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종한 제라늄씨에서 새싹이 돋아나다

 

파종한 제라늄에서 새싹이

 

 

 

 

 

 모두가 3개 싹이 올라오고 있다

 

새싹을 보다가 키만 겅중하니 크는 제라늄을 밑에서 살짝~~ㅋㅋ

 

제라늄 꽃이 피고 며칠이 지난 후에 수분을 하여 처음으로 씨를 받아 말리고 있는데

말리고 있는 씨들이 민들레처럼 홀씨로 거듭났다. 궁금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여

작은 화분에 4~5립씩 심어 보았다. 그리곤 사오일이 지난 후에 새싹이 올라오기 시작,

와 너무 신깋다. 처음 나온 녀석은 누가 댕강 잎을 따먹어 버렸는지 줄기만 있고

두번째 세번째 그리고 네번째 나온 녀석들이 저희가 제라늄이라는 것을 말해주듯

줄기에 보송보송한 털을 자랑하며 곧게 자라고 있다. 그래도 3개라도 싹을 틔운것이 어딘지...

모든 씨앗에서 새싹이 다 올라오지 않으니 다음에는 탈지면에 물을 묻혀 제라늄 씨를 올려 놓고

직접 발아를 시켜 심어봐야 할 듯 하다. 씨가 다 아물지 않은 것도 있는 듯 하다.

제라늄 씨를 받아 본 것은 처음이다. 수분을 하지 않았기에 그동안은 꽃이 그냥 지고

꽃이 지면 꽃대를 떼어내곤 했는데 이젠 꽃이 피고 4~5일 지나면 한번 본다 수분을 해야는지..

지난번에 수분한 꽃대에서 몇 개 또 씨앗이 맺혀가고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은 기다림의 시간이다. 기다림의 시간을 가져야 새롭게 태어나는 제라늄도

볼 수 있고 꽃도 볼 수 있고 씨도 볼 수 있고...좀더 더 기다려봐야 할 듯 하다.

남은 씨앗들에서 혹시나 더 새싹이 올라올지... 하루가 다르게 크는 녀석들 신기하다.

튼실하게 커야 하는데 비리비리 키만 크고 있으니...

 

201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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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요 엄마
김주영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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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오셔야 하겠습니다. 새벽 세시에 걸려온 전화가 예사로울 리는 없었다.' 소설의 첫 부분을 읽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나도 모르게 '헉'소리를 내면서 눈물이 줄줄,그랬다. 2010년 어느 날, 나 또한 이시간에 전화를 받았다.전화벨이 울리는 순간에 남편과 난 순간적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셨음을 짐작했다. 그 전 해에 폐암 판정을 받으셨고 얼마 남지 않은것 같다는 이야기를 가시기 서너달 전에 듣고 부터는 늦은 시간 혹은 이른 시간에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었고 촉수는 온통 '아버지'에게로 향하고 이었다. 그 순간 아버지의 인생이 주마등처럼 나의 뇌리를 스쳐가면서 아버지의 부음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리곤 '왜 나에게 이런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는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부모님의 부음을 나도 이젠 겪어야 하는 나이라는 것이,아니 가는데는 순서가 없다고는 하지만 못해드렸던,해드린 것보다 못해드린 것이 너무 많은데 너무 서둘러 가셨다는 생각에 숨을 쉴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시간이 넘도록 들숨도 날숨도 어떻게 하는지 잊은 내 심장은 그야말로 바늘로 찌르듯 아파 아버지의 부음 소식보다 내 심장을 더 걱정하던 그런 시간이 있었다.

 

사실은 첫페이지의 두 줄을 읽고는 소설을 읽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떻게 해야하나 하고는  그냥 첫 장을 쳐다보기만 했다. 아버지를 보내드렸던 마지막 그 날들이 너무도 생생히 떠오르고 아버지와 함께 병원에서 함께 했던 '이주동안의 값진 시간'들이 세세히 기억이 나서 흐르는 눈물을 어쩌지 못했다. 도저히 그냥은 읽지 못할 듯 했다. 왜 새벽 세시에 어머니의 부음 전화를 받는 설정이어야 했나 하는 괜한 저자에 대한 미움에 읽을까 말까를 망설이다 도저히 궁금함에 그냥 접어 두고 있지 못할 듯 하여 다음날에 다시 읽게 되었다. 왜 어머니의 부음 전화를 받고는 그는 소리를 잊은듯 먹먹함에 바로 내려가지도 못하고 그렇게 자신안에 갇혀 있었던 것일까,어머니는 그리고 일반적인 장례절차를 치르지 말고 그냥 화장하여 뿌려 달라고 했을까? 아들과 어머니의 사이에 무언가 벽이 가로 놓여 있다. 그런가 하면 아우는 왜 그렇게 '형'을 어려워 하는지.

 

소설은 어머니가 최근이라 할 수 있는 시간에 '나'의 집을 방문한 기억부터 시작된다. 큰아들의 집이라고 한번 큰 맘먹고 왔지만 가족이 모두 데면데면한 것이나 아들과 어머니 사이 또한 이렇다 할 교감이 없다. 자식과 어우러지지 않으면 손주들과라도 어우러져야 하는데 그렇지도 못하다.그렇다면 왜 그 힘든 길을 어렵게 아들을 보러 온것인지. 그랬다.그저 큰아들 얼굴 한번 보려고 그렇게 어머니는 힘든 발걸음에 작은 아들을 앞세워 올라왔다가 그렇게 또 내려가시고 만 것이다. 가족이라기 보다는 그저 서로가 있어야 할 장소에 함께 있는 물건들처럼 그렇게 모였다 흩어진 사람들, 이 가족에게는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어머니는 왜 아들을 데면데면하고 아들은 또 왜 어머니를 남보듯 할까? 어머니의 말씀처럼 화장을 했을 것이라 생각한 시간에 시골로 향하는 그,하지만 아우는 형을 기다리고 있다. 어머니의 그런 마지막을 보고 싶지 않았던 형은 어쩔 수 없이 염하는 시간에 어머니의 마지막과 마주하면서 비로소 '어머니'를 보게 된다. 그동안 어머니는 무엇으로 살아 오신 것일까?

 

대부분의 우리들 부모님은 자식을 위하여 자신들은 희생하며 껍데기로 살아 오셨고 또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을 한다. 나 또한 아이들을 키우며 살다 보니 엄마를 혹은 아버지를 나와 같은 '사람'으로 인정하기 보다는 무언가 나보다 대단한 힘을 가진 부모인 어머니나 아버지로 생각을 했지 그들 또한 나와 같은 여자이고 나와 같은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라는 당연한 진실을 외면하며 살아 온 듯 했다.어느날 친정엄마와 긴통화를 하다가 '아차' 하는 순간에 '엄마도 여자였구나'라는 것을 느끼고는 그동안 여자로서 못챙겨 드렸던 것들을 챙겨 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렇다면 소설 속의 '나'는 왜 어머니와 소원한 관계가 된 것일까? 어머니는 두 남자와 살림을 사셨지만 '결혼'은 안하셨다.호적도 친정호적에 있는 어머니,아버지가 떠난 후에 아들과 둘뿐인 자신들의 목숨을 유지하기 위하여 동네의 허접한 잡일을 모두 다니셔도 늘 월사금도 밀려가며 벌을 서고 제대로 먹지 못하고 도시락도 한번 싸가지 못하는 그런 가난하면서도 고난한 삶을 살아야 했다.그런 와중에 외삼촌네 식구들까지 챙겨가며 살아야했던 어머니가 갑자기 새아버지를 데리고 왔다. 그동안 어머니와 나 사이에 다른 무엇이 존재하지 않았는데 새아버지가 둘 사이를 갈라 놓고 나는 동네를 방황하고 집과 외삼촌댁을 왔다갔다 하고 어머니가 일을 다니는 권씨네 병신이라 불리는 정태와 어울려 다니며 밤세상을 즐기게 되지만 그도 오래가지 못하고 끝나고 말았다.

 

그런가 하면 외삼촌 댁에는 애숙이라는 누이가 경원과는 맘이 잘 맞고 그가 똥눌 때는 귀신이 나타나나 망도 잘 봐주곤 했는데 어느날 어머니는 애숙누이를 몰래 빼돌렸다.왜 그랬을까? 누이가 떠나고 외삼촌댁도 시들해 지고 집에는 배다른 동생이 있으니 그 또한 자신의 자리가 아닌 듯 하여 사춘기 시절에 집을 나가게 되는 경원,그렇게 집을 나간 것이 어머니와의 긴 이별의 시간이 되고 말았다. 왜 지금까지 어머니와도 아우와도 그리고 자신의 고향과도 그렇게 멀게 살아왔고 어머니를 받아 들이지 못하고 살아 온 것인지. 어머니를 보내 드리고 곧 올라가겠다고 생각했던 길이 아우에 의해 지체되면서 지난날 이야기들을 듣게 되고 그동안 큰아들에게 숨겨왔던 가족의 비밀이 풀리고 어머니의 비밀이 풀린다.늘 남의 집 일을 다니며 그곳을 떠나기 싫어했던 어머니가 왜 그래야 했는지 그 이유도 듣게 되고 자신의 집에 올라왔을 때 애지중지하던 값싼 가방을 열어 본 순간 가방 속에 들어 있는 '빨간 립스틱'을 보고는 '아, 어머니도 여자였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어머니의 삶을 고스란히 받아 들이면서 그동안 어머니와 자신 사이에 있었던 벽을 허물며 어머니를 그저 '여자'로 한사람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세상을 살아 가면서 나에게 필요 없는 '인연'이란 없다. 그것이 부모인 아버지도 그렇고 어머니도 그렇고 형제도 그렇지만 나와 함께 했던 모든 사람들속에 필요 없는 사람이란 없다. 모두가 얼키고 얼킨 실타래처럼 서로 인연과 인연이 얼켜 그렇게 삶은 이어지고 그런 가운데 자신 또한 성장하고 인생살이를 하는 듯 하다. 나 또한 타인에게 받은 것을 고스란히 타인에게 돌려 주면서 그렇게 서로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으면서 덤도 없고 마이너스도 없는 인생이 되는 듯 하다. 부모 자식 간에도 씨실과 날실처럼 엉켜 있지만 나와 함께 하는 이웃 간에도 씨실과 날실로 엉켜서 인생은 이어진다. 툭 끊어진 실로 옷을 짤 수는 없듯이 나 혼자 뚝 떨어져 세상을 살아 갈수는 없는 것처럼 병신이라 놀림을 받았던 정태의 도움을 받아 우물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고 그는 방안에 갇혀 지내던 그를 세상구경을 시켜 주게 되듯 더하고 뺄것 없는, 저울질을 해봐야 소용없는 것이 인간사로 그려진다. 경원과 아우 또한 남보다 못한 관계같지만 어머니에겐 모두 자식이며 자신과 어머니를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지금 아우가 하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라는 진짜 알맹이를 만나며 지금까지 나를 감싸고 있던 거짓의 허물을 벗다.'

그런데 왜 그동안 어머니와 나,아니 어머니와 새아버지와 아우 그리고 나는 따로 떨어진 관계처럼 된 것인지. 어머니의 삶을 지금까지는 '껍데기'만 보고 그 진짜 속 알맹이를 보지 못했음을 아우의 말을 듣고는 깨우치게 되는 경원, 뿌리 없는 나무가 있을 수 있을까? 어머니가 있었기에 자신이 존재하는 것이지 어머니 없는 자신이 존재할 수 없음을,지금까지 자신의 오해에서 어머니와 아우를 받아 들이지 못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지만 너무 늦었다. 이미 어머니는 가시고 없는 것이다. 풍수지탄,이제 와서 후회하면 무엇을 할 것인가.자신은 배우지 못하고 가난했지만 자식은 번듯하게 키우고 싶었고 배곯지 않게 키우고 싶었고 남에게 매맞지 않게 키우고 싶었고 자식에게 해가 되는 일은 절대 하고 싶지 않았던 어머니,하지만 자식은 그런 어머니를 늘 오해하며 데면데면했는데 어머니를 보내 드린 후에야 어머니를 삶과 어머니를 제대로 인정하게 되었다. 슬프다. 가족간에는 오해도 미움도 증오도 제일 많이 하게 되지만 용서한다는 것은 더욱 힘든 일이다. 그것이 가족이기 때문에 더 힘든 경우가 있다. 남이야 용서를 하고 보지 않아도 될 경우가 있지만 가족은 평생을 함께 해야 할 사람이므로 용서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 될 수 있다. 자신의 인생 전체가 배배 꼬여 있듯이 지금까지 살아왔던 그 중심에 '어머니'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비로소 그 어머니를 받아 들이고 보내들일 수 있게 되었고 또한 '가족'을 보듬어 안게 되었다. 어머니의 부음으로 인해 자신의 과거를 모두 치유받게 된 경원, 서울의 삶이 싫어졌다.

 

아들로서 어머니를 바라보는 시선이 이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딸의 입장에서 어머니라는 존재를 보다보니 '아들'의 입장보다는 오빠들이 엄마에게 하는 모든 것들의 잣대로 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생각할 때가 있다. 내가 내 부모에게 하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지면서 결혼하여 새로 온 가족이 되는 '부모'에게 하는 것은 내 부모에게 하는 것과는 똑같이 할 수 없게 된다. 그것을 부모가 아플 때 병원에 가보면 아들인지 딸인지 혹은 사위인지 며느리인지 확연히 드러난다. 경원은 어머니의 큰아들이었지만 어머니는 오로지 아들뿐이었지만 그는 어머니의 삶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데면데면하다. 남보다 더 못한 사이가 된 어머니와 아들 사이에는 '어머니의 삶' 이 가로 놓여 있는데 이제 어머니의 삶을 고스란히 온 몸으로 받아 들일 수 있다. 비로소 '잘가요 엄마' 아니 '엄마'소리가 진정으로 나오게 된다. 가족간에 맺힌 매듭이 더 잘 풀리지 않은 경우가 있는데 왜 지금까지 어머니도 여자고 나와 똑같은 사람이리는 것을 받아 들이지 못하고 옹졸하게 살아온것인지. 그가 내뱉은 '엄마'라는 말에 나 또한 한숨이 나온다. 결혼하여 살다보면 가슴을 누르고 있는 맺돌이 있다.그것을 내려 놓고 싶은 순간이 있는데 그가 내뱉은 '엄마'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막힌 숨이 터지는 기분이다. 잘가요 엄마, 한 줌 먼지로 돌아가신 어머니,그런 존재였다,우리 모두는. 아웅다웅 산다고 해도 똑같이 먼지로 돌아가는 존재이고 천륜이란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으며 평생 가슴을 누르고 있던 맺돌을 내려 놓은 경원처럼 좀더 혼자 계신 엄마한테 잘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우린 늘 그런다,내가 살아봐야지만 남의 삶을 이해하게 되듯 내가 부모가 되어봐야지 내부모의 삶을 이해하듯 내 자식들에게도 똑같은 말을 하고 있다. 사람이기에 늘 후회를 하며 살게 되는데 그것이 너무 늦지 않기를,지금 만나러 가보세요,어머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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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월의 시작

 

비가 오는 날이면 넉줄고사리 창 밖으로 샤워시키기...

 

 

유월 마지막 날,장맛비가 지나가고 나서일까 칠월이 좀더 여유롭고 싱그럽게 시작되었다.

일요일이 칠월 첫날이라 그런지 더욱 여유롭게 시작인 듯 하다.

감기약을 먹고 잠에 빠진 큰딸을 깨우는 것으로 시작한 하루가 둘의 사적인 통화로 길게 이어지고

오늘 그렇게 큰딸과 엄마 사이가 한 뼘 더 가까워졌다고,친구와 함께 나누는 수다를 하듯...

에고 덕분에 딸은 학원에도 못 가고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는...미안...

 

이제 정말 올해의 반이 지나고 하반기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으니

좀더 정신을 차리고 달려야 할 듯 하다. 딸에게도 이제 남은 기간을 상기시키고

서로 스스로 자신을 위해서 살자고,남의 일에 신경쓰지 말고 딸은 딸로 엄마는 엄마로...

그렇게 각자 홧팅을 하고 나니 우울한 시작이 갑자기 태양이 비추이듯 힘이 솟아 난다.

신날새의 해금 음악을 틀어 놓고 덥지만 청소기를 한 번 쫙,그리곤 어제 비가 내려

실외기 베란다에 있는 초록이들은 그냥 놔두고 집안 베란다에 있는 초록이들 보다보니

며칠전에 씨를 심었던 '제라늄'이 3개나 삐죽 새싹이 돋아났다.얼마나 이쁜지...

먼저 하나가 나오고 있는 중에 어떤 녀석인지 어린 잎을 싹둑 잘라 먹었다..ㅜ

민달팽이 녀석일까..다른 녀석일까... 그렇게 하여 새로 돋아난 싹을 돌아 보고 또 돌아보고...

하루에도 몇 번을 보아도 정말 이쁘다. 그것에 칠월을,하반기를 시작하며 돋아난 싹이라

더욱 기분이 좋고 이쁘다는 것,무엇이든 이렇게 '처음처럼' 그 마음으로 계속된다면 좋을텐데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흘러가다 보면 변색되어지고 처음 그 마음을 잃어가니...

 

말끔하게 치운 집안에서 조용하게 혼자 앉아서 책을 읽으니 참 좋다.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고 책에만 집중하는 그 시간이 정말 좋다.

요즘 책에서 맘이 멀어져서 한참동안 우울모드 속에 방황하였는데 이제 서서히

맘을 잡고 다시 책에 빠져 들어봐야 할 듯 하다.

갑자기 걸려 온 사촌동생의 전화중에 욕심을 놓아 버리고 그냥 그렇게 나 편한대로 사니까

좋다는 말이,그래 그렇게 서로 편하게 사는게 좋은데 그래도 서로에 대한 믿음은 깨지 말아야지..

믿음이 깨지고 나니 사람에 대한 희망이 사라져 버린 듯 의욕이 사라져 버렸지만

살아가야 할 이유가 얼마든지 많다는 것을,오늘은 좀더 깊게 느끼며 칠월을 시작...

칠 칠 칠월,행운의 칠월 건강하게 나쁜 생각 버리고 시작해 보련다.

딸과 함께 서로 파이팅도 했으니 웃으면서 좋은 에너지 스스로 충전하면서 아자...

 

201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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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튈지 모르는 중학생의 멘토 부모 되기 - 사춘기 자녀의 4대 변화 관리법 소리치지 않고 때리지 않고 아이를 변화시키는 비결 2
고봉익.이정아 지음 / 명진출판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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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춘기,그런 녀석들이 둘이나 있고 지금 한참 세여자의 사춘기는 계속 되고 있는게 우리집 현실이다. 딸들은 사춘기라고 이해해 달라고 하지만 난 '그럼 엄마는 갱년기가 다가오는데 너희들이 이해할 수 있어' 하면 녀석들 말을 못한다. 분명히 나도 사춘기를 지났고 그렇게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치며 부모가 되었지만 정말 요즘 아이들은 내 아이 남의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힘들다고 한다. 그만큼 각박해져 가고 IT기가는 발달하여 공부가 아닌 그들의 어디로 튈지 모르는 관심을 쏟은 곳이 주위에는 너무도 많다. 그러가 하면 대한민국 사회는 성적과 대학을 중요시 한다. 그런다고 좋은 대학을 나왔다고 사회생활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 말로 잉여세대라 그런지 취업보다는 언저리를 헤맨다는 이야기가 더 많이 들려 오기도 하고 힘들게 대학 보내 놓고 가르쳤더니 또 고생이라는 말도 번번히 듣게 된다. 왜 이렇게 변해나고 우리의 아이들은 점점 삭막하게 변한 것인지,어른들의 탓이겠지만 그래도 그 문제점을 찾아 해결하려고 해도 끝이 없다는 것을 지금도 여전히 느끼고 있고 마주치고 있다.

 

우리집 딸들도 초등학교 때까지는 별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중학교 때부터는 공부를 할까 아님 다른 길을 선택할까 갈림길에 서면서 갈등을 많이 빚었다. 둘 다 피아노를 하고 있었고 성적도 좋았으니 두마리 토끼를 잡기는 힘들듯 하여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부모의 입장에서는 피아노는 어느 정도 쳤으니 공부를 하는게 낫겠다고 하여 포기를 시키는 그 단계도 힘들었지만 사춘기가 온 것이다. 요즘의 아이들은 사춘기가 늦게 오는 경우도 있고 오랫동안 사춘기인 경우도 있다는데 딸들은 사춘기가 그야말로 오래가는 듯 했다. 그렇다고 어디 풀어 놓지도 못한다. 서로 부딪히며 해결해 나가야지 막상 당해보지 않았다면 이해하지 못하고 건성 건상 듣고 만다. 하물며 함께 생활하는 옆지기 또한 이해를 못한다.날마다 싸운다고. 관심 밖에 있으니 딸들과 사소한 무슨 문제인지 모르기 때문에 왜 싸우는지를 모르는 것이다. 그렇게 딸들과 점점 애증의 관계로 변해 가면서 문을 닫는 녀석들과 똑같이 내가 문을 닫으면 안될 듯 하여 자식이 애교를 부리는게 아니라 부모가 애교를 부리며 녀석들의 마음을 풀어 주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정말 상전과 같은 위치의 아이들.

 

부모가 하는 이야기는 모두 자신들을 정말 '엄친아'와 비교하는 말로 오해를 하기 일쑤이면서 자신들이 말하는 '누구는 이런것은..' 라고 하는 말은 비교하는 말인줄을 모른다. 몸이 먼저 커버린 애늙이라 이해해줘야지 하다가도 뒤돌아 서면 서럽고 안타까운 것이 자식일이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하는 말이 잘못된 말인줄 잘 모른다. 내 뱉고 나서 한참이 지난 후에야 안다.그걸 알았다면 다행한 일이라 생각하고 나중에 풀리면 그럴 때는 꼭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해.' 하고 웃으면서 몇 번 이야기 했더니 말하기 껄끄러우면 문자로 보내주곤 했다. 그런 녀석들을 보면 천상 '어린애'다. 덩치는 부모만하지만 아직 머리가 영글지 않은 '어린애'처럼 어른 흉내를 싶었는데 딱 걸린 것이다. 아이들이란 부모가 저희들 성적이나 그외 교우관계나 학교이야기를 묻지 않으면 관심이 없는 줄 안다. 너무 드러내 놓고 이야기를 하면 부딪히기에 뒤에서만 신경을 써주면 '엄마는 나한테 통 관심이 없어'라고 취급해 버린다. 그럴 때는 가끔 한번씩 엄마가 어떻게 지지를 하고 있는지 '알파맘인지 베타맘'인지 인식 시켜 주면 틈새를 좁힌다. 자신의 성적표에 관심을 보이면 서로 스트레스를 받을까봐 학원에 전화하여 메일로 보내달라고 하여 상담을 하던지 전화로 상담을 하여 모두 알고 있는데도 녀석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관심 밖인줄 알고 불안해 한다. 우리나라처럼 '성적'에 민감한 학생과 부모는 없을 것이다. 사춘기 아이들 앞에서 '성적'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정말 금기처럼 해야한다.

 

성적 뿐만이 아니라 사춘기 아이들과 말을 할 때는 '단어'하나에도 신경을 써야한다.저희들은 '짜증나'를 밥 먹듯 이야기 하면서 엄마의 입에서 '짜증'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을 하는지. 하지만 어떤 상처라도 그냥 곪게 놔두기 보다는 터쳐서 아물게 해야 한다. 그냥 놔두면 옹이가 박힐 수 있다. 아이들과 제일 많이 하는 스트레스 해소법은 함께 영화를 보러 간다던가 함께 맛있는 것을 먹으러 건다던가 엄마의 정ㅅ이 가득 담긴 선물을 한다던가 그리곤 책으로 소통을 하려고 많이 노력한다. 사춘기 아이들을 키우면서 부쩍 청소년과 관계 되는 책을 찾아서 읽게 되고 화를 내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큰소리 보다는 가만히 안아주던가 먼저 토닥여 주고 이야기를 하게 하면 저희들도 어디에 스트레스를 쏟아내지 못하고 갇혀 있기에 그랬다는 것을 알게 된다. 초등학교 때야 집에 오면 엄마 꽁무니를 쫒아 다니며 쫑알쫑알 이야기를 하며 스트레스를 풀었지만 중학교 고등학교를 들어가면서 점점 서로 교감하는 시간이 줄어 들고 대화가 줄어드니 서로의 마음을 전부 알고 있지를 못한다. 자신 혼자 힘들고 불안한 시기라고 생각을 한다. 그럴수록 부딪히며 진로도 교우관계도 물어봐야 한다.

 

우리 아이들만 동굴에 갇힌 것이 아니고 나 혼자만 지금 힘든 시기에 빠진 것이 아니다.모두가 다 똑같은 시가를 지나고 있고 힘든 상황인데 그냥 무시해 버리거나 방관한다면 더욱 큰 문제로 불거질 수도 있다. 내가 지나 온 시대와 지금 시대의 아이들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그만큼 시대가 많이 발전했고 아이들은 어려운것을 모르고 자라는 물질만능주의에 살고 있기 때문에 자신만 못하다는 것을,남과 다른다는 것을 잘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고 남이 하면 나도 따라야해 하는것처럼 여긴다. 남과 똑같아 지기 보다는 남과 다른 개성과 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해주면서 내 주머니를 채우기 보다는 '나눔과 봉사'에 관심을 가지게 하면 보다 넓은 시야를 갖게 되기도 한다. 딸이 잘 하는 말이 있다. '엄마 내가 힘들다고 하면 그냥 힘드니라고만 해줘' 제 말에 맞장구를 쳐주길 바란 것인데 부모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해주면 정말 짜증을 내고 싫어한다. 힘들어서 푸념을 하는 것을 가만히 들어주기 보다는 부모의 잣대로 이야기 하다가는 정말 본전도 못 건진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사춘기가 되면서 아이들은 '생활의 변화' '관계 변화' '성적 변화' 거기에 '미래 설계'까지 해야 한다. 공부만 강요받은 아이들이 자신의 적성을 찾고 자신들의 진로를 정한다는 것은 정말 거짓말처럼 보이는데 정해진 기간내에 정해야 한다. 그렇게 하여 성적에 따라 선택된 적성으로 대학을 다니다보면 자신과 맞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되늦은 후회가 된다.

 

모든 시가는 다 지나가겠지만 서로가 마음의 문을 닫기 전에 문을 열고 대화를 통해서 서로의 마음을 보여 주어야 한다. 힘들다고 혼자 문을 꼭꼭 닫고 있다면 그 자신이 힘든지 누가 알겠는가. 말로 열지 못하는 문이라면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그런 현명한 방법들을 제시해 준다. 정말 가끔 나도 딸들에게 '외계인' 같다는 말을 하지만 서로의 언어가 다른 것처럼 '소통'이 안될 때가 있다. 회피하기 보다는 부딪히거나 좀더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는 이런 책을 한 권 읽어 보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다. 혼자 끙끙거리기 보다는 '문제는 문제로 꺼내 놓을 때' 해결책이 나온다.내가 읽었으니 다음에 시간이 난다면 딸들에게도 읽어보라고 슬며시 권해봐야겠다. 가끔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는 이런 책으로 서로 '교감'을 나눌 수 있는 거리를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속시원하게 읽었지만 그래도 아직은 터널을 지나고 있는 시간이라 좀더 기다려야 이 시간이 지날 듯 하다. 아이와 같이 감정을 터뜨리기 보다는 한발짝 뒤로 물러나 문제를 볼 수 있는 이성적이고 현명한 부모가 되길.그리고 유명인을 아이의 멘토로 삼기 보다는 '부모'가 멘토가 되고 롤모델이 되보는 것은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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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맛비 내리는 날 초록이들

 

 

 

 

간만에 빗소리가 정말 좋다.

쏴아 쏴아 쏴아 쏴아....주륵 주륵 주르륵..

이 빗소리를 얼마나 기다린 것인지..

그런데 너무 온다는..장맛비다.정말 장하게 오신다.

 

장맛비가 내리니 나의 초록이들은 좋은지 조용히 비를 맞고 있다.

활짝 핀 도라지꽃은 굵은 빗방울 이겨내려 고개를 숙이고...

꽃잎 위로 초록잎위로 떨어져 내리는 비가 좋다.

 

 

 

파프리카..꽃이 제법 많이 폈다

 

파프리카..어제 비가 온다고 해서 안방베란다에 있던 것을 낑낑거리며 내놨다...

 

방울토마토가 어제와 오늘 색이 다르다..

 

더덕줄기와 도라지꽃

 

 

이녀석들 이 비가 지나고 나면 한뼘 성장해 있겠지.

그동안 얼마나 애타게 비를 기다렸던가.이렇게 한번에 쏟아 지려고 애를 태운 것인지.

빗소리에 나도 초록이도 반가운 날인데 너무도 빗소리가 장하다. 거하다.

세상 모든 움직임이 빗속에 감추어진 듯 조용하다.

 

 

 

 

 

 

 넉줄고사리

 

비 오는 날, 비 구경도 좋아하고 빗소리 듣는 것을 참 좋아하는데

이렇게 문을 열고 빗소리를 들어가며 비 맞고 있는 초록이들 구경하는 것도 참 좋아한다.

녀석들 비를 훔뻑 맞으며 무얼 생각하고 있을까.

어제 더위에 낑낑거리며 실외기 베란다로 내 놓은 파프리카는 비를 맞고 더 튼튼하게 자랄까..

도라지는 비가 지나고나면 더욱 튼실한 꽃을 보여줄까...

방울토마토는 비가 지나고 나면 빨갛게 익어 따야 할 듯 하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니 말이다..

제라늄들은 창가에서 옹기종기 붙어 무언가 빗소리를 들어가며 수다삼매경에 빠진 듯한 풍경이다.

녀석들 씨를 심었는데 아직 감감무소식이다. 씨를 더 심어봐야 씨가 잘 영글었는지도

알것같아 몇 개 심어 봤는데 그동안 더위에 싹이 나지 않는 것인가...

 

그동안 아침이면 나보다 녀석들 물을 먼저 챙겼는데 오늘은 한가하다.

그대신 녀석들 바라보며 괜히 감상에 젖는다.

따듯한 커피 한 잔을 타서 베란다 문을 열고 창턱에 올라서서

초록이들 바라보며 마시니 참 좋다.빗소리도 듣고 초록이도 보고...

빗속에 잠긴 세상도 바라보고...오늘은 하루종일 비타령을 해도 참 좋을 듯...

 

2012.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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