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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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읽은 한국소설중에 제일 기억에 남을 그런 소설을 만났다. 정유정 작가의 다른 책인 <내 심장을 쏴라> 를 구매해 놓고 읽어야지 했는데 책이 없어졌다. 이중으로 꽂아 놓은 책임도 있지만 딸들이 가져가서 학교에서 읽는다고 한것 같은데 찾아보니 않보인다. 이 책을 읽고나니 더욱 읽고 싶어졌다.'7년의 밤' 7년전 '세령호사건' 이 있던 날 밤이 지나고 7년이 지난 후 다시 시작되는 악몽과 같은 악연의 마지막을 퍼즐을 맞추듯 흩어진 짝들을 찾아 짜맞추어 나가다보니 하루종일 이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그 마을이 사실이든 거짓이든 꼭 어디엔가 존재할것만 같고 이미 지나쳐 온 어느 마을인듯 한 이야기는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했다.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해 주는 소설이다. 그 중에서도 '사형제도' 인간의 존엄성 때문에 존폐를 놓고 찬반 논란이 많은 사형제도가 이 소설속에는 존재한다. 하지만 그 과정을 읽고 나고 알고 나면 정말 죄가 미운것이지 결코 사람이 미운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렇게 서서히 빠져들게 하는 소설은 첫 시작부터 마음을 콱 조이게 만든다. '나는 내 아버지의 사형집행인이었다.' 도대체 왜 '나' 라는 인물이 아버지의 사형집행인이 되어야 했을까.아버지와 나와의 사이에는 어떤 사건이 있었고 어떤 죄가 또아리를 틀고 있기에 아버지가 사형수가 되어야 했을까. 궁금증을 툭 던져 놓고 소설은 시작된다.

작가들은 소설의 첫 문장을 무척 고심하고 공들여 쓴다고 알고 있다. 김훈 작가도 언제가 그런 글을 쓴듯 하고 다른 작가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한 문장으로 기억되는, 첫 문장으로 기억되는 그런 소설들이 있다. 이 소설 또한 소설 전체를 암시하는 '나는 내 아버지의 사형집행인이었다.' 라는 문장 때문에 저 긴장을 하며 읽게 되었다. '세령호의 재앙' 이 잠시 그려지고 이야기는 세령호 사건 이후 서원과 승환이 왜 바닷가 마을을 돌며 정착을 하지 못하고 사는지에 대하여 나온다.그들이 왜 떠돌이가 되었을까.세령호 하건 이후 사형수의 아들인 서원은 어디를 가나 대접을 못 받지만 주목받는아이다. 그의 정체가 들어나면 다시 이동을 하고 떠돌이 생활을 하지만 그래도 그의 곁엔 든든한 룸메이트인 아저씨 승환이 있어 버틸만 하다. 세령화 사건이 있고 7년후 그는 소년에서 이제 청년이 되었지만 그래도 꼬리표처럼 따라 다니는 '사형수 아들' 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 떠돌이생활을 하다가 어찌하여 등대마을에서는 일년을 정착하며 살게 되었는지 그들도 모른다. 그동안 아저씨에게서 잠수를 배우고 약국에서 일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 그들에게 철없는 대학생들이 술을 마시고 찾아와 다이빙을 하자고 하지만 아저씨와 서원은 안된다고 말린다. 술이 깬 후 다음날에 해도 늦지 않다고, 하지만 그들은 젊은 객기를 부려 취한 상태에서 다이빙을 하다가 사고가 나고 만다. 그 사고로 인하여 그들의 정체가 다시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그렇다면 서원과 승환은 왜 룸메이트가 되었을까. 승환은 부모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대학에 들어가고 졸업을 했지만 그의 뜻과는 맞지 않아 자신의 길을 걷고 싶어 떠돌이 생활을 택했다. 그의 꿈은 작가, 하지만 컴퓨터 화면만 보면 공황장애가 오듯 하여 한줄도 못 쓰는 경우가 허다하고 그는 아버지로부터 배운 잠수와 구조일이 몸에 베어 저수지관리 보안팀에 근무를 하면서 떠돌이 생활을 한다. 그러다 세령호에 오게 되었고 서원의 아버지 최현수는 전직 야구선수이며 그의 포지션은 포수다. 12살에 구단사람들에게 눈에 띄어 야구에 적합한 체격이라는 것을 인정받았지만 그의 아버지는 월남에 다녀온 상이군인으로 폭군이나 마찬가지다. 술만 먹으면 폭력을 일삼고 고래고래 노래를 하며 집안은 나몰라라 뒷전이고 그 어려운 살림을 어머니가 책임지고 맏이인 현수가 동생들을 거두었다. 그가 살던 동네는 등대마을로 망망대해와 같은 수수밭이 있고 그 수수밭 가운데엔 우물이 있다. 아버지가 미웠던 현수 아버지의 신지도 못할 구두를 우물에 빠뜨리려 갔다가 우물안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그저 마을사람들 사이에 전해지는 그런 말이겠거니 생각하고 돌아섰는데 진짜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을 불렀던 것, 그렇게 아버지는 우물에 빠져 죽게 되고 그는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없어 야구를 하다가 팔에 힘을 잃는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2군에서 맴돌다 야구를 그만두게 되고 은주라는 어렵게 살았던 여자와 결혼을 하게된다. 이 소설 속에서는 모두 상흔을 가지고 있다. 그 트라우마에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트라우마 속에서 허덕이다 결국에는 살인과 광기로 결말을 맺는다.

야구를 그만둔 현수 또한 제대로 된 직업이 없이 있다가 얻게 된 직업이 저수지보안팀에 들어오게 된 것인데 알뜰한 아내 은주가 대출을 받아 빠듯하게 아파트를 장만하면서 세가족은 세령호로 할 수 없이 내려오게 되고 서원과 승환이 한방의 룸메이트가 된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내려오기 전날, 현수가 그야말로 되돌릴 수 없는 사건을 일으키게 된다. 사건은 모두 그날밤 필연적으로 만나야 할 사람들처럼 세령호에서 만나다. 이 부분은 오쿠다 히데오의 <꿈의 도시>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꿈의 도시' 에선 등장인물 모두가 교차로에서 일어난 '교통사고' 로 인해 정리가 되는데 이 소설은 '세령호 사건' 으로 시작이 된다. 현수의 교통사고, 그는 음주에 무면허에 교통사고를 낸 것이다. 그것도 12살 자신의 아이와 같은 나이의 소녀를 치었던 것,하지만 그녀는 아직 숨이 붙어 있었는데 현수는 그 괴물과 같은 왼팔로 그녀의 입을 막아 죽게 하고는 세령호에 빠뜨렸던 것, 하지만 그 물 속에는 세령호에 잠든 마을에 궁금증을 느낀 승환이 있었던 것, 승환은 사고의 목격자였던 것이다. 현수가 치어 죽게 한 소녀 세령은 그럼 누구의 딸인가. 그 주변을 쥐락펴락하는 치과의사이며 수목원의 주인인 오영제의 외동딸로 그녀는 아빠의 폭력에서 벗어나려고 도망치다 사고를 당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를 죽게 한 것은 정말로 누구일까. 그녀를 죽인 진범은 현수일까 영제일까.

12살 소녀와 소년의 만남은 악연으로 시작된다. 그녀가 죽지 않았다면 서원의 짝이되었을 것이고 이웃의 친구가 되었을텐데 그녀가 죽었다. 누가, 자신의 아버지가 그녀를 죽게 하여 세령호에 잠들게 했던 것이다. 영제에게 외동딸인 세령은 '소유물'이다. 자신의 명령과 손짓에 의해 아내도 딸도 모두 그림처럼 박혀 있어야 하고 말을 들어야 한다. 자신의 말대로 움직이는 로봇과 같아야 하는데 아내 또한 그의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친 상황에서 이혼소속중에 아이가 죽었다. 그의 소유물이 없어진 것이다. 자신의 소유물에 해를 가한 가해자를 교묘하게 찾아가는 영제는 승환인가 하다가 현수임을 알안낸다. '나는 내 아버지의 사형집행인이었다' 그 한마디가 얼마나 많은 것을 암시하는지, 서원이 아버지에게 선물한 히죽히죽 웃는 형광색 해골인형 때문에 영제는 그의 차를 생각해 내고 그를 범인으로 지목한다. 하지만 영제는 현수 뿐만이 아니라 그가 노리는 것은 현수와 서원이다. 그에게서 딸 세령을 빼앗아 갔듯이 현수에게서 서원을 빼앗고 그 값을 톡톡히 느끼게 해주려는 잔인한 광기는 서서히 현수의 목을 조르듯 한다.

오영제, 그 또한 누구인가.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어려움없이 왕자님으로 살아 온 그, 그의것은 아무도 손을 델 수 없다. 망가뜨려서도 안된다. 모든 것들은 그의 소유물이다. 아내 하영 또한 그의 눈을 피해 달아났지만 언젠가는 찾아서 자기 자리에 박아 놓아야 한다. 그의 자인한 광기는 어쩌면 어려서부터 떠받들고 키운 부모에게 있다. 현수도 영제도 어릴적부터 가지고 있던 트라우마에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끔찍한 결말을 만드는데 현수는 그라운드에선느 그토록 보이지 않고 풀 수 없던 문제를 자신과 서원의 삶에서 이제 마지막 문제를 풀 듯 지난 '7년전 세령호의 밤' 을 더듬고 더듬어 현재 자신의 사형집행일에 벌어지게 될 영제의 반격에 대비한 마지막 게임에 대비한 결말을 준비한다. 그 모든 몫을 승환이 상사의 말을 맏아 행동하게 되면서 소설 속에는 승환의 소설이 등장한다. '고양이는 뭔가를 할퀴어야 하고, 개는 뭔가를 물어 뜯어야 하며, 나는  뭔가를 써야 한다.' 쓰고 싶었지만 작가가 아닌 대필작가에서 지금은 아무것도 못 쓰고 있는 승환이었는데 세령호 사건을 접하게 되면서 그가 트라우마에서 벗아나게 된 것이다. 위 말처럼 할퀴고 물어 뜯고 누군가는 그런 이야기를 글로 써서 진실을 밝히고, 이 소설이 바로 그런 소설이라는 것이다. 

'지난 사흘, 그가 꾸었던 꿈은 꿈이면서 꿈이 아니었다. 꿈속의 현실이었다. 현실 속의 꿈이었다. 열두 살 시절 그를 지배했던 우물에 대한 기억이었다.' 현수가 교통사고를 내고 세령호에 머물면서 자신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밤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몽유병자 된다. 그는 꿈도 아니고 현실도 아닌 그 꿈속에서 자신이 잊고 싶었던 잊었다고 생각했던 지난 시절의 기억과 세령의 죽음과 맞물려 세령호에 신발을 던져 넣은 일을 밤마다 되풀이한다. 만약 그가 저지른 교통사고가 꿈이었다면 지난시절의 악몽과 같았던 기억이 다시 떠올랐을까.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수수밭과 우물에 대한 기억 그리고 나약한 순간에 나타나는 용팔이현상, 죄를 담아 두고는 못산다. 언제가 어느 부분에서든 죄는 반드시 수면으로 떠 오르게 되어 있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그것이 꿈이기를 꿈이었다면 하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시계바늘은 되돌릴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현수와 사형집행일에 다시 만나게 되는 영제와 승환과 서원, 그리고 두 형사들은 7년전 세령호사건을 결말 짓게 된다. 그 마지막 게임에서 야구장에서는 그토록 잘 보이지도 않고 읽지도 못했던 용팔이 최현수가 자신의 아들 서원을 위해 승부수를 읽게 되고 악마 영제의 손에서 그를 구해낼 수 있는 방법을 승환에게 알려 주어 7년전 세령호 사건은 진실이 밝혀지며 결말을 짓게 된다. 그것도 다름 아닌 용팔이 최현수에 의해.

'오영제와 팀장은 전혀 다른 의미에서 비슷한 수준으로 위태로웠다오영제는 살해당한 아이의 아빠였다.충졸지점을 향해 폭주하는 자동차였다. 팀장은 범인일 가능성이 높았고 침몰하는 난파선이었다. 두 극점 사이에서 '어떤 일' 이 일어나고 있었다.그게 어떤 일인지 도무지 짐작이 되질 않아다. 짐작할 만한 단서가 없었다. 그래서 무서웠다.' 피해자의 아빠와 가해자가 만났더 그것도 이웃에서. 가해자에겐 피해자가 잃어버린 딸과 똑같은 나이의 아이가 있다. 만약에 영제가 좀더 인간적인 사람이었다면 이런 잔인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것이다. 아니 그 전에 현수가 아마도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승환의 기다림처럼 '자수' 를 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영제의 잔인한 광기가 보태어지고 현수 또한 그렇게 벗어나고 싶던 '아버지' 라는 인물과 너무도 똑같이 닮아가고 있는 저 자신의 괴물과 같은 모습에서 벗어나가고 함이 세령호의 안개처럼 모호하게 번져간다. 안개는 사람의 심리마져 이상하게 만드는데 소설은 세령호의 안개와 더불어 흐릿하지만 서서히 안개가 걷혀 가듯 흩어져 있던 퍼즐들이 하나 하나 제자리를 잡아 가면서 '정말 재밌다' 라는 생각을 하며 읽게 된다.

어찌보면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정신질환' 을 앓고 있거나 그런 아픔의 상흔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현수가 정신과치료를 받았더라면,영제가 겉모습과 다른 인간성을 가져더라면 '마찰' 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극과 극을 향해 달려가던 두 전차가 만나 불이 붙고 그 사고로 인해 주위의 사람들까지 피해를 본 세령호 악령, 읽고나면 무언가에 홀렸다가 빠져 나온듯 하다. 잠수와 야구등 전문적인 것들을 다루고 있어 작가가 어려움을 겪었을것도 한데 정말 세세히 표현을 잘 해 놓았다. 현수가 포수여서인지 이 소설은 야구게임을 보는 것과 같다. 그들이 마지막에 부딪히게 된 사건은 어쩌면 '구회말 투 아웃' 에 다시 시작된 게임과 같다. 하지만 노련한 포수 최현수가 그라운드를 잘 읽어 그들의 승리로 끝나지만 그는 한 줌 흙으로 돌아간다. 아무 미련없이. 포수 최현수가 진작 자신의 인생을 잘 읽어 다른 패를 써 보았더라면 이런 잔인한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터인데 모든 것은 지나고 나봐야 답이 나온다. 미리 인생의 답을 알 수 있는 해안을 가졌다면 '나는 내 아버지의 사형집행인이었다.' 라고 시작되지 않고 아마도 12살 두 소년과 소녀의 풋풋한 사랑이야기가 되어 한국판 '로미오와 줄리엣' 이 탄생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탄탄한 구성과 세밀한 표현,긴장을 늦출 수 없는 이야기 전개등 작가의 저력을 맛보았다. 어디 내 놓아도 떨어지지 않을 작품으로 요즘 <엄마를 부탁해>가 해외에서 좋은 반응인데 이 작품 또한 그런 길에 합류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게 했던 작가의 고집과 필력을 보며 작가의 다음 행보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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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하면서도 은은한 하얀 카라





베란다에 카라 네송이가 피고 또 한송이 올라오고 있다.
아침에 일찍 베란다에 나가니 카라향이 은은하다.
스프레이 해주고 물도 주고 꽃들과 조우하는데
개미 한 마리, '여기는 어디~~~' 하고 세상 구경을 하고 있다.
저 녀석 카라 꽃 속에 빠지면 그 세상을 뭐라 표현할까.
갑자기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 라는 소설이 생각난다.
그 베르나르는 하루에 몇 시간씩 개미를 관할하는 것으로 소일을 했다는데 과연 대단..
카라 이야기를 하다가 삼천포...







가만히 보고 있음 무슨 카라의 블랙홀같다.
은은하면서도 섬세하면서 무언가 형언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숨겨져 있다.


 

 

 




단순한듯 하면서도 어디를 어떤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보이는 카라,
그 오묘함에 한번 취하면 빠져 나오기 쉽지 않다.
섬세하게 단장을 한 여인네의 귀품이 풍기는 꽃이다.


201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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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빛 물들다





아파트 뒷산이 제법 봄빛이 물들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뒷산을 바라보며 산에 가고 싶은 마음 굴뚝 같은데 
내일 비가 온다고 하더니 날이 흐리다. 날시탓인지 몸도 찌뿌드드.. 눈도 아프고...
어제 종일 책을 읽은 탓인지. 요즘은 하루종일 책을 읽으면 눈이 아프다.
이것도 아마 나이탓이겠지...그래도 뒷산에 산벚꽃이 하얗게 핀 것을
베란다 창턱에서나마 볼 수 있다는 것이 행운이다.

아침 일찍 밥을 안쳐 놓고 씻고 베란다 화단에 있는 초록이들 한바퀴 돌며 물을 주었다.
하루만 들어와보지 않아도 정말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는 녀석들,
그 찬란함으로 봄을 일찍 열어 주었던 군자란은 하나 둘 지기 시작이고
카라가 한창이다. 네 송이 피었는데 한 송이 또 올라오는 것이 보이고
아마릴리스도 두송이 올라와 있는데 색상이 다른 것을 들여다보니 이제서 삐죽 올라오고 있다.
꽃에도 세대교체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은행나무엔 잎들이 벌써 푸르게 나 이고
사랑초 잎들도 삐죽삐죽 올라오고 있다.

거실베란다엔 쟈스민이 한창이라 집안엔 온통 쟈스민 향이다.
무늬조팝과 말발도리는 이제 서서히 지고 있고 부겐베리아도 지기도 하고 피기도 하고
게발 선인장은 열심히 꽃망울을 부풀리고 있다.
시클라멘은 꽃이 한창이더니 씨가 맺힌 것이 하나 둘 보인다.
다육이도 지난 겨울엔 지지부진 하더니만 생기를 찾아 열심히 성장을 하고 있고 
꽃대를 올린 녀석은 얼마나 그 꽃대가 긴지....

애들방 실외기 베란다엔 라일락과 딸기꽃이 한창이다. 대파에도 꽃망울이 올라오고 있고
더덕과 도라지는 얼마나 많이 컸는지... 더덕은 나무를 타고 죽죽 올라가고 있다.
봄비가 내리고 나면 정말 몰라보게 올라온 녀석들, 녀석들에게 이제 자신들만의 세상이 열린 것이다.
대지가 서서히 초록빛으로 갈아 입으려는 때에 시기적절하게 봄비가 내려주니
그보다 더 좋은 생명수는 없으리.. 멀리 목장의 보리밭에서도 진초록 융단을 깔아 놓은듯
온통 초록빛이다. 구제역이 아니엇다면 몇 번을 갔다 왔을터인데
그곳에 가다가 09년에 교통사고가 난 후로는 가보질 못하고 그저 창 밖 풍경으로만 보고 있으니..

오늘은 울집 딸들 중간고사 이틀째 날이다.어젠 큰놈이 전화를 걸어와
엄마의 목소리가 듣고 싶다며, 어리광이겠지. 얼마나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까.
그래서였는지 녀석 주관식 밀려 놓은것을 마킹도 않하고 그냥 냈다니...
피곤해서 일찍 자야겠다 하고 생각했는데 녀석 전화 받고 기분이 우울하여 
또 잠을 놓치고는 늦은 시간에 잠을 청했더니 피곤, 산에라도 다녀오면 좋으련만
날이 꾸물꾸물하니 집안 화초들 한바퀴 돌며 그것으로 만족...
베란다 창을 조금 열어 놓았더니 봄바람 타고 쟈스민 향이 더 진하게 들어온다.
그저 쟈스민 향처럼 오늘 하루 향기로운 날이길...


201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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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워드 Onward - 스타벅스 CEO 하워드 슐츠의 혁신과 도전
하워드 슐츠 & 조앤 고든 지음, 안진환.장세현 옮김 / 8.0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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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스타벅스 커피 매장을 난 한번도 이용해 보지 않았다. 그렇다고 다른 커피 매장인 엔젤리너스나 카페베네를 이용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카페들은 지나다니며 볼 뿐이고 카페베네는 집근처에 있어 한번은 가서 커피를 마셔가며 그 분위기를 체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져 보았지만 아직이다. 요즘은 우리 동네 뿐만이 아니라 갑자기 커피 전문 매장이나 커피매장이 무척 많이 생겼다. 얼마전 모 방송에서 '커피스페셜' 을 하는 것은 잠깐 보았는데 커피 수입이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몇 번째에 든다는 것을 본 듯 하다. 그만큼 커피 소비가 많은 우리나라, 커피전문매장은 이용하지 않지만 나 또한 커피 애호가이다. 식사후이거나 독서를 할 때는 늘 커피를 곁에 두고 있는다. 그렇다면 커피 한 잔에 담긴 경영은 어떠할까.

미국 뿐만이아니라 세계에 매장을 거느리고 있다면 '커피 한 잔' 에 대한 경영은 좀더 냉철하면서도 점점 늘어나는 브랜드들 속에서 살아 남으려면 고유의 자기만의 색깔을 가져야 할 것이다. 해외 여행에서 보았던 커피 한 잔으로 나누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유대감이 좋아 시작하게 된 경영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고 나름의 경영철학이 보태져서 일선에서 물러났던 그, 하지만 고공행진을 거듭하던 스타벅스에게도 위기가 닥친 것이다. 서로 몸집만 불리려고 하다보니 스스로 우물을 판 것처럼 자신들이 처한 위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때 냉철한 눈으로 현실을 보게된 그는 위기를 기회로 스타벅스를 다시 일으켜야겠다는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 를 해야 한다는 냉철함으로 다시 일선에 뛰어 들게 된다. 그렇다고 전직 경영자가 잘못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지금, 바로 지금 무언가 특단의 조치를 하지 않으면 점점 위기로 내리막길을 걸으리란 판단을 내린 그는 자신의 믿음을 굽히지 않고 밀고 나간다.

모두가 예스한다고 그게 옮은 것이라 할 수 없을때가 있듯이 한사람이 예스한다고 그게 잘못된 방법이라 할 수 없다. 'Onward'를 하기 위하여 지금,바로 브레이크를 걸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서 발생된 이메일 사건 이후 그는 다시 경영에 복귀하여 정말 스타벅스가 처한 위기가 무엇인지 문제가 무엇인지 처음부터 하나하나 짚어 나간다. 기업이건 가정이건 인생도 마찬가지이지만 오르막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정도 정상이라고 하는 지점에 이르게 되면 하양곡선을 그리게 되어 있다. 정상유지를 이어간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하지만 잘못된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막대한 손해를 감당해가면서 그 위기를 다시 개선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런 일을 그는 해낸다. 전국의 매장이 하루 문을 닫는다면 얼마의 손해가 오는 것일까. 문을 닫아야 하는 매장 몇 천개를 닫는다면 그로 인해 빚어지는 손해란, 공식에 대입하여 손해를 따진다면 문을 닫는다는 것도 매장을 없앤다는 것도 힘든 일이겠지만 더 나은 전진을 위한다면 누군가는 해야 한다.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유대감을 형성하는 매개체였어!' 매장의 몸 부풀리기를 하다보니 원래 가졌던 뜻에서 벗어나고 있다. 그 처음 가졌던 것을 찾기 위하여 커피 머신을 바꾸어 보고 새로운 맛의 커피도 찾아내게 되고 무엇보다 기초가 되는 바리스타들의 교육부터 다시 시킨다. 잘못되었으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 마음자세로 모든 것을 새롭게 고쳐 나간다. 매장 분위기가 잘못되었다면 고객의 의견을 들어 고쳐 나가기도 하고 동종매장과 매출비교를 하여 몸부풀리에 나서기 위하여 팔기 시작한 샌드위치를 과감히 빼야한다는 것도 찾아내지만 그동안 익숙하게 당연하게 생각되어졌던 노른자와 같은 것을 빼낸다는 것은 용납이 안되었지만 스타벅스만의 색깔을 찾기 위하여는 과감해질 필요가 있다. 스타벅스 안에서도 시끄럽고 밖인 언론도 시끄럽지만 당장은 피를 보게 되더라도 그 상처가 아물고 새살이 돋아 나오면 더 단단한 스타벅스를 만나기 위하여는 모두가 이겨내야 하고 지금 당장은 변화된 이윤이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미래를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상인이라면, 고객의 마음속에 마법을 부릴 수 있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나는 늘 마법을 찾아다녔다'.  고객은 움직이는 것이다. 그런 유동의 고객을 잡기 위한 피나는 노력의 결과물로 여러가지 부분들을 수정해 나가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고객에 대한 '믿음' 이다. 그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기에 다시금 수익곡선은 올라가지 않았나한다. 폐점된 매장의 직원을 다른 매장에서 일할 수 있게 하기도 하고 고객 한 명의 소리에도 귀 기울일줄 알아 무심히 넘겨 버리기 보다는 고객의 본심을 기억해줄때 매장을 찾는 횟수는 줄어 들어도 잊지 않고 다시 찾을 수 있게 하기도 하며 이윤만 추구하는 것이 아닌 지구 환경에도 널리 함께 이로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도 하고 생각지 못했던 커피 한 잔에 담긴 더 깊고 넓은 세계를 경험하게 해 주었다. 요즘 '공정무역' 이라 하여 모방송에서 '공정커피' 라는 이름으로 커피 한 잔으로 나누고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면 이 책은 한사람의 마인드가 경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큰 울림을 보게 된 듯 하고 그위기를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은 비단 혼자만이 아닌 모두가 모여 머리를 맞대어 '자유발상' '자유토론' 으로 문제의 핵심을 파헤쳐가는 모습들이 인상적이었다. '발상의 전환' 이 가져다 주는 무한한 능력이 한 기업을 다시 살려내는 과정을 보면서 실패의 쓴 맛을 경험으로 바탕으로 도전과 혁신을 이어나가 전진을 하는 스타벅스의 힘은 하워드 슐츠 혼자만의 능력이 아닌 모두가 함께 일구워낸 힘임을 본다.

'직원 평가와 임금 인상 역시 일관성 있게 이루어지지 않았고 교대 일정 또한 융통성이 없이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의 일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니 그들은 그저 바리스타라는 직업 자체에 대해 월급쟁이 이상의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않았을 것이다. 점장들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그들에게 스스로 매장 운명의 주도권을 쥔 경영자라는 마인드를 심어주려면 적적한 교육 과정과 인센티브 제도가 선행되어야 했다. 이런 내부적인 문제들은 간과한 채 오직 매장 수를 빠르게 늘리는 데만 박차를 가했으니, 지금의 결과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 어찌보면 스타벅스는 '질이 아닌 양'으로만 커져나갔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젠 '양이 아닌 질' 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진흙에 손을 넣읍시다' 지금 손에 흙을 묻혀야만 한다. 한사람이 아닌 모두가 진흙에 손을 넣고 함께 고통분담에 동참해야 하며 함께 힘써야 위기에서 벗어나 기회를 성공으로 돌릴 수 있는 것이다. 나 혼자 살기 위한 길이 아닌 모두가 살기 위한 길을 모색해 나가는 과정이 기업의 경영에만 해당이 될까, 가정이나 개인의 삶 또한 한번 뒤돌아 보게 한다. 흙에서 시작하여 고객에게 한 잔의 커피로 돌아오기까지 수많은 길을 거쳐오게 되는 커피,그것이 기업윤리 뿐만이 아니라 환경경영까지 참여를 하며 보다 폭넓은 기업마인드로 거듭나기 위하여,불확실한 미래로의 전진을 위하여는 지금 위험요소가 따른다 하더라도 지금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들을 가지치기를 철저히 하여 위기를 잘 극복한 스타벅스, 책을 들고 가서 커피 한 잔을 마셔보며 모든 것을 느껴보고 싶게 만든다.한편으로는 냉철하면서도 한편으로 인간미를 잃지 않는 그의 경영은 앞으로의 스타벅스를 더 주목하게 한다. 그저 비슷비슷한 커피 매장이 많기에 그런 매장중에 하나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의 위기관리를 철저히 하여 다시 부활한 드라마와 같은 이야기를 읽고나니 스타벅스라는 것이 새롭게 각인된다. 하나의 커피향으로 조화를 이루기 위한 부단한 노력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유대감을 형성해주는 매개체' 라는 말에 깊게 공감을 하며 그의 도전과 열정을 살짝 훔쳐 내 삶에 적용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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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오후에 만난 외암리민속마을의 봄정취





봉곡사를 다녀오던 길에 외암리민속마을에서 저녁을 먹으려고 잠깐 들렀다.
언제나 시작은 그렇게 한다. 낮엔 무척 덥더니만 시간이 지날수록 쌀쌀해진다.
봉곡사에서 너무 추워 손이 굽고 추위에 몸이 움츠러 있던 것이 이곳에 와서도 여전하다.
늦은 시간인데도 여행객들이 많다. 체험학습을 온 아이들 소리도 크게 동네를 울리고
오느 집에선 저녁을 하는지 하얀 연기가 하늘높이 올라가고 있고
잠깐 들러본다는 것이 어찌하다보니 조금 더 시간을 지체하게 되었다.
너무 오래간만에 왔던 것이다. 그리고 봄의 외암리민속마을은 또 다른 풍경으로 
다른 이야기를 해주고 있었다. 


 

 



 

 




어느 집에서 저녁을 나는 것일까 밥 짓는 연기가 추억을 불러 일으킨다.
어릴때 이런 집에서 이런 동네에서 살았던 기억이 있다.
그땐 가마솥에 밥을 했고 짚을 때야만 했다. 불당번은 꼭 막내인 나였다.
엄마는 내가 불조절도 잘하고 군소리 안하고 잘한다고 늘 내게 시켰다.
난 밥을 할때마다 불을 때고는 아궁이에 남은 불에 튀겨 나오는 튀밥을 주워 먹길 좋아했다.
그런 반면에 친정아버지는 그 불에 내 신발도 말려주고 들에서 놀다 적셔온 양말도 말려 주시고
그리고 고구마도 맛있게 구워서 주셨다. 늘 막내의 신발을 따듯하게 데워 주시곤 하셨는데
이젠 그럴 아버지도 않계시고 그런 시간도 다시는 오지 않는다.
그땐 힘들다고 지겹다고 하던 일들이 지금은 너무도 소중하고 행복한 추억이 되었다.
외암리에 오니 지난해 연말에 보내드린 아버지 생각이 더 떠오른다.
추억은 그런 것이다. 모락모락 연기처럼 피어 오르다 사라져 버리고는 아무일도 없다는듯이 시치미뚝...



봉곡사의 소나무도 멋있었는데 이곳도 멋지다

 
ㅋ~ 임신을 한듯한 배부른 고양이가 제자신을 잊고 개구멍으로 들어가려다 걸렸다 다시 대문으로



 


오랜 역사를 간직한 돌담길이 아름답다. 구불구불 사람사는 이야기가 저 구비만 넘어가면
무언가 '툭' 하고 튀어나올것만 같고 그 골목과 닮은 인정 많은 촌로가 나올것만 같고
돌담을 닮은 올망졸망한 아이들이 나올것만 같다,그 돌담 골목길에서...
현지인보다 여행객들이 더 많고 돌담은 너무 높아졌다. 무언가 이야기를 숨기려 하는것 같아
조금 낯설다. 예전에 돌담들은 이웃집과 먹을것을 나누고 이웃의 얼굴을 보며 
식구들 흉도 보고 이런저런 가슴속 이야기도 나누었는데...
돌담은 우리 사이에 놓인 벽과 같이 높아만 가는 것 같다.


 




박태기꽃망울...






600여년이 넘은 느티나무는 그렇게 동네에 뿌리를 내리고 
동네사람들의 모든 역사를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잠잠할 뿐..
그들의 생과 사,그리고 희 노 애 락을 함께 하며 나이테를 한 겹 한 겹 부풀리며 세월의 더깨를 
덧붙였던 나무,이젠 그 그늘이 너무도 크다. 그 나무만 보아도 그저 숙연해진다.
나무 앞에서 사람의 생은 보잘것 없음을 느낀다.
지금도 나무는 이웃 할머니의 나들이 뒷모습을 지키고 있다


 



 

 

 

 




너무 늦은 시간에 이곳을 찾았다.
조금 더 일찍 왔더라면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보고 담고 했을 터인데 아쉽다..
아쉬움이 있어야 다음을 기약하지만 말이다.
옆지기는 600여년이 넘은 나무 앞에서 그 세월에 감탄하고 있다.
600여년의 세월이란 얼마만큼일까... 그리고 시간을 나무는 어떻게 견디며 살아왔을까..


 



지금 우리의 시간을 나무는 기억해 주겠지..
그렇게 뒤돌아 나오는 길,체험학습을 온 아이들이 초가집에서 <아바타>를 보고 있다.
뭔가 극과 극인듯 하면서도 이야기는 통해 있는 것 같다.
늦은 시간에 잠깐 들러 좀더 둘어 보았으면 하는 아쉬움과 다른 계절에 이곳을 다시 찾아야겠다는
희망을 남겨 놓고 나왔다. 마을입구에서 저녁을 먹으려고 했는데
그가 그냥 집으로 가자고 한다. 나도 또한 맘에 맞는 것이 없다. 그래서 저녁은 집에 가서 먹기로 하고
외암리민속마을을 벗어 났다. 무언가 가슴 밑바닥에 깔려 있던 지난 추억을 잠시 만나고 온 듯한
추억속을 잠깐 거닐다 온 듯 하다.


201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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