순간 할매라도 있다는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가족이란 그런 것인가. 이제 겨우 가족에 대하여 깨닫게 되는 소녀가장 여울이가 지금의 여울을 잘 이겨내고 만나게 될 큰 강과 바다가 가족 개개인이 서로 살 길을 찾아 나선 후에 희망으로 빛나 그나마 다행이다. 

청소년들의 비행은 가정의 해체나 부모의 이혼이나 위기에서 온다는 것을 읽은 적이 있다. 그렇다면 여울이 또한 한마디로 비행청소년이 될 소질이 다분했다. 하지만 그녀는 나름 자신의 돌파구를 찾아 자신이 아닌 타인으로 변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보려 했지만 그 또한 이상일 뿐이었다. 자신의 삶은 스스로 헤쳐나가야 함을 이제 서서히 깨달아가는 그녀는 소녀가장이 된 것이다. 늘 할매가 챙겨주는 밥상을 받던 그녀가 할머니의 죽을 끓이고 학업을 포기하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고 돈을 벌면서 학업을 해나갈 방도를 생각해 나가게 되고 그녀에겐 가족의 해체로 인하여 여울을 지나 더 큰 강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게 되는 어른이 되어 가고 있다. 어른들이 잃어버렸던 '희망' 을 이제 막 찾게 된 그녀의 앞날은 모든 가족들을 기다릴 수 있는 '기다림' 이란 것이 있어 더욱 희망적이다. 그리움과 기다림이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라는 말처럼 그 기다림마져 없다면 살아갈 희망마져 소멸해 버렸을 것인데 비록 엄마가 다르지만 언니와 오빠를 기다리고 지금은 형을 살고 있지만 아버지가 나올 그 날을 기다리고 삼촌 또한 돈을 벌어 미국에 있을 아이들을 만나러 가게 될 것을 그녀는 희망하고 있다. 

위기의 상황에서 돋아난 희망과 삶의 의지,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책에서 처럼 그들 가족은 어쩌면 마음에 서로에 대한 '사랑' 이 빈곤한 상태로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이루고 살았다. 그리고 그들에겐 '미래' 가 없었다. 가장의 자리가 추락한 상태에서 가족존재란 더이상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젠 그 '사랑' 으로 모든것을 보듬으며 살 수 있는 희망을 알게 되었다. 서로의 미래를 위하여 가족에서 떨어져나간 사람들, 그들은 위기의 순간에 더욱 단단해질 수 있는 그런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하여 잠시 흩어져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직은 그들은 가족이다. 서로 뿔뿔히 흩어져 있지만 말이다. 가족이라는 그 이름을 버리지 않은 이상 그들의 미래는 밝다. 언젠가 다시 큰 바다에서 하나가 되어 만날 수 있는 희망을 가지고 그들은 지금 '여울' 을 지나고 있는 것이다. 위기의 순간에 진화를 하고 있는 가족, 그들은 더이상 불량 가족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보고 있는 것처럼 마음이 아프지만 거침없는 그녀의 입담과 스피드한 내용에 점점 빠져들면서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사춘기의 딸들을 두고 있어 청소년문학을 챙겨 보려 하고 있지만 청소년문학은 많이 않은듯 하다. 그 선두에 '불량 가족 레시피' 가 있어 가족에 대한 생각을 한번 더 가져보게 하여 가슴이 뭉클했다. 하지만 삶이 언제나 암흑일수는 없듯이 언제일지 모르지만 희망은 있다. 판도라 상자에 마지막 남은 것은 '희망' 처럼 말이다. 그 희망을 향해 지금 바닥에 떨어져 있다면 바닥을 짚고 일어날 일이다. 더이상 아둥바둥 버티지 말고 당당하게 일어서는 것이다. 힘들게 내리막을 달려 내려왔다면 다시 땀을 흘리며 오르막을 올라 보는 것이다. 사람은 무엇으로든 살아지는 것이다. 그 밑바탕의 원천은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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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0일부터 2월 20일까지 진행된 미국 현대 문학 4대 작가전  이벤트에 참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벤트에 당첨되신 분들 모두 축하드립니다.
 
☞ 관련 이벤트 : http://www.aladin.co.kr/events/wevent_detail_book.aspx?pn=110119_book 

<추첨/댓글 이벤트>

문학동네 세계문학 전집 송*희 goson***@naver.com
창비 세계문학 구*현 me.un***@gmail.com
창비 세계문학 구* ninest***@korea.kr
창비 세계문학 이*나 tankh***@dreamwiz.com
창비 세계문학 이*정 staingi***@yahoo.co.kr

< 리뷰대회>

1등 한*은 mar***@naver.com
2등 최*성 gotjd7***@naver.com
2등 이*연 yasl***@hanmail.net
3등 이*정 ag***@naver.com
3등 김*석 jk325***@naver.com
3등 주*정 ejju***@hanmail.net
3등 박*순 yesi2***@naver.com
3등 김*영 sand***@naver.com



* <울분> 리뷰 올렸는데 3등 했으니 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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