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요 엄마
김주영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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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오셔야 하겠습니다. 새벽 세시에 걸려온 전화가 예사로울 리는 없었다.' 소설의 첫 부분을 읽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나도 모르게 '헉'소리를 내면서 눈물이 줄줄,그랬다. 2010년 어느 날, 나 또한 이시간에 전화를 받았다.전화벨이 울리는 순간에 남편과 난 순간적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셨음을 짐작했다. 그 전 해에 폐암 판정을 받으셨고 얼마 남지 않은것 같다는 이야기를 가시기 서너달 전에 듣고 부터는 늦은 시간 혹은 이른 시간에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었고 촉수는 온통 '아버지'에게로 향하고 이었다. 그 순간 아버지의 인생이 주마등처럼 나의 뇌리를 스쳐가면서 아버지의 부음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리곤 '왜 나에게 이런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는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부모님의 부음을 나도 이젠 겪어야 하는 나이라는 것이,아니 가는데는 순서가 없다고는 하지만 못해드렸던,해드린 것보다 못해드린 것이 너무 많은데 너무 서둘러 가셨다는 생각에 숨을 쉴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시간이 넘도록 들숨도 날숨도 어떻게 하는지 잊은 내 심장은 그야말로 바늘로 찌르듯 아파 아버지의 부음 소식보다 내 심장을 더 걱정하던 그런 시간이 있었다.

 

사실은 첫페이지의 두 줄을 읽고는 소설을 읽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떻게 해야하나 하고는  그냥 첫 장을 쳐다보기만 했다. 아버지를 보내드렸던 마지막 그 날들이 너무도 생생히 떠오르고 아버지와 함께 병원에서 함께 했던 '이주동안의 값진 시간'들이 세세히 기억이 나서 흐르는 눈물을 어쩌지 못했다. 도저히 그냥은 읽지 못할 듯 했다. 왜 새벽 세시에 어머니의 부음 전화를 받는 설정이어야 했나 하는 괜한 저자에 대한 미움에 읽을까 말까를 망설이다 도저히 궁금함에 그냥 접어 두고 있지 못할 듯 하여 다음날에 다시 읽게 되었다. 왜 어머니의 부음 전화를 받고는 그는 소리를 잊은듯 먹먹함에 바로 내려가지도 못하고 그렇게 자신안에 갇혀 있었던 것일까,어머니는 그리고 일반적인 장례절차를 치르지 말고 그냥 화장하여 뿌려 달라고 했을까? 아들과 어머니의 사이에 무언가 벽이 가로 놓여 있다. 그런가 하면 아우는 왜 그렇게 '형'을 어려워 하는지.

 

소설은 어머니가 최근이라 할 수 있는 시간에 '나'의 집을 방문한 기억부터 시작된다. 큰아들의 집이라고 한번 큰 맘먹고 왔지만 가족이 모두 데면데면한 것이나 아들과 어머니 사이 또한 이렇다 할 교감이 없다. 자식과 어우러지지 않으면 손주들과라도 어우러져야 하는데 그렇지도 못하다.그렇다면 왜 그 힘든 길을 어렵게 아들을 보러 온것인지. 그랬다.그저 큰아들 얼굴 한번 보려고 그렇게 어머니는 힘든 발걸음에 작은 아들을 앞세워 올라왔다가 그렇게 또 내려가시고 만 것이다. 가족이라기 보다는 그저 서로가 있어야 할 장소에 함께 있는 물건들처럼 그렇게 모였다 흩어진 사람들, 이 가족에게는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어머니는 왜 아들을 데면데면하고 아들은 또 왜 어머니를 남보듯 할까? 어머니의 말씀처럼 화장을 했을 것이라 생각한 시간에 시골로 향하는 그,하지만 아우는 형을 기다리고 있다. 어머니의 그런 마지막을 보고 싶지 않았던 형은 어쩔 수 없이 염하는 시간에 어머니의 마지막과 마주하면서 비로소 '어머니'를 보게 된다. 그동안 어머니는 무엇으로 살아 오신 것일까?

 

대부분의 우리들 부모님은 자식을 위하여 자신들은 희생하며 껍데기로 살아 오셨고 또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을 한다. 나 또한 아이들을 키우며 살다 보니 엄마를 혹은 아버지를 나와 같은 '사람'으로 인정하기 보다는 무언가 나보다 대단한 힘을 가진 부모인 어머니나 아버지로 생각을 했지 그들 또한 나와 같은 여자이고 나와 같은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라는 당연한 진실을 외면하며 살아 온 듯 했다.어느날 친정엄마와 긴통화를 하다가 '아차' 하는 순간에 '엄마도 여자였구나'라는 것을 느끼고는 그동안 여자로서 못챙겨 드렸던 것들을 챙겨 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렇다면 소설 속의 '나'는 왜 어머니와 소원한 관계가 된 것일까? 어머니는 두 남자와 살림을 사셨지만 '결혼'은 안하셨다.호적도 친정호적에 있는 어머니,아버지가 떠난 후에 아들과 둘뿐인 자신들의 목숨을 유지하기 위하여 동네의 허접한 잡일을 모두 다니셔도 늘 월사금도 밀려가며 벌을 서고 제대로 먹지 못하고 도시락도 한번 싸가지 못하는 그런 가난하면서도 고난한 삶을 살아야 했다.그런 와중에 외삼촌네 식구들까지 챙겨가며 살아야했던 어머니가 갑자기 새아버지를 데리고 왔다. 그동안 어머니와 나 사이에 다른 무엇이 존재하지 않았는데 새아버지가 둘 사이를 갈라 놓고 나는 동네를 방황하고 집과 외삼촌댁을 왔다갔다 하고 어머니가 일을 다니는 권씨네 병신이라 불리는 정태와 어울려 다니며 밤세상을 즐기게 되지만 그도 오래가지 못하고 끝나고 말았다.

 

그런가 하면 외삼촌 댁에는 애숙이라는 누이가 경원과는 맘이 잘 맞고 그가 똥눌 때는 귀신이 나타나나 망도 잘 봐주곤 했는데 어느날 어머니는 애숙누이를 몰래 빼돌렸다.왜 그랬을까? 누이가 떠나고 외삼촌댁도 시들해 지고 집에는 배다른 동생이 있으니 그 또한 자신의 자리가 아닌 듯 하여 사춘기 시절에 집을 나가게 되는 경원,그렇게 집을 나간 것이 어머니와의 긴 이별의 시간이 되고 말았다. 왜 지금까지 어머니와도 아우와도 그리고 자신의 고향과도 그렇게 멀게 살아왔고 어머니를 받아 들이지 못하고 살아 온 것인지. 어머니를 보내 드리고 곧 올라가겠다고 생각했던 길이 아우에 의해 지체되면서 지난날 이야기들을 듣게 되고 그동안 큰아들에게 숨겨왔던 가족의 비밀이 풀리고 어머니의 비밀이 풀린다.늘 남의 집 일을 다니며 그곳을 떠나기 싫어했던 어머니가 왜 그래야 했는지 그 이유도 듣게 되고 자신의 집에 올라왔을 때 애지중지하던 값싼 가방을 열어 본 순간 가방 속에 들어 있는 '빨간 립스틱'을 보고는 '아, 어머니도 여자였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어머니의 삶을 고스란히 받아 들이면서 그동안 어머니와 자신 사이에 있었던 벽을 허물며 어머니를 그저 '여자'로 한사람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세상을 살아 가면서 나에게 필요 없는 '인연'이란 없다. 그것이 부모인 아버지도 그렇고 어머니도 그렇고 형제도 그렇지만 나와 함께 했던 모든 사람들속에 필요 없는 사람이란 없다. 모두가 얼키고 얼킨 실타래처럼 서로 인연과 인연이 얼켜 그렇게 삶은 이어지고 그런 가운데 자신 또한 성장하고 인생살이를 하는 듯 하다. 나 또한 타인에게 받은 것을 고스란히 타인에게 돌려 주면서 그렇게 서로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으면서 덤도 없고 마이너스도 없는 인생이 되는 듯 하다. 부모 자식 간에도 씨실과 날실처럼 엉켜 있지만 나와 함께 하는 이웃 간에도 씨실과 날실로 엉켜서 인생은 이어진다. 툭 끊어진 실로 옷을 짤 수는 없듯이 나 혼자 뚝 떨어져 세상을 살아 갈수는 없는 것처럼 병신이라 놀림을 받았던 정태의 도움을 받아 우물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고 그는 방안에 갇혀 지내던 그를 세상구경을 시켜 주게 되듯 더하고 뺄것 없는, 저울질을 해봐야 소용없는 것이 인간사로 그려진다. 경원과 아우 또한 남보다 못한 관계같지만 어머니에겐 모두 자식이며 자신과 어머니를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지금 아우가 하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라는 진짜 알맹이를 만나며 지금까지 나를 감싸고 있던 거짓의 허물을 벗다.'

그런데 왜 그동안 어머니와 나,아니 어머니와 새아버지와 아우 그리고 나는 따로 떨어진 관계처럼 된 것인지. 어머니의 삶을 지금까지는 '껍데기'만 보고 그 진짜 속 알맹이를 보지 못했음을 아우의 말을 듣고는 깨우치게 되는 경원, 뿌리 없는 나무가 있을 수 있을까? 어머니가 있었기에 자신이 존재하는 것이지 어머니 없는 자신이 존재할 수 없음을,지금까지 자신의 오해에서 어머니와 아우를 받아 들이지 못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지만 너무 늦었다. 이미 어머니는 가시고 없는 것이다. 풍수지탄,이제 와서 후회하면 무엇을 할 것인가.자신은 배우지 못하고 가난했지만 자식은 번듯하게 키우고 싶었고 배곯지 않게 키우고 싶었고 남에게 매맞지 않게 키우고 싶었고 자식에게 해가 되는 일은 절대 하고 싶지 않았던 어머니,하지만 자식은 그런 어머니를 늘 오해하며 데면데면했는데 어머니를 보내 드린 후에야 어머니를 삶과 어머니를 제대로 인정하게 되었다. 슬프다. 가족간에는 오해도 미움도 증오도 제일 많이 하게 되지만 용서한다는 것은 더욱 힘든 일이다. 그것이 가족이기 때문에 더 힘든 경우가 있다. 남이야 용서를 하고 보지 않아도 될 경우가 있지만 가족은 평생을 함께 해야 할 사람이므로 용서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 될 수 있다. 자신의 인생 전체가 배배 꼬여 있듯이 지금까지 살아왔던 그 중심에 '어머니'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비로소 그 어머니를 받아 들이고 보내들일 수 있게 되었고 또한 '가족'을 보듬어 안게 되었다. 어머니의 부음으로 인해 자신의 과거를 모두 치유받게 된 경원, 서울의 삶이 싫어졌다.

 

아들로서 어머니를 바라보는 시선이 이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딸의 입장에서 어머니라는 존재를 보다보니 '아들'의 입장보다는 오빠들이 엄마에게 하는 모든 것들의 잣대로 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생각할 때가 있다. 내가 내 부모에게 하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지면서 결혼하여 새로 온 가족이 되는 '부모'에게 하는 것은 내 부모에게 하는 것과는 똑같이 할 수 없게 된다. 그것을 부모가 아플 때 병원에 가보면 아들인지 딸인지 혹은 사위인지 며느리인지 확연히 드러난다. 경원은 어머니의 큰아들이었지만 어머니는 오로지 아들뿐이었지만 그는 어머니의 삶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데면데면하다. 남보다 더 못한 사이가 된 어머니와 아들 사이에는 '어머니의 삶' 이 가로 놓여 있는데 이제 어머니의 삶을 고스란히 온 몸으로 받아 들일 수 있다. 비로소 '잘가요 엄마' 아니 '엄마'소리가 진정으로 나오게 된다. 가족간에 맺힌 매듭이 더 잘 풀리지 않은 경우가 있는데 왜 지금까지 어머니도 여자고 나와 똑같은 사람이리는 것을 받아 들이지 못하고 옹졸하게 살아온것인지. 그가 내뱉은 '엄마'라는 말에 나 또한 한숨이 나온다. 결혼하여 살다보면 가슴을 누르고 있는 맺돌이 있다.그것을 내려 놓고 싶은 순간이 있는데 그가 내뱉은 '엄마'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막힌 숨이 터지는 기분이다. 잘가요 엄마, 한 줌 먼지로 돌아가신 어머니,그런 존재였다,우리 모두는. 아웅다웅 산다고 해도 똑같이 먼지로 돌아가는 존재이고 천륜이란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으며 평생 가슴을 누르고 있던 맺돌을 내려 놓은 경원처럼 좀더 혼자 계신 엄마한테 잘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우린 늘 그런다,내가 살아봐야지만 남의 삶을 이해하게 되듯 내가 부모가 되어봐야지 내부모의 삶을 이해하듯 내 자식들에게도 똑같은 말을 하고 있다. 사람이기에 늘 후회를 하며 살게 되는데 그것이 너무 늦지 않기를,지금 만나러 가보세요,어머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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